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로도스의 첩자 1

2007년 1월 통권 16호

읽기 전에

 

단편 <로도스의 첩자>는 시오노 나나미 씨가 기술한 역사기록 <로도스 섬 공방전>에서 기본적인 영감을 얻었다. 따라서 본 작품에는 역사적인 실존 인물들과 가공인물이 뒤섞여 나오며 극적인 플롯은 전적으로 필자가 지어낸 허구지만 역사적 배경은 실제이다. <로도스 섬 공방전>은 본 작품을 현실감 있게 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즐거운 영감을 북돋아주신 시오노 나나미 씨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1. 에드가 후버

 

"카데토cadetto에 관한 오늘 논문발표는 정말로 실증적이더군요."

 

브라운 박사가 적포도주가 반쯤 담긴 와인잔에서 내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저녁 광선이 심포지엄이 끝난 뒤 만찬장에 모인 학자들의 아직 채 풀어지지 않은 긴장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마치 중세 봉건 유럽에서 나서 자란 사람이 직접 발표한 것 같잖아요, 글쎄."

 

나와 같은 학과를 맡고 있는 쥬디스 메릴 교수가 한 술 더 거들었다.

 

"하지만 논문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건 질색이에요."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반동적인 목소리를 찾아나섰다.

 

"말이 좋아 학자지 창과 방패도 없이 탐험에 나선 돈키호테와 뭐가 달라요?"

 

나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밀어 그 반동분자의 손을 지그시 감싸 쥐었다. 알코올 때문일까?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맥박이 느껴졌다.

 

"부인, <실례로 본 카데토 계층의 사회 생존양식> 같은 논문을 쓰려면 직접 그들과 만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론이 어디 있겠습니까?"

 

브라운 박사가 점잖게 내 아내를 달랬다. 학계에서 그는 나의 잠재적인 경쟁자나 다름없었지만, 내 위신을 세워줄 정도의 재치는 지닌 사람이었다.

 

"맞아요, 봉건제로 유지되던 중세 유럽에서 카데토, 다시 말해서 귀족의 장남이 아닌 아들들은 아버지의 지위와 재산을 몽땅 물려받는 맏형과는 천양지차죠. 성인이 되면 그들은 귀족에서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건달로 전락하게 되니까 말예요.

 

그들은 허울만 귀족이지 졸지에 가난뱅이가 되어버린 꼴이나 진배없잖아요. 성직자나 군인이 되는 길만이 그나마 유일한 대안이었죠. 졸지에 혈통 빼고는 농노와 다를 바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귀족 젊은이들, 이들의 스트레스와 분노는 당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안타깝게도 귀족들은 체질상 위선적이고 허영심이 많아 그러한 속내를 기록으로 그리 많이 남겨 놓지를 않았답니다. 직접 만나 물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들의 처지와 심리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이랍니다. 부군이신 아론 이슈마엘 교수는 역사학계에 무척 귀중한 공헌을 하신 거예요. 자랑스럽게 여기셔야지요."

 

메릴 교수가 이번에도 브라운 교수의 말을 장황하게 거들었다.

 

"당신 남편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메릴 교수님? 당신도 역사 복원학을 전공하셨으면서 단 한번도 과거로 직접 탐사를 떠나지 않으신 걸로 아는데요. 사실 타임머신을 코앞에 갖다 주어도 선뜻 과거로 떠나는 학자들은 열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걸요. 왜 제 남편만 별동대처럼 역사학이 풀지 못한 고르기우스의 매듭을 풀러 다녀야 하나요?"

 

그럼 그렇지. 쥬디스 메릴의 어쭙잖은 설교가 아내에게 먹혀들 리 있겠어? 무심한 척, 나는 내 술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래, 하긴 오늘 주제발표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지. 사실 그 논문의 골격을 떠받칠 실례들을 꼼꼼하게 수집하느라 내 목이 열개도 더 필요했으니까.

 

"물론 역사 복원학의 기본은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과거 현장을 직접 찾아가 구체적인 사료들을 수집하고 이것을 기존 역사학과 접목시켜 연구하는 거예요. 하지만 전공했다고 다 과거로 떠난다면 과거의 시간대란 시간대는 온통 역사학자들로 북적거릴 걸요. 연방정부도 아무리 학술적인 연구라지만 그 정도까지 배려해줄 수는 없지요. 이유가 무엇이든 과거를 드나드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침해당할 확률도 높아지니까요. 과거의 역사를 직접 찾아나서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절… 지칭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역사 복원학에는 사료수집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기존 역사학과 짜 맞추는 역할도 아울러 중요한 거라고요, 이슈마엘 부인."

 

참, 쥬디스는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역사학과 대학원생이던 걸 모르겠군. 그 때 내 바로 옆에 앉은 킴벌리 교수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보고 무마하란 뜻이다. 허참, 어쩌겠나? 나한테 마저 못한 화풀이를 자네들한테 하는 건데. 내가 뭐 화풀이할 시간이나 제대로 줬어야 말이지.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킴벌리에게 씨익 웃어보였을 뿐이다.

 

"역사 복원학은 학문으로 정립된 지 불과 오십여 년 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답니다. 우리는 죽은 역사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역사를 캐내게 된 거죠. 역사학의 혁명이나 진배없어요!"

 

저런 저런, 쥬디스는 흥분한 나머지 역사 복원학자의 마누라에게 역사 복원학을 떠들어 대고 있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에요! 만약 이슬람교가 유럽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요? 분서갱유를 저지른 진시황과 인종개량을 주창한 나치 그리고 역사왜곡을 밥 먹듯이 한 일본 제국주의는 또 어떤가요? 만약 이들이 승리했다면 역사는 훨씬 다르게 씌어졌을 테죠.

 

결국 객관적인 역사를 바로 세우기에는 인류 역사에 빈칸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역사복원학이 그 빈칸을 채우기 시작한 겁니다. 학자로서 이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쥬디스의 어조는 열정적이다 못해 마치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 같다. 내가 아내 앞에서 가장 조심하는 태도가 바로 저런 식인데….

 

쥬디스의 말이 맞기야 맞다. 역사란 늘 그 시대와 지역을 지배한 민족에 의해 일방적으로 씌어졌으니까. 가장 전형적인 예로 <성경>이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 민족이 아직 부족국가의 기틀도 마련하지 못하던 시절 부근 지역에 살던 페니키아인들은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된 문화를 누린 선진민족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눈에는 '블레셋'이란 야만인으로만 비쳤을 뿐이다. 아테네 사람들처럼 해외통상으로 먹고 살다보니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이어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들을 자연스럽게 함께 수용한 페니키아인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숭배라는 꼬투리만 침소봉대하여 일거에 진정한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야만인'들로 격하시켜버렸다.

 

언제나 역사는 승리자의 전유물이었다. 패한 쪽은 변명할 기회조차 변변히 주어지지 않으며, 역적, 죄인, 패륜아, 폭군 따위의 오명을 있는 대로 뒤집어쓴다. 이러한 예는 동양에서도 낯설지 않다. 중국 하나라의 걸(傑) 임금이나 은나라의 주(紂) 임금은 세상이 혀를 내두르는 악당이자 폭군으로 전해 내려온다. 만약 반대로 그들이 승리자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기록했을까? 당 태종 이세민은 왕위 계승 경쟁자들인 친 형과 동생을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버지를 협박해 황제의 자리에 오른 패륜아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를 성군으로 추앙하고 있지 않는가.

 

한때 동북아시아의 강국이었던 고구려의 다섯 번째 임금이 된 모본왕(慕本王: 재위기간 A.D. 48~53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그는 대무신 왕의 아들로 품성이 대단히 흉폭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는 중국의 북방 요충지인 요동지방을 유린함으로서 대내외적으로 국가의 강성함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기상이변으로 굶어죽는 백성들을 구제한 임금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모본왕은 6대 태조왕을 옹립한 무리들의 쿠데타에 의해 죽음을 당한 뒤 폭군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이다. 모본왕은 비류나 부족 출신으로 해(解)씨였고 태조왕은 이후 고구려가 망할 때까지 왕조를 이어간 계루 부족 출신으로 고(高)씨였다. 모본왕에게는 자신의 혈육으로 익(翊)이란 이름의 태자가 있었다. 만약 모본왕이 폭군이어서 몰아내야만 했다면 왕권의 정통성을 감안할 때 당연히 익이 왕위를 물려받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본왕이 살해되고 난 뒤, 익은 왕의 자격이 없다면서 성씨도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겨우 일곱 살에 불과한 궁(宮; 태조왕)이 즉위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결국 모본왕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들은 고주몽 계통의 계루부 사람들이 정변을 일으켜 왕실을 교체하면서 새로 지어낸 소설이나 진배없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권력다툼을 어느 한편의 시각으로만 보기에는 곤란하다는 데에 역사 해석의 아이러니가 있다. 사실 그 뿌리를 따져가면 고구려의 초대 임금은 고씨 성을 가진 계루부 사람 고주몽이었다. 하지만 정변을 통해 해씨 성을 가진 비류나부 사람 유리왕이 주몽을 지방 총독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랐으며, 후세 고구려인들은 성이 분명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부자연스런 권력승계를 왕조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부자간의 자연스런 왕위계승으로 미화시켜놓았다. 그러니 두 부족 간의 권력투쟁을 배경으로 한 일방적인 홍보전은 피장파장인 셈이었다.

 

이러한 권력투쟁 못지않게 전란이나 천재지변으로 인류사에 귀중한 문헌들이 하루아침에 소실되는 재난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언제고 탐사 과제의 하나로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Museion 을 고려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세이온은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명령으로 알렉산드리아 시에 건립된 일종의 박물관 겸 도서관이자 연구소로서 당대의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여 연구에 열중했다고 한다. 불타기 전까지 소장되어 있던 책의 수가 적어도 50만 권이 넘었다하니, 세계의 독서 인구가 오늘날의 몇 만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을 시대에 이 같은 방대한 규모의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런 저런 현실을 고려하면 역사학자들의 손에 정확한 사료가 과연 얼마나 들어올 수 있을까? 따라서 역사 복원학은 불충분한 사료를 직접 학자의 과거 현장 방문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완해준다는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치가 있다.

 

하긴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역사의 인과율을 신봉하는 학문이 타임머신에 의지해 연구하는 날이 오다니. 하긴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달이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얼마나 뒤바꾸어 놓았는가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것도 없지.

 

아내의 불평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저도 한때는 이이가 로도스 섬의 전장을 누비고 다닌 끝에 얻어온 성과물에 경도되었던 역사학도랍니다. 그 때의 모습에 반해 결혼해버렸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이는 해도해도 너무해요. 완전히 중세유럽에 미쳤다고요. 지난 팔년 간 이이가 과거로 몇 번을 떠났는지 아세요? 그것도 주로 십자군 전쟁, 백년 전쟁, 장미 전쟁… 전쟁터만 단골로 돌아다녔다고요. 두 아이의 아버지라면… 이젠 다른 방식으로도 연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

 

아내의 맥박이 아까보다 더 빨라진 것 같다. 지금 그녀의 눈빛은 내가 백년전쟁에 참전한 기사계급을 연구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을 때의 망설이던 어두운 눈빛 그대로다. 불과 3일 만에 나는 아내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의 기준 시간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일 뿐, 나는 실제로는 그 전쟁터에서 1년이 넘도록 버티면서 연구를 했다. 다만 내가 현재 시대로 돌아오는 시간좌표를 아내와 작별한지 3일 후로 맞춰 놓았을 따름이다. 그래도 그 3일 간이 아내에게는 내가 연구하며 보낸 1년보다 길었으리라. 게다가 이런 편법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아내보다 훨씬 더 빨리 늙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긴 학문하는 사람에게 주위 사람들의 눈이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자기보다 눈에 띄게 빨리 노화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아내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으리라.

 

만찬이 열리고 있는 호텔의 베란다는 산 너머로 미끌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쓰는 태양의 은퇴식을 보기에는 이상적인 자리였다. 문득 살육전이 끝난 뒤 살아남은 자들이 로도스 섬의 성벽에서 전송하던 석양이 떠올랐다. '내일도 저 해거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당시 모두의 머리 속에는 아마 그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만찬장을 거닐며 담소하는 사람들 사이로 아직도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쥬디스와 아내의 모습이 멀찌감치 보였다. 브라운 박사는 어디로 갔을까?

 

내가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아내는 화가 나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역사복원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누구나 과거를 드나드는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찾아갈 시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준비, 튼튼한 체력, 탐험가로서의 오랜 경험, 신중한 상황 판단과 처세 능력 등 학자라는 자격만으로는 부족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함께 요구된다. 게다가 역사를 왜곡시키지 않기 위해서 최악의 경우에는 자살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아내 말대로 나 같은 현장파는 역사복원학자들 가운데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렇지만 아내가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부담이 된다. 그녀는 때로는 아이들보다도 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 물론 나에 대한 소유욕이 아이들보다 강한 탓이겠지만.

 

"아, 이스마엘 교수님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작달막한 키에 눈매가 선해 보이는 사내, 문화자원부의 사무관 존 글렌이다. 오늘 주제발표를 준비하는데도 이 친구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오늘 심포지엄은 교수님 덕분에 분위기가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찬을 말씀을… 그런데…."

 

나는 의례적인 답례를 하면서 글렌의 머리 위에 보이는 또 하나의 머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인사하시죠. 그렇지 않아도 이 분 때문에 교수님을 찾았습니다. 한번 뵙고 싶다고 해서요. 이분은 역사 관련 에세이를 쓰시는 자유기고가 에드가 후버 씨입니다. 후버 씨,"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목례했다. 후버라 소개된 이는 눈매가 날카로운 중년사내였다. 역사 칼럼니스트라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실은 후버 씨가 이번에 월간 <역사탐구>의 청탁을 받아 지중해 연안의 중세 유적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물을 쓰게 되었는데, 로도스 섬 유적 연구의 권위자이신 이스마엘 교수님의 자문을 얻고 싶다는군요."

 

"<역사탐구>라면 학술지가 아니로군요."

 

내가 약간 마땅치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대중들에게 역사에 대한 지식을 계몽하는 대중잡지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전문성과 품격은 갖춰야 글이 설득력을 갖는 법이라…."

 

관리가 나서서 변명을 해주는 사이 그 중년 사내의 입술은 한 일자 그 자체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글렌은 이 자에게 한풀 꺾여 보였다. 나로서는 후버라는 인물의 인상이 왠지 께름칙했지만 글렌의 소개를 물리치기도 껄끄러웠다. 글렌은 연방정부와 나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줄이니까.

 

"로도스 유적 발굴 건은 학회에 발표한지가 이미 팔년이 넘었는데, 뭘 더 알고 싶으신 겁니까?"

 

"이 책 기억하시죠?"

 

대답 대신 후버는 대뜸 내게 얇은 책 한권을 내밀며 질문을 던졌다.

 

"<로도스 섬의 마지막 십자군>이라… 안토니오 델 카레토가 쓴 거군요."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나는 그 책의 표지를 쓰다듬었다.

 

"이 책을 제노바 수도원에서 찾아낸 사람이 바로 교수님이죠?"

 

"그렇소만…."

 

"안토니오 델 카레토는 1522년 지금의 터키 남단에 있는 로도스 섬에서 술레이만 1세가 거느린 10만의 오스만 투르크군에 맞서 성이 함락될 때까지 사수했던 성 요한 기사단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뭔가 내게서 다짐받고자 하는 말투다.

 

"네, 안토니오도 500명의 기사 가운데 한명이었습니다만…."

 

나는 은근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리적인 방어자세를 취했다.

 

"이 책에는 공방전의 시작에서부터 투르크군의 인해전술에 마침내 기사단이 항복하고 섬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안토니오의 눈을 통해 담겨 있습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이 기록이 부상한 오른쪽 다리 때문에 기사단을 떠난 안토니오가 제노바의 수도원에 들어갔을 무렵 집필되었을 거라고 추정하셨죠?"

 

"에, 그 책이 발견된 곳은 제노바 부근 수도원의 오래된 서고였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그의 고개가 거무스름한 하늘로 젖혀지는가 싶더니 다시 내 눈에 내리 꽂혔다.

 

"이 책의 원본이 어디 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야 물론 이탈리아 고문서 박물관에 있을 거요. 내가 거기에 기증했던 걸로 기억하니까."

 

"이것 말이죠."

 

그가 가방에서 책 한 권을 또 하나 꺼내 들었는데, 그것은 누릇누릇한 얼룩이 지고 끝이 닳아빠진 낡은 책이었다.

 

"그걸 어떻게…?"

 

존이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후버를 쳐다보았다.

 

"그 정도의 힘은 있지요. 허허, 오해는 마십쇼. 물론 정식으로 기사취재를 위해 허락받고 빌린 거니까. 나중에 온전히 반납할 겁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교수님도 알고 계시겠지요?"

 

마치 내가 재판정의 피고가 된 느낌이군. 이 친구의 말투 하나하나가 내 얼굴 표정을 읽어내려 달라붙는 거머리 같았다. 글렌만 아니었다면 애당초 말 상대도 하지 않았을 작자다.

 

"후버 씨, 아니 당신은 이스마엘 교수의 연구결과를 불신한다는 말이오?"

 

사람 좋은 글렌이 예기치 않은 분위기에 불편해하는 심기를 드러냈다.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날 만나자고 한 걸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교수님의 연구 자체가 그릇된 토대 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들었다는 얘깁니다."

 

"무슨 뜻이오? 72쪽으로 된 안토니오 델 카레토의 이 필사본 수기는 그 당시 로도스 섬 공방전에 참여했던 다른 이들이 남긴 기록이나 역사학자들의 문헌과도 일치하고 있소. 그리고 내가 직접…."

 

"안토니오를 만나셨다 이거죠? 물론 당시 축성 기술자로 로도스 섬에 초빙되었던 마르티넨고와 요한 기사단의 또다른 일원이었던 장 파리소 드 라 발레트, 잠바티스타 오르시니 같은 인물들도 만나셨을 테고요."

 

후버는 내 말을 끊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담은 책 자체에 있습니다."

 

잠시 나와 글렌은 이 오만한 역사평론가 앞에서 말문을 잃었다.

 

"책 자체…???"

 

"그렇습니다. 그 기록이 담긴 종이와 잉크에서 수상한 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하시오, 후버 씨."

 

나는 짐짓 평정을 가장하기 위해 조금 전에 베란다로 들고 나온 와인 잔을 찾았지만 갑자기 눈에 보이질 않았다. 어디다 두었을까?

 

"잠깐, 흥분하지 마십시오.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주제넘지만 교수님 앞에서 역사적인 진실을 몇 가지 짚어보고 가도록 하지요."

 

후버는 베란다에 놓인 장식이 거의 없는 흰색 테이블에 앉더니 나와 글렌에게 옆자리에 앉으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 자와 굳이 긴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있을까? 그러나 얄궂게도 글렌은 머뭇머뭇하면서도 슬그머니 그의 옆에 앉았다.

 

"안토니오가 살았던 16세기 유럽이나 지금이나 제지기술은 그 작업과정이 얼마나 더 기계화되어 있느냐가 다를 뿐 기초처리과정 자체는 별반 다를 바 없죠. 유럽 최초의 제지공장이 프랑스에 들어선 게 1189년이고…."

 

"에로 지방이었죠."

 

마지못해 나도 앉으며 덧붙였다.

 

"에, 그럴 겁니다, 교수님. 게다가 1276년에는 이탈리아에도 제지공장이 세워졌으니 그보다 삼백년 뒤의 사람인 안토니오가 모국에서 로도스 섬으로 파견되면서 종이를 가져오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죠."

 

"당신은 안토니오가 그 공방전의 기록을 이탈리아에 돌아와서 남긴 것이 아니라 그 전투의 현장이었던 로도스 섬에서 작성했다고 보는 모양인데, 그건 뭐 아무래도 좋소. 당신 말대로 안토니오가 그 기록을 써두었다가 패전 후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제노바의 그 수도원에 맡겼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오. 14세기 말 쯤 되면 독일에서 목판 인쇄용지를 이탈리아에서 수입할 정도로 안토니오의 모국에서 종이사정은 풍족했소. 필사본의 경우에는 수도사들이 주로 필경사 노릇을 했고.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안토니오가 종교 기사단의 기사였다는 사실과 맞아 떨어지지. 그는 기사인 동시에 수도사였기 때문에 성경이나 기타 관심사를 손으로 써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오."

 

이 자는 대체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교수님…."

 

후버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는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한 야릇한 표정이었다.

 

"교수님은 당시 유럽에서는 무엇을 종이원료로 썼는지도 아시겠지요?"

 

"주로 '목화'와 '아마'라오. 현대로 들어오면서 가문비나무나 활엽수 같은 목재펄프로 주 원료가 바뀌었지만."

 

"그럼 안토니오의 책은 종이 성분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글렌이 그 낡은 책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문지르며 한발 앞선 질문을 던졌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답니다."

 

"무슨 소리요?"

 

궁금해진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되물었다.

 

"먼저 이 책자의 보존 상태를 한번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총 72쪽 가운데 대부분은 비록 오랜 세월 속에서 색이 바래고 지질이 손상되었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보관 상태가 양호합니다. 하지만 뒷부분의 13쪽은 종이가 너덜너덜하다 못해 손을 대면 푸석거리면서 가루처럼 부서지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재료가 서로 달라선가요?"

 

글렌이 퍼즐을 푸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바로 그겁니다. 이 소책자의 지면 대부분은 목화에서 추출한 섬유질과 조각 천을 섞어서 만든 종이입니다. 당시로서는 고급지에 속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맨 뒤의 13쪽만은…."

 

후버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말끝을 사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글렌과 나는 침을 삼키며 그의 말이 맺어지기를 기다렸다.

 

"마닐라삼에서 추출한 것입니다."

 

"마닐라삼?"

 

16세기의 유럽 상인들이 종이원료를 구하기 위해 필리핀 해역까지 진출했다는 얘긴가? 제지기술이 서기 105년에 중국에서 발명된 이래 8세기 무렵 중앙아시아와 아랍지역을 통해 육로로 유럽까지 전파되기는 했지만 주위 환경이 다른데 재료까지 똑같이 쓸 수는 없었다. 더구나 당시의 중국과 중앙아시아 및 중동 근방에서조차 마닐라삼이 종이원료로 쓰인 적은 없다. 마닐라삼이 본격적으로 펄프원료가 된 것은 비교적 현대로 들어와서의 일이다.

 

"만약 이 책이 정말 안토니오가 쓴 것이라면, 그는 마닐라삼으로 만든 종이를 대체 어디서 구한 것일까요? 아직 바스코다가마나 마젤란이 지중해 해안을 벗어나기도 전의 시대에 말입니다."

 

글렌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체 내가 무슨 표정을 지어보일 수 있을까?

 

"더구나 이 마닐라삼 재료는 그 성분을 정밀분석해보니까 아황산를 써서 표백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화와 조각 천을 원료로 만든 페이지는 바래기만 했을 뿐 지금도 거의 멀쩡한데 뒤의 일부 페이지들은 이처럼 상대적으로 많이 훼손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16세기에 화학약품을 통한 표백이 가능이나 했을까요?"

 

"그럼 이 책의 뒷부분은 혹시 현대에 와서 누군가가바스코다가마."

 

이렇게 말하며 속 좋은 글렌도 이번에는 약간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저 시선이라니.

 

"당신은 내가 학자의 양심을 내팽개치고 역사문헌을 일부 조작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요?"

 

나는 테이블을 뒤엎을 듯이 노기등등하게 외쳤다.

 

"진정하십쇼, 교수님. 당신이 이 문헌을 학계에 공개한 것은 불과 팔년 전입니다. 현대의 종이는 아무리 화학처리가 많이 된다 해도 그 기간 동안 종이가 이렇게까지 낡아버리지는 않습니다. 문제의 13페이지는 얼핏 보아도 몇 십 년은 족히 되어 보입니다. 이스마엘 교수, 당신은 이제 겨우 삼십대 중반을 넘어섰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당신이 문헌 조작을 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이 친구 나를 철저히 놀리고 있군. 하지만 일단 이런 식으로 나오니 나도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볼 도리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무장해제당한 듯한 나와 글렌 앞에 후버는 득의양양한 논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저도 문제의 13페이지가 당신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악의적인 조작을 한 것이 아닐까 의심을 품었습니다. 아울러 이 책 전체의 필체가 똑같다는 것도 수수께끼였습니다. 한 두 문장도 아니고 13페이지를 앞의 필체와 똑같이 흉내내 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문제의 그 페이지들은 어쩌면 조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 아예 내 혼을 빼려고 작정을 하고 왔군. 나는 짜증스런 얼굴로 글렌에게 내 의사를 표명했다. 글렌도 미처 후버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는 몰랐다는 제스처를 내게 해보였다.

 

"제 가까운 친구 중에 소립자 물리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이 책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죠.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조사해본 결과 뒤의 13페이지는 앞의 페이지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550년가량 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이 책은 안토니오가 전부 다 쓴 것은 분명하군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지?"

 

글렌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후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유는 뜻밖에도 간단합니다. 이스마엘 교수, 당신은 왜 안토니오 델 카레토에게 현대에서 가지고 간 종이를 주었습니까? 시간여행에서 착시물(그 시대에 속하지 않는 물건)을 찾아간 시대에 남겨두거나 그곳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행위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중대한 월권을 한 겁니다. 당신의 사소한 행위가 우리의 오늘을 위험에 빠뜨려 놓을 수 있습니다."

 

이 친구는 프리랜서 칼럼니스트가 아닌 게 분명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내가… 휴대용 컴퓨터라도 가져갔다가 들키면 어떻게 되었겠소?"

 

"저는 기록용으로 종이를 가져간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이를 왜 안토니오에게 주었습니까?"

 

"그건…."

 

나는 이마에 오른 손을 가져갔다. 어느새 내 머리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시간여행자는 떠나기 전에 철저한 보안 및 안전교육을 받습니다. 당신도 예외는 아니었죠. 더구나 당신은 시간여행에 초행길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교수님이 선선히 종이를 안토니오에게 내주었을 리는 없고…."

 

이젠 글렌마저 후버의 말에 넘어가는 듯한 낌새다.

 

"아론!"

 

다급한 메릴의 목소리에 나는 반쯤 나갔던 정신이 되돌아왔다. 어느새 메릴이 내 어깨를 잡아 흔들고 있었다.

 

"부인에게 가봐요. 너무 과음했어요. 내가 말렸는데도…."

 

나는 글렌에게 가볍게 목례하며 일어났다. 아울러 후버를 향해서도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탐정나리, 추리소설치곤 재미있었소."

 

"또 만나게 될 겁니다."

 

후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곯아떨어진 아내를 안전벨트로 묶어놓은 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간간이 들리는 그녀의 흐느낌마저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날이 곤두서 있었다. 후버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게서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일까? 단순한 탐정이나 흥신소 직원이라면 그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내게 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렇다면….

 

2. 이마 허드서커

 

"질문 있습니다, 교수님"

 

엄지손톱에 얇게 코팅한 내 시계가 이미 수업시간이 끝난 지 삼분이 넘었음을 일러주었다. 이렇게 작은 시계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대화 도중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시간을 훔쳐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나는 동료 학생들을 짜증나게 만들 수도 있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 눈치 없는 학생이 누군가 주위를 살폈다. 곧 생머리가 길고 탐스러운 한 여학생의 눈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검푸르고 큼지막한 눈이 도전적으로 불타올라 보였다.

 

"강의시간 내내 교수님은 역사복원학이 역사학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측면만을 반복 강조하시더군요. 하지만 역사학에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테크놀로지가 개입하는 바람에 오히려 진짜 역사가 뒤집어질 위험성도 아울러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자네는 전공이 뭔가?"

 

역사복원학은 그 자체가 희귀 학문이다 보니 세계 어느 대학에서나 교양과목으로 개설된 곳이 없다. 고작해야 4학년 졸업반의 전공선택 과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더구나 나처럼 진짜 역사복원학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가 강의를 맡는 대학은 이 대학을 비롯해서 세계에서 대여섯 군데뿐이다. 그나마 내가 매번 이 과목의 강의를 맡는 것이 아니라 쥬디스 메릴 교수의 부탁으로 가끔 특강 형식을 빌려 강단에 서는 것이 전부이다. 어디까지나 연구 전담교수로서 나의 주된 책무, 즉 과거의 시공간을 몸소 헤매고 다니면서 다른 학자들이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가치 있는 사료들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일이 최우선이니까 말이다. 그런 내게 역사학 초보자들이 늘 던지는 첫마디는 이 여학생과 같은 우려 섞인 논조다.

 

"역사학을 부전공하고 있는 종교학과 3학년 이마 허드서커입니다."

 

내 책상의 출석 데이터 체크 버튼을 눌렀다. 이 녀석은 이 강의에 몇 번 들어오지도 않았군. 막연히 역사학의 테크놀러지화에 반감을 품고 있는 이상주의자인 게야. 그렇다면 오늘 내가 이 강의를 맡는다는 것을 알고 들어온 것이 분명해. 그래서 이처럼 식상하고 뻔한 질문을 위해 때를 기다려온 거야.

 

"역사복원학은 단순히 역사학 테두리 안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특히 연구 과정상의 사소한 실수가 중대한 종교 문제로 비화한 사례를 보더라도…."

 

"하하하, 나는 담배를 피지 않소, 허드서커 양."

 

"예?"

 

내 말에 수업이 제 때 끝나지 않아 심드렁해하던 다른 학생들도 일제히 눈가에 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마 양은 슈미트 박사가 과거에 두고 온 라이터 사건을 꼬집고 싶은 거잖소?"

 

"네, 슈미트 박사의 책임 소재를 두고 벌써 4년째 재판을 질질 끌고 있죠."

 

일명 '슈미트 사건' 또는 '라이터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최근 몇 년 간 역사복원학의 가치논란과 맞물려 모든 역사학도들의 첨예한 관심사였다. 그것을 비전공자가, 아니 부전공자가 물고 늘어진 것이다.

 

"하지만 슈미트 박사가 차라투스트라에게 그것을 넘겨준 건 고의가 아니었소."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해서 라이터를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에게 들켰는지도 아시겠네요."

 

"재판기록을 보면 그때 그는 자기 방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지…."

 

"재판기록까지 찾아 보셨습니까?"

 

그녀 옆의 남학생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제 이 질문은 강의실을 메운 삼십여 명의 관심을 한데 모아가고 있었다. 따분한 오후의 강의가 막상 끝나고 나서야 학문의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다니. 원래 강의용 교수 타입과는 거리가 먼 나지만, 이렇게 되니 나 역시 약간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아, 나 역시 시간여행자이자 역사학자 아닌가. 슈미트의 처지를 먼 산 바라보듯 할 수야 있었겠나."

 

앞줄에 앉은 역사학과 학생들 십여 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마 허드서커가 고삐를 늦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B.C. 6세기에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도구가 사람들 눈에 띄었으니 불을 숭배하는 신도들이 가만 있었을 리 없죠. 더구나 당시 박사는 이교도로 의심받아 난처한 지경에 있었고요. 박사가 기꺼이, 아니 이 표현은 정정하죠, 살기 위해 그들에게는 신물(神物)이나 다름없는 라이터를 넘겨주는 바람에 박사는 졸지에 신의 계시를 받은 자로 둔갑하고 말았어요.

 

결과적으로 박사는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다하고 우리 시대로 돌아올 수가 있었죠. 변호사와 학계는 이러한 상황논리를 빌어 박사의 실수를 감싸고 있습니다. 슈미트 박사가 라이터를 놓고 오는 대가로 얻어온 생생하고 귀중한 자료들을 보라는 거예요. 하지만 이유가 어찌되었건 간에 착시물(해당 시간대에 속하지 않는 물건; 지은이 주)이 될 위험성이 높은 소지품을 멋대로 휴대한 채 천칠백 년 전을 방문한 것은 명백히 시간여행 안전규칙을 위반한 체제위협 행위입니다."

 

이 녀석 말투가 점점 시간 안전국 관리들을 닮아가는군. 나는 업의 속성상 시간 안전국 사람들과 자주 부대끼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뭔가 의심하는 듯한 기분 나쁜 태도가 늘 비위에 거슬렸다. 그들은 나같은 학자들이 연구한답시고 행여 뜻하지 않은 사고를 치지 않을까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하긴 슈미트 박사와 나는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들리는 말로는 엄청난 골초였다고 하더군."

 

나는 짐짓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사실 나와 무슨 상관이람? 슈미트가 나 같은 시간여행 전문 역사학자였다는 점만 뺀다면 내가 그에게 무슨 흥미를 갖겠는가. 이토록 슈미트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나의 대답을 들으려는 까닭이 대체 뭘까?

 

"오늘날 조로아스터교를 보세요, 교수님.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와 함께 세계를 아우르는 유력한 종교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란 지방에서 태동해서 페르시아 왕조 때 국교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조로아스터교는 이슬람교가 강성해지면서 힘을 잃게되죠. 그 후 8~10세기 사이에 일어난 종교 박해 탓에 개종을 거부하는 소수만 남고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슈미트 박사가 뒤집어놓은 현실의 역사를. 조로아스터교는 오늘날에도 근동지방과 아프리카에서 유력한 종교의 하나로 군림하고 있잖아요."

 

"이마 양의 종교는 뭔가?"

 

"교수님, 제 논지를 흩뜨리지 마세요. 제 개인적인 종교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짜 역사에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조로아스터 교도는 개종을 피해 인도의 봄베이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이란에 남아있던 소수(일명 '파르세') 밖에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신물(神物)이 이란 지방의 지배계급을 완전히 홀려버린 겁니다.

 

엄지손가락 하나만 살짝 부벼대면 허공에서 갑자기 불을 토해내는 신의 영물! 이건 기독교의 성궤보다도 더 한 겁니다. 아시겠어요? 성궤는 이제는 전설과 신화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렸지만 이 라이터는 고이고이 오늘날까지 모셔 내려오고 있단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신을 외친 마호메트가 아후라 마즈다의 성스러운 불과 과연 얼마나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을까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차라투스트라가 이 라이터를 자신의 분신이자 아후라 마즈다의 성화(聖火)라고 그들의 경전 <아베스타>에 새겨놓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잘 아시다시피 원래의 <아베스타>에는 그런 구절이 전혀 없어야 하죠. 이 모든 게 다 슈미트 박사의 학자로서의 양식을 저버린 이기적인 행동 덕분입니다. 시간안전국에서 진짜 역사를 수시로 백업 받아두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이러한 변화를 알아채지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이마 양은 그래서 슈미트 박사의 재판을 여론 재판으로 몰고갔다고 생각하는 게로군?"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현대인들에게 시간여행의 무책임한 행동에 따른 재난이 무엇인지를 일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간 안전국이 백업해둔 진짜 역사야말로 이제는 있을 수 있었던 역사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시간 안전국이라 해도 이미 바뀐 역사를 또다시 섣불리 뜯어고칠 엄두를 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이마 허드서커 바로 옆에 앉은 건장한 체구의 남학생이 말을 받았다. 그 학생이 끼어든 의도는 분명치 않았지만 교실의 열기는 문을 나서고 싶어 좀이 쑤신 일부 학생들의 한탄을 덮어버렸다.

 

"그 공개재판은 뜻하지 않게 결과적으로 수억이 넘는 조로아스터 교도들의 분노를 사고 말았죠. 재판소 앞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요. 조로아스터교를 더 이상 모독하지 말고 시간 안전국을 폐쇄하라고 성토하면서 말예요. 이 얼마나 웃기지도 않는 일입니까? "

 

이마 허드서커가 말하고 싶은 결론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종교인들로선 당연한 선택이겠지. 좋아요. 나와 삼십여 명의 학생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면서 이런 지리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뭐지? 종교학과 학생."

 

나는 어조는 차분했지만 다소 위압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과거의 시간보다는 현재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교수님. 학문탐구를 위해 현실을 뒤흔드는 일이 과연 현명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내게 별로 놀랍지 않은 승부수를 던졌다. 순진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어리석은 질문… 하지만 이 질문은 이 자리에 함께 앉아있는 다른 역사학도들의 인생관을 좌우할 수도 있다. 역사학과 학생들은 모두 내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표정들이었다.

 

"그럼… 내, 한 가지 물어보지. 과거 없이 현재가 가능할 수 있을까?"

 

이마 허드서커는 예상대로 얼굴을 곧추세운 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찜찜했다. 그녀는 어제 심포지엄에서 만난 불청객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불길한 인상을 주었다. 어제 만난 녀석은 아무래도 시간 안전국 냄새가 났지만 그녀는 좀 달랐다. 시간 안전국은 시간여행을 통한 역사연구 자체는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 역사복원학이야말로 시간 안전국의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오히려 내가 하는 연구의 정확성과 정밀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나는 이마 허드서커의 검은 홍채가 뿜어내는 적의를 거침없이 들여마셨다.

 

"이마 양, 자네는 역사학을 부전공하고 있다 했지… 그렇다면 역사를, 인류의 역사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지?"

 

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역사학도라 해서 반드시 나와 같은 신념을 갖고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이 논쟁을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논문이나 고문서를 뒤져서, 유적을 뒤져서… 그뿐인가?"

 

이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자네가 종교학을 전공하고 있다지. 만일 자네가 개인적으로 신봉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에 관해 자네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야…."

 

나는 그녀가 말하기 전에 말머리를 잘라버렸다.

 

"종교는 지식이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겠지. 나로서도 종교의 그러한 측면을 굳이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네.

 

하지만 만약, 만약 말일세.

 

자네가 예수나 부처를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해도 그 기회를 포기하겠나?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그 분들의 가르침이 과연 한 치의 왜곡이나 어긋남 없이 곧이곧대로 전해진 것일까? 그것을 확인해보고 싶지 않나? 오늘날에도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현신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왕왕 나오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몰려들지 않는가? 이것은 자네가 부인하건 안하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적 역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싶어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것은 신성모독입니다."

 

강한 어조로 말을 꺼낸 이는 뜻밖에도 이마가 아니었다. 그녀 뒷자리에 앉아있는 머리결을 푸르게 염색한 또 다른 여학생이었다. 이제 감이 잡혔다. 이마는 개인적인 질문을 하려온 것이 아니라 의견을 피력하고 나아가서는 내게 경고하러 온 것이다. 이마는 한 일자로 입은 다문 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좋아, 그럼 종교 문제는 이 정도에서 그만하지. 어차피 '라이터 사건' 이후로 5대 종교의 발상지로 역사복원학 탐사여행을 떠나는 것이 금지되었으니까."

 

"역사복원학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과거로 가서 소실된 사료를 구해오는 일 따위가 아닙니다."

 

불쑥 나와 이마의 논쟁에 끼어든 이 새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남학생이었다.

 

"역사복원학의 참다운 의미는 바로 제국주의적인 역사해석의 여지를 원천봉쇄해준다는 데에 있잖습니까?"

 

그는 뒤통수에 이마 패거리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했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솔직히 역사복원학이 아니라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학자로서의 소신 없이는 제대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노릇 아닌가. 나는 줄곧 이마를 의식하던 시선을 그 남학생 쪽으로 돌리면서 말을 이어 받았다.

 

"물론 지금도 제국주의적인 연구 환경으로부터 역사학이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지. 일례로 역사복원학을 연구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국가 자체가 전세계에서 몇 개국 되지 않으니까. 타임머신을 이용해서 근현대사를 연구한다면 이것은 역사의 공정한 재발굴보다는 국가와 민족 간의 불필요한 대립과 전쟁의 불씨를 만들어내겠지."

 

"그래서 세계 연방 의회는 타임머신이 가서는 안 되는 불가침 시공간 영역을 지정했습니다. 그 규약에 따르면, 어떤 타임머신도 현재로부터 오백년 이내의 시간대에는 일체 근접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 기간에 해당하는 역사복원학 논문은 발표할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죠.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학자들의 불법적인 연구 의욕의 싹을 아예 잘라버린 셈입니다."

 

앞줄에 앉은 남학생이 또다시 거들어주었다.

 

"맞네. 역사복원학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 그 정도의 안전장치는 있어야겠다고 일반인들은 물론 학자들까지 동의한 거지.

 

우리 한번 곰곰히 생각해봅시다.

 

과거의 역사학은 제국주의적인 연구조건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물론 지금도 그러한 조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지. 하지만 역사 복원학 덕분에 역사의 수수께끼나 잃어버린 과거가 생생하게 복원되는 바람에 우리는 인류의 과거를 좀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네. 나치스의 게르만 민족주의 같은 어리석음은 인류의 과거를 들여다볼수록 더욱 분명해지지. 전쟁도 마찬가지네. 인류사의 수많았던 전쟁을 승리자의 기록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균형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줌으로서 우리는 인종, 국가,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감쌀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실수하지 않는 개인이 없듯이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민족은 없는 법이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똑같은 바보짓을 다시 저지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야.

 

인류복원학은 우리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온갖 분규의 온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현명하냐에 따라 인류를 화합으로 이끌고 서로를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축복받은 학문이 될 수도 있네. 역사복원학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아.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

 

"교수님은 인간의 균형 잡힌 자기절제력이 보편적인 기질이라고 보십니까?"

 

오랜만에 이마가 되받아쳤다.

 

"인간의 이성을 믿냐고? 그 질문에는 이러한 예로 답하겠네. 과거에 원자폭탄이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과연 인류가 그것을 제대로 제어할 이성을 갖추고 있는지 불안해하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은 어떤가? 만약 원자폭탄의 노하우를 이용한 원자력의 발전이 없었던들 명왕성까지 갈 수 있는 효율적인 우주선 엔진을 만드는 일이 가능했을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제 지구는 자급자족하기에는 너무 경제규모가 커져 버렸네. 태양계 행성들 여기저기서 보내오는 물자와 자원 없이는 지금과 같은 풍족한 생활은 유지하기 곤란하지.

 

내 이야기는 이제 간단해졌네. 우리가 원자력을 포기하고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예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는 편리한 기술을 과감히 집어던지고 동굴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역사학도 마찬가지라고 보네. 인류가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쓸모 있는 테크놀로지를 발견하고도 그 위력에 압도되어 뒷걸음치는 것만이 능사일까? 역사가 말해주고 있듯이 이미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 테크놀로지를 아예 본 적도 없는 것처럼 방치해둘 수 있을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문제는 역사복원학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네. 역사복원학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원자력은 물론이고 어떤 신기술도 우리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네.

 

나는… 인간을 믿네. 그게 역사학을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제 학생들은 완전히 패가 갈라졌다. 앞줄에서 열심히 역사복원학의 가치를 지지해주는 학생 하나, 이마 허드서커의 패거리,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점 따는 것과는 관련이 없어 침묵을 지키는 대다수 학생들, 뒷좌석에서 엉덩이가 근질거려 안절부절하는 학생들, 그 새를 못 참고 누군가와 팔찌시계에 달린 전화기로 통화하는 학생 등…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할 때다. 이 이상 얘기해보았자 동어반복이 될 터였다. 뒷좌석 어딘가에서 한 학생이 박수를 쳤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박수는 전염이 되어 온 교실을 휩쓸었다. 학생들은 호소하고 있었다. 제발 좀 끝내달라고. 그 와중에 이마 주변에 몰려 앉은 학생 몇 명의 로봇 같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문득 물 위에 뜬 기름 같다는 비유가 떠올랐다. 하지만 자기패와는 달리 이마만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내 의견에 동조하는 웃음이 아닐 테지만.

 

"끝으로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네, 이마 양."

 

박수가 잦아들자 내가 말했다.

 

"앞으로는 긴 설명을 듣고 싶을 때는 내 연구실로 찾아오지 않겠나? 나 역시 학생 시절에는 자네처럼 눈치 없는 친구를 못마땅해 했거든."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학생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미소를 머금고 강의실을 나섰다. 교정에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는 밤나무의 꽃향기가 너무 짙어 약간 메슥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 맡는 냄새에 오늘따라 민감한 것은 누군가 내 연구실의 서류들을 헤집어 놓았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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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