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포 원생생물이 다세포 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단세포 생물에서는 하나의 세포가 하나의 개체이지만, 다세포 생물에서는 여러 세포가 하나의 개체를 이룬다. 말하자면 세포 하나가 하나의 미소기계였던 생물에서, 세포 각각이 여러 부품이 되어 더 거대한 기계의 일부를 이루는 생물이 된 것이다.
자동차가 잘 작동하려면 자동차의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잘 작동해야하는 것처럼, 다세포 생물에서는 집단을 이루는 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만 한다. 예컨대 동물이 다른 생물을 잡아먹으려면 세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거나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먹이를 잡을 수도, 잡은 먹이를 소화시킬 수도 없다. 이 때 자동차는 운전자의 지시에 따라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면, 동물에서는 세포들 사이의 ‘소통’이 행동이라는 개체 수준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근육이 움직이려면 신경세포가 근육에게 수축 혹은 이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동물에서 이러한 소통은 일반적으로 이온이나 분자와 같은 기호를 활용하는 화학적인 방식을 통해 매개된다. 우리가 “맛집에 가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자극되는 것처럼, 특정한 신호 물질이 센서 단백질(수용체)에 결합하면 세포 내에서 근섬유의 수축과 같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맛집에 가자!”라는 소리의 전달이 음속과 같은 물리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화학 신호의 전달 또한 ‘확산’이라는 물리적인 현상의 법칙을 따른다.
확산은 물질들의 무작위적인 운동의 결과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예컨대 물이 담긴 컵에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컵 전체로 퍼지는 것이 확산에 해당한다. 세포는 이 확산 현상을 활용하여 화학 신호를 전달한다. 신호를 전송하는 세포에서 펩타이드와 같은 작은 분자들을 합성하여 세포 밖으로 배출하면, 농도 기울기에 따라 신호가 농도가 높은 세포 근처에서 농도가 낮은 세포 먼 쪽으로 확산된다. 이 신호가 다른 세포에 도달하고, 그 세포가 해당 신호를 인식할 수 있는 센서 수용체를 지니고 있으면 세포 내에서 특정한 반응이 일어난다.
이러한 확산형 신호전달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세포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물감을 떨어뜨렸을 때 컵에 들어 있는 물 전체로 물감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 신호 물질이 이동할 수 있는 곳 구석구석으로 신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볼륨 전달(volume transmission)’은 비교적 가까운 세포들 사이에선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먼 거리에 있는 세포에게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말이 음속의 제한을 받는 것처럼, 화학 신호의 전달 역시 물리적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날아오는 야구공을 눈으로 보고 손을 이용하여 글러브로 잡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눈에서 뇌로, 뇌에서 손으로 신호가 빠른 시간 안에 전달되어야 하는데, 확산만으로는 그렇게 빠른 속도의 신호전달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게다가 물컵 전체로 물감이 퍼지는 것처럼, 얼굴과 손 사이뿐만 아니라 몸 전체로 무차별적으로 신호가 다 퍼지는 비효율까지 수반된다.
많은 수로 이루어져 상당한 부피(volume)를 지니는 동물은 이러한 문제를 (아이러니하게도) 볼륨 전달이 아닌 두 번째 방식의 신호전달로 해결했다. 바로 ‘시냅스 신호전달(synaptic transmission)’이다. 그리고 뉴런(신경세포)은 바로 이 시냅스 신호전달에 특화된 세포들이다. 뉴런과 뉴런, 혹은 뉴런과 다른 종류의 세포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시냅스 신호전달은 볼륨 전달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정밀하다. 세포 바깥에서 이뤄지는 확산에 의한 신호전달 거리를 최소화하는 신호전달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볼륨 전달의 근본적인 한계와 관련이 깊다.
볼륨 전달로 먼 거리에 신호를 전달하려 할 때, 신호 물질은 체액 속의 다른 물질들과 충돌하며 무작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퍼져 나가는데에 시간이 걸릴 뿐더러, 조직과 기관을 구성하는 여러 구조물들에 의해 방해를 받고, 무엇보다 거리가 멀어질 수록 점점 농도가 희석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도심 한 가운데에서 100미터 떨어진 건물 안에 있는 친구에게 종이 비행기로 편지를 날려 보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마 같은 내용이 적힌 편지지를 수십만 장 날려 보내도 한 장이라도 다른 건물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100미터를 날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시냅스 신호전달은 세포 내 신호전달을 최대화하고 세포 간 신호전달을 국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난제를 극복해낸다. 다시 비유컨대, 100미터 떨어진 곳까지 긴 다리를 만들어서 친구가 있는 건물 창문 앞까지 가서 종이 비행기를 날리거나 아예 직접 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야구의 예시로 돌아가 보자. 대뇌의 운동피질에서 손을 움직이는 명령을 상위운동뉴런(upper motor neuron)을 통해 내려보내면 이 신호는 척수까지 먼 거리를 축삭을 따라 ‘세포 안’에서 이동한다. 척수에서 상위운동뉴런은 하위운동뉴런(lower motor neuron)을 만나 신호를 전달한다. 이 때 물리적으로 인접한 두 뉴런 사이에 신호전달이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시냅스(synapse)’이다. 시냅스를 통해 전달된 신호는 다시 하위운동뉴런을 타고 팔을 따라 ‘세포 안’에서 전달되고, 손과 팔의 근육세포와 맺은 시냅스를 통해 신호가 다시 한번 전달되며 캐치볼을 성공시킨다. 즉, 대뇌에서 손 끝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두 곳의 시냅스 틈(synaptic cleft)을 제외하고는 신호가 세포 바깥으로 퍼져나가지 않는다.
물론 세포 안에서도 세포 밖과 마찬가지로 신호 물질은 확산의 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볼륨 전달과 달리 세포 내 물질의 확산은 세포막이라는 물리적인 경계로 인해 매우 좁은 영역으로 제한된다. 즉, 확산에 따른 희석 효과가 볼륨 전달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다. 게다가 표적 세포에 대한 신호전달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세포의 물리적인 형태을 통해 확보된다. 신호 물질 자체는 세포 안에서도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세포의 모양이 신호전달의 방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뇌에서 세포 바깥으로 분비된 물질은 몸 전체로 퍼지겠지만, 상위운동뉴런 안에 들어있는 물질은 뉴런의 경계 안에서만 무작위적으로 움직이고, 그 결과 상위운동뉴런의 형태를 따라 뇌에서 척수로 신호가 정확히 전송된다.
여기에 더해 지난 연재에서 다룬 활동전위(지난 연재 [뉴런의 탄생(1)] 참조)는 시냅스 신호전달의 효율성과 속도를 더욱 극대화한다. 먼 거리로 신호를 전송하는 뉴런의 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축삭’인데, 활동전위라는 증폭기 덕분에 축삭 내에서 신호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거리에 따른 희석 효과가 사라진다. 즉, 거리에 따라 신호의 세기가 약해지는 볼륨 전달과 달리, 뉴런에서는 광섬유 같은 축삭과 그 안에서 생성되는 활동전위 덕분에 빠르게 뉴런 끝으로 이동한다.
시냅스의 종류 축삭의 활동전위를 통해 빠르고 선명하게 축삭 말단에 도착한 신호는 두 가지 종류의 시냅스를 통해 다음 세포로 전달된다. 하나는 앞의 운동뉴런 사례에서 언급한 시냅스에 해당하는 화학적 시냅스(chemical synapse)이다. 화학적 시냅스에서는 시냅스 전 뉴런(presynaptic neuron)이 신호 물질을 시냅스 틈으로 분비하고, 이곳에서 확산된 신호 물질이 시냅스 후 뉴런(postsynpatic neuron)의 세포막에 위치한 수용체 단백질에 결합하면서 신호를 생성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시냅스 틈은 매우 좁아서 확산을 통해서도 신호 물질이 빠르게 다음 세포로 전달될 수 있으며, 거리에 따른 희석 효과도 적다. 전기적 시냅스의 경우에는 아예 신호 물질이 외부를 거치지 않고 세포에서 세포로 직접 신호가 전달된다. 바로 간극연접이라는 ‘터널’을 통해서 이러한 신호전달이 일어난다. 원래 세포막은 크기가 매우 작고 전하나 극성이 없는 물질만을 투과시키고, 나머지 물질들에 대해서는 장벽으로 작동한다. 신경세포에서 신호전달에 작용하는 이온들은 기본적으로 전하를 띄고 있기 때문에 세포막을 잘 투과하지 못한다. 그런데 전기적 시냅스가 형성된 곳에서는 신호를 주고받는 두 세포의 세포막에 단백질로 이루어진 터널인 간극연접이 발견된다. 마치 영국과 유럽 대륙 사이의 도버 해협에 뚫린 채널 터널을 통해 기차가 다니듯이, 간극연접을 통해 원래는 세포에서 세포로 쉽게 건너갈 수 없는 신호 물질들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1. (위) 화학적 시냅스와 (아래) 전기적 시냅스의 모식도. 출저: Wikimedia Commons |
종합하자면 많은 수의 세포로 이루어져 커다란 부피를 지닌 다세포 동물이 볼륨 전달만으로는 불가능한 정교한 움직임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은 동물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뉴런과 시냅스 신호전달이라는 소통 방식의 혁신 덕분이었다. 빠르게 몸의 정보를 통합하고 명령을 내리는 정보처리 체계를 위해서는 볼륨 전달이 아닌 시냅스 전달에 특화된 세포들의 네트워크, 즉 신경계를 갖추게 되면서 동물은 이전에는 없던 독보적인 생물 유형으로 다양화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시냅스와 뉴런은 언제 어떻게 진화했을까? 시냅스 신호전달이 먼저 진화하고, 이에 관여된 세포가 뉴런으로 특수화되었을까? 아니면 뉴런이 먼저 진화하고 시냅스 신호전달이 이후에 형성되었을까? 거대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이 출현할 수 있게 한 혁신의 원동력과 재료는 무엇이었을까? (다음 연재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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