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미의 기준은 다양하다는 모범적인 사례로 봐야할까요? 그의 선택이 므잉와옹기엥에 가져온 파장은 대단한 것입니다!--
위의 문장은 지구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상당부분 의역이 섞여있음을 말해둔다. 고유명사 부분은 지구의 실정에 맞게 고칠까 하다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본래 의미를 너무 왜곡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앞으로 기술하는 내용에서 외계어는 전부 지구인들이 알아볼 수 있게 변환했음을 알려둔다.
우주항공산업은 많은 사람들이 그 실효성에 관해서 의심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도 부분적으로 그러하다. 그들의 사고가 근시안적이라고 탓할 바는 못 된다. 비교적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나도 그 일원이었으니까.
한국정부가 본격적인 우주산업으로의 도약에 관해 공론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 들려왔던 원성의 규모는 그 옛날 대한민국 월드컵 4강의 그것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하긴 투입되는 자금에 비해 산출되는 경제적 효과는 가히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 NASA의 범적인 사례가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불안감을 심어주었으리라.
화성의 말라붙은 물줄기 관찰하는데 투입될 세금으로 내 자식 과외 한 줄이라도 더 시키고픈 것이 부모들의 심정일게다. 그러나 무슨 똥고집인지, 그대로 밀어붙였다. 배후에 어떤 치밀한 정치적 계산과 로비가 횡행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 무대포식 행정은 대통령 집권임기가 만기일로 치달을 때까지 두고두고 좋은 안주거리가 되었다. 장담하건대 만기 2달을 앞두고 기적적으로 그 일이 터지지 않았다면, 집권당은 180도 뒤집어졌을 것이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6월 14일, 호주 캐언스 부근 해안에 미확인 물체가 추락했다. 물체의 크기가 상당히 거대했음에도 그 충격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고 한다. 물체의 정체는 금새 밝혀졌다. 상당부분 훼손되긴 했지만 한국에서 쏘아올린 로켓, ‘고리호’ 였다. 쏘아올릴 당시 제법 원성을 들었던 물건이다. 잠시동안 한국의 언론을 비롯한 각종 통신매체에서 비난과 의문의 어휘를 쏟아냈다. 비난이 상당부분, 의문이 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해외에서도 어떤 경위를 거쳐서 로켓이 도로 추락하게 된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위성이 아닌, 로켓이니 고개가 갸우뚱할 상황이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로 혜성과 정면충돌한 결과물이다. 헛소리마라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게 아니라 불가능이다. 궤도가 맞지 않는다. 로켓추진력을 상쇄할 만큼의 정면충돌이면 로켓의 원형보존이 저렇게 잘 되 있을리 없다 운운. 기초적인 수준부터 시작해서 각종 수식들이 난무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 쯤되자, 음모론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왜 비난의 기간이 길지 않았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심상찮은 결과물들이 로켓 내부에서 속속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고리호’는 미국의 보이저 호를 모델삼아 우주인과 문화교류의 목적으로 쏘아올린 것이다. 이미 우주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나라들은 의례적으로 쏘아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각종 물품들이 들어있었다. 한복에 하회탈에, 판소리음반, 가야금, 한국 대중가요 등등…. 혹자는 이런 행위들을 놓고, 지구에서 더 이상 차지할 것이 없으니까 우주에 도박하는 것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도박이 정말로 실효를 거둘 줄이야….
반파되다시피한 고리호 내부에서 물품들을 도로 하나하나 꺼내 분류하는 데, 이상한 점이 발견됬다. 애당초 기록되있던 품목수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저기 반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뭐가?’
‘품목이 일치하지 않는데요?’
‘이런 멍청이. 우주선이 거의 파괴되다시피 했는데, 그럼 물건들이 다 온전히 남아있을거라고 생각한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
‘숫자가 적은 게 아니라, 숫자가 더 늘어났어요.’
‘뭐야!?’
당연히 조사반에서는 이것이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미스로 치부했다. 그러나 거듭 확인해본 결과 품목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철저히 대조해본 결과 불일치 품목은 저장매체에 편중 되있었다. USB 형태, DVD 형태, 심지어 필름형태의 저장매체와 정체불명의 물건 - 이것도 저장매체라 짐작되는 - 도 몇 개 발견되었다.
그것들에 담긴 내용을 확인해 본 인원들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토록 염원하던,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않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도래했기 때문이다.
‘우리… 원한다…접촉…너희들…봤다…우리…간다…만나러…곧…간다…만나러’
그들이 재생한 DVD에서는 파편적인 단어가 기계적인 음성과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의 정중앙에는 이질적인 형체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분명한 생명체임을 어필하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꾸물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적대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영상은 5분 남짓으로 짧았다. 더군다나 그 내용은 양자간의 의사소통에 따르는 어려움으로 인해 실제시간 이상으로 짧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해 불평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한 노릇이다. 그 날은 우산국(우주산업국) 전체가 광란으로 밤을 물들였다고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다음날 조간신문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기가 막히게 절묘한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조작루머라는 반대여론 또한 만만치 않았다. 특히 야당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연이어 발표된 영상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자 곧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국적인 수준이 아니라 전 세계적이었다. 각종 커뮤니티의 동영상 관련부분은 가히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고, 소수의 인본주의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희대의 접촉에 관심을 표명했다.
영상에 담긴 내용은 단지 ‘곧 가겠다’ 하나 뿐이었지만, 어떤 장문의 협의안보다도 더욱 충격적이고 강렬했다. 또한 사람들은 그들이 타고 올 수송선이 어떤 형태일지에 대해서도 각종 추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수많은 궁금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역시 원반 타입의 UFO가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외계인 수송선의 정체를 모를리 없다면서 뒷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 정부소속의 일부 인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실대로 말하자면, 정부는 외계인의 정보를 100% 공개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예리한 시민들이 지적한 것처럼 일부를 숨기고 있었고, 숨긴 것은 외계인의 지령이었다. 다음과 같았다.
‘지구 시간법으로 XX년 12월 말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다음 물건을 설치해 달라.’
‘물건’에 관한 설계도도 자세히 첨부 되있었다.
동작 원리나 효용성에 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현대 과학에 의거해 해석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거의 알아낼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는 거의 확실해보였는데, 좌표전송 기능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물건을 짜 맞추려니, 그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부품 하나하나 세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었으니까. 고위 관계자들은 더딘 작업속도를 지켜보며 손톱을 깨물어댈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정부는 혹시나 야기될지 모르는 혼란을 우려하여, 앞서 보도한 것 외의 것은 일절 보도하지 않았고, 언론들의 뭇매를 맞아가며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외계인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후, 약 반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하늘을 뒤덮는 먹구름, 새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들짐승들이 날뛰는 기이한 현상…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조용하면서도 순식간에 일어났다.
‘물건’이 설치된 장소에 모여있던 주요 참관인들도 아무런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컴퓨터나 전자기기가 1~2초 정도 버벅거리는 것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나 컴퓨터가 다시 원래의 속도를 회복함과 동시에, 그들의 눈앞에 그것이 나타났다.
설치된 ‘물건’의 좌측 하단부에 달려있는 강화유리 시험관에 조그마한 점이 생겨났다. 얼핏보면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없을만큼 작은 크기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부분을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놓치지 않았다. 작은 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거의 분당 두배의 속도로 커지는 듯 했다. 대략 30분 가량 지났을 때, 이미 그것은 강아지만한 크기로 성장해 있었다.
그 쯤 자라고나자 더 이상 폭발적인 성장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정도가 다 성장한 상태인 듯 했다. 이윽고 그것은 경련하듯 떨어대더니,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수조 속을 헤엄치는 문어의 모습 같았다. 아니, 그 보다는 해파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것은 흐물흐물 시험관 속을 몇 번이고 배회하다가 유리 벽면에 탁 달라붙었다. 문어가 빨판을 갖다붙이는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나서 그것의 부피가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 했다. 그러나 시험관의 유리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그것이 엄청난 압력으로 벽면을 빨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대단한 힘이었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유리벽에 금이 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곧 잎맥처럼 곳곳에 실금이 새겨졌다.
어느정도 손상이 가자 충분하다고 느꼈는지, 그것은 빨기를 멈추었다. 대신 뒤로 살짝 물러났다가 앞으로 돌진했다.
퉁. 액체 안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소리는 부드러운 편이었다. 그러나 충격까지 부드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시험관 안의 액체가 금 사이로 조금씩 뿜어져나왔다. 그것은 좀 전의 행동을 되풀이했다.
퉁.퉁. 세 번째 돌진했을 때, 시험관 벽이 박살남과 동시에 그 관성으로 그것 역시 시험관을 빠져나와 주르르 미끄러졌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의 발치에서 꿈틀거리자 기겁하며 자리를 피했다. 대기하고 있던 위생팀 및 보안팀은 잽싸게 참관인들 앞에 나와 섰다.
모두가 긴장하며 그것을 응시하는 가운데, 그것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에는 지구인들이 보편적으로 그리는 눈이라는 기관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들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던 듯 싶다. 그것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으므로.
“앙~녀엉~?”
탁, 타다다닥.
지금 그것은 촉수같이 생긴 물건을 늘여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육성기관을 통한 대화보다는 필담이 아무래도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것, 아니 본인이 밝히기를 ‘루우타루빙뱅’은 이제 막 세포분열을 끝낸뒤라, 몸의 움직임이 많이 어색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성에서는 육성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더 힘들다고 했다.
참고로 루우타루빙뱅은 액면 그대로 읽으면 안 되는데, 중국어의 성조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복잡한 높낮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중에는 비트박스라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흉내도 못 낼 만한 것들도 제법 있었다.
루우타루빙뱅의 습득속도는 매우 빨랐다. 키보드 자판도 처음에는 100타도 채 못 채우던 실력이, 10여분만에 500타를 넘나들고 있었다. 사람들 중 일부가 그것을 지적하자, 루우타루빙뱅은 별 것 아니라고 대답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기능들이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자판은 우리가 예전에 쓰던 구식 기기들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적응하기 쉽군요.」
루우타루빙뱅과 거기 모인 사람들은 짧은 시간동안 많은 정보를 교환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사람들을 특히 경악하게 했다.
“600광년이라구요?”
서덕경 박사는 반사적으로 물음을 던진 다음 자신의 어리석음에 이마를 탁 때렸다.
“아차, 필담 중이었지.”
루우타루빙뱅은 청각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모니터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서박사는 자신의 의문을 자판을 통해 모니터로 옮겨넣었다.
「600광년이라구요?」
「그렇소. 정확히 말하면 592광년 정도지만.」
아직 한국어가 익숙치 않은지, 존대했다 말았다 뒤죽박죽이었다.
「그렇다면 1개월만에 600광년 정도를 이동했단 말이오?」
「그 정도 되겠지. 실제로 내가 이동한 기간은 1개월 조금 안되니까.」
「그게…가능합니까?」
「가능하니까 지금 여기서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소?」
「그러고보니 우리말을 다루는 것이 대단히 능숙하군요?」
「음? 우리말이라는 게 한국말이라는 의미인가? 당신들이 보낸 학습서를 보고 연구 좀 했지. 동봉한 영상샘플이 도움이 많이 됬소. 패턴을 파악하기 쉽더군. 지구말은.」
「그래도 단기간에 이렇게 능숙해지기는 힘들었을텐데요.」
「우리가 쓰는 말에 비하면 너무 쉽소. 패턴이 단순하니까.」
서박사는 문득 어렸을 때 봤던 고전영화 K-Pax 가 떠올렸다. 분명 거기에서도 케빈 스페이시가 비슷한 발언을 했을 것이다. 만약 그 감독이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지금 이 광경을 본다면 얼마나 으쓱해 할 것인가.
「그리고 생체칩의 도움을 받으면 단기간에 숙달되는 것은 쉬운 일이지.」
「생체칩? 그게 뭡니까?」
「당신들의 말에 가장 적합한 단어로 선택했는데, 제대로 된 표현인지 모르겠소. 지금 설명하기는 좀 힘든데…. 나중에 더 말하면 안 되겠소? 지금 분열을 막 끝낸지 얼마 안된 상태라 몹시 피곤한데.」
「음… 알겠습니다. 내일 계속하도록 하죠.」
루우타루빙뱅은 곧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나름 배려해서 제작한 공간이었으나, 그의 취향에 맞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아메바 덩어리처럼 보이는 그것이 침대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이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잖은가. 그래도 루우타루빙뱅이 딱히 불평하는 기색은 없어보여서 다행이었다.
다음날도 문답은 계속됬다. 생체칩이란, 말 그대로 몸 속에 박아넣는 칩으로서 체내정보를 외부에 전달하기도 하고 그 역기능도 담당한다. 즉, 외부정보를 내부에 수용하기 쉽게 도와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에 비하면 위의 정보들은 사소한 것이었다. 600광년의 거리를 어떻게 주파했느냐,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궁금증이었다. 루우타루빙뱅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루우타루빙뱅이 지구로 넘어온 방법은 이렇다. 일단 지구에 수신기를 설치한다. - 이 대목에서 우리가 설치한 그것이 수신기였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 그 다음 본인의 생체정보를 전부 데이터베이스화 한다. 머리끝 돌기부터 체액의 농도까지. 이 때 대상자는 동결상태로 돌입한다. 그리고 전송. 그걸로 끝이다. 수많은 정보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용량은 수천 테라바이트를 가볍게 상회하지만, 다행히 압축률도 경이로울 정도이기 때문에 지구의 조악한 - 적어도 루우타루빙뱅이 보기에는 - 수신기로도 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토록 극단적인 압축이 가능했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단세포 생물에 가까우니까.」
그러므로 단순하고 반복된 정보가 많다는 것이었다. 루우타루빙뱅의 사견에 따르면, 인간이 같은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은 거의 힘들어 보였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당신 고향에 남겨진 본체는 어떻게 됩니까?」
질문을 받은 루우타루빙뱅은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했다. 그가 지구로 온 이래, 한번도 보인 바 없는 극적인 반응이었다.
「난 복제품 따위가 아니오. 본체 운운하는 표현은 듣기 좀 그렇군.」
동시에 일부 둔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연구소의 공기가 답답해졌음을 느꼈다. 루우타루빙뱅이 무의식적으로 발산한 호르몬 탓이리라. 덕분에 질문을 한 연구원은 황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소. 당신들 시각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당신이 본체라고 말한 그 대상, 우리는 ‘고옹즈’라고 부르지. 한국어에서 비슷한 단어는… 켤레? 짝? 어쨌건 ‘고옹즈’는 데이터화해서 전송되는 순간부터 동등한 속도로 분해됩니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기호라서 분해하지 않고 껍데기만 그대로 남겨두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거의 드물죠. 정체성의 문제도 있으니.」
그다지 길지않은 시간동안 루우타루빙뱅은 다량의 정보를 제공했고, 모조리 기록되었다. 물론 관계가 일방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우리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다만, 아쉽게도 우리가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루우타루빙뱅이 사는 행성 므잉와옹기엥의 과학수준에 비춰볼 때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동방식만 해도 그렇다. 생체정보를 데이터 전송해서 재구성하는 것은 윤리적 이념문제 운운이전에 불가능한 기술이다. 게다가 그처럼 빠르게 전송할 수동 없다. 전파의 속도를 빛과 거의 동일선상으로 놓고 가정하더라도, 단순계산으로 근 600년은 걸려야 하는 것이다. 헌데, 여기에 사용된 기술이 또 재미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들은 블랙홀을 이용했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레 공통된 생각을 떠올렸다. 과학서적을 조금만 뒤적여도 알 수 있는 개념이지만, 대학논문을 뒤져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가설.
「웜홀! 웜홀을 통해서 온 겁니까?」
질문을 한 사람은 내 친구 엄박사로, 우리들 중에서도 상당히 차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학구적 호기심이 불러오는 조급증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천재형 타입이었으므로 그런 종류의 압박에 더욱 약한 편이었다.
「당신들은 웜홀이라 부르나보군. 재밌는 이름입니다. 맞아요. 비슷한 원리요.」
루우타루빙뱅은 가볍게 긍정했다. 우리는 그것이 이론상에서만 가능한 공상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는데. 뭐든지 믹서기 녹즙처럼 갈려버릴테니까. 그러나 내부의 무시무시한 힘 때문에 뭐든지 파괴된다는 개념에서, ‘뭐든지’에 빛은 포함되지 않았다.
모두들 잠자코 루우타루빙뱅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더 설명할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끝이오. 웜홀을 통해 파장을 통과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이것도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파격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의 홍수에 우리는 흥분하고, 정신적으로 허우적거렸다.
「그게… 그런 기술이 가능합니까?」
루우타루빙뱅은 촉수를 까딱거렸다.
「그건 전에도 들었던 질문인 것 같은데, 눈앞에 있는 나를 보고 못 믿습니까?」
물론 개념을 알았다고 100%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수단으로 블랙홀을 생성할 것이며, 화이트 홀은 어떻게 임의대로 설정하는 것인가 등등. 끝이 없었다. 루우타루빙뱅의 설명을 듣는다고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구원들의 갈증은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연구원들의 며칠동안 밤을 새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고, 루우타루빙뱅은 피곤한 시간을 버텨냈다.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라도 초반의 순수한 놀라움이 식어가기 시작하면, 점차 일상으로 동화되어가는 법이다. 빙뱅, 즉 루우타루빙뱅이 온지 2달이 채 안 되었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의 존재를 익숙하게 여기게 되었고, 간혹 싱크대에서 물장구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쓴웃음만 지으며 넘어갈 정도가 되었다.
빙뱅이 우리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무렵, 또 한명의 외계인이 도착했다. 절차는 같았으나, 장비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빙뱅이 철저히 간섭한 덕이다. 그는 생체칩에 내장된 정보를 총동원하여 수신기의 개조를 일일이 지시했고, 완성된 결과물은 이전의 것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한다면, 화승총과 기관총의 차이 정도로 보였다.
이번에는 전처럼 미미한 전파간섭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서 수신기 유리관에서의 성장속도는 더욱 폭발적이었다.
순식간에 성장한 외계인 2호는 - 빙뱅은 그 때까지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 유리관아래에 설치된 통로를 통해서 품위있게 빠져나왔다. 빙뱅은 동족과의 만남이 퍽이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법도 하다.
그런데 나는 외계인 2호의 분위기가 빙뱅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름을 깨달았다. 외관상으로야 어차피 아메바 동족뻘이니, 내가 그들의 외모를 분간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 자명하지만 무엇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있었다.
난 조금 뒤늦게 차이를 깨달았다. 눈에 보이지않는 것이니 빨리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 그렇다, 호르몬이었다. 외계인 2호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공우영 선생님께서 요즘에 화제의 인물로 조명받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나도 눈이랑 귀 다 달려있으니까, 당연히 알고있지.”
“으음, 피곤하시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지. 자네처럼 꼬치꼬치 말 거는 인간들이 산재해 있으니…”
신참 연구원 준서는 무안한 듯, 나를 바라보다가 커피를 한모금 삼켰다. 그는 내가 한 말이 차가운 지적인지, 아니면 시니컬한 농담인지 가늠하는 듯 보였다. 그가 나와 같이 한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후자에 가깝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제 막 사회경험의 첫 삽을 뜬 터였다. 하필이면 상관이 나같은 독사라니, 불쌍하기도 하지. 그렇다고 짜증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농담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긴 하지만.
솔직히말해, 피곤한 노릇이다.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그다지 꺼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능력이 조명받을 경우이지 지금처럼 스캔들 가십거리의 느낌이라면 그야말로 질색이다. 그 증거로 현재 나와 접촉하려고 애쓰는 기자들은 정치부나 사회부가 아닌, 대부분이 스포츠부와 문화부이다. 우스운 노릇 아닌가?
준서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더 이상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상승시키지 않기위해 미연에 일침을 가한 감도 없지않다. 어쨌건 준서는 아직 설 익었긴해도, 멍청하지는 않은 청년이었고, 내 의도역시 어느정도 이해했을 터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협상은 잘 되가고 있나요?”
나는 준서의 질문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역시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겠지?”
“흐음… 조간신문이나 꼬박꼬박 훑어봐야겠네요.”
준서가 말한 ‘협상’의 세부사항은 극비에 해당하는 내용이었고, 그에 대한 답변은 통상 피상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알 사람은 다 알만한 내용, 신문에 대외적으로 나올법한 내용들 말이다.
“쳇, 다른 우주에서 살면 사상도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만물법칙은 다 같나보더군.”
“하하, 그런가요.”
앞서 말했듯이 영특한 청년이니, 이 한 마디만으로도 많은 것을 추측해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 치들은 나를 그저 기둥서방 이상으로 안 보는 것 같단 말이야. 믿을 수 있겠나? 되려 우리 쪽에서 그런 시선이라니까?”
“어딜가나 자기 소갈머리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멍청이들이 꼭 있기 마련이잖습니까.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인간일수록 말이죠.”
천진난만하게 대꾸하는 그에게 동의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습관적으로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으나, 잡히는 게 없었다. 당연한 노릇이다. 금연 2개월 째니까. 결혼기념일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쭉 끊어오고 있다. 마누라가 아주 질색을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녀의 감각은 속일 수도 없다. 별 수있나, 끊는 수밖에. 나는 불만에 찬 혓소리를 내면서 해바라기씨를 씹는다. 와그작, 와그작.
분노의 저작운동이 준서의 눈에는 제법 우습게 보였나보다. 킥하는 소리와 함께 시선을 돌린다. 나 역시 힘없는 미소를 흘려준 뒤, 고개를 뒤로 젖힌다.
“차이를 전혀 모르겠는데요?”
한 연구원이 무심결에 내뱉는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종전에 본체 운운하던 그 녀석이다. 빙뱅은 우리와 육성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컨버터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대화하기 자유로운 상태였다. 빙뱅의 발음은 아무래도 알아듣기 곤란했으므로, 퍽이나 유용했다.
「당신네들이 가슴만 달렸다면, 나도 구분 못 할거요.」
이것이 단순한 사실의 토로인지, 여성 연구원들의 외모를 조롱하는 농담인지는 불분명했으나 생각없는 연구원의 입을 틀어막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2호 외계인은 전송 직후, 빙뱅의 요구에 따라 세척 및 기타 자잘한 절차를 마쳤다. 서덕경 박사가 물었다.
“음, 빙뱅은 처음 왔을 때 상당히 불쾌했겠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으니 말일세.”
「괜찮소.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일인 걸. 하지만 아무래도 여성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자네 행성에서도 여성은 특별취급인가?”
「어디든 마찬가지 아니겠소?」
‘하지만 당신은 아메바잖아. 포유류가 아니라. 양서류는 종종 암컷이 더 큰 경우도 있지, 운운.’ 에 근접하는 반론이 내 목구멍을 간질였다. 멍청하게 내뱉지는 않았지만, 고찰해 볼만한 일이었다. 종족이 달라도 공통된 규범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세히 보니 점액질 - 피부라고 하기에는 뭣하다 - 의 색깔이 조금 다르긴 했다. 빙뱅이 상대적으로 칙칙한 색이라면, 2호는 어느정도 화사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역시 뿜어대는 호르몬의 성격이 가장 달랐다.
“저 여성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
“스텐푸~”
문자로는 발음을 효과적으로 발음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빙뱅은 이례적으로 육성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아듣기 쉽지는 않았지만.
“스텐푸?”
서덕경 박사가 따라하자, 빙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촉수에 가까운 것이 살랑살랑 대는 것이었지만, 빙뱅의 행동에 제법 익숙해진 우리는 그것을 대충 고개 젓는 것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아니…」그리고나서 바로 육성으로, “스텐푸~”
“내가 듣기엔 똑같은데? 스텐푸우?”
이번에는 빙뱅이 한숨을 쉰다.
“스텐푸~”
“그래, 그러니까 스텐푸우~”
적당히 넘어가면 될 것을. 빙뱅도 빙뱅이지만, 서박사의 고집도 알아준다. 어쨌건 그녀의 이름이 스텐푸~ 라는 것은 알게 되었고, 그녀의 이름을 적어넣은 명패가 문에 설치되었다. 스텐푸~는 대충 이틀 가까이 요양을 한 뒤, 우리에게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도 남녀의 차이로 봐야하나?
그녀의 1차적 목표는 전언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냥 통신으로 해결하면 될 일을 굳이 몸소 나설 필요가 있냐는 의문인 이 경우에 적용되지 않는다. 어차피 메시지 전송이나, 육체전송이나 속도면에서 비슷하므로, 기왕이면 판단력 있는 생물을 보내는 편이 낫겠지.
스텐푸~는 우리에게 말을 하기에 앞서, 빙뱅과 무슨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뒤통수 부근의 촉수가 수시로 꿈지럭 거렸으니 말이다.
사람들을 앞에 두고, 저희들끼리 귓속말을 하는 격이지만 아무도 허물을 탓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외계인이니까. 아마 우리에게 공개하기에 앞서, 빙뱅에게 그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중간중간 빙뱅의 태도가 신경질적인 느낌을 주는 것으로 봐서, 그가 약간은 반발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거의 그렇듯, 남자와 여자가 언쟁을 벌이면 여자가 이긴다. 이 법칙이 은하계 저편에서도 적용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스텐푸~의 의지에 빙뱅이 굴복한 모양이다.
그녀는 아직 컨버터의 사용법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빙뱅이 옆에서 통역을 하기로 했다. 빙뱅은 여전히 불만의 몸짓을 보냈지만, 잠자코 통역을 수행했다.
「저는 므잉와옹기엥에서 전권대리인 자격으로 왔습니다. 시한부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주 큰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들이 아니라 당신들의 항성계이긴 하지만 말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와 대등한 수준에서 교류할만한 과학기술을 보유했기를 은근히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폐기처분 됬네요.」
독설적이라고 할 만한 어투에 일부 연구원들은 불편한 헛기침을 해댔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실이었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대신에 이 곳의 생태계는 제법 흥미로워요. 복합유기체들이 이렇게 번성한 세상이라니. 아, 잡설이 길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동안 짧은 기간이었지만, 루우타루빙뱅에게 전해들은 지식들이 어땠는지 물어봐야겠군요. 여러분들에게 충분히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내용들이었나요?」
호르몬의 분비를 마치고, 스텐푸~는 사람들을 쭉 훑어봤다. 아무래도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듯한 몸짓이다. 돌아가던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그녀에게 눈따위는 없지만, 대충 감이 왔다.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아무래도 입을 열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상당히 유익한 정보들이었소. 우리가 그동안 상상할 수도 없었을 만큼.”
빙뱅이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통역했다. 동시에 스텐푸~의 동체가 흐물흐물 약간 솟아올랐다. 주의깊게 보지않으면 눈치채기 힘들만큼 작은 변화. 만족의 제스처가 아닌가 싶다.
다시 빅뱅의 컨버터와 연결된 빔프로젝터 영상에 글씨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행이군요. 양자 모두에게 다행이에요. 빙뱅을 통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대단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숙지했으니 말이죠. 그래서 말인데, 거래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빙뱅이 지금까지 제공했던 사실들은 일종의 맛보기입니다. 데모버전이라고 하면 적절할까요. 지금부터는 일방적인 기술제공은 없을 겁니다. 제로썸 게임을 하자 이거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어도, 당황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바보는 아니기에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덧붙여 눈살을 찌푸린 쪽은 대부분 정치계열이었다.
빙뱅은 이런 회담이 마음에 들지않는 듯했다. 그는 아무래도 순수 과학자였다. 엄박사나 서박사 처럼. 나? 난 눈살을 찌푸리는 집단에 속한다.
그나저나 우리는 궁금했다. 거래라…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할 만한 것이 있을까? 자원? 내 생각에는 그들이 원한다면 우리와 접촉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은하계에서 획득할 수 있을텐데.
“요구하는 것도 당연히 생각해왔겠죠?”
「물론입니다.」
“잠시만요. 이건 정식으로 회담을 가져야 할 사안입니다. 이틀만 기다려 주시겠소?”
스텐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그러죠.」
이 날의 대화는 이것으로 종결이었다. 스텐푸~는 자신의 숙소로 찾아들어갔고, 빙뱅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원. 참 황당하군. 외계인과 외교를 해야된다니.”
“우리 소관은 아니니, 알아서들 하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나?”
“사실 좀 불안하긴 합니다만…”
이틀 뒤 열린, 각 유수한 관료들이 참석한 이 회담에서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결정된 것이 있다면 회담이 대략 한달 뒤로 미뤄졌다는 것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텐푸~의 요구사항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을만큼 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네 지금 소설쓰나?”
회담내용을 전달받은 대통령이 제일 먼저 꺼낸 말이라고 한다.
게다가 스텐푸~는 한국 이외의 세계와도 접촉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 외계인의 공개는 필연적인 사항인 셈이었다. 분명 정부에서 내가 모르는 어드밴티지를 요구했겠지만, 거기까지는 내가 모르는 일이다.
한국정부는 각국 대표부들에게 참석시 천체물리학의 권위자들을 필히 대동시키라는 다소 의아한 요구를 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리했다.
덕분에 각국 대표 정상회담장은 정치회담인지 과학세미나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애매한 분위기였다. 국제적 모임에서 보기드문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대표가 조용히 본론을 발표했다. 애당초 한국의 억지에 가까운 회담요청에 그들도 의문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한국대표가 구태여 주의를 촉구할 필요는 없었다. 거짓말처럼 주위가 조용해졌다.
비록 10여분 뒤에는 배로 소란스러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각 나라들은 굳이 언론을 입막음하려 들지 않았다. 의미없는 일이니까. 다만, 외계인들의 요구사항에 관해서는 한시적으로 함구하기로 협의했다. 큰 반향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다분했다. 매우매우 다분했다.
납으로 꽉꽉채운 강화벽 건물에 과학자들이 모여서 루우타루빙뱅과 교류한 내용들을 보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서 노란머리, 파란눈, 검은피부 등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건 정말 흥미롭군.”
“그러니까 당당하게 그런 황당한 요구도 할 수 있는지 모르지.”
베러니·데런은 그런가 하며 히죽 웃는다. 저 나이에 저렇게 서글서글한 웃음이라니, 정말 잘 늙은 친구다. 데런이 다시 나에게 묻는다.
“그들에게 명왕성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난들 알 턱이 있나? 원숭이가 우라늄의 가치를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하핫, 일리있는 말일세.”
기실 우리의 수준으로 저 점액질의 아메바들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농담삼아 건넨 저 행위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때문에 우리가 그들이 명왕성을 가지고 무엇을 할 작정인지는 뚜렷이 짐작할 수 없었다. 우리가 섣불리 입장표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자문을 구하며 판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역시 지지부진 할 수 밖에.
그래도 역시 반대파의 입장이 거세다. 이해하지 못한 것에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과거로부터의 경험에 기댄 것일테다.
미안하게도 나는 찬성파 입장이다. 므잉와옹기엥 인들이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명왕성을 가져감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무수한 파급효과들을 어떻게 메꿀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스텐푸~가 조건부로 내세운 것이 그것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명왕성은 어차피 이 곳의 태양계에 거의 영향력이 없을뿐더러 그것이 부재할 시 생겨나는 오차들은 우리가 다 보정해 드리겠습니다.」
이해못할 것이므로 아무도 ‘어떻게?’ 라고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 진실성을 의심했고, 루우타루빙뱅이 그것을 보장했다.
점심시간. 데런은 내 옆에 앉아있었고, 맞은편에는 스텐푸~가 있었다. 빙뱅은 여전히 건너편 테이블에서 교수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신경질적인 호르몬 분출도 저 둔감한 늙은이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다.
스텐푸~는 빙뱅의 그런 모습을 보고 히죽 꿈틀거리다가 식사를 시작했다. 몸짓에 기운이 없어 보인다.
“지쳤나?”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스텐푸~는 점액질 몸을 꿈틀한다. 청각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지,쳤,나?”
스텐푸~도 이제는 제법 컨버터를 다룰 수 있게 된지라, 내가 천천히 말하면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촉수를 까닥거렸다.
「므잉와옹기엥이건, 지구건 간에 힘든건 똑같군.」
그녀는 입에 해당하는 촉수를 물잔에 푹 담근다. 물론 물잔에는 물이 아닌, 영양액이 담겨있다. 영양액을 쭉쭉 빨아올리던 그녀는 이윽고 불만에 찬 한숨을 내뱉는다.
「게다가 여기가 밥맛은 더 없고말이야.」
누가봐도 향수병 증세였다. 하기사 그럴법도 하다. 그런 그녀에게 난 슬쩍 미소를 흘리며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예민한 스텐푸~는 나의 행동을 바로 알아챘다. 그녀는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난 품 속에서 금속재질의 사각플라스크를 슬그머니 꺼내놓았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물론 술, 그 중에서도 버번이다.
마개를 열자, 버번 특유의 강한 향이 확 피어오른다. 스텐푸~는 난생 처음맡는 강렬한 냄새에 움찔거렸다. 나는 그것을 물이 반 정도 남아있는 잔에 따른다음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루할 때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한 법이지.” 내가 내민 잔을 보고 스텐푸~는 갈등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호기심이 더 강했던 모양으로, 이내 촉수를 담근다. 절반으로 희석하긴 했지만, 술을 처음 마셔보는 이라면 만만치 않은 도수일 것이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술을 빨아올리는 스텐푸~의 외관에 변화는 없었다. 아니, 5분 동안은 변화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술을 전부 빨아들이고 나서 잠잠하던 스텐푸~는 약간 시간이 지나고나자,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촉수의 움직임이 가관이었다. 바닷속 해초마냥 흐물대다가 서로 부딪히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촉수끼리 마주하면 스파크가 생긴다는 것은 이 때 처음 알았다. 1단계 주사(?)는 그 정도 였고, 2단계로 돌입하자 더욱 심각해졌다. 카멜레온에 발광 다이오드를 적절히 조합하면 비슷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순간 나는 스텐푸~가 클럽의 조명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워낙에 격렬한 변화인지라, 옆에서 수저를 뜨던 데런은 밥을 엎질러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가장 놀란 것은, 나도 아니고 데런도 아닌 빙뱅이었다.
빙뱅은 멀찍이서 스텐푸~의 이상행동을 감지하고 날아왔다. 이것은 과장이 아닌데, 그는 말 그대로 앞사람 머리를 밟고 날다시피 도약했기 때문이다.
빙뱅은 그녀의 상태를 살펴본 뒤, 고개를 내 저었다.
「이런 맙소사, 과부하잖아?」
다른 사람들도 우리 테이블 근처로 몰려들었다. 빙뱅에게 머리를 밟힌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화를 참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별거 아니오. 가벼운 과부하 증상일뿐. 당신들이 흔히 과로라고 부르는 증상과 비슷해요. 일단 좀 쉬게 해야겠군.」
빙뱅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스텐푸~는 보건실로 옮겨진 뒤 곧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수그러들었고, 그 관심방향이 다시 빙뱅에게로 돌아갔지만 동료의 안위를 걱정하는 빙뱅의 표정을 보고 일단 물러났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명백한 연기였다. 빙뱅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귀찮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물러나자 그가 제일먼저 내뱉은 한마디가 나의 가설을 증명해주었다.
「휴우, 이제 좀 살겠군.」
“역시 척이었나?”
빙뱅은 ‘후욱’하는 숨소리를 냈다. 보통 긍정할 때 하는 행동이다.
「그보다 다른 얘기부터 하지. 뭘 먹인거야?」
모르는 척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놀라기로 했다.
"음? 알고 있었나?“
「감각이 마비되지 않은 바에야, 저 지독한 향을 어떻게 놓치겠어.」
그녀가 거의 다 마셔버려서, 잔에는 술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는데 대단한 후각이었다. 난 말없이 술을 한잔 더 따랐다. 빙뱅은 촉수를 가까이 대보더니 진저리를 쳤다.
「으윽, 지독하구만. 이걸 먹였단 말인가?」
“절반정도 희석시켰지.”
「미쳤군. 준 자네도, 마신 스텐푸~도.」
“자네도 한잔?”
내가 장난스럽게 술을 들이대자 빙뱅은 심하게 도리질쳤다.
「거절하겠네. 어쨌건 이번에는 모르고 한 일이니, 별 말 않겠지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게.」
“사과하지. 하지만 스텐푸~가 너무 우울해하는 것 같아서.”
「공박사」
빙뱅은 자못 진지한 분위기였다. 오늘은 익숙한 외계인들의 익숙치 않은 모습을 자주 보는 날인 것 같다.
「자네가 한 짓은 매우 위험한 일이야. 스텐푸~는 보기드문 흥분상태로 접어들었었단 말이야. 다행히 임계점 부근의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선을 넘었을 경우엔 어떻게 됬을지 장담못해.」
“그렇게 위험한 상태였나?”
「가능성이 있단 얘기야. 자네들 담배핀다고 폐암에 반드시 걸리진 않지? 하지만 폐암 걸리기 싫으면 담배를 끊으라고 하지. 그런 것과 비슷한 의미일세. 쓸데없는 리스크를 만들지 말자고. 최악의 경우, 그녀 혼자 죽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여기 모인 연구원들 모두가 즉사할 수도 있었어.」
등에 식은땀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그 정도인가?”
「우리가 구태여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네만, 므잉와옹기엥에서 공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그 중에서도 기밀관련을 다루는 이들은 생체칩에 특정한 코드가 입력되있네. 신변에 특정한 위협이 발생하면 자폭하도록. 저 저주받을 음료는 위협은 아니지만, 스텐푸~의 신체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에 대해서는 한 마디 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하네.”
「아니, 알면됬어.」
빙뱅이 그렇게도 당부했건만, 스텐푸~에게 잔을 건네는 나의 모습이 정말이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과차 방문한 것인데, 이게 뭐하는 짓이람. 하나 변명해두자면, 이번에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 한번의 경험만에 눈을 뜬 것인지, 스텐푸~는 나에게 재차 술을 요구했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녀는 협박과 애원을 뒤섞어가며 부탁했고, 나는 그런 모습에 기묘한 끔찍함을 느꼈다. 스텐푸~가 그런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느낀 감정일지 모른다. 그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도 그녀에게 두 번째 잔을 건넬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스텐푸~도 이번에는 생각없이 술을 들이키지 않았다. 소량만을 적절히 희석해서 섭취하기 시작했다. 때문인지 발광(發光)하는 정도도 이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솔직한 감상을 섞어서 말한다면 각도를 바꿔가며 스테인글라스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는 나름대로 혼자만의 쾌락을 만끽하고 있었고, 나는 잠자코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종 오른손에 들고있는 버번으로 입술을 적셔주면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스텐푸~의 촉수는 이리저리 휘적휘적 움직였다. 아니, 춤을 춘다고 표현해야 맞을 듯 하다. 그때는 급류에 휘말리는 해초처럼 볼 품 없는 모습이었다면, 이번에는 심해의 해파리처럼 우아한 모양새.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러는 것일까. 단순히 술 탓이라고 하기에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너무 나른했다.
머리 속에 한 가지 번뜩이는 가설이 있기는 했다. 스텐푸~의 기분변화에 따른 호르몬 분출. 나도 거기에 휘말린 것인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도 잠시, 왜 굳이 힘들여서 이런 기분좋은 상태를 벗어나야 하냐는 반감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면서, 플라스크가 탱강 소리를 냈다. 속이 거의 비어있는 듯, 내가 저렇게 많이 마셨던가?
그 소음이 스텐푸~의 주의를 끌었던 모양이다. 흐느적거리면 공중을 답보하여 내게 다가온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쉼없이 번쩍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미지의 생물체. 꿈과 현실의 구분이 의미없어 보인다. 꿈이란 것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었나.
아침에 눈을 떴다. 이 건물에 햇살따위 비쳐들어오지는 않지만, 나의 생체리듬이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다. 빌어먹게도 간밤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스텐푸~가 면전까지 다가왔던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제길,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려고 해봐도, 쥐어짜는 듯한 고통만 다가올뿐 유용한 정보가 잡히질 않았다.
쿵쾅쿵쾅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을때, 내 앞으로 물컵이 건네졌다. 누군지 쳐다보니 예상대로 스텐푸~였다.
“뭐지?”
「몰라서 묻는거야? 물이야. 수소와 산소의 결합물이지. 인간들은 보통 술마시고 난 다음에 이것부터 찾는다던데?」
일단 호의를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벌컥벌컥, 푸하!
“어떻게 알았어?”
「아무나 붙잡고 물어봤어.」
아무래도 그녀가 나보다 술을 먼저 깬 모양이다. 이것 참 대단한 일을 저질렀는걸? 외계인 여자와 술로 밤을 지새다니. 인간여자하고도 해본 적 없는 짓을.
“젠장,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군. 오해받기 전에 빨리 나가야겠어.”
「괜찮아. 서덕경 박사한테는 다 말해놨으니까.」
서박사는 내 룸메이트이다.
“말하다니, 뭘?”
「밤새 내 방에 있었다고.」
뒷통수를 후라이팬으로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전해진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이런 썅, 더 이상하잖아?”
스텐푸~는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가 과민반응하는 건가? 아니, 그래도, 설마, 그래도, 혹시….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불길한 상상에 한기를 느낀다. 맙소사, 외계인과 스캔들이라니!!
“요약하자면, 술이 두 분을 맺어줬다고 봐야겠군요? 하하, 이거 원. 외계인이나 인간이나 술이 사랑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인가보죠?”
기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가볍게 평가절하해 버리는 듯한 어투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스텐푸~가 희희낙락 거리고 있으니, 나도 마지못해 억지미소를 짓는다.
기자는 연이어 짓궂은 질문을 던져댔다.
“집안의 반대가 심하셨을 것 같은데요.”
“짐작하는 대로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기자양반이 최대한 짐작하는 것에 3배정도 더 상상력을 보태면 비슷할 겁니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날 노려보셨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말 그대로 날 잡아잡수시려 들었다. 어쨌건 난 어머니가 식재료 외에 직접적으로 식칼을 들이대시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날 식재료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즉, 열심히 피해다녔다.
“이놈의 자식! 그렇게 콧대 높이면서 괜찮은 여자들 다 차내더니만, 기껏 고르고 고른게 묵사발이냐!”
묵사발이라…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질정도로 창의적인 인용이건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 못할 만큼 정신없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우주적 진리는 우리 집안에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우주의 위엄은 유지되었다.
지금이야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다지만, 어머니는 결혼식 당일날까지 백안시를 유지함으로써 나를 좌절시키셨다.
스텐푸~는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항상 일관된 모습을 유지했고, 그 방향은 긍정적이었다. 용암에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시냇물이랄까. 시냇물이 용암을 굳히는 데에는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자 앞에서 며느리 자랑을 할 정도니 말 다했다.
“얼마나 착실한지 몰라요. 글쎄 우리 며느리가…”
기자는 적당히 말을 끊으려했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말의 홍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려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잠시 한숨 돌릴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옆에 있는 아내와 키스할 수 있었다. 치직.
일반적인 키스와는 다르게, 나의 입술은 스텐푸~의 3번째 촉수와 맞닿았다. 작은 스파크가 발생하면서,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그 때, 술취한 방에서 처음 경험하고 나서 지금까지 무수히 반복해왔던 행동이지만, 매번 새로운 느낌이었다.
우리의 결혼은 비단 지구뿐만 아니라 그녀의 행성, 므잉와옹기엥에도 대단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미의 기준은 다양하다는 모범적인 사례로 봐야할까요? 그의 선택이 므잉와옹기엥에 가져온 파장은 대단한 것입니다!--
나는 지구-므잉 통신기를 통해 전해진 헤드라인을 보고 혼자 킬킬 웃고있었다.
「뭘 보고 그렇게 웃어?」
스텐푸~가 나의 웃음을 감지하고 다가왔다가, 내용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굳힌다. 나는 늘상 그래왔듯이, 스텐푸~의 점액질 몸체를 쓰다듬었다.
“신경쓰지마.”
「신경안써. 오히려 당신이 신경쓸까봐 걱정이지.」 “나도 신경안써. 안 그러면 내가 왜 이렇게 태평하게 웃고있겠어?”
그제서야 스텐푸~는 마음을 놓은 듯하다.
그녀로서는 항상 불안할 것이다. ‘뻬-이↑젱’이 아닌 자신이 선택된 것이.
예상대로 스캔들이 터졌다. 처음에는 심각하지 않은 농담 수준이었다. 그런데 서박사의 무겁다고는 할 수 없는 입이 도대체가 가만히 있질 않았고, 데런의 귀에, 엄박사의 귀에, 이윽고 연구소 전체의 귀에 흘러들어가 버렸다. 더 황당했던 것은 한소리 들을 줄 알고 찾아갔던 국장실에서 오히려 환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관료들은 오히려 나에게 연애를 장려하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범우주적인 일인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지 말고, 닥치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꾹꾹 눌러참고 신경써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기 위해서 제산제가 꽤나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스텐푸~와 술을 나눠마시던 순간, 느꼈던 짜릿했던 흥분이 언제부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랑이 으레 그렇듯 내 속마음을 나도 모르는 경지에 다다랐다가, 쭈볏쭈볏 접근하게 되었다.
그 즈음에는 지구에 거주하는 외계인들도 상당수 늘어나 있었다. 개체수는 대략 200정도. 그 중에는 므잉와옹기엥의 미녀, ‘뻬-이↑젱’도 있었다.
므잉와옹기엥에서는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미를 선별해서 보낸 모양이었다. 적어도 외계인들 사이에서는 뻬-이↑젱이 지나갈 때 소음이 잦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뻬-이↑젱은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어찌나 적극적이었는지 내가 피해다닐 정도였다. 나를 향한 신경질적인 호르몬 분출이 급증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스텐푸~와 자주 접하면서 나의 유전자가 어떤 방향으로 변이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억지에 가까운 추측정도밖에. 우리에게 혼혈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입장곤란해진 것은 스텐푸~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므이와옹기엥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외모는 아니었다. 오히려 좀 못난 편에 가까웠다. 그녀로서는 뻬-이↑젱과 경쟁해야 한다는 심적부담이 대단했을 것이다.
스텐푸~는 보기드물게 의기소침해졌고, 음주량이 조금 늘었다. 내가 그녀를 달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였던 것 같다.
그러나 스텐푸~는 빙뱅 다음으로 외교관으로 뽑힐 정도로 능력있는 외계인이었고, 당연히 우수한 두뇌였다. 그에 비하면 뻬-이↑젱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다. 난 내 호감의 화살표를 스텐푸~에서 뻬-이↑젱으로 돌릴 마음이 먼지 한톨만큼도 없었다.
고백컨데 내 앞에 잘 생긴 해파리를 갖다놓건, 못 생긴 해파리를 갖다놓건 거기서 거기아닌가. 난 기왕이면 잘 생긴 해파리보다는 똑똑한 해파리를 택하기로 했다. 나는 므잉와옹기엥에서 떠벌리듯이, 외모를 안 따지는 것도 아니고 플라토닉 러브 맹신자도 아니다. 내가 아닌 어떤 지구인이라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나는 스텐푸~에게 프로포즈 할 때, 이 모든 사실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 편이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더 건설적인 행동임을 숙지하고 있었다. 스텐푸~ 역시 나의 직설과 독설의 중간쯤 되는 말에 기뻐해주었다. 이 정도면 참으로 잘 맞는 한 쌍 아닌가.
이것이 내가 성격에도 맞지않는 교섭회담에 꼬박꼬박 참여‘당하는’ 이유이다. 알게모르게 스텐푸~의 남편의 존재는 이 회담에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몇시간씩 멀뚱히 자리만 꿰차고 앉아있는 일은 좀이 쑤시기 그지없지만, 막대한 보수가 나오므로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었다.
교섭의 행보는 긍정적이었다. 각국 대표는 명왕성을 담보로 얻어낼 수 있는 기술을 최대한 뽑아내었고, 외계대표는 순순히 수용했다. 또한 명왕성의 부재를 메울만한 방법은 지구측 과학자들에게 상세히 브리핑하도록 했다.
물론 우리가 검토하더라도 당장 어디가 잘못됬는지, 또는 어디가 납득가능한 부분인지 판단하기는 힘들었다. 몇세대를 앞선 기술이므로. 하지만 빙뱅을 비롯한 우호적인 외계과학자들의 도움은 우리가 그 도식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지표가 되어주었다.
지난했던 협상이 거의 마무리되고 우리가 약 9개월에 걸친 검토과정을 끝냈을 때 공식선언문이 체결되었다. 그 골자는 ‘134340 PLUTO 대 르뭬시우 교환’. 르뭬시우는 외계어로 값진 기술들이라는 의미이며, 문자를 표현할 수 가 없어서 독음을 썼다.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연달아 처리된데서 온 평온함 덕분인지, 곤히 자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상하다 스텐푸~는 날 이렇게 깨우지 않는데.
“우음…”
잠이 덜 깬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필시 사람일 것이라는 나의 착각때문이었다. 그러나 들려온 소리의 근원지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더 내려야했다.
“빙뱅?”
내 주의를 끌기위해서 휘파람 소리를 내고있던 빙뱅이 눈에 들어왔다. 답지않게 몹시 초조한 모습이다.
“하암,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빙뱅은 대답없이 촉수를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어대었고, 조금 정신이 든 나는 그제서야 그가 컨버터를 달고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응? 이봐, 컨버터도 달지않고 뭐하고 있어?”
질문을 던졌던 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이마를 때렸다. 대답할 수가 없잖은가. 다행히 우리집에는 스텐푸~ 때문에 예비컨버터가 더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져다가 빙뱅에게 씌우려했다.
탁!
빙뱅이 나의 손등을 치는 바람에 움찔하다가 컨버터를 떨어트릴 뻔했다. 그냥 친 것도 아니고 약한 전기충격이 곁들여져 있었다. 다행히 후다닥 움직여서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순간 흥분한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봐, 왜 이러는거야?”
또다시 묵묵부답. 적어도 그의 격렬한 거부의사는 확실히 느껴졌다. 난 영문도 모른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나다.
노트북을 켰다.
빙뱅은 노트북이 운영체제를 구동시키는 시간동안에도 참을성없이 치짓치짓 스파크를 튀켜대었다. 다행히 오늘은 스텐푸~가 외박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잠에서 깰까 노심초사할 염려는 없었지만, 빙뱅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왜 저러는 것일까.
노트북이 작동가능상태가 되자마자, 빙뱅은 미친듯이 타자를 놀렸다.
그러나 내용은 별거 없었다. 그는 한 단어만 미친듯이 쳐대고 있었다.
「Danger!Danger!Danger!Danger!Danger!Danger!Danger!Danger!」
아무런 설명도 없는 한 단어였지만, 어쩐지 등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이봐, 일단 진정하고…”
나는 빙뱅의 몸을 잡고 진정시키려 했다.
치지직!
“우왓!”
전기가 격렬하게 내 손끝을 거부했다. 아마도 빙뱅의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그 역시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으니. 나는 당황을 추스릴새도 없이 그에게 진정하라는 손짓을 보내며 노트북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타자를 쳐서 보여주었다.
「진정하고 일단 무슨 일인지 말해봐!」
그러나 빙뱅은 우물쭈물 도대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어떻게하면 사태의 심각성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심하는 듯했다. 다시 빙뱅의 머리위로 전기 튀었다. 아까와는 심히 이질적으로 이번에는 천천히 자판을 두드렸다. ㅅㅗㄱㅇㅏㅆㅇㅓ!!!
평범하지만 어쩐지 오싹하게 하는 그 단어를 난 처음 읽어보는 것처럼 천천히 읽었다.
“속,았,어?”
빙뱅이 격렬하게 촉수를 끄덕였다. 그의 강력히 긍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어떤 뿌듯함도 느낄수 없었다.
도청의 위험 때문에 컨버터는 착용하지 않고, 계속 노트북으로 대화했다.
「술 때문이야.」
“술?”
「그래, 술. 그 저주받을 음료에 축복을. 그 덕분에 알아낸거야.」
“난 당최 무슨 소린지.”
「생체칩!」
무슨 단어공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우리 몸에 박아넣은 생체칩에 내가 모르는 기능을 추가해넣었어. 그게 나의 사고구조를 우회시키고 있었던 거야.」
내 머릿속에 진부한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세뇌?”
「그래, 그렇게 표현하면 되겠군. 세뇌. 그것도 완벽한 세뇌지. 본인은 자기의지대로 행동한다고 굳게 믿을테니. 젠장할!」
빙뱅은 분에 겨워 못 참겠다는 듯, 몸을 동동 굴렀다. 그래봤자 점액질 몸체라 뭐하나 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명왕성 대체공식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오차를 내가 감지할 수 없게 막고 있었어. 그런데 어제 스텐푸~가 건네준 술을 마시고 나서 깨달았지. 이건 함정이야.」
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해답을 보고 문제를 풀면, 무심코 해답이 틀리더라도 그것이 맞는 것인양 착각을 하게 되지. 지구 과학자들이 이 맹점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어. 내 생각에는 아마 나 말고도 펨르↓비옉꼬 나 췌↑벡솅크 도 같은 조치에 취해졌을거야. 분명 더 많겠지.」
펨르↓비옉꼬, 췌↑벡솅크 둘다 빙뱅의 동료 과학자들이다.
빙뱅의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난 그가 대충 설명해 준 내용을 듣고서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알겠나? 이건 함정이야. 이대로는 태양계에서 지구가 살아남을 수 없을걸. 그들이 노리는 건 명왕성 따위가 아니야.」
“우리를 죽여서 뭘 얻는다고?”
「자네들이 없어지면 여기는 주인없는 태양계야. 아주 바람직하고, 안정적이며 주인도 없는 무주공산이라 이걸세.」
“아니, 잠깐. 말이 안되. 왜 이렇게 복잡한 수를 쓰는거야? 정 그렇다면 막말로 핵폭탄이라도 몇 개 떨어뜨리면 되는 거잖아?”
빙뱅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난 내가 뭘 잘못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봐, 공박사.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문명은 자네들보다 훨씬 우수하다네. 최소한 자네들 보다 사회의식이 떨어지진 않지. 자네들은 전쟁 벌일 때 사람들이 앉아서 박수만 치고 있던가?」
나는 무심코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시민단체…”
「그래. 그 시민단체라는 것이 므잉와옹기엥에도 존재하고 있네. 장담컨대 자네가 상상하는 그런 수준의 규모가 아니야. 정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네들은 평화주의자야. 그런 판국에 대놓고 지구를 없애버리겠다고 할 수 있겠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수로’ 일어난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납득해야되. 루우타루빙뱅같이 위대한 과학자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오류에 의해서.」
빙뱅은 굳이 강조하지도 뽐내지도 않았고, 나 역시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는 어느모로 보나 위대한 과학자인 것이다. 동족들의 음모에 분연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그날 스텐푸~에게 술을 건네지 않았다면, 그녀와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빙뱅이 스텐푸~에게 술을 건네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난 나의 주벽에 난생처음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난 바로 정부로 직행하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은 조속히 매듭지어져야 했다. 상식적으로 봐도 분명히 그런데, 뭔가가 켕겼다.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뭔지 나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어쩐지 빙뱅은 알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봐, 빙뱅.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야.”
대답을 할 수 없었던 빙뱅은 꿈지럭거림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내 손가방 속에 숨어있었다. 혹시라도 외계밀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에 자네들 몸에 박혀있는 생체칩에는 자폭기능이 삽입되 있다고 했었지? 신변에 위협이 생기면 작동한다고. 그 위협이란 것이 육체적인 측면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측면인가? 후자라면 가방을 두 번 두드리게.”
잠시 뜸을 들이던 빙뱅은 가방을 두 번 두드렸다. 툭툭.
“특정기밀을 유출할지도 모르니까?”
미미한 진동이 두 번 울린다.
“그렇다면 생체칩은 숙주의 심경변화를 감지한다는 이야기인데, 하나만 더 묻겠네. 자폭은 자동인가 수동인가?”
가방에서 촉수가 스물스물 올라오더니 나에게 쪽지를 하나 건넸다.
「조용한 데 가서 얘기하지.」
「자동이야. 하지만 수동전환도 가능하지.」
“일부러 말 안 한거지?”
「부정않겠네. 보다시피 자네는 금방 눈치챌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마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을걸세.」
“설마…”
「말해봐.」
“지구에 있는 외계인들이 자제력을 발휘해서 자폭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므잉와옹기엥에서 직접 원격자폭을 시행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될테지. 지구에서 교섭을 거부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들 계획을 눈치챘다는 것이고, 높은 확률로 므잉와옹기엥인 일 테니까. 그들로서는 허겁지겁 은폐하려 할 것 아닌가?”
「정확해.」
너무나 태연히 대꾸하는 빙뱅의 입을 후려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겐 입이 없었다. 가까스로 욱하는 심정을 억누른 나는, 그러나 어투까지는 억누르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자네뿐만이 아니라, 지금 지구에 와 있는 자네의 동족 모두가 죽을지 모른다는 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다 죽을거야. 이 더러운 계획이 본토에 알려지면 절대 안 되니까. 그리고 자네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알고있네. 맞아, 스텐푸~도 그 일원이지.」
“옘병할. 나를 홀아비로 만들 셈인가?”
「더 많은 부부를 구할 셈이었다고 생각하게.」
“냉철하군. 이건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상차이인가?”
「아니, 지성의 단계차이겠지. 자네도 보다 더 이성적인 존재가 된다면, 납득할 걸세.」
“잘 됬군! 난 납득하지 않겠네! 보다시피 아직 저등한 존재라서 말이지. 다른 수를 찾아야해.”
「너무 위험해.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
“썩을! 가장 최악의 방법이기도 하잖나! 어차피 죽을 거 시도는 해봐야지!”
빙뱅이 한숨을 쉬었다. 보기드문 모습이다.
「알겠네.」
나는 묘비 앞에 가지런히 국화를 내려놓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내 행동을 바라본 스텐푸~가 묻는다.
「뭐야, 그건?」
“국화라는 꽃이야. 보통 죽은 이를 위해 바치는 꽃이지.”
다시한번 묘비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경함을 느낀다. 몇 번을 봐도 마찬가지다. 가슴 한켠에서 우울함이 고개를 디민다.
“스텐푸~”
「응?」
“후회하지 않아?”
내 질문을 받은 스텐푸~는 도리질친다.
「전혀, 당신은?」
“가끔. 아주 가끔.”
물기가 묻어나는 듯하다. 스텐푸~ 역시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밝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래도 잘 했다고 생각해. 안 그랬으면 당신은 이 앞에 없겠지.”
스텐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여전히 날 꺼림칙하게 하는 묘비명을 바라봤다.
- 고옹즈 스텐푸~, 여기 잠들다. -
이 중대한 사실은 일단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 다만 나와 내 동료 과학자들 몇 명, 군 관계자 일부, 그리고 지구에 와있는 외계인 친구들 전부에게 알렸다. 물론 그 중에는 스텐푸~도 있었다. 이들을 모두 한 곳에 모이게 하느라, 꽤나 진땀빼야 했다. 모인 장소는 납으로 단단히 봉해진 방공호였다.
일부는 수긍하는 눈치였고, 대부분은 경악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전자가 대부분 외계인이었고, 후자가 지구인들이었다는 사실은 꽤 재밌는 점이다.
나와 빙뱅은 연이어 우리의 계획을 알렸고, 그러자 방공호는 더욱 큰 침묵에 휩싸였다. 일부는 제대로 이해를 못한 듯, 한 질문을 또하곤 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이 계획을 이해할 때 즈음,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스텐푸~에게 향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계획의 핵심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 계획은 나에게 모든 진상을 전해듣고 난 뒤, 그녀가 고안한 것이었다. 끝까지 이에 대해 반대하던 나는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스텐푸~는 내가 선언하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직접 입을 열었다.
「모두에게 죄송한 말이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아무도 방공호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번에 므잉와옹기엥인들 전부를 불러모은 것이니까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예, 우리는 스파이를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죄송하지만 반대의견은 듣지 않겠습니다.」
다들 놀라고 있었지만, 감히 불평을 내뱉지는 못했다. 지금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자가 가장 많은 것을 모험에 걸어둔 상태였으므로.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충분히 교양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소란은 빠르게 잦아들었다.
「오래걸리진 않을 겁니다. 길어야 세 달일 겁니다.」
군 관계자들 역시 철저한 입단속을 요구받았다.
준비는 빨랐고, 실행은 더 빨랐다. 그녀가 시험대 위에 않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난 그녀를 불러세웠다.
“스텐푸~”
그녀는 대답없이 돌아봤다. 난 다가가서 그녀의 촉수에 내 입을 맞추었다.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부디 다 잘 되길.”
「그럴거야, 아마도.」
스텐푸~의 태도에서 딱히 불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빙뱅이 다가와서 다시한번 안심시켰다.
「걱정말게, 시뮬레이션은 모두 성공적이었어. 웜홀을 통과한 신호를 복조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간단하다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고있는 입장에서,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턱이 없지만 난 억지미소로 화답한다. 빙뱅은 눈짓을 보냈고, 펨르↓비옉꼬가 스위치를 눌렀다. 동시에 두 종류의 기계가 작동을 시작했다. 일 처리는 순식간이었다. 스텐푸~는 여전히 시험대에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녀의 육체가 거기에 있었다. 난 가만히 손을 대 보았다. 감촉은 그대로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냉동시켜야지.」
스텐푸~의 육체는 바로 냉동고에 담겼다. 그녀의 육체와 함께 동봉되는 것은 그녀의 메모리이다. 저 메모리에 스텐푸~의 모든 것이 응축 되있다. 우리가 한 일은 일반적으로 므이와옹기엥인을 전송하는 프로세스와 동일했다. 단, 정신 데이터를 복제했다는 것, 그리고 ‘고옹즈’를 소멸시키지 않고 보존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전송데이터에 약간의 조작을 가했다는 것이 달랐다.
이론적으로 그녀는 이동하지 않았다. 저 안의 냉동고에 잠들어있을 뿐이다. 분리된 육체와 정신을 가진채. 이로써 빈 껍데기인 육체에 내장된 생체칩은 작동하지 않는다. 생체칩은 정신활동에 수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송한 것은 무엇인가.
빙뱅과 펨르↓비옉꼬는 간단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는 않은 태도로 답변했다.
「파편이지. 스텐푸~의 파편.」
뒤이어 남은 외계인들도 속속들이 정신을 메모리에 이동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고옹즈’에 그들의 파편을 심어넣었다. 그들은 고옹즈이면서, 본체인 존재가 되었다.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할 테지만.
빙뱅은 자기 복제를 거부했다. 그는 그대로 남기로 했다. 나에게 진실을 밝힐 때부터 그러했듯이, 그는 담담하게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를 설득하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모종삽으로 산을 옮기려 하고있음을 깨달았다. 의미없었다. 빙뱅은, 루우타루빙뱅은 말했다.
「난 이런 자기기만에 나를 내 맡기고 싶지않네. 자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랄까. 내 동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이렇게 마지막에 남기는 했지만…. 그리고 내가 있으면 혹여나 생길지도 모를 변수에 대비하기도 훨씬 쉬울 것 아닌가?」
루우타루빙뱅의 프라이드는 대단했다. 결국 그의 신념을 따르기로 했다.
두달 뒤, 우리는 복제외계인 모두를 마취제로 재워둔 뒤, 한 장소에 모아두었다. 내부에서 어지간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도 금하나 가지않을 방공호였다. 나와 연구원들과 빙뱅은 조용히 그 안에서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다.
두달 하고도 보름 뒤, 드디어 신호가 왔다. 역시 빙뱅이 가장 빠르게 감지했다. 생체칩에서 강력한 고주파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고, 뒤이어 감지기에서도 신호가 왔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후다닥 달려나갔다. 빙뱅만 남아있었다. 난 달려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눈 앞이 어쩐지 흐릿하다. 내가 그를 제대로 바라보고있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는 어서 가라는 듯이 촉수를 꿈지럭거렸다. 그리고나서 한말은 처음 봤을 때, 처음 건넸던 그것이었다.
“앙~녀엉~?”
“푸흡.”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스스로도 답을 낼 수 없는 행위를 마지막으로, 난 등을 돌렸다. 방공호의 문은 신속히 닫혔고, 빠르게 잠겼다. 타륜이 힘차게 돌아갔다. 팽그르르르.
곧이어 격렬한 진동이 전해졌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연속적으로….
모든 것은 계획대로 성공적이었지만, 생각만큼 기쁘지는 않았다.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먼저 ‘스텐푸~더미Dummy’ 즉, 정신데이터 조작을 가한 제 2의 스텐푸를 므잉와옹기엥에 전송한다. 스텐푸~더미는 남아있는 기억에 따라, ‘자의적으로’ 므잉와옹기엥 정부에 항의한다. 애당초 바로 언론에 알리지 않는 것은 스텐푸~ 혼자서 접촉할 수 있는 채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윗선에서 바로 통제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경계가 강화되면 두 번째는 더욱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에 직접 항의하는 것이 효과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이것은 그들의 관심을 돌려놓기 위한 포석이다.
정부에 빙뱅과 그의 동료들이 산출한 데이터를 증거로 스텐푸~더미가 항의하면, 반드시 압력이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 압력은 필시 자폭유도일 것이다.
예상대로 정부는 스텐푸~더미가 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전에, 사전에 입막음 하기로 결정했다. 자폭명령을 내린 것이다.
방공호에 모아놓은 지구의 외계인들이 모두 폭발한 그 시기를 기점으로 약 한달 전에, 스텐푸~더미는 사망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검출작업에 들어간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자폭코드를 전송받은 생체칩은 내부에서부터 녹아내린다. 확실한 데이터말살을 위한 작업인 셈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스파이들은 생체칩이 탄화됬을지는 몰라도 녹아내리지는 않는다. 과연 몇몇 시체는 그런 흔적이 없었다.
스파이와 일반 외계인을 선별한 우리는 후자를 므잉와옹기엥으로 전송한다. 빙뱅과 펨르↓비옉꼬를 비롯한 유력자들은 연구소등을 통한 개인적인 수신루트가 있었다. 그것을 이용하기로 하고 미리 좌표를 예약해두었다. 지구에서 육체를 잃은 그들은 므잉와옹기엥에서 본래의 육체를 온전히 되찾을 것이다.
지구의 외계인들이 확실히 소멸되었다는 역신호가 므잉와옹기엥에 도착하는 것과, 그들의 육체 및 정신데이터가 도착하는 것은 거의 동시일 것이다.
정부가 역신호를 감지하고 마음을 놓은 시점에서, 펨르↓비옉꼬와 동료들은 활동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또다른 숙청의 가능성은 접어놔도 좋다. 자폭코드는 발동순간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동삭제되기 때문이다. 확실한 은폐를 위한 조치가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리고 스텐푸~는 여기 남기로 했다. 그녀가 므잉와옹기엥에 돌아가는 것은 모든 사태가 어느정도 진정된 다음이 될 것이다.
모든 외계인들의 전송을 마친 뒤, 나는 그녀의 고옹즈 해동작업에 들어갔다. 해동은 1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녀의 메모리를 이동시키는 데에는 더 적은 시간만이 소요됬다. 눈을 뜬 그녀는 내가 알고있는 스텐푸~ 그대로였다.
「잘 됬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잘 됬어.”
「루우타루빙뱅은?」
난 헛숨을 삼켰다. 이것을 여자의 직감이라고 불러야할까. 외계인이라도 여자의 직감이 예리하다는 것은 공통된 부분일까?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텐푸~는 잠시 침묵하다 담담히 말했다.
「그렇군. 왠지 그럴 것 같았어. 그게 내가 알고있는 루우타루빙뱅이지.」
스텐푸~의 촉수는 소리없이 다가와서 내 입술에 와 닿았다. 작은 스파크가 나의 대뇌를 자극했다.
레지스탕스에 가까운 산발적 로비전략은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반년가량 지나자 므잉와옹기엥 정부에 대한 현지 민간단체들의 성토는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태였지만, 정권은 신속히 탄핵 및 교체됬다. 빙뱅의 유지를 받들은 펨르↓비옉꼬가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상당기간 분쟁의 소지는 없을 것이라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스텐푸~의 끈적한 촉수를 맞잡을 수 있다니.
아울러 나에 대한 므잉와옹기엥인들의 관심이 크게 증가한 듯 했다. 췌↑벡솅크는 현지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내가 므잉와옹기엥을 방문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하기까지 했다. 덧붙여 점액질 몸으로 체질개선을 해볼 생각은 없냐고 넌지시 물어오기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지만, 생각해본다고는 했다. 단, 반드시 본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부로 말이다. 어쩌면 난 세계최초의 외계관광인이 될 지도 모르겠다.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고 그에대한 부가가치로 수입또한 만만치 않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런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끊고 싶었다. 난 오늘도 스텐푸~와 함께 공동묘지를 방문했다. 나란히 도열한 200여개의 묘비들. 이런다고 그들에 대한 속죄가 될 성 싶겠냐만,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때까지 계속 올 생각이다.
스텐푸~더미, 펨르↓비옉꼬 더미, 췌↑벡솅크 더미 등등…… 그리고 빙뱅.
모든 묘비를 하나씩 돌고나니 시간이 제법 지나있었다. 그 때까지 스텐푸~는 언제나처럼 스텐푸~더미의 묘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항상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 역시 언제나처럼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텐푸~는 내 팔에 착 감겨올라와서 어깨에 걸터앉았다. 새삼 그녀와의 특별한 교감이 느껴졌다.
약속이나 한 듯이 뒤돌아 걸으며 말한다.
“잘 있어, 모두들. 고마웠어, 루우타루빙뱅.”
「잘 있어, 모두들. 고마웠어, 루우타루빙뱅.」
송종욱은 1987년생으로 현재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에 재학중이다. 군대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현재 꾸준히 장르문학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keltr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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