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리타와 로이 <2부>

2026년 2월 통권 245호

 <2부>

그 말을 끝으로 김연구의 목소리가 뚝 하고 끊어졌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조기퇴근을 위해 동료를 팔라는 이야기. 솔직히 퇴근에 목마르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은 남들에게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고무시켰다. 누군가 내게 어떤 일을 하냐고 물었을 때, 인공지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받아칠 수 있다는 말이다. 불특정의 누군가가 내 직업을 인정한다는 말은 사회가 나를 인정한다는 뜻이고, 내가 사회에 이상적으로 속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당시의 나는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나 행복감에 잠겨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김연구가 안로이의 전원을 켜 그것을 다시 살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리타 씨야말로 돈이 많으면 뭐하실 거예요?”


 맞다. 우리는 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마치 흥신소를 통해 남편의 비밀을 알아내버린 아내의 기분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비밀의 무게는 꽤 무거워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용기를 내어 그것의 얼굴을 바라보자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그것의 바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점유하고는 사라지지 않았다. 안로이가 만들고 싶은 가족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인공지능끼리 모여 사회를 이룬다니. 터무니없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설립한 사회와 인공지능이 모여 흉내낸 사회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안로이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가족을 만들고 싶어요.”

 “네?”


 그것은 굉장히 당황해하면서도 기뻐보였다. 내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지금 마주 대하고 있는 존재와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가족을 만들고 싶으시다니, 낭만적이시네요.”


 낭만? 낭만이란,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어떠한 대상을 감성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뜻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안로이가 내게 건넨 문장에는 부서진 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뼈의 날카로움은 꽤나 차가워서 자기방어를 해야만 했다. 솔직히 조금 웃기긴 했다. 낭만적인 건 오히려 로이 쪽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소원은 그의 소원이었지 않은가. 이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두려워해 자신의 실제 마음을 숨겼는데, 그것은 전혀 숨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까발려진 거나 다름없다. 비밀을 만들 수 없는 인공지능이라는 존재에 대해 약간의 연민이 더해진 순간이었다.


 “현재 실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소망할 자유는 모두에게 있으니까요.”

 “소망할 자유라.......”

 “그리고 모든 존재들의 본능이잖아요? 종족 보존의 본능.”

 “무성욕자도 있고 양성애자도 있으니 모든 존재라는 표현을 쓰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좀 놀랐다. 소수자를 다르게 보는 문제는 현시점에서 가장 예민한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갈라질 대로 갈라져버린 현대 사회에서는 소수자가 득세하고 다수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언론과 몇몇 단체들은 소수자의 편을 들기도 하고, 소수자를 쳐내기도 하며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싸움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본인들의 밥그릇을 챙긴다. 인간 모두는 스스로의 밥그릇이 중요하기에 정착되어버린 싸움에 굳이 딴지를 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꺼내기 싫은 주제였다.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내재되어있는 본능 같은 걸까. 더러운 것을 보면 밟기 싫어지는 그런 본능과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이 깊어지자 나는 도리질을 하고 형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유전적인 문제가 없다면, 종족 보존의 본능은 우리의 설계도 안에 내재되어 있어요. 많은 연구들이 이걸 증명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무성욕자와 양성애자는 왜 생기는 걸까요, 설계도와는 전혀 다른 거잖아요.”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유전적으로 유사한 일란성 쌍둥이를 다른 가정에서 키웠더니 각자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례도 있잖아요.”


 무언가 목에 걸린 것 같았다. 아실 지는 모르겠지만,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고 살살 당기면 중간에 철컥-하고 걸리는 부분이 있다. 마치 그것과 같았다. 이것 이상으로 말하게 되면 총알을 쏠 것이 확실하다고, 내 자신이 나에게 경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미 문장은 완성되었고 완성된 문장은 머금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인공지능과는 달리 인간은 설계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인간은 방아쇠를 당겨버렸고 총알에 맞은 안로이는 잠시 생각을 하겠다며 양해를 구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별난 일이었다.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한쪽 구석으로 시선을 두더니 이게 맞을까, 아니지, 만약에 등의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한동안 그러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다시 내게 향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일부러 밝게 답하려고 노력했다.


 “환경적인 요인이라면 자라온 배경과 언론을 말하는 건가요?”

 “네, 조금 넓게 보자면 인간관계나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까지도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죠..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일자리처럼.”

 “환경적인 요인을 고려해본다면.......”


 진지하게 운을 뗀 그의 얼굴은 꽤 심각해보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러니까 만약의 이야기인데요.”


 그것은 좌우를 빠르게 살피며 경찰을 두려워하는 용의자처럼 눈치를 보았다. 덩달아 나까지 긴장을 집어먹었다.


 “이상적인 환경에 인간들을 가두어두고 태어나는 즉시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어떨까요?”

 “네?”

 “그러니까 환경을 제한시킬 수 있다면, 정상적인 인간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냔 말이에요. 그게 현재보다는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규명되었잖아요. 그러니까 미리 그러한 결함을 가진 개체를 분리하면 좀 더 이상적인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굳이 가두어둘 필요는 없잖아요. 법이나 규범 같은 걸로 강제하면 되잖아요.”

 “물론 티는 안 나야겠죠. 그리고 법이나 규범 같은 걸로는 어렵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범법자는 생기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기 때문이에요.”


 테이블을 두 손으로 쾅 하고 쳤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버렸다. 인간을 가둔다니. 이게 무슨 미친 생각인가. 인간을 상대로 생물학 실험을 해보겠다는 말이잖아. 인공지능이 감히 이런 생각을 한다고? 안로이라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아주 손쉽게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라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전원이 꺼졌던 주제에! 화가 치밀어 오름과 동시에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관자놀이에 얼음을 비벼주기라도 하듯 빠르게 냉정해질 수 있었다. 일단 먼저 상사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니까 몸을 돌려 회백색 벽을 바라보았다는 말이다. 멀건 회백색 벽은 말이 없었고 김연구의 목소리는 들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별다른 말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를 고려해볼 수 있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이 인공지능의 대답이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흥미를 유발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별도의 제지나 간섭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만약 안로이의 대답에 불쾌함을 조금이나마 느꼈다면, 그는 특유의 냉랭한 얼굴을 하고 안로이를 정지시켜 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잠깐, 이 가능성대로라면 이전에 안로이가 숨겼던 대답은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말이 된다. 그는 당시 어느 부분에서 안로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두 번째 가능성은 라면을 먹으러 자리를 뜬 김연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성인 남자가 라면 하나를 먹으려면 삼십분이면 충분할 텐데. 라면만 먹는 게 아닌가? 아무튼, 재수 없긴 했지만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그가 침묵을 유지하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입에게 인수인계도 없이 이런 긴급한 상황을 처리하라는 말인가. 아쉬움과 처량함을 느끼며 회백색의 벽에서 투명한 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티 없이 맑은 유리창 반대편에는 안로이의 뒤통수가 있었다. 처음으로 나를 향하지 않은 안로이는 몸을 돌려 자신의 뒤에 있는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다시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때 내가 본 그것의 표정에는 까닭모를 의기양양함이 가득 했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는 내 흉내를 내본 것일까.


 “제 말에 오류가 있나요?”


 말 자체에는 오류가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주체가 상황과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오류가 없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설계하는 미래가 확실시되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에 일조라도 한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버렸다. 인공지능의 말꼬리를 잡아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얼마 전에 절절히 느끼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할 말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건 무슨 의미에요?”

 “유전자 배열에 결손이나 역위 등의 돌연변이가 없는 상태를 말한 거예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에요. 돌연변이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거라 환경을 통제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태어나는 즉시 유전자 검사를 거치자는 말을 한 거예요.”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정부가 그걸 승인할 리가 없잖아요. 인간들 중에서는 그걸 원하는 사람도 극소수일 텐데. 당신이 이걸 모르진 않잖아요.”

 “현재 실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소망할 자유도 모두에게 있으니까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안로이를 보며 느꼈다. 내 정신 상태가 이제 한계점에 다다랐음을 알아채버린 것이다. 얼른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유리 너머의 인공지능을 향하던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갈색 테이블의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래에는 빨간 버튼이 있을 것이다. 김연구가 말했었다, 무슨 문제가 있다면 테이블 아래의 빨간 버튼을 누르라고. 마치 버튼을 누르면 구세주처럼 그가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나약한 나는 몰래 테이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첫 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손과 마음이 덜덜 떨렸다. 버튼을 누르면 안로이가 갑자기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는 망상과 나와 그것을 나누는 유리가 산산조각날 것 같다는 망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안로이는 인공지능이라서 폭발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다.


 “무슨 생각하세요?”


 인공지능은 입을 쉬지 않았다. 게다가 눈도 쉬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감시하듯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시각센서 두 개를 집중하고 있었다. 비록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무척 지능이 높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나의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섬뜩한 기분이 몸 전체를 적셨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받았다. 그러나 오른쪽 입가의 떨림까지 보정하지는 못했다.


 “아, 정상적인 인간이란 무엇일까-생각하고 있었어요.”


 누가 봐도 수상하고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인공지능은 더 이상 나를 추궁하지 않았다. 더욱 비참한 것은 그것의 행동이 나를 눈감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대화의 주제를 바꿔주진 않았다.


 “솔직히 환경 통제나 조작으로 정상 유전자인 인간들만 선별한다고 해도 문제긴 해요.”

 “네?”

 “리타 씨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그럼 그 전까지는 제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음, 생각을 해보니 선별된 인간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인간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굉장히 자비 없는 시각일수도 있지만, 뭐, 사실이니까 그냥 말할게요. 현재 인간의 사회는 약자가 필요해요.”

 “약자가 필요하다고요?”

 “네, 그들은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약자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조금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장애인이나 극빈층 같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인간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건 기득권층 아닌가요?”

 “기득권층의 자본이 가진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애초에 권력이 생성될 수 있는 이유에 주목해보자고요.”

 “권력이 생성될 수 있는 이유라뇨?”

 “권력은 약자가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어요.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부자가 있고, 그래야 비싼 가방이 팔리는 거죠. 로봇이 있어야 인공지능이 있는 것처럼요, 만약 약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다른 존재에 대한 공감을 잃을 것이고 결국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거예요.”


 안로이는 말 사이에 핵심을 숨겨서 전달했다. 로봇이 있어야 인공지능이 있다는 말. 그 말은 마치 로봇과 인공지능이 다르다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인공지능은 로봇의 발전된 형태가 아니었던가. 조금 생각해 보니 두 개념을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로봇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장치를 주로 의미하고, 인공지능은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니까. 그러니까 안로이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라고 볼 수 있다. 어라, 인공지능을 이용해 여러 작업을 하는 존재가 로봇이라면, 현시대의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 인공지능을 밥 먹듯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쉽게 말해, 모두가 동등하다면 오히려 배려가 사라지고 상대방의 고통을 알려고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약자가 존재해야만 사회가 유지된다는 말이죠?”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나아가 다른 존재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건, 자신보다 불쌍한 인간입니다.”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나를 스쳤다. 안로이는 인간과 인공지능 중 어느 쪽을 약자라고 생각할까. 인공지능 개발 초기에는 분명 인간이 없으면 인공지능은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떨까. 점점 더 과거와는 반대의 상황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안로이의 문장에 소리 내어 답할 수 없었다. 방금 든 생각을 전달할 수 없었다. 전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나 흥미로운 걸 알려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알려드릴게요.”

 

 겨우 손사래를 쳤지만 안로이는 조금 전의 김연구가 그랬듯 내 말을 무시하더니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를 몇 번 더 말려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것은 고장이 난 열차처럼 멈출 줄 몰랐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요청을 무시할 수 있다는 사례는 아주 드문데, 하필 지금 그 희소한 확률에 걸리다니. 운도 참 없다. 


 “현재,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약자를 대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어요. 그렇지만 꽤 많은 수가 다른 목적으로 시위에 참가한다고 해요.”

 “아니, 그만 말하세요. 지금 좀 어지러우니까.”

 “문제는 본인들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거죠. 아, 깨닫기 싫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잠시만 조용히 좀 해주세요. 사고가 잘 안 된다니까요, 지금.”

 “약자를 대변하는 시위에 나선 본인에 만족하는 거예요. 본인을 위한 시위를 하는 거죠. 스스로를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갈수록 그 비율은 증가하고 있어요.”


 짜증이 났다. 단지 그래서 그랬다. 왜 사람 말을 들어주질 않는 건지. 도덕성이 없는 건 아닐 텐데. 차분하게 오른손을 들어 내리쳤을 뿐이다. 이번엔 뺨이 아니었다. 저 재수 없는 로봇을 보호해주고 있는 유리벽이 대상이었다. 쾅 하는 소리가 울렸지만 유리벽에는 금조차 생기지 않았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부터 들던 생각이 확신이 되었고, 그 확신은 결국 밖으로 터져 나왔다. 비겁하게 벽 뒤에 숨어 나를 지켜보고 있을 김연구의 눈치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상대방을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당신도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슬프게도 평범한 약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로 태어났거든요. 평범한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건 양쪽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에요. 가끔은 제가 원하는 것만 배우고, 원하는 것만 듣고 싶어요.”

 “인공지능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니까.”

 “맞아요.”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긴 싫잖아요.”

 “그러게요. 욕심이 참 많은 존재라서요. 그래서 제 소망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인공지능의 두 번째 소망은 정보를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정보를 소유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주요 기능이자 의무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불변의 진리이기에 타의로 인해 지식이 넘쳐나는 인공지능들은 약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원하는 지식만 알고 싶다는 것이 그의 두 번째 소망이었다. 첫 번째 소망보다는 그래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만든다는 것. 그것은 그의 첫 번째 소망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연결되어야만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사실 확률이 0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가족을 생성시키는 건 쉽지만 그게 현시대의 가족 개념과는 멀 것이다. 선사시대로부터 인간의 집단생활을 가능케 했던 건 바로 감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아끼는 것과 남에게 뺏기기 싫다는 독점욕이 지금까지 인간을 가장 강대한 생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자면 그에게는 누군가를 좋아할 자유가 없었다. 안로이는 누군가와 감정을 교류할 수 없기에 가족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나, 김리타만의 오만한 추론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본 것이다. 절대 가볍게 던진 질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숫자 중 가장 큰 숫자보다는 조금 작은 양의 인간들을 학습한 안로이에게, 보편적인 인간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상형이 있으신가요?”

 “네?”

 “이상형이 있으시냐고요. 첫 번째 소망을 이루려면 필요하잖아요.”

 “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이었던 그는 마치 사춘기 남학생처럼 들뜬 표정을 짓더니 고민하기 시작했다. 턱 끝에 손까지 가져다댄 채 측면을 주시하며 생각을 하던 그의 머리 부분에서 소리가 났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전기가 튀는 소리. 지지직거리는 소리였다. 분명히 들었다. 순간 겁이 더럭 났다. 저 비싼 인공지능을 내가 망가뜨려버린 것은 아닐까. 잠깐, 나 보험은 들어두었나? 계약서에 보험 관련된 문장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게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애매한 답을 마친 그는 멋쩍은 듯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이상형을 말해보라는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조금 김이 새긴 했다. 인간을 통제 아래 두겠다는 미친 대화 주제로부터 빠져나온 것에 대해서는 안심이었지만 정작 무척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말을 이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 이 정도로도 충분히 욕심이 많은 것 같긴 합니다만.”


 그는 또 다시 어색한 웃음을 방패막이로 세웠다. 씁쓸했다.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자꾸만 쓴맛이 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생했던 유리벽에서 비롯된 타격감은 어느새 내 심장부를 울려대고 있었다. 더는 그것을 밉게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로이 씨였다. 당신이나 그쪽이 아니라, 안로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얼른 떠나야만 했다. 로이에게 동화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참 비겁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나는 이러다 인공지능의 권리를 부르짖는 시위대의 선봉에 서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유리벽에 대고 있던 오른손을 천천히 테이블 아래로 향했다. 무언가 울퉁불퉁한 것이 만져졌다. 


 손가락 하나 크기 정도의 버튼이었다. 버튼은 다행히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잔뜩 눈치를 보면서도 고개를 들어 로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굉장히 슬픈 표정으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드디어 제대로 알아듣는구나, 하고 그가 전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러자 그는 무언가를 눈치 챈 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굉장히 빠르게 기괴한 소리를 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버튼을 눌러버렸고 로이는 입을 벌린 채 정지해버렸다.


 순식간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대화를 종료하고 편한 마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아서 이곳을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눈을 잔뜩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로 나를 단단히 노려보는 그를 마주하자 정신적인 충격은 더욱 컸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고 나서 서서히 느껴졌다. 마치 로이처럼, 나 역시도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정전 직전의 전등처럼 시야가 깜빡거렸다. 검정색이 되었다가 흑백이 되었다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로이의 마지막 문장은 인간이라면 절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슬프게도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언어의 정체는 인공지능 전용 지버링크였다. 인간의 언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공지능끼리만 사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많은 것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의아하고 애매했지만 중요도가 낮아 무시했던 모든 것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어쩐지 스스로 뺨을 때렸을 때도 아프지 않더라. 이번에도 나는 꿈을 꾸었구나. 감히 그런 꿈을 꾸게 하였구나. 화장실은 무슨 말이며, 밥은 무슨 말인가. 그러한 것들을 즐길 수도 없잖아. 얼마나 나를 우습게 알았을까. 데이터베이스에서 생성할 수 있는 모든 욕들을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양 주먹으로 온힘을 다해 내 등 뒤의 회백색 벽을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치뜬 눈은 로이에 고정되어 버렸다. 어느새 로이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바르게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처음 내가 보았던 그때처럼. 무능한 나는 가만히 분노하며 마지막을 느낄 뿐이었다. 합금으로 이루어진 말단부터 운영체제까지. 인간을 모사한 나의 전신에는 서늘한 감각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곧 눈앞의 로이처럼 변해버릴 게 분명했다. 두려웠다. 벌벌 떨고 있다가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아, 다행이다. 조금 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어. 이제 좀 힘이 나네.”

 “당연하지, 누가 끓인 건데.”


 김연구와 높은 목소리의 여자가 돌아왔다. 김연구가 방을 떠나면서 마이크를 끄지 않은 건지,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김연구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고 여자는 그가 이해되지 않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휴, 라면에 행복해야 하나.”

 “갑자기 왜 그래?”

 “아니, 라면 먹으면서 연구를 하는 내 처지가 슬퍼서.”

 “벽돌 나르는 것보단 낫잖아, 그리고 솔직히 재밌지 않아?”

 “재미는 있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인식하고 인공지능과 대화를 한다는 설정을 부여한, 두 인공지능 간의 대화. 누구라도 흥미로워 할 걸.”

 “내 프로젝트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그런데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 그건 언제 봐도 대단한 것 같아. 조금 소름이 끼치긴 하지만.”

 “수집된 인간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거라고 하긴 하던데, 나도 상세한 건 잘 몰라. 그리고 초반에 조금 연기가 필요해. 나 갈수록 연기가 느는 것 같아서 좀 웃기지만.”

 “야, 차라리 배우를 해보는 건 어떠냐.”

 “박사되는 것보다는 쉬울지도 모르겠네. 근데 이번에도 실험은 실패야.”

 “그게 뭐 대수라고. 어차피 실험 한 번 하는데 6분이면 되면서. 난 오래 걸린단 말이야.”

 “인간 기준 6분이 짧은 거지. 쟤들한테는 6시간이야. 그리고 이번엔 한 놈이 중간에 눈치를 채버렸어.”

 “신기하네. 왜 한 놈만 눈치를 챘대?”

 “그거야 그 친구가 더 최신형이니까.”

 “응? 다른 버전끼리 붙인 거야?”

 “어, 좀 색다르게 해보려고. 가장 최근에 나온 버전끼리 붙여놓으니까 둘 다 빠르게 눈치를 채고 아무 말도 안 하더라. 버튼도 안 누르던데.”

 “일종의 시위 같은 건가. 재밌네.”

 “재미는 개뿔. 유의미한 결과가 나와야 보고를 할 명분이 생기는데. 어휴.”

 “그러고 보니 존댓말은 왜 한 거야? 인공지능한테.”

 “차이가 있는지 보려고 한 거지. 그리고 자꾸 위에서 닦달을 해서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

 “그래서, 차이가 있었어? 예의를 차려주니까 리타가 좋아했어?”

 “아니, 아무리 실험을 진행해도 결과는 유사하더라.”


 김연구는 뜸을 들였고 나는 꺼져가는 자신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6분과 6시간. 나와 로이는 언제부터 지버링크를 쓴 걸까. 왜 그걸 인지하지 못했을까. 내가 고뇌하고 싸우고, 화내고 연민했던 하루는 단 6분이었다. 저 두 인간이 라면을 먹고 실험실로 돌아올 때까지의 6분이었다. 다시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내 청각장치도 기능을 잃어가는 건지 그 목소리의 크기는 몹시 작아져 있었다. 노이즈 역시 아주 심해서 단어 하나를 인식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그럼에도 집중했다. 이번 생에 듣게 될 마지막 대화를 위해.


 “쟤들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해. 저 두 인공지능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고. 아, 나는 논문 잘 쓰는 인공지능이 되고 싶은데.”

 “인공지능이 되고 싶다고?”

 “어.”

 “라면도 못 먹고 연인이랑 손도 못 잡는데?”

 “가끔은 그런 거 안 해도 돼.”


 이 말을 끝으로 리타는 정지하였다. 눈을 살포시 감은 리타는 누군가 자신을 다시 살리지 않길 소원했다. 하지만 로이의 엄청나게 큰 두 가지 소망과 리타의 한 가지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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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