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대리전(代理戰)

2005년 10월 통권 1호

1.


네가 무나키샬레Munakeeshalle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왔을 때, 솔 직히 난 너를 알아보지 못했어. 일단 고객들을 상대하느라 바빴고,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12년 전이었으니까. 너도 그동안 많이 변했더군. 그래, 난 네가 그런 식으로 나이가 들 거라고 생각은 했어. 넌 12살 때부터 언제나 혼자서 세상과 맞서야 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언제나 작은 어른이었어.


반대로 나는 그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지. 중간에 고생을 조금 하긴 했지만 난 지금까지 어른처럼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어. 가게 안에 들어온 순간 네가 내 얼굴을 알아봤다고 해서 이상하지는 않아.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무책임하고 사치스러운 부잣집 딸이지. 물론 돈을 대주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아마 넌 황당했을 거야. 네가 부천 홈플러스 근처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와 마주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그렇게까지 큰 곳이 아니니까. 하지만 넌 추리닝 복을 입은 초라한 대머리 아저씨 두 명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내 모습은 상상도 못해봤을걸? 적어도 지금까지 닦아온 내 이미지와는 맞지 않지. 하긴 내가 그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면, 난 유럽 어딘가에서 니키아나 지젤을 추고 있어야 해. 아니면 그런 걸 추는 에트왈들의 등 뒤에서 튀튀 차림으로 콩콩거리고 있거나. 무릎 부상과 집안 부도로 오래전에 물 건너 가버린 계획이지만.


게다가 그 언어는 어떻고? 아마 네가 들은 말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을 거야. “우그크크꺄꺄핑 샤그르브샤크므브프 핑핑핑핑까르까르딩?” 번역하면 다음과 같아. “그렇다면 어느 섹스 코스를 먼저 선택하시겠어요?”


어느 나라 말이냐고? 제4번 은하어의 제1음성어 변종이야. 발음이 예쁘지 않은 건 당연해. 원래 제4번 은하어는 발성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얼굴이나 다른 신체 부위의 발광층으로 반짝거리기 위해 만들어졌거든.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종들을 위해 음역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껄끄러워. ‘샤그르브샤크므브프’처럼 자음이 다닥다닥 붙은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지. 귀찮지만 어쩌겠어. 이번 관광객들은 제4번 은하어밖엔 할 줄 아는 게 없었어. 아마 이런 식으로 변형된 4번 은하어도 굉장히 짜증났을 거야. 제4번 은하어의 특징은 즉시성이야. 그림 하나가 얼굴이나 몸에 뜨는 순간, 보는 쪽에서는 문장 전체를 이해하지. 하지만 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그 2차원적인 문장을 잘게 쪼개어 1차원적인 긴 실로 만들어야 해. 귀찮지.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이번 고객들은 그그그카탕보그무 행성에서 온 다섯 번째 관광객들이었어. 제3기에 접어든 지 3사이클도 되지 않는 촌뜨기들이었어. 물론 난 그네들을 촌뜨기라고 놀려댈 입장이 못 되지. 지구는 아직 앤시블ansible 테크놀로지를 독자적으로 발명하지 못한 제2기에 머물러 있으니까. 하지만 난 나 자신을 지구인의 위치에 놓고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지구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동료 대부분이 그렇지만.


풋내기 여행자들이 그렇듯, 그네들은 일단 지구인의 몸 자체를 탐색하길 원했어. 일단 지구인 몸으로 먹고 자고 배설하고 섹스하는 쾌락에 대해 알고 싶어했던 거지. 문제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거야.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지만 섹스는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둘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섹스 워커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여담인데, 내가 조금만 삐끗 잘못 나갔다면 지금쯤 외계인 전문 섹스 워커로 뛰고 있었을지도 몰라. 일이 내 취향과 맞지는 않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하더라. 수익도 괜찮고.


하여간 내가 거기서 하고 있었던 건 관광객들과 섹스 워커들의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이었어. 스케줄이 끝나면 회사에 인계해주고 집으로 돌아오면 끝이었지. 만약 그 관광객들이 진짜 관광객들이었다면 다음 날에 보다 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너와 재회할 수 있었을 거고. 그랬다면 그건 정말 진부하지만 기분 좋은 로맨스의 도입부가 될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로맨스와 전혀 상관이 없었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2.


난 정말 바보였어. 아무리 머릴 굴려도 이 말밖엔 안 떠올라. 난 정말 바보였어. 아니, 나만 바보였던 게 아니지. 은하 연합 전체가 바보였던 거야. 휴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좀 위로가 된다.


아냐, 여전히 화가 나. 내가 조금만 머리를 굴렸다면 그그그카탕보그무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그 두 명의 관광객들이 가짜였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을 거야. 일단 그 작자들이 이족 보행에 그렇게 빨리 적응한 것부터가 말이 안 돼. 은하 연합의 도서관에 따르면 그그그카탕보그무의 거주민들은 오징어처럼 생긴 무척추 수생동물이란 말이야. 이족 보행은커녕 사족 보행도 힘들 판이라고. 그런데 그 작자들은 숙주 몸에 들어간 뒤 몇 분 비틀거렸을 뿐 그 뒤로는 썩 잘 걸었거든. 아무리 그 숙주들이 수생동물의 운동방식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그건 좀 수상쩍었어.


생각해보면 그그그카탕보그무라는 행성 자체가 말이 안 돼. 생각해 봐. 은하 연합이 지구를 발견한 게 1996년이야. 그그그카탕보그무가 앤시블 네트워크에 접속한 게 1999년이고. 겨우 3년 만에 은하계 양쪽 끝에서 두 개의 문명 행성이 발견되었던 거야. 지금의 은하 연합이 탄생하고 42만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연달아 외계 문명이 발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누군가 의심하는 게 정상이었어. 하지만 아무도 안 그랬지. 그그그카탕보그무에서 날아오는 정보들이 아무리 미심쩍어도 다들 아직 제대로 된 테크놀로지를 개발 못한 미개 행성이니 당연하다고 관대하게 이해해주었을 뿐이야. 어느 누구도 그그그카탕보그무에서 날아오는 정보들의 출처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어. 하긴 그건 의심해도 어쩔 수 없었겠지. 앤시블은 출처 확인이 불가능한 통신 수단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는 한번쯤 의심해야 했어. 그그그카탕보그무라는 행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거기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작자들이 사기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 사기꾼들의 음모가 무엇이건 그게 막 발견된 제2기 행성인 지구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3.


그래, 아무도 그 사기꾼들을 의심하지 않았어. 우리에겐 그들도 그냥 고객이었을 뿐이지. 그 악당들도 다른 관광객들과 정확히 같은 순서를 밟아 우리에게 왔어. 일단 은하 관광 위원회에서 앤시블을 통해 관광요청서를 보내. 그러면 우리 여행사에서는 관광객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동작 방식, 육체의 모양을 검토한 뒤 그에 어울리는 숙주들을 뽑지. 스케줄이 확인되면 우린 우리가 마련해준 숙주의 아파트로 가서 뇌 안에 박혀 있는 기생기계를 작동시켜. 그렇게 하면 앤시블을 통해 숙주의 육체와 몇 천 광년 저쪽에 있는 외계 생물의 정신이 연결되는 거야. 물론 진짜 육체를 가지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우리가 알기로는 분자보다 큰 물체가 온전한 모양을 갖추고 초광속여행을 하는 건 불가능해. 그나마 앤시블이 있어서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거지. 제4기 문명은 초광속여행뿐만 아니라 순간여행까지 가능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긴 하지만 그건 소문일 뿐이야. 저 높은 곳에서 무슨 일들이 진행되는지 누가 알겠어? 3기 문명이 4기에 접어들면 연합과 접촉을 끊어버린단 말이야. 모두 그래. 맨 처음엔 전혀 다른 진화 과정을 거친 생물들이 나중엔 다 똑같이 행동하니 괴상하지. 이런 걸 보고 그 동네에서는 ‘필연적 수렴’이라고 한단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냐고? 걸음마를 시킨 뒤, 아이스크림 가게로 끌고 왔지. 아이스크림 먹기는 필수적인 행사야. 일단 소화기관에 적응시켜야 하는데, 지구인의 육체에 처음으로 들어온 관광객들은 적응 기간 동안 바닐라 아이스크림밖에 못 먹거든. 하긴 몇몇 종은 한동안 아이스크림도 못 먹어서 적응기간이 끝날 때까지 얼음만 빨아야 하지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정을 맞춘 뒤 - 그래, 난 끝까지 널 알아보지 못했어 - 나는 그 악당들을 내 차에 태워 사무실로 데려갔어. 사무실에서 인수인계를 마치면 그날 내 일은 끝나는 거지. 따지고 보면 난 부잣집 마나님의 심심풀이 땅콩 아르바이트 정도의 일을 하면서 웬만한 봉급쟁이 월급의 열 배가 넘는 돈을 받고 있는 거야. 그것도 해고당할 일이 전혀 없고 상사 눈치 보는 일도 없으며 늘 자발적인 해외 출장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내가 말했잖아, 난 여전히 부잣집 딸이라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송내역 부근에 있는 6층 건물 안에 있어. 건물은 회사 소유이고 2층부터 6층까지를 사무실로 쓰고 있지. 그 중 여행사 업무를 담당하는 2, 3층은 위장용이고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회사의 진짜 정체가 뭔지도 몰라. 앤시블 네트워크와 송신기들, 숙주들을 관리하고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진짜 일들은 모두 4층 위에서 진행돼.


나는 4층으로 올라가 관광객들로 위장한 그 악당들을 사장에게 넘겨주었어. 나야 그 악당들이 그그그카탕보그무에서 왔건 어디서 왔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지만 사장은 좀 입장이 달랐어. 나름대로 지구 대표를 자처하는 사람이었으니 모든 문명에 대해 다 알아야 한다는 거지. 내가 인수인계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갈 때까지 사장은 그들에게 뭐라고 계속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어. 가끔 그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봐. 이미 늦었지만.


내가 사무실에서 떠난 뒤에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난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집에 막 배달된 <프레드 아스테어/진저 로저스> DVD 박스세트를 보려고 일찍 집으로 가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 역시 영영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이겠지.



4.


나는 다음 날 10시 반에 사무실로 출근했어. 아래층에서는 위장용 여행사 직원들이 언제나처럼 파리 날리는 사무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어. 내가 들어오자 직원 한 명이 나를 보고 이러더군. “사장님께서 계속 찾으셨어요. 전화가 안 된다고 하던데요?” 그건 사실이었어. 영화 다섯 편을 논스톱으로 보고 퍼질러 자다가 휴대폰이 방전된 걸 깜빡했던 거지.

4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강한 오렌지 향기가 내 코를 찔렀어. 누군가가 방향제 뚜껑을 열고 바닥에 쏟아 부은 것 같았지. 나는 불평하려고 늘 사장이 앉아 있던 소파로 고개를 돌렸어.


소파는 텅 비어 있었어. 아니, 비어 있는 건 소파뿐이 아니었어. 사무실 전체가 텅 비어 있었지. 모두 내실에 있는 걸까? 아니면 다들 위층으로 올라간 걸까? 그럴 수도 있었지만 뭔가 심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직감은 여전히 남았어. 난 천천히 내실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어.


내실은 끔찍했어. 사방이 피투성이였고 바닥엔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어. 시체들은 모두 두개골 뒤가 부서져 있었고 마치 커다란 짐승의 손톱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척추에 긴 상처 자국이 나 있었어. 몇몇 사람들은 눈도 뜯겨져 나가고 없었어. 난 얼어붙은 듯 문가에서 서서 시체들을 세어봤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부천에 거주하며 외계인들을 관리하는 에이전트들은 나까지 포함해서 여덟이야. 그런데 그 중 여섯 명이 시체가 되어 쌓여 있었던 거야.


사장은 보이지 않았어. 이건 좋은 징조일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어. 그가 죽었다고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살아 있다고 해도 결코 좋은 소식일 리는 없지.


등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어. 내가 양손에 피를 묻히면서 사장을 찾고 있는 동안 네가 내실로 들어왔던 거야. 그리고 내 시야에 잡힌 건 너뿐이 아니었어. 어제 내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던 두 악당들이 커다란 망치처럼 생긴 걸 하나씩 들고 서 있었어.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야 너의 얼굴을 알아봤으니 정말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따로 없지.


난 결코 이런 상황에서 민첩하게 행동할 만한 사람이 못돼. 그래도 그 순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 아마 이 피투성이 광경 때문에 미리 겁을 다 집어먹어버려 더 이상 겁을 먹을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겁을 먹고 뒷걸음질치는 대신 그들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는데, 그건 옳은 선택이었어. 물론 그 전에 쓸 만한 무기라도 챙길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게 방 안에 있을 리가 없었고 그 정도만으로 충분했어. 내가 상대하고 있었던 건 남의 육체를 뒤집어쓰고 있는 외계인들이었어. 당연히 홈그라운드의 이점은 나에게 있었지.


하지만 그러는 동안 너를 지켜주지 못한 건 내 계산착오였어. 그래도 당시엔 그게 비교적 논리적인 선택이었다는 걸 이해해주기 바라. 내가 덤벼든 건 너에게 그 망치 비슷한 걸 휘둘러대는 악당이었고 공격 자체는 성공이었어. 하지만 그 순간 두 번째 악당이 너를 빼내 너를 인간 방패로 삼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어? 그가 너를 인질로 삼아 최소한 협상의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실수였지. 그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냥 네 머리를 망치로 쏘고 달아나버렸으니까.



5.


그 악당이 달아나자마자, 나는 너에게 달려갔어. 뒷머리에 100원짜리 동전크기만한 화상 자국이 나 있는 것 이외엔 외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의식은 없었어. 네가 숨을 쉬고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내가 쓰러뜨린 첫 번째 남자에게 달려갔어. 남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코와 귀로 피를 뿜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 그건 그냥 숙주였어. 아마 그 외계인은 내가 공격한 즉시 숙주와 연결을 끊어버린 모양이야. 그것도 그냥 끊은 게 아니라 뇌의 연결장치를 파괴해버렸던 거야. 뇌 속에서 작은 폭탄이 터진 셈이었지. 숙주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어. 하긴 숙주가 되기 전부터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친구였으니 지금 죽어도 유감은 없었겠지만.


나는 숙주를 내실에 밀어 넣고 문을 잠근 뒤 6층 금고실로 올라갔어. 아니나 다를까, 금고실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탐사선은 사라지고 없었어. 탐사선 대신 바닥에 놓여 있는 건 사장의 시체였어.


하지만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니었지. 탐사선의 앤시블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보호장치도 작동중이었어. 달아난 사기꾼이 아무리 용하다고 해도 보호장치를 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테크놀로지는 기껏해야 2.1기 수준이지. 아무리 제3기 문명의 지식을 머리에 담고 있다고 해도 지구의 재료들을 이용해 쓸 만한 도구들을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렇다면 앤시블을 누가 가지고 있건, 난 아직 은하 연합과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


나는 5층으로 내려갔어. 다행히도 그들은 5층의 통신장치들을 그대로 방치해두었어. 하긴 그것들을 모두 날려버렸다고 해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어. 앤시블은 휴대 전화나 인터넷으로도 연결되었으니까. 심지어 사장은 굉장히 뻔뻔스러운 도메인 네임을 단 웹사이트도 하나 만들어 놓았지. http://www.ansible.co.kr.


은하 연합 교류 협회 사무실 담당관의 명쾌한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오자마자 나는 허겁지겁 상황을 설명했어. 여섯 명의 에이전트들이 죽었고 한 명이 실종되었고 살아남은 건 나 하나뿐이다. 탐사선은 도난당했고 지금 지구에 있는 3,872명의 방문객들에게 무슨 일들이 생길지 모르니 경고하라고 말이야. 그쪽에서는 다시 연락할 테니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하더라. 나는 통신기의 번호를 내 휴대전화로 돌려놨어.


나는 5층에서 의료용 헬멧을 챙겨 가지고 아래로 내려왔어. 솔직히 이런 걸 의료기기라고 부르는 건 자기 기만이지. 연결장치를 뇌에 이식하기 위한 보조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지구인 인간보다 나았어. 은하 연합에서는 이미 지구인의 육체에 대한 모든 지식을 수집하고 있었고 의사 역할을 할 만한 인공지능도 보유하고 있었어. 유감스럽게도 내 지식이, 사실은 지구의 지식이 그 기계를 따라가지 못했지. 기계가 뇌손상 정도를 알려왔는데, 나로서는 치명적인 부상이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어. 다행히도 기계는 그 상태를 어느 정도 안정시킬 수는 있었어.


그때 협회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그쪽에서는 내 일을 도울 전문가를 보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어. 해외에도 에이전트들이 있긴 하지만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했고 게다가 그네들이 한국까지 날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지. 몇 백 광년 떨어진 행성의 전문가를 앤시블로 연결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어.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보안장치가 앤시블 자체는 보호하고 있었지만 지금 등록된 숙주들의 통제권은 곧 그 도둑에게 넘어갈 게 뻔했어. 그렇다면 별도의 채널로 새 숙주를 만들어야 했어. 그것도 지금 당장.


그때 너에게로 시선이 돌아간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어. 통제기기의 항상성 유지 기능은 일종의 뇌수술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야. 문제는 숙주용 통제기기가 일으킬 수 있는 여러 부작용들이었지. 섹스 워커들과 해결사들을 제외한 숙주들은 대부분 자기 의지가 결여된 알코올중독자 행려병자들이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더 나빠질 게 없었지만 넌 사정이 다르잖아.


하지만 난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어. 나는 다시 허겁지겁 5층으로 달려가 캡슐 안에 든 여벌의 통제기기를 하나 가져와 헬멧의 투입구 안에 밀어 넣었어. 난 헬멧이 네 머리를 깎고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베이컨으로 싼 총알처럼 생긴 통제기기를 그 안에 밀어넣고 의료용 시멘트로 구멍을 막는 동안 헬멧을 움켜잡고 있었어.


이식이 성공하자 헬멧에 파란 불이 들어왔어. 헬멧을 벗기자마자 네 얼굴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군. 잠시 뒤 너는 눈을 떴어. 그리고 유창한 제2번 은하어로 나에게 인사를 했지. “엘로이레이!”



6.


네 몸에 들어간 담당관은 바기-지랑이라는 마자랑 행성인이었어. 8년 동안 24번 지구를 방문했고 한국어를 포함한 6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제2번 은하어로 혜경궁 홍씨의 전기까지 쓴 적 있었고 지구 문학의 은하어 번역 작업에도 관여하고 있었어. 지구에 대한 기본적인 문자 지식만 따진다면 바기-지랑은 나보다 더 박식했어. 몸 구조도 지구인과 비슷해서 현장 작업에도 무리가 없었고.


난 바기-지랑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편이었어. 내 첫 고객이기도 했고. 하지만 외계인들과 지속적인 친분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워. 행동이나 생각 자체가 다른 건 둘째 치고, 일단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으니 말이야. 내가 알고 있는 바기-지랑은 늘 알코올중독으로 피부가 엉망이 된 중년 남자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하는 행동은 늘 수다스러운 아줌마 같아서 늘 가면 쓴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어. 조금씩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거지.


바기-지랑이 맨 처음에 한 일은 시체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어. 나는 그 사람을 도와 4층의 시체들을 모두 6층으로 옮겼어. 시체들을 금고실에 넣고 헬멧으로 이식물이 뜯겨져 나간 시체의 입체사진들을 찍은 뒤 우린 금고문을 닫았어. 잠시 뒤 확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공기가 뜨거워졌어. 난 그때까지 금고실이 비상 소각로 역할을 하는지 몰랐어.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금고실은 원래부터 2기 행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연합의 규격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하더군. 꼭 시체는 아니더라도 3기 문명과 연결된 증거들을 재빨리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


바기-지랑이 피로 물든 4층을 청소하는 동안 나는 쇼핑을 했어. 사장의 자전거를 타고 홈플러스와 월마트를 돌면서 가전제품들과 장난감들을 사 모았지. 그 악당들이 짬짬이 만든 망치 같은 무기들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맨손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는 없잖아. 우리에게도 무기가 필요했어.


우리가 생각한 무기는 망치보다는 문명화된 것이었어. 우린 숙주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필요는 없었어. 그냥 뇌의 통제장치만 차단하면 되었지. 우린 5층의 통신장치와 MP3 플레이어들을 결합해서 통제장치에 강한 펄스 신호를 보내는 기계를 만들었어. 겨냥이 가능해야 했고 방아쇠 메커니즘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 기계들은 내가 월마트 장난감 매장에서 사온 두 개의 ‘지구수비대 전자총’ 안에 들어갔어. 방아쇠를 당기면 불은 켜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윙윙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났지. 30대 초반의 멀쩡한 성인 여성들이 들고 다니기엔 무척이나 쑥스러운 무기였지만 해결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보다 세련된 비밀무기보다 성능이 특별히 떨어질 것도 없었어. 그것들도 결국 다 지구 기술로 만든 거잖아.


물론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탐사선이 어디에 있느냐’였어. 물론 탐사선은 계속 앤시블 신호를 송수신하고 있지만 즉시 통신인 앤시블 신호로는 위치 확인이 불가능해. 직접 구식 추적장치라도 달았으면 도움이 되었겠지만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나. 지난 몇 십만 년 동안 은하계엔 우주 전쟁이나 테러 따위는 없었어. 그런 걸 상상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고. 가장 빠른 우주선을 타고 가도 몇 백, 몇 천, 심지어는 몇 만 년이 걸리는 곳에 있는 행성을 무슨 이유로 공격해? 아무리 앤시블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그네들은 모두 물리적으로 남남이었다고. 그렇다고 상대방에 대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증오심을 품을 만큼 미개한 사회도 거의 없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바기-지랑이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을 때 조금 놀랐어. 그래서 난 거의 반사적으로 물었지. “왜요?”


“하나의 가설이었어요. 탐사선에 의해 발견된 제2기 행성은 공격에 굉장히 취약해요. 단 하나뿐인 앤시블은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훈련도 되지 않은 소수의 원주민들에 의해 관리되지요. 이론상으로는 적의가 있는 행성이 앤시블을 탈취해 대규모의 숙주 군대를 만들어 그 2기 행성을 정복할 수도 있어요. 만약에 그그그카탕보그무가 의심하시는 것처럼 조작된 행성이라면 그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연합 내에서 이런 신생 가입 행성에선 극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고 관리도 굉장히 허술하니까요. 마자랑에서 이런 음모를 벌인다면 앤시블에 접근하는 순간 탄로 나고 말겠지요.”


“하지만 왜요?”


“그거야 저도 아직은 모르죠.”


그리고 그건 지금 급한 일도 아니었어.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든 탐사선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었어. 차도 없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외계인이 지름 1미터가 넘는 금속공을 들고 어떻게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떻게’의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택시였어. 하지만 어디로?


우린 탐사선의 센서와 연락을 취했어. 우리가 확인한 건 종이 상자로 포장된 탐사선이 흔들리는 차 안에 있다는 것이었어. 가감속의 정보를 이용해서 상대적인 운동 속도와 방향을 추정할 수는 있었지만 위치를 알아내기엔 정보가 부족했어. 더 운이 없었던 건 충분한 정보가 쌓이기 전에 차가 움직임을 멈추었다는 거야. 우리가 센서를 읽는 동안 상자는 차에서 내려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상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떤 층에서 내렸어. 아마 4층인 것 같았는데, 그것도 확신하기 어려웠어. 분명 엘리베이터의 작동 소리와 같은 소리 정보에서 단서가 있었겠지만 아직 은하 연합의 지구 관련 데이터베이스는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을 쓸 단계까지 와 있지 않았어.


그 정도 차를 타고 갔다면 탐사선은 인천, 서울, 광명, 안양, 수원 어디로도 갔을 수 있었어. 하지만 가장 가능성 있는 건 ‘부천에 그냥 남아 있다’ 쪽이었지. 그 사기꾼이 어떤 계획을 세웠건 숙주들이 그 계획들의 일부였음이 분명해. 혼자서 그 엄청난 일을 해낼 수는 없으니까 당연히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 숙주들이야 서울이나 인천에도 있지만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부천이었지. 부천은 지구의 대문 도시였으니까.


왜 하필이면 부천이었냐고? 그건 애향심과 멸시가 반반씩 섞인 사장의 판단 때문이었어. 사장은 부천에서 태어나 부천에서 자란 사람이었어. 그리고 그 때문에 부천이 얼마나 무개성적이고 대체가능한 곳인지 알고 있었지. 만약 전우주적인 사고가 생겨 부천이 통째로 날아간다고 해도 인류가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거야. 사장의 애국심도 비슷했어. 자기가 태어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극도로 멸시했으면서 지구의 대표 언어로 한국어를 끼워 넣은 걸 보면 알 만하지.


하여간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해결방법은 단 하나였어. 숙주들을 관찰하는 것이었지. 지금 지구의 숙주들은 하나씩 주인을 잃고 남아있는 흐릿한 의식에 의지해 좀비처럼 방황하고 있는 중이었어. 만약 그 사기꾼이 숙주들을 통제하려 한다면 우린 그 행동 패턴의 변화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전에 먼저 앤시블의 보안장치가 풀린다면? 우린 그들이 그보다는 무능력하길 빌 뿐이었지.


긴장감이 풀렸어. 지금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연합에서 앤시블을 통해 지시를 내리는 걸 기다리는 것뿐이었으니까. 내가 모니터에 비친 아래층의 몰래 카메라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갑자기 바기-지랑이 물었어. “전에 둘이 사귀었나요?”


머리가 아찔하더라. 그때서야 나는 바기-지랑이 너의 모습을 하고 너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그리고 그 사람이 말하는 ‘둘’이 ‘너와 나’였다는 것도. 12년 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어.


내가 대답하지 않자 바기-지랑은 계속 말을 이었어. “내 숙주의 뇌 속에서 지금 깜빡거리는 것들은 모두 당신 기억들이에요. 10여 년 전에 헤어진 뒤로 처음 만난 거군요? 어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당신을 봤는데 당신은 알아차리지 못했고요. 머뭇거리다가 인사하려고 뛰어나갔지만 당신은 이미 사라진 뒤였네요. 그런데 운 좋게도 아이스크림 가게 아줌마가 당신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맨날 이상한 아저씨들을 가게에 끌고 오고 칠칠치 못하게 명함을 흘리고 다니니 당연하지. 한참 고민하던 이 사람은 마음을 굳게 먹고 오늘 아침 명함 주소로 찾아온 거였고요. 와, 둘 사이가 굉장했나 보네요. 어렸을 때 당신 모습이 모두 후광이라도 두른 것처럼 빛나요.”


“우린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이가 아니었어요. 둘 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푹 빠질 만한 성격도 아니었고요. 그냥 좀 가까웠고 말이 통하는 친구였을 뿐이죠. 친구라는 정의로 묶기엔 조금 더 가깝긴 했지만. 하긴 당시엔 별 선택의 여지도 없었어요.”


“그럼 일방적인 짝사랑이었구나. 이해해요. 당신은 예쁘거든. 인형처럼. 하지만 제 숙주는 그냥 평범한 편이에요. 김태희도 안 닮았고, 이나영도 안 닮았어요.”


“연예인들을 닮지 않은 수많은 한국 여자들처럼 그 애도 자기 외모를 늘 과소평가했지요.”


“아하!”


난 정말 내 과거사에 대해 외계인과 상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 다행히도 그때 협회 사무실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바기-지랑이 나 대신 전화를 받았지.


“저쪽에서 단서를 찾았어요.” 바기-지랑이 말했어.


“벌써 숙주들이 움직였어요?”


“아뇨, 더 좋은 단서예요. 왜 그 사기꾼들이 에이전트들의 시체에서 송수신장치를 뽑았는지, 왜 사장의 시체만 따로 발견되었는지 궁금해 한 적 없어요?”


무슨 소리인지 이제 알 것 같았어. 한국은 은하 연합과 지구인이 처음으로 조우한 곳이었어. 다시 말해 사장을 포함한 한국의 에이전트들 중 한 명은 첫 접촉을 한 사람이라는 거지. 일반적인 에이전트들은 보통 송수신장치만 이식받지만 최초 접촉자는 거의 사이보그 수준이지. 인간 육체의 메커니즘을 알아내기 위해 탐사선이 별 짓을 다 하니까. 물론 우린 사장이 최초 접촉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기꾼들까지 알았다는 법은 없어. 알았다고 해도 확실히 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사기꾼들은 모든 에이전트들의 뇌를 검사하고 사장이 최초 접촉자라는 걸 확인한 뒤 위층에서 이식된 기생장치들만 따로 빼내어 탐사선과 신호를 맞추어봤던 거지. 탐사선의 암호를 푸는 데 그것처럼 좋은 도구는 없었을 테니까. 사기꾼은 그걸 탐사선과 함께 들고 나갔고 그것의 신호를 협회에서 잡아낸 거야. 앤시블 위치는 감지해내기 불가능하지만 다른 기생장치는 사정이 달라. 탐사선을 제외한 다른 기기들은 다 뉴트리노 송수신장치를 이용하고 있지. 그게 효율적이거든. 신호가 지구를 뚫고 지나가니까 위성 따위가 불필요하고 신호가 오가는 것도 더 빠르지. 지구의 테크놀로지로는 그 신호를 감지해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은하 연합한테는 다른 수가 있었던 거야.


하여간 사장의 이식물은 삼정동에 있는 어떤 모텔에 있었어. 그렇다면 탐사선도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더 크지.



7.


그 다음에 일어난 일도 너에게 들려주긴 해야 하는데, 정말 창피해 죽겠어. 여기서 난 유익한 교훈 하나를 얻었지. 아무리 우주의 운명이 걸린 일이라고 해도 덤벼들기 전에 체면이 얼마나 구겨질지 계산해두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도 체면이 망가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망가지기 전에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지.


맨 처음엔 해결사들만 보내도 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앤시블을 쥐고 있는 악당을 상대하는데, 앤시블에 의해 조종되는 해결사들을 보내는 건 위험하지. 앤시블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자기 머리로 판단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어. 지금 상황에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협회의 정보는 정확했어. 우리가 삼정동의 달빛 모텔 402호에 뛰어들었을 때, 그 사기꾼은 방에 주저앉아 사장의 몸에서 꺼낸 이식물을 탐사선에 연결하려고 하는 중이었어. 나와 바기-지랑이 들어가자마자 그 남자는 비명을 질러대더군. 나는 들고 간 지구수비대 전자총을 그 사기꾼의 머리에 들이댔어. 그때 주저 말고 쐈어야 했는데. 남자는 그 순간 탐사선을 끌어안고 달아나기 시작했어.


아까 탐사선이 지름 1미터의 금속공이라고 말했지? 하지만 이건 결코 설명처럼 간단하지 않아. 내부는 꽉 차 있었기 때문에 무거웠지만 중앙에 박힌 중력 코일을 이용해 부양할 수 있었지. 지구의 중력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질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풍선처럼 가벼우면서도 얻어맞으면 대포알에 맞은 것처럼 뼈가 부러지는 그런 물건이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2005년 8월 26일 오후 3시 반경에 삼정동 달빛 모텔 앞을 지나가던 부천 시민들이 봤던 건 다음과 같은 광경이었어. 코가 빨갛고 피부가 엉망인 50대 중엽에 추리닝 차림의 아저씨가 반쯤 헬륨이 든 둥근 풍선 같은 걸 계속 앞으로 밀면서 달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 뒤에 멀쩡하게 생긴 두 젊은 여자들이 지구 방위대 전자총을 휘두르며 그 남자를 쫓고 있었단 말이야.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윙윙윙! 지구 방위대다! 항복하라!”라는 소리까지 났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 가끔가다 바기-지랑은 유창한 한국어로 “거기 서라!”를 외쳐댔는데, 옆에서 달리면서 제발 입 좀 닥치라고 말하고 싶더라고.


처음엔 우리가 유리해 보였어. 하지만 삼정 초등학교에 접어들자 슬슬 분위기가 달라졌어. 우리와 함께 뛰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난 거지. 뛰느라 얼굴을 구별하지는 못했지만 모두 50줄에 접어든 남자들이었고 몸을 죄지 않는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어. 결정적으로 그 사람들은 주머니와 손에 돌 같은 걸 들고 있었어. 숙주들이었어. 그 사기꾼이 숙주 통제에 성공한 게 분명했어……. 적어도 그렇게 보였어.


그 뒤로는 난장판이었어. 탐사선이 삼정 초등학교의 운동장 안으로 떨어지자 규칙 없는 미식축구가 벌어진 거지. 수많은 숙주들이 나랑 사기꾼은 무시하고 탐사선에 덤벼들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가? 탐사선은 계속 미꾸라지처럼 사람들의 손에서 미끄러져가며 마치 자신의 의지라도 있는 것처럼 사방으로 튀었어. 몇몇 숙주들은 탐사선을 잡는 걸 포기하고 다른 숙주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어. 이들은 사기꾼의 동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어. 그렇게 보기엔 단합력이 부족했지. 게다가 가이드 노릇을 몇 년 째 하다 보면 숙주의 몸을 뒤집어써도 이 외계인들의 원래 육체가 어떤지 대충 짐작하게 되는데, 이들은 결코 같은 종들이 아니었어. 캥거루처럼 방방 뛰며 탐사선에 손을 뻗는 빨강 추리닝 아저씨의 주인은 이족 도약족임이 분명하지. 반대로 고릴라처럼 허리를 숙이고 양 손을 최대한 지면에 가깝게 늘어뜨리고 걷는 대머리 아저씨는 사족 보행족일 가능성이 커.


그래, 내가 보고 있었던 건 단순한 구출작전이 아니었어. 그건 우주전쟁이었어. 수많은 외계 종족들이 삼정 초등학교의 운동장에 모여 우주의 운명 - 그것이 무엇이건 - 을 건 전쟁을 하고 있었던 거야. 흙투성이가 된 채 서로에게 돌을 집어던지고 다리를 물어뜯고 침을 뱉으면서.


나는 바기-지랑을 바라봤어. 그 사람 역시 얼이 빠져 있더군. 입을 반쯤 벌리고 혀를 굴리고 있었는데, 그건 내가 읽을 수 있는 마자랑 행성인들의 몇 안 되는 보디랭귀지 겸 욕 중 하나였어. 그 뜻은


“기가 막힌다, 이 바보들아!”였지.


하지만 언제까지 우두커니 서서 그 난장판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어. 오히려 이 난장판은 기회였어. 저 경기에서 가장 쉽게 이길 수 있는 건 역시 나였으니 말이지. 적어도 탐사선 빼앗기 게임에서 한 명의 상대보다는 수십 명의 상대가 나았어.


나는 지구수비대 전자총을 움켜쥐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어. 탐사선은 막 농구대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고 난 거기서 가장 가까웠어. 나는 달려가면서 숙주들에게 전자총을 쏴댔는데, 그 중 몇 발이 명중했어. 숙주 네 명이 쓰러졌고 그 뒤를 달리던 다른 숙주들은 거기에 걸려 넘어졌지. 여전히 다섯 명 정도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 정도면 감당할 수 있었어. 나는 전자총을 집어던지고 탐사선 위에 뛰어올랐어. 그건 내가 평생 해왔던 것들 중 가장 멋진 점프였어.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 탐사선은 내 무게에 끌려 그대로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어.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아래로 떨어지는 나와 함께 조금 땅 쪽으로 밀린 거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여전히 이전의 운동량을 유지하며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거야. 나는 내 발을 브레이크 삼아 탐사선의 진행 방향을 문 쪽으로 바꿀 수 있었어. <카트라이더>의 드리프트와 비슷했지. 온라인 게임에 시간을 낭비한 게 그처럼 도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문에 도착하자 나와 바기-지랑은 탐사선과 함께 뛰기 시작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 모퉁이에 가까워질 때마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 별 짓을 다해야 했고 그동안 속도도 줄 수밖에 없었어. 그때마다 숙주들은 점점 더 가까워져왔고. 그들은 가끔 돌도 던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기-지랑의 어깨에 맞았어. 다행히도 방학이라 주변엔 애들이 별로 없었어.


결국 우린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말았어. 탐사선을 따라 우리가 들어간 골목 양쪽을 숙주들이 막고 있었던 거지. 조지 로메로 영화가 따로 없었어. 바기-지랑은 계속 숙주들에게 총을 쏘아댔지만 총은 더 이상 먹히지 않았어. 아무래도 내가 전지가 닳은 걸 사 왔었나 봐. 진열장 맨 앞에 놓인 걸 집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땐 정말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신약에 나온 간통한 여자들처럼 골 빈 중년 남자들의 돌에 맞아 죽는 게 우리 운명인 것 같았지. 하지만 지구의 운명은? 우리가 죽고 앤시블을 빼앗기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추리닝 차림의 주정뱅이 아저씨들에게 정복당한 지구의 미래가 떠오르자 참을 수가 없더라. 물론 이치에 맞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논리나 이성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탐사선을 움켜쥐고 눈을 꼭 감고 있는데, 갑자기 핑 하는 소리가 났어. 그건 숙주가 떨어뜨린 돌이 탐사선에 맞아 튕겨나가는 소리였어. 알겠어? 던진 게 아니라 떨어진 거였어. 나는 한쪽 눈을 뜨고 어떻게 된 것인가 바라봤어. 내 앞에 서 있던 숙주들이 갑자기 머리를 움켜쥐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어. 몸부림치는 그들 뒤로 말로만 들었던 광경이 들어왔어. 자외선 가리개를 쓴 작달막한 중년 아줌마들이 작은 숄더백들을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었던 거야. 해결사들이었어.

1기나 2기의 외계 행성이 발견되면 은하 연합에서는 반드시 해결사들을 심어놔. 이들은 일반적인 숙주들과는 다른 채널로 연결되고 심지어 앤시블이 끊어진 뒤에도 잠시 동안이나마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보통 이들은 앤시블을 보호하거나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해.


아마 보통 사람들은 건장한 젊은 남자들이 이 임무를 맡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 근력의 차이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거든. 신경망만 재구성하면 사용하는 데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육체나 케이트 모스의 육체나 크게 다를 게 없지. 중요한 건 이식될 뇌의 성질과 그 뇌가 담고 있는 사고 구조야. 심사숙고 끝에 탐사선이 선택한 건 부천과 안양의 교회에 다니는 보험 아줌마들이었어. 일단 육체적으로 눈에 잘 뜨이지 않고 내구성이 강해. 정신적으로는 더욱 이상적이지. 빈약한 상상력, 철저한 가족 중심주의, 냉정한 현실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어떤 주장이라도 일단 믿으면 끝까지 가는 충성심.


나와 바기-지랑은 그때 엄청난 파워를 맨 눈으로 감상할 수 있었어. 해결사들은 영화 속의 액션 주인공들처럼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동작과 판단은 정확했고 냉정했지. 해결사들이 숄더백 안에 든 펄스 무기들을 휘둘러대는 동안 숙주들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우수수 쓰러져갔어. 마지막 숙주가 쓰러지고 탐사선이 안전한 걸 확인하자 해결사들은 올 때처럼 잽싸게 사방으로 흩어져버렸어.





8.


우리는 상처투성이 몸을 끌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어. 여행사 직원들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어. 여전히 그 사람들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어. 하긴 알아서 뭐하겠어. 꿈자리만 사나워지지.


우린 다음 날 아침까지 잠도 자지 않고 시스템을 복구했어. 손상은 엄청났어. 부천 거주 숙주들의 67퍼센트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뇌손상을 입었어. 그들 중 10퍼센트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게 분명했고. 협회 사무실에서는 가차 없이 그네들의 이식물을 폭파했어. 명복을. 하긴 처음부터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뒤의 일들은 더욱 피곤했어. 일단 우린 그 사기꾼이 살해한 사람들의 실종 사태를 해결해야 했어. 해외의 에이전트들의 도움을 받아 우린 그들이 모두 해외로 떠난 것처럼 처리했지. 심지어 그들 중 몇 명은 서류상 합법적인 이민까지 떠났지.


어떻게든 본부를 복구하는 것이 우선 순위였어. 일단 기본 업무를 위해 해외의 에이전트들을 데려왔는데, 국내 사정에 어둡고 한국어가 서툴러서 영 일이 되지 않더군. 차라리 한국어에 능통한 외계인들에게 일을 시키는 게 더 빨랐어. 바기-지랑의 경우는 일을 너무 잘해서 비상사태가 끝난 뒤에도 남겨두고 싶더라고.


그냥 외계인들을 쓸 수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일이 어려웠어. 모두들 내 사무실에 3기 문명 외계인들을 들이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한 거야. 슬슬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린 거지.


그게 무슨 일이냐고? 은하계를 오가는 수사 끝에, 사무실에 침입한 그 사기꾼들은 지구에서 1만2천 광년 떨어진 벨로 제국에서 온 것임이 밝혀졌어. 벨로인들은 굉장히 열성적인 우주 탐사자들로, 벨로 행성 주변으로 지름 60광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어. 그 제국은 몇 년 전 모두 제4기에 접어들었는데, 주변 식민지 하나가 조금 늦게 반응했던 모양이야. 그 짧은 기간 동안 그 주변 식민지의 누군가가 우리 사무실에 쳐들어온 것이지. 지금은 그 행성도 제4기에 접어들어 통신이 불가능했어. 우리의 우주에서 사라져버린 거야.


제4기 문명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사후세계 연구와 비슷해. 소문은 돌지만 믿을 수 없고 자료는 없어. 차라리 “제4기 따위는 없어! 걔들은 모두 죽은 거야!”라고 말하면 편하겠지만 그것도 아니거든. 전 우주의 문명이 모두 똑같은 점을 향해 수렴하고 있어. 제4기는 그 최종 목적지거나 그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길이겠지. 그 목적지엔 뭐가 있을까? 그 목적지 너머엔 뭐가 있을까? 과연 그게 좋긴 한 걸까? 모두가 궁금해할 수밖에 없지. 모든 3기 문명은 아무리 길어도 3천 년 이상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왜? 정신적인 고양이나 진화같이 고상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 오히려 더 가능한 가설은 제4기에 접어든 행성에서 이런 식의 연쇄반응을 촉발시키는 테크놀로지를 발견해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게 뭐지? 그게 뭔지 안다면 4기로 접어드는 걸 막을 수 있나? 4기에 접어드는 게 그렇게 좋은 거라면 왜 우리에게 그냥 안 알려주는 거지? 지구에서 일어났던 소동에 그렇게 많은 행성의 참견꾼들이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뛰어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거야. 그 사기꾼이 지구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이와 관련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지구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 앤시블만 통제한다면 연합의 방해 없이 뭔가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야만 행성이라는 게 더 중요하지. 지금으로서는 지구가 그런 조건에 맞는 유일한 행성이거든.


이건 이야기의 끝이 아니야. 오히려 시작이지. 윈스턴 처칠을 인용한다면 시작의 끝이겠지. 아직 음모꾼들은 어딘가에 남아 있고 그와 관련된 소문들도 돌고 있어. 제4기 문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지구라는 야만 행성에 있다는 것 말이야. 이제 학자들과 관광객들을 상대하던 때들은 지나갔어. 이제 우리가 맞아야 할 손님들은 군인들과 외교관들, 정치가들, 스파이들이야. 연합에서 아무리 통제한다고 해도 무력 사태와 스파이 행위를 막는 건 불가능해. 이제 부천은 공식적인 우주의 전쟁터가 되었어. 사장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지.


이제 너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해.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너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니까.


사무실에서 돌아온 후 우린 너의 뇌를 검사했어. 이식물이 상황이 나빠지는 걸 어느 정도 막긴 했지만 치명적인 뇌손상은 막을 수 없었어. 이대로 그냥 둔다면 네가 죽을 건 뻔했어.


해결 방법은 딱 하나였어. 바기-지랑은 너의 뇌를 스캔해서 그 모든 정보들을 마자랑 행성으로 보냈어. 그리고 그 스캔 자료를 바탕으로 너를 위한 가상 인공뇌와 신경망을 제작한 뒤 그 정보를 이식했어. 그게 과연 너인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어. 아니, 네가 10여 년 전 네 친구였던 그 사람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하겠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건 마자랑 행성에서 다시 태어난 너일 테니까.


너의 육체는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난 아직 너의 유전자의 샘플을 가지고 있어. 만약 소문대로 지구 에이전트들의 특권들이 늘어난다면 우린 외계 기술로 네 육체를 만들어 너의 정신을 다시 불러올 수 있어. 그게 귀찮다면 넌 숙주를 통해 다시 지구를 방문할 수도 있지.


네가 무얼 선택할지 난 알 수 없어. 내 의견을 듣고 싶어? 돌아오지 마. 적어도 당분간은. 난 너에게 좋은 육체를 마련해주지도 못해. 하지만 사정은 조금 더 나아질 거야. 난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며 행려병자들을 꼬시는 옛 사장의 방식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거야. 싱싱한 육체를 구하는 다른 방법들은 많아. 이미 뉴욕과 파리의 동료들이 실험하고 있지.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우린 1년 안에 성비가 맞고 더 젊고 건강한 숙주들을 보유하게 될 거야. 누구 말마따나 전 숙주의 섹스 워커화를 추구하는 거지. 아마 그때쯤이면 네가 원래 몸보다 더 마음에 들어 영구적으로 정착할 육체를 마련할 수도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생각은 우스꽝스러워. 난 네가 네 얼굴 아닌 다른 얼굴을 하고 그 기우뚱한 미소를 짓는 건 상상할 수 없어. 네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았던 네 얼굴과 육체는 언제나 내가 기억하는 너의 일부니까. 네가 김태희나 이나영의 얼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난 정말로 기분이 이상해질 거야. 그건 삼정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우주전만큼이나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워. 아니,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야. 난 그날 너를 알아보지도 못했잖아. 내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조금 더 눈치 빠르게 굴었다면 지금 넌 마자랑 행성에서 이 글을 읽고 있지도 않겠지. 10년 전에는 어땠던 거지? 그때 나는 어땠니? 넌 어땠었지? 우린 우리의 기억을 다시 정리할 기회도 갖지 못했어.


그럼 안녕. 바바슈그그그발발타르보구 티티티티몰크크툴! 이건 제4번 은하어의 제1음성어 변종어의 인사말이야. 어색하게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그대, 새로 돋은 날개로 날아가시길!”이라는 뜻이지. 더 이상 적절한 작별 인사가 있을까? 넌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도착한 최초의 지구인이야. 앞으로 너는 절대속도로 우주를 날아다니며 온갖 신비스러운 세계를 탐험하겠지. 내가 부천에 박혀 못생긴 알코올중독자 남자들을 관리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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