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Street

신경계의 기원

[2회] 빗해파리의 비밀

2024년 3월 통권 222호

지금 이 글자를 읽어나가는 동안 당신의 눈과 뇌에서 전기 회로가 작동한다. 글자를 읽는 방향으로 동공이 움직이면서 망막에 들어오는 빛의 패턴이 변화하고, 그 결과 망막에 존재하는 광수용체 세포들의 전기적 활성이 변한다. 빛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된 전기 신호는 시신경을 거쳐 뇌의 여러 부분으로 전달된다. 뇌는 빛과 어둠의 패턴을 읽어내어 글자를 조립하고, 기호를 해독한다. 정밀하게 배전된 회로를 따라 일어나는 일련의 전기적 사건 덕분에 우리는 이 글을 ‘보는’ 것을 넘어 ‘읽을’ 수 있다.


이처럼 발달한 인간의 인지 능력은 복잡한 감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인 신경계 덕분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의 다채로운 행동 또한 각 종의 고유한 신경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식물이나 다른 생물들과 비교하자면 동물들은 엄청난 수준의 행동 다양성을 나타내는데, 철새가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고, 꿀벌이 사회생활을 하고, 비버가 댐을 짓고, 매미가 짝을 향해 우렁찬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종마다 독특하고 정교하게 발달된 신경계 덕분이다.


요컨대 신경계의 진화는 동물의 핵심적인 특성의 출현을 가능케 한, 아주 중요한 도약이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동물의 신경계는 언제, 어떻게 진화했을까?


최초의 신경계


생물의 어떤 특징이나 구조가 언제 진화했는지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화석 증거이다. 척추를 지닌 생물이 언제부터 화석에 등장하는지를 알아내 척추가 진화한 시점을 특정하는 방식이다.


사진. 중국 남부 쿤밍에서 발견된 C. kunmingensis의 화석. 밧줄 형태의 신경삭(초록색 점선으로 표시)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Credit: Jie Yang, Yunnan University, China)


지금까지 알려진 지 가장 오래된 신경계의 화석 증거는 5억 2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남부 쿤밍에서 발견된 한 화석은 5억 2천만 년 전에 생존했던 생물의 원형이 극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매우 귀중한 진화 사료인 이 화석의 주인공은 Chengjiangocaris kunmingensis으로, 언뜻 보면 새우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새우가 포함된 갑각류와 현재 지구상에 가장 많은 동물인 곤충류 등이 포함된 절지동물의 선조이다.


화석 속의 C. kunmingensis에선 머리카락 한 올보다 가늘며 밧줄처럼 꼬여있는 신경삭(nerve cord)이 선명하게 관찰된다. 이는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기에 이미 동물의 신경계가 상당한 복잡성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근처에서 발견된 다른 화석 증거들과 종합해 보면 이미 시기에 동물계에서 뇌와 신경삭 같은 매우 집중화되고 고도화된 중추신경계가 진화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즉, 신경계의 기원은 5억 2천 년보다 훨씬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화석을 통해 신경계의 기원을 알아내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 중 극히 일부만 화석을 남겼고, 단단한 부분이나 골격으로 보호된 구조들만이 주로 암석 속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신경조직은 대부분이 기름(지질) 성분의 세포막인 신경세포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화석에 흔적을 남기기 어려운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조직이다. 신경계의 구조가 잘 보존된 C. kunmingensis 화석은 오히려 극도로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수의 신경세포와 신경섬유가 집중화된 구조가 아닌 원시적인 신경계는 화석상에서 그 흔적을 찾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초의 신경계를 추적하려면 다른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그 방법은 바로 현존하는 생물들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다양한 척추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척추는 먼 옛날 생존했던 척추동물 공동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상동’ 형질(homology)이다. 따라서 척추가 언제 진화했는지를 추정하려면 현존하는 모든 척추동물의 공동조상이 어느 시대에 살았는지 추정하면 된다. 지난 화(crossroads webzine (apctp.org) )에서 설명한 분자시계를 이용하면 서로 다른 동물들이 언제쯤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는지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화석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생물 형질의 진화는 이 접근법을 통해서 추적하는 경우가 많다.


절지동물문, 연체동물문, 척삭동물문을 비롯한 동물문(phylum) 대부분은 신경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신경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35개의 동물문 중 해면동물문과 판형동물문에 속한 동물들에게선 신경계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두 동물문은 동물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전에 다른 계통으로부터 분기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계통을 바탕으로 신경계의 진화를 가장 간단한 시나리오로 재구성하면, 현존하는 모든 동물의 공동조상에겐 신경계가 없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다가 동물 계통이 분화하는 과정에서 먼저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이 분기했고, 이후에 해파리, 빗해파리, 인간의 공동조상에서 신경계가 처음 진화했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해진다. 이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동물의 신경계가 단일한 조상에서 기원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단일기원설’은 오랫동안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빗해파리의 반전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지난 화 참조 - crossroads webzine (apctp.org) ).


빗해파리가 던진 질문


최근 DNA 분석 기술을 통해 동물 계통을 재구성한 결과 빗해파리(유즐동물문)이 가장 오래전에 다른 모든 동물 계통으로부터 분기된 기저 동물임이 드러나면서, 진화생물학자들은 현재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신경계 단일기원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신경계가 없는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이 갑자기 샌드위치처럼 신경계가 있는 생물 사이에 낀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동물 중 인간과 가장 먼 친척인 빗해파리에는 신경계가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가까운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에는 신경계가 없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가까운 해파리에는 다시 신경계가 발견된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현존하는 모든 동물의 공동조상에게 이미 신경계가 있었으며,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의 계통에서는 신경계가 퇴화되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여전히 모든 동물의 신경계가 같은 공동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으나 일부에서 사라졌다는 ‘수정된 단일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원설에 따르면 우리가 지닌 신경계의 기원은 고생대 이전인 6억 년 혹은 7억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한 가지 시나리오는 빗해파리에서 신경계가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평행진화’ 가설이다. 이는 동물 진화 역사에서 신경계의 진화가 한 번이 아니라 최소 두 번이 일어났다는 완전히 새로운 시나리오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의 가장 최근의 공동조상(MRCA, most recent common ancestor)은 신경계가 없었다는 기존의 학설이 유지된다. 인간의 신경계가 해파리와 인간의 공동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학설도 유지된다. 다만 중요한 차이는 빗해파리가 지닌 신경계는 우리와 해파리의 신경계와 기원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빗해파리와 우리의 계통이 갈라지고 나서 두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즉 평행하게 신경계가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비슷한 생물 형질이 독립적으로 여러 번 진화하는 것은 완전히 드문 일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세포 생물의 진화이다. 동물과 식물은 모두 다세포 생물이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의 마지막 공동조상은 다세포 생물이 아니라 10~15억 년 전쯤 살았던 단세포 생물이다. 이 단세포 생물로부터 다세포생물이 동물과 식물 계통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동물과 식물 계통에서뿐만 아니라 다세포성은 생명의 역사에서 최소한 10번 이상 독립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경계의 기원은 하나가 아니다?


지난해 미국과 오스트리아 공동연구진이 발표한 Nature 논문을 통해 빗해파리의 지위에 대한 논쟁은 빗해파리파의 승리로 정리되는 분위기지만, 신경계의 기원을 둘러싼 두 가지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미국 플로리다 대학 연구진은 Nature 지에 ‘신경계의 기원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The origins of neural systems remain unresolved.)’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빗해파리의 유전체를 해독한 연구진은 단일기원설과 평행진화설 중 후자의 손을 들어준다. 인간을 비롯하여 신경계를 지닌 동물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신경 관련 유전자 중 상당수가 빗해파리의 유전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는 시냅스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도 포함된다. 게다가 빗해파리에서 발견되는 다른 동물들의 신경 관련 유전자들도 빗해파리에서는 신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논문이 발표된 직후 플로리다 대학 연구진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평이 Current Biology 저널에 실린다.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의 연구진은 빗해파리에서 다른 동물들에서 신경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는 유전자들(SoxB, Lim)이 발견되며, 신경계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인 시냅스와 이를 형성하는 핵심 유전자들이 발견된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빗해파리와 다른 동물들의 신경계가 단일한 기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배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22년에는 최근 가장 활발하게 빗해파리 연구를 펼치는 그룹 중 하나인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의 Pawel Burkhardt가 Current Biology 저널에 최근 연구 결과를 총 망라하며 평행진화 진영에 더 힘을 실어주는 논평을 발표한다. 빗해파리의 신경계는 다른 동물들의 신경계와 같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독특한 특성들이 여럿 관찰된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여러 연구 그룹에서 독립적으로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축적되다 보면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한쪽으로 점점 좁혀질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신경계가 ‘언제’ 기원했냐를 밝혀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진화했느냐이다. 따지고 보면 ‘언제’ 진화했는지가 중요한 이유도 신경계가 진화한 시점과 계통을 파악해야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빗해파리의 계통과 신경계 연구는 신경계가 진화한 원리와 기작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기원이 하나냐 둘이냐에 따라 디테일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두 시나리오 모두 동물 진화의 초기 단계에 신경계가 이미 진화했거나 신경계가 독립적으로 두 계통에서 진화할 만큼 큰 잠재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빗해파리의 반전이 있기 전에는 동물 신경계의 진화를 동물 안에서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경계를 가진 빗해파리가 동물 계통수에서 가장 기저에 있는 동물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즉, 동물계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동물계 바깥은 신경계는커녕 하나의 세포가 하나의 생물인 단세포 생물의 세계다. 그곳에서 어떻게 신경계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빗해파리의 놀라운 비밀을 밝혀낸 DNA 분석 기술은 비슷한 시기에 단세포 생물 속에 숨어 있던 충격적인 신경계의 비밀을 드러내고 만다. 


“무슨 일이든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시점에 실제로 시작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극작가 릴리언 헬먼


(다음 편에서 이어짐)


참고문헌 

Burkhardt, Pawel. 2022. “Ctenophores and the Evolutionary Origin(s) of Neurons.” Trends in Neurosciences 45 (12): 878–80.

Marlow, Heather, and Detlev Arendt. 2014. “Evolution: Ctenophore Genomes and the Origin of Neurons.” Current Biology: CB.

Moroz, Leonid L., Kevin M. Kocot, Mathew R. Citarella, Sohn Dosung, Tigran P. Norekian, Inna S. Povolotskaya, Anastasia P. Grigorenko, et al. 2014. “The Ctenophore Genome and the Evolutionary Origins of Neural Systems.” Nature 510 (7503): 109–14.

Yang, Jie, Javier Ortega-Hernández, Nicholas J. Butterfield, and Xi-Guang Zhang. 2013. “Specialized Appendages in Fuxianhuiids and the Head Organization of Early Euarthropods.” Nature 494 (7438): 468–71.

댓글 0
  • There is no comment.

댓글을 작성하기 위해 로그인을 해주세요

registrant
이대한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