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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3월이다. 독일은 우리처럼 따로 경칩이라 부르는 절기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라 벌써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집 앞 도보가 얼어서 그 위에 재를 뿌리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그 옆에 핀 키 작은 꽃들 위를 보송보송 털이난 호박벌이 날아다닌다. 통통한 호박벌이 꽃 안에 머리를 박으면, 아직 다 자라지 못해 연약한 꽃은 호박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쳐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호박벌은 왜 식사를 방해하냐는 듯이 늑장을 부리며 느릿느릿 꽃 밖으로 기어 나온다. 외진 곳에 사는 것이 지루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봄에 자연이 다시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 시골 생활에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이 온 것을 알리는 또 다른 대상은 연구소 안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이 연못은 겨울에는 얼어서 단단한 고체 상태가 되었다가, 날씨가 풀리면 다시 액체로 돌아와서 물이 흐른다. 그러면 이른 아침에 동네에 있는 사슴이나 여우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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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지금 이 글자를 읽어나가는 동안 당신의 눈과 뇌에서 전기 회로가 작동한다. 글자를 읽는 방향으로 동공이 움직이면서 망막에 들어오는 빛의 패턴이 변화하고, 그 결과 망막에 존재하는 광수용체 세포들의 전기적 활성이 변한다. 빛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된 전기 신호는 시신경을 거쳐 뇌의 여러 부분으로 전달된다. 뇌는 빛과 어둠의 패턴을 읽어내어 글자를 조립하고, 기호를 해독한다. 정밀하게 배전된 회로를 따라 일어나는 일련의 전기적 사건 덕분에 우리는 이 글을 ‘보는’ 것을 넘어 ‘읽을’ 수 있다. 이처럼 발달한 인간의 인지 능력은 복잡한 감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인 신경계 덕분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의 다채로운 행동 또한 각 종의 고유한 신경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식물이나 다른 생물들과 비교하자면 동물들은 엄청난 수준의 행동 다양성을 나타내는데, 철새가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고, 꿀벌이 사회생활을 하고, 비버가 댐을 짓고, 매미가 짝을 향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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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수포항공과대학교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아르곤 초임계 유체 내에 존재하는 액적들의 브라운 운동(참고: Seungtaek Lee, Juho Lee, Yeonguk Kim, Seokyong Jeong, Dong Eon Kim*, and Gunsu Yun*, "Quasi-equilibrium phase coexistence in single-component supercritical fluids", Nature Comm. 12 (2021) 4630)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원자론의 관점에서 Brownian motion에 대한 이론을 발표하여 원자의 존재를 증명하였고, 이는 이후 양자물리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는 작은 입자의 움직임에 왜 관심을 가졌을까? 아인슈타인 이전 세대의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은 어떻게 식물학자 Robert Brown의 발견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까? 이들이 특정 전공에 대한 지식과 연구에만 함몰되어 있었다면 식물학자의 관찰 에세이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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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작가
SF는 사이언스 픽션이란 뜻으로, 단지 과학적 배경이 가미된 가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의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모두 픽션이다. 가상의 인물이 사랑을 나누는 로맨스 장르도, 가상의 범죄자를 쫓고 쫓는 느와르 장르도 모두 픽션이다. 굳이 현실 세계에서 절대 벌어지지 않을 법한 마법 같은 이야기일 필요가 없다. 충분히 현실 세계에서도 벌어질 법한 이야기더라도 작가가 상상한 가상의 이야기라면 모두 픽션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SF의 F는 단순한 픽션이 아닌 판타지 F로 여겨지는 듯하다. 흔히 자고로 SF 장르라면 현실에선 불가능해 보이는 고도로 발전된 환상적인 최신 과학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SF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자연스럽게 미래 시점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는 한다. 여전히 이런 고정관념은 독자 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만연하다. 그리고 SF라는 장르 자체를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환상 속의
지동섭작가
(일러스트레이터 : 박재령) <1부> 유실물 관리자가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하는 질문에 여운은 손등을 매만지며 대답하곤 했다. 손등에 남은 흉터는 쉽사리 구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옅어져서 마치 하얀 모반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 상처와 사라지는 돌, 그리고 피크닉 행성에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피크닉 행성의 돌, 처음 그것은 그에게 보통의 돌과 다를 바 없었다. 여운에게 피크닉 행성을 소개해준 사람은 여행에서 만난 어느 아르카디인이었다. 그 행성에 '피크닉'이라는 이름을 붙인 종족도 아르카디인이었다. 여느 아르카디인처럼 종족 특유의 태평한 태도로 그가 말했다. "다들 피크닉을 떠나기 전에 그 행성에 들러. 저마다 돌 하나씩을 쥐고서 말이야." 그러나 그 시절 여운은 여행자의 느긋한 소리나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의 마음은 확장하는 우주의 크기에 반비례하여 점차 쪼그라들고 있었다. 이를테면, 우주 한가운데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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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화위원APCTP
APCTP 과학문화위원이 추천하는 신간 <2024년 1월 과학책방 갈다가 주목하는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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