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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1. 네가 무나키샬레Munakeeshalle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왔을 때, 솔 직히 난 너를 알아보지 못했어. 일단 고객들을 상대하느라 바빴고,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12년 전이었으니까. 너도 그동안 많이 변했더군. 그래, 난 네가 그런 식으로 나이가 들 거라고 생각은 했어. 넌 12살 때부터 언제나 혼자서 세상과 맞서야 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너는 언제나 작은 어른이었어. 반대로 나는 그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지. 중간에 고생을 조금 하긴 했지만 난 지금까지 어른처럼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어. 가게 안에 들어온 순간 네가 내 얼굴을 알아봤다고 해서 이상하지는 않아.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무책임하고 사치스러운 부잣집 딸이지. 물론 돈을 대주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아마 넌 황당했을 거야. 네가 부천 홈플러스 근처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와 마주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그렇게까지 큰 곳이 아니니까. 하지만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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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1997년 한국에서만 가입자가 무려 1,500만 명을 웃돌 만큼 넘쳐났던 삐삐. 그 많던 삐삐는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3천만 명을 넘어선 요즘, 삐삐는 말 그대로 ‘골동품’이 되었다. 호출을 받자마자 공중전화로 달려가야 하고 그래서 이동 중엔 통화할 수도 없는 삐삐만으로 어떻게 생활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히 먼 옛날 얘기인 것만 같다.그러나 삐삐사용자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조사된 한국의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아직도 12만 명 정도가 삐삐를 쓰고 있으며, 의사나 군인처럼 직업상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을 빼더라도 순수 삐삐이용자가 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매달 1,000명 정도가 새로 삐삐를 찾고 있으며,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른바 ‘삐사모’ 회원수도 매달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받으라고 아우성치는 휴대전화 벨소리와는 달리, 통신료도 싸고, 스팸메일도 없으며, ‘호출’과 통화 사이의 여유를 즐길 수 있
홍성욱
2005년은 세계 물리학의 해이자 아인슈타인의 해이다. 1905년, 박사학위도 없던 무명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학위 논문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광전효과, 브라운운동, 특수상대성이론에 대한 세 편의 논문을 연달아 독일의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발표했다. 물리학자들과 과학사학자들은 이 세 편의 논문 각각이 노벨상 감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남들은 평생 노력해도 한 편을 쓰기 힘든 논문을 한 해에 세 편이나 발표했으니, 아인슈타인의 1905년을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 베른의 특허국에서 근무하던 아인슈타인이라는 청년은 어떻게 이렇게 폭발적인 창의성을 드러냈던 것일까? 창의성을 설명하는 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중 하나는 “한 우물을 파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섞어야 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한 우물을 파라”는 담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했지만, 최근에 퓨전과 잡종성이 주목을 받으면서
박경미
외국인에게 들은 농담 한 가지. 한 기자가 인도인과 방글라데시인과 싱가포르인에게 소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What's your opinion about eating beef?).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은 ‘소’는 알아도 ‘소고기’는 모르기에 소고기의 뜻이 뭐냐고(What is beef?) 반문했다. 기아에 시달리는 방글라데시인은 도대체 먹는 것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다(What is eating?). 마지막으로 싱가포르인이 물었다. 의견이 무슨 뜻이지요?(What is an opinion?) 싱가포르는 다방면의 적절한 정책 운용을 통해 성공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왔지만 국민을 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로 인해 싱가포르에서는 개인적인 ‘의견’을 가져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을 풍자한 것이다. 만약 동일한 질문을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던진다면 싱가포르와 비슷한 대답을 얻지 않을까? 동물원 그림 에피소드 아이를 여섯 살 때까지 미국에서 키우다 한국에 돌아온 친구가 들려준 이
이수종
대개 사람들은 욕심이 끝이 없어서 한 가지를 채우고 나면 또 그보다 더 많이 무엇인가 채우고자 달려들게 마련이다. 한편으론 이런 욕심이 긍정적인 동기를 유발해 창조적 활동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지나치거나 삐딱한 마음을 가질 때 독선적이며 편파적인 관념에 빠지는 독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예는 과학계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눈에 띄지 않아 기대하지도 않았던 한 무명학자 - 예를 들자면 이름 없는 국가의 이름 없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름 없는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이후 이름 없는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 - 가 갑자기 놀랄 만한 연구결과로 전 세계 학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을 때를 생각해보자. 기존 학계의 한 부류는 그 학자의 학맥, 인맥 혹은 현재 소속기관 등에는 관심두지 않고 다만 새로운 연구결과에 자극받아 후속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반면, 또 다른 부류는 그 학자가 그동안 학계에서 눈에 띄지 않았던 무명이었던 점에 집착하여 의심스런 눈초리로 빈정
이우일
로버트 러플린
<크로스로드>는 전 세계 사람들이 현대 과학의 지적 콘텐츠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창간 목적이 있다. 이는 신문이나 광고 매체와 결합된 기존의 과학 출판과는 다르다. 과학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문학을 얘기하듯 친근하며 잔잔한 여운을 주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크로스로드>는 독자가 읽고 난 한참 후에도 기억 속에 남아 무언가 깊은 울림을 주며 그 글이 씌어진 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신선함을 던져주는, 또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예전을 떠올리며 말을 걸기도 하는 그런 글들을 싣고자 한다. 가령 누군가가 어떤 과학자에 대해서 말할 경우 듣는 사람은 그 말하는 사람이 때로는 짓궂더라도 얼마나 풍부하고 박식하고 매력적이고 사려 깊은가에 따라서 그만의 과학자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스로드>는 문학적인 일면을 갖추었다고도 볼 수 있다. <크로스로드>는 다분히 과학기술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결국 그 내용은 휴머니즘
김제완
1960년 8월 나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만 달러가 넘고 수도 서울은 어느 국제도시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운 호텔들이 즐비하게 서 있지만, 1960년의 한국은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오늘의 롯데호텔 자리에는 당시 반도호텔이 세워져 있었다. 그때에는 초호판이라고 여겨졌겠지만 지금 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호텔이었다. 또한 여의도에 있던 공항이 지금의 김포공항 국내청사로 막 옮겨졌을 때였다. 나는 프로펠러가 달린 노스웨스트 항공기 편으로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에 도착했다. 한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홀리데이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그리 좋은 호텔도 아니었을 텐데, 여하튼 그때에는 호텔의 으리으리한 불빛 때문에 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였다. 더욱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때문에 신경은 더 곤두섰고 가까스로 카운터에서 방 열쇠를 받아 객실에 들어섰을 때는 팽팽했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었다. 거의 스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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