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2010년 5월 통권 56호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지만 자신이 죽기 전에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직접 가까이서 목격하는 경우는 의외로 흔치 않다죽음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가장 큰 현실적인 벽이면서 언젠가는 다가오고야말 필연적인 절망이지만 늘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죽음은 가장 치명적인 현실이지만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그 현실을 의도적이든 본능적이든 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따라서 불현 듯 죽음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체감온도 또한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또 한편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실존해 있고 우리의 의식과 가치관을 냉정하게 지배한다존 웹스터는 죽음에는 수 만개의 출구가 있다고 했다이 말을 사람마다 죽음에 대한 각자의 태도가 있다는 뜻으로 읽고 싶다이 글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나의 사적인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마침 국제천문연행 총회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고 있었다유학생이었던 나는 한국에서 온 은사님과 선배 한 분그리고 당시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네덜란드 교수 한분을 헤이그의 스케이훼닝언 해변으로 초대해서 중국식당에서 이른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바다가 코앞에 바라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서 맥주를 한잔하고 있던 참이었다바로 옆 테이블은 비어 있었고 한 테이블 건너에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벨기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한 여름이었지만 청명한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같았다긴 생머리에 토플리스 차림을 한 서양여자 한명이 책을 읽으면서 맨발로 해변가를 거닐고 있었다그녀가 매고 있던 날렵하게 생긴 빨강 배낭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날렸다가는 그녀의 맨등짝을 때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그 노인들은 담요로 무릎을 덥고 바닷바람을 견디고 있었다우리는 벨기에 맥주 몇 종류를 탐닉하다가 독한 네덜란드 전통술을 한잔씩 기울이고 있었다이 평화로운 한 여름 초저녁의 광경이 급박해진 것은 잠시 후의 순간이었다다급하지만 차분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덜란드어의 억센 자음 발음이 할머니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서 더 격하게 튀어나오고 있었다여전히 무릎을 담요로 감싼 채 고개를 깊이 떨어뜨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는 랩을 하듯 끊임없이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모차르트의 레퀴엠 같았다할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의자에 걸쳐져 있었다주변에 있던 젊은 웨이트리스가 황급히 그들에게 다가갔다할머니는 여전히 레퀴엠 랩을 뱉어내고 있었다눈물이 흐르고 있었다할아버지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구급차가 도착했다응급처치가 이어졌지만 별 소용이 없는 듯 했다우리를 포함해서 모두들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구급차가 떠났다바닷바람이 좀 더 세차게 몰아쳤다토플리스 여인은 이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여전히 맨발이었다얼마간의 침묵이 끝나자 우리들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선 그 할아버지는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것이고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죽었을 것이라는데 모두들 동의했다나의 네덜란드인 지도교수는 자신은 늘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산다는 이야기를 했다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그렇게 시작된 죽음 이야기는 늘어가는 빈술잔과 더불어 밤이 깊어 가도록 이어졌다안락사 이야기며 자살 이야기며 살인 이야기며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토론했다그 내용을 여기에 모두 다 옮겨 적을 수는 없지만 씁쓸하지만 유쾌한 토론이었다고 기억한다구급차에 따라 타면서도 연방 레퀴엠 랩을 쏟아내던 할머니 모습에 더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오른다내가 기억하는 죽음을 화두로 한 가장 진지했던 대화였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대학생이었던 어느 겨울 날 돌아가셨다마침 겨울 방학이어서 어머니를 따라서 병상에 누워 계시던 외할아버지 병문안 길에 나섰는데 우리가 도착한 바로 그날 돌아가셨다다행히 어머니와 외삼촌들은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떠나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외할아버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별 다른 징후 없이 그냥 조용히 넘어가 버리셨다외사촌 동생들이 어려서 내가 운구 행렬 맨 앞에 서서 외할아버지 영정을 모셨다핏줄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다영정을 들고 가는 사람은 결코 뒤를 돌아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영정을 들고 가는 내내 마치 내가 외할아버지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울컥했다어렸을 때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내가 처음으로 죽은 사람의 모습을 목격했던 순간이었는데 정말 무서웠다동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가서 본 것은 가마대기로 덮어 놓은 시체였다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마대기로 미처 덮지 못한 그 시체의 두 발이었다오싹했고 무서웠다아이들 사이에서 그 시체의 주인공은 동네를 떠돌아다니면서 개를 잡아먹던 할아버지였다는 소문이 돌았다하지만 며칠 후 떠돌이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헛소문임이 밝혀졌다그래서 더 무서운 기억이 되었다지금도 그 핏기 가신 차가운 살빛어린 두 발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나는 네팔에 갈 때마다 기어이 시간을 내서 힌두교 사원 근처에 있는 화장터들을 순례하곤 한다큰 사원 근처 화장터는 나름 화려하고 충분한 장작을 써서 화장을 한다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화염 속에서 재가 되어 떠나가는 고인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본다하지만 작은 사원 근처 화장터에는 화장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도 많지 않고 정작 시체를 태울 장작도 부족해서 미처 다 타지 못하고 나뒹구는 시체들이 많다그래도 없는 장작 가지를 이리 저리 굴려가면서 고인의 시체를 조금이라도 더 태워보려고 애쓰는 가난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함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돈이 없어서 장작을 충분하게 살 수 없는 가족들 마음이야 정작 얼마나 안타깝겠는가사실 내가 화장터를 찾아가는 이유는 딴 데 있다힌두 사원 근처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일종의 요양소가 있는 경우가 많다몇날 며칠이고 근처 화장터에서 그들 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다그런데 보통 그런 요양소와 담을 맞대고 있는 곳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삶의 희망으로 넘칠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꽃잎 같은 생명들이 다니는 학교가 버젓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거하는 요양소와 나란히 공존하는 것이다그들은 늘 같이 있었고 모순 없이 어울리고 있었다느린 눈길로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노인들 앞을 그 학교의 젊은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었다삶과 죽음이 하나인 듯 흘러가는 일상적 시간의 풍경이었다나는 그 모습이 늘 그리웠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런 곳을 찾아가서 한나절씩 멍하니 앉아서 그들의 타임라인에 몸을 싣는 사치를 부려보곤 했다나의 죽음 목격기는 이렇듯 시시하기 그지없고 내가 죽은 사람을 직접 본 경험은 이것이 전부다.


내가 이것이 죽음이라고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죽은 사람을 직접 목격했을 때가 아니었다오히려 산 사람의 모습에서 죽음의 짙은 그림자를 보았을 때였다거칠게 마구 내지르듯 토해내던 가수 김현식의 노래를 가까이서 직접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저 사람은 지금 죽으려나 보다아무렇게나 세상에 대고 질러대던 그의 노래는 살려 달라는 애원 같았고 한편 이제 다 살았으니 시원섭섭하다는 체념 같이 느껴졌다남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다시 토해내고 가려고 용을 쓰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의 노래는 그가 아무리 앙탈을 부려도 천박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었다고등학교 때는 같이 의기투합해서 문학동인회를 만들어서 멋을 부리고 다니기도 했다나중에는 기관사가 되어서 배를 탔는데 그 녀석은 늘 헤어짐에 익숙해 있었다잠깐의 상륙 후에 다시 배로 돌아갈 때면 우리는 늘 아쉬워했다정작 그 친구는 어제 만난 것처럼 다시 만나고 내일 또 만날 것처럼 헤어지자며 인사도 변변하게 하지 않는 이별을 즐겼다그러다가 한참 동안 소식이 끊어졌었는데종교에 빠져서 돈을 갖다 바치느라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소문도 들리곤 했다연락을 해보려고 수소문을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미국에서 열렸던 한 학회에 갔다가 우연히 그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마침 내가 묵고 있던 호텔에 그 친구의 부인의 대학 동창생이 투숙한 것이었다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그 친구의 소식을 물었는데몇 년 전에 간암으로 죽었다는 것이었다끝끝내 작별 인사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어제 만난 것처럼 다시 만나고 내일 또 만날 것처럼 헤어지자는 말만 되풀이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돌이켜 생각해 보면 녀석은 늘 죽음의 그림자를 입고 살았던 것 같다그래서 작별을 애써 외면했던 것이리라녀석이 결코 떠나지 않은 만큼 우리도 아직 그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남은 친구들끼리 논쟁이 벌어졌지만 평소 그의 삶의 태도에 맞춰 작별을 유보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그의 유족을 찾지도 그의 무덤을 찾지도 않기로 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왔다그런데 요즘 부쩍 녀석이 그리워진다같은 아마추어천문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누나가 있었다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던 나는 그 누나가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마음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늘 주변을 맴돌기는 했지만 그 누나는 다른 친구들의 차지였다평소에는 차분하게 이야기하곤 했지만 가끔씩은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열을 냈던 이유야 따로 있었겠지만 사실 나는 살짝 흥분 상태에 있던 누나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었다그런 상황에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슬쩍 그 누나 편에 서곤 했다마음을 다스리려고 별을 바라보던 누나 곁에서 말없이 담배를 태우곤 했었다말도 하지 않은 채 별만 바라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씩 내게 이런 말을 쿡 던지곤 했었다. ‘너는 왜 별을 보니담배 피우면서 별 보면 더 좋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듣곤 했지만 나는 그 자체가 마냥 좋았다그러면서도 그녀가 곧 떠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애태워야 했다어느 날 누나가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나는 그냥 또 울컥했고 가슴이 미어져 왔지만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그제야 늘 그 누나를 감싸고 있었던 외로움의 외투가 보이는 것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아니 죽음이라는 단어 보다는 사라짐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죽으면 어떻게 될까뭐가 남지그냥 사라져 버리는 걸까이런 생각들이 어린 마음속으로 쓰나미처럼 몰려들곤 했었다그럴 때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도 없었고 막막함과 답답함과 두려움에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을 붙잡고 있기조차 아찔했었다딴 생각을 하려고 안간힘을 써보기도 하고 달리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서 그냥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어느 여름날이었다마루에 커다란 모기장을 쳐놓고 온 가족이 그 속에 들어가서 같이 잠을 잤다모기도 피하고 더위도 피하려는 것이었다그 날도 나는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눈물도 났지만 애써 숨기고 있었다우리는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엄마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당혹스럽고 걱정스러웠던지 엄마는 내 이마를 먼저 만져 보셨다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우리가 죽어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데 그 때 또 엄마 아빠와 다시 만나면 되니까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의 이야기였다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하고 다짐도 했다가슴은 계속 진정되지 않고 있었고 엄마의 말을 정말 믿고 싶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대답은 슬프게 느껴졌고 아마 그 때 엄마 아빠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실감했었던 것 같다그 날 이후 나는 다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체념 단계로 넘어간 것 같다죽음이라는 벽을 결코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마음속에 자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그 즈음 내가 아끼던 UFO 그림 한 장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버렸다어린이 잡지에 실린 UFO 그림을 오려두었던 것인데 그 그림 위에 내가 이것저것 메모도 하고 그림도 그려 놓았던 보물이었다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세상을 그 그림 속에 건설하고 있었는데 말이다불교에 심취하셨던 할머니를 따라서 절에 갈 기회가 많았다지금은 너무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 때는 향냄새가 너무 싫었고 절밥은 정말 맛이 없었다그래서 절에 따라 가는 것이 싫었지만 할머니가 데리고 가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할머니가 스님들과 일을 보시는 동안 법당에 홀로 남겨지는 때가 종종 있었다나는 금색 부처님 뒤로 가서 뭐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작은 목소리로 움직여 보시라고 주문도 해보곤 했다어린 마음에도 죽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이 길은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동네 교회에도 몇 번 갔었다보통 아이들처럼 크리스마스 때 친구들과 몰려가기도 했고 동네 형들의 강압에 못 이겨서 일요일 아침에 졸린 눈을 한 채 끌려가기도 했다교회에서 비상식적인 믿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맹목적인 강요를 하는 탐욕적인 목사님의 행태는 정말 참기 힘들었다어린 마음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생각해봐도 참 기특하게도 그 곳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유일한 위안은 별을 보는 것이었다단층 슬라브집에 살았었는데 맑은 날이면 옥상에 올라가서 별을 바라보곤 했다그 별들 속에 파묻히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다소 잦아들었고 체념의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내가 천문학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가장 그럴듯하고 정직한 답을 내놓는 것이 천문학이니까.


죽음에 대한 나의 사적인 경험은 일단 여기서 멈춘다이런 모든 경험과 이에 대한 사색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나의 태도를 형성했을 것이다그런 경험 속에서 나는 왜 종교와 같은 맹목적인 믿음 체계보다는 천문학을 통한 미지에의 탐구를 선택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는 진화심리학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결국 믿음의 엔진에 대한 생물학적인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어쨌든 나는 늘 죽음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왜냐하면 그것은 한 인간에게는 모든 것의 끝이니까그 끝을 시작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는 것이다언제 죽음이 닥쳐올지는 알 수 없으니 내겐 하루하루가 삶의 마지막 날이 되는 셈이다그러니 세상 모든 것 하나하나와 그 모든 디테일이 슬프지만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모든 것은 죽음으로 소멸되는 모래 그림 같은 미완성품이므로 결과가 아니라 행위의 과정을 소중히 하는 태도가 생겼다하루가 시작되면 그래서 모든 것이 새롭고 절박하며 그러니 미래나 과거가 아닌 오늘 이 순간을 행복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그러려면 다른 사람들과 유한한 시간을 나누어 가져야하고 서로 도와서 이 천금 같은 현재를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움으로 담보하여 종교 같은 것을 끌어들이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고 절실하다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차적 관점이 역설적으로 가장 현실적으로 유한한 삶에 애절하게 매달려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결국 죽음도 산 자의 몫이고 나의 죽음에 대한 태도도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기 위한 삶의 태도였던 것이다여기서 죽음에 대한 나의 사적인 태도 이야기는 일단 멈춰야겠다대신 이글을 끝맺기 전에 내가 드디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박정만 시인의 종시를 읊조릴 수 있을 정도의 의식은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작고도 큰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할 것 같다.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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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