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싹, 찰싹, 찰싹. 아기는 울지 않았다.
간호사가 다시 아기의 엉덩이를 때렸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이물질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았나? 간호사는 가느다란 관을 아기의 입 안으로 밀어 넣고, 기도와 식도에 찬 이물질을 다시 한 번 제거했다. 그리고 다시 때렸다. 역시 울지 않았다. 간호사는 혹 어디가 잘못된 건 아닌지 살폈다. 잔뜩 찡그린 얼굴은 시뻘갰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자연분만으로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은 늘 그랬다.
“선생님, 아기가 울지 않아요.”
“양수 제거 제대로 한 거야?”
둘째를 받느라 정신 없던 의사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네, 두 번이나요.”
“뒤집어서 더 때려봐!”
찰싹, 찰싹, 찰싹. 아기가 눈을 부릅뜨고 간호사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간호사는 아기를 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기의 부릅뜬 눈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불안했다. 대체 어디가 잘못된 걸까? 다시 아기의 엉덩이를 때렸다. 이번엔 손끝에 제법 힘이 들어갔다. 찰싹, 찰싹. 그제야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간호사는 십년감수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태어난 둘째는 더했다. 마치 뱃속에서 울지 않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다 결국 의사의 매서운 손끝에 울음을 터뜨렸다. 알 수 없는 옹알이와 함께.
둘은 꼭 닮은 일란성쌍둥이였다. 쌍둥이가 그렇듯 둘은 늘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둘을 절대 혼동하지 않았다. 표정 때문이었다. 3분 먼저 태어난 첫째는 늘 풀 죽은 얼굴이었다. 마치 방금 엄마에게 혼난 아이처럼. 반면 3분 늦게 나온 동생은 늘 씩씩거리며 화가 난 얼굴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게 불만인 듯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둘 다 인상파라며 개성 있고 귀엽다며 웃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웃을 수 없었다.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온 쌍둥이는 첫날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아니, 일방적으로 맞기 시작했다. 둘째는 늘 첫째를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처음엔 한 쪽으로만 발길질을 하는 줄 알고, 첫째의 자리를 옮겼었다. 그러나 여전히 첫째를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엄마와 아빠는 결국 둘을 멀찌감치 떼어놓았다. 그래봤자 손발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쌍둥이가 뒤집기를 시작했을 때, 둘째는 제일 먼저 첫째를 향해 한 바퀴 구르더니 첫째의 얼굴을 걷어찼다. 하지만, 첫째는 울지 않았다. 정말 듬직한 사나이처럼.
엄마는 둘째가 첫째를 질투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둘째를 더 자주 안아주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방법을 바꿨다. 둘째가 첫째를 때리고 차기만 하면 엄마, 아빠는 여지없이 둘째의 엉덩이를 까고 맴매했다. 그러자 한동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곧 다시 알게 됐다. 젖을 먹일 때였다. 품에 안은 첫째의 눈이 촉촉이 젖어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부모는 그제야 알게 됐다. 여전히 둘째가 첫째를 때리고 차고, 꼬집고 있었다는 걸. 첫째는 반항 한번 못 했다. 아니 안 했다.
정말 옛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옛사람들은 쌍둥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쌍둥이는 전생에 악연을 갖은 이들이 함께 환생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쌍둥이는 정말 전생의 원수 같았다. 아빠는 서서히 불안해졌다. 엄마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엄마는 전생을 믿지 않았다. 엄마는 둘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단지 태교가 잘못됐거나, 자신이 아기를 잘못 키우고 있기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그게 엄마였다. 아빠는 아마도 좁은 뱃속에서 자리싸움을 하던 버릇이 남아서일 거라며 아내를 위로했다.
아빠와 엄마는 둘째의 버릇을 고치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젖으로 둘째를 길들였다. 형을 때린 날에는 젖을 조금만 먹였다. 둘째가 배고픔에 악을 쓰든 말든 단단히 버릇을 고칠 각오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둘째는 형 대신 엄마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열 달 동안 뱃속에서 길러준 어머니 은혜도 모르는 아이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꿈쩍하지 않았다. 쏘아보는 둘째의 눈빛이 매섭고 사납긴 했지만 첫째를 위해서라도 참아야 했다. 보름이 지나자 효과가 있는 듯했다. 첫째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둘째의 얼굴에서도 뚝하면 부릅뜨던 눈이 사라지고 한결 부드러워졌다. 서서히 현실에 순응하는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나자, 둘째의 행동이 눈에 띄게 순해졌다. 첫째를 괴롭히지도 않았고, 엄마, 아빠에게 곧잘 재롱도 부렸다. 장난감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첫째와 나란히 앉아 블록을 쌓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조금 안심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둘째가 먼저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였다. 알 수 없는 옹알이가 둘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첫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마치 사망선고를 받은 죄수 같았다. 엄마는 다시 불안했지만, 아빠는 첫째가 둘째의 빠른 옹알이에 조금 의기소침해진 거라며 아내를 위로했다.
젖니가 나온 때였다. 둘째는 기다렸다는 듯 첫째를 물었다. 치발기, 공갈젖꼭지를 물려줘도 둘째는 기를 쓰고 첫째를 물었다. 그것도 아이답지 않은 교묘함으로 엄마, 아빠가 안 볼 때만 물었다. 그래서 처음엔 아무도 몰랐다. 그러다 엄마가 첫째를 목욕시키다 작은 이에 물린 상처와 멍을 발견했다. 결국 부모는 아예 둘을 떼어놓기로 했다. 그러나 첫날부터 둘은 울기 시작했다. 차이고 물려도 울지 않던 첫째가 더 크고 서럽게 울었다. 어쩔 수 없이 둘은 다시 한방에서 같은 침대를 쓰게 됐다. 다시 조용해졌지만, 첫째의 몸에 상처는 늘어만 갔다.
돌 때였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첫째와 둘째가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카메라를 향했다. 그러나 첫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사진사가 아무리 딸랑이를 흔들고, 재미난 표정을 지어 보여도 첫째의 표정은 이미 굳어버린 콘크리트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둘째가 옹알거리며 말했다.
“웃어.”
그러자 첫째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사진사는 재미있는 아이들이라며 웃었지만 부모는 깜짝 놀랐다. 마치 둘째가 첫째를 조종하는 것 같았다.
결혼할 때도 찾아가지 않던 점(占)집을 찾아간 건 쌍둥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였다. 무당은 아이들의 사주에 살(殺)이 끼었다고 말했다. 부적을 그리고 굿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어떤 무당은 머리 깎고 중이 돼야 살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는 믿지 않았다. 자신들이 아이들을 잘 키우면, 착하게 키우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신앙의 힘으로 쌍둥이를, 그리고 자신들을 구원하려 했다. 그러다 결국 굿을 한 건, 어느 날 밤, 둘째가 첫째를 무릎 꿇려놓고 이상한 옹알이로 첫째를 나무라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다. 그때 둘째의 표정은 사탄의 인형처럼 섬뜩했다.
부모는 신내림을 받았다는 용한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굿을 해야한다고 했다. 부모는 무당이라면 으레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굿을 했다.
쿵덕쿵덕 칼춤을 추며 접신을 시도하던 무당이 갑자기 번개를 맞은 듯 칼춤을 멈추고는 쌍둥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 네놈들, 네놈들은 이 세상에 있을 것들이 아니구나! 썩 물러가라! 당장 돌아가라, 썩!”
쌍둥이는 사색이 되어 무당을 쳐다보았다.
무당이 끔찍한 괴성과 함께 다시 외쳤다. 썩 물러가라고, 돌아가라고. 그리고 당장 쌍둥이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갑자기 둘째가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 악을 쓰며 운 적은 있어도 엄마를 찾으며 운 적은 한 번도 없던 둘째였다. 아이가 안쓰러워진 엄마는 쌍둥이를 안고 도망치듯 무당집을 나왔다. 무당은 밖에까지 쫓아와 소리쳤다.
“썩 물러가! 돌아가! 돌아가! 안 그러면 신이 너흴 용서 안 해!”
그날 둘째는 종일 말이 없었다. 먹지도 않았다. 엄마는 측은한 마음에 둘째를 안방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엄마, 아빠 사이에 두고 잠들었다. 둘째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눈을 떴다. 그리고 조용히 안방을 빠져나와 첫째 혼자 잠든 작은방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첫째를 흔들어 깨웠다. 단꿈에 빠져있던 첫째가 화들짝 놀라 깼다. 둘째는 싸늘한 눈빛으로 첫째를 노려보며 말했다.
“오늘 일은 절대 비밀이야. 네가 죽을 때까지. 만약 누가 알게 되면, 그땐 넌 죽어.”
첫째는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두 아이는 평범한 쌍둥이형제처럼 자랐다. 둘째는 첫째를 때리지 않았고, 싸우지도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순하게 자라서 이웃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굿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부모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다시 웃음을 찾았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쌍둥이가 네 살 때였다.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간 공원에서였다. 한 아이가 뒤뚱거리며 걸어와 둘째의 머리를 때렸다. 아직 어린 아이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사고였다. 그때 둘째는 울지도 않다. 그저 넌지시 첫째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첫째가 허둥대며 다가와 대신 그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니, 패기 시작했다. 심지어 돌멩이를 주워 아이를 내려찍으려 했다. 놀라 달려온 부모들이 둘을 떼어놓았다. 그러자 첫째의 입에서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둘째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만 있었다. 부모는 쌍둥이의 돌 때를 떠올렸다.
다시 예전 무당을 찾아갔다. 이번에도 무당은 굿을 해야한다고 했다. 무당은 부모에게 이번에는 절대 아이를 안고 도망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리 오랫동안 굿을 해도, 돌아가라고, 물러가라고 소리치고 윽박질러도 쌍둥이는 울지 않았다. 결국 굿을 하던 무당이 지쳐 쓰러졌다.
무당이 말했다.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다른 방도가 없어요. ……이사를 가셔야합니다. 아주 멀리 이사를 가야해요. 근처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셔야합니다. 멀리 갈수록 좋아요.”
“이민이라도 가라는 겁니까?”
“그게 최선이겠죠.”
이민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외할아버지는 무남독녀 외동딸을 멀리 외국으로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빠 역시 외동아들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무당 말에 현혹돼 이민을 간다는 아들과 며느리를 오히려 나무랐다. 결국 이런저런 고민 끝에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간 뒤로 둘은 다시 사이좋게 지냈다. 쌍둥이답게 늘 붙어 다녔다. 모르는 사람들은 쌍둥이가 붙어 다니는 게 그저 귀엽고 당연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여전히 불안했다. 한편으론 무당의 말이 옳았다는 안도와 함께 혹시,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첫째가 이미 둘째의 완벽한 꼭두각시가 된 게 아닐까 두려웠다. 그러나 점점 웃음을 찾아가는 첫째의 얼굴을 보면서 부모는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쌍둥이는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는 일을 터뜨렸다.
하루는 TV에 한 천재 소년의 이야기가 나왔다. 6살, 쌍둥이와 동갑이었다. 그 아이는 컴퓨터 해킹과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아무런 프로그램도 설치되지 않은 컴퓨터 앞에 앉아 3시간만에 관공서의 서버를 해킹했다. 엄마, 아빠도 풀어본 적 없다는 미적분 문제를 판서도 없이 머릿속으로 풀었다. 아이를 본 대학교수들은 당장 자신의 제자로 받고 싶어했다. 아이는 이미 영재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3일은 20살 형들이 다니는 대학교 수업을 듣고 있었다. TV를 보던 둘째가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엄마에게 말했다.
“나도 저 영재학교에 가야겠어.”
엄마, 아빠는 넌 안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둘째의 싸늘한 표정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부모의 표정을 살피던 둘째는 말없이 첫째를 돌아보았다. 둘째와 눈이 마주친 첫째는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부모는 다시 둘째가 첫째를 괴롭힐까 불안했다. 결국 부모는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영재학교를 찾아갔다.
교직원은 TV에 소개된 영재소년 이후로 입학문의가 폭주했다면 너스레를 떨었다. 또 극성스런 부모에 철없는 아이들이 자기도 영재가 되겠다고 이곳에 찾아온다며 은근히 쌍둥이를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그 아이들 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둘째가 아이 같지 않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아이들?”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나, 입학하겠다고 찾아온 아이들이요. 전부 다.”
교직원은 잠시 당황하며 그런 건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비밀이라고 말했다.
영재 테스트는 4시간에 걸쳐 진행됐고 결과는 일주일 후에 통보됐다. 놀랍게도 쌍둥이 모두 영재학교에 입학허가가 떨어졌다.
영재학교는 입학식이 따로 없었다. 재능 있는 아이들을 빨리 발굴하고 교육시키기 위해 영재학교는 수시 입학제도를 취하고 있었다. 대신 새로 온 아이들은 오전 체육시간에, 전교생이 모두 나와 운동을 하는 시간에 자연스레 또래 아이들 사이에 섞였다. 쌍둥이도 마찬가지였다. 실내체육관에 들어선 쌍둥이는 사람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단지 신입생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일란성쌍둥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둘째는 재빨리 그 사실을 눈치챘다. 자신이 첫째와 닮았다는 사실. 둘째의 얼굴 한쪽이 신경질적인 경련을 일으켰다.
“쪽팔려, 떨어져.”
둘째가 싸늘하게 말했다.
첫째는 마치 주인에게 걷어차인 개처럼 슬금슬금 곁을 떠났다. 그러나 멀리 떨어지진 않았다. 십여 걸음 뒤에 섰을 뿐이었다. 그때 TV에서 본 영재가 둘째를 향해 다가왔다. 마치 자기가 선배고, 자기가 더 똑똑하다는 듯한 자신감에 찬, 제법 건방진 표정이었다. 그러나 둘째는 싸늘한 미소로 영재를 바라보았다. 영재는 TV에서 볼 때보다 제법 덩치가 컸다. 둘째 앞에 선 영재가 둘째와 멀찍이 떨어진 첫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놈은 볼 필요 없어.”
둘째의 건방진 말투에 영재의 시선이 둘째에게 고정됐다. 둘째가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영재를 똑바로 쳐다보며 괴상한 소리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벲둚갆앟섧민괆춝얌섧능…….”
영재는 잠시 흠칫하더니 눈을 찡그리고는 둘째의 귀에 속삭였다.
“2교시 시작할 때, 3층 남쪽 화장실.”
2교시 시작종이 울리자, 둘째는 배탈을 핑계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첫째 역시 똑같은 핑계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쌍둥이는 쌍둥이구나 하고 말았다.
배를 움켜잡고 교실을 나온 쌍둥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계단을 올라가 3층 남쪽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은 썰렁한 여성 교직원 화장실이었다. 첫째가 주위를 살피고 먼저 들어섰다. 이어 둘째가 들어서자 등뒤로 문이 닫혔다. 그리고 문 앞에 선 또래아이가 잠금단추를 힘껏 누르자, 그 소리가 제법 크게 화장실 안에 울렸다. 이어 화장실 변기 위로 몸을 숨기고 있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모두 셋이었다. 모두 무표정했고, 싸늘했다. 첫째가 그들을 경계하며 앞으로 나섰다.
TV에 나온 영재 아이가 제일 앞에 서서 쌍둥이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쌍둥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둘째가 첫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괇굚.”
첫째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영재가 둘째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한숨을 크게 몰아쉬고 소리냈다.
“솹뭄룽섧홂섧벦팅뎖능……”
“춶괩똴뛸퇢지욺폖평춥.”
둘째가 짜증을 내며 소리냈다.
그러자 영재 뒤에 선 꼬마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젠장, 인간들의 발음기관과 청각능력으로는 우리 ‘홶뗽퉪’어를 제대로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어. 그냥 인간들 말로 해.”
“그래? 좋아, 그럼 인간들 언어로 내 소개를 하지. 난 최고 사령관 뽢퀠…… 아, 내 이름을 말해도 인간의 귀를 가진 너희는 이제 못 알아듣겠군. 하지만, 기억은 하겠지?”
둘째가 야릇한 미소를 짓자 영재와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첫째를 돌아보았다.
첫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아니, 따라하란 듯이 둘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영재와 그 뒤에 선 아이들까지 따라 둘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넌 누구지?”
둘째가 영재에게 물었다.
“전 촚쐄…… 아, 전, 고, ‘공간이동 책임자’입니다.”
“그 늙은이?”
둘째가 눈을 부릅뜨고 영재를 쏘아보았다. 영재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재의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 대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그분은 잘못이 없습니다.”
영재의 뒤에 무릎 꿇은 여자아이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감히, 어디서……”
둘째가 여자아이를 향해 으르렁거리자 첫째가 다가가 여자아이의 목을 움켜쥐었다. 여자아이는 반항하지 않았다.
“넌 뭐야?”
“저, 전 부책임자입니다.”
“부책임자? 너, 넌 남자였잖아.”
여자아이가 얼굴을 붉히자 둘째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거 완전히 개판이구만!”
화장실 칸에 들어간 둘째가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자 그 앞으로 아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첫째는 화장실 칸 앞에서 팔짱을 끼고 그들을 쏘아보았다. 영재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내밀었다.
“한 대 태우시겠습니까?”
둘째가 황당해하며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재는 담담하게 담뱃불을 붙였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둘째가 영재를 사납게 쏘아보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재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저희가 처음 컴퓨터에 지구의 좌표를 입력하고 이동 조건을 명시했을 땐,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물론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로부터 안전한 곳이라는 조건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정찰 결과 물 속이나 화산 분화구도 인간들로부터 안전한 곳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 역시 생존이 불가능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호흡도 할 수 있는 곳으로, 그때 또 히말라야, 남극, 북극처럼 인간들이 너무 멀리 떨어진 곳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빌어먹을 간단히 말해!”
“네, 그래서 좀 더 세부조건으로 인간과 가까운 곳이면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공간이동할 장소를 한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가 제한된 조건 하에서 판단할 때, 인간들과 가깝고, 가장 안전하면서 호흡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으로, 엄마들의 자궁을 선택했습니다.”
쌍둥이의 눈이 커졌다. 둘째의 팔에는 소름까지 돋았다.
둘째가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다 어떻게 됐다는 거야?”
“그게, 그러니까 전사뿐만 아니라 지원단 모두가 지구에서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아기? 아기라고? 전부다? 지금 장난해? 3만 광년 거리의 미개한 행성 하나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9,900명의 1급 전사와 100명의 지원단이 공간이동을 했는데, 전부 배고프면 체면도 없이 울고, 기저귀에 똥이나 지리면서 공갈젖꼭지나 빠는 아기라고? 박사, 지금 나랑 농담하는 건가!”
둘째가 영재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영재는 놀라 담배를 떨어뜨리고,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그, 그래도 지금은 커서 사령관님처럼 아이는 됐을 겁니다.”
“설마 그걸 내게 위로라고 하는 건가?”
“저는 그저 안전하면서 인간과 바로 대치할 수 있는 최전선으로 설정하라는 사령관님의 지시를 따르……, 아, 아무래도 컴퓨터가 안전에 대한 기댓값을 너무 높게 잡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키가 2m가 넘는 전사들이 전부 아기로 태어날 수 있단 말이야!”
“아마도 컴퓨터가 이동가능 공간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우리 크기를 1대 1 대칭이 아니라 이동장소에 합당한 크기로 세포배치를 다시 해서, 그러니까 컴퓨터가 이동체의 안전을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둘째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사령부에선 아직 우리 상황을 모르나?”
“이젠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뭐라던가?”
“그들은 먼저 사령관님부터 찾으라고 했습니다. 최종결정은 사령관님이 하실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지 않았지?”
둘째가 영재를 쏘아보며 물었다.
“차, 찾았습니다. 백방으로 찾았습니다. 손을 움직이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때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로 각 병원을 해킹해 6년 전 태어난 아이들을 모두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제 신체적, 연령적 제약 때문에 찾아갈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을 이용한 겁니다.”
“그렇군. 그래서 TV에 출연한 거군.”
“네,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습니다. 전 컴퓨터 앞에서 해킹을 하는 장면과 미적분을 푸는 장면이 편집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니터와 칠판에 우리 문자를 써서 TV를 본 사령관님과 또 다른 대원들이 저를 찾아오게 한 겁니다.”
“그래, 그랬군. 그건 잘했어. 근데 얼마나 찾았지?”
“저희까지 28명을 찾았습니다.”
“고작 28? ……그런데 왜 너희 셋 뿐이지?”
“지금까지 영재테스트를 통과한 건 저희 셋 뿐입니다.”
“멍청한 놈들, 그 정도 테스트도 통과 못했단 말이야!!”
둘째가 버럭 소리쳤다.
“그래서?”
“우선 신청서에 기재된 연락처로 연락해서 다른 25명을 더 찾았습니다.”
“그럼 나머지 9,970명은 언제쯤 찾을 수 있겠나?”
“그게……”
영재가 주저하자 뒤에 무릎 꿇고 있던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사령관님께 충격적인 보고를 드려야겠습니다.”
“충격적인?”
“전사들이 공간이동을 해서 지구로 온지 100일도 안 돼서, 전사 4,230명이 본부로 귀환했습니다.”
“뭐? 4,230명이 귀환을 했다고? 내 허락도 없이? 어떻게? 왜?”
“그게, 임신한 여자들이 낙태 시술을 해서 태어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제대로 지구인과 싸워보기도 전에 4,230명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돌아간 겁니다.”
여자아이의 말에 둘째가 얼빠진 얼굴로 영재를 쳐다보며 물었다.
“가장 안전한 곳이라면서?”
영재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대답이 없었다. 불안한 듯 손을 떨며 다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둘째가 손가락을 두 개를 펴자 영재가 무릎으로 기어와 둘째의 손에 담배를 끼워주고 불을 붙여주었다.
“아무리 부상을 당했다지만, 어떻게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내가 돌아가기만 하면 놈들은 다 탈영으로 처형시켜버리겠어!”
둘째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중얼거리자 영재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저희가 지구로 오기 전에 모든 전사와 지원단의 체내에 위치추적기를 삽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치추적기에는 만약의 불상사를 대비해 응급구조용 송출기능이 내재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치추적기가 전사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검사하다가, 산모들의 낙태 시술로 인해 태아, 그러니까 전사가 생명에 위협을 받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자 급히 응급송출을 시켜서, 그래서 그들이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갑자기 둘째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럼 지금 우리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면 당장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영재가 기겁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이, 이젠 안됩니다. 위치추적기가 아직 우리 체내에 남아있었다면 저희 지원단이 다른 대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젠 모두 빠져나가서……, 그러니까 그게, 처음에 위치추적기는 분실되는 걸 막기 위해 모두 호흡기 안쪽, 기도 깊은 곳에 삽입됐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인간들이 신생아의 호흡기에서 양수와 이물질을 제거할 때, 기도 안쪽에 있던 위치추적기까지 그만 같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이젠 찾아봤자 의료용 쓰레기 처리장일 겁니다.”
둘째는 침통한 얼굴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럼, 나머지는? 나머지는 어떻게 찾을 거지?”
“우선 그동안 저희는 해킹을 통해서 저희가 임신이 된, 그러니까 저희가 공간이동을 해서 지구로 온 날과 지구인의 임신기간 등을 고려해서 6, 7세 아동 약 5만 명을 추려냈습니다. 우선 이들이 저희의 접선 대상입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 공간이동을 해 왔을 땐 모두 대한민국 서울로 이동했습니다만, 지난 6년 동안 부모들이 이사를 가고, 이민도 가고, 그래서 모두 지구 곳곳에 흩어졌습니다. 게다가 유아사망률을 봤을 때, 어쩌면 벌써 죽은 전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군. 뭐, 그래도 좋아, 어느 정도 초기 희생은 예상했으니까. 그런데 남은 전사들을 찾으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빨라야, 2년쯤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둘째가 바닥에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우리가 지구원정을 시작할 때, 나는 황제 폐하와 장관님께 길어야 1년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간으로 말이야. 그게 지구시간으로 얼만지 아나?”
“약 8년입니다.”
영재가 대답했다.
“그래, 8년,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지구 시간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야. 그런데 전사들을 다시 찾는 데만 2년이라니.”
머리를 쥐어짜던 둘째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영재를 바라보았다.
“사령부에 연락해 돌아간 4,230명의 전사를 다시 전송해달라고 요청해. 가장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 그냥 지구, 대한민국으로 말이야.”
“근데, 그게 지금 상황에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재가 주저하며 말했다.
“현재 사령부에선 제 13행성에 전쟁을 선포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귀환한 전사들도 모두 13행성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보낼 전사가 제가 알기로는……”
“지원병도 없고, 시간도 없다.”
둘째가 나직이 읊조렸다. 둘째는 불안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정적(政敵)들에 의해 어떤 문책을 당할 지 뻔했다. 다시 둘째의 손가락에 담배가 끼워졌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담배에 불을 붙이며 둘째의 표정을 살피던 영재가 입을 열었다.
“4천명의 전사도 보충하지 못할 정도라면 지금 본부의 전황이 매우 불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눈썹을 찡그리며 영재를 바라보았다.
“제 생각엔 지금이 귀환할 기회라는 겁니다.”
“기회?”
“사령부에서 공식적으로 얘기한 건 아니지만, 제 소식통에 의하면 본부에선 지금 전선을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3, 4행성 연합과의 전쟁은 제국의 자존심이 걸린 전쟁이라 미룰 수 없고, 그리고 안드로메다의 10, 11행성과의 전쟁은 우리가 먼저 시작한 전쟁이라 병력을 뺄 수 없는 눈치였습니다. 게다가 13행성까지. 반면 지구는 현재 전선에 병력이 투입은 됐지만, 전혀 전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지구인들은 우리가 침략한 것조차 모르죠.”
“그래서? 지금 나보고 지구인들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치라는 거냐!”
둘째가 영재의 멱살을 움켜쥐며 으르렁거렸다.
“이, 이건 도망도 아닙니다. 그저 귀환일 뿐이죠.”
그때 잠겼던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몽둥이를 든 남자선생님이 호랑이처럼 사나운 눈으로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이 노무 새끼들, 어린것들이 벌써 담배에 싸움박질이야!!”
집으로 돌아간 쌍둥이는 엄마에게 심한 꾸중을 들어야했다. 둘째는 TV에서 본 영재가 담배를 피웠을 뿐이라고, 자신은 그 아이에게 불려갔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첫째도 둘째의 말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심각한 얼굴로 다신 그 영재아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말했다.
그날 밤, 쌍둥이는 침대 위에 마주 앉았다. 첫째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당당하고 엄숙했다. 둘째는 그런 첫째의 낌새에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새삼스럽게 정식 면담요청이라니, 뭐지?”
“사령관님.”
첫째가 마른침을 삼키고 작심한 듯 말했다.
“전 그동안 제가 사령관님의 경호원 겸 정찰병으로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그러니까 제가 사령관님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해, 저희가 어처구니없이 아이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제 잘못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니 앞으로 절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셨으면 합니다.”
“인격적? 흥, 네가 지구인이냐, 인격이 있게.”
“인격이라고 말한 제 뜻 아시잖습니까. 전사로서 대우해 달라는 말입니다.”
“지금 내게 반항하는 거냐?”
둘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전 그저 제 잘못이 아닌 일로 그동안 사령관님께 구타와 멸시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저를 다시 1급 전사로서 대우해주셨으면 합니다.”
“돌아가게 되면 문책을 받을까 봐, 벌벌 떨던 녀석이 제법이구나.”
“이제 제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흥, 좋아, 그렇게 하지.”
돌아눕는 둘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 * *
다음 날, 쌍둥이와 영재와 10여 명의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 구석에 모였다.
“나머지는?”
“다른 전사들은 다른 지역 도시에 있어서, 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령관님을 찾았다는 연락은 다 취해놨습니다.”
“그래, 좋아. 그리고 사령부에도 나를 찾았다고 연락은 했나?”
영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신은?”
“오늘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전투가 개시되지 않았다면, 귀환을 허락한다는 회신이었습니다.”
“좋아, 그럼 귀환방법은?”
“예, 현재 저희는 위치추적기가 없기 때문에 본부에서 구조대를 보내……”
“구조대?!”
둘째가 사납게 쏘아보았다.
“지금 내게 구조대를 요청하란 말인가? 우리가 지구인들의 포로가 되기라도 했단 말이야!”
둘째의 버럭 소리치자 영재가 놀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위치추적기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처럼 위치추적기가 없는 상황에서 귀환방법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아주 원시적인 방법입니다만, 모두 한 곳에 모인 후에 그 위치를 본부에 통보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문젠 게, 지구와 본부가 실시간 통신이 가능한 거리가 아니라서, 아무래도 우리가 정확한 위치를 미리 알려주고 시간에 맞춰 그곳에 가야합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위험합니다.”
첫째가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그 방법은 이동체가 개별적으로 인식되는 게 아니라서 잘못하면 신체의 일부가 뒤섞이게 되기도 하고, 심지어 신체의 일부가 지구에 남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과거, 공간이동 초기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돼서 신체가 뒤섞이는 일은 없습니다. 이동 후 세포를 재배열할 때, 세포 하나하나 유전체를 모두 확인하니까요.”
영재의 말에 둘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박사가 안전하다면 그렇게 해. 그런데 귀환했을 때, 그때도 우린 지금처럼 아이인 건가?”
둘째가 조금은 불안한 듯 물었다.
“아닙니다. 다시 세포를 재배열해서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좋아, 그럼 망설일 필요가 없군. 현재 연락이 가능한 모든 전사에게 당장 귀환을 명한다.”
“그럼 오늘 귀가한 후에 비상연락망으로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집합장소와 시간은 어떻게 할까요?”
“장소는 학교 운동장, 시간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전사들을 위해 3일 후, 자정으로 한다.”
* * *
재깍거리는 벽시계가 이제 막 11시를 가리키자, 둘째가 조용히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은 이미 입은 채였다. 이어 첫째도 뒤따라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너는 남아라.”
둘째가 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내 다시 확인하며 말했다.
첫째가 놀란 눈으로 둘째를 바라보았다. 예전 그 눈빛이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담긴 눈이었다.
“남으라니요? 왜 남아야 합니까?”
“몰라서 묻나? 너도 알잖아, 아직 지구에 우리 전사 5,740명이 남아있다.”
“그래서요?”
“그들을 내버려둘 건가? 모두 찾아 귀환시켜야지. 그게 네 임무다.”
“왜 하필 접니까?”
첫째가 따지듯 물었다.
“넌 정찰병이었잖아. 지구에 대해 우리 중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잘 아는 누군가는 남아서 남은 5,740명의 전사들의 귀환을 도와야 해.”
“어떻게요?”
“멍청한 영감과 남아서 진행해. 그 영감도 은근히 회춘한 걸 즐기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니까.”
“영재 말입니까? 하지만, 왜 접니까?”
“다시 말해야 하나.”
“제 말은 공간이동 책임자와 그 부책임자가 남아도 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들은 전사가 아니잖아. 지구에 살면서 남은 전사들을 찾으려면 전사출신으로 다른 전사들의 특성을 잘 아는 네가 남아서 전사들을 찾는 게 더 빨라.”
첫째가 미심쩍은 눈으로 둘째를 바라보았다.
“왜?”
“정말 그래섭니까?”
“정말이라니?”
“제 말은, 정말 그것뿐이고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냐는 겁니다.”
“다른 의도라니? 지금 상관인 나를 의심하는 거냐? 그리고 넌 이번 이동방법이 위험하다고 반대했잖아.”
“전 사령관님의 안전을 위해서 드린 말이었습니다.”
“나 역시 네 안전을 위해서 남으라는 거다.”
둘째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번졌다. 첫째는 불만 가득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새벽까지 분노에 치를 떨며 앉아있었다.
* * *
아침에 잠이 깬 엄마가 쌍둥이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는 첫째 혼자였다. 첫째에게 둘째는 어디 있냐고 물었지만 첫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문득 불안해진 엄마와 아빠는 집 안 구석구석, 그리고 골목과 놀이터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디에도 둘째는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실종된 아이들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와 아빠는 첫째를 다그쳤다. 그러나 첫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혹시 이 애가 첫째가 아니라 둘째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혹시 너, 첫째랑 다른 아이들한테 무슨 짓 한 거 아니야!”
첫째는 잔뜩 골이 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첫째 맞아요.”
한날 28명의 아이들이 사라진 후, 매주 서너 명의 아이들이 똑같이 사라졌다. 서너 명, 1일 평균 실종 어린이의 수에 서너 명은 눈에 띄지 않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주로 실종되는 곳, 그곳을 담당하는 관할경찰서는 죽을 맛이었다. 관할경찰은 최초 28명의 아이들이 사라진 사건에 주목했다. 그리고 실종된 아이들의 형제와 친구들을 불러 하나씩 조사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유치원 놀이방 같이 꾸며진 작은 방에 혼자 있었다. 하지만, 유치원은 아니었다. 첫째는 이곳에 올 때, 정문을 지키던 경찰을 분명히 보았다. 벽에는 커다란 거울이 걸려있었다. 첫째는 그 거울 뒤에 뭐가 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첫째는 방 한가운데 앉아 흰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아저씨가 그림을 그려보라며 주고 나간 도화지였다. 그림을 그리는 첫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속은 잔뜩 겁먹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물을지, 무슨 짓을 할지 어린 첫째는 아직은 알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행성에서라면 어떻게 할 지 잘 알고 있었다. 자백을 시키는 약은 너무나 쉽고 편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늘 마지막 방법이었다. 그전에 충분히 괴롭혔다. 말하지 말라며 때리고 고문했다. 그건 피해자를 위한 배려였다. 죄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을 죄인,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를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괜한 말썽을 일으켜 자신들을 귀찮게 만든 경찰의 복수이기도 했다. 첫째는 두려웠다. 맞는 게 두려운 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은 아직 어리고 작기 때문에 어른들의 주먹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맞다 죽으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는 것도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되길 바랐다.
문이 열렸다. 첫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힐끗거리며 문 앞을 살폈다. 여자가 들어섰다. 아동심리치료사였다. 첫째의 눈에는 그저 유치원 선생님 같은 여자였다. 여자는 첫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별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다. 좋아하는 반찬, 좋아하는 만화, 좋아하는 여자아이, 그러다 여자가 물었다. 친구들에 대해서, 동생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된 거냐고, 동생이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고, 또 학교친구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고.
첫째는 가만히 여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들은 그저 돌아갔다고, 돌아갔을 뿐이라고.
“어디로 돌아간 거지?”
“왔던 곳, 고향.”
“그렇구나. 근데 넌 왜 돌아가지 않았지?”
“우는 걸 봤기 때문이에요.”
“우는 걸? 누가 울었는데?”
“사령관님이요.”
첫째는 입을 굳게 다물고는 마치 적이 앞에 있기라도 한 듯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손에 쥔 크레파스가 부러졌다.
“사령관? 사령관이라니?”
첫째는 대답대신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을 여자에게 보였다. 그림에는 무당 앞에서 질질 짜던 둘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라퓨탄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크로스로드 SF 콜렉션 <죽은자들에게 고하라>에 단편 [우주복]을,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에 [시공간 항]을 수록했으며, 2010년 ZA문학공모전 수상집 <섬, 그리고 좀비>에 [섬]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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