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2199년 기해년(己亥年) 7월 17일
해저특급열차는 티켓 가격치고는 그리 쾌적하지 않다. 두 시간이면 인천에서 광쪼우(廣州)까지 주파한다지만 시트는 딱딱하고 뒷좌석의 꼬마는 쉬지 않고 내 등받이를 두들겨댔다. 말리는 시늉하던 아이 엄마는 그새 곯아 떨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하터널은 온통 암흑이니 자꾸 잡생각만 난다.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금 나는 탕즈이(唐子怡)에게 가는 길이다. 광쪼우대학 역사학과 전임강사 탕즈이 박사. 앳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지만 나이는 꽉 찬 스물아홉. 학자치고는 애송이지만 이번 연구 성과로 내년이면 벌써 조교수 승진이 유력하다.
불과 한 달 보름 전만 해도 그녀는 내 파트너였다. 탕즈이는 역사복원학자, 나는 시간화가다. 역사복원학자들은 신흥학문을 연구하는 이들답게 아직 수가 많지는 않다. 더욱이 시간화가들은 우리나라에서 한손으로 꼽아도 모자랄 만큼 희귀하다. 역사복원학은 말 그대로 연구자가 과거로 몸소 돌아가 역사를 복원하는 학문이라면, 시간화가는 그의 연구를 시각적으로 복원하는 중요한 조력자다. 악어와 악어새 사이라고나 할까. 이 두 가지 직종은 시간여행이 실용화되지 않았던들 꿈조차 꿀 수 없는 분야였다.
그렇다고 나 같은 그림쟁이에게 시간여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멋들어지게 설명하라면 무리다. 꽤 괜찮은 돈벌이가 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려보니 이쪽 개설서에는 21세기말 티벳 출신의 천재 이론물리학자 초걋 뚜룽빠가 시간여행방정식의 수학적 해(解)를 처음 증명했다고 나오긴 하더라. 하지만 이론 갖고 여행사를 차릴 수야 없는 법. 그보다 한 세기 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주장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재간이 없었잖은가. 천체망원경의 분해능이 발전을 거듭해 태양의 중력에 빛이 휘는 현상을 실제 관측하기 전까지 산발한 백발머리 노인의 이론은 그저 있음직한 ‘썰’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여행을 내 밥벌이에 써먹을 수 있게 해준 결정적 전기는 끊임없이 진화해온 궁극의 컴퓨터 덕분이다. 요즘 점성술에서부터 AI 탑재형 콘돔에 이르기까지 양자컴퓨터가 쓰이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하지만 시간여행이 가능해지기까지는 기존 양자컴퓨터를 훌쩍 뛰어넘는 차세대 기종의 탄생을 기다려야 했다.
과거로 떠나는데 왜 양자컴퓨터로도 모자라서 수퍼양자컴퓨터까지 필요할까? 정확히는 나도 모른다. 뚜룽빠의 방정식대로 하자면 출발시간대의 위상좌표와 도착시간대의 위상좌표를 정확히 동조시키는 나노 단위의 미세조정 작업이 필연적이라고 들었다. 일반 양자컴퓨터로도 값을 구할 수는 있지만 실용성은 없다. 시간여행은 만만디로 수학문제의 이론적 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니까.
출발한지 수 나노 초 안에 목표시간대의 공간에 도착해야 한다. 시공간 웜홀이 닫히기 전에 말이다. 이때 시간여행자의 몸을 구성하는 소립자 하나하나에 미치는 지구와 달, 이웃행성 그리고 태양의 중력과 운동, 나아가서는 은하의 중력과 운동까지 고려한 계산이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한다. 미처 계산대로 동조되지 못한 입자들은 웜홀 앞뒤로 흩어진다. 이는 시간여행자의 신체 일부가 산산이 해체된다는 뜻이다. 양 시간대의 위상데이터가 늘 불안정하므로 미리 연산했다가 입력하는 잔꾀는 불가능하다. 인체를 구성하는 소립자 낱개의 스핀과 전하를 측정하고 그 값을 일일이 이동 위상좌표에 맞게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연산은 사실상 2130년대 이전에는 양자컴퓨터로도 불가능했다.
누군가 달콤하게 말거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스튜어디스가 면세품을 구입할 마지막 기회라고 속삭인다. 열차 측면 전광판 시계를 보니 도착까지 20분이 채 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탕즈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 말이 파트너지 서로를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두 번이나 같이 떠났어도 매번 서로 상당히 떨어진 좌표에 낙하하는 바람에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기한이 만료되어 귀환했으니까.
시간여행은 약 삼백년 전 어느 소설가의 생각처럼 타임머신 같은 기계를 타고 갔다 오는 신선놀음이 아니다. 시간안전국 산하 타임머신 룸에 들어선 시간여행자는 목표시간대를 향해 일방적으로 사출된다. 벌거벗은 채 웜홀을 통과해 목표한 과거 시공간의 지상 1미터 위에 펑하고 나타나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출발 직전 입력된 체류기간이 만료되면 수퍼양자컴퓨터는 시간의 요동을 거슬러 시간여행자의 혈액 속에 주사기로 심어놓은 나노 크기의 발신기들 위치를 찾아내 즉시 귀환시킨다. 이를 두고 시간여행자들끼리 속어로 ‘땡긴다!’고 한다. 이는 돌아오기 전까지 시간여행자가 파견된 현지에서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맨 몸으로 버텨야 한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학자건 화가건 상관없이 시간여행자는 도둑질부터 배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시간터널을 오가는 이유는 아무리 수퍼양자컴퓨터라 한들 시간여행자의 몸과 그가 입은 옷을 양자 단위로 일일이 분간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칫 옷의 입자와 인간의 세포를 구성하는 입자들이 한데 뒤엉켜 과거나 현재에 나타날 수 있다. 무기는커녕 다른 소지품들도 마찬가지.
그러니 카메라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다. 역사복원학 전공자라 해서 모두 과거 현장으로 떠날 실전 모험가들은 아니다. 하지만 운 좋게(?) 과거로 떠나게 된 소수의 역사복원학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시간여행자들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자신의 몸을 보호할 최소한의 자구책이 있어야 한다. 옷가지와 재물을 훔치는 기술은 기본이다. 호신술도 노력하면 웬만큼 는다. 그러나 사진이나 동영상 기록 도구가 전혀 없는데 학자가 자신이 찾아간 사회의 모습을 얼마나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예컨대 천신만고 끝에 전성기의 황룡사탑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었다 치자. 대체 그 광경을 무슨 수로 전달한단 말인가. 화가 뺨치는 재주를 지녔다는 공민왕이 손수 그린 제국대장공주의 초상화는 또 어떠한가. 이 미인도가 주는 감동을 몇 마디 말로 후세에 전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백편의 논문을 쓴들 그림 한 장보다 나을까? 우리가 조선시대 왕들의 행차와 종묘제례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는 것은 조정에 소속된 화공들이 이를 세세히 그림으로 기록해 남긴 덕분이 아니던가.
덕분에 시간화가라는 더부살이 직업이 생겨났다. 역사복원학자는 과거 현장에서 몸소 체험한 바를 깊이 있는 논문으로 남기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간화가는 당대 사회상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을 남긴다. 아무리 날고 기는 역사복원학자라 한들 학자로서의 소양에다 한 가닥 하는 호신술 그리고 화가 뺨치는 재주까지 죄다 겸비할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림의 종류는 유명인의 초상화에서부터 정치적 주요사건 스케치, 성곽과 도성의 모습, 형편이 제각각인 사람들의 의식주와 풍속 등 다양하다. 글과 그림들은 회를 발라 완전 밀폐한 나무상자 속에 넣고 건조한 동굴 깊숙한 곳에 숨겨 놓는다. 현대로 돌아가 다시 발굴해낸 기록들은 방사성동위원소 측정방식으로 정확한 연대를 검증받는다. 엄연한 과거의 자료인데다 저자도 분명하니 역사기록으로서 신뢰성을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단독 저자가 아니라 역사복원학자의 연구는 시간화가가 검증해주고 후자의 그림 내용은 전자가 감수해주어 그 객관성을 높여준다.
세관을 통과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전자동 스캐너가 여행객의 동공과 지문을 대조 확인하는 데에는 몇 초면 충분했다. 그러나 방학과 바캉스가 겹치다보니 정작 스캐너 앞에 서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세계에서 정정이 불안정한 몇 곳을 제외하고는 여권이 필요 없어진 시대지만 그렇다고 택시나 지하철을 타듯 국경을 넘나들 수야 없는 일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해지자 학문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낸 분야가 바로 역사학계다. 뚜룽빠는 시간운동방정식이 대칭성을 지니므로 과거나 미래로의 시공간 전이가 둘 다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퍼양자컴퓨터라 해도 이미 사건이 확정된 과거와는 달리 앞일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기준 좌표 값을 구할 수는 없었다. 미래는 현재가 되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수한 경우의 수로 존재한다. 따라서 양자역학적으로 동시에 존재할 확률이 있는 수많은 우주들에서 일일이 힘을 꿔와 연산능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킨 수퍼양자컴퓨터라 해도 무한정 확률 연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신 과거로의 여행은 가능했다. 다만 더 먼 과거로 갈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역사학계가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낸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역사복원학은 이제까지와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과학기술 의존적이었다. 시간안전국의 승인만 받으면 역사학자들은 몸소 과거로 가 연구할 수 있었다. 시간안전국은 세계범정부기구인 시간안전보장이사회의 각국별 산하기구로서 시간여행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사고를 예방하거나 복구하는 임무를 맡아왔다.
어쨌거나 덕분에 양피지나 파피루스 같은 너덜너덜해진 문헌이나 점토판 그리고 벽에 그려진 알쏭달쏭한 상형문자 따위로 과거문명을 유추한답시고 머리를 싸매던 선무당 학문이 엄연히 검증 가능한 실증과학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남은 문제는 역사학이 현실정치로부터 어디까지 초연할 수 있느냐 뿐이었다. 역사복원학은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해묵은 과거사 논쟁으로 이해가 엇갈리는 국가들 간의 갈등과 반목을 부채질했다. 지구촌 여기저기서 불거진 역사논쟁은 급기야 전쟁도 불사할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시간안전보장이사회가 입안하고 유엔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추인하는 형식으로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시간안전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역사복원학자들은 현재로부터 500년 이내의 역사에는 일체 접근하지 못한다. 이를 방치했다가는 근현대사를 둘러싸고 민족과 국가 그리고 종교 간의 갈등이 그치지 않는 곳곳의 화약고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었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아랍제국, 영국과 북아일랜드 그리고 터키와 쿠르트 족 간의 시시비비를 양쪽 모두 납득할 수 있게 가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어차피 모든 시간여행은 시간안전국의 승인과 관리를 받게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시간안전국 산하 타임머신 룸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다. 이 머신을 제어하는 수퍼양자컴퓨터의 데이터 입력장치에는 아예 500년 이내의 타임코드는 입력할 수 없게 프로그램 되어 있고 하드웨어적으로도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시간안전법, 관계자들 사이에 흔히 ‘시안법’이라 줄여 부르는 이 법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조항이 있다. 역사복원학자의 시간여행에는 학자의 해당국가 뿐 아니라 주변국가의 이해를 대리하는 파트너 1인을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이 조항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귀환한 역사복원학자의 연구결과 보고를 둘러싸고 툭하면 논란이 빚어졌다. 얼핏 생각하면 적어도 500년 전 이전의 먼 과거로 시간여행자가 방문할 경우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인접국가들, 특히 고유한 역사가 오래된 인접국들 사이에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얽혀있는 실타래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 간의 고대사 논란이 좋은 예다. 역사복원학이 태동하기 오래 전부터 세 나라는 저마다의 국익에 따라 역사를 재해석하는데 열심이지 않았던가.
탕즈이와 함께 다녀온 고구려 유리왕 방문 프로젝트 또한 어렵사리 결정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의뢰의 주체는 형식상 중화역사문화재단과 한국의 대호 박물관 공동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호의 김관장은 실질적인 자금줄은 전자라고 귀띔해주었다. 중화역사문화재단은 자기네 쪽에서 역사복원학자를 내세울 테니 대호 쪽에는 시간화가를 대 달라고 했단다. 이는 우리 역사학계가 보기에 굿판은 자기들이 벌일 테니 우리는 분위기나 띄우라는 소리로 들릴만하다.
과거의 현장에 직접 찾아가 연구하는 행위는 깨진 도자기 조각이나 들추던 역사학계에 전례 없는 단비였다. 연구를 마치고 과거에서 돌아온 학자는 해당 시간대에 관한 한 거의 독보적인 권위자로 군림하게 된다. 반면 시간화가는 어차피 명예 따위에 관심 없거니와 설사 원한다 한들 별 소득이 없다. 그는 역사복원학자의 조력자이기에 일체의 미학적 기교를 삼가고 역사적 고증가치가 있는 사실화만을 그려야 한다. 문제는 이런 그림이 역사학계에서는 신주단지 모시듯 대접받을지 모르나 화단에서는 아무 가치 없는 넝마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사는 이들은 반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을 원하지 로도스섬 공방전 전황기록도감에는 값을 쳐주지 않는다. 예술가 자신의 고유한 정신세계가 미학적으로 우러난 것을 원하지 소아시아의 패자를 결정짓는 전쟁 양상을 얼마나 세심하게 재현했는가는 관심 밖이다.
시간화가가 이처럼 위험한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거액의 보수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시간화가 출신이 화단에서는 다분히 경멸과 야유를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예술적 독창성을 펼칠 자신이 없으니 돈에 영혼을 판 B급 예술가... 똑같이 고생고생 시간여행한 끝에 살아 돌아왔건만 역사복원학자에게는 창창한 미래와 명예가 보장되고 시간화가는 두둑한 호주머니로 만족해야 한다. 그 결과 아이러니 하게도 시간화가가 역사복원학자보다 실전적인 역사지식이 더 풍부한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역사복원학자는 두어 번 다녀오고 나서는 거기서 체험한 바를 연구 저술하느라 남은 생을 바치는 경향이 적지 않지만 시간화가는 몇 번이고 다시 시간여행을 떠나야 돈벌이가 되니까.
각설하고, 대호 박물관을 위시한 한국 역사학계가 중국 측의 의뢰를 받아들인 속내는 피차 장군 멍군 아니냐는 속셈에서 비롯되었다. 어차피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고대사 연구여행을 하려 해도 중국이나 일본의 파트너를 동반해야 한다. 그러니 다음에 우리가 원하는 판을 짜려면 이번에는 양보하는 게 현실적이었다.
아울러 이는 시안법 제정 직후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에 벌어진 첨예한 역사분쟁을 상당부분 의식한 판단이었다. 고대사, 그중에서도 특히 고구려의 뿌리를 놓고 일본 못지않게 우리나라와 신경전을 벌여온 중국은 국가 간 시간안전국 채널을 통해 한국이 아무리 학술연구가 목적이라 해도 고구려로의 시간여행을 삼가 해달라고 요구해온 적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자 중국은 유엔 산하 시간안전보장이사회에 그들의 요구를 안건으로 올렸다. 이리되자 이사국 대다수는 어차피 자국 이익과 무관한 이상 인접국과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큰 시간여행은 설사 순수한 연구목적이라 하더라도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입장으로 쏠리는 분위기였다.
난처해진 한국은 최후의 강수로 반격했다. 그렇다면 중국 측도 고구려 존속기간과 맞물리는 한나라부터 당나라에 이르는 시기로는 시간여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7백년이 넘도록 수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 동방의 패권 국가였다. 따라서 중국인들만의 고대사 연구를 위한 시간여행은 일방적인 역사해석을 낳아 한국 국민의 문화적 자주성에 크나큰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다는 요지였다. 시간안전보장이사회는 판단을 미룬 채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었다. 끝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유엔 총회에 안건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한국정부가 압박했을 때 마침내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약소국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총회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면 중국의 일방통행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터였다.
막판 타협의 골자는 이렇다. 고구려 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려면 동북아 3국의 공동논의를 거쳐 적어도 두 나라를 각기 대표하는 이들로 구성된 팀을 꾸려야 한다. 또한 3국은 과거사 연구가 현재의 영토 및 기타 권리와는 앞으로도 영원히 무관함을 재차 확인하였다. 형식상 일본을 끌어들였으나 실제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첨예한 입장이 조율된 결과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역사복원학자와 고구려를 다녀왔으니, 나라는 존재는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버리는 판에 쓰인 패였다. 별로 섭섭하지는 않다. 어느 쪽에서 불러주던 나야 보수만 두둑하면 남는 장사니까.
22세기 말에도 광쪼우 시내는 자전거들로 붐빈다. 앞좌석에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택시 기사가 솔직히 못미덥다. 마구잡이로 지나가는 자전거들을 향해 일일이 경적을 울려대며 욕을 퍼붓느라 바쁘다. 혹여 초행길 관광객의 혼을 빼며 이리저리 길을 우회하여 미터 요금이 잔뜩 나오게 하려는 수법은 아닐까. 호텔이 아니라 광쪼우 대학이라고 분명히 말해주었건만 벌써 세 번째로 외관이 번지르르한 호텔 앞에다 세우고 뭐라 떠들어댄다. 손가락에 낀 반지형 무선전화기가 절로 눈에 들어온다. 탕즈이에게 미리 연락했으면 누군가 마중 나올 사람을 보냈을 텐데.
“노 유니버시티, 노 머니(No University, No Money)!”
지폐를 턱 아래에 대고 외치자 택시 기사가 슬그머니 차를 움직인다. 갑자기 영어를 기막히게 알아듣는다. 홍채인식이나 지문인식만으로 신용결제가 이뤄지는 세상이지만 여기서는 지폐가 공공연히 쓰인다. 아직도 중국의 블랙마켓은 전세계에서 수위를 다툰다.
광쪼우 대학 캠퍼스는 걷고 또 걸어도 끝이 없다. 물어물어 역사학과 사무실을 찾고 나니 어느새 저녁 햇살이 건물 안을 기웃거린다. 1박할 생각은 없는데 낭패인가.
광쪼우 대학에는 아직 역사복원학과가 없다. 만일 역사학과에서 역사복원학과가 갈라져 나온다면 보나마나 간판스타는 탕즈이가 될 수밖에 없으리라. 건물 외양은 번듯해보였지만 막상 복도는 지저분하고 창틀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전공 학문에 걸 맞는 연배의 건물이라고나 할까.
혹여 헛걸음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탕즈이는 연구실에 있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 허공에 노크하기도 머쓱해 그냥 들어섰다. 방 안에는 조교 둘이 서서 의자에 앉아 있는 탕즈이를 에워싸고 있었다. 조교 한 명은 손에 쥔 휴대용 빔 프로젝터를 벽면 스크린에 비춘 채 연신 화면을 바꾸었고 다른 한 명은 탕즈이의 말을 쉼 없이 받아 적었다. 화면 내용 가운데 일부는 내가 그린 그림들이다. 발굴과정에 참여한 뒤로 처음 보는 것들인데 두 장의 인물화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하나는 유리왕의 초상이고 다른 하나는 해명의 것이다. 한눈에 봐도 같은 핏줄이 아닌 줄 알아보게 생겼다. 국내성에 도착하자마자 홀본으로 떠나라는 왕의 명에 등 떠밀려 국내성은 스케치할 겨를이 거의 없었다. 유리왕 얼굴을 포함해서 위나암성 관련 그림들은 죄다 홀본에 간 뒤 기억을 드문드문 되살려 그렸다.
“아니 이게 누구시더라!”탕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팔짱을 꼈다. 수척한 얼굴에다 한눈에 봐도 반가워하는 표정이 아닌 게 역력하다.
“몸은 어때, 탱박사?”듣자하니 그녀는 타임머신 룸에 나타나자마자 하혈이 심해 쓰러졌다고 한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악바리답게 사흘 만에 퇴원했다나.
“흥, 이제야 사과할 짬이 났나 봐요.”탕즈이는 원래 우리말이 유창한 편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오랜 만에 들으니 유리왕 시대로 떠나기 전 둘이서 집안현 부근을 현장답사 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3세기경 고구려 말을 그녀가 어눌하게나마 내게 배웠던 기억도 났고. 당시에 이미 나는 광개토왕 치세를 비롯해서 고구려 중후반 사회를 여러 차례 다녀온 터라 어느 역사복원학자보다 실전적인 고구려어 선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구려 초기로 가본 시간여행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구사하는 고구려 말과 유리왕 시대의 말이 약 3백년의 시차가 나지만 의사소통에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정변이 있을 때마다 적지 않은 수의 중국인들이 고구려와 인근의 낙랑국에 옮겨와 살았으니 외국인 행세를 하면 그 정도의 고구려어 실력으로 의심을 살 걱정도 없었다.
“사과?”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내가 반문했다.
“당신이 날 팔아먹는 통에 류리(琉璃) 앞에서 반년 간이나 환생한 꾸이셴(鬼神) 노릇을 해야 했잖아요. 내가 마가렛 미드라도 되는 줄 알아요? 으레 원주민 추장과 눈 딱 감고 배라도 맞출 줄 알았나?”
“나 참, 바다 건너온 손님한테 보자마자 문전박대라니!”
그 때서야 조교들의 어리벙벙한 표정을 의식한 탕즈이가 손짓으로 두 사람을 내보냈다.
“앉아요.”탕즈이가 테이블 가에 놓인 의자 중 하나를 가리키며 커피포트에 전원을 넣었다.
“한 번은 내가 중매했다 쳐도 가는 족족 유리와 인연을 맺다니 운도 그런 운이 없지!”혼잣말처럼 되뇌는 내 말에 탕즈이가 양손에 들고 온 사기잔을 테이블 위에 쾅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말 돌리기는.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당신 손재주로 류리를 홀려 날 팔아넘기지만 않았어도 나는 훨씬 다양한 범위에 걸친 연구를 여유 있게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면 궁 안 소식 듣기는 어려웠겠지.”
“뻔뻔스럽군요. 궐내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나를 두고 반년 남짓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코빼기 한 번 내비치지 않은 주제에.”
금방 끓어오른 커피를 잔에 따라 탕즈이에게 건네주며 달래듯이 내가 말했다.
“너무 삐딱하게만 보지 마. 양자컴퓨터에 ‘수퍼’자(字)를 갖다 붙이면 뭘 해? 시간좌표만 동조시키고 공간좌표는 번번이 오차범위를 넘겨 둘이 서로 엉뚱한 곳에 나뒹굴게 만드는데? 생면부지의 낯선 땅에 벌거숭이로 내동댕이쳐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탱박사도 이제는 알잖아.”
“첫 방문 때는 류리를 보기는커녕 훈허(渾河) 너머에서 헤맸다더니 이번에는 제대로 만났나보죠?”
“그 친구가 구세주였지 뭐야. 부경에 널어 논 옷가지 좀 슬쩍하려다 말 도둑으로 몰려 곤장 맞고 노예가 될 뻔 했으니 원.”
나의 넉살에도 탕즈이는 서운한 감정이 쉽사리 씻기지 않는 듯 팔짱을 풀지 않았다.
“주인집 사람들이 지방 수령에게 데려갔더라면 파견기간 내내 죽도록 노가다만 하다 돌아올 판이었지. 근데 다음날 근처에 왕이 주최하는 사냥대회가 열린 거야. 잘 알다시피, 고구려에서 왕이 여는 사냥대회는 백성을 위무(慰撫)하는 순수(巡狩)의 역할도 하잖아. 그들은 옳다구나 하고 왕에게 나를 끌고 갔지.
처음에 유리는 나 같은 이름 모를 외국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 왕이 이러쿵저러쿵 하기에는 격이 떨어지는 좀도둑 사건이었으니. 해서 왕이 아랫사람들에게 멋대로 처리하라고 손짓하기 직전에 내가 고래고래 외쳤어.”
다음 말을 기다리며 탕즈이가 파리한 손으로 김이 나는 잔을 거머쥐었다. 한 여름이 코앞이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바깥 기온이 스산할 터였다.
“출발 전에 우리끼리 입을 맞춘 알리바이 기억나? ‘나는 남쪽 월(越) 땅에서 백호를 그리러 온 화공이요!’하고 소리쳤지.”
“내가 해준 말을 써먹었다!”탕즈이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쓴웃음 지었다.
“암, 순간적인 기지랄까. 첫 번째 여행을 다녀와서 당신이 그랬지, 왕이 생각보다 시문에 능하고 풍류를 좋아한다고. 연이은 시시콜콜한 판결로 지겨워하던 유리의 눈에 갑자기 총기가 어리더군. 당장 그 사실을 증명해보이라는 게 아니겠어. 거짓이면 큰 경을 칠 각오하라고 으름장 놓는 걸 잊지 않았지만.”
“그래서 내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탕즈이의 말투에 빈정거림이 배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흥분한 척 목소리를 띄웠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 만화처럼 일이 술술 풀려나가는 거야. 심드렁하던 왕의 얼굴에 삽시간에 화색이 돌며 꽃이 피더군. 탱박사, 당신이 첫 여행에서 왕을 단단히 사로잡았나 봐!”
탕즈이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피식 웃었다. 황혼의 어스름이 어느덧 건물 처마를 간질였다. 문득 벽면에 투사된 채 아직 꺼지지 않은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수신제(隧神祭)에 쓰인 신체(神體)인가 보군. 나도 보고 싶었는데.”
“그러게요, 어디 도움이 돼야 말이죠. 동멍지(東盟祭) 기록화 작성을 구실삼아 류리에게 당신을 곁으로 부르자 했더니만 따로 긴히 시킨 일이 있다더군요. 저건 내가 구술한 대로 미대생이 그려준 러프 시안이에요. 6개월 내내 구중궁궐에서 왕만 바라보는 신세였으니 거기라도 따라가겠다고 떼쓸 밖에요. 일단 이달 말까지 고구려 초기 띠모셴(地母神) 제례에 관한 연구 초안을 학회에 제출해야 해요.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기억을 되짚어 구오동따쉬에(國棟大穴) 유적을 고고학자들과 함께 찾아낼 계획이고요.”
“어련하시겠소. 역시 상아탑 출신은 촌각을 아껴 쓰는군. 나 같은 놀자판 장돌뱅이와는 격이 달라.”
탕즈이는 조교가 테이블에 놓고 간 휴대용 투사기를 들어서 껐다. 처음으로 찾아온 두 사람 간의 침묵. 어색한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내에서 제일 맛있는 데가 어디야? 손님 대접은 해줄 테지.”
듣는 둥 마는 둥 일어선 그녀는 빛이 힘을 잃은 창밖을 바라보며 내게 등을 졌다.
“찾던 것은 얻었나요?”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나왔다. 나는 짐짓 태연을 가장하며 되물었다.
“뭘?”
여전히 등 돌린 채 그녀가 냉담하게 말했다.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 켕기니까 찾아온 거 아니에요? 병원에 누워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얼굴을 보이기는커녕 전화 한통 없었으면서 이렇게 들이닥친 것을 보니.”
“그건 오해야. 타임머신 룸에 당도했을 때 나 역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고. 홀본의 정세도 해명의 목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단 말이야. 그러는 당신은 왜 연락 한 번 없었지? 내가 묻어둔 그림들을 발굴하는 현장에도 오지 않았잖아.”힐난에는 맞불 놓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로 돌아온 지 보름 뒤 내가 발굴팀과 환인지방에 갔을 때 사실 탕즈이는 서둘러 퇴원한 후유증으로 멀리 여행할 처지가 못 되었다.
탕즈이가 책상 뒤로 돌아갔다. 서랍을 열더니 팸플릿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팸플릿 겉면에는 ‘차이니즈 캐피탈 블루’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속지에는 중국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화성 테라포밍 컨소시엄 사업자 1차 후보에 자사가 선정되었다는 광고문구가 요란하다. 차이니즈 캐피탈 블루는 북경에 본점을 둔 유서 깊은 다국적 금융기업으로 특히 최근 수십 년 사이 급성장한 동북아시아의 큰손이다.
“정말 이상하죠, 수백 년 미래를 내다보고 훠씽(火星)의 환경개조 사업에 뛰어들려는 중국의 금융재벌이 어째서 이천 몇 백 년 전의 과거사에, 그것도 고구려 과거에 관심을 갖는 걸까요?”
“대체 무슨 소리야?”어이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가 반문했다.
“시침 떼지 말아요. 나도 책만 파는 숙맥은 아니니까. 쭝화리쉬웬화사이콴(中華歷史文化財團) 이사장실 책상 위에서 이 문건을 봤을 때 처음에는 그냥 별일이다 하고 넘겼어요. 제가 아는 이사장님은 훠씽은커녕 유쪼우(宇宙)조차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정부에서 화성에다 어마어마한 부동산 개발붐을 일으킨들 그 양반 성품에 눈길 한번 줄 리 없고. 그런데 사이콴(財團) 직원에게서 우연히 이번 프로젝트 돈줄이 다름 아닌 차이니즈 캐피탈 블루란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야 번만큼 사회에 환원하겠다, 이거 아니야? 시간여행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어느 나라에서나 역사학회가 다 감당한 적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나도 그녀 옆에서 나란히 서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까만 해도 멀쩡하던 하늘이 황사기운이 있는지 훨씬 더 샛노랗게 물들어갔다.
“웬화씨예(文化事業)라고요?”탕즈이가 코웃음 쳤다.
“대기업들이 웬화씨예 할 때에는 다 명분과 일관된 방향이 있죠. 캐피탈 블루는 이번 프로젝트 전까지만 해도 역사복원학계에 단 한 푼도 지원한 적이 없어요. 시간여행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수집해온 데이터의 분석 작업에도 종이 한 장 사준 일 없지요.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이례적으로 두 번씩이나 다녀오게 된 이번 여행에 이 회사가 얼마나 비용을 댔는지 알아요?”탕즈이가 나를 돌아보며 슬쩍 눈치를 살폈다.
“글쎄, 나는 김관장한테 들은 게 다라...”
“다시 한 번 가야한다고 우긴 건 당신 아니었나요?”그녀가 빤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야 엉뚱한 데 떨어졌으니 그렇지. 그게 어디 내 잘못이냐고? 국내성은 고사하고 홀본에서도 북쪽으로 수 백리가 넘는 만주벌판으로 튀어나왔으니. 가자마자 운 좋게 유리의 눈에 든 당신과 비교가 되겠어? 대신 읍루 놈들에게 말 다루는 법 하나는 기차게 배웠지.”
“1차 여행만으로 충분히 연구보고서를 꾸릴 수 있었어요. 당신이 곁에서 그려준 증거자료들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그래서는 앙꼬 없는 찐빵이잖아. 유리의 시대로 갔어도 막상 시대상을 담은 풍경화는 고사하고 왕의 초상 한 장 없이 돌아왔으니. 읍루 녀석들이 말 조련하는 광경을 담은 것들은 전시회를 열어도 될 만큼 흘러넘친다고.”
탕즈이는 자리로 돌아와 조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는 깔끔한 디자인이었지만 어디에도 액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영상전화기 같은 것은 학교 내에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예산을 쓸 우선순위는 많고도 많을 테니까.
“일단 식사를 하죠, 바다 건너온 양반!”탕즈이가 열쇠를 들고 문가에 섰다.
다진 마늘을 듬뿍 얹어 찐 타이거새우요리는 기름지긴 했어도 여독을 풀 만큼 식욕을 돋우는 데 만점이었다. 돼지고기와 버섯을 넣고 오래 고아 파파야에 담아 중탕한 수프도 맛이 깔끔했다. 스카이라운지 너머로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화성 테라포밍 사업 전시관 건물이 보였다. 전시관 꼭대기에는 사업을 홍보하는 환상적인 광고영상이 쉴 새 없이 번쩍였다. 불모의 외계행성을 장차 인간들이 지구에서처럼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꿔놓겠다는 이 야심찬 사업은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중국 뿐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 등이 각자의 블록을 화성에 세울 계획이었다. 그 밖의 다른 나라들은 앞의 나라들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일정지분을 투자할 예정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기업들은 중국과 미국의 두 컨소시엄에 각기 입맛대로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당장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기에 화성의 여러 지역을 수많은 나라들이 분담해서 개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향후 백년 이백년 후에는 이 프로젝트가 엄청난 수익성을 보장하는 부동산 사업으로서 본색을 드러내리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캐피탈 블루가 추가 여비까지 군말 없이 대준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아요.”
내 접시가 다 비어갈 즈음 탕즈이가 화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나는 씹는 속도를 늦추며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사장님께 직접 따져 물었지만 정말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저 내가 챙겨온 성과에만 기뻐하는 눈치였지. 그만한 연구비용을 선뜻 내놓을 후원자는 앞으로도 쉽게 나타나지 않을 테니.”
통상 역사복원학 연구를 위한 시간여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정부와 공공학술기관에서 전액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회를 구성하는 가난뱅이 학자들이 푼돈 모아 할 수 있는 연구 분야가 아니라는 점에서 역사복원학은 고고학이나 천문학 못지않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귀족학문이다.
“암튼 다행이네. 중국 쪽에서도 결과에 만족해서.”나는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몸을 뒤로 젖히며 긴장이 풀린 투로 말했다.
“꼼수 그만 쓰고 이제 털어놓지 그래요.”그녀의 눈이 내 눈동자의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왜 이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파트너였잖아. 숨길 게 뭐 있다고 그래.”파인애플 주스 잔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며 내가 장난스레 대꾸했다.
“그래요, 파트너. 적어도 난 당신이 혹여 해를 입진 않을지 전전긍긍 했어요. 류리에게도 당신이 내게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쉬에샤오(血肉)니 어쩌니 하며 요란을 떨었고. 그런데 정작 당신은...”
“고량주 한잔씩 할까? 아차, 미안해. 나는 한 잔 할게.”나는 웨이트리스를 불러 고량주를 한 병 주문했다. 수수 원료에다 누룩을 띄운 고량주는 지방이 많은 중국요리에 없어서는 안 될 단짝이다. 이왕이면 티엔징(天津) 산으로 부탁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이미 테이블에 술병이 놓였다.
“분명 나한테 털어놓지 않은 게 있어요. 두 번째로 갔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딴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술을 따르자 탕즈이가 내 잔을 낚아챘다. 그녀는 작은 잔을 검지로 감싸 쥐고 한 번에 들이켰다. 강한 알콜 냄새에 연한 장미향이 딸려와 코끝을 간질였다. 잠시 기다렸지만 나한테 따라줄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다시 한 잔을 따랐다.
“당신이란 사람에 대해 좀 알아봤죠. 소문이 별로 좋지 않데요.”
“학자의 잣대로 시간화가를 바라본다? 내가 언제 명예로 밥 먹고 살았나.”
나는 건배하는 손짓을 하며 단숨에 마셨다. 식사를 든든히 했는데도 40도가 넘는 액체는 내 위를 순식간에 달구었다.
“시장구(時臟物)을 빼돌려 암시장에 판다는 소문이 있던데.”
보통 이런 질문이 나오면 나는 긍정도 부인도 않는다. 시장물이란 시간장물(時間臟物)의 줄인 말이다. 시간여행자가 과거에 갔다가 사리사욕으로 따로 챙겨 은닉한 물건을 뜻한다. 다시 말해 과거시점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가 현재로 돌아와 다시 꺼내 비싸게 팔아넘기는 골동품이다.
시간화가의 보수가 박해서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매번 목숨을 걸고 오가는 여정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시간화가치고 시장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대로 하자면 시장물 유통은 명백한 시안법 위반으로 큰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역사복원학자들은 대개 시간화가들의 아르바이트가 도를 넘어서지 않는 한 알아도 못 본 척 한다. 이는 악어가 악어새의 생리를 익히 알기에 공생의 도(道)를 추구하는 까닭이다. 탕즈이는 이런 면에서 봐도 초짜 티가 난다. 그녀가 이번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다른 선배학자들이 기피한 덕분이다. 고구려 초기는 아직 전인미답의 세계이다 보니 아무래도 위험이 상대적으로 컸다.
“다른 얘길 해보죠. 류리가 당신한테 무슨 일을 시켰나요?”
두 잔째. 여전히 그녀가 내 잔에 술을 따라주지는 않는다.
“그게 무슨 대수람? 당신 연구와는 상관없잖아.”
“왜 상관이 없죠? 또우치예(都切)의 병사(病死)에 이은 지에밍(解明)의 자결, 고구려 초기의 왕권강화가 어떻게 연구주제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야 왕권강화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왕권을 위협할 만큼 예전 도읍지에서 세력을 키우던 타이쯔(太子)의 약점을 잡아내라는 것 아니었나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며 한쪽 귀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
“수도에서, 그러니까 꿔네이청(國內城)에서 뭔가 중요한 게 없어졌으니... 당신보고 그것을 찾아내라 한 거죠?”
나는 고량주를 한 병 더 시킨 다음 그녀에 물었다. 입안이 얼얼해지고 보니 천진 산이든 아니든 이제는 상관없어졌다.
“대체 무얼 근거로 소설을 쓰는 거지?”
“궁 안 소문이 바깥보다 더 빠른 거 몰라요?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내이관(內官)과 따젠(大人)들이 사색이 되어 대궐 구석구석을 뒤지는 광경을 여러 날 목격했죠. 이상하게도 정작 왕의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는데 그게 허세 같지만은 않았단 말예요.”
“유리의 계책이었다?”속이 시원하지 하는 표정으로 내가 되물었다.
“지에밍타이쯔(解明太子)는 천도를 반대하고 후벤청(忽本城)에 머문 잔존세력의 정신적 구심점이었으니까요. 더 정확히 말해 이미 삼백년 남짓 느슨한 부족연맹체를 꾸려온 땅에서 본격적인 고대국가를 일으켜 세운 개국시조의 적자는 또우치예(都切) 그리고 지에밍(解明)이었다는 말이죠.”
“적자라...”혀끝이 아려 나는 입천장을 핥았다. 갑자기 홀본성에서 해명과 마신 계명주(鷄鳴酒)가 떠올랐다. 고량주와는 달리 독주도 아니고 솔향이 나서 훨씬 오래 어울릴 수 있었다.
“씨에홍(血統)으로 보면 그렇단 얘기에요. 류리가 무혈 쿠데타로 추모왕(鄒牟王)의 공신들과 권력을 나누는 과정에서 왕실 가족의 인수는 정권의 초석을 닦기 위한 전제조건이었을 테죠.”
“그래서 추모의 아들인 도절에 이어 해명에게 태자 자리를 내주었다? 무리한 추리는 학자의 명망에 해로울 텐데.”
“아직 학계에 공식발표할 단계는 아니죠. 하지만 기원전 17년 1차로 방문했을 때 당신은 북녘 벌판에서 말이나 타고 놀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운 좋게도 왕 가까이에 있었어요. 류리는 일단 원만하게 정권을 인수하려고 쉬옹스취다오(兄死娶嫂)를 선택했을 거예요. 공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배다른 자식들을 차례로 태자 삼다보니 결과적으로 애매한 이원정부체제가 되었고 이를 방치하다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수가 되어 돌아올 거란 사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죠. 하지만 힘을 기르는 것이 먼저였지요.”
지난 반년 간 탕즈이의 주량이 꽤 늘었나보다. 아직 몸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집안현을 돌아다니며 처음 사전답사 할 때만 해도 고량주 석 잔을 버거워했는데. 유리와 술판을 어지간히 자주 벌인 모양이지.
“나라가 문 연지 얼마 되지도 않아 두 동강날 판이었다? 그래, 유리가 어떤 올가미를 해명에게 씌우려 했다 생각하지?”그녀에게 다시 한 잔 가득 따라주었다.
“황용구어(黃龍國) 사신이 조공으로 바친 활을 부러뜨린 정도로는 부족해요. 왕명에 맞섰다는 명명백백한 증거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겠죠. 이를테면...”
“이를테면?”
“옥새를 지에밍(解明)이 갖고 있다거나...”
“신묘한 추리에 천리안까지!”술기운에 가볍게 몸을 실으며 내가 빈정거렸다.
“추리가 아~아니랍니다!.”탕즈이의 목소리 역시 술김인지 이 대목에서 가파르게 올라갔다.
“그럼 뭐야, 도난 현장이라도 봤단 말이야?”추리소설 독자라도 된 양 나는 양손으로 턱을 받치고 히죽거렸다.
“언제부터인지 왕이 신하들이 올리는 문서에 쇼유찌에(手決)를 하더라고요. 이례적인 것도 일회성도 아니었어요. 나야 재가 받을 일 없으니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이따금 왕의 편전에 드나들다 보니 눈치 챈 거죠.”
“다 좋아. 당신은 연구 때문에 그게 중요한지 몰라도 나야 알 바 있나. 왜 자꾸 나를 엮어 넣는 거야?”
“후후, 2차 여행 출발 일자를 일정보다 갑자기 하루 앞당긴 건 왜 그랬나요, 그것도 불과 이틀 앞두고?”
자꾸 이리저리 핑퐁 치며 속을 떠보는 태도가 심상치 않았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방치했다가는 천둥벌거숭이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 피곤해질 수 있었으니까.
“그야...”문득 말문이 막혔다. 어디까지 얘기해주는 게 상책일까?
“그때야 하도 서두르는 통에 얼렁뚱땅 넘어가긴 했어요. 하지만 실은 예정날짜에 떠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겠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밤이지만 전시관 상단에 설치된 네온 테두리 안에 화성의 희망 찬 미래가 입체영상으로 쉼 없이 깜빡였다.
“적어도 두 번째 여행은 곳곳이 의문투성이에요. 역사복원학자와 시간화가가 역사의 현장으로 떠났다. 어벙한 시간화가는 애초 좌표와는 동떨어진 곳에 낙오해 6개월 내내 젊은 시절의 추모(鄒牟)처럼 마구간지기 하고 있을 때, 영특한 학자는 왕의 애첩이 되어 고구려 초기 사회의 이모저모를 솜씨 있게 수집했다. 그러자 말똥 냄새를 폴폴 피우는 시간화가가 돌아와 다짜고짜 강변하는 겁니다. 연구결과가 그림으로 하나도 뒷받침되지 않았으니 한 번 더 다녀올 필요가 있다나. 정작 놀라운 것은 이러한 염치없는 요구에 사이콴(財團)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캐피탈 블루가 추가 비용을 선뜻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거예요. 도무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얘긴가요?”조금씩 그녀의 혀가 꼬이기는 했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갈수록 각을 세웠다.
“다시 가서도 그래요. 어명이랍시고 뒤도 안 돌아보고 이번에도 날 내팽개쳐두고 후벤(忽本)으로 가서는 체류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꿔네이청(國內城) 근처에도 얼씬대지 않았지요. 그렇다면 내 연구를 실증적인 그림으로 보완하겠다는 변명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류리가 대체 무슨 명을 내렸기에 임무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지에밍(解明)의 초상화나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도대체 류리와 당신이 어떤 배가 맞았길래? 당신이 류리에게 녹을 먹는 위젠화시(御眞畵師)라도 되나요?”
탕즈이는 속이 불편한지 냉수를 두 컵 연달아 마셨다. 눈의 초점이 약간 풀려 보였다.
“계속 나만 바보로 만들면 가만있을 것 같아? 캐피탈 블루가 어떤 회사인지 좀 알아봤지롱. 헤헤, 놀라운 비밀이 있던데. 이 재벌기업의 총수집안 내력이 눈길을 끌더라고. 후난(福男) 또는 난후(男福)이라고도 하는 이가 가문의 시조였어, 누군지 알죠?”
나는 그녀의 혼잣말이 뒤섞인 술주정을 묵묵히 들었다. 일단 끝까지 들어줄 생각이었다. 생수를 한 병 더 시킨 다음 탕즈이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얼마든지 말해보라는 손짓을 했다.
“불운한 사람이죠. 후난은 왕의 장자(長子)지만 나라가 명운을 다해 왕이 되지 못한 사내, 바로 빠오장왕(寶藏王)의 큰아들이에요. 고구려 패망 후 고씨 왕족 일부는 당나라에서 벼슬하는 한편으로 반당운동을 번갈아 하며 보신에 급급했죠. 한 동안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통 끝에 유력가문으로 뿌리내린 고씨 일족은 오늘날 중국 내에 수십여 개의 경제파벌을 이루고 있어요. 그중 매출 1위를 꼽으라면 단연 차이니즈~ 캐피탈~ 블루죠.”
반지폰이 가볍게 진동하며 망막인식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일러주었다. 가볍게 세 번 눈꺼풀을 깜빡이자 문자가 보인다.
‘부러진 활, 매수자 대기. 연락요망.’
아르바이트 건이 하나 생겼다. 꽤 비싸게 값을 부를 생각이다. 마땅한 작자가 나서지 않으면 배고픈 소규모 박물관과 짜고 합법적인 물건으로 세탁하는 방법도 있으니 서둘 이유는 없다. 시간화가 일을 하다보면 꽤 값나가는 역사적 유물이 어디에 매장되었는지 어쩌다 나중에 기억해낸다 해도 꼭 의심을 사란 법은 없다. 더구나 형식상 모 박물관에 기증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말이다. 실제로는 그 박물관이 중개인으로 나서 매매가 이뤄지면 상당 액수의 소개료를 떼고 내게 값을 치른다. 마진은 떨어지지만 마냥 방치할 수도 없으니 때로는 이 방법을 쓰기도 한다.
“내 말 안 들려...요?” 술이 덜 깬 여인의 목소리가 나의 단상(斷想)을 흩트려 놓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들러리고, 사이콴도 들러리고 실제로는 캐피탈 블루와 당신이 한 꿍꿍이라 이거야.”
이 정도면 진도가 나갈 때까지 나간 것 같다. 이제 정리해야 할 때다.
“재미있게 듣긴 했는데, 파트너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울 줄이야.” 내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도리질 했다.
“캐피탈 블루가 당신보고 무엇을 찾아오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 하수인 노릇을 했다면... 당신은 시안파(時安法) 11조 2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짓을 한 거야.”
시간안전법 제11조에 따르면, 시간여행자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도적인 영향도 미쳐서는 아니 된다. 이 조항의 2항은 보다 구체적이다. 과거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파손시켜 이후 역사의 흐름에 뜻하지 않은 변화를 일으킨다면 이는 명백히 시안법 위반이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이냐 나쁜 방향이냐는 여기서 별개의 문제다. 연산군 같은 폭군을 뜯어말렸다고 해서 시간여행자의 개입이 면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변화를 일으킨 영향의 정도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겠지만 최소 15년 이상은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게다가 전과자가 되면 더 이상 시간화가는 할 수 없게 된다.
“인세 계약은 한 거야, 탱박사?”
나의 심드렁한 질문에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눈에 총기인지 분노인지 모를 불빛이 번뜩였다.
“흥, 역사복원학계를 구정물에 빠뜨리려는데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요. 학자를 방패막이로 기업의 사주를 받아 장물을 빼돌리다니. 나도 알아. 시간화가란 작자들이 전부 다 불법 아르바이트를 일삼는 거. 그리고 함께 일하는 역사복원학자들 상당수가 눈감아주는 거. 하지만 딴 주머니도 정도껏 차야지. 대궐에서 쓰던 금잔이나 은 젓가락 같은 것을 슬쩍했다면 고심은 했겠지만 나도 모르는 체 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이번에 당신은 뭔가 큰 건을 노린 게 틀림없어. 당신의 탐욕 때문에 오늘날의 역사, 지금의 우리들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는지 모른다고.”
초짜는 어디서나 사람들을 성가시게 한다. 탕즈이, 역사복원학자들이 다들 그녀 같았다면 시간화가의 구할 이상이 구속되었을 것이다. 서슬 퍼런 시안법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법으로 은닉하는 유물이고 아니고의 기준이 과연 얼마나 명쾌할 수 있을까? 금가락지까지는 괜찮고 금관은 경을 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옥 귀걸이는? 보통 시간화가는 아르바이트로 챙긴 수입의 일부를 동행한 학자에게 떼어준다. 한 10~5% 쯤? 십중팔구는 감지덕지하며 아래턱이 바닥에 닿는다. 내가 탕즈이에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일찌감치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간파했기 때문이다. 함께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심했다. 차라리 땡전 한 푼 주지 않고 당당하게 버티는 게 좋겠다고. 보아하니 조금만 발을 삐끗하면 그녀가 나를 시간안전국에 고발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는 가방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느닷없는 나의 행동에 탕즈이가 빤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섭섭하긴 한데, 그래도 그걸 전해주러 온 거니까. 자, 선물!”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가 봉투를 내려다 봤다. “이게 뭐죠?”
“뭐, 긴말 할 거 없고 꺼내봐!” 팔짱끼며 나 역시 궁금하다는 듯 몸을 곧추 세웠다.
봉투 안에서 사진 몇 장이 나왔다. 그녀는 신중한 낯빛으로 사진들을 일일이 훑어보더니 돌연 얼굴이 굳었다. 사진들은 하나같이 어떤 문구를 클로즈업해서 찍은 것이었다.
“초안중모심(初眼中慕心) 재회불변(再會不變), 시비가화물문죄(侍婢加火勿問罪)...” 내가 사진 속의 글귀를 또박또박 읊었다.
“그만!”
“지천명지완야(只天命之完也)라.”
“그만해요!” 그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연신 눈을 깜빡인다. 꼭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사람 같다.
“치화(雉華).” 나는 끝까지 마무리 지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탕즈이는 내 앞에서 고개 숙인 채 물 잔만 꽉 움켜쥐었다. 잔이 떨렸다. 짐짓 못 본 척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홍보영상에 푸른 초원이 된 화성을 배경으로 손을 흔드는 선남선녀의 모습이 보였다. 황사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영상 속의 인물 표정이 흐릿했다. 광쪼우는 2 세기 전만 해도 황사의 직접적인 영향권이 아니었다. 하지만 황하 상류의 지나친 산업화로 황사 분포지역이 매년 자꾸만 아래로 내려오는 추세였다.
“우리 탱박사가 이두로 연시까지 썼을 줄이야. 함께 생사를 넘나든 파트너는 사기꾼으로 몰면서 누구 앞에서는... 아아....!” 교태를 부리며 마무리된 내 목소리에 그리고 두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는 내 몸짓에 그녀의 고개가 더 무거워졌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고개는 여전히 들지 않은 채였다.
“어디서 난 거죠? 분명... 비단옷에 썼는데.”
“그래서? 당신 마음에서만 지우면 풍화되어 이천이백 년 동안 가루가 되고도 남았을 거라 이건가? 당신이 유리의 가슴에 못질 한 건 아무 상관없다 이 말이야? 그것도 두 번씩이나.
국내성에 있던 당신에게 내가 신경을 껐던 건 아니야. 왕은 정기적으로 내게 보고를 받기 위해 측근을 보냈어. 덕분에 유리가 당신에게 얼마나 빠져 있는지 소상히 알게 되었지. 오라비라는 이유로 나에 대한 대접도 섭섭지 않았고 말이야.
하지만 함부로 당신에게 서찰을 보낼 수는 없었어. 아직 유리의 신임이 두텁지 않은 상태에서 서찰은 당신이 아니라 곧바로 유리에게 갔을 가능성이 백퍼센트지. 허투루 썼다가는 의심만 사기 십상이었어. 그러는 새 시킨 일을 마치고 나니 벌써 귀환할 시간이 되었던 거야. 홀본에서 국내성까지는 걸어서 열이틀이 넘게 걸리는 거리라고.”
“이게 어떻게 남았느냐고 물었어요.” 탕즈이가 고개를 치켜들고 찬찬이 말했다. 충격과 흥분은 가시고 의혹이 다시 그녀에게 힘을 실어준 것일까.
“기사 봤을 텐데. 당신이 무리해서 퇴원하는 통에 건강이 악화되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지안시(市) 그러니까 옛 국내성에 있었어. 석 달 전에 이 부근에서 새로 왕릉이 하나 발굴되었다더군. 내가 장사치라곤 해도 고구려 초기 사회에 관한 한 몇 안 되는 전문가 아냐. 한중 공동발굴단 쪽에서 일부 유물들에 대해 감정을 해달라는 거야. 탱박사도 연락받았지만 몸이 여의치 않아 사양했다면서?
현장의 학자들은 돌을 쌓은 양식과 부장품 그리고 벽화의 주제와 소재 등으로 보건대 아주 초기 유적이 틀림없다고 흥분해 있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도 나왔지. 사진들을 잘 봐봐. 사진 속의 문구는 무덤 내벽 한쪽 구석에서 찾아낸 거야. 왕이 한 선녀를 배웅하는 형상을 그린 벽화 아래에 씌어 있었지. 선녀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면서 그런 말을 한 모양이야. 부식이 심해서 그 문구를 복원하느라 애 많이 먹었더라고.”
갑자기 맥이 탁 풀린 듯 탕즈이가 한숨을 쉬었다. 주먹 쥔 손을 입가에 가져가며 생각을 다시 정리하는 눈치였다.
“누구누구 알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다소 떨린다고 느꼈다.
“걱정할 거 없어. 첫 여행에 나서기 전 당신이 쓸 이름을 치화로 정한 건 당신과 나 그리고 대호의 김관장밖에 모르잖아. 그나마 우리 둘이 회의하는 자리에 우연찮게 김관장이 끼어든 거라 아직 기억할지조차 의문이야. 발굴단 사람들은 영문을 알 리 없고. 그냥 선녀를 만나 극락왕생하고픈 왕의 바람을 담은 이두문 정도로 해석하더라고. 시가(詩歌) 아래에는 신녀치화승천전작시(神女雉華昇天前作詩)라고 상세한 해설까지 붙어 있거든. 고구려왕들은 천손 사상으로 덕지덕지 칠해져 있으니까 그 정도 요구는 당연하다고 보던데. 치화가 황조가의 주인공인 치희라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었지만 어차피 그녀가 실제 누군지 모르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렇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협박하러 온 건가요?”
정색을 하고 내가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제 K.O.의 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그저 당신이 보면 감회가 새로울 거라 생각했어. 어찌됐건 함께 여행을 떠나 두 번 다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켰는데, 이게 괜찮은 선물이 아닐까 싶었거든.”
탕즈이가 두 손을 깍지 끼며 입가에 가져갔다. 작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니까 나보고 입 다물라, 이 소리 하러 왔군요.”
“탱박사, 내가 뭘 어쨌다고 자꾸 생사람 잡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왕을 지척에서나마 만난 건 단 한 번 뿐이었어. 유리의 총애를 받으며 한 이불을 쓴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유리가 무덤까지 갖고 들어가려 한 시가를 쓴 것은 당신이라 말이야!”
시간안전법에 입각해볼 때, 탕즈이의 연서(戀書)는 크나큰 범법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컸다. 일반 백성과 사랑을 나눠도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데 일국의 왕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 것은 그녀야말로 시안법 제11조를 위반한 셈이었다. 역사복원학자들이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부분인데, 아직 피가 뜨거운 그녀이다 보니 덜컥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나쁜 자식!” 그녀가 씩씩댔다.
“적어도 나는 돈에 영혼을 팔지는 않았어.” 어찌나 분한지 탕즈이의 눈가가 축축해졌다.
“이거 왜 이래? 장돌뱅이라도 함부로 영혼을 팔지는 않아. 아주 비싸게 값을 쳐준다면 모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부는 끝났다. 그녀는 심증밖에 없고 나는 확증을 제시했다. 앞으로 나를 귀찮게 할 염려는 없으리라.
“잘 먹었어. 다음에 서울에서 만나면 내가 거하게 사지. 먼저 일어날게. 열차 막차시간이 다 되어가서.”
돌아서려는데 탕즈이가 앉은 채로 내 소매 끝을 살짝 붙잡았다.
“한 가지만 대답해줘요.”
막차를 타려면 진짜 나서야 할 시간이다. 내일 약속을 생각하면 이곳 호텔에서 어정거리고 싶지 않다.
“왜 두 번째 여행이 필요했던 거죠? 캐피탈 블루에서 당신에게 따로 부탁한 게 대체 뭐였는데요?”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 시선보다 약간 위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그 때는 왜 군말 없이 두 번째 여행에 동의했지?”
허를 찔린 듯 탕즈이가 말을 못하고 우물거렸다.
“유산한 건 정말 유감이야.”나는 빈정대는 투로 들리지 않게 최대한 예를 갖춰 말했다.
시간여행을 한 여성이 과거세계에서 만난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백퍼센트 유산된다. 소립자로 분해된 시간여행자가 웜홀을 통해 돌아오는 과정에서 수퍼양자컴퓨터가 출발시의 신체 상태와 일치하지 않는 값들을 보정하려한 결과인지, 아니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인과율의 법칙이 관여한 때문인지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남성 시간여행자가 과거의 여성에게 임신시켰을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정말 사랑했던 거야?”
탕즈이는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아까보다 훨씬 심해진 황사에 숨쉬기가 거북했다. 택시 서너 대가 서행하며 지나쳐버렸다. 하는 수 없이 지폐다발을 꺼내 흔들었다. 아까 대학교까지 가느라 치른 요금에 족히 두 배가 넘는 액수다.
차창 밖은 불과 1~2 미터 앞을 가늠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앞좌석에 앉아 목적지를 말하기 무섭게 기사가 손에 쥔 지폐들을 채갔다. 선불 택시라니. 밤의 모래바람은 코앞을 스치는 차들까지 외투로 감싸버려 번번이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거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또한 매 한 가지 아닐까.
이제 와서 내가 왜 두 번째 출발일에 임박해서 갑자기 일정을 하루 당겼는지, 홀본으로 떠난 뒤 반년이 다 되어가도록 국내성에서 홀로 안절부절 하고 있을 탕즈이에게 왜 연락 한 번 없었는지 그리고 유리가 나에게 사주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녀에게 털어놓은들 얻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오히려 탱박사가 알게 되면 강직한 성품상 이미 판정승 거둔 게임을 다시 들쑤셔 놓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나한테는 오늘 화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이번 프로젝트의 보수를 다 걸어도 좋다.
시간여행을 여러 명이 함께 떠날 때 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자들과 뒤섞이지 않도록 도착좌표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정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탱박사에게 둘러댔듯이 국내성 들판에 나타난 그녀를 두고 나만 부이강과 소자하를 넘어 혼하 유역에서 가축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 유목민들 앞에 생뚱맞게 나뒹굴 리 있겠는가. 명색이 ‘양자’ 앞에 ‘수퍼’란 칭호가 붙은 대단한 컴퓨터인데 그 따위로 좌표계산을 했다가는 자칫 시간여행자가 바다에 빠져 죽기 십상이다.
재차 고구려로 떠날 때 출발날짜를 불과 이틀 앞두고 무리하게 하루 앞당긴 것은 첫 번째 파견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기원전 17년 늦가을 국내성 인근 야산에 모습을 드러낸 나는 몸을 가릴만한 것을 찾느라 서성이다 괴한들에게 붙들려 꽁꽁 묶인 채로 말에 태워졌다. 처음에 그들은 모두 세 명이었는데 둘은 먼저 국내성 방향으로 사라졌다. 남은 한 사내는 내가 얹힌 말의 고삐를 잡고 다른 말에 올라타더니 한 참을 달렸다. 시간감각 방향감각이 거의 바닥을 길 즈음 산악지대를 벗어나 드넓은 초원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와 있었다. 강가에 유목민 이동가옥들이 보이는 곳까지 끌고 온 납치범은 내 말의 엉덩이를 세게 갈겼다. 그 다음 내게 일어난 일은 탕즈이에게 털어놓은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나를 덮친 녀석들은 얼굴이 낯설었다. 제대로 된 역사복원학자나 시간화가는 아닐 것이다. 직접 같이 일해본 사이가 아니라도 업의 성격상 동북아에서 어지간한 역사복원학자들과 시간화가들의 얼굴은 거의 다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한중일 세 나라에서 시간화가라고는 다 합쳐도 열 명이 넘을까 말까다. 역사복원학자들 쪽은 약 수십 명 가량 된다. 하지만 전공했다고 다 시간여행을 해볼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다녀온 경험이 있는 이른바 ‘여행자’들은 스무 명 안팎이다. 괴한들이 우리의 출발일자와 도착좌표를 미리 간파하고 대기했다는 사실은 시간안전국과 선이 닿는 경쟁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유목민들 사이에서 내가 노예 반 목동 반의 신세로 오도가도 못 하는 사이에 어느덧 체류기간이 만료되었다. 자동으로 ‘땡겨져’ 현 시간대로 간신히 돌아온 나는 곧장 대호 박물관 김관장을 찾아가 들이받았다. 난감해진 김관장이 차이니즈 캐피탈 블루 회장과의 독대 자리를 주선했다. 사과와 이해를 구하는 회장에게 자초지정을 들어보니 나를 습격한 배후에는 광쪼우 사이버네틱스가 있었다.
두 기업 모두 이번 중국정부의 화성 테라포밍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컨소시엄 후보에 속해 있었다. 한국 기업 두 곳을 포함해 십여 개가 넘는 기업들이 참여한 이 컨소시엄은 외견상 경쟁력이 제일 뛰어나보였다. 문제는 컨소시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차이니즈 캐피탈 블루와 광쪼우 사이버네틱스 간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사업진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금융자산과 기술 개발력에서 각기 수위를 달리는 이 두 기업의 소모전을 방치하다가는 사업권 획득 자체가 물 건너갈 공산이 컸다.
돌파구는 양대 기업의 회장 간 회합에서 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회장은 종친회에서 불편한 얼굴로 이따금 만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탕즈이가 차이니즈 캐피탈 블루 총수의 시조가 복남임을 알아냈지만, 광쪼우 사이버네틱스 회장의 시조가 환권인 것까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환권은 27대 고구려왕 영류왕의 아들이었다. 그 역시 복남처럼 왕의 장자였으나 왕이 되지 못한 불운한 사내다. 광쪼우 사이버네틱스 회장 일족은 영류왕이 연개소문에게 시해되지만 않았어도 자기들의 시조인 환권이 다음 왕이 되었을 것이란 아쉬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서로가 고구려 왕실의 명실상부한 종가임을 자부하니 적잖이 서먹서먹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한다.
그러나 눈앞에 어른거리는 막대한 사업이익 앞에서 두 회장은 은밀하게 명예로운 해법을 찾아냈다. 바로 고구려 시조 추모왕의 옥새를 먼저 손에 넣어 종친회에서 공표하는 쪽이 컨소시엄의 주도권을 갖기로 한 것이다. 패한 쪽은 자사 지분을 일정량 양도하여 상대기업이 컨소시엄의 지분 1위 사업자로 등극하게 도와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시간안전법에서 엄격히 금하고 있는 중죄라는 사실이었다. 두 회장 모두 시간여행 관련 법규에 대한 지식은커녕 관심조차 없었기에 합의 볼 수 있었던 이 대담무쌍한 과제는 브레이크를 걸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래서 과거 장물의 불법 취득을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로 역사복원학자가 아니라 시간화가가 지목되었다. 탕즈이는 이러한 내막을 합법적으로 포장하는 바람막이로 끌어들였다. 때문에 나는 그녀 몰래 임무를 완수해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경쟁자 소식은 들은 바 없었기에 옥새를 안전하게 입수하자면 유리왕대가 좋겠다는 추론을 내리고 허울상의 의뢰인인 대호 김관장과 상의했다. 추모왕은 신화적인 색채가 너무 강한데다 정확한 행적을 추적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추모왕과 유리왕 사이에 여러 왕이 있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어온 상황이었다. 이에 비해 유리왕대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역사시대로 인정하고 있었다. 해서 중화역사문화재단의 주선으로 탕즈이가 합류했을 때에만 해도 초짜 시간여행가 한 사람만 속이면 될 일이라 방심했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곤경에 빠뜨린 녀석들은 시간안전국에 어떤 신분을 위조해 들이밀었는지 모르겠으나 정통 학자나 일반적인 시간화가는 아니었다. 꼭 시안법 때문이 아니더라도 역사의 개변(改變)이 후세에 미칠 심각한 위험을 잘 알고 있는 역사복원학자들은 시간여행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시간화가들 또한 아무리 돈벌이에 눈이 멀었다 해도 인명 살상의 범죄를 저지른 예는 듣지 못했다. 오해마시라. 이들은 머리회전이 빠른 장사꾼일 뿐이지 청부업자가 아니다.
두 번째로 떠나자마자 유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탕즈이를 보고 첫눈에 피가 끓었던 스물두 살의 왕은 세월에 쫓겨 어느새 마흔 아홉의 중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화폭에 그녀를 담아 왕의 환심을 사려했을 때만 해도 곧장 의뢰인의 요구에 다가서게 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탱박사가 발견되어 별궁에 불려오기 전날 밤 유리는 내게 밀명을 내렸다. 다짜고짜 함을 하나 내주고 열어보라 하기에 안을 들여다보고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옥새였다. 한나라나 부여의 인장과는 모양과 색이 사뭇 달랐지만 내 직감이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왕은 그것을 들고 홀본으로 가라 했다.
새벽이 되려면 한참 먼 야심한 시각에 나는 왕의 심복들 몇몇의 감시를 받으며 길을 떠났다. 내가 건넨 왕의 서찰을 읽고 난 해명의 표정이 호기심에 처음보다 누그러졌다.
“어디 네 솜씨 좀 보자꾸나.”
태자의 어진화사(御眞畵師)로서 모든 공무현장을 그림에 담아 국내성으로 보내라는 것이 왕의 명이었다. 태자는 이의를 달지 않았다. 서너 달이 지나자 태자는 나를 공기처럼 여기며 더 이상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지만 장대한 기골에 걸맞게 호연지기가 흘러넘쳤다.
홀본성에 온 뒤로 탕즈이에게는 단 한통의 편지도 보내지 않았다. 정황상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만한 인물은 그녀와 유리 정도였다. 전번에 나를 혼쭐냈던 녀석들은 왕 근처에서 기회를 노리는 동시에 나를 견제하려 했을 것이다. 궁 안에서 그녀가 활보하는 동안 나는 그들의 시야에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탕즈이가 삽시간에 왕의 총희가 되었으니 그들은 쉽사리 그녀에게 접근해 내 거처를 캐물을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탱박사는 괴한들의 눈길을 엉뚱한 데로 돌리는 바람잡이 노릇을 훌륭히 해냈다. 만일 이 사실을 그녀가 안다면... 오늘 있었던 일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그 뒤의 일을 구구절절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옥새를 태자의 침전에 숨기지 않았다 해도 누군가는 그 일을 했을 것이다. 다만 이왕이면 유리는 자신의 모의를 객관화시켜줄 제3자로 내가 보다 쓸모 있겠다고 봤을 따름이다. 고구려인이 아니라 어느 부족과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외국인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유리에게는 자신이 해명에게 억지로 누명을 씌우려 한다는 의혹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홀본 지방 민심은 해명에게 기울어 있었으니까. 남하한 온조와 비류 그리고 의문의 병사를 한 도절을 제외하면 홀본을 근거지로 고구려를 세운 추모왕의 후계자는 해명만 남은 셈이었다. 따라서 섣불리 명분 없는 숙청을 했다가는 도리어 홀본 안에 반대세력만 힘을 길러줄 우려가 있었다.
유리왕은 해명을 믿지 못했을 뿐더러 왕위를 물려줄 마음도 없었다. 왕에게 보내야 할 황룡국의 진상품인 강궁을 해명이 부러뜨린 사건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내쳐야 할 의붓아들에게 갖다 붙일 구실 하나가 더 늘어난데 지나지 않았다.
나는 해명태자의 자결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대사자 을두로가 어명을 태자에게 전하기 바로 전날, 내 몸 속의 나노머신들이 수퍼양자컴퓨터의 귀환 호출에 너도나도 공명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장부다운 기상에 걸 맞는 최후를 맞이했으리라는 사실은 내 눈을 감고도 장담할 수 있다.
오녀산성에서라면 해명이 가파른 능선을 말 타고 거침없이 내려가는 광경이 보였으리라. 드넓은 벌판 한 가운데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는 비운의 태자. 그는 당시 고구려 전사(戰士)들의 관습대로 말 등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미리 꽂아놓은 창 위로 몸을 던졌을 것이다.
갈지자로 곡예 하던 택시가 마침내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천이백 년 전 생사의 갈림길을 헤쳐 나온 내가 겨우 교통사고 걱정으로 진땀을 빼다니. 하지만 앞일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해명도 유리도, 탕즈이도 그리고 나도.
옥새는 해명의 침소에서 나온 뒤 다시 사라졌다. 내가 다시 찾기 좋게 좋은 곳에 묻어 놓은 까닭이다. 왕이 펄펄 뛰었지만 해명이 자결하고 나자 수색작업은 흐지부지 되었다. 나는 안다. 내게 준 옥새는 진품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지만 상관없다. 회장은 물론이고 어떤 전문가도 그 진위를 밝혀낼 수는 없을 테니. 방사능 연대측정법이 세월의 무게를 입증해줄 것이다. 나 역시 진짜 옥새를 훔치는 바람에 후대의 역사가 헝클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시간안전국 복구요원들에게 쫓기는 일은 더 더욱 바라지 않는다.
열차에 앉자마자 나는 반지폰으로 음성문자를 보냈다. 말한 그대로 문자가 전송되니 버튼을 누를 필요 없어 편리하다. 내일 오후 3시 부산에서 부러진 활을 사겠다는 작자를 만날 것이다. 보통 부서진 골동품은 제값을 받지 못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리라. 부러져서 유명해진 활이 멀쩡히 붙어 있어서야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여벌로 빼돌린 유리와 해명의 초상화보다 더 비싼 값을 쳐주어야겠지?
(끝)
* 글쓴이의 꼬리말
1. 고구려 시조인 추모왕과 2대 유리왕이 실제로는 부자관계가 아니었다는 주장이 역사학계에서 갈수록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40세의 원기왕성한 정복군주 추모왕이 부여에서 온 유리를 태자에 앉히고 나서 불과 5개월 만에 용이 되어 승천하고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전설은 두 사람 간의 권력이양이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왕의 노래>는 이러한 가설을 골간으로 하여 씌어졌다.
2. 마찬가지로 역사학계 일각에서 도절과 해명이 유리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1남 도절은 부여에 인질로 가라는 유리왕의 요구를 끝내 거부하다 의문의 병사를 했고 2남 해명은 유리왕의 요구로 자결을 했다. 이는 3남 무휼과 4남 여진에 대한 유리왕의 각별한 애정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러한 시각 또한 이번 작품에 반영되었다.
3. <왕의 노래>에서 사건을 전개하는데 중요한 복선 중 하나로 등장하는 것이 옥새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왕의 결재도장인 옥새가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고구려 추모왕과 유리왕 시대에 이미 궁중에서 옥새가 쓰였으리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의 사서 <진서 晉書>를 보면, 부여왕의 옥새에 “예왕지인(穢王之印)”이라 씌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미 부여에서 옥새를 쓰고 있었다면 후발 국가이자 부여의 일파가 남하해 개국한 고구려에서도 옥새로 주요 정치문서를 결재했을 것이다. 아울러 고구려사에서도 실제로 옥새가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유리왕의 3남 대무신왕대에 부여를 정벌하러 떠났던 왕의 일행이 이물림이란 곳에서 황금 옥새를 얻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삼국사기>에서는 14대 봉상왕이 시해되고 미천왕을 옹립하면서 국상 창조리가 옥새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4. 태백산은 고구려 후기부터 백두산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학자들에 따르면 태백산이란 명칭은 압록강과 마찬가지로 A.D. 5 ~ 6세기 이후에나 생겨난 표현이다. 그러나 그 이전, 특히 유리왕 시절에 백두산이 실제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작품 속에서는 편의상 태백산이란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점 양해 바란다.
소설가 고장원은 SF평론에도 주력해왔다. 대홍기획과 제일기획 프로듀서를 거쳐 SK그룹에서 디지털 쌍방향TV, 글로벌 애니메이션, 모바일 컨텐츠 서비스 사업기획 등을 담당했으며 CJ 미디어에서 드라마국과 BCT(브랜드 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을 총괄한 바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SF 관련 연구저술을 발표하고 컨퍼런스와 대학에서 강연을 해왔다. 광주와 청주 등 지자체 후원 콘텐츠 공모전과 동아사이언스 주최 과학기술창작문예 심사위원을 맡았고 문화부의 CT 사업안 도출 프로젝트 자문위원을 맡았다. 2002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디지털미디어마케팅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과학소설사>, 의 법칙>, <얼터너티브 드림>, 로 광고도 만드나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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