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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계의 기원 - 뉴런의 탄생(3)

2024년 12월 통권 231호

#다양한 생물에 대한 진화 연구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신경계의 기원을 추적한다.


복잡한 문명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정확한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것처럼, 복잡한 정보처리와 행동조절을 담당하는 신경계 또한 마찬가지다.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협동해야 하고, 각 신경세포를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들이 정확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이동하고, 반응하고, 조직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신경세포 내에서 전기신호가 생성되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인지질 분자들이 이중층 구조로 막을 만들어 이온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막에 끼어있는 이온 채널(통로) 단백질들이 정확한 순서대로 열리고 닫혀 소듐과 칼륨 이온이 드나들며 막전위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 자극이 왔을 때 전기신호가 바로 생성될 수 있는 휴지전위를 유지하기 위해 이온 펌프가 끊임 없이 세포막 안팎으로 이온을 퍼내야만 한다. 분주하지만 정확하게 일어나는 일련의 물질적 사건들 덕분에 우리는 읽고 쓰며, 상상하고 탐험할 수 있다.


신경세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지질, 이온, 신경전달물질, 그리고 다양한 작은 분자들이 협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의 생산과 조절의 많은 부분이 다시 단백질의 역할에 의존한다. 예컨대 신경전달물질은 특정 효소 단백질의 작용으로 합성되고 분해된다. 이온 채널 단백질은 신호 전달을 위해 세포막을 통해 이온의 흐름을 조절하며, 신경세포막의 지질 이중층 구조조차도 단백질들의 활동을 통해 유지되고 조절된다. 단백질은 신경세포를 구성하는 핵심 재료이자 다른 비-단백질성 재료들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맡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경계를 이루고 작동시키는 단백질들은 모두 유전자의 발현을 통해 생산된다. DNA 속에는 수 만 가지의 단백질에 대한 설계도가 들어 있고, 전사와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 설계도가 실현되어 단백질이 제작된다. 여기서 우리는 신경계의 기원과 관련한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신경계를 조율하는 단백질과 유전자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뉴런을 구성하는 재료의 기원을 찾아서


신경계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유전자들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역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DNA를 분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장한 비교유전체학(comparative genomics)은 유전자의 기원을 추정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한다. 비교유전체학은 서로 다른 생물종의 유전체를 분석하고 비교하여,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한 유전자와 그 변화를 추적하는 기법이다. 이를 통해 특정 유전자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 밝힐 수 있다.


비교유전체학 연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유전자의 역사를 파악한다. 우선 각 종의 DNA(유전체) 염기서열과 유전자 발현 정보(전사체 정보) 등을 이용하여 유전체(genome)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를 파악한다. 이후 종 간 유전자들의 서열을 비교하여 서열이 비슷한 ‘이종상동유전자(ortholog)’를 찾아낸다. 만약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떤 유전자에 대해 다른 생물에서 이종상동유전자가 발견된다면, 이는 인간과 해당 생물의 공동조상으로부터 그 유전자를 각각 물려받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더 오래 전에 만들어진 유전자일수록 더 많은 생물들과 그 유전자를 공유한다. 예컨대 영장류의 공동조상에서 생겨난 유전자는 영장류들끼리만 공유하고 다른 비-영장류 포유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척추동물의 조상에서 생겨난 유전자는 포유류, 파충류, 조류, 양서류와 같은 척추동물 종에서만 발견되고, 무척추동물에서는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어떤 유전자가 얼마만큼 다양한 생물군에서 발견되는지를 알면 그 유전자가 생명의 나무에서 언제 생겨난 것인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인간의 유전자가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에게서도 발견된다면 최소한 좌우대칭동물의 초기 조상에 이미 이 유전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고, 해면동물이나 빗해파리에서도 발견된다면 최소한 동물의 시작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식물에서도 발견된다면, 진핵생물의 역사 초기에 이미 나타난 유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방식을 신경계에서 작동하는 유전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신경계의 핵심인 전압 개폐성 나트륨 채널 유전자를 다양한 생물의 유전체에서 탐색해보면, 동물뿐만 아니라 동물 바깥의 깃편모충류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신경계와 동물이 진화하기 이전부터 이 채널 유전자가 이미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또한, 비교유전체학 분석을 통해 ‘유전자 수준’의 계통분석(phylogenetic analysis)도 수행할 수 있다. 계통분석은 유전자 서열의 유사성과 차이를 토대로 진화적 관계를 도식화하는 방법으로, 특정 유전자가 어떤 시점에 공통 조상에서 분화했는지, 혹은 새로운 기능을 획득했는지를 밝혀낸다. 이때 상동유전자(homolog)에는 이종상동유전자(ortholog)와 더불어 ‘동종상동유전자(paralog)’도 있는데, 한 유전자가 복제(duplication)되어 새롭게 분화한 경우가 동종상동유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이종 및 동종 상동유전자들을 함께 포괄적으로 분석하게 되면, 유전자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예컨대 전압 개폐성 나트륨 채널 유전자의 가계도를 그리게 되면 이 유전자가 오래 전에 전압 개폐성 칼슘 채널 유전자에서 복제 후 분화되었다는 사실은 파악할 수 있다(지난 연재 [뉴런의 탄생(1)] 참조).


전압 개폐성 나트륨 채널 유전자의 사례처럼 유전자 중복(gene duplication)과 기능 분화를 통해 한 유전자가 ‘본래 기능’을 유지하고, 다른 복제본이 ‘새로운 기능’을 맡게 되는 시나리오는 진화의 핵심 메커니즘 중 하나다. 신경계 진화에서의 역할로 한정하자면, 이미 존재하던 유전자가 복제된 뒤, 복제본 중 하나가 신경계의 특정 기능(전기 신호 전달, 억제성 신호 조절 등)을 획득하는 과정을 통해, 다세포 동물의 복잡한 행동이 점진적으로 가능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재료로 만든 새로운 음식


신경계에 대한 비교유전체학 연구는 신경계가 결코 무(無)에서 갑자기 솟아난 구조물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신경계’라는 독창적인 정교한 시스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여러 유전적 재료들을 적절히 조합하고 변형함으로써 탄생했음을 많은 유전자들의 역사가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GABA’라는 잘 알려진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짚어보자. GABA를 감지하는 수용체는 포유류를 비롯한 여러 동물의 뇌에서 흥분성 신호를 억제하고, 신경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GABA 수용체 유전자는 동물 바깥의 원생생물인 슬라임 몰드(Dictyostelium)에서도 그 작용이 확인된다. 이는 GABA가 원래 동물 신경계와 무관하게, 세포 내부나 세포 간의 신호전달 과정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심지어 GABA는 식물의 성장을 조절하는 것으로 밝혀져 많은 생물계에서 신호전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즉, 동물의 뇌에서 억제성 시냅스를 형성하는 GABA 수용체라는 분자가 사실은 훨씬 더 ‘오래된 재료’였던 것이다.


SNARE 단백질도 빼놓을 수 없는 예다. 동물 신경계에서 SNARE 단백질은 시냅스 소포에 담긴 신경전달물질을 세포 밖으로 방출할 때, 소포막과 세포막이 융합되도록 돕는 ‘분자 기계’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기원을 뒤쫓아 올라가 보면, 이 SNARE 단백질들은 단세포 생물에서도 널리 발견된다. 단세포 생물에게 SNARE는 세포 내 소포 이동이나 분비 과정을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다세포 동물로 넘어오면서 이 오래된 소포 융합 기작이 신경계라는 새로운 맥락에서 재활용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시냅스 전달 과정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시냅스를 이루는 골격 역할을 하는 스캐폴딩(scaffolding) 단백질들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시냅스 후막(postsynaptic density)에서 스캐폴딩 단백질들은 수용체나 이온 채널 같은 분자들을 일정한 배열로 잡아주어,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반응이 효율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최근 깃편모충이나 카프사스포라(Capsaspora owczarzaki) 같은 단세포 진핵생물의 유전체에서도 이들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 단백질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원래 세포 골격 형성이나 세포 내부 신호전달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다세포 동물이 출현하고 신경계가 발달하면서, 시냅스라는 특수한 부위에서 더 정교한 기능을 수행하는 쪽으로 진화적 분화가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글루타메이트나 아세틸콜린 등 다른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유전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람이나 초파리를 넘어, 심지어 진균류나 단세포 생물에서도 이들과 유사한 수용체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들은 초기 생명체가 환경으로부터 특정 화학 신호를 감지하기 위해 사용하던 ‘센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다세포 동물이 등장함으로써 뉴런 간 화학 신호전달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열렸고, 이들 센서 유전자들이 기발한 ‘용도변경(co-option)’ 과정을 통해 신경계 핵심 일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신경계는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나 유전자를 ‘발명’하여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다양한 진핵생물 속에 축적되어 있던 유전적 재료들을 조합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활용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음식에 가깝다.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널리 관찰되듯, 신경계 또한 옛것을 버리고 새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옛것을 변용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유전체가 해독되지 않은 새로운 생물종이나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단세포 생물들을 꾸준히 탐구한다면, 우리는 신경계 기원 연구에 남아있는 ‘빈칸’을 하나씩 채워나갈 수 있다. 깃편모충이나 카프사스포라가 그랬듯,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독특한 생물들이 발견될 때마다 신경계 재료 유전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더욱 정교하게 추적해볼 기회가 열릴 것이다.



참고문헌

Anjard, Christophe, and William F. Loomis. 2006. “GABA Induces Terminal Differentiation of Dictyostelium through a GABAB Receptor.” Development (Cambridge, England) 133 (11): 2253–61.

Burkhardt, Pawel, Mads Grønborg, Kent McDonald, Tara Sulur, Qi Wang, and Nicole King. 2014. “Evolutionary Insights into Premetazoan Functions of the Neuronal Protein Homer.”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31 (9): 2342–55.

Ramesh, Sunita A., Stephen D. Tyerman, Bo Xu, Jayakumar Bose, Satwinder Kaur, Vanessa Conn, Patricia Domingos, et al. 2015. “GABA Signalling Modulates Plant Growth by Directly Regulating the Activity of Plant-Specific Anion Transporters.” Nature Communications 6 (1): 7879.

Suga, Hiroshi, Zehua Chen, Alex de Mendoza, Arnau Sebé-Pedrós, Matthew W. Brown, Eric Kramer, Martin Carr, et al. 2013. “The Capsaspora Genome Reveals a Complex Unicellular Prehistory of Animals.” Nature Communications 4 (1): 2325.


댓글 1
  • 정민섭 2025-01-10 13:48:50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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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