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사관과 늑대2

2006년 9월 통권 12호


"예, 그렇습니다, 반장님. 2년 사관입니다."

인성이 감광판을 보며 묻자 군견병은 형편없는 발음으로 대답했다. 인성은 무의식 중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근무 중이긴 하지만, 면담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대답하게. 군견 부대원과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군. 나는 아직 군견 내무반밖에 가보질 못해서 말이야."

인성은 '내무반'이란 말을 집어넣으며 군견병 눈치를 슬쩍 살폈다. 하지만 수진이라는 그 병사는 표정에 별 변화가 없었다. (어쩌면 인성이 눈치 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모를까 동물 표정을 읽는 데는 별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애견이 아니라 크러스였다. 사나움 말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내가 알기로 군견병은 사병과 똑같은 위치에 있다고 들었네. 사관이라고 불리지만, 실제 사관은 아니라고. 맞는가? 자네를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확실히 해두자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대답해 주게나."

"예, 맞습니다, 반장님. 그리고 군견병은 근무한 연도로 계급을 매깁니다. 그래서 이병이나 일병이 아니라 1년 사관, 2년 사관 등으로 나눕니다."

인성이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지) 수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엉터리 같은 발음만큼이나 어조도 한결 같았다. 하긴 저 기다란 주둥이로 사람처럼 말을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조가 실제로는 풍부한데도 인성 귀에만 그렇게 들릴 가능성도 따져야 했다. 알맹이가 어떻든 껍데기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 귀와 크러스 귀는 다를 테니까 그 차이를 염두에 둬야 했다. 신임 소위는 도무지 상대를 종잡을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군견병이 다른 세계에 살든 그렇지 않든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이질감을 풀풀 풍겼다.

인성은 겉모습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말자고 애를 쓰며 다른 질문거리를 찾았다.

"그래, 근무 중에 불편한 건 없나? 군견병이라면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들어서 임무를 수행할 텐데, 날씨가 추워서 헛갈리거나 하진 않나?"

"괜찮습니다, 반장님. 군견은 털가죽이 두꺼워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수진은 서툰 발음이나마 조리 있게 설명했다. 인성은 계속해서 질문을 퍼부었다.

"흠, 그런가. 그러면 근무하는데 평소와는 다른 점이 없나? 혹시 여건이 안 맞아 같이 근무하기에 불편한 사람은 없나? 경비당번을 바꾸었으면 하는 부대원은 없나?"

수진은 즉시 대답을 않고 날카로운 특유의 눈으로 쳐다보더니 시커먼 입술을 움직였다.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반장님. 근무에 최선을 다할 따름입니다."

군견병은 간단히 대답했지만, 소위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전준비를 어느 정도 했으니 면담을 한 소득도 있어야 했다.

"자네는 근무에 불편함이 없다고 했는데,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야. 알다시피 난 이곳에 5일 전에 부임해서 부대 사정에 밝지 않다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어줄 테니 해보게나. 오늘 면담은 반드시 차후에 반영할 테니."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수진은 기다란 주둥이를 꾹 다문 채 대답할 생각을 안했다. 인성이 다시 덧붙였다.

"자, 보게나. 난 경비대를 이끌어야 하는 장교야. 자네는 내가 얼마나 큰 부담을 졌는지 모를 걸세. 장교라는 게 얼마나 울화가 치미는 직책인지 짐작하나? 수많은 경비병들이 날 바라보는 건 정말이지 어깨뼈가 부서질 정도로 무거운 짐이라네. 따라서 난 되도록이면 사병 하나하나까지 세세히 알아야 할 의무가 있어. 그게 괴팍하다고 대대 내에 소문이 자자한 군견병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그러니 군견 부대를 대표하는 셈치고 말해보게나."

수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혹은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내 용기를 내는 것 같았다. (정말로 용기를 낸 지도 몰랐다.) 2년 사관은 다시 한 번 검은 입술을 움직였다.

"무슨 말씀을 들으셨는지 몰라도 저희는 아무런 불만이나 문제가 없습니다, 반장님."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인성은 모자를 톡톡 두드리며 되도록 친근하게 보이도록 말했다.

"정말 그런가? 뭐, 좋아. 한꺼번에 전부 말하기는 어렵겠지. 하나씩 해결해보세. 오늘은 한 가지만 말해주면 좋겠네. 난 걸핏하면 군견병이 동물이냐 사람이냐 따진다는 말을 들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네. 어차피 자네 몸은 자네 소유가 아니지 않나? 그러니 이런 논쟁이 대관절 무슨 소용인가? 자네가 크러스 몸을 그렇게 아낄 필요가 있나? 어차피 나중에 제대하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텐데. 어디를 가든 붙어 다니니 크러스에게 정이 든 건가? 불만이 없다는 소리는 그만하고 솔직하게 털어놓게나. 부탁이네."

수진은 장교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듣자 몹시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2년 사관은 입을 우물거리더니 목소리를 점점 크게 키웠다.

"말씀 드려도 받아들이지 못하실 겁니다, 반장님. 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군견 부대원을 이해시키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난 최대한 마음을 열고서 듣겠네. 설명해보게나."

수진은 한숨을 쉬더니 (인성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상관 요청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반장님. 반장님께서는 방금 크러스 몸은 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비록 다른 동물의 몸이기는 하나 의식을 옮긴 이상 저는 크러스입니다. 군견병이 곧 군견이라는 뜻입니다."

"군견병이 곧 군견이라는 건 나도 아네. 자네들이 크러스의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당연한 소리 아닌가."

"아니, 이건 단지 조종한다는 간단한 뜻이 아닙니다. 저희는 크러스의 몸으로 의식을 옮겼습니다. 동물을 일일이 훈련할 필요가 없도록 아예 군견병이 군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닙니다. 반장님께선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세계를 보는 느낌이 어떤지 아십니까?"

인성은 잠깐 고민했으나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보면 그저 다르게 느껴질 테니까. 그게 전부 아닌가. 그래서 이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대충 짐작이 가긴 하네. 크러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사뭇 다를 것 같군."

하지만 수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인성이 보기에 그건 너무 인간다운 행동이어서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반장님께선 이해 못하십니다. 왜냐하면 이건 애초에 이해할 필요가 없는, 이해를 떠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의식을 옮긴 다음에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심지어 걸음마부터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한 평생 두 발로 걸었기에 네 발로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견병 중 상당수는 의식을 옮기고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네 발로 기어 다닙니다. 처음부터 정신과 육체가 뚝 떨어져 있기에 가상공간에서 훈련하는 것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가령, 꼬리라는 낯선 신체 부위가 생긴 게 얼마나 어색한지 모르실 겁니다. 전기를 쿡쿡 찔러대며 자극한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진은 줄무늬 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잠깐 말을 멈추었다. 생각할 여유를 주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인성은 무얼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군견병은 이내 꼬리 흔드는 걸 멈추더니 설명을 이었다.

"하물며 신체부위도 이런데 외부를 바라보는 시점이 달라지면 그게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전 제가 군견으로서 눈을 떴을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무의식 속에서 적응 훈련을 받긴 했지만,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눈을 깜빡여도 이전 세상이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하는 수없이 전 코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니, 배운 게 아니라 그냥 적응했습니다. 애초에 감각이란 걸 배울 수는 없는 법이니 말입니다. 군견병들은 흔히 '후각이 시각화된다'는 말을 합니다.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익숙한 외부 정보가 들어와 알 수 없는 형체로 바뀌는 겁니다. 그 광경을 느끼실 수 있습니까?"

인성은 차에 기댄 자세를 좀 바꾸더니 볼을 긁적였다.

"대충, 대충은 상상이 가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반장님께선 자신이 그걸 상상한다고 착각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배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장님께선 열을 감지하실 수 있습니까?"

"아니, 할 수 없다네. 난 강화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다른 기기를 이용할 수 있지. 열을 감지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그러는 건가?"

"기기를 통해서 열을 감지하는 것과 처음부터 열을 감지하도록 되어 있는 건 다릅니다. 전자는 열 감지로 실제 세상에 어떻게 부딪힐지 도저히 인지할 수 없을 겁니다. 반장님을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적외선이란 게 무언지 배워야만 사물을 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으로 인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후자는 열 감지가 무언지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법을 배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보고 그걸 받아들입니다. 누군가 홍채가 이렇고 조리개가 저렇다는 걸 설명해서가 아닙니다."

인성은 까다로운 설명에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니, 그래서.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뭔가? 내가 크러스 시점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러는 건가?"

"예,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그건 크러스를 만나기 전 저희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바로 의식을 옮기면 동물의 몸에 적응하지 못해 큰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아니, 혼란에 빠진다는 표현은 너무 미약합니다. 그런 상황에선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갑니다. 육체라고 하는 물리 상태 역시 주변 환경이 영향을 끼쳐 끊임없이 바뀐 결과입니다. 그리고 정신은 언제나 육체를 따르는 법입니다. 따라서 물리 상태가 바뀌면 정신상태와 사고방식까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헌데 맨 정신으로, 그러니까 인간의 사고방식을 간직한 채 의식을 옮기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건 전혀 낯선 환경, 낯선 세계로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의식을 옮기기 전에 군견병과 크러스는 관계를 맺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맺은 인간과 크러스는 하나 된 생명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을 공유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군견병이 크러스의 몸을 움직일 때 보다 쉽게 적응하도록 다리를 놓는 것에 가깝습니다."

(C) 조경아  

수진은 말하다 말고 잠시 턱을 움직였다. 크러스의 입으로 한참 설명하자니 통증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수진은 턱을 움직인 다음 말을 계속했다.

"설명을 멈춰서 죄송합니다, 반장님. 저는 말을 길게 하는 데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괜찮네. 내가 보기에도 그 길쭉한 입으로 말하기는 꽤 불편할 것 같으니. 그런데 말이야, 어, 자네는 군견병이 일반인과 다른 사고를 하는 것처럼 설명했네. 그러면 일상생활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뜻인가? 예를 들자면, 음, 혹시 농담 같은 것도 하나?"

장교는 어설프게 손을 휘저으며 물었다. 2년 사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군견병도 일반인과 같은 시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반장님. 군부대에 속한 이상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그러자면 고립된 사고를 피해야 합니다. 저희 역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알게 모르게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농담을 하는 건 단순히 웃거나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군의관이 진단하고 내린 처방입니다. 살기 위해서,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될 겁니다. 절 둘러싼 세계는 인간과 전혀 다릅니다. 아까 정신은 물리 상태와 주변 환경을 따른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니 이런 유치한 방법이라도 동원하지 않는다면 어찌 인간다움을 유지하겠습니까? 잡담을 그만 두는 순간 저는 죽게 될 겁니다."

"죽는다고? 그깟 농담 좀 안 했기로서니 숨이 끊어진다는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반장님. 인간 흉내를 내든 말든 전 여전히 숨을 쉴 겁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건 단지 먹고 숨쉬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저 자신을 잃어버린 다음 살아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전 이미 변했습니다. 하지만 더 변하는 건 싫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십니까. 그걸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자넨 간단한 걸 너무 복잡하게 받아들이는군, 군견병. 다른 몸을 조종한다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그러는 건가? 나도 가상공간에서 다른 존재가 되어본 적이 있다네. 당황하긴 했지만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어. 자네들만 육체와 정신이 연결되느니 하는 경험을 한 게 아니란 걸세. 알아듣겠나?"

수진은 상대가 장교라는 걸 잊고 답답하다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무슨 말을 듣고 계신 겁니까? 기껏 정신 상태나 조작하는 것과 육체가 바뀌는 걸 비교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타고난 감각은 배우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감각이 뒤바뀌면 어떻게 될지 짐작이 안 가십니까. 살아가는 기반이 흔들릴 거란 생각이 안 드십니까."

신임 소위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꼬집었다. 아무리 면담이 중요하다고 해도 더 이상 이런 헛소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결론이 뭔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잡고 빙빙 도는 건가? 크러스를 감싸는 이유나 대답해 보게."

"저희는 단순히 늑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껏 말씀드렸듯이 크러스 자체가 되어서 숨쉬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늑대를 변호하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저희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수진은 그렇게 말하고 설명을 끝마쳤다. 그러자 인성은 몇 분 동안이나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턱밑을 긁적이며 물었다.

"좋아,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그렇다고 치세. 그러면 뭘 원하는 건가? 동물이랑 그렇게 가까우니까 정말로 동물 취급을 해주었으면 좋겠나? 모든 경비대원들이 그렇게 대접을 해주면 복무에 만족하겠나?"

수진은 기이한 눈빛으로 인성을 쳐다보았다. (인성으로서는 기이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까 보았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군견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반장님. 저희가 동물이라면 굳이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일도 없을 겁니다. 아니, 동물은 아예 그런 시도조차 못 합니다."

"그래? 그러면 대안은 하나로군. 난 군견병을 동물 취급한다고 들었네. 머무는 곳도 내무반이 아니라 군견 우리로 불린다면서. 이제부터 관행을 바꾸겠네. 외모로 차별하지 말고 사람 대접을 해주라고 지시하겠네. 자네들은 여전히 인간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수진은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인간이 아닙니다, 반장님. 몸이 바뀐 이상 예전 그대로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저희가 인간이라면 무엇 때문에 인간성을 유지하려 애쓰겠습니까? 본성은 타고나는 것이며, 역시 물리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인성이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일 차례였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면 어쩌자는 건가? 자네 위치를 생각하게, 군견병. 자넨 사병이야. 지금 장교를 놀릴 생각인가? 내가 마음을 연다고 했지만, 장난을 받아줄 생각은 없네. 내가 면담하는 건 자네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가 아냐. 어디까지나 군견병이 다른 경비대원과 어울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네. 그 점을 명심하게."

수진은 (역시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님께 장난을 치려는 건 아닙니다. 또 다른 해결책을 말씀드리려는 것뿐입니다."

"또 다른 해결책?"

인성이 반문하자 수진은 눈에 빛을 띠고 (분명히 빛을 띠었다) 이야기했다.

"그렇습니다, 반장님. 저희는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물도 아닙니다. 저희는 무언가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니 군견병을 그렇게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군견병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길이고, 저희가 원하는 겁니다. 왜 저희가 인간이나 동물이라는 오해를 받아야 합니까? 누군가 반장님을 무언가 다른 존재로 대한다면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저희가 바라는 건 실상 너무나도 간단한 겁니다. 어려운 논의를 거칠 필요조차 없는 겁니다. 지성을 가진 생명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그리고 당연히 가져야 할 욕구를 해결해주는 겁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바람이 더 있지만, 시작은 여기서부터입니다. 군견병을 군견병으로 인정하는 그때부터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다른 존재라……."

인성은 간신히 입 밖으로 내뱉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제대로 생각을 이을 수가 없었다. 수진이 말한 다른 존재가 도저히 와 닿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군견병은 털가죽을 뒤집어쓴 사람이요, 말하는 동물이었다. 거기까지였다. 거창하게 이러니저러니 설명을 붙일 만한 구석이 없었다.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전부 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오직 군견병들만 그걸 모르는 상태였다. 그들만 착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셈이었다. 자신들이 마치 대단한 생물이라도 된 것 마냥, 자기 연민에 취해 비틀거리는 꼴이었다.

문득, 인성은 이게 지시사항 몇 가지로 해결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소위는 뭐라고 할말이 없어 입술을 깨물며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

"자네가 오늘 한 이야기를 신중하게 고려해보겠네. 오늘 면담은 여기까지 하지. 수고했어. 계속 탐지에 힘써 주게나."

"알겠습니다, 반장님. 계속 근무하겠습니다."

수진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인사했다. 인성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을까 기대했다. 허나 잿빛 줄무늬로 이루어진 벽만 버티고 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차문을 여는데, 질문 하나가 막 떠올랐다. 인성은 문을 그대로 연 채 수진에게 물었다.

"참,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자네는 암컷, 아니, 여군인가? 수진이라는 이름은 대부분 여성들이 쓰지 않는가. 신분조회를 하면 알게 되겠지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걸세."

"반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대롭니다. 전 여군입니다. 물론 이 크러스의 몸도 암컷입니다. 의식을 옮길 때는 성별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랬군. 난 자네를 처음 보는 순간 수컷, 아니, 남성으로 생각했다네."

인성은 차체를 두드리며 말했다.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그나마 좀 어울렸다.)

"하긴 제가 남성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사나운 동물을 봤을 때 무조건 수컷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절 남자로 착각하신 겁니다."

"자네 말이 맞아, 수진 사관. 솔직히 사나운 동물이면 다 수컷으로 보이게 마련이지."

인성이 대답하자 수진이 가까이 오며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증거를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젖꼭지는 방탄복에 가려져 안 보일 테니 성기를 보시면 됩니다."

"원 참, 부끄럽지도 않은가? 자네는 아직 처녀일 텐데, 대놓고 그런 말을 하나?"

"상관없습니다, 반장님. 저는 군견병입니다. 애당초 젖꼭지나 성기를 드러내는 게 부끄러웠다면 몸을 완전히 가렸을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수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처녀다운 수줍음이나 속살을 감추고픈 마음은 전혀 엿볼 수 없었다. 이 말에 소위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입으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인성은 뭐라고 우물거리며 재빨리 차에 타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비대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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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