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땅 밑에 2

2006년 7월 통권 10호

내려갈수록 땅이 무겁게 몸을 끌어당겼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발을 하나 떼어놓을 때마다 등에 바윗덩이가 하나씩 더 얹혀지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숨을 쉬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헛구역질이 났다. 나는 몇 번씩 토했다.

머리 위에서 돌이 툭툭 떨어졌다. 아까의 일이 생각난 나는 조금 겁에 질려 헤드랜턴으로 천장을 살폈다. 벽돌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손으로 만지자 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하기 위해 벽을 좀 더 두드려 보며 랜턴으로 안을 자세히 살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유적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벽돌을 손으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벽은 힘을 조금 쓰자 쉽게 떨어져 나갔다. 먼지가 하얗게 일었고, 나는 다시 산소 호흡기를 썼다. 안개가 가라앉고, 벽돌 뒤에 숨겨져 있던 진짜 길의 모습이 드러났다.

길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주저앉았다. 납땜자국이 길을 따라 매끈하게 드러나 있었다. 벽돌은 장식에 불과했다. 나는 얼어붙은 채 한동안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미친 걸까? 미친 것까지는 상관없었다. 내가 정말로 하강하고 있는 걸까?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아내와 싸우고 나서 집을 뛰쳐나와 술을 진탕 먹고, 어디 하수구에 들어와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꿈을 꾸면서 세상에서 가장 깊은 길을 내려가는 환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내가 제정신인지 확인하기 위해 애썼다. 벽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벽돌이 위로하며 내 손에 따듯한 볼을 맞대었다. 금속 벽에도 손을 대어보았다. 차가운 반향이 손에서 내장까지 전해졌다. 금속이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독한 현실감이었다. 문득 벽이 뭐라고 속삭였다. 나는 한참 뒤에야 벽이 말을 거는 소리를 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 한 귀퉁이에 뭔가 조그맣게 글씨가 쓰여 있었다. 하강자의 기호였다. 누군가 이곳까지 왔었다. 나보다 먼저 저 아래에 내려갔었다. 그가 세심하게 그린 화살표가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 내려가라.

- 내려가라.

그 말이 내 머리를 채우고 내 몸을 음파처럼 뒤흔들었다.

- 내려가라.

나는 웃고 말았다. 달리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실패한 하강자. 길 한 가운데 뭐가 나타났든, 네가 고민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올라갈 수도 없는 주제에. 나는 다시 허리를 굽히고, 아래로 기기 시작했다. 나는 내려갈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까지. 길은 언젠가 끝날 테니까. 모든 길에는 바닥이 있다. 그게 길의 운명이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사람은, 결국 어느 이상은 내려갈 수 없는 것이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매 걸음마다 다음 걸음에서 실신해야지 하고 마음먹으며 손과 발을 움직였다. 공기는 숨을 쉬기에는 너무 탁했다. 산소통은 잔량이 다해가고 있었다. 헤드랜턴도 끈 채로 전진했다. 배터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에 묶인 것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폐소공포가 수시로 영혼을 덮쳤다가 물러갔다. 죽음이 허파에서 기침과 함께 바닥에 흥건히 쏟아졌다.

한없이 길을 내려가다가 퍼뜩 잠에서 깨기도 했다. 내가 정말로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오래 전에 죽었는데 유령이 되어 이 동굴을 헤매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벽이 나타났다. '나락'으로 들어온 지 이틀이 지난 무렵이었다.

나는 랜턴을 켜지 않았다. 도저히 내 눈으로 벽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신에서 물처럼 기력이 빠져나갔다. 이제야 끝났구나. 이제야 끝난 거야.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조금이라도 더 몸을 아래에 두려는 생각으로 벽에 몸을 기댔다. 눈앞에 내가 기어온 길이 깔깔거리며 나를 놀리고 있었다. 나는 산소 호흡기에 입을 대고 산소를 조금 마셨다. 그밖에 내가 즐길 수 있는 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배낭에 실신했을 때를 대비한 포도주가 있었다. 하지만 꺼낼 기운이 없었다.

어렸을 때에, 인류가 다른 세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먼 옛날 인류가 전쟁이나 재해를 피해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왔고 몇 번의 천재지변 이후로 모든 역사를 잊어버렸다는 식의 이야기. 우리의 몸은 이 별보다 좀 더 중력이 큰 세상에 맞춰져 있다든가. 우리의 신체주기가 이 세상의 신체주기와는 미묘하게 다르다든가.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어디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건가? 저 좁은 하늘에? 이 좁은 땅속에?

그들은 이 길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래. 그러면 말이 된다. 그러면 길을 팔 이유가 생긴다. 오만하고 똑똑한 종족들. 그들은 올라가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땅 밑에 살고 있었고, 지상으로 길을 내었다. 하지만 그들은 비가 산을 깎고 지하로 흘러들어 땅을 변형시키고, 태풍이 불고 산사태가 나고 지진이 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흙과 물이 살아 있으며, 그들이 왕성하게 생명력을 뿌리며 변화해갈 줄 몰랐다. 그리고 바람을 몰랐다. 언제나 불어대는 바람을. 바람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산을 옮기고 땅을 깎고 호수를 메웠다. 바람은 진흙과 자갈로 '길'을 막았다. 길의 존재를 알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곧 다들 죽었다. 사람은 금방 죽으니까.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은 길의 존재를 잊었다.

슬슬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역시 미친 모양이었다. 바람은 금속을 뚫고 불지 않는다. 나는 힘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이 좀 밝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은 지하에까지 미치지 않는다. 내가 제정신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없었지만, 달리 믿을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주위를 더듬어보았다. 바닥이 없는 곳이 있었다. 헤드랜턴을 켜려고 했지만,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손이 헬멧 위에서 그대로 미끄러졌다. 동시에 몸이 휘청하고 기울었다. 나는 아래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중도에 기절한 것 같았다. 아니면 잠이 든 것 같기도 했다.

* * *

- 왜 이제야

누군가가 이유를 묻고 있다. 누가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걸까? 누가 벌써 내 뒤를 쫓아온 걸까? 이상한 일이군. 문혁이 아무도 내려오지 않을 거라고 화를 내며 올라갔는데. 민석은 나흘 뒤에 오겠으니 민석이 나보다 먼저 내려왔을 리도 없는데. 누가.

- 왜 이제야.

무슨 소리지? 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꿈을 꾸고 있다면 난 아직 살아 있는 건가? 그게 아니면 이건 저승에서 통하는 인사법인가? '왜 이제야.' 그런데 그런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날씨 좋군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 왜 이제야 오신 거죠.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의식이 눈꺼풀의 속도와 비슷하게 되돌아왔다. 숨을 쉬어보았다. 산소가 폐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눈부신 것이 내 머리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의 초점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거대한 구체가 내 머리 위에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구체? 나는 곧 단어를 잘못 골랐다고 느꼈다. 저런 것을 '물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대체 저게 뭘까? 왜 저런 것이 내 머리 위에 있는 거지?

....... 하고 생각하며 나는 '아래'를 보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어디가 '아래'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참 뒤에야 나는 내가 유리처럼 보이는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체 위로 나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공간감이 한참 뒤에야 되돌아왔다. 위와 아래가 한바퀴 돌았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이 물에 푹 젖은 것처럼 무거웠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 왜 이제야 오신 거죠.

나는 완전히 혼미해진 상태로 고개를 들었고, 그를 본 순간 더욱 혼미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그는 보통 사람의 세 배는 되는 크기를 하고 있었고, 하얀 지팡이를 한 손에 들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다섯 개의 기둥이 있는 하얀 왕관을 쓰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외모에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은발의 머리카락이 그 위로 늘어져 있었다. 그의 몸 뒤로 투명하게 반대편의 벽이 비쳐 보였다.

맙소사. 정말로 있었군. 정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지사(地使)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 물론 인간이 아니라서 그렇겠지만 - 정말로 이상하게 들렸다. 마치 목소리가 물처럼 흘러내려서 다시 솟구쳤다가, 다시 가라앉는 것처럼 들렸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고장 난 스피커에서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지직지직 들리는 것 같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나는 망연자실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이제야, 왜 이제야, 왔느냐고? 이봐요. 당신 보기에는 굼벵이처럼 느려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죽을 힘을 다해 내려왔다고요. 그게 내 최선이었어요.

<왜 연락이 끊어졌지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왜 다시 연락하지 않으셨죠?>

그는 질문하고 있었고,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뭔가 엄청나게 잘못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동수단을 쓰지 않았습니까? 왜 ***을 쓰지 않았지요? 왜 걸어 내려오셨죠? 당신이 오신 **는 걸어 내려올 만한 길이 아닙니다. 어째서 혼자 내려오신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리 말해두지만, 그의 말은 내가 편의상 여러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고친 것이다. 그는 표현하기도 힘든 고어를 쓰고 있었다. 사극에 나오는 어법에다가 정체불명의 외계어를 섞은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말하는 거의 모든 명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간신히 힘을 내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곳은 조그만 운동장만한 공간이었다. 머리 위로는 내가 내려온 길인 듯한 아치형의 구멍이 보였다. 벽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수천 년은 방치된 것처럼 심하게 녹슬어 있었다. 모니터라든가 버튼 같은 기계부속들이 얼핏 얼핏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이곳은 흔히 보는 격납고처럼 보였다. 배나 비행기를 집어넣는. 하지만, 비행기라니. 땅속에?

(C) 조경아

"여기가 어디지?"

생각이 입을 뚫고 나오고 말았다. 그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었는데, 지사가 입을 열었다.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내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당신은 누구죠?"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이 바뀌지 않아 그의 침묵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의 ** ***입니다.>

여전히 명사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메인 컴퓨터*가 뭐지? 그게 이름인가?"

그는 다시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설명할 말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현명한 질문이었다. 나는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흰 소용돌이가 거품처럼 돌고 있는 구체를, 무슨 물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거대하여 차마 이름을 붙기기도 뭐한 것을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곡선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위로 향하여 폐곡선을 그린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공처럼 내가 있는 곳에서 바깥쪽으로 굽어지고 있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세계처럼, 마치 역전된 세계처럼, 모든 것이 거꾸로 된 세상처럼. 나는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땅 밑으로 내려왔어."

지사라고 해도 내가 그 사실을 부정하도록 하지는 못하리라.

"여긴, 땅 밑인가?"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중력이 향하는 곳을 아래라고 부르신다면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겠습니다만,>

<제 입장에선,>

지사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땅 밑에서 오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반작용이 있다. 한쪽 극으로 치닫고 나면 다음에는 다른 쪽 극으로 떨어진다. 미쳐버릴 것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게 되니,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머리가 맑아졌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동시에 거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해보자. 지금 이곳의 중력은 분명히 지상보다 크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그러니 내가 지하에 있는 건 분명하다. 중력이란 내려갈수록 커지지 작아지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산소가 있다. 지하에는 빛이 비치지 않는다. 빛이 비치지 않는 이상 식물은 자라지 않는다. 식물이 자라지 않는 한 산소는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가 - 산소를 필요로 하는 어떤 존재가 - 일부러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이상에는.

나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구체 - 구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커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것을. 그것을 볼 때마다 숨이 막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진한 그리움이 솟구쳤다. 대체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건 뭐지?"

내가 물었고, 지사는 뭐라고 대답했지만, 여전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처음 망원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망원경이 발명된 뒤에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너머에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다른 세상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하지만 사람들이 구름 너머로 본 것은 반대편의 '지상'이었다. 뒤집어진 땅이 우리의 머리 위에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그곳에 뒤집어져 살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머리 위에 거꾸로 매달려 살고 있는 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세상은 위를 향해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고, 우리는 그 내벽에 붙어서 살고 있다는 것을. 하늘이란 단지 땅과 땅 사이에 놓여진 텅 빈 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원기둥 모양이며,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4분에 한번씩 회전하고 있다. 세상이 그렇게 빨리 회전하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사람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절벽에서 사다리가 기울어져서 떨어지고, 지표에서 끊이지 않고 바람이 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땅이 회전함에 따라 공기도 같이 회전하니까. 지하로 내려갈수록 중력이 커지는 이유도, 회전축으로부터 멀어져 감에 따라 원심력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학자들은 하늘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땅 밑에도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내려갈수록 점점 중력이 커진다면, 어느 이상 내려가면 결국 중력이 너무 커져서 사람은 물론 그 무엇도 그 아래에선 살 수 없을 것이고, 중력이 모든 것을 찌부러트리고 말 거라고. 그것이 세상의 끝이요, 한계이며,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하한선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모든 상식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난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어. 땅 밑으로 내려오면 대지의 여신의 배꼽 위로 떨어진다든가, 거대한 거북이나 코끼리가 판을 돌리고 있을 거란 상상은 해 봤지만. 아냐. 그거야 어렸을 때 해봤던 상상이지. 난 땅 밑에 뭐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해본 적이 없......"

나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 수천 년의 생과 죽음을 겪다가 우연히 내 몸에 정착한 어떤 존재가 지녔던 의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의 해답을 찾고 있었다. 내 목숨과 영혼을 다해서.

내가 물었다.

"이 아래에 무엇이 있지?"

<우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사가 되물었다. 여전히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게 뭐지?"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며 만물을 포함하는 전체를 의미합니다.>

나는 웃고 말았다.

"무슨 선문답인가? 철학적인 개념인가?"

<'모든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저 자신도 그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여 충분히 설명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다. 나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땅 밑에, '모든 것'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건가? 무슨…… 정신세계에 속한 건가?"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시력과 기술로 조망하기에는 너무 거대하지만, 시야가 허락하는 한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왜 보이지 않는 거지? 난 자격이 없는 건가? 뭔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거야?"

지사는 다시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왜 볼 수 없는 거지?"

<간단히 말씀드리면.>

지사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안에 불을 켜 놓았기 때문에 창에 빛이 반사되어 바깥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그를 마주보고 있었고, 그는 한참 생각한 후에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불을 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사가 사라졌다. 동시에 어둠이 세상을 덮었다. 나는 다시 방향감각을 잃고, 위와 아래와 좌우와 사방을 잃어버렸다. 나는 반쯤은 공포에 사로잡히고, 반쯤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흥분에 사로잡힌 채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서서히, '바깥'이, '모든 것'이, '만물과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말을 잃고, 내 아래에 끝없이 펼쳐진 것을 내려다보았다. 정신을 잃을 것처럼 깊고 검은 공간이 내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그 공간에 무수히 많은 빛나는 것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공간이 내 주위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빨려들 것처럼 그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경이와 두려움이 동시에 전신을 휘어잡았다. 나는 일생 그렇게 넓은 공간을 본 적이 없었다. 밤하늘처럼도 보였지만,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하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거대한 공간이었다. 끝도 경계도 없었고, 그 뒤로 저쪽편의 지상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빛나는 것이 그 '지구'라는 이름의 구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구'의 등에 황금색 띠가 드리워지더니, 보라색으로, 붉은 색으로, 다시 하얀 색으로, 다시 노란 색으로, 다시 파란 색으로 빛을 바꾸었다.

얼마나 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끝도 없는 공간을 흘러 다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에도 그 검고 찬란한 공간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컴퓨터라는 이름을 가진 지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떠 있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류가 다시 내려올 날을 기다려왔는지 생각해보았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문명이, 땅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었고, 또 얼마나 여러 번 그것을 잊어버렸을까? 우리에겐 기회가 있을까? 나는 이 지혜를 지상으로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최후의 물 한 방울을 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길을 올려다보았다. 헤드랜턴의 배터리도 다 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암흑 속을 헤매야 할지 알 수 없다. 잠깐 정신을 파는 것만으로도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것이다. 비대해진 중력은 괴물처럼 나를 짓누를 것이다. 내 한계는 분명했다. 나는 많이 올라갈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처럼.

그래도 나는 올라갈 생각이었다. 틀림없이 구조대가 오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거의 다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구조대가 오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설령 구조대가 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지상과 가까운 곳까지 올라가 메시지를 남길 것이다. 언젠가 나를 뒤따라 내려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 이전에 내려왔던 하강자가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처럼.

- 내려가라

라고.

땅 밑에, '모든 것'이, '만물과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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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