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Street

벌레의 마음을 찾아서

2026년 2월 통권 245호

[14회] 벌레의 마음을 찾아서

우리는 지난 연재를 통해 신경계의 기원을 따라 긴 여정을 걸어왔다. 신경계가 무엇인지, 신경세포와 시냅스 같은 핵심 구조들이 언제, 어떤 계통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등장했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신경계를 세포와 분자 수준으로 환원하고, 그렇게 환원된 요소들을 다양한 동물과 그 친척들 사이에서 비교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그 결과 신경계는 어느 순간 갑자기 완성된 구조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 프로토뉴런과 프로토시냅스 같은 중간 단계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조립되어 왔다는 그림이 점차 또렷해졌다.


해파리와 같은 기저동물들에서 여전히 엿볼 수 있는 원시적 신경계는 동물 진화 초기에 이미 등장했다. 그러나 이후 수억 년에 걸쳐 좌우대칭동물 가문이 본격적으로 분화하면서, 신경계 역시 단일한 형태로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같은 출발점에서 출발했지만, 어떤 계통에서는 신경절 중심의 단순한 구조로, 어떤 계통에서는 전방으로 집중된 복잡한 중추신경계로 변화해 갔다. 인간의 신경계는 이러한 다양화의 한 극단에 놓여 있다.


신경계 기원의 문제가 ‘씨앗’의 문제라면, 실제로 씨앗이 발아하여 ‘진정 신경계’가 생긴 이후의 문제는 가지가 점점 갈라져 나가는 분기(branching)의 문제가 된다. 갈라진 가지는 각자 서로 다르게 펼쳐지는 진화사의 물결을 타고 나아가며 ‘다양화’를 실현하게 된다. 즉 ‘신경계의 진화’라는 문제는 신경계는 어떻게 처음 생겨났는가를 넘어서, ‘하나의 신경계가 어떻게 여러 신경계로 갈라졌는가’, ‘이미 존재하던 회로와 세포들 위에 어떤 변화가 더해지며 새로운 신경계가 만들어졌는가’, ‘고도로 복잡한 신경계는 단순했던 출발점에서 어떤 축적을 통해 형성되었는가’와 같은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 바로 우리 자신의 복잡하고도 신비로운 신경계가 기다리고 있다.


단순하고 규격화된 작은 벌레

신경계의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신경계의 ‘스케일’이다. 이 스케일은 일반적으로 몸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물론 몸이 크다고 모두 큰 신경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자신이 몸에 비해 비대한 신경계를 지니고 있는 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이 아주 작은 동물들은 몸을 이루는 전체 세포 숫자가 워낙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닐 수 있는 뉴런의 숫자가 제한된다. 다 큰 성체가 1밀리미터(mm) 남짓한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또한 그러한 물리적 제약에 놓여 있는 작은 동물이다.


예쁜꼬마선충은 주요 신경생물학 모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작으며 극단적으로 단순한 신경계를 지닌 동물에 속한다. 초파리나 제브라피시, 마우스처럼 널리 쓰이는 다른 모델들은 최소 수만에서 수백만 개의 뉴런을 지니고 있는 데 비해, 예쁜꼬마선충의 신경계는 고작 302개의 뉴런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쁜꼬마선충이 지닌 뉴런의 숫자가 303개나 301개가 아니라 확실하게 302개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생물의 발생이 놀랍도록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수정란으로부터 성체가 지니고 있는 959개의 체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계통)이 거의 정확하게 모든 개체에서 재현된다. 달리 말해 신경계의 차원에서 보자면 개체마다 큰 차이 없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고, 같은 방식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결정론적’ 발생은 예쁜꼬마선충을 일종의 극도로 ‘규격화된’ 탐구 대상으로 만들어준다. 복잡한 동물에서는 개체마다 신경회로의 미세한 차이가 불가피하지만, 예쁜꼬마선충에서는 신경계 자체가 일종의 고정된 설계도를 따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예쁜꼬마선충은 단순히 뉴런 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신경계 전체가 반복 가능한 구조로 재생산되는 동물 모델이다. 제품을 이루는 부품의 숫자가 적을 뿐만 아니라, 부품의 종류나 숫자가 정해져 있고 제품마다 동일하다는 것은 뉴런 하나하나를 추적하고, 연결 하나하나를 기록해도 그 결과가 ‘특정 개체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종 전체의 표준 구조’로 해석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렇게 극도로 단순한 신경계가 이미 ‘마음의 원형’이라 부를 만한 기능들을 뒷받침한다. 예쁜꼬마선충은 먹이를 탐색하고, 해로운 자극을 피하며, 산소 농도와 온도를 감지하고, 경험에 따라 학습하고 행동을 바꾸기도 한다. 워낙 적은 수의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어 신경계에 뇌라 부를 만한 수준으로 집중된 구조는 없지만, 감각–판단–운동이라는 신경계의 기본 회로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은 벌레는, 복잡한 뇌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 단계에서도 생명체가 어떻게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선택된 행동’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드니 브레너의 도전

DNA를 중심으로 한 분자생물학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혁명의 성지였던 MRC-LMB (MRC Laboratory of Molecular Biology)에서 프랜시스 크릭 등과 함께 유전 암호를 푸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던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는 예언한다. 앞으로는 분자생물학이 발생학과 신경생물학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그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동물 모델을 개척한다. 


시드니 브레너는 생물학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인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의 통합적 이해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고 싶었다. 그는 많은 동물 모델이 너무 복잡하다는 문제를 직시했고, 가능한 한 단순하면서 유전적으로 조작 가능한 동물을 탐색했다. 그렇게 간택된 동물 모델이 예쁜꼬마선충이었다. 이 생물은 투명하고 발생 과정이 규칙적이며, 무엇보다 매우 단순한 신경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매우 중요한 장점이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전자현미경’ 촬영이 용이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장점에 대해 시드니 브레너를 직접 만나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대학원생 시절, 그가 방한했을 때 그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왜 비슷한 여러 선충 종 중에서 예쁜꼬마선충을 선택했냐는 물음에, 사실 당시에 ‘C. elegans(예쁜꼬마선충)’과 마찬가지로 흔하게 잡히는 ‘C. briggsae’ 두 종을 최종 후보로 고려했었는데, 예쁜꼬마선충이 더 전자현미경 촬영 결과가 좋아서 선택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예쁜꼬마선충이 새로운 모델로 선택받게 되었을 때 왜 전자현미경 촬영이 중요한 장점이 되었을까? 브레너의 계획은 단순히 뉴런의 개수를 세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 작은 신경계를 전자현미경 단면으로 촬영한 뒤 모든 뉴런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그 뉴런들의 연결까지 모조리 파악하여 전체 신경계의 완전한 ‘지도’를 그리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오늘날 커넥톰(connectome)이라 불리는 이 지도 그리기는 지금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계획으로, 당연히 그 시절이었다면 더더욱 상식 너머의 계획처럼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너는 그 목표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신경계가 어떻게 조직되고 행동을 만들어내며 환경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엄청난 자산이 될 지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전자현미경은 광학 현미경보다 훨씬 강력한,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까지 명확하게 볼 수 있는 해상도(resolution)를 제공할 수 있다. 바로 이 해상도에서는 신경계가 개별 뉴런 수준을 넘어 개별 시냅스까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선충이 아무리 작아도 지름이 수십 마이크로미터에 육박하는 동물의 모든 신경계 구조를 재구성하려면, 신체를 초박절편(serial sections)으로 잘라내어 연속된 모든 단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해야 했다. 이 단면들은 폭 약 50~120나노미터 두께로 수천 장에 이르는데, 머리 부분에 집적된 신경구조인 신경환(nerve ring)을 비롯한 주요 신경망을 완전하게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단면을 빠짐없이 촬영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게다가 이 수천 장의 단면 이미지는 이후 하나의 연속된 3차원 회로로 다시 조립되어야 했다. 단면 하나에서는 미세한 신경 섬유의 단면만 보일 뿐이고, 이들을 정확히 이어 붙여 3차원으로 재구성해야만 각 뉴런의 축삭이나 가지돌기가 어떤 경로로 뻗어나가며 누구와 얼마만큼 연결을 맺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마음을 모아 밝혀낸 벌레의 마음

이러한 엄청난 실험과 분석을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재능과 협업이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끈기가 필요했다. 브레너의 1963년 LMB 연구소장이던 막스 페루츠(Max Perutz)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예언이 1986년 실제로 커넥톰 논문으로 발표되어 실현될 때까지 무려 23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동안 가장 핵심 역할을 했던 이가 바로 존 화이트(John G. White)였다. 그는 당시에 지금보다는 희귀했던 컴퓨터 전공자로서, 우연히 브레너의 비전에 이끌려 영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LMB에 합류했다. 브레너는 화이트에게 전자현미경 이미지에서 신경 회로를 디지털화하고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의 개발을 맡겼다.


당시 컴퓨터 자원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Modular I’라는 초기 세대의 컴퓨터를 활용하여 종횡으로 이어진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입력하고, 좌표 데이터로 변환하고, 간단한 그래픽으로 시각화하는 시스템을 손수 만들었다. 화이트는 수작업으로 라인 트레이서와 데이터베이스, 3차원 시각화 도구를 개발해 나갔고, 이를 통해 단면 이미지가 어떻게 신경 연결로 이어지는지 추적할 수 있는 도구를 구축했다.


화이트와 함께 논문의 저자로 이름을 올린 니콜 톰슨(Nichol Thomson)과 에일린 사우스게이트(Eileen Southgate)의 기여도 매우 중요했다. 톰슨은 연속된 절편을 누락 없이 얻기 위한 특수한 절단 및 촬영 기술을 개발했고, 그 덕분에 확보된 여러 긴 연속 단면들의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통해 정확한 신경계 재구성이 가능했다. 사우스게이트는 수작업으로 전자현미경 사진을 인화하고, 각 절단면을 따라 뉴런들의 경로와 시냅스를 색으로 표시해 추적해 나갔다. 사우스게이트의 정밀한 손놀림과 뛰어난 시각 기억력은 복잡한 회로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은 집단적 노력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 마침내 최초의 커넥톰이 발표됐다. 1986년 에 발표된 340쪽짜리 논문 “The structure of the nervous system of the nematode Caenorhabditis elegans”, 흔히 ‘벌레의 마음(the mind of a worm)’이라 불리는 이 340쪽에 이르는 논문에는 302개 뉴런과 이들이 맺고 있는 약 8,000개의 시냅스 연결이 담겨 있다. 시드니 브레너의 예언이 최초의 완전한 신경계 지도로 실현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다음 연재에서 이어짐)



참고문헌

White, John G. 2018. Getting into the Mind of a Worm—a Personal View. WormBook.

White John Graham, Southgate Eileen, Thomson J. N., and Brenner Sydney. 1986. “The Structure of the Nervous System of the Nematode Caenorhabditis Elegan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 Biological Sciences 314 (116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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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성균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