#다양한 생물에 대한 진화 연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신경계의 기원을 추적한다
전압 개폐성 나트륨 채널이나 시냅스 소포 융합 단백질(SNARE), 억제성 신경전달물질(GABA) 등 인간의 신경계에서 작동하는 핵심 요소들은 흔히 동물 신경계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혁신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 연재(지난 연재 [뉴런의 탄생(3)] 참조)에서 살펴보았듯 깃편모충류나 카프사스포라(Capsaspora) 같은 단세포 진핵생물을 비롯해, 동물 밖 다양한 미생물들에게서 이미 이러한 유전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경계가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아니라, 고대 생물부터 존재했던 재료들을 재배치(co-option)한 결과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처럼 신경계의 진화를 바라보는 ‘연속적’인 관점은 신경계의 구성 단위인 ‘뉴런’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동물 진화 초기에 미분화된 세포로부터 현생 생물의 뉴런처럼 완전히 기능적, 구조적으로 특화되고 고도화된 뉴런이 바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원시적이고 과도기적인 단계의 세포를 거쳐 오늘날의 뉴런이 진화했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가설적 세포를 “원시적인 뉴런”이라는 의미로 ‘프로토뉴런(protoneuron)’이라고 부른다.
프로토뉴런의 탄생
다세포 후생동물은 깃편모충과 현생동물의 공동조상인 단세포 원생생물(아마도 조건부로 다세포 군집을 형성할 수 있었던)로부터 진화했다([최초의 동물(1,2)] 참조).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면서 일어난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변화는 세포의 ‘분화’이다. 단세포 생물은 하나의 세포가 하나의 개체이다. 당연히 기능의 분화가 없다. 예컨대 깃편모충은 세포가 혼자서 주변 박테리아 반응(감각)하고 편모로 이동(운동)도 하며, 잡아먹은 박테리아로 활발하게 물질대사도 해야한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을 비롯한 다세포 동물에서는 세포들 간 기능의 특화가 두드러지게 관찰된다. 우리 눈에 있는 시세포(간상세포, 원추세포)는 빛을 감각하는데 특화되어 있고, 면역세포는 몸 내외의 적들과 싸우는 데에 특화되어 있으며, 골세포는 뼈를 만들어 구조적 지지 역할을 하는데에 전문화되어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접근하자면 미분화된 세포에서 점차 기능이 특화되고 전문화된 세포로의 분화가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진행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뉴런의 모체가 된 과도기적 ‘프로토뉴런’은 어떤 세포였을까? 한 세포가 세포막에 감각 수용체를 지니고, 동시에 일정 자극을 받으면 세포 밖으로 신호물질을 내놓으며, 자체적으로 수축이나 운동 반응까지 일으킬 수 있는, 아직은 완벽히 분화되지 않은 다기능성 세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컨대 하나의 세포가 감각·운동·분비를 전부 수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세포가 다세포 동물 안에서 본격적으로 거대한 세포 공동체를 구성해 나가면서, 어떤 세포는 전기 신호와 시냅스 전달에 특화(뉴런)되고, 어떤 세포는 수축하는 힘을 제공(근육세포)하며, 어떤 세포는 호르몬이나 소화액 같은 분비를 전담(분비세포)하는 세포로 다양한 ‘세포형(cell type)’의 분화와 진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프로토뉴런 가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 몸 안에도 이러한 프로토뉴런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포 집단이 관찰된다. 바로 ‘신경내분비세포’들이다. 우리 몸에서 항상성을 조절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부분인 시상하부는 활동전위를 일으키는 뉴런인 동시에 뇌하수체나 혈액으로 호르몬을 분비하는 분비세포이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신경내분비세포가 아니더라도 ‘분비’ 기능은 여전히 뉴런의 핵심 기능이기도 하다. 화학적 시냅스에서 뉴런과 뉴런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시냅스 전 뉴런이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을 분비해야 하고, 시냅스 활성을 조절하기 위해 신경조절물질(neuromodulator)를 분비하는 것도 굉장히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신경계와 근육계의 밀접한 관계도 프로토뉴런 가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자주 인용된다. 매우 흥미롭게도 신경계를 지닌 동물들은 모두 근육계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신경과 근육이 어떤 원시세포의 분화를 통해 동시에 생겼을 가능성을 함의한다. 또한 자포동물(해파리나 말미잘) 발생 과정에서도 뉴런과 근육세포의 분화가 긴밀히 얽혀 있어, 두 세포형이 같은 세포(프로토뉴런)로부터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감각기능과 신경 신호 전달 기능의 분화 또한 프로토뉴런에서 출발한 한 갈래의 방향이라고 추정된다. 시세포나 미세포처럼 감각에 특화된 감각세포들이 발견되지만, 동물의 감각계에서 후각뉴런처럼 뉴런이 직접 감각 기능을 담당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게 확인된다. 종합하자면 이러한 관찰들은 모두 “프로토뉴런이 근육·내분비·감각·신호전달 기능을 모두 간직한 다기능 세포였을 것이다”라는 시나리오를 지지하고 있다.
살아있는 화석을 찾아서
프로토뉴런 가설은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며, 여러 정황 증거들이 이 가설을 지지한다. 하지만 지만 문제는 이 중간 단계를 직접 확인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이다.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 할 수 있는 화석 증거는 신경조직이 화석에 남기 힘든 연질 성분이라 기대하기가 어렵다. 비교적 원시적인 신경계를 지녔다고 알려진 빗해파리(유즐동물)이나 해파리와 말미잘 등 자포동물 또한 이미 긴 진화의 시간을 겪어 프로토뉴런의 기준점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런데 베일에 싸여 있는 프로토뉴런의 가능성과 실제 모습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논문 ‘Stepwise emergence of the neuronal gene expression program in early animal evolution (초기 동물 진화 과정에서 단계적 신경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의 진화)’이 2023년 10월 지에 발표된다. 이 논문의 주인공은 판형동물(Trichoplax)이라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마도 대체로 생소할 동물이다(사진 1). 계통분류학적으로 이들은 해면동물, 빗해파리(유즐동물)과 함께 동물계에서 매우 오래전에 갈라져 나간 기저동물로 꼽힌다. 게다가 겉보기에도 매우 단순해 보일 뿐만 아니라 신경계를 비롯한 명확한 장기나 조직 분화가 없어, 다세포 동물 중에서도 최소한의 체제만 갖춘 상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판형동물은 고대의 원시적인 동물의 모습을 품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사진 1. 판형동물(Trichoplax adhaerens)의 모습. 직경이 0.5mm 밖에 되지 않는 이 생물은 놀랍게도 우리와 같은 동물로 분류된다.>
판형동물은 크기가 수 ㎜ 정도로 작고, 열대·아열대 바다의 얕은 연안이나 수족관 환경 등에서 발견된다. 연안 지역 암반이나 조간대 조류(algae) 위 등에 부착되어 살기도 하며, 그 분포 범위가 완전히 특정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온난한 해역에 폭넓게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세 조류나 작은 미생물 등을 외부에 분비하는 소화액으로 녹이고 섭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별한 근육 조직이나 신경계를 지니지 않으면서도, 바닥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먹잇감을 향해 몸체를 조정하는 등 제한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능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매우 흥미로운 특징들을 보이는 판형동물은 완전히 분화된 뉴런과 근육이 없다는 점에서 프로토뉴런으로 간주할 수 있는 세포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렇다면 판형동물은 화석으로는 찾을 수 없는, 고대의 프로토뉴런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일까?
스페인 연구진은 그 가능성을 ‘단일세포 전사체’ 기술을 이용하여 정밀하게 분석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다세포 생물을 이루고 있는 개별 세포의 유전자 발현 프로필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세포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적용하여 지난 10여년 간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들의 세포 지도(cell atlas)가 제작되었고, 진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판형동물의 세포 지도 또한 제작되게 된 것이다.
프로토뉴런은 펩타이드 분비세포였을까
연구진은 판형동물(Placozoa) 네 종을 대상으로 대규모 단일세포 RNA 시퀀싱(scRNA-seq)을 수행하여 세포형의 다양성을 파악했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6~9가지로만 분류되던 판형동물 세포 유형이 훨씬 세분화되어 나타났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것은, 신경계를 갖지 않는 판형동물에게서도 펩타이드(단백질과 똑같은 아미노산의 중합체이지만, 보통 수백 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연결된 단백질보다는 구성하는 아미노산 숫자가 훨씬 적다.)를 분비하는 세포형, 즉 ‘펩타이드성(peptidergic) 세포’가 14가지 유형이나 존재한다는 발견이었다.
이 펩타이드 분비세포들은 공통된 특징, 즉 ‘시냅스 전 단백질’이나 신경전달물질 처리 효소 등을 공유하면서도, 세부적으로 표현형이 달라 14개 타입으로 구분된다. 아직 전형적인 시냅스 구조나 축삭 돌기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지만, 분비해야 할 펩타이드를 가공(단백질 절단, N-말단 변형, 아미드화 등)하여 세포 외부에 내놓는 능력은 이미 상당히 정교한 것으로 분석되었다다. 이는 판형동물이 단순한 몸체 속에서도 다양한 신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뉴런적 기작’을 미완성 상태로나마 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놀라운 점은 이들이 ‘단지 분비만 하는’ 세포가 아니라, 유전자 발현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자포동물·좌우대칭동물의 뉴런과 깊은 유사점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논문에 따르면 자포동물·척추동물 등의 뉴런에서 널리 보이는 전압 개폐성 칼슘 채널, 신경소포(snaptic vesicle) 조립 인자를 포함한 여러 시냅스 단백질이 판형동물의 펩타이드성 세포에서도 이미 발현되고 있는데, 이는 뉴런의 핵심 기작 중 ‘신경전달물질(펩타이드) 분비’가 진화 초기에 먼저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반면 ‘시냅스 후 수용체(post-synaptic scaffold)’나 축삭/수상돌기 형성 유전자 등은 결여된 상태였다. 종합하자면 판형동물이 보여주는 소규모 펩타이드 분비 네트워크는 ‘주변분비(paracrine)’ 방식에 가깝게 작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연구진은 동물 역사 초기에 “펩타이드를 활용한 세포 간 신호전달이 먼저 고도화되었다가, 이후에 시냅스 후막과 축삭·수상돌기 등 전형적인 뉴런 요소들이 추가되는 식으로 진화가 이뤄졌다”는 ‘단계적 진화’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단계적 진화의 패턴은 발생 유전자의 발현 양상에서도 확인되었다. 펩타이드성 세포들이 ‘하부 상피’와 같은 세포로부터 점차 분화해 가는 듯한 ‘전구세포(progenitor)’의 특징이 관찰되었는데, 이 때 유전자 발현 양상을 보면, 자포동물이나 척삭동물 뉴런 발생 과정에서 작동하는 전사인자(SoxB, SoxC 등)들이 유사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판형동물과 자포동물, 좌우대칭동물의 공동조상에서 이미 뉴런 발생·분화 프로그램이 상당 부분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반면 판형동물보다 먼저 동물계에서 분기된 유즐동물이나 해면동물에서는 이처럼 보편적으로 보존된 ‘뉴런 전(前)’ 프로그램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판형동물의 계통과 새롭게 밝혀진 다양한 펩타이드성 세포들의 분자적 특징은 프로토뉴런에서 뉴런으로의 진화 중 판형동물이 ‘뉴런 직전 단계’의 프로토뉴런의 ‘살아있는 화석’임을 함의한다. 이 살아 있는 화석은 “뉴런을 이루는 핵심 유전자 세트가 이미 판형동물과 자포동물, 좌우대칭동물이 갈라지기 전부터 상당 부분 갖춰져 있었으며, 이후 단계적으로 시냅스 후 구조나 이온 채널 조합이 덧붙여져 비로소 완전한 신경계가 확립되었다”라는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아마도 자포동물과 좌우대칭동물이 갈라지기 전후로 마지막 몇 개의 퍼즐조각들, ‘시냅스 후막’이나 ‘이온 채널을 통한 빠른 전기 신호’ 같은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프로토뉴런’을 넘어 진짜 ‘뉴런’이 마침내 태어나지 않았을까.
참고문헌
Miller, Greg. 2009. “Origins. On the Origin of the Nervous System”, Science 325 (5936): 24–26.
Najle, Sebastián R., Xavier Grau-Bové, Anamaria Elek, Cristina Navarrete, Damiano Cianferoni, Cristina Chiva, Didac Cañas-Armenteros, et al. 2023. “Stepwise Emergence of the Neuronal Gene Expression Program in Early Animal Evolution”, Cell 186 (21): 4676–93.e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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