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고래의 꿈 2

2007년 5월 통권 20호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은 처음이다. 놈의 비늘에 수놓인 점들 하나 하나까지도 환했다. 자리에 앉아 고군분투 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시몬스 뿐이었다. (이런 구경거릴 제대로 볼 정신이 아니라니 불쌍하다.) 이윽고 양자기 그물이 완성되자 시몬스는 넋을 놓고 있는 선장을 재촉했고, 선장은 허둥거리며 5번째 엔진을 가동시켜 조심스럽게 우주선을 빛 고래의 위로 띄웠다. 자리가 잡히자 시몬스가 그물을 천천히 빛 고래의 위로 펼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빛 고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멍한 시선 -사실은 어디를 보는지 도무지 모를 시선으로 우주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 이러다 정말 잡는 거 아냐.

 

그 순간만큼은 나도 긴장이 되었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양자기 그물이 빛 고래의 위에 자리 잡는 순간, 빛 고래가 갑자기 몸을 뒤틀었다. 놈의 수염이 직격으로 우주선에 날아들었다. 

 

콰앙!!!

 

그 충격으로 우주선이 왈칵 뒤집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악!!!!!!!!!!!!”

 

삐-삐-삐-삐-!!!! 삐-삐-삐-삐-!!!! 삐-삐-삐-삐-!!!!

 

제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고 멍하니 서서 구경하던 선원들 모두가 바닥을 구르고 여기저기에 부딪치고 난리가 났다. 경고를 알리는 표시등이 요란하게 울리고, 사방이 번쩍거리면서 우주선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나 역시 바닥을 굴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충격으로 중력장이 흐트러졌는지 무중력 상태가 되어 선장실의 모든 물건과 사람들이 부웅 떠올랐다가 중력이 회복된 순간 바닥으로 콰당당 내팽겨 쳐졌다. 선장이 그 와중에도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제 자리를 지켜! 시몬스!!! 그물을 펴! 그물을 피란 말이야!!”

 

나는 시몬스의 자리를 쳐다보았지만, 맙소사. 시몬스도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았는지 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선장이 시몬스의 자리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쿠우웅-!

 

움직이기 시작하는 빛 고래에 다시 한 번 부딪쳤는지 한 번 더 커다란 충격이 우주선을 덮쳤다. 

 

콰당-!!!

 

“젠장할!!!”

 

눈치가 보여 잠자리까지 가지도 못하고 내 구역에서 쭈그리고 깜박 잠이 들었던 나는, 갑작스런 소음에 깜짝 놀라 깨어나고 말았다. 벙한 눈을 들어 보니 시몬스였다. 나는 아아, 네가 올 때가 되었지, 하는 기분으로 일어나 커피포트를 들여다보았다. 아까 커피를 준비해놓는다는 걸 귀찮아서 말았던 것이다. 

 

“커피!!!”

 

아니, 그러니까 나한테 맡겨놨냐고.

 

“조금 기다려.”

 

“제기랄!!!”

 

시몬스는 있는 대로 신경질을 내면서 문을 한 번 더 걷어찼다. 안 그래도 요즘 어디가 어긋났는지 잘 안 움직이던데 제발 걷어차지 좀 말아라. 하지만 오늘은 내가 참아주지. 

 

선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잡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낌새를 알아챈 빛 고래가 움직이면서 수염이 선장실 정면을 강타했고, 놈이 달아나면서 꼬리 끝이 다시 한 번 우주선 옆구리를 살짝 쳤다. 뭐, 빛 고래의 자태에 넋을 놓고 있었던 선원들은 모두 바닥을 굴렀고, 우주선은 망가지고, 이랬든 저랬든 빛 고래의 추적은 당분간 접어야만 하는 상황.

 

우리는 우주 정거장으로 귀환 중이었다. 선장은 빛 고래를 놓친 것을 모두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있었던 시몬스 탓으로 돌렸다. 시몬스가 처음 수염이 우주선을 때렸을 때 제 자리를 지키고 그물을 제대로 펼쳤더라면 잡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선이 그리 흔들리는데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양자기 그물이 제대로 펼쳐질 리가 없지. 하지만 그 성격에 선장은 그것을 알면서도 시몬스에게 마구 퍼부었을 테고, 아니나 다를까, 시몬스는 처박아서 이마가 깨진데다가 퉁퉁 부은 얼굴이었다. 

 

“자, 커피.”

 

시몬스의 사발에 커피를 따라주자 시몬스는 어째 침울한 얼굴이었다. 쉽게 주눅이 드는 녀석이 아니라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뭘 죽상이야. 놈을 놓친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야.”

 

“그럼?”

 

“아니, 그냥 바보 같아져서 말이지.”

 

“뭐가.”

 

“난 원래 낚시꾼이 되려던 게 아니었어. 너도 날 봐서 알겠지만 난 저 빛 고래에게 큰 관심이 없단 말이야.”

 

“응 뭐......”

 

녀석이 의욕 없어 보이는 것이야 사실이다. 녀석이 의욕 있어 보이는 것은 사발커피 정도일까... 

 

“단지 잡는다는 것은 말이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빛 고래를 잡으면 어찌 될지.”

 

어찌되기는. 뭐어, 당장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공간이동 기술이 개발되어 제대로 시간이 흐르는 공간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만 겪을 변화도 아니고. 

 

“뭐가? 글쎄? 난 너보다 더 놈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생각해 봐. 만약 빛 고래가 잡힌다면... 많은 사람들이 빛 고래에 대한 꿈을 접을 거고, 그에 따라 많은 선원들이 일자리를 잃겠지. 잡힌 빛 고래는 갖은 실험대에 오를 거고, 샅샅이 해부되고, 낱낱이 그 정체가 밝혀질 거야. 물론 단 한 마리를 잡는다고 그 모든 것이 드러나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신비가 사라진다 이거지. 빛 고래가 빛 고래로 있을 수 있는 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야. 안 그래? 만약 잡힌다면, 저 비늘이 어느 갑부 집 거실에 장식된다면 하고 생각해 본 적 있어?”

 

“음......”

 

“난 오늘 빛 고래를 잡을 뻔 했지. 하지만 놓치고 나니 오히려 안도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놈을 잡는 것은 내 일일 뿐이야. 나는 빛 고래에 대한 낭만이나 기대도 없고, 어쩌다보니 하게 된 일이 낚시꾼일 뿐이라고. 자신의 직업이 반드시 스스로가 바라고 선택해서 갖게 되는 것은 아니잖아? 넌 네가 바라서 에너지 조정사가 되었어?”

 

“그건 아니야. 나도 어쩌다 보니 선택의 여지없이 이런 직업을 갖게 되었지.”

 

“그래. 그래서인지 놓치니 다행이다 싶단 말이야. 덕분에 기분이 이상해.”

 

“......”

 

시몬스는 바닥에 주저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세상에 하나쯤 알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어때? 세상에 하나쯤 잡히지 않는 것이 있으면 어떠냐고.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여기서 계속 낚시질을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다음 우주 정거장에서 계약을 파기할까 고민도 되고......”

 

“그저 일이라며?”

 

“하지만 난 놈을 잡을 뻔했다고. 막... 손에 닿으려고 했어. 그 빛 고래를 내가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단 말이지. 그 물고기를, 그 놈을.”

 

어지간히 흥분했었던지, 그 여운이 남은 것인지 시몬스는 잠깐 말을 끊었다. 그가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길 기다려 나는 말했다.

 

“최초의 빛 고래를 낚시질했다는 타이틀이 탐나지 않아?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한 슐리만,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암스트롱, 27살에 떠나 78살에 은하계를 여행하고 돌아온 청 옌, 그들과 너는 같이 불릴 거라고. 그 영예보다 그냥 빛 고래가 빛 고래로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어린애 같은 소망이 더 소중해?”

 

“어린애 같나?”

 

“어린애 같아. 놈들은 그냥... 우주 이편에서 우주 저편으로 갈 뿐이라고.”

 

“놈들이 그저 우주 이쪽에서 우주 저쪽으로 간다고?”

 

“그럼 아냐?”

 

내 말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공간이동을 하는 녀석들에게 그것이 쉬울까?”

 

“공간이동을 하니까 쉽지, 그럼 어려워?”

 

“놈들은 공간만 뛰어넘는 게 아니야. 동시에 시간도 뛰어넘지. 놈들의 시간 개념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이지. 놈들은 공간을 뛰어넘는 동시에 시간도 마음대로 뛰어넘을 수 있다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단 말이야. 그런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 가능할까? 어쩌면 녀석들은 그냥 방황하는 것인지도 몰라. 우주와 공간과 시간 사이를 말이지.”

 

“...이상한 말이군. 놈들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잖아?”

 

“생각해 봐.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까 과거라고. 다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가 아니야.”

 

...어쩐지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지는 기분이다. 

 

“복잡해, 그런 심오한 생각까지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아무튼 그런 개뼈다귀 같은 생각으로 일을 때려 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일을 때려 치는 건 네 마음이지만 그 이유는 보통 임금체불이나 노동력착취 상사와의 갈등 등으로 인해서 하는 거라고. “

 

내 말에 시몬스는 피식 웃었다.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건 네가 할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뭐가?”

 

“네 품속에 들어있는 소중한 사진- 너에겐 삼 개월이지만 그녀에겐 삼십년이지. 벌써 자식들이 줄줄이 딸려 있을지도 모르는데, 빨리 잊는 게 좋지 않겠어? 도망치는 심정으로 제일 일정이 불확실하고 언제 지구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이 배에 죽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왜 하필 빛 고래를 쫓는 배에 탔지?”

 

난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진은 대체 언제 본 것일까? 난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묻는 것이 바보 같다는 것을 깨닫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 어쩌라고? 이미 늦어버렸는데. 나는 너처럼 바보 같은 꿈은 꾸지 않아. 설마 내가 정말 빛 고래를 잡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이 배에 타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늦었다 생각하면 잊으라고. 이 배에 타고 있는 것은 바보같이 보여. 어때? 우주 정거장에서 같이 계약파기하고 내려버릴까?”

 

“위약금은 어찌 갚고? 관 둬.”

 

시몬스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난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어. 내가 이 배에 타고 있는 것은 장기간 지구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보수가 좋기 때문일 뿐이라고. 비록 선장이 빌어먹게 사람을 부려먹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허황된 어처구니없는 꿈 때문은 아니란 말이다. 

 

우주 정거장으로 가는 내내,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선장이 끊임없이 불평과 아쉬움을 늘어놓으며 할 일도 없는데 쉬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무슨 새해 벽두도 아니고 온 선원을 다 동원해서 대청소는 왜 하냐고? 덕분에 나는 에너지 조정실의 바닥을 한 달여 만에 구경하게 되었고 오락실에 재여 있던 짐들은 모두 창고나 격납고로 나란히 정돈되어 들어갔다. 우주 정거장에 도착하면 등록을 하자마자 호텔로 가서 뻗거나 폭음을 하거나 여자를 꼬시는 것이 정상이거늘, 대청소의 여파로 우리는 우주선에서 정리해둔 쓰레기부터 먼저 옮겨 버려야만 했다. 재활용 분리수거가 상당히 엄격했기 때문에 그 일은 굉장히 귀찮았다. 이 우주 정거장은 조그마해서 자동 분리 시스템이 없는데다 선장이 구두쇠 노릇을 하는 바람에 로봇을 빌릴 수 없어 우리가 그것들을 일일이 실어 날라야 했던 것이다.

 

옛날이 좋았지, 우주 어디에서건 쓰레기를 무단 투척할 수 있었을 때가. 하지만 이젠 법이 바뀌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모든 우주선들은 우주 정거장에 들릴 때마다 항로의 쓰레기들을 치우는 세금까지 내야만 했으니까.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다가 추적당해 걸리기라도 하면 어마어마한 벌금이 부과되었다. 게다가 요즘엔 바코드가 찍히지 않는 물건이란 없었기 때문에 추적당하기가 쉬웠다.

 

우주 정거장에 내리자 언제나 그렇듯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늘었다. 이 우주 정거장은 과거에 몇 번 온 적이 있는데도 그렇다. 아니, 과거에 온 적이 있으니까 달라진 것들이 더욱 낯설어 보이는 것이겠지. 우주 정거장에 딸린 숙박소에 짐을 옮겨다 놓고 나는 거리로 나왔다. 갈 데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지만 어쨌든 정거장에 내렸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 맥주를 마셔야지. 나는 처음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캔 맥주 세 개와 소시지를 사서 우주 정거장의 광장에 주저앉았다. 앉아서 맥주를 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니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지나간다. 정거장이다 보니 온 우주에서 온 별별 희한한 떨거지들이 다 모인 것이다. 입은 옷들도 시대를 알 수 없이 뒤죽박죽. 이곳 우주 정거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행인 모양인지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옷을 걸친 사람들은 거주민. 제각각 제멋대로 걸치고 있는 사람들은 여행자들. 

 

광장에는 과거의 지구를 볼 수 있다는 안내서가 붙은 천체박물관의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는 47년 전의 지구를 볼 수 있다나 어쨌다나. 어차피 쳐다봐봤자 47년 전이든 100년 전이든 똑같이 생긴 퍼렁별이건만. 저런 걸 돈 주고 보는 사람이 있나. 

 

“여기서 뭐하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시몬스였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러는 너는 여기서 뭐하냐?”

 

“아아, 뭐 좀 사러 나왔다가 네가 보이기에.”

 

제 멋대로 옆에 앉더니 제 멋대로 내 맥주에 손을 댄다.

 

“커피는 공짜로 제공했지만 맥주는 공짜 아니다.”

 

“아, 그래?”

 

그렇게 말해도 입구를 따더니 입으로 가져간다. 난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귀찮은 녀석. 

 

“귀찮아?”

 

난 순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뜨끔했다. 찔끔해서 쳐다보니, 시몬스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인지 회색인지 알길 없는 오묘한 눈빛. 나는 머쓱해서 고개를 돌렸다가, 덤덤한 듯 대꾸했다.

 

“다가오지 않는 고양이는 귀엽지만, 자꾸만 무릎에 앉으려는 고양이는 귀찮거든.”

 

“내가 고양이냐?”

 

밥 달라고 다리에 몸 비비는 고양이나 커피 달라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너나. 나는 불만은 닥치라고 고양이에게 소시지를 밀어 넣었다. 염치도 없이 우물우물 잘도 받아먹는구나. 맥주를 들이 키니 시원하고 쌉쌀하고 짜릿한 그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우주선 안에 주류는 절대 반입이 금지라서, 진짜 몰래 몰래 한 팩 씩 갖고 들어가는 것이 한계라 우주선에 있을 때 아무것도 불편한 게 없었지만 맥주만은 정말 고팠다. 그래서 대신이랄까 커피를 달고 사는 것이다. 콜라를 달고 사는 놈도 있다는데, 나는 콜라는 달아서 말이지. 

 

“저기 가볼래?”

 

“어디.”

 

“천체박물관.”

 

“뭐하러??”

 

“할 일도 없잖아?? 

 

“할 일 있어. 맥주 마실 거야.”

 

“거기서 마셔도 되잖아? 47년전의 지구를 구경하면서- 47년 전의 지구에는 당신과 당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지.”

 

놈을 노려보니 시몬스 벌써 저만치 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투덜거렸지만 놈을 따라갔다. 녀석이 내 마지막 남은 맥주 한 캔을 들고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은 가까웠다. 녀석은 동전을 넣고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았지만, 난 쳐다보지 않았다. 구경할 것도 없었다. 운석 쪼가리 몇 개와, 모형 은하계와 그래픽 등등...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지 썰렁했다. 우리는 천체 박물관의 지붕에서 남은 맥주를 마셨다. 우주 정거장이라 하늘대신 새카만 우주가 보였다. 

 

“뭐가 보이더냐?”

 

내가 묻자 녀석이 모르는 척 반문해왔다.

 

“뭐가?”

 

“망원경 말이야. 47년 전의 지구는 뭐가 좀 달라 보이든?”

 

“글쎄. 궁금하면 직접 보지 그랬어.”

 

“봐서 뭘 아나. 어차피 겉보기론 똑같을 텐데 뭐.”

 

“지구로 돌아가면, 다시 찾아갈 거야?”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평소라면 회피했겠지만, 왜일까.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글쎄.”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아직 지구로 돌아가는 일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어. 석 달... 내게는 석 달일 뿐인데 찾아갔더니 호호 백발 할아버지가 나와서 그래, 과거에 자넬 참 좋아했었지. 사랑한 적도 있었다고 하면서 허허 웃는 거 따위는 보기 싫은데. 난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

 

“난 익숙한데.”

 

“뭐?”

 

문득 돌아보자 시몬스는 맥주 캔을 구기면서 말했다.

 

“익숙하다고. 아내와 이혼하고 나서 어린 아기를 부모님께 맡기고 우주에 나갔다 돌아왔더니 그 아이가 다 자라서 결혼해 어릴 때 저만했던 자식이 있더라고. 또 몇 년을 나갔다 돌아와 보니 아들은 죽고 내 손자가 아들을 낳았던데.”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완전 할아범이구만.”

 

시몬스는 킬킬 웃었다.

 

“여기 있는 나는 내 증손자에게 아직까지도 살아있을지 모를 전설 같은 존재지. 나는 지구에 도착하면 매번 꼭 집으로 찾아가. 그리고 그들의 깜짝 놀라는 모습들을 쳐다보지. 그들이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와, 제 어릴 적 보았던 그 모습이랑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면서 영원을 사는 것 같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부러워하는 것을 느껴. 나는 이제 불과 서른일 뿐인데 말이야.”

 

나는 대답 없이 남은 맥주를 모두 들이켰다. 한참의 침묵 뒤에, 나는 말했다.

 

“다시 돌아가지 그래? 다시 돌아가서 네 핏줄과 같이 늙어. 그리고 다시 결혼해서 네 자식이 너와 함께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지구의 땅에 묻히라고. 좋잖아.”

 

“...싫어. 나는 내 증 증손자도, 그 증손자도, 고손자를 볼 때까지 살 거야. 그들의 피터팬이 될 거라고. 언젠가 불쑥 찾아올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변태 같은 놈. 피터팬이 되기엔 너무 늙었잖아.”

 

“그런가?”

 

참으로 꿈속에 잠겨 사는 놈이군. 새삼스레 그가 참으로 순진해보여서 나는 시몬스의 옆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우주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의 옆얼굴은 신선해보였다. 빛 고래를 잡으러 다니는 낚시꾼 주제에 빛 고래가 잡히지 않기를 바라고, 유령에 불과한 과거의 조상일 뿐인데 피터팬을 꿈꾸고. 그렇게 남들에게 멋진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일이 즐거운 녀석은, 남을 즐겁게 속이는 일에 능통한 마술사가 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는 이 손안에 아직도 그녀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그녀의 기억에서 젊은 날 한때 사랑했던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는 것이 좋을까. 불쑥 찾아든 과거의 잔재로 홀로 늙어버린 그녀에게 비참함을 선사하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이미 나라는 존재는 그저 멋진 추억이 깜짝 이벤트처럼 찾아와 잠깐이나마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능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아, 이미 모두가 틀린 일인데.

 

우주 여행자들이 그들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를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가지 못한 미래로. 나는 이곳에 남겨두고, 그녀는 혼자 달려간다. 혼자서 나를 잊고 어느새 추억으로 만들고 새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인생을 꾸리다가 늙어간다. 나는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녀에게 나는 까마득한 청춘의 추억이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수십 번을 생각하지만, 반대로 몸은 더욱 더 멀리 지구를 떠난다. 더욱 더 멀리 과거로 간다. 47년 전의 지구가 보이는 곳에서, 470년 전의 지구가 보이는 곳으로 달아난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나도 그곳에서 떠나려고 노력한다. 그 사랑에서부터. 

 

우주 정거장에 머무른 것은 사흘간으로 잠깐이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빛 고래를 잡을 뻔한 선장이 애가 닳아 모든 일을 순식간에 해치웠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쉬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우주 정거장을 등지고 항로도 여정도 없는 우주로 나아갔다. 다시 빛의 속도로 달려 십 수 년을 찰나의 순간으로 부질없이 보내버린 뒤, 예전 빛 고래를 놓친 곳으로 가서 무작정 레이더망을 펼치고 그 근처를 수색하면서 놈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빛 고래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모처럼 한가했다. 몰래 들여온 맥주를 다 마실 무렵, 슬슬 지루해 죽겠다고 생각할 무렵.

 

빛 고래가 나타났다. 

 

늘 빛 고래가 나타나면 호들갑부터 떨던 선장은, 신음처럼 놈을 보고 첫마디를 내밭았다.

 

“녀석이잖아...?”

 

일전에 놓친, 바로 그 빛 고래였다.

 

나로서는 그 놈이 그 놈인지 알아볼 방법이 없었지만, 선장이 같은 놈이라니 그렇지 않겠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요전에 놓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선장이 워낙 그렇게 확고히 믿고 있으니 뭐... 같은 놈이든 다른 놈이든 별 차이도 없고. 놈은 발견되자마자 곧장 공간이동으로 달아났지만,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나타났다. 전처럼 같은 곳을 또 맴도는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놈들이 그저 A지점에서 나타나 B지점으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공을 헤매는 건지도 모른다는 시몬스의 말이 생각나면서, 어쩌면 저 빛 고래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갔다가 다시 A지점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면 A와 B지점 사이에 있는 C,D,E,F,G 지점들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무튼 선장은 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놈이 다시 나타난 것만 봐도 이번에야 말로 우리에게 잡히기 위해서라며 독촉을 해대었다. 우주선은 녀석에게 곧장 접근해가기 시작했다. 

 

피로와 짜증이 극에 달하는 이틀이 지났다. 

 

놈은 몇 번이나 맴을 돌면서 도망을 쳤다. 그런데 전처럼 도망을 가려면 아주 멀리 가든가 아니면 그냥 잡혀 주든가 할 것이지 근거리 이동을 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선장은 잔소리와 닦달로 사람을 피 말리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선장의 잔소리 만큼이나 시몬스가 카페인을 찾아 내 문짝을 걷어차는 일도 잦아 졌다. 시몬스는 빛 고래의 신비감이 어쩌고저쩌고 할 땐 언제고 다시 기회가 왔을 때 저 물고기 새끼를 잡지 않으면 내가 인간이 아니라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틀간 제대로 누워 보지도 못하고 꾸벅꾸벅 모니터 앞에서 새우잠을 자다 보니 이쯤 되면 전과 똑같은 짓을 하는 빛 고래가 우리를 약 올리기로 작정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또다시 놈이 멈춰 섰다. 전과 비슷한 위치에 멈춰선 빛 고래는 지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멀리 사라져버리든가 할 것이지, 계속 어른거리는 놈의 꼬리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우주선은 엔진을 끄고 관성만으로도 소리 없이 빛 고래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점차 놈의 황홀한 비늘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강렬한 기시감이 나를 덮쳤다. 당혹스러워서 지난 좌표를 모두 확인해보니...

 

놈은 지난번과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는 순간 혼동에 빠졌다. 저 놈은 우리가 지난번에 본 그 놈일까, 아니면 과거에서 공간이동해온 그놈일까...?? 저것은 놈의 과거인지 미래인지...??

 

얼이 빠져 숨을 죽이고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시몬스의 양자기 그물이 놈의 위로 그 발을 늘어트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이 요동을 쳤다. 

 

콰앙! 놈의 수염이 선장실 앞쪽을 때린 것인지 우주선이 뒤집힐 듯 흔들렸지만...

 

시몬스는 이번에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다. 바닥을 구르지 않은 녀석이 양자기 그물을 그 난리 속에도 꿋꿋히 펼쳤다. 나는 연이어 우주선 옆구리를 덮칠 꼬리지느러미의 여파에 대비했지만, 다시 찾아온 충격은 빛 고래가 우주선 옆구리를 때려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양자기 그물이 놈을 붙잡은 것이다. 

 

- 됐다!!!!

 

선장의 환호성. 나는 자신이 빛 고래를 잡을까봐 걱정하던 시몬스의 얼굴을 떠올렸다. 녀석, 지금 어떤 기분일까? 우두둥- 우두둥- 양자기 그물에 갇힌 빛 고래가 몸부림 치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우주선 곳곳에서 환호성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어째 우주선이 흔들리는 게 심상찮았다. 놈을 잡았다는 기쁨보다 불안하다는 기분이 더 들자, 갑자기 극심하게 우주선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자력으로 고정되어 있던 커피포트가 바닥으로 떨어져 커피가 죄 쏟아지고, 나는 필사적으로 의자를 붙잡고 자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양자기 그물 안에서 빛 고래의 몸이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공간이동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자기로 뒤덮인 곳에서 공간이동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놈이 어떤 방법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론적으로 추측한 공간이동을 막는 방법은 양자기 그물이었던 것이다. 극심한 흔들림. 공간이동을 하는 빛 고래에게서 막대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빛 고래의 공간이동에서 흘러나온 강력한 에너지가 우주선을 뒤덮었다. 창밖이 새파래지고, 그 빛이 우주선 안에까지 침범하면서 사방이 새하얘졌다. 엄청난 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중력제어장이 흐트러졌는지 몸이 둥실, 떠오르고 우주선의 모든 시스템이 멈춰버렸다. 

 

소용돌이였다. 어지러운 소용돌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빛 고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거대한 몸을 들어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우주선은 거기에 휘말려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놈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과거로? 미래로??

 

아아. 돌아가고 싶다. 그곳으로.

 

콰당-!!!!!!!!!

 

그 문이 닫히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울린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뱉어버리고 만 말에 눈시울이 금방 붉어지던 마지막 모습도...... 

 

그녀를 사랑했다. 사랑한다는 것에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구에서 살 수 없는 인간이었다. 나는 뼛속까지 우주 여행자였고, 머물러 있는 시간에 익숙하지 못했다. 맙소사, 나는 모든 흘러가버리는,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과거들에 익숙했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누구와 같은 시간의 흐름을 가져보지 않은 나는, 그녀와 함께 지구에서 머무르며 정상적인 세월을 흘려보내고 같이 늙어간다는 그 엄청난 지루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리고는 우주선에 올라탔다.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얼마나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한 시간은 그녀에게 한 달. 나에게 한 달은 그녀에게 일 년. 나에게 일 년은 그녀에게 십년... 돌아갈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돌아가는 대신 더 멀리 도망쳤다. 더 멀리, 더 멀리. 

 

과거와 미래가 얽힌 채 끝없이 방황한다. 난 어디로도 갈 수 없어. 과거로도, 미래로도.

 

오로지 소망만은.

 

돌아가고 싶다. 그곳으로. 내가 그토록 경솔하게 그에게 이별의 말을 내뱉었던 곳으로 돌아가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뒤 벽에 걸린 시계에 시선이 못 박힌다. 10월 28일 오후 8시 58분. 그녀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부드러운 갈색 곱슬머리. 다감한 갈색 눈동자. 한 손은 현관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비스듬히 몸을 돌린 채, 내 다른 손을 붙잡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신음하듯 다시 묻는다.

 

“...진심이야? 나를...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이 문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바로 우주 정거장으로 달려가, 곧장 빈자리에 계약을 하고 우주선에 올라탄다. 그리고 그 우주선이 정거장을 떠나 몇 백 광년으로 십 수 년의 세월을 멀어지는 순간 후회한다. 

 

나는 입술을 열었다.

 

“...사랑해. 영원히.”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몸을 돌려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내 품에 꼭 들어맞는 그녀의 몸. 내 귓전에 닿은 그녀의 입술에서 기쁨과 슬픔이 범벅이 된 호흡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더욱 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눈을 다시 떴을 땐 빛 속을, 시공 속을 유영하는 빛 고래가 보였다. 그 공간의 터널을 지나, 다시 까만 우주의 별바다가 펼쳐졌다. 그곳에 또 다른 빛 고래가 있었다. 오로라처럼 빛나는 비늘, 파도처럼 펄럭이는 지느러미. 그들은 수염을 맞대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들은 무수히 많은 시공을 이동하면서, 자신의 짝을 찾는 것이었다. 한 시점에 머물러 있는 우리들에게 그들은 종종 스쳐지나가는, 우주 이쪽에서 우주 저쪽으로 지나가는 찰나일 뿐이지만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공을 이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시공을 엇갈려 헤엄치므로 같은 동족을 만날 확률이 지극히 적을 터였었다. 앞과 뒤로 까마득히 펼쳐진 과거와 미래 속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짝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별들 사이를 공간이동 한다. 그들은 A 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것도, 그저 엉켜있는 과거와 미래를 방황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짝을 찾아 여행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만날, 단 하나의 짝을 찾아.

 

마침내 만난 두 마리의 빛 고래는,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를 보니, 양자기 그물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제정신을 차린 것은 두 마리의 고래가 사라지고도 한참으로, 우주선의 모든 사람들이 방금 경험한 기적에 놀라 당황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선장조차도 조용했다.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생각했다.

 

그것은 뭐였을까.

 

그저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나의 과거였을까.

 

마침내 다시 지구로 돌아온 것은, 내 시간으로 2년 후였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근 100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녀는 이미 죽었다.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무덤과, 그녀의 무덤을 알려준 지인뿐이었다. 쓸쓸한 가을 낙엽이 날리는 무덤 뜰 앞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그녀는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했어요. 당신 만을요. 당신을 기다리다 죽었죠. 언젠가는 당신이 돌아올 거라며, 때로는 거울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늙어서야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냐고 쓴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당신을 만나보길 바랬어요. 늙고 곧 죽을 몸이라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사랑한다던 그 말을 듣고 싶다 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갑자기 떠나버리기 전 날 밤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묘지를 나오니 시몬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내 어깨를 잡았고,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 했어야 했어. 마침내 이곳에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와 사랑했던 숱한 사람들, 그의 무수한 자식들과 만났어야 했어. 그녀를 찾았을 때 누구시지요... 라는 질문을 들었어야만 했어. 왜 이제야 돌아왔느냐는 말 대신...”

 

한참의 침묵이 지났다. 땅을 디디고 선발이 시렵다는 느낌이 들 무렵, 시몬스는 문득 말했다.

 

“...빛 고래가 우리들과 함께 과거로 돌아갔을 때... 내가 돌아간 과거가 무엇이었는지 알아?”

 

“...몰라.”

 

“나는 아내를 만나고 있었지. 아내는 아직 나와 이별했던 스물 넷 그대로였어.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먼별을 여행하고 돌아왔었거든... 아내는 아직도 나를 미워하고 있었어. 나는 이미 모두 지난 일로 그녀를 마음속으로 용서했는데... 그녀는 나를 용서하고 있지 않았지. 한 번 더 그때로 돌아갔어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어. 바보 같은 일이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겠다고 미처 생각해두지 못했어. 바보처럼 그때와 똑같이 그녀에게 사과하지 못했지.”

 

“멍청한 놈.”

 

내 비난에 시몬스는 미소 지었다.

 

“그거 알고 있어?”

 

“뭘 말이냐.”

 

“그녀는 아마도 네가 사랑한다고 했든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든... 널 기다렸을 거라는 사실을. 그녀는 어느 날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시 찾아올 너를 기다렸을 거야.”

 

알쏭달쏭한 미소. 

 

아니야... 그녀는 내가 과거로 다시 돌아가 사랑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를...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순간 과거로 돌아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현재의 난 여전히 그 우주선에 타고 있었으며 2년 만에 지구로 돌아왔다.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늙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왜일까? 

 

“그게 그녀의 꿈이었으니까. 그게 그녀의 빛 고래고 언젠가 돌아갈 미래였던 거야. 우리는 얽혀버린 시간 속을 살고 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걸 테지. 자신의 과거를, 그리고 여전히 너를 사랑할 그 미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바로 우주 정거장으로 달려가, 곧장 빈자리에 계약을 하고 우주선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우주선이 정거장을 떠나 몇 백 광년으로 십 수 년의 세월을 멀어지는 순간 후회했다.

 

언젠가 나를 사랑한 그녀를 생각지 않고, 그녀를 사랑할 나를 생각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달아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난 항상 언젠가 돌아올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대로 돌아왔다. 늦었지만 돌아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과거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돌아온 곳은 현재였다. 이제 그녀는 나에게도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녀에게만 내가 과거가 되어버린다고 한때 원망했지만, 나에게도 그녀가 과거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우주가 아닌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가자.”

 

“어디로?”

 

시몬스의 물음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디긴 어디야. 우주로 가야지. 또 빛 고래를 잡으러 가자.”

 

“...우주선의 계약은 이미 끝났잖아.”

 

몸을 돌려 걷는 나를 쫓아오며 시몬스는 말했다. 나는 어쩐지 볼멘, 하지만 설레고 있는 그 목소리에 피식 웃음 짓고는 툭, 말을 던졌다. 

 

“이번엔 생각해 둬. 그녀에게 뭐라고 사과할지를.”

 

뒤에서 따라오던 그의 발걸음 소리가 잠시 멈췄다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온다. 대답은 없었지만 침묵은 긍정이겠지?

 

최초로 짝을 이루는 빛 고래가 목격된 뒤로, 100년 하고도 38년이 흐른 후에야 짝을 이룬 빛 고래가 다시 나타났다. 빛 고래가 공간이동을 하는 이유는, 시공을 떠도는 그들의 특성상 짝을 만나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마침내는 만나고, 짝을 이루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는다. 헤어진다면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꼭 붙잡고, 놓치지 않는 것이다.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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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