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5년의 늦은 가을, 분자생물학자 제임스 왓슨(James D. Watson)의 부고가 들려왔다. 향년 97세. 왓슨의 타계를 마지막으로 1950년대 초 베일에 싸인 유전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뛰어들었던 수많은 과학자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의 사망 소식은 과학계 안팎에서 조용하지만, 묵직한 반향을 남겼다. 한편에서는 20세기 생물학의 향방을 결정지은 거인의 퇴장을 애도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끝내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부유했던 그의 외로운 말년을 떠올렸다. DNA 이중나선 구조의 공동 발견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그리고 동시에 유전자 결정론과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 왓슨의 삶은 그가 발견한 이중나선처럼, 서로 꼬여 있으면서도 분리되지 않는 두 개의 기다란 궤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DNA 구조의 발견은 분야를 막론하고 20세기 과학사를 빛낸 가장 결정적인 성취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DNA는 한때 생명을 구성하는 정보가 담긴 ‘설계도’라는 물질적 실체로 이해되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삶과 가능성, 나아가 운명의 윤곽까지 규정하는 궁극의 원리처럼 여겨지며 일종의 형이상학적 위상에까지 올라섰다.
DNA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60년 전 프리드리히 미셔(Johannes Friedrich Miescher)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그로부터 약 60년 후 피버스 레빈(Phoebus Levene)에 의해 그 화학적 조성이 밝혀지면서 ‘데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하지만 1940년대 중반까지도 이것이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은 의심받고 있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DNA보다는 오히려 단백질이 유전물질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점쳐졌다. 스무 가지나 되는 아미노산이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단백질은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지만, A, G, C, T의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된 DNA는 실타래처럼 기다랗기만 할 뿐 구성이 극도로 단순해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Structure determines function)’라는 오래된 생물학의 핵심 원리가 있듯이, 어떤 분자의 고유한 3차원 구조를 알아낸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추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20세기 초 엑스선을 이용해 복잡한 분자의 결정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각광받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조사한 분자는 단백질이었다. 그러나 1944년 오스월드 에이버리(Oswald Avery)가 폐렴구균의 형질전환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물질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시사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DNA를 이해하고자 하는 긴 여정에서 시대가 지날수록 연구자들은 더 작고 단순하며, 생애주기가 더 짧고 신속하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연구 대상을 찾았다. 멘델(Gregor Mendel)은 완두콩을 가지고 실험했다. 모건(Thomas Hunt Morgan)의 연구 대상은 초파리였다. 에이버리는 박테리아를 가지고 연구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DNA가 유전물질임을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가장 작은 존재인 바이러스를 통해서였다. 허시(Alfred Hershey)와 체이스(Martha Chase)는 1952년 박테리오파지를 대상으로 한 방사성동위원소 실험에서 대장균의 유전물질을 바꾼 것이 단백질이 아니라 DNA였음을 최종적으로 증명했다. 작은 것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장 강력하기도 하다.
이에 유전물질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모든 연구자가 엑스선 회절 결정학을 활용해 DNA를 연구하는 데에 지대한 관심과 열정을 보였다. 이때 왓슨 역시 원대한 꿈을 그리며 당시 가장 유망하던 연구의 최전선에 합류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는데, 이는 결코 우연한 행보가 아니었다.
[그림1] 제임스 왓슨과 그의 DNA 이중나선 모델
DNA 구조 발견의 공은 누구의 것이었나
1953년 4월 25일 자 『네이처』에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 연구소의 젊은 유전학자 제임스 왓슨과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구조를 설명하는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모델을 발표했다. 수소결합에 의한 염기쌍의 완벽한 상보성, 두 가닥이 마주 보고 꼬인 아름답고 세련된 나선 구조, 그리고 그 구조가 곧 유전 정보의 복제 원리를 설명한다는 과감한 통찰. 이는 생명 현상을 화학과 물리의 언어로 번역한 사건이었고, 이후 분자생물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생명은 더 이상 신비의 영역이 아니라, 읽고 쓰고 조작할 수 있는 ‘정보’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특히 유전자의 기능을 분자구조로 규명함으로써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물리학에서 빌려온 환원주의적 설명을 도입하게 되었다. 왓슨이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자신에게 결정적인 학문적 영감을 준 인물로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를 언급한 일화는 유명하다. 양자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생명이 분자생물학이 탄생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복잡한 생명 현상도 알고 보면 ‘물질의 화학과 물리작용’에 불과한 것이다. DNA는 생명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며, 생명체는 DNA를 재생산하는 기계라는, 말 그대로 ‘기계론적 생명관’이 유행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생명의 비밀을 밝혀낸 장본인인 왓슨 자신도 이후의 행보에서 이러한 생명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은 고독한 천재의 산물이 아니었다. 런던 킹스 칼리지의 생물물리학 분과에서 DNA를 대상으로 엑스선 회절 연구팀을 지휘한 존 랜들(John Randall), 초기에 순도 높은 시료를 확보해 DNA가 일정한 규칙성을 가진 구조라는 점을 보여준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 엑스선 회절 사진을 직접 찍고 분석한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그리고 DNA의 구조를 가장 선명하고도 결정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평가되는 ‘51번 사진(photograph 51)’의 제작자 레이먼드 고슬링(Raymond Gosling)을 포함해 수많은 연구자가 이 영광의 순간을 위해 함께 달리고 있었다. 당시 생화학과 결정학이 축적해 온 집단적 지식이 없었다면 이중나선은 결코 그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프랭클린의 기여는 오랫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이는 훗날 하버드대 교수가 된 왓슨이 쓴 회고록 『이중나선』에서 드러난 그의 태도와 함께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중나선』은 과학적 발견의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린 영웅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쟁, 질투, 오판, 우연이 뒤섞인 인간적인 이야기였다. 이 책에서 왓슨은 동료 과학자들을 가차 없이 묘사했는데, 특히 프랭클린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편견과 경멸을 드러냈다. “고집불통에다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여자”, “고약한 페미니스트”, “31세의 과년한 나이임에도 문학소녀를 연상케 하는 촌스러운 옷차림”, “여유도 유머 감각도 없이 그저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말투”. 이 말들은 모두 왓슨이 직접 쓴 프랭클린에 대한 묘사다. 이 밖에도 책 속에는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왓슨의 여성 비하적 표현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과학은 결코 순수한 이성의 산물만은 아니다. 그것은 결함과 야망을 지닌 인간들이 부딪히고 협력하며 빚어내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기록 방식까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이중나선』이 들려주는 서사는 객관적 재구성이라기보다, 승자의 시선으로 재단된 회고에 가깝다. (실제로 책 속 인물들 상당수가 원고를 읽고 강하게 반발했으며, 그 파장은 출판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항의에 겁먹은 하버드대 출판부는 논란을 우려해 출간을 포기했고, 애초의 원제는 『솔직한 짐(Honest Jim)』이었다. 너무 솔직한 게 탈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책은 세상에 나왔고, 널리 읽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격언은 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가장 널리 읽히는 이야기를 써서 기억을 선점한 사람이 결과적으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연구 과정에서의 기여가 상대적으로 가장 적었을지도 모를 왓슨이, 대중적 서사의 주도권을 쥠으로써 가장 강렬한 존재로 각인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연만은 아니었다.
[그림2] 프랭클린과 고슬링이 엑스선 회절 기술을 이용해 찍은 ‘51번 사진’
가장 자격 없던 왓슨이 얻은 우연한 명성
킹스 칼리지에 있던 사람들에 비하면 왓슨과 크릭은 거의 아마추어에 가까웠다. 엑스선 회절 기술에 대해서는 사실상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바이러스 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던 왓슨은 캐번디시에 와서는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TMV)의 RNA 구조와 성분을 주로 분석하고 있었고, 물리학자였다가 뒤늦게 생물학으로 전향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크릭의 연구 주제는 단백질의 결정 구조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둘 다 DNA 구조 분석에 있어서는 결코 딜레탕트 이상이 되지 못했다. (특히 왓슨은 결정학 전문용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토론이 어려울 정도였다.) 왓슨과 크릭은 DNA 구조를 밝히기 위해 실험 한번 수행한 적이 없다. 그들은 스스로 DNA를 연구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왓슨과 크릭이 의기투합해 가장 열심히 하기도, 또한 가장 잘 하기도 했던 일은 다른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 결과를 염탐해 얻어낸 뒤 그것들을 적절히 종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실패 원인을 간파해 보완하고 자신들의 이론을 개선해 나갔다. (물론 그것도 능력이라면 굉장한 능력이다.) 그들은 DNA 구조에 가장 접근해 있던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의 역추적 연구 방법에 크게 영향을 받아 DNA 분자 모델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그러나 염기 간 결합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지 않던 두 사람에게 A와 T, 그리고 G와 C가 마주 보며 수소결합을 할 수 있을 거란 아이디어를 본인도 모르게 흘려준 건 화학자 존 그리피스(John Griffith)와 알렉 토드(Alexander Todd), 그리고 에르빈 샤가프(Erwin Chargaff)였다. DNA가 나선구조로 되어있다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역시 십자 모양의 엑스선 회절무늬였는데, 그마저도 자신들이 직접 실험한 게 아니라 프랭클린과 고슬링이 얻어낸 최고 해상도의 데이터를 허락도 없이 윌킨스를 통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는 윌킨스와 프랭클린의 관계가 그리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도 하다.)
여기에 아주 결정적인 해프닝이 추가로 일어났다. 1953년 초 킹스 칼리지에서 작성된 의학연구위원회(MRC) 보고서가 캐번디시의 막스 페루츠(Max Perutz)에게도 전달되었는데, 여기에는 프랭클린의 DNA 구조 분석 결과가 실려있었다. (프랭클린은 얼마 후 킹스 칼리지를 떠나 버크벡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확정되면서 그간의 연구에 대해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보고서에는 B형 DNA의 당-인산 뼈대가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가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를 읽은 크릭은 인산이 분자의 바깥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DNA의 뼈대를 이루는 두 개의 사슬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놓인 대칭 구조임을 깨닫게 되었다. 크릭이 이 보고서를 어떻게 읽을 수 있었을까? 페루츠가 바로 그의 지도교수였기 때문이다. 당시 페루츠는 그것이 불명예스러운 행위라고 차마 생각하지 못했고,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분명한 일들이 공교롭게도 왓슨과 크릭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거듭 일어났다.
두 사람은 짜깁기한 정보들로 서둘러 자신들의 모델을 완성해 『네이처』에 보냈다. 두 사람의 행보는 물론 천재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전문가들과 동료들 사이의 불문율을 깬 비신사적인 것임이 틀림없었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은 고작 한 페이지 반 분량에 900단어가 겨우 넘을 정도의 매우 짧은 것이었다. 급하게 쓴 것임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논문에는 별다른 실험 결과도 없이, 이중나선 모양의 DNA가 덩그러니 하나 그려져 있다. 그것도 화가였던 크릭의 아내가 손수 그려준 것이었다. 게다가 논문 원고의 타자는 왓슨의 여동생 엘리자베스의 솜씨였다.
『이중나선』에 담긴 왓슨의 자기 고백 내용만 보더라도 왓슨 자신보다는 크릭이 훨씬 더 DNA 구조 해명 연구에 열정적이었고, 더 많이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에 비해 왓슨은 박테리아의 짝짓기 연구라든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MV)의 성분 연구 등 다른 프로젝트에 더 많은 관심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논문의 첫머리에 들어갈 저자의 순서는 동전을 던져서 결정했다. ‘크릭과 왓슨’이 될 수도 있었던 순서는 운 좋게 ‘왓슨과 크릭’으로 결정되었다. 이제 평생에 걸쳐 이 커플은 ‘왓슨과 크릭’으로 불릴 터였다. 왓슨은 평생 쓸 운을 1953년 4월, 그 한 달을 위해 모두 당겨와 쓴 것처럼 보였다.
[그림3] 1962년 노벨상 수상자들의 기념사진. 왼쪽부터 모리스 윌킨스(생리의학상), 막스 페루츠(화학상), 프랜시스 크릭(생리의학상), 존 스타인벡(문학상), 제임스 왓슨(생리의학상), 존 켄드루(화학상)
격식을 차리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가, 아니면 그저 눈치 없는 속물인가
1962년 가을, 왓슨과 크릭, 그리고 윌킨스 이 세 명의 과학자는 DNA 구조 해명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수상자 명단에 프랭클린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노벨상은 최대 세 명까지만 공동 수상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방금의 대답은 프랭클린의 이름이 제외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만약 노벨상을 최대 네 명까지 공동 수상할 수 있는 규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가정이긴 하지만, 그랬더라도 프랭클린 대신 고슬링이 마지막 영예를 누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 시대의 암묵적인 관행은 여성에게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공로를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다행히도) 프랭클린은 이보다 몇 년 전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노벨상은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는 수여되지 않는다는 규정 덕에 논란의 씨앗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없었다. (노벨상 수상자 지명권을 가진 몇몇 위원은 윌킨스가 과연 노벨상을 받을 만한 공을 세웠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왓슨이 『이중나선』의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다음 문장은 당시 과학계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과학계라는 곳은 연구가 벽에 부딪혔을 때 흔히 여성을 단순히 기분 전환이나 시켜주는 존재로 생각하기 쉬운 곳이다.” 그는 『이중나선』의 또 다른 부분에서 크릭이 DNA의 비밀을 푸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기도 했다. 왓슨은 노벨상 수상 기념 연설을 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위대한 논문의 발표 이후 왓슨은 미국 서부의 칼텍(Caltech)으로 옮겨가 RNA를 연구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이나 의미 있는 성과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왓슨은 한 학회에서 RNA의 구조도 이중나선으로 되어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연구진이 더 확실한 다른 증거를 발표하는 바람에 자신의 주장이 엉터리였음이 드러나는 머쓱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DNA의 구조를 밝힌 선구적인 공로로 전 세계적인 셀럽이 되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하버드대의 교수로 부임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두 번째 회고록 『유전자, 여자, 가모브』에서 왓슨은 어째서 노벨상까지 탄 자신에게 여자가 없는지를 내내 한탄하는 찌질하고도 속물적인 모습을 노출한다. 그는 자신이 꿈꾸던 대로 하버드대의 교수가 되었는데, 그가 하버드대로 가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버드대 교수였던 에른스트 마이어의 딸 크리스타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는 후에 90세의 노인이 되어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동안 과학보다도 여자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늘 짓눌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왓슨은 그의 성급함과 무모함 때문에 하버드에서도 여러 사람과 문제를 일으켰다. 자신의 연구실에서도 학생들을 혹독하게 평가해 편 가르기를 유발했고,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분자생물학 분야만이 진정한 과학이라고 주장하며 진화생물학이나 생태학에 오래 몸담아왔던 동료 교수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었다. 『사회생물학』을 쓴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왓슨을 자신이 만난 가장 불쾌한 과학자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훗날 유전자 조작이 마음먹은 대로 가능해진 시대가 찾아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을 때, 왓슨은 유전자 조작 기술이 속히 일상에 도입되길 바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하기도 했다. 그는 못생긴 여성들의 단점을 고쳐주는 게 유전학 연구의 가장 실용적인 응용법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예쁘게 되면 끔찍할 거라고 말하지만, 난 그게 훨씬 더 맘에 든다.”라고 덧붙이며.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직설적이면서도 아슬아슬한 말버릇은 얼마 후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업보가 되어 돌아오고 만다.
[그림4] 왓슨의 세 번째 회고록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이중나선과 이중성: 왓슨이라는 거대한 역설
유전자를 바라보는 왓슨의 관점은 처음부터 강한 결정론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이중나선』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깔은 물론이고 사람마다 다른 지적 능력이나 유머 감각 같은 기질까지도 DNA에 새겨져 있다고 확신했음을 알 수 있다. 지능, 성격, 사회적 성취 역시 유전자의 산물이라는 믿음은 그의 사고 전반을 지배했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개인적 견해에 머물지 않고 점점 더 공적인 발언으로 확장되었다는 데 있었다.
2007년, 세 번째 회고록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가 출간된 직후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치명적인 발언을 내놓는다. 인종 간 지능 차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흑인은 연구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취지의 말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아프리카인이 유럽인처럼 영리하지 못한 이유는 좋은 유전자를 갖지 못한 ‘품종’ 탓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비만한 사람은 게으르니 채용해서는 안 된다거나, 동성애를 ‘예방’할 수 있다면 태아의 유전자를 조작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의 발언은 과학적 논쟁의 차원을 넘어 노골적인 차별과 우생학적 시각으로 받아들여졌고, 과학자의 말이 지니는 사회적 책임을 다시 묻게 만들었다.
대가는 혹독했다. 반세기 넘게 쌓아온 화려한 경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명예직을 박탈당했고, 강연은 줄줄이 취소되었으며, 과학계에서 사실상 축출되었다. 말년에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한때 영광의 상징이었던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DNA라는 보편적 생명의 언어를 밝혀낸 위대한 인물이 인간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단일한 유전 공식으로 환원하려다 스스로 고립된 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분자생물학은 시간이 흐르며 환경, 발달, 우연의 역할을 점점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그는 그 변화에 충분히 발맞추지 못했다. (2019년 미국에서 방영된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왓슨은 2007년에 문제가 되었던 그 악명높은 발언을 취소하겠느냐는 질문에 ‘노’라고 대답했다. 그는 세상과 화해할 기회를 끝까지 거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과학적 공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교과서로도 많이 사용되는 『유전자의 분자생물학』과 『DNA: 유전자 혁명 이야기』 같은 저작은 대중에게 생명과학의 세계를 넓고 친절하게 열어 보였다. 그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초반에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제는 과학적 통찰과 사회적 통찰이 반드시 함께 성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임스 왓슨의 삶은 과학자의 위대함이 곧 도덕적 권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는 이중나선을 발견했지만, 인간 사회의 복잡한 나선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끝내 실패했다. 그의 삶을 평가한다는 것은 찬양과 비난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이중성을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과학이 어디까지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할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지 묻기 위해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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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son, James D., 2001, Genes, Girls, and Gamow(『유전자, 여자, 가모브』, 이한음 옮김, 까치, 2004).
Watson, James D., 2007, Avoid Boring People(『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김명남 옮김, 반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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