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은 머릿속에서 입력한 시간이 되었다고 알리는 바람에 서류를 뒤적이던 손을 멈추었다. 아까부터 이때를 기다려왔다. 인성은 책상에서 슬그머니 눈을 들어 창밖을 힐끗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이 어둠침침했다. 역시 하늘을 보고 시간을 짐작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아무리 눈썰미가 좋아도 항상 시커먼 세상에서 변화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성은 아쉬운 감이 들어 한숨을 약하게 쉬었다. 가끔은 밝아지거나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보고 하루가 얼마만큼 흘렀는지 가늠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무의미한 숫자가 아니라 주변 풍경을 보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얼핏 듣기로 지구에서는 그렇게들 산다고 했다. 아침에는 떠오르는 빛을 보고, 밤에는 가물거리는 별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성에게 아침이란 단지 눈을 뜨는 시간이고, 밤은 그저 경비근무에 들어서는 시간일 뿐이었다.
"듣자 하니 지구에 살면 창밖만 쳐다봐도 시간을 알 수 있다던데."
인성이 중얼거리자 맞은편 책상에 앉아서 바쁘게 지시 사항을 정리하던 세히가 고개를 들었다. 단발이긴 하지만, 고개를 숙이느라 새까만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세히는 아래로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물었다.
"또 그 말씀이시네요, 반장님. 이번에도 시간을 재놓고 하늘이 얼마나 변했는지 살피셨군요? 시간이 흐르면서 하늘이 달라지는 걸 한번 보고 싶으세요?"
"아니, 딱히 보고 싶다는 건 아냐. 솔직히 그런 광경을 입체영상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면 굉장히 무서울 것 같거든."
인성은 시선을 컴컴한 창밖에 못 박은 채 대답했다. 세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그런 말씀은 자꾸 왜 하시는 거예요? 누가 들으면 반장님 평생소원이 그런 건 줄로 알 거예요."
"뭐, 자세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궁금해서 그래. 무섭다고 해서 호기심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경비대대로 복무를 옮기니까 그런 느낌이 더하거든. 예전에는 몰랐는데, 밤중에 경비를 서는 일이 잦아지니까 문득 궁금해져. 낮이든 밤이든 풍경이 달라지면 경비를 서는 기분도 달라질 테니까."
인성은 그렇게 말하며 창에서 눈을 떼고 불빛이 훤한 행정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일과시간이 끝나 여기저기 텅 빈 책상이 어쩐지 쓸쓸하게 보였다. 지구에 살면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관념이 다른 인성으로서는 사무실에 둘 밖에 없다는 사실에서나 그런 느낌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밤마다 경비를 서는 느낌이 이상하세요, 반장님?"
"조금은 그래. 잠을 안 자니까 낮이 엄청나게 길어진다는 느낌이 들거든. 하지만 상관없어. 자네 같은 하사관이 있으니."
"음,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세히는 혀를 쏙 내밀며 싱긋 웃었다. 인성도 그 웃음을 보고 입가를 살짝 올렸다. 쓸쓸하니 뭐니 하는 느낌은 전부 사무실 밖으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경비대대로 보직을 옮긴 게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히 같은 사람을 만날 줄 알았더라면 진작 옮기겠다고 신청하는 거였는데, 그러지 못해서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긴 지금에라도 이렇게 와 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게다가 사무실에서 단 둘만 당직 근무를 하다니 이건 하늘이 내린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반장님, 갑자기 왜 그렇게 웃으시는 거예요?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세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인성은 웃음기를 지우고 고개를 저었다.
"응? 아니, 아니야. 내가 지금 하늘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지. 어디 보자, 말 나온 김에 면담 겸 순찰을 돌러 나가야겠어."
인성은 그렇게 얼버무리며 허둥지둥 일어났다. 행정반장은 소위 계급장이 박힌 모자와 의자에 걸쳐 두었던 두꺼운 외투도 집어 들었다. 그리고서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려는데, 세히가 신임 소위를 불러 세웠다. 세히는 인성이 빼먹은 순찰차 인식표와 당일 근무 시간표가 그려진 감광판을 한 장 챙겨주며 물었다.
"운전병을 부를까요?"
"내가 직접 운전할 테니까 됐어. 혹시 나 없는 사이에 행정반장이나 경비대대 당직장교를 찾거들랑 순찰을 나갔다고 해. 그리고 병사들 찾아서 면담도 할 테니까 보통 순찰보다 더 오래 걸릴 거야."
"알겠습니다, 반장님. 그럼 다녀오세요."
"그래, 다녀오겠네, 하사."
인성은 간단한 경례를 받고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경비대대 건물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복도로 나오자 하사관 몇 명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거니는 게 보였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릴 것 같았다. 불이 들어온 사무실도 몇 개 없어서 사방은 생각만큼 밝지 않았다. 천장에 매달린 등은 불빛을 멀리까지 뻗치지 못해 오히려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인성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금 지구를 떠올렸다. 지구에 살면 이런 분위기를 보고 밤이라고 느낄지 궁금했다. 그 별에도 밤만 이어지고 눈으로 덮인 지역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항성이 적당한 거리에 있어 그런 지역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말도 들었다. 지구 사람이 이 별에 오면 일년 내내 밤과 겨울만 계속된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신임 소위는 하사관들에게 경례를 받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추위가 매섭게 피부를 찔렀다. 인성은 하얀 입김을 허허 불며 순찰차로 향했다. 몇 시간 전에 사병들이 눈을 치웠건만 그새 또 눈이 내려 발밑에서는 뽀드득 소리가 났다. 인성은 실내 차고로 들어가 인식표로 문을 연 다음 누런 순찰차를 몰고 허옇게 털옷을 입은 도로로 나왔다.
순찰도 순찰이지만, 일단 중요한 건 사병 면담이었다. 인성은 눈길 위로 차를 몰고 가면서 누구부터 면담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부임한 지가 닷새 밖에 되지 않은 터라 아직도 둘러볼 곳이 많고, 이야기해야 할 상대도 많았다. 우선 장갑차 대기병은 다음에 해도 괜찮을 듯했다. 보행전차 조종수들도 아직은 차례가 아니었다. 초소 담당은 나중에 하나씩 확인하면 될 테고, 도보 순찰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는 탄약고 경비병을 면담했으니 오늘은 군견병을 상대할 순서였다. 군견병이라……. 어쩐지 불편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신임 소위는 군견병 면담으로 마음을 굳히고 기지 외곽 지역으로 방향을 돌렸다.
인성은 지금껏 군견병과 말을 주고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부대에 온 지 얼마 안 되는지라 경비병들 대부분과 이야기한 적이 없지만, 군견병에 그만큼 민감한 건 이들이 매우 특별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신임 소위가 듣기로 군견 부대원들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정신세계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들에게 말을 걸면 형편없는 발음으로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느니 관념을 깨야 한다느니 장광설을 늘어놓기 일쑤라고 했다. 그 연설에 공감하는 이가 없는데도 군견 부대원은 타 병과 이등병부터 장교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설교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닷새 전에 부대 안내를 받는 날도 그랬다. 부대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인성이 군견 내무반을 안내해 달라고 하자 세히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운전병에게 군견 우리로 향하라고 지시했다. 운전병이 조종대를 돌리자 인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물었다.
"세히 하사, 내무반이 아니라 '우리'라고 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닙니다, 소위님. 바로 들으셨습니다."
세히는 짧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대답했다. 인성은 인상을 좀 쓰고서 다시 물었다.
"내무반이 아니라 우리라니? 하사, 난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걸세. 그러면 내무반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사는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에 의문을 품고 물었다.
"소위님, 훈련소에서 군견병이 어떤 병사인지 배우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배웠다네. 가상공간에서 같이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지. 나도 군견병이 어떤 병사고 무슨 과정을 거쳤는지 다 알아.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서 산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어."
인성이 대답하자 세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음, 그러면 일단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상 이 부대에 군견 우리라고 불리는 곳은 없습니다. 군견 내무반만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기지 부대원 대부분은 내무반이 아니라 우리라고 부릅니다. 그건 군견 부대원 자신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라고 한 겁니다. 저는 소위님께서도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거야 이 부대 특성이 그런가 보지. 하사, 이제 막 도착한 내가 그걸 어찌 알겠나?"
세히는 이 대답을 듣고 갸름한 턱을 좀 문지르더니 발간 입술을 열었다.
"그건 단지 이 부대 특성만이 아닙니다, 소위님. 군견 부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내무반 대신 우리라고 부릅니다. 훈련소에서야 군견 내무반이라고 가르칩니다만, 그 곳을 벗어나면 어느 보직에 근무하든 어느 부대에 복무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소위님께서도 군견 우리란 말을 아시리라 여겼습니다."
"그래? 그러면 자네 말이 틀렸다고 해야겠네, 하사. 내가 전에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안 그랬거든. 난 거기서 군견 우리란 말을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저, 하지만 소위님께서는 전에 계시던 부대에서 근무하신 기간이 굉장히 짧습니다. 2개월 남짓이니 아예 군견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곳에서 군견 내무반이란 말은 들어 보셨습니까?"
세히가 묻자 인성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군견 내무반이란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무반은커녕 군견이란 단어 자체도 거론한 적이 없었다. 신임 소위는 약간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적 없네. 따지고 보니 내가 경비대 소위인 주제에 군견 부대가 뭔지 새까맣게 모른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아,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세히가 당황하며 뭐라고 말하려 하자 인성은 손을 내저었다.
"그만 두게. 그나저나 한참 가야 하나?"
"조금 더 가면 됩니다, 소위님. 군견 내무반은 특성상 기지 외곽에 있어서 거기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세히가 우리를 내무반이란 명칭으로 바꾸자 인성은 금세 기분이 풀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게 우스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하사에게 말했다.
"그러면 군견 내무반은 놔두고 다른 곳부터 둘러보도록 하지. 군견 부대는 나중에 외곽 지역을 돌 때 들리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소위님. 그러면 보행전차 소대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윽고 차가 보행전차 소대에 당도하자 세히는 앞장서서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신임 소위와 안내 하사는 병장들을 만나 질문을 던지거나 이야기를 듣고, 다리 달린 전차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한참을 그러다가 잠깐 휴게실에 들러 단 둘이 있게 되자 세히가 다가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소위님. 아까 일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제넘게 나선 건……."
"됐네, 됐어. 자네 딴에는 날 생각해서 그런 거니까 다 이해하겠네."
인성은 그렇게 말하며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하사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군견병을 만나시기 전에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인성은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슬그머니 찌푸렸다. 아까부터 군견을 들먹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취급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이제 막 업무를 맡기 시작한 소위라 할지라도 이건 너무 심한 처사였다.
"하사, 나도 훈련소에서 배울 건 다 배웠네. 이론만 배운 게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작전까지 다 수행했어. 초소 감시나 출입문 검색, 기동 장갑부대는 물론이고 군견병과 같이 일해보기도 했어. 그러니 더 이상 신임 소위 취급하지 말게. 하사나 사병들이 신임 장교를 우습게 안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너무하는군."
상관이 짜증 섞인 어조로 답변하자 세히는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하사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제가 소위님을 무시한다거나 업신여겨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소위님께선 방금 훈련소에서 군견에 관한 건 다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 입력한 군견병과 실제 군견병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내무반과 우리가 결코 같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쯤은 나도 짐작하네, 하사. 뭐든지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이지. 어디 그게 군견뿐이겠나? 훈련소에서 본 장갑차와 실제 부대에서 굴러다니는 장갑차도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
세히는 그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절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강조하는 것 같았다.
"겨우 그 정도라면 제가 미리 말씀드리려고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소위님.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예비 사관들이 훈련소에서 배우는 군견 교육 과정에는 굉장히 중요한 사실 몇 개가 빠졌습니다. 이를 모른 채 군견병과 이야기를 하거나 지시를 내리면 매우 당황하실 겁니다. 실제 작전 수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부대원 사기 등을 봐서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래? 그러면 군견병이 도대체 어때서 그러는 건가? 그들이 대놓고 장교에게 불만을 표시한다거나 뭐, 그러는 건가?"
인성은 여전히 인상을 풀지 않고 물었다. 세히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군견병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소위님. 군견병이 되기 위해서 여느 사람으로서는 겪지 못할 어려운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흔히 그 부대원들을 사람 대하듯 하는데, 그건 큰 실수입니다. 그들 역시 사람이긴 하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견병들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사람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게 고작입니다. 한편으로 군견 부대는 경비대 내에서 입지가 굉장히 약합니다. 그래서 그 부대원들을 동물 취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군견병 자신들도 어느 정도는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들이 내무반이란 말을 놔두고 우리에 머문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견병들은 자신이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당치도 않는 말을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아마 소위님께서 군견병과 면담할 기회가 생기시면 반드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실 겁니다. 그 엉뚱한 논리를 무시하려면 군견병이 어떤 병사인가 미리 알아두시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세히가 설명을 끝마쳤는데도 인성은 구긴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대신 눈살을 더 찌푸리며 되물었다.
"훈련소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로군. 군견병은 자신을 동물처럼 여긴다고? 군견병은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방금 나한테 한 말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소위님.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군견병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세히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인성은 부하가 한 설명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신임 소위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군견 부대를 꼭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는군."
"건방지다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제가 말씀드린 건 꼭 기억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아마 나중에 군견병과 면담하실 때 그들을 받아들이시기 더 쉬워질 겁니다. 자, 그러면 계속 보행전차를 둘러보시겠습니까, 소위님?"
인성은 짧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닷새 전 기억에서 빠져 나왔다. 소위는 하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소대 휴게실에서 조용하게 달리는 순찰차로 다시 돌아왔다. 세히가 한 말 때문에 면담을 하는 일이 어쩐지 꺼림칙했다. 인성은 손바닥이 축축해지자 잿빛 전투복 바지에 손을 쓱 문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장감이 심했다. 말이 좋아서 장교지 아직까지는 사병을 대하는 게 어색했다. 부대 사정은 이제 막 임관한 소위보다 경험 많은 일등병이 더 훤할 테니까. 거기다 주위에서 주워들은 군견병 이야기 때문에 갈수록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소위는 속으로 사병과 면담하는 걸 어려워하는 자신을 꾸짖고 조종대를 틀었다. 세히가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다. 경비대 장교로서 해야 할 일을 하러 가는 것뿐이니까. 아니, 어쩌면 그 깜찍한 아가씨가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른다. 소위가 새로 부임했으니까 다른 사관들과 미리 짜놓고 골탕 좀 먹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인성은 자신이 그 속임수에 넘어간 게 아닐까 잠깐 동안 의심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의심해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군견병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소위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미세통신기를 작동시켰다. 몸 안에 있는 통신기를 조작하자 조금 떨어진 곳에 평면 영상으로 군견병 모습이 떠올랐다. 인성은 영상을 보고 이야기했다.
"당직장교 인성 소위다. 근무 중에 이상 없나?"
인성이 묻자 상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군견병은 다른 병사들처럼 손을 들어 경례하지 않았다. 경례를 할 수는 있지만, 그 모습이 굉장히 우스워 보였기 때문이다.
"옛, 행정반장님.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군견병은 알아듣기 힘든 괴상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역시나 소문대로였다. 인성은 그 발음을 이해한 자신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대화가 통하는 편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래? 직접 만나서 보고를 듣고 싶군. 지금 어디에 있나?"
"3-5 초소 근처에 있습니다, 반장님."
"알았네. 내가 곧 갈 터이니 자넨 그 자리를 지키게나."
인성은 미세통신기를 끈 다음 군견병이 말한 초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외곽도로를 한참 달리자 차 불빛에 비친 높다란 3-5 초소가 보였다. 초소를 지나쳐 좀 더 달리자 눈 쌓인 도로에 서 있는 군견병이 나타났다. 야간에 외곽도로를 도는 군견병은 모두 여섯이었지만, 하필 저 병사를 고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말단도 아니고 최고선임도 아닌 중간 계급이었기에 상대하기가 좀 더 수월할 터였다.
인성은 차를 몰아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군견병은 어디서 보든 눈에 확 띄었다. 하긴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으니 그럴 법도 했다. 인성은 막상 눈으로 보게 되자 군견병을 동물 취급한다던 세히 말이 이해가 갔다. 미세통신기로 영상을 볼 때는 못 느꼈으나 실제로 보니까 정말 짐승이 따로 없었다. 군견병은 어딜 보더라도 커다란 개에 지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군견병으로 지원한 자는 1년간 군견과 함께 생활하며 친분을 쌓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1년이 지나면 의식을 옮겨 직접 군견을 조종한다고 들었다. 번거로운 작업이긴 하지만, 동물을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조종하는 게 나았다. 특히, 여기처럼 빛을 찾아볼 수도 없고 시설도 뒤쳐진 식민 행성에서는 시각보다 후각과 청각이 뛰어난 경비병이 필요했다.
그 결과 생겨난 생각하는 동물, 저 속에 사람이 들어 있다고 했다. 인성은 인정할 수 없었다. 저게 어딜 봐서 사람인가. 의식을 저렇게 함부로 옮긴 마당에 어떻게 사람으로 대접한다는 건가. 정말로 저 동물을 사람 취급하는 자가 있다는 건가? 아무리 정신이 멀쩡한들 또 속내가 중요하다고 한들 겉모습은 영락없는 동물인데?
게다가 군견병이 조종하는 그 동물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애견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동물은 개라고 볼 수 없었다. '크러스'라고 하는 이 생명체는 편의상 군견이라고 부르지만, 개가 아닌 새로운 동물이었다. 주위에서 흔히 보곤 하는 애견과는 생김새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우선 몸집이 그랬다. 크러스는 몸무게가 성인 남성 절반가량에 이르고, 어깨 높이는 어른 허리에 조금 못 미칠 정도였다. 더군다나 얼굴은 사나움으로 가득했다. 매섭게 치켜 뜬 눈, 기다란 주둥이와 뾰족한 송곳니, 쫑긋 선 세모난 귀. 털가죽은 잿빛이었는데, 코끝부터 꼬리까지 더욱 진한 잿빛 줄무늬가 물결치듯 수를 놓았다. 인성은 훈련소 시절, 입체 영상으로만 크러스를 접했는데도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생겨먹은 개는 난생 처음이었다. 개라고 하면 누구나 귀여움과 애교로 한껏 치장한 메토시나 치차르 같은 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대부분, 아니 모든 개들은 그렇게 생겨야 했다. 헌데 크러스는 그렇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인성을 비롯한 예비 사관들은 가상공간에서 몇 번 크러스를 접하고서야 겨우 이 늑대 같은 동물에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래, 늑대. 군견 부대원은 크러스를 가리켜 늑대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인성은 늑대 영상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줄무늬만 제외한다면 크러스는 정말로 늑대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뭐라더라. 늑대는 오늘날 개들의 먼 친척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인성은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늑대와 개는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크러스와 개들이 전혀 닮지 않았듯이.
인성은 생각을 멈추고 차 밖으로 나와 몸을 기댔다. 군견병은 정자세로 서서 상관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목에는 계급, 이름, 군번 등을 표시한 목걸이를 멨고, 방탄복도 입은 상태였다. 방탄복 한쪽 귀퉁이에는 크러스 코를 도안한 군견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인성은 목걸이를 슬쩍 쳐다보았다. 거기엔 '2년, 수진'이라고 나와 있었다. 수진이라면 여성들이 주로 쓰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사나운 동물은 아무리 봐도 암컷(아니, 여성)처럼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하반신을 살피는 것도 좀 민망했다. 신임 소위는 헛기침을 하더니 허연 입김을 날리며 말을 건넸다.
"서 있을 필요 없으니 앉게. 자네가 수진 사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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