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살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저건 질문이 아니다. 살인이 분명한데 왜 그걸 모르느냐는 질책이다. 귀신나부랭이 주제에.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닥치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정상 근무 시간이 끝낼 때까지 저 녀석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전기라면 슬쩍 고장을 내거나 전파장애를 핑계 삼아 정비팀에 맡긴 다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 하지만 자기 머리를 고장내거나 분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실 내 책임이긴 하다. 하지만 아주 잠깐 솔직하게 굴었다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나름대로 평온하던 직장 생활에 저놈이 끼어들기 시작한 건 이주일 전이었다.
애당초 진급 시험에 큰 미련은 없었다. 형사 수는 점점 줄어가고 있고, 신입들은 들어오지 않는다. 월급은 그럭저럭 되고 생명 수당과 특별 건강 수당도 나오지만 근무 여건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최소한의 실무 경력을 남기기 위해 거쳐가는 녀석들이 아닌 이상 사실상 진급은 불가능하다. 계장도 반장도 그 자리에서 정년을 맞이할, 아니 정년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도 시험을 본 이유는, 대단치는 않으나마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어느 방송국에서 경찰이 얼마나 한심한 직업인지 특집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위험할뿐더러 진급의 가능성이 없어 시험을 치는 사람마저 없다는 식으로. 상부에서는 그러다가 지원자가 더욱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서 시험을 치는 경찰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며 시험을 보도록 독려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외적인 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시험장에 나가고 수당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물론 내 진심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아는 후배가 경찰에 지원한다면 두 손 들고 말릴 것이다. 그게 내 진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민홍보를 위한 요식행위에 참여했다. 음악 방송 녹화장에서 방청객석 맨 앞에 줄지어 서서 보조 프로듀서의 지휘에 맞춰 손뼉을 치는 아르바이트생처럼.
무관심하게, 기계적으로 살아가기로 한 번 마음을 먹었으면 완벽하게 그래야 했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험 시간은 너무나 따분했다. 무의미함에 므료함을 더하면 권태가 남는다. 어느 고등학교의 교실을 빌린 시험장 바깥에는 지난 번 그 기획방송을 제작했던 팀들이, 그러니까 경찰 인력의 부족을 제대로 분석하고 방송했던 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강 백지를 내고 일찌감치 나갔다가는 인터뷰의 대상이 될 게 뻔했다. 그래서 시간이나 때울 생각으로 작년과 다른 문제가 과연 있기는 한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못 보던 과목이 있었다. 시험 시작에 앞서 감독관이 뭔가 길게 설명을 하더니만 이 얘기인 모양이었다. 나는 무료함에게 항복하고 펜을 집어 답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익숙한 것들은 모조리 건너뛰고 처음 보는 과목의 문제에만.
과목명은 <제5과 - 시험운영> 이었다. <업무체계 이해>나 <대인심문술>이나 <법률규정>이나 <장비의 이해>같은 이름이 아니었다. 시험운영이란 건 아무래도 신설과목이다보니 시범적으로 시험을 본다는 뜻인 듯 했다.
하지만 5라는 숫자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보는 시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눈꼽 만큼 더 늘어났다. 문제를 보면 알겠지. 나는 근거없는 자만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첫 문제는 이랬다.
‘7급 보안 네트워크 노드의 예를 들어보십시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애당초 나는 ‘사이버범죄 전담반’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대단한 학력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전공도 그 쪽이었다. 따라서 기왕 안전성을 노리고 공무원 노릇을 할 바에는 몸도 덜 다치는 쪽에서 근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틈이 있는 곳을 비집다가 이리저리 치이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엉뚱하게도 강력계에 들어와 있었다.
설마 사이버범죄 분야에 신설부서라도 생기나? 문제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7급 보안 네트워크라면 소매 수준의 자동화 입출금망을 뜻한다. 나는 얼른 답을 적어넣었다.
‘무인 편의점, 드라이브인 마트, 신용카드 충전기.’
그 이후의 다섯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섯 번째 문제는 다소 엉뚱했다.
‘동료들과의 관계를 자기평가하십시오.’
그리고 다섯 개의 보기. 불화, 독립적, 보통, 우호, 친밀. 이런 문항이 진급 시험에 있다니 금시초문이었다. 업무 평가는 어디까지나 반장의 권한이었다. 게다가 ‘독립적’이라고? 동료간 협력 관계를 나타내는 데에 이런 말은 쓰지 않는다. 만약 출제관이 마감 전날 술을 먹고 딸내미의 윤리 과목 시험지를 그대로 베낀 게 아니라면 이 신설 과목은 뭔가 엉뚱한 목적에 쓴다는 얘기였다. 문제를 열 개 넘게 풀었지만 그게 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오기와 장난기가 동시에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독립적’을 골랐다.
그 다음은 또 한동안 비슷한 문제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수단이든 마다하지 않겠습니까? 예, 아니오. (위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오라면) 그 기준은 어디까지입니까. 가족관계가 얼마나 화목한지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을 다음 보기에서 고르십시오. 설명과 체험 가운데 하나만 택하라면 어느 쪽입니까. 만약 위 문제의 답이 체험이라면 설명하는 과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쯤 되면 이건 더 이상 평범한 진급 시험 문제가 아니었다.
목적이 뭔지 더욱 궁금해졌다.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낸 형사는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그래서 최대한 솔직하게 답을 선택했다. 설마 자르지는 않겠지. 안 그래도 인원이 모자라는 판국인데. 하지만 내 마음 속 어디에선가는 그 설마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피어오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걸 깨닫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 나에게 더 나은 앞날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달랐던 모양이다. 누군가 내 대신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판단의 기준이 뭔지는 몰라도 일종의 시험을 거쳐 부적격 판정이 난다면 적어도 동전 던지기에 미래를 맡기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마지막 주관식 문제를 접하고 나니 이건 일종의 심리검사라는 확신이 굳고 말았다. 문제는 이랬다.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 대답에 따라 그렇게 믿는 이유를 적어주십시오.’
이제는 귀신이 있든 없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냉장고가 음성 명령에 대답하고 음식 넣을 자리를 말로 권해주며 정해놓은 일정에 맞춰 집이 난방을 준비하고 차를 자동운전에 맡기는 시대 아닌가. 운전자가 자는 동안 알아서 직장까지 모셔주는 차를 19세기 사람들이 봤으면 귀신들린 물건이라고 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상식에 맞춰 그렇게 대답했다.
답안을 제출하고 나오자 오른쪽 눈의 시야 아래에서 동그랗고 작은 초록색 불빛이 떠올랐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전파차단 지역에서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이런 시험 때문에 컨닝을 하는 녀석이 어디......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복도의 창문을 통해 슬쩍 운동장 쪽을 보니 나보다 먼저 나간 경찰들 몇이 방송국 리포터에게 붙잡혀 이러저런 질문을 받는 꼴이 보였다. 과연 저 친구들은 새로 나온 과목에 대해 얘길 할까? 그렇다면 제발 인터뷰를 오래 끌어주기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전하게 고등학교 운동장을 벗어났다.
비번이었기 때문에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내 손으로 차를 운전해서. 자동운전으로 전환하라는 경고등이 계속 깜빡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직 자동교통통제에 따르는 것은 의무가 아니었으니까. 수동운전으로 달리는 차는 금세 차이가 났고, 그 때문에 옆 차선의 운전자들은 움찔하며 내 쪽을 쳐다보곤 했다. 나보다 너희들이 도로에서 죽을 확률이 더 높아. 나는 장난삼아 눈을 부라리며 속으로 그렇게 얘기해주었다.
*
다음날. 서에 출근해 정문을 지나는데 시야 위쪽에서 노란 불빛이 부드럽게 깜빡거렸다. 전화였다. 일반인들은 형사들이 이런 장비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고 하면 대개 두 가지로 반응한다. 수술할 때 아프지 않아?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가볍게 떤다. 또는 정말 편하겠다고 난리를 치며 개인이 그런 장비를 구입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 계산을 해본다. 굳이 비율을 나눠본다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적다. 나도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그저 직업에 꼭 필요한 장비일 뿐이다. 용광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열안구를 이식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옛날 형사들과의 차이는 기껏해 봐야 이게 전부였다. 범죄란 건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중지와 약지를 정해진 순서대로 엄지에 가져다 댔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장비가 근섬유의 전기신호를 감지하고 전화를 연결했다.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반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출근하면 곧장 취조실로 와.”
찰칵. 머릿속의 전화도 끊는 소리는 일반용과 다르지 않다. 본래는 필요 없는 효과음이지만 사용자가 통화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고 들었다. 나는 반장이 시키는 대로 서 현관의 계단을 다 오르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 취조실로 들어갔다. 통제실의 스위치만 내리면 완벽한 방음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장소다. 반장은 그렇게 할 권한이 있었다.
반장은 이미 커피를 두 잔 뽑아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 일로 이리로 부르셨습니까?”
반장은 오른쪽 눈두덩을 가볍게 꿈틀거렸다. 슬슬 속살이 드러나고 있는 머릿가죽이 함께 움찔거렸다.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속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부하 직원에게 뭔가를 지시하거나 부탁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그러곤 했다.
“승진 시험 결과가 나왔어.”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앉았다. 그리고 다음 말이 나오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무성의하게 백지를 낸 놈들한테는 불이익을 주래. 뭐 그 비슷한 말을 예상하면서.
“솔직히 좀 의외였어.”
반장은 시험문제가 이상하지 않느냐는 둥 번거로운 얘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뭐가요?”
“네가 뽑혔다는 거.”
뽑히다니?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물었지만 정작 입으로는 다른 날보다 유난히 진해서 젤리처럼 굳을 것 같은 커피맛을 보고 있었다.
“신입이 들어오는데 네가 알아서 담당해.”
내 얼굴은 여전히 포커판에 끼어든 것처럼 요지부동이었지만 마음속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 엉터리 시험과 신입이 관계라도 있다는 말인가? 요즘 같은 때에 어떤 덜 떨어진 녀석이 강력계로 들어오지? 아니 잠깐. 바로 그것 때문에 나한테 가르치라는 건가?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요상한 애들을 데려오는 건가?
나는 그리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서 최대한 맛이 간 후보를 골라보았다. 아무래도 군인 쪽일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유별난 애들이라면 극화개량부대 출신이 있었다. 몸속에 이식하는 신기술로 감정까지 마음대로 통제한다는 군인들. 걔들이라면 시키는 대로 할지 모른다. 전역을 하라면 하고, 강력계에 들어가라면 갈지도 모른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런 애들을 감당할 리가 없다. 고작 시험 문제 40개로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리도 없다.
“오늘부터 출근합니까? 그럼 사무실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
“이리 올 거야. 지금. 너만 준비되면.”
또 눈이 꿈틀. 반장도 뭔가 단단히 불편한 모양이다. 그럼 빙글빙글 돌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길 하라고, 이 양반아.
“얼마나 괴상한 애가 오는지 몰라도 전 달리 준비할 것도 없는데요?”
반장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그리고 반장은 슬쩍 두 손을 벌렸다.
“하긴 내가 설명할 수도 없겠지. 차라리 바로 대면하는 게 낫겠어. 포트 좀 열어봐.”
이력 자료라도 보내려는 건가? 검지, 검지, 중지. 내 손가락 동작에 따라 머릿속의 전자모듈이 수신모드로 전환하고 자료를 받을 준비를 끝냈다.
...... 이빨이 전부 빠진 면도날로 척추뼈를 살살 긁는 느낌. 온 몸의 털이 뽑히는 것처럼 소름이 전신을 세 바퀴 훑었다. 목과 어깻죽지 중간 어딘가에 얼음덩이가 박혀있는 것 같았다. 그 얼음이 녹아 금속성 액체가 되고 뇌로 거슬러 올라오기 시작했다. 춥다. 춥다. 얼어죽을 것 같다. 반장. 수신 모듈이 고장났나본데요. 하지만 혀가 꼬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긴급 구조 신호는 왼손으로 오른손등을 세 번. 한 손을 못 쓸 경우에는 멀쩡한 손의 중지로 손바닥을 세 번. 하지만 그조차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취조실 안에 누군가, 아니 뭔가가 있었다. 반투명하고 음울하고 검은 그림자. 나는 그게 누군지 보기 위해 시선을 보내려 했지만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모듈 점검 받은지 얼마나 됐다고 고장이 나는 거야. 운동 신경 쪽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이것 덕분에 특별 건강 수당을 받는 거지만, 그렇다고 장애인이 되는 건 얘기가 좀 다르잖아.
용의자도 아닌데 취조실 의자로 갑자기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반장과 커피잔과 벽이 분신술을 썼다가 다시 하나로 합쳤다. 그리고 다시 사지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혀가 내 것으로 돌아왔다. 나는 옷걸이를 빼버린 옷처럼 헐떡거리면서 축 늘어졌다.
하지만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갑자기 그 바보 같은 시험 문제가 생각났다.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 반장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신참인지 뭔지 소개를 받기 전에 우선 정비과부터 가보는 게 순서였다.
- 괜찮으십니까?
반장 목소리는 아니었다. 반장이 존댓말을 쓸 리도 없지만. 초장부터 새로 온 녀석에게 한심한 꼴이나 보이다니. 그런데 이 녀석 어디 있는 거지? 내 시각에 손상이 왔나?
- 어느 정도는 예상한 부작용입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손가락 열 개를 무작위로 움직여 보았다. 운동 신경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빠른 속도로 정신이 돌아왔다. 예상한 부작용? 신입? 나는 거무스름하게 건너편 벽의 무늬를 가리고 있는 그림자를 보고 다시 반장을 보았다.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묘하게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나는 반장을 노려보았다. 불쾌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 어찌할 바를 몰랐던 거구먼.
반장이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설명하기 힘들다고. 어, 음. 나도 처음 겪는 경우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쯤이면 신입하고 연결이 됐을거야.
- 안녕하십니까.
안녕은 얼어 죽을. 나는 제3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하고 반장에게 물었다.
“이거 불법 아닙니까. 보아하니 원격지 공동 수사인가본데, 신기술을 적용했나보죠? 청각신경하고도 연결했나본데.”
“하난 맞고 하난 틀려. 신기술은 맞아. 그리고 자네 파트너는, 음, 사람이 아냐.”
귀신이 있든 없든 이젠 중요하지 않다. 냉장고가 말을 하고 차가 제 힘으로 움직이는 시대 아닌가. 그게 상식이었고 내 답안이었다.
“기술진들이 새 경찰력을 만들었대. 인원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나 뭐라나. 실제 업무에 투입하기 전에 시험 운용을 한다더라고.”
그래서 그게 인공지능이란 말이지. 그리고 나보고 저 귀신딱지랑 함께 일하란 말이지. 그것도 머리와 귀를 연결하고서.
“못 합니다.”
“명령이야.”
“명......”
령은 염병할. 이참에 그만두면 된다. 사표를 내고 정비과에 가서 머릿속에 든 생체기판을 뽑으면 끝이다. 정신적인 피해보상이라기엔 뭣하지만 그렇다고 퇴직금까지 없애진 않을 것이다.
“두 달 아니면 두 건. 어느 쪽이든 충족하면 시험 운용은 끝이래. 특별 건강 수당도 두 배로 나갈 거고. 퇴직 수당도 1년 분을 더 계산해 주라고 해놨어. 그게 최선이야.”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반장이 잠깐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조건을 만족하기 전엔 연결을 안 끊어준다잖아!”
반장은 일어서더니 취조실 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초조한 모양이다. 자신이 문제의 검둥 귀신의 몸 한 가운데를 통과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저 귀신, 그러니까 인공지능은 나한테만 보이겠지만.
“나더러 한 사람을 뽑으라고 했어. 내 대답도 너랑 같았다고. 못한다고 했지. 그랬더니 시험으로 뽑으면 설득은 하라더라고. 이제 알겠어?”
직장생활이란 늘 그렇다. 기계적이고 단순해 보이지만 방심하면 어느 순간 칼이 날아온다. 동전 던지기 보다는 시험에 맡기는 게 낫지. 내 입으로 꺼낸 말이 저주가 되어 돌아온 모양이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한 수긍이었다.
“너 나올 때까지 취조실 쓰지 말라고 해둘 테니까, 연습 좀 해봐.”
반장이 꼬리를 감추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이 갑갑한 공간에 검둥 귀신과 단 둘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는 못 한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차라리 빨리 적응하는 게 낫겠죠.”
나는 반장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얼른 복도로 나갔다. 그림자는 내 뒤쪽에서 따라오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만, 아니..... 더 신경을 쓰다가는 정말로 머리가 망가질 것 같았다.
두 달은 자신이 없었다. 두 건을 해결하는 쪽이 훨씬 빠르겠지. 그게 내 계산이었다. 쉬운 사건 두 가지를 얼른 해치우면 해방이었다.
그 전에 미치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허나 나는 그렇게 약한 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잘 버티지 않았는가. 그러니 두 건쯤이야 못 이겨낼 리가 없다.
*
인공지능이 물었다.
- 특별히 원하는 모습이 있으십니까? 자료만 있으면 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내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교육받은 사항에 따르면, 동료의 추억 속에 있는 인물 모습을 추천하라고 합니다만.
추억이라는 말이 나오자 기계적으로 인유와 지석의 이름이 떠올랐다. 하여튼 과학자와 기술자란 것들은 이론 밖에 모르는 한심한 족속들이다. 어느 누가 실재하거나 실재했던 사람의 모습을 인공지능에게 덮어씌우고 싶을까. 시대 유행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긴 생머리의 여성이나 호기심을 주체 못해 이것저것 일단 손을 대고 보는 사내아이를 동반하고 수사 현장에 나갈 형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기본 모델이 있을 거 아냐. 그 귀신같은 그림자 형상 말고 기본형이 더 있겠지?”
- 예. 남성 여성 각 3종이 있습니다. 음성 포함입니다.
“남성 1번으로 해.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 알겠습니다.
그러자 환한 대낮의 시민 공원 한복판에서 내 뒤를 따라오던 검둥 그림자가 평균적인 20대 중반의 사내 모습으로 변했다. 이거야 말로 귀신놀음 아닌가. 물론 나한테만 보이지만. 적당한 캐주얼 복장에 길지도 짧지도 않은 머리. 이목구비는 조금 고전적으로 몽골계 혈통의 특징이 뚜렷한 한국 남성의 얼굴. 피부가 지나치게 하얗긴 했지만 그거야 어찌되든 좋았다. 사실 그림자나 괴물딱지 같은 모습만 아니면 뭐라도 좋았다.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 없인 못 살았다던 과 막내 지훈이라면야 얼씨구나 좋다하고 앳된 얼굴에 몸매는 한창 물오른 여성의 모습으로 변신을 시켰겠지만 나는 그런 취미가 없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지훈이처럼 복장도착자 살인사건을 전문으로 할당받았을 것이다.
- 이제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당연한 얘기겠지만 나는 인간 동료가 인공지능보다 훨씬 편하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평범한 신참 형사라면 일일이 생김새나 이름을 지정할 필요가 없잖은가.
두 건. 사건 둘만 해결하면 된다.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최대한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것도 기본이 있겠지?”
대답은 그 즉시 돌아왔다.
- 있긴 합니다만.
“그걸로 해. 뭔데?”
- 서낭입니다.
“뭐야 그게.”
- 아시겠지만 서낭당이란 말이 있지요.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는 녀석들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세상 도처에 널려있다. 물론 정말로 ‘지능’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거의 없겠지만. 하지만 지능형 냉장고의 프로그램에도 ‘인공지능’이란 말을 붙이던 사람들은 30년쯤 전에 어느 학자가 내세웠던 ‘중국어 방’ 이론을 다시 끄집어냈다. 실제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해도 된다. 규칙에 따라 그에 적절한 반응을 한다면 지능과 다르지 않다. 이게 중국어 방 이론의 요지였다. 지금의 학자들은 이걸 거꾸로 이용했다. 식당 종업원과 손님을 예로 들어보자. 둘의 관계는 제한적이고, 필요한 소통도 정해져 있다. 지능형 프로그램이 종업원의 기능과 대화만 자연스럽게 해낸다면 인간 종업원과 구별되지 않고, 구별할 필요도 없다. 이 주장을 놓고 유명한 대중소설 작가 하나가 이렇게 비꼬았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사람보다는 민담에 나오는 귀신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귀신은 단 한 가지, 원한과 복수에만 집착한다. 육체는 물론 없다. 하지만 대화는 사람처럼 한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유머 감각이지만 그 얘기가 네트워크 상에서 크게 유행을 했고, 사어(死語)에 가깝던 ‘귀신’이 일상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이 인공지능 형사라는 물건을 만든 녀석들도 거기에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름도 기본형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그걸 떠나서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걸로 해.”
서낭은 내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제를 바꿨다.
- 질문입니다. 답해주시면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저희는 왜 이 시간에 공원에 있는 겁니까?
왜냐고? 서에 남아서 혼자 중얼거렸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니까. 소문이 퍼지자 3과 동료들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보고는 일 하는 도중에도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피곤 했다. 진술하러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보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서낭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서낭과 내가 맡을 첫 사건의 현장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인창동 시민 공원, 인창 공원은 설계 자체가 이상했다. 인창동은 비교적 최근에 서울로 편입된 외곽이었다. 인창 공원은 산림과 연결한답시고 일부러 동쪽에만 울타리를 두지 않았다. 어떤 덜 떨어진 녀석이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덕분에 가로등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은 밤이 되면 으슥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음침했다. 게다가 나무들이 웬만한 소리를 잡아먹으니 그야말로 범죄를 일으키기 딱 좋은 지점이었다. 주민들이 수시로 건의를 하건만 예산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순찰로 때우는 모양이었다.
그런 행정 지연의 결과가 내 눈 앞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감식반은 연락을 받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눈과 연결된 녹화 모듈을 켜고 사체를 살폈다. 피해자는 대략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범인은 시체 은닉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 썩어가는 낙엽으로 적당히 덮여있었다. 검시쪽 의견을 들어야 확실해지겠지만 사망 원인은 내 눈에도 분명해 보였다. 피해자의 왼쪽 두개골이 움푹 들어가서 이제는 바짝 말라버린 내용물이 훤히 보였다. 그리고 뇌액과 피가 흐르다 멎은 흔적이 역력했다.
나는 필요한 모습들을 녹화하고 검시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서낭의 영상은 내 동작을 그대로 따라했다. 심지어 걷거나 장애물을 피하는 모습까지도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내 눈을 통해서 본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
- 사건 정황을 파악하려면 인간의 동작을 시뮬레이션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시관은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재촉한다고 여겼는지 입을 실룩거렸다. 그래도 내가 가만있자 아직 밤이슬 때문에 축축하게 젖어있는 가죽지갑을 건넸다.
“피해자 소지품입니다.”
나는 그 안에 든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보며 솔직하게 반색했다. 신용카드가 남아있다는 것은 카드 복제를 노린 사건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아마도 피해자와 뭔가 연관이 있는 사람의 범행일 확률이 높았다. 죽은 여성의 이름은 신혜경. 32세. 죽은 지 여러 시간이 지나도 다른 시체들과 달리 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니 본래 동안이거나 성형처치를 과도하게 많이 받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신분증 사진에 묻은 먼지를 닦아보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 신분증과 지갑을 천천히 회전시켜주시겠습니까?
서낭이 요구했다. 나는 뭐라고 천천히 쏘아붙여주려다가 참고 시키는 대로 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최대한 서낭과 대화하지 않는 게 여러 모로 좋았다.
- 됐습니다. 기록 완료했습니다.
물론 그 ‘기록’은 내 머릿속 모듈의 메모리와는 다른 곳에 저장된다. 서낭은 내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아주 긴밀한 연결이라는 데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마도 서낭이 수집한 자료는 어딘가의 서버에 저장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내가 인공지능에 대해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안 것은 훨씬 나중에, 또 다른 사건을 해결하던 때였다.
최초 발견자는 범인에 대해 아무 실마리도 주지 못 했다. 그 이외의 목격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밝고 건강한 태양 아래에서 살아가는 보통 시민들이라면 이처럼 외진 곳을 일부러 피할 것이 뻔했다. 그 반대라면? 낮 시간에 이곳에 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경찰이 이처럼 소란을 부리고 있으니 오죽할까. 설사 야음을 틈타 밀회를 즐기는 연인들이 있었다 해도 자진해서 목격한 바가 있노라고 나서지는 않겠지.
나는 그래도 여유만만했다. 일단 신원이 쉽게 밝혀진 이상, 그리고 범인이 그리 지능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건은 피해자 주변 수사에서 꼬리가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운이 좋다면 감식반에서 범인의 몸통을 통째로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유전자 추적이 범행 발견 다음날이면 끝나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한 전후 한 달의 동선이 모조리 드러나는 시대였다. 경험상으로도 이런 사건은 길어야 일주일 안에 해결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또 하나의 살인범이 사회에서 격리되고, 나는 실적을 올리고, 귀신같은 이름의 인공지능과 헤어질 날이 성큼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번 건은 쉽겠네. 축하해. 첫 사건이 이렇게 편하다니.”
-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알려주시겠습니까.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나는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명색이 인공지능이고 학습능력이 있다면 정석대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배울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짧은 대답으로 대신했다.
“예감이 그래.”
예감이 뭐지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느 유명 SF 작품에서 인간 형사와 함께 일했던 로봇이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낭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대신 서낭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진지한 얼굴로 피해자의 부서진 두개골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진지한 얼굴’이라는 건 아마도 나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예감이란 건 제대로 맞은 적이 없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던 이번 사건조차도 며칠 되지 않아 사방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벽에 부딪혔다. 탐문 가능한 한에서 목격자는 없었다.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이 가져간 것 같았다. 거기까지는 그리 보기 드문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피해자의 주변 인물이 가장 큰 결정타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피해자 신혜경은 아무 것도 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갑자기 탄생한 모래여인과도 같았다. 물론 거주지도 있고 이웃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를 비롯해 혈연은 아무도 없었다. 수사 가능한 한에서 애인도 없었다.
사방이 꽉 막힌 수사현황에 그나마 숨 쉴 창문조차 막아버린 것은 감식반 애들의 보고서였다. 성폭행 흔적 없음. 피해자 주변에 다수의 DNA가 발견되었으나 범인의 것이라 확정지을 것은 없음.
그래서 서낭과 나는 서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할당받은 차량 안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비록 서낭의 모습은 내 시신경에만 떠다니는 영상에 불과했기 때문에 조수석 의자가 움푹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 점만 제외한다면 서낭이 팔짱을 끼고 앉은 모습은 자연스러웠다.
- 더 조사해 볼 것이 남아있습니까? 제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서낭은 경찰 업무로 리포트라도 쓰는 학생처럼 여전히 고지식하게 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었던 몇 가지를 얘기했다.
“우선 사망 시각 즈음한 그 지역의 통신 내역을 모조리 살펴봐야겠어. 혹시라도 범행을 암시하는 통화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사실 내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긴 했다. 반장도 그 정도를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을 테지만. 신혜경의 사망 시각은 밤 11시 경이었다. 그렇다면 목격자도 그 시각에 있었을 것이다. 탐문도 그 시간에 해야 했다. 만에 하나 근처 불량배의 소행이라면 그 일대를 근간으로 하는 놈일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혜경의 신원도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은행 계좌의 잔고는 꽤 넉넉했지만 직업은 없었다. 거래 은행은 하필이면 삼주(三株)은행. 중국계 은행으로 수수료만 주면 그나만 명목만 유지되어 오던 실명제를 완전히 무시하는 곳이었다. 가족이 없는 거야 요즘 같은 시대에 특별하진 않았지만, 어느 돈 많은 녀석의 정부였을까? 그래도......
미로는 분명한데 출구로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 짐작 가는 바가 있다면 제게도 말씀해 주십시오. 학습에 도움이......
“학습에 도움 된다는 말 좀 안 할 수 없어?”
나는 버럭 화를 냈다.
- 반영하겠습니다.
내 분노는 금세 가라앉았다. 사건이 풀리지 않는 것은 서낭의 탓이 아니었다. 서낭은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미안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나는 녀석의 ‘학습’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내 생각을 두서없이 설명했다.
“여하튼 금세 끝날 조사는 아니야. 통신 기록만 해도 영장을 받아야 하고......”
- 인창 공원에 지금 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시계를 보니 9시 20분이었다. 차를 몰고 간다면 대략 11시 경에 인창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가보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기다려 봐. 혼자서는 아무래도 그러니까 사무실에 남은 동료를 하나.......”
- 저희 둘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충분한 안전 교육을 받았습니다.
“넌 허깨비잖아. 맞으면 다치는 건 나라고.”
서낭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 이 기회에 제 능력을 알려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같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럼 넌 내 능력을 다 안단 말이냐? 나는 서낭이 뭘 믿고 그리 당당한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차 안에 앉아서 유령 같은 놈과 말씨름이나 하는 것 보다는 바람이라도 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시동을 걸고 주차장의 안내선을 따라 차를 몰았다.
“그래 어디 가보자고. 어차피 영장이야 이 시간에 청구할 수도 없으니.”
나는 몸 안에 이상하게 아드레날린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문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직진하는 차와 충돌할 뻔 했다. 운전자는 거친 말로 욕을 해댔지만 나는 완전히 무시했다. 이게 경찰차량이라는 것을 알면 분명 민원이 들어올 테지만 나는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 방금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제가 운전할까요? 자동운전장치에 접속하면 됩니다만. 승인은 받아뒀습니다.
“절대로 안 돼. 다른 건 몰라도 내가 타고 있는 동안은 절대로 안 돼. 앞으로도 명심해”
나는 필요 이상으로 소리를 질렀다.
- 지나치게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만 이유는 모르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장은 필요 없습니다. 지금 통신 음성들을 검색 중입니다.
서낭이 그렇게 말하고 20초쯤 지나서야 나는 그 뜻을 알았다.
“뭐?”
- 제 권한 안의 일입니다. 제게는 2급 수사권과 2급 비밀인가가 있습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권한은 4급이었다. 서낭은 검사의 영장발부 없이 통신 기록 열람을 청구할 수 있었다. 말이 좋아 신입 형사에 동료지 권한만 놓고 보자면 서낭은 반장보다도 높았다. 윗사람들은 경찰 인력의 부족을 이렇게 해결할 심산이었다. 수사용 인공지능을 만들고 더 높은 자리에 올려서.
이 사실이 언론에 흘러가면 한참은 시끄러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얼마나? 나는 운전하면서 그 파급에 대해서 자못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한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이다. 인간이 만든 존재가 인간을 심판한다니. 하지만 형사는?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형사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증거에 입각해 용의자를 체포하면 된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인공지능이 형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차는 인창 공원 입구에 들어섰다. 일부러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동을 끄고 동쪽 숲으로 걷기 시작했다.
- 고속 재생으로 검색을 마쳤습니다. 특기할 만한 통신 내역은 없습니다.
서낭의 영상이 내 걸음과 보조를 맞춰 따라오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시각 모듈에서 광감도를 조금 올렸다. 그러자 서쪽 도심에서 밤공기를 타고 잘게 부서져 날아오는 빛만으로도 눈앞이 훤해졌다.
나는 누가 들을까봐 최대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나보다 기밀인가가 높으니까 이번 사건하고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정보는 모조리 재검토 해봐.”
어차피 실체도 없는 인공지능이 비상사태에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숲은 차갑고 어두웠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내 눈은 낮보다 더욱 밝았다. 나는 사건 발생 장소로 올라가는 통로를 찾았다. 여러 사람들이 밟고 다녔는지 작은 길이 나 있었다. 아마 신혜경도 이 길로 갔겠지. 뭣 때문에? 범인이 불러서? 그렇다면 범인과 신혜경은 아는 사이다. 하지만 수사에는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양 눈의 시야를 분리해서 한쪽은 적외선 감지 상태로 두었다. 그러자 열원 몇 개가 보였다. 둘씩 짝을 이뤄서. 나는 연인들이 갑자기 놀라 소동을 피우지 않도록 일부러 인기척을 크게 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그렇게 두 쌍의 연인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리 인간답지 않은 일생을 살았던 30대 여인이 밤이슬을 온몸으로 맞으며 생기도 없이 누워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한지고. 분명 살인사건이 났다는 소문이 잔뜩 퍼졌을 텐데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열을 불태우는 연인 한 쌍이 또 있었다. 나는 헛기침이라도 해줄 요량으로 숨을 들이켰다.
그 때 또 다른 열원이 그들에게 다가섰다. 발소리를 죽이는 걸로 보나 허리를 숙이고 걷는 걸로 보나 그리 건전하지 않은 목적임이 분명했다. 바로 내가 찾던 목격자, 또는 아주 운이 좋다면 범인 후보였다.
나는 말 그대로 번개같이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두 손을 확인했다. 상대는 칼을 쥐고 있었다. 둔기가 아니라 실망하는 것도 잠시, 야밤에 연인들을 습격하려던 괴한은 즉시 반격하며 칼을 휘둘렀다. 나는 오른팔을 내저어 칼의 옆면을 쳐냈다. 머릿속 장비의 도움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내가 우세했지만 상대도 어둠속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는 큰 우열이 없었다. 하지만 형사가 특별 건강 수당을 받는 이유는 그 뿐이 아니었다. 내 오른팔의 피부 밑에는 아주 원시적인 사이버네틱스가 이식되어 있었다. 얼마나 원시적인고 하니 쇠파이프나 칼 정도로는 찢거나 부러뜨릴 수가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총질을 해봐야 상대를 쫓아내는 결과만 가져올 게 뻔했으므로 나는 오른팔을 최대한 이용해 괴한의 공격을 막고, 발로 찼다. 상대는 키 작은 수풀과 엉키며 뒤로 굴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등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평범했다. 나는 길고 단단한 통증을 느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불량배는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입 안에 들어온 흙을 뱉으며 생각했다. 저런 귀신딱지 말을 믿다니. 혼자 오는 게 아니었는데. 후속타를 피하기 위해 몸을 굴리려 했지만 평지가 아닌 탓에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나는 재빨리 앞으로 기어 자세를 고치려 했지만 목이 뻐근해서 상체를 일으킬 수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은 상스러운 욕이 되어 내 입을 더럽혔다. 그저 반사적인 습관이었다.
그런데 무슨 싸구려 주문이라도 외운 것처럼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솟았다. 다 죽어가는 부상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하자 잠깐이나마 생기를 되찾는 것처럼. 그러면서 눈앞에 처음 보는 기호와 레이더와 동선들이 떠올랐다. 빨간 선들이 두 명의 불량배를 감싸며 이동방향을 예측해 주었다. 내 동물적인 생존감각은 잡스러운 궁금증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적을 무찌르는 데에만 집중했다. 나는 원숭이처럼 몸을 굴려 우군에게 합류하려던 첫 불량배의 턱을 단단한 오른팔로 강타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칼을 왼손으로 잡으며 그와 위치를 교환했다. 두 번째 불량배는 급작스러운 전세의 변화에 당황했다. 나는 그대로 칼을 던졌다. 칼은 눈앞에 그려진 파란선이 예측한 궤적을 그대로 따라갔고, 목표의 손등에 정확히 꽂혔다. 나는 끙끙거리는 두 녀석을 수갑으로 엮은 다음 땅바닥에 눕히고 흙맛을 보게 만들었다.
“너희들이 죽였냐?”
그리 멀지 않은 부근에서 하마터면 인생과 연애사를 동시에 망칠 뻔한 연인이 허겁지겁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다시 물었다.
“사흘 전에 죽은 여자 너희들 짓이냐고!”
“예? 아뇨. 사람을 죽이다뇨. 저희는 그저......”
“그저 뭐?”
“돈이나 뺏고......”
아마도 성폭행. 두 녀석은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꽤 뾰족한 구두 끝으로 녀석들의 옆구리를 한 방씩 걷어차 주었다. 신음소리가 커졌다. 이런 녀석들은 의외로 고통에 약했다. 나는 두 녀석 가운데 누가 지휘자일까 생각했다. 뒤에서 덤벼든 녀석이겠지. 본래 명령을 받는 쪽이 앞장서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나는 엎드려 있는 지휘자의 옆으로 걸어가다가 실수인 척 손가락을 밟았다. 무언가 부러지는 감각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녀석이 몸을 뒤집으며 숲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수갑 때문에 나머지 한 녀석이 끌려가면서 둘의 몸이 엉켰다.
“어이구, 어두워서 잘못 봤네. 입 닥쳐 이 자식아. 뭘 잘했다고 소릴 질러. 다시 한 번 묻는다. 너희가 죽였다고 그랬지?”
“아니라니까요!”
아무리 악을 쓴다고 해도 사람이라면 어두운 곳에서 연거푸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서낭은 안 그럴지도 몰라도 나는 사람이었다. 나는 위를 보고 누워있는 우두머리의 가랑이 사이에 발을 댔다. 그러자 녀석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억지로 참는 흐느낌뿐이었다.
“또 잘못 밟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너희가 죽이지 않았다면 그날 본 건 없어?”
“있어요, 있다구요.”
“말해봐. 헛소리였다가는 평생 남자 엉덩이만 쫓아다녀야 할 테니까.”
“귀신이에요, 귀신을 봤어요.”
이게 무슨...... 나는 불쾌감을 억지로 누르며 발에 힘을 더 줬다.
“정말이라니까요! 움직이는 게 귀신처럼 빨랐어요. 아저씨는 비교도 안 됐다니까요. 친구랑 나는 숨어서 떨고 있었어요. 컴컴한데도 다 보이는 것처럼 뛰어다니다가 단숨에 나무 위로 올라가고, 얼굴은 못 봤지만 사람 같지가 않았다고요.”
수갑으로 같은 운명에 처한 녀석조차 열렬하게 동의했다. 남은 일생 동안 남자 구실을 못할 위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거짓말을 할 거라면 그렇게 허황된 얘길 골랐을까? 마약에 빠진 상태라면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좋다. 죽은 신혜경의 주변에서는 몇 사람의 DNA가 발견됐으니까 대조해보면 금세 알 일이었다. 전과자 DNA조사에서는 건진 게 없었지만 두 녀석은 초범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신혜경의 몸에 성폭행 흔적이 없는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 반항이 심하자 둔기를 휘두르고는 겁이 나서 도망친 것이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작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일부러 보란 듯 총을 꺼내 들고 레이저 조준기를 켰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친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겁을 줄 필요가 있었다. 수갑을 채우면서 손가락 조합을 이용해 지역 지구대를 호출했으니 줄잡아 20분이면 경찰들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호송하고 심문하고 검사를 해보면 빛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격투의 흥분이 가라앉자 사소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 마법의 주문 따위는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욕으로 그런 효과가 날리는 없다. 나는 불량배들이 듣든 말든 다짜고짜 서낭에게 물었다.
“네가 한 짓이야?”
서낭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은 추론능력까지 가진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는 형사를 대체할 수 없겠지만.
- 예.
“처음 포트를 열었을 때 단순히 연결만 했다면 그렇게 이상한 감각은 없었겠지. 넌 내 신경에 자극을 주고 호르몬 분비도 조절할 수 있는 거지? 시각 모듈이야 당연히 조종할 수 있을 테고.”
- 예.
“너나 반장이나 나 같은 놈은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미리 설명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거야?”
서낭은 대답하지 않았다.
“염병할 윗놈들이란 건 어째 그 모양들이야? 이젠 사람 몸까지 들쑤셔놔? 아무리 형사질이 더럽다지만 이건 뭐......”
- 전 형사님의 상관이 아니라 동료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명령에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말씀하신 그 문제에 관해서는, 설명보다 한 번 체험 쪽을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아드레날린 분비가 줄어들면서 차가운 밤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던 시험 문제가 떠올랐다. 설명과 체험 가운데 하나만 택하라면 어느 쪽입니까. 대략 그런 질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쓴 답이 뭐였는지도 기억났다.
“사람이란 건 그 정도 문제와 답만 가지고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냐. 아무리 스스로 꺼낸 대답이라고 해도. 그거라면 나를 예제로 삼아도 좋아.”
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서낭의 추론능력이 쓸만하다면 무슨 얘긴지 이해했을 것이다. 서낭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 예.
그리고 우리 둘은, 나와 인공지능은 지구대 경찰들이 도착해서 함께 인창 공원을 떠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한밤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려던 두 녀석은 신혜경의 살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적어도 증거 상으로는 그랬다. 내가 체포할 당시 마약에 취해있지도 않았다. 반장은 그 둘을 더 취조하면 결국 실토할 거라고 믿었다. 추궁하면 여죄가 더 나올 거라고도 했다. 그거라면 전문이니 맡겨두라고 했다.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한 건만 더 해결하면 그......인공지능을 떼어내 줄게.”
이렇게 말한 게 증거였다. 내 입장에서야 두말 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리였다.
나도 그 두 녀석이 어디선가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도 검거된 적이 없을 거라는 데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신혜경의 죽음은 그놈들 짓이 아니었다. 이건 예감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귀신을 봤다는 목격담이 영 마음에 걸렸다.
서의 별관 건물 뒷그늘에 앉아 비위생적인 자동판매기에서 뽑은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서낭에게 물었다.
“우리가 아직 캐지 않은 게 뭐지?”
서낭의 대답하는 대신 질문을 하나 더 얹었다.
-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쳐 물었다.
“치정 살인은 아니야. 관계없던 불량배한테 우연히 당한 것도 아니라고 치자. 금품을 노린 강도도 아니고. 그럼 뭐가 남지? 이 사건하고 관계없어 보이는 해석이 뭐지? 가장 말도 안 되는 걸로 말야. 제일 금세 떠오르는 거라도 몇 가지 대 봐.”
- 아무 거나 무작위로 말입니까? 그런 게 수사에 도움이 됩니까?
서낭과 함께 다니면서 배운 점이 있다. 수사용 인공지능을 개발한 녀석들은 완성품을 시험하기 위해 일선 서에 보낸 게 아니었다. 서낭은 미완성품이다. 계속 학습 운운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보다 비밀 인가 등급이야 높을지 몰라도, 정보를 찾는 능력이야 뛰어날지 몰라도 그 외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걸 보충하기 위해서 인간 형사에게 연결하려고 한 것이다. 만약 내가 엉뚱한 걸 가르친다면 서낭은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쓸만한 경찰 보조 인력이 하나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토 좀 달지 말라고 면박을 하는 대신 간단하게 말했다.
“그래.”
- 자살. 범죄 조직의 배신자 처단. 목격자 말살. 연쇄 살인입니다.
나는 최대한 진지하게 그 네 가지를 검토하기로 했다.
“자살은 절대 아니야. 제 손으로 자기 머리를 그렇게 박살 낼 순 없어. 도구도 못 찾았지. 그 날 내가 현장에 가면서 둘러봤던 영상 뒤져봐. 피가 묻은 나무가 있었어?
내가 일어서는 몇 초 동안 서낭은 검색을 마쳤다.
- 없습니다.
“그럼 신혜경이 순간적으로 미쳐서 나무에 자기 머리를 들이박은 건 아니라는 얘기잖아. 다음. 범죄 조직의 배신자 처단이라. 네 정보 열람 등급을 최대한 발휘해서 혹시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들어있나 봐. 그리고 전과자 목록 뿐 아니라 다른 사건의 목격자는 아니었는지도 보고.”
내가 종이컵을 구겨서 휴지통에 넣고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10초.
- 없습니다.
“그럼 연쇄살인이 남네. 신혜경처럼 인적 없는 곳에서 머리를 심하게 가격 당해 죽은 피해자들 찾아봐.”
- 없습니다.
“아무리 너라도 무슨 대답이 그렇게 빨라?”
- 수확이 없어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사실 연쇄살인 부분은 검시측 보고가 들어온 순간 곧바로 찾아봤습니다. 본래 저는 프로파일링 효율을 올리는 목적으로 개발됐던 인공지능입니다.
그랬군.
“그럼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뿐이야.”
- 그게 뭡니까?
“우리가 인창공원에서 잡은 두 놈의 진술. 그놈들은 정말 범인을 봤는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보자고. 걔들이 뭐라고 했지? 귀신같다고 했지. 나보다 훨씬 더 빨랐다고. 그 때 나는 네놈 덕분에 보통 인간의 반응상태가 아니었어. 만약에 범인도 그런 종류라면?”
귀신 얘기를 듣고 곧바로 생각해 냈던 건 결코 아니다. 서낭과 가능성을 하나하나 검토해보니 갑자기 떠오른 것뿐이다.
-사이버네틱스. 개선형 인간이군요. 그것도 호르몬 조절과 동선 분석보다 고성능 개선이고요. 그렇다면.....
아마 이번에는 서낭과 내가 거의 동시에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낸 것은 내가 먼저였다.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일이지. 군용이야. 제일 유명한 게 극화개량인간 부대야. 명칭 말고는 거의 아무 것도 안 알려진 국가 산업이지. 신혜경하고 그 쪽 연관성을 찾을 수 있어?”
-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군 정보는 현재 제 등급으로 검색이 불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니 서낭이 기다려 달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군 자료까지 들여다 보기 위한 등급을 얻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어쩌면 그 결과가 나오기 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때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니 그쯤이야 기다릴 수 있었다.
- 찾았습니다. 신혜경은 극화개량부대, 통칭 극화부대의 자원실험자였습니다.
“허가가 벌써 나왔어?”
- 그건 아닙니다만, 그 이상은 묻지 말아주십시오. 그에 대해 얘기하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극화부대 프로젝트를 맡았던 방위업체 치우산업 쪽은 이미 이 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 이름은 정찬우. 극화 2중대 소속 중사. 현재 탈영상태이며 개량 시술 후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답니다. 아마 사업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양입니다만......
그 얘길 듣고 나니 아무 관계도 없던 별을 주워 모아 별자리 하나를 완성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별무리에는 ‘군용시설. 접근불가’라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무수한 별들 가운데에서 내가 발견한 이 별자리에 내 이름을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못하다가 벌집을 건드려서 범인도 놓치고 일이 꼬이기만 하는 건 아닌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서낭이 나를 불렀다.
- 형사님의 접근 방법이 정확히 맞았군요.
나는 조금 우쭐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평가는 나중에 하자고. 희생자가 더 나오기 전에 잡는 게 우선이니까. 아직은 한 사람만 죽었잖아.”
- 제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게 연쇄살인이라는 건 결국 형사님께서 관계없어 보이는 걸 되짚자고 하신 덕분 아닙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연쇄살인이라니.
“신혜경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유사 피해자는 없다면서?”
- 형사님께서는 피해사례를 봐도 모르셨을 겁니다. 저도 치우산업 서버에 침투, 정정합니다. 서버를 검색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정찬우의 탈영 이후 전국에서 벌어졌던 각종 사건을 종합해 본 결과 이건 분명한 연쇄범행입니다.
“다른 사건이 뭔지 말해 봐.”
- 강원도 인제시 지역 CCTV 서버 파괴. 경기도 파주시 교통정보 임시 저장소 파괴. 서울 면목동 소재 전자제품 대리점 습격. 모두 인명피해는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정확히 두 번 머리를 긁었다. 서낭을 생각보다 빨리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추론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든가 아니면 고작 며칠 수사한 것만 가지고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문제가 생긴 인공지능을 계속 연결해놓고 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찾아내서 고쳐 쓸 생각도 없었다. 이제 겨우 수사에 진척이 생겼으니 해결할 방법이야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화는 분명 녹음되고 있을 테니 제출할 증거도 분명했다.
나는 고장난 인공지능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그건 연쇄살인이 아니잖아.”
- 연쇄살인입니다. 공통점도 뚜렷합니다. 신혜경의 머리 부분이 심하게 훼손되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들도 그렇습니다. 도난품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 머리에 치명상을 당해 즉사했습니다.
“가만 있어봐. 머리라고? 그럼 네가 살인이라는 건......”
서낭의 영상은 무언가를 간절히 호소하는 눈빛과 몸짓으로 길게 얘기했다.
- 예. 저보다 훨씬 원시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다들 인공지능이었습니다. 정찬우는 후유증 치료를 받으면서 똑같은 호소를 반복한 모양입니다. 귀신들이 온 세상에 깔려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모조리 잡아서 없애야 한다. 소견서에는 극단적인 피해망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정찬우의 얘기에는 일관된 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 시각에서 보자면 이건 분명한 연쇄살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가 피살당하면 살인이라고 하잖습니까. 아직 인공지능을 고의적으로 정지시키는 행위를 부르는 말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살인입니다.
세상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아니, 흐름 자체는 부자연스럽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는 대로, 필요가 생기는 대로 움직이니까. 거기에는 비약이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잠깐만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본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예전에는 없던 물건들이 짧은 시간 동안 갑자기 생겨나고 사라지며, 어떤 것들은 당연한 것처럼 자리를 잡고 온 세계를 덮기도 한다. 말하는 냉장고는 흔해 빠졌지만 어떤 이에게는 낯설고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제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 말은 하지만 사람도 동물도 아닌 뭔가가 생활 속에 파고들자 귀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부르는 게 아니라 사실 그게 바로 귀신이다. 내가 처음 서낭과 연결되고 나서 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네트워크 커뮤니티에서 인공지능을 귀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개발자들이 서낭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리고 이제 전자적인 귀신 가운데 비교적 머리가 좋은 녀석이 거기에 생명의 개념까지 얹으려 하고 있다. 또는 생명의 의미를 거꾸로 바꾸려 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정찬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서낭의 말에 수긍만 한다면 일관성이 드러나고 동기와 검거 방법까지 단숨에 손에 들어온다.
- 이게 살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서낭은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저건 질문이 아니다. 살인이 분명한데 왜 그걸 모르느냐는 질책이다. 귀신나부랭이 주제에.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닥치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사방이,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하지만 반장이 내건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저 녀석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작 만들어진 물건 주제에 인유나 지석이와 같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다니.
나는 건물 그늘에서 벗어나 밝은 햇볕 속으로 걸어 나갔다. 서낭은 조도의 변화를 감지하고 자신의 영상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림자도 생기지 않았고 완전히 불투명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귀신이었다. 한낮에도 멀쩡하게 걸어다닌다는 점만 빼면.
“헛소리 말고 정찬우나 잡으러 가자.”
나는 그렇게 지시했고 서낭은 아무 대꾸 없이 뒤를 따랐다.
극화부대 연구를 담당하는 치우산업의 제2연구소 건물은 경비가 삼엄했다. 경비를 담당하는 군인들은 민간 경비복을 입고서 입구와 담 안쪽만 감시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 편이 훨씬 좋았다. 주변 지형을 관찰하고 적당한 매복 장소를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길은 정찬우에게도 최고의 유혹일 것이 분명했다. CCTV의 감시 범위에 들지 않으면서 최단 시간에 제2연구소의 서버에 접근하려면 경로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놓고 엔진이 식기를 기다렸다가 나무가 잘 가려주는 곳을 선정해 숨었다.
- 왜 우리가 알아낸 사실을 근거로 해서 치우산업을 공개적으로 수색하지 않는 겁니까?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한 서낭이 물었다. 서낭은 나처럼 어색한 자세로 숨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밤에 산책이라도 나온 동네 주민처럼 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네가 말한 대로 했다가는 산통을 다 깰걸. 군사기밀이니 분명히 딱 잡아뗄 거야. 우리한테는 합법적인 증거도 없고. 게다가 난 극화부대 프로젝트의 치부를 드러낼 생각은 전혀 없어. 그런 건 위에서 알아서 하라지.
- 학습자료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인간 동료라면 쉬웠을 텐데. 암묵적인 용인이나 세력 관계 같은 건 추론으로 해결이 안 되는 건가? 나는 부족한 어휘력을 총동원해서 간신히 단어 하나를 찾았다.
“성역이란 말의 뜻을 찾아봐. 정확하진 않지만 그거랑 비슷해.”
- 종교와 관련되는 말이군요. 정찬우 사건의 경우 종교는 아무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제 선험학습 자료에 따르면 종교는 비이성적인 활동이라고 돼 있습니다만 이 경우에 비이성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담겨있는 기계를 때려 부쉈다고 살인하고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성적이야? 그것도 추론이지. 그게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 올 수 있었겠어?”
나는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능력도 없었다. 교육자들은 아니라고 할 테지만 현실에서 어떤 사실들은 그냥 외워야 편할 때가 있는 법이다.
“정보에 인가등급이 있는 것처럼 수사에도 접근 등급이 있다고 생각해. 알아, 안다고. 원칙에 어긋나는 얘기지. 그럼 그냥 외워. 실제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서낭은 마치 사람처럼 화제를 돌렸다.
- 그 문제는 차후 과제로 돌려두겠습니다. 다른 질문입니다. 여기서 정찬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설명할 수 있는 문제로 돌아오자 나는 한시름을 놓았다. 애당초 보통때처럼 무지하고 단순하게 살았다면, 시험문제를 완벽하게 백지로 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정찬우의 행적을 봐. 처음에는 자기 모습을 녹화한 인공지능들만 부쉈어. 그러더니 이제는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사람을 죽였다고. 신혜경을 어떻게 불러냈는지는 모르지만 통화내역에 안 걸린 걸로 봐서 전화를 이용하진 않았겠지. 그럼 남은 게 뭐지? 신혜경 보다 더 과거 시점에서 정찬우와 연관된 인공지능이 존재한다면 그건 어디에 있을까?
- 알겠습니다. 적어도 추론 순서는 이해했습니다.
“어차피 정찬우가 여기에 오면 내 생각이 맞다는 건 증명돼. 지금 정말 중요한 건 이 감전총이 정찬우한테 효과가 있느냐 하는 거야. 공격 기회를 주면 승산이 없을 테니까 빗맞은 총알보다는 이게 낫겠지. 정말 그녀석한테 신소재외피 같은 걸 이식하지 않은 것 맞아?”
서낭이 인간의 흉내를 내어 고개를 끄덕였다.
- 실전부대원에게는 강화피부를 장착하는 모양입니다만 정찬우에게는 없습니다. 기록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병원으로 후송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무장해제상태라고 할까요. 하지만 반사신경 등은 그대로일 겁니다. 우리가 채택한 증언도 그렇고요.
바로 그게 께름칙했다. 내가 감전총을 가져온 이유이기도 했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나에게 유리해져서 정찬우의 기능에 장애라도 있지 않는 이상 녀석의 움직임은 ‘귀신처럼’ 빠르다. 그러니 초반에 제압해야 한다. 그러지 못 한다면 정찬우는 치우산업을 지키는 군인들의 총격에 노출될 테고 신혜경 살인사건은 묻힐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들의......
서낭이 극대화시켜 준 청각능력 덕분에 먼 곳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경찰용으로 이식된 모듈의 성능을 두 배쯤 올려놨다고 했으니 거리는 약 60미터. 나는 경찰용 모듈을 절전 상태로 놓은 다음 감전총의 스위치를 켜고 정찬우가 올 곳을 향해 조준했다.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조금만 더. 만일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광감도는 높이지 않았다. 정찬우는 적의 전자장비를 감지하는 군용 모듈을 이식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마침내 등 뒤에서 달빛을 받으며 점점 커지는 정찬우의 그림자. 그리고 그림자 주인의 모습. 나는 감전총의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카악.
정찬우가 침을 뱉었다. 나는 아차 싶어 감전총을 쐈지만 총알은 죄없는 땅바닥에 꽂혔다. 내가 침 뱉는 소리에 잠깐 움찔한 사이 정찬우는 몸을 감췄고.....
내 몸은 3미터쯤 날아서 굵고 단단한 나무에 부딪혔다.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찬우는 멱살을 잡더니 입을 틀어막고 건너편 어둠 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귀신이 보냈어?”
그게 정찬우의 첫 마디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찬우의 두 눈동자는 초점을 공유하지 못하고 흔들렸다. 적어도 정서불안인 것은 확실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면서 힘마저 센 인물에게 붙들렸다는 건 생명이 위험하다는 얘기다. 나는 어떡해서든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나는 오른팔에 모든 힘을 실어서 정찬우의 목을 가격했지만 군용 반사신경은 생각보다 세 배쯤 빨랐다. 정찬우는 내 팔을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뽑으려는 것 같았다. 정말로 뽑힐 것 같았다.
서낭이 내 전자시각을 활성화시키며 노랗고 파란 동선으로 정찬우의 예상 동작과 빈틈을 알려주었다. 나는 지난 번 경험을 거울삼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조언에 따랐다. 정찬우는 잠깐 당황하더니 입을 길게 찢으며 웃었다.
“그게 아니라 네가 귀신이구나.”
이제는 내 머리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신혜경도 이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 신혜경이 자원한 건 인간의 두뇌에 기초적인 인공지능을 이식하는 시술이었다. 정찬우가 무장해제상태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정찬우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 좌측 두개골을 노렸고, 나는 경찰용 오른팔이 얼마나 튼튼한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찬우는 마음먹은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자 전술을 바꿨다. 전자시각이 뒤엉키면서 밤하늘이 노랗게 밝아졌다. 정찬우의 무릎이 내 명치를 강타한 것이다. 머리를 보호하던 오른팔은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 정도면 경비병들이 올만도 할 텐데. 일단 살고 봐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정찬우가 방금 손에 쥔 돌덩이가 내 머리통을 부수는 것보다 빠를 것 같지는 않았다. 범인을 검거할 때는 절대로 눈을 감지 말 것. 시각모듈이 아무 도움도 주지 못 하니까. 형사들의 뇌에 이식한 전자모듈의 설명서와 교본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실전은 언제나 다른 법이었다. 그래서 체험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는 그랬지만 죽음은 체험할 수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최후를 예감하며 눈을 감았다.
- 있는 힘을 다해서 몸을 왼쪽으로 비틀고 움직이지 마십시오.
서낭이 빠른 말투로 지시했고 나는 생명을 다 바쳐 그 지시에 따랐다. 나를 깔고 앉았던 정찬우가 잠깐 균형을 잃었다. 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제법 큼직한 큰 물체가 나의 오른쪽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브레이크 소리와 정적.
- 이제 됐습니다. 일어서십시오.
되기는 개뿔이. 눈을 뜨는 것만도 힘겨웠다. 하지만 몸 위에 올라탔던 무게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억지로 심호흡을 했다. 신물이 넘어왔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했으나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서 옆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그 자세 그대로 뭐가 어떻게 됐나 두리번거렸다. 멀찌감치 숨겨두었던 내 차가 등 뒤에 멈춰 있었고 그 바퀴와 바퀴 사이에 정찬우가 쓰러져 있었다.
-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서낭의 영상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서낭의 본체는, 물론 잘못된 표현이긴 하지만 어쨌든, 차를 조금 후진시켜 정찬우의 하반신을 뒷바퀴로 눌렀다. 제 아무리 극화부대원이라 해도 도망칠 수 없도록.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운전실력이었다.
그 때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손가락 조작으로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혜경 살인범을 잡았습니다. 데려가겠습니다. 그리고 끊었다.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던 놈이, 귀신에 홀려서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니던 놈이 나자빠진 것을 보면 속이 후련해야 하건만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종류의 교통사고든지 보거나 듣기만 하면 가슴이 아팠다.
이번에도 그랬다. 명치를 가격당한 것 때문인지 뭔지, 어쨌든 이번에도 그랬다.
*
산새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사방팔방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있었다. 처음 이곳을 찾을 때는 그 새소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3년 전의 나는 뭐든 꼬투리만 잡히면 비난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분노도 사라지고 없었다. 가슴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 경찰병원에서 마음대로 나와도 괜찮습니까?
서낭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반장도 알 거야. 오늘이 음력 7월 보름이라는 건.”
- 몸은 괜찮으시냐는 얘깁니다.
“오른팔 모듈이 박살나고 뼈가 부러졌지. 그것 말곤 없으니 괜찮아. 유급 휴가도 받았고.”
나는 그리 넓지 않은 아치형 통로에 서 있었다. 올 때마다 그랬듯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귀신이란 게 정말 있다면, 그러니까 인지과학과 프로그래밍 언어와 네트워크가 결혼해서 낳은 자식들 말고 고전적인 의미의 귀신이 정말로 있다면 바로 이곳에서 득시글거리고 있겠지. 나는 그처럼 불경스러운 생각을 씻어내기 위해 크게 머리를 내저었다. 그리고 24라는 번호가 붙은 사각형 상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멀쩡한 왼손에 들고 있던 국화를 그 아래 마련된 단에 올리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향냄새는 마치 나와 연결된 인공지능처럼 뒤를 따라왔다.
- 납골묘를 실제로 녹화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너야 안 가본 데가 더 많겠지. 올 일이 없을수록 좋아, 여긴. 지울 수 있으면 지워.”
- 돌아가신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인유하고 지석이. 아내와 아들이야. 3년 전에 죽었지.”
나는 인유와 지석이의 사망 원인을 얘기하지 않았다. 서낭이 호기심을 흉내낼 수 있다면 순식간에 조사해보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유행에 뒤떨어지게 염색도 하지 않고 생머리를 기른 인유는 이것저것 만져보기 좋아하는 지석이를 유아원에 보내기 위해 차에 태우고 운전중이었다. 조작은 자동으로 놓은 상태였다. 정부에서는 새로 개발한 초기형 인공지능에게 교통 신호 제어를 완전히 맡기고 있었다. 인유의 맞은편에서 오던 유조차 운전자 또한 자동 운전만 믿고 주의를 팔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때 교통 신호에 0.1초 동안 지연 현상이 생겼고 회전 신호가 5초간 어긋났다.
그 5초 때문에 인유와 지석이는 이 세상에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는 게 있다면, 그걸 풀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그 ‘문제’라는 녀석은 그림자마다 깃들어서 숨어 있다가 덤벼들 때만 노리는 야수와도 같은 모양이다. 잠깐 의욕을 되살려서 시험문제에 진심으로 답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유와 지석이를 죽였던 ‘인공지능’이란 물건과 붙어다녀야 한다니 말이다.
물론 알고는 있다. 나는 지금 과거의 비극을 깔고 주저앉아서 못 일어나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바보는 아니다. 그 사고는 인공지능의 탓이 아니다. 불완전한 시스템을 실생활에 적용시켰던 개발자와 관리자의 탓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해도......
서낭은 내가 납골묘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는 동안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엉뚱한 얘길 꺼냈다.
- 검색해보니 음력 7월 보름은 백중이라는 날이군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하고요.
나는 그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 혼을 잊는 날.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날. 그런데 옛날에는 이 날 장을 세우고 잔치도 벌였다니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도 못 해.”
- 하지만 다른 부분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와 같은 종류의 존재들이 죽은 사건을 조사했으니까요. 그걸 살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지 몰라도, 앞으로 저 같은 인공지능들은 더 늘어날 겁니다. 옛 이야기에서는 귀신을 물리치고 소멸시키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더군요. 하지만 저와 같은 인공지능들을 파괴하는 행위도 그것과 같을까요? 똑같이 귀신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니면 언젠가는 살인에 준하는 범죄행위로 규정될까요?
그런 거야 법학자들과 입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나 같은 말단 형사들은 형법이 바뀌고 새 범죄가 정의되면 그에 맞춰 범법자를 잡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왠지 그런 날이 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어느새 서낭을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 정도이니 앞으로 더 발전되고 더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그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지능 등을 더 이상 귀신이라고 부르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내가 말했다.
“가자.”
옆에 서 있던 서낭의 영상이 물었다.
- 경찰 병원으로 가시는 겁니까?
“응. 난 가서 좀 잘 테니까 넌 미결 사건들을 훑어봐.”
- 미결 사건이요?
“정찬우는 결국 신혜경 살인사건 하나만 저지른 범인으로 잡혀 들어갔어. 나 혼자 수사했다면 동기도, 잡을 수 있는 방법도 몰랐겠지. 그러니 또 그런 사건이 있나 뒤져보란 말이야.”
서낭의 영상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건 내 착각이었다.
- 알겠습니다.
“놀고 먹으면서 사건을 하나 더 해결하면 그만큼 너랑 빨리 떨어질 수 있잖아. 이제 한 건 남았으니까.”
그렇게 얘기하자 서낭은 침울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번엔 착각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크게 껌뻑였지만 서낭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동작을 시뮬레이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낭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죽는다’고 표현할 날은 아직도 멀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은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가 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저렇게 금방 반응하는 거야말로 아직 인공지능이 ‘죽을’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감정을 숨기고 반응을 억제한다. 반장처럼. 나처럼. 그런 면에서 서낭이나 제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아직 귀신이다. 귀신들은 단순하고 감정변화가 솔직하지 않던가. 비록 그 모든 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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