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Street

신경계의 기원

[3회] 최초의 동물(1)

2024년 4월 통권 223호

빗해파리의 계통이 재정립되면서 신경계의 기원은 미궁에 빠졌다. (지난 화 참조 -crossroads webzine (apctp.org) ) 현재 경쟁 중인 두 가지 시나리오에 따르면 신경계는 현존하는 모든 동물의 공동 조상에 이미 존재했거나(‘단일기원설’), 혹은 빗해파리와 다른 신경계를 지닌 동물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최소한 두 번 진화했다(‘독립기원설').


이 두 가지 시나리오는 모두 한 가지 문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 최초의 동물이 어떤 생물이었을까 하는 문제이다. 만약 독립기원설이 맞다면, 초기 동물에 신경계 자체는 없었을지라도, 신경계가 두 번 이상 진화할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다. 단일기원설의 경우에는 최초의 동물이 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러한 잠재력이 실제로 실현되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최초의 동물을 추정할 수 있다면, 그러한 동물로부터 어떻게 신경계가 출현할 수 있었는지 더 잘 짐작할 수 있다.


화석 증거는 6억 년 이전, 분자 계통 분석은 8억 년 전쯤 최초의 동물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지목한다. 말하자면 생명 진화의 역사를 그 이전으로 되돌리면 지구에는 동물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동물은 누구로부터 어떻게 진화했을까?


동물의 자매


최초의 동물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동물이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 동물(動物)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뜻이다. 사실 지구에는 두 종류의 동물이 있다. 하나는 원생동물(原生動物, Protozoa)이고, 다른 하나는 후생동물(後生動物, Metazoa)이다. 원생동물은 단세포 진핵생물인 원생생물(protist) 중에서도 아메바처럼 다른 생물을 잡아먹고 살아가는 생물이다. 반면 인간을 포함하여 우리가 흔히 동물(animal)이라고 부르는 생물들은 다세포 생물이며, 후생동물에 해당한다.


생명이 출현하고 수십 억 년 동안 지구에는 박테리아와 원생동물을 포함한 단세포 생물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아마도 8억 년 전쯤 원생동물 중 한 계통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며 현존하는 모든 후생동물의 조상이 되었다. ‘Animal’이란 바로 이 조상과 그 후예들을 뜻한다. 해면동물처럼 고착생활을 하는 생물도 동물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후생)동물은 특성이 아니라 ‘핏줄’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의 기원과 진화를 밝히기 위해서는 어떠한 원생동물이 어떻게 후생동물로 진화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문제는 타임머신을 타고 몇 억 년 전 지구로 되돌아가 동물의 조상을 탐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현생 생물(현재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물) 중에서 후생동물과 가장 촌수가 가까운 원생동물, 계통분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동물의 ‘자매’에 해당하는 원생동물을 살펴볼 수 있다. 어쩌면 이 동물의 자매가 먼 옛날 존재했던 동물의 조상과 매우 비슷한 단세포 생물일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지구 생태계에서 발견된 많은 원생동물 중에서 동물의 자매에 해당하는 원생동물은 바로 

‘깃편모충류(choanoflagellates)’이다. 깃편모충류의 이름은 이 원생동물의 특징적인 생김새를 담고 있다. 깃은 영어로 ‘collar’인데, 우리가 카라티라고 부르는 옷의 카라가 바로 깃을 뜻한다. 깃편모충은 깃과 함께 정자의 꼬리처럼 길게 뻗은 편모도 하나 지니고 있다. 이 편모를 흔들어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고, 깔때기 모양의 깃으로 포획한 박테리아를 섭식한다. 


그림1. 후생동물과 깃편모충류의 계통도. 깃편모충류는 후생동물의 자매분류군으로서 두 분류군이 Choanozoa라는 하나의 단계통군을 이룬다.


깃편모충류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생물이지만 이미 19세기부터 동물과의 밀접한 관련성으로 주목받아 왔다. 미국의 박물학자 헨리 제임스 클락(Henry James Clark)은 1866년에 <섬모성 해면이 동물이라는 확실한 증거와 Infusoria flagellata와의 관련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제목에서 ‘Infusoria flagellata’가 바로 오늘날 깃편모충류라고 불리는 원생동물이다. 


DNA를 통한 계통분석이 진행되기 한참 전 일찍이 클락이 깃편모충류와 동물의 연관성에 주목했던 이유는 바로 해면동물에서 발견되는 깃세포(choanocyte) 때문이었다. 깃세포는 생김새가 깃편모충과 매우 흡사할 뿐만 아니라 똑같은 기능을 한다. 깃편모충처럼 깔때기 모양의 깃과 길쭉한 편모를 장착한 깃세포는 깃편모충과 마찬가지로 해면동물 안에서 물의 흐름을 만들어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깃과 편모를 지닌 독특한 구조의 세포는 깃편모충류나 해면동물뿐 아니라 자포동물, 편형동물, 윤형동물의 일부에서도 발견되지만 식물, 균류(fungi) 혹은 다른 원생생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실제로 2002년에 DNA 분석 결과 깃편모충은 동물의 자매일 것이라는, 한 세기 반 동안 이어져 온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림2. 깃편모충류(왼쪽)와 해면동물(오른쪽)의 깃세포(가운데)는 거의 형태적으로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유사하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다세포성의 진화


깃편모충류가 동물의 자매이며, 동물에서 발견되는 깃세포가 깃편모충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은 깃편모충이 동물의 조상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이 깃편모충은 아니다. 8억 년 전쯤 깃편모충과 동물의 공동 조상이 두 집단으로 갈라졌고, 이 중 한 집단은 여전히 단세포 원생동물로 남아 깃편모충 가문을 형성했고, 다른 한 집단은 다세포성이라는 엄청난 혁신을 통해 후생동물로 거듭났다. 그런데 왜 하필 수많은 원생동물 중에서 깃편모충과 동물의 선조였던 원생동물(choanozoa)로부터 다세포 후생동물이 진화했을까? 


단세포 생물과 다세포 생물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단세포 생물에서 세포의 분열은 곧 ‘생식’이다. 세포가 하나의 개체이기 때문에, 세포 분열은 ‘개체’의 증식이기 때문이다. (단세포 생물에서도 유성생식 또한 존재한다. 하나의 배수체 세포가 감수 분열로 네 개의 반수체 세포를 형성하고, 두 반수체 세포가 융합하면서 유전자가 섞인 배수체 세포가 만들어진다.)


반면 다세포 생물에서는 세포분열로 만들어지는 세포 대부분이 하나의 개체를 이룬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세포인 수정란에서 발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성체가 만들어지는데, 성체를 이루는 많은 수의 세포는 모두 수정란의 세포분열을 통해 만들어진다. 출아(Budding)나 분절(fragmentation)과 같은 방식의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세포분열로 만들어진 세포들은 제각기 하나의 개체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커다란 세포 공동체를 이룬다.


현생 깃편모충의 흥미로운 생활사는 다세포 생물인 동물의 진화가 특정한 계통(choanozoa)에서 일어난 것이 완전한 우연은 아닐 가능성을 암시한다. 깃편모충류는 일반적으로 단세포 생물로서의 특징을 나타내지만, 종에 따라, 조건에 따라 다세포 군집(colony)을 형성하는 경우가 관찰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깃편모충류는 다세포 생물로 분류되지 않지만, ‘다세포성(multicellularity)’을 나타내는 분류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3. 꽃모양(rosette)의 애기꽃무늬깃편모충 군집들. 수십 개의 세포가 하나의 군체를 형성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redit: Mark J. Dayel 


예를 들어 가장 많이 연구된 깃편모충 종인 애기꽃무늬깃편모충(Salpingoeca rosetta)은 어떤 먹이를 먹느냐에 따라 군집 형성이 달라진다. 예컨대 Algoriphagus라는 박테리아를 먹이로 주면 이 종은 세포 수십 개로 이루어진 작은 꽃모양(rosette)의 구형 세포 군집을 형성한다. 이러한 깃편모충의 ‘조건부’ 다세포성이 동물의 단세포 조상에게도 존재했다면, 아마도 다세포성의 잠재력이 조건에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실현되는 방식으로 다세포 생물로 진화했다는 점진적, 혹은 단계적 설명이 가능하다(절대적 단세포 → 조건부 다세포성 → 절대적 다세포성). 


조건부 다세포성에 더해 깃편모충류가 군집을 형성하는 방식 또한 동물 진화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사실 원생생물 중에서 다세포 군집을 형성하는 경우는 깃편모충류 외에도 종종 발견된다. 아메바류의 한 종인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 (Dictyostelium discoideum)은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인데, 이 종은 먹이가 부족해지면 단세포 개체들이 뭉쳐 커다란 다세포 덩어리를 만들어서 한 몸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동물은 이처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세포들이 집합(aggregation)하여 다세포 개체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세포분열로 생성된 세포들이 물리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나의 개체를 이룬다.


놀랍게도 깃편모충류의 다세포 군집 또한 동물의 배아 발생과 똑같은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미국 UC버클리 대학의 니콜 킹(Nicole King)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애기꽃무늬깃편모충이 세포들이 뭉쳐 군집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분열 후 분리되지 않고 물리적으로 결합된 세포들이 군집을 이룬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세포분열을 억제하면 군집이 형성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킹 연구팀은 군집을 형성하지 못하는 돌연변이를 발굴하는 실험을 통해 ‘rossetless’라는 유전자를 찾아냈는데, 이 유전자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 잘 보존되어 있으며 발생과 조직 형성에 매우 중요한 ‘C-type lectin’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임을 밝혀내었다. 이는 동물의 다세포성과 깃편모충류의 다세포성이 공동의 기원을 갖고 있음을, 달리 말해 같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활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rossetless 유전자 연구는 동물 기원 연구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동물의 자매인 깃편모충류의 유전체(genome)가 밝혀지면서, 8억 년 전쯤 갈라진 두 계통에서 모두 보존된 유전자를 확인하고 이들의 기능을 조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는 동물의 조상이 어떤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을지 추정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석으로는 확보할 수 없는 최초의 동물에 대한 엄청난 정보가 사실은 우리의 DNA와 지천으로 널린 작은 원생동물인 깃편모충류의 DNA 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이어짐.)



참고논문


James Clark, H. 1866. “Conclusive Proofs of the Animality of the Ciliate Sponges, and of Their Affinities with the Infusoria Flagellata.” American Journal of Science s2-42 (126): 320–24.

King, Nicole. 2005. “Choanoflagellates.” Current Biology: CB 15 (4): R113–14.

Lang, B. F., T. Nerad, M. W. Gray, and G. Burger. 2002. “The Closest Unicellular Relatives of Animals.” Current Biology: CB 12 (20): 1773–78.

Fairclough, Stephen R., Mark J. Dayel, and Nicole King. 2010. “Multicellular Development in a Choanoflagellate.” Current Biology: CB 20 (20): R875–76.

Levin, Tera C., Allison J. Greaney, Laura Wetzel, and Nicole King. 2014. “The Rosetteless Gene Controls Development in the Choanoflagellate S. Rosetta.” eLife 3 (October). https://doi.org/10.7554/eLife.04070.

댓글 0
  • There is no comment.

댓글을 작성하기 위해 로그인을 해주세요

registrant
이대한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