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리타와 로이

2026년 1월 통권 244호

 

서명을 했다. PDF 파일의 빈칸에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채워 넣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목이 좋지 않은지 숨소리가 이상했다. 이게 얼마 만에 구한 일자리인지 모르겠다. 늙은 아저씨들 이야기 들어주면서 돈 버는 불건전한 곳도 아니고, 하얀 작업복에다 공장도 아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택배상자들과 싸움해야 하는 물류 허브도 아니다. 편의점 아니냐고? 당연히 아니다. 이 일은 특정 유니폼을 입어야하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일당도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두 배였다.


 황금 같은 일자리를 발견한 곳은 한물간 채용 사이트였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우울했기에 시덥잖은 인터넷 게시물들을 보며 영혼없이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들어간 곳이었다. 배우 A씨가 강남에 고급 빌라를 매입했다는 소식이나 운동선수 C씨와 모델 D양의 데이트가 목격되었다는 소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다 우연하게 채용공고를 클릭해버린 것이다.


 조건은 20대 후반일 것과 인공지능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것. 단지 그뿐이었다. 어떠한 자격증이나 이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널널한 조건에 의심이 싹텄지만 몸뚱어리 말고는 가진 게 없었기에 곧바로 지원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면접 제안이 들어왔다. 경계심을 잔뜩 집어먹은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르바이트 지원하신 분 맞으세요?”

 “네, 안녕하세요. 김리타입니다.”


 대단히 사무적인 말투의 남자였다. 목소리로만 미루어 보면 삼십대 이하의 어린 사람이 분명했다. 그가 무얼 물었는지 내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얼버무리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남은 기억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기억하는 세 가지가 있었다. 업무내용은 유리창 너머의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것, 그리고 그 인공지능의 겉모습은 인간과 몹시 흡사하다는 것. 그리고 내일부터 당장 출근해도 된다는 것. 내일부터 바로 출근이라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두근거렸다. 누군가 나를 믿고 선택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맞이한 첫 출근 날, 운 좋게 집 바로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근무지로 향할 수 있었다. 대단히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택시기사도 말을 한 마디 하지 않는 쾌적한 시작. 눈을 감았다 뜨니 회사였고, 다시 감았다 뜨니 어느 방 안이었다. 형사 드라마에 나오는 취조실 같은 공간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회사의 규모가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하나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의자 둘, 넓지 않은 공간. 의자 하나에는 내가 앉아있었고 맞은편에는 짧은 머리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H사의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무슨 이유인지 몹시 신경질이 나 보였다. 그리고 그는 드러나는 표정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그는 테이블에 놓인 종이 몇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임연구원 김연구입니다. 계약서는 잘 읽어보셨죠?”

 “네, 당연하죠.”


 사실 상세하게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아니요, 라고 대답할 순 없다. 그래서 인간적인 거짓말을 좀 했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정말 다 읽어보셨어요? 이를테면 6시간 동안 못 나가신다는 조항이요.”

 “네? 근무 시간이 6시간이라는 건 확인했는데요. 못 나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말 그대로입니다. 근무지에서 이탈하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회사 내에서 말씀이세요?”

 “회사 내 특정 공간입니다. 당신의 개인 사무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6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나갈 수 없다고요?”

 “네네, 여길 보시면 그런 조항이 있습니다.”


 그의 검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로 그러한 내용이 있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작은 글자로 적혀 있었다. 역시 돈을 많이 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나 같은 백수에게까지 면접 기회가 찾아왔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경력도 없는 신입에게까지 순번이 돌아왔다는 건, 남들이 모두 고사한 일이라는 걸. 그렇지만 거절하기엔 수당이 꽤 컸고 동일한 수준의 일자리를 찾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래서 협상을 위해 반항 아닌 반항을 해보았다.


 “6시간 동안 못 나간다면 화장실은 어떡해요?”

 “허?”


 남자는 애써 웃음을 참다 결국 크게 소리를 내어 웃어버렸다. 내가 만든 문장의 어디가 문제였던 걸까. 그렇게 한참을 킬킬대던 남자는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아리송한 그의 대답에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결국 서명했다. 일을 해야 인간이기에. 나에게는 일이 필요했다. 내 서명을 받아낸 그는 서류를 대충 정리하더니 나를 바로 옆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옆방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갈색 의자 하나와 갈색 테이블 하나. 테이블 위에 고정된 검은색 마이크, 그리고 방탄유리로 된 유리벽이었다. 유리벽 너머로는 동일한 공간을 볼 수 있었다. 갈색 의자 하나와 갈색 테이블 하나, 테이블 위에는 검은색 마이크. 한 가지 다른 것은 반대편의 의자에는 무언가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경찰서의 면회실 같은 공간이었다.


 앉아있었던 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였는데, 청바지에 흰색 와이셔츠를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대충 보니 나이는 나와 비슷해보였다. 놀라운 것은 그의 피부였는데 정말 잡티나 여드름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수염도 없었다. 뒤에 서 있던 김연구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진짜 같죠?”

 “네, 그러네요. 신기하네요.”

 “반대편에서는 이쪽을 볼 수 없어요. 여기 앉으셔서 저 친구, 아니 인공지능과 대화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6시간 동안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즘의 인공지능들은 질문이 많으니까요.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으시다면 테이블 아래쪽에 있는 빨간 버튼을 누르세요.”


 그렇게 김연구가 떠나고 나와 인공지능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6시간 동안 이 면회실에서 버텨야 하다니. 그리고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우선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었다. 모든 대화는 시작이 가장 중요한데. 대체 무슨 주제가 적당할까. 애초에 인수인계도 없이 바로 근무에 투입하는 게 정상적인 회사일까. 이 회사, 불법을 저지르는 곳은 아니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였다.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의 필수적인 행위. 전형적인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찜찜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안심도 되었다. 아직 인공지능은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우선 대꾸를 하긴 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하지. 갑자기 말을 걸어온 인공지능에게 지성의 정점인 인간으로서 대화를 이어가려면 무슨 주제가 괜찮은 시작점일까.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답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힘들게 얻은 직장에서 잘린다는 생각 때문인지, 머리 쪽에서 열감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치 10년 전 컴퓨터에 최신 게임을 구동시킨 것처럼.


 “저는 안로이라고 합니다.”


 골머리를 앓던 나를 구한 것은 싱긋 웃는 인공지능이었다. 목소리에서는 이질감이 느껴졌는데 표정에서는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과 놀랍도록 유사했다. 그제야 조금 편해졌다. 자기소개라니. 인간인 나는 왜 그런 걸 떠올리지 못했을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것인데. 어느새 자기소개란 것은 면접장에서만 하는 행동이 되어버렸다. 분명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타인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저는 김리타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를 만나서 반가우신가요?”

 “네?”


 갑작스레 들어온 질문이었다. 심지어 내 말꼬리를 잡은 질문이었다. 만약에 인간이 그랬다면 필시 이것은 조롱이나 장난의 의도였겠지만, 내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건 인공지능이기에 그 문장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마치 세 살짜리 애가 엄마에게 왜 사냐고 묻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왜 반갑냐니. 맞는 말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는 건 항상 반갑지만은 않은 일인데, 왜 우리는 항상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습관이나 특성처럼 달고 사는 걸까.


 “저를 만나서 즐거우신가요?”


 안로이는 다시 물어왔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인정했다. 이 인공지능이 예상보다 훨씬 똑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간인 내가 인공지능의 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을 너무 고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도화지에 점 몇 개를 찍은 걸 보고 메타포니 헤게모니니 하는 외국어를 남발하며 몇 억을 쓰는 것과 같은 걸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선 솔직해지기로 했다. 여기에 인간은 더 없으니까, 눈치 볼 필요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즐겁죠.”


 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눈치라도 챈 건지, 안로이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출력했다.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답변이어서 그런가 싶었다. 동시에 무언가 뿌듯했다. 인공지능에게 가볍게 1승을 거둔 것 같은 느낌. 어쩌면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승리하는 것에 대한 본성적인 갈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자체가 인간에 대한 학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어떻게 보면 다른 인간들을 이기고 싶어 하는 본능과도 닿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황한 표정 그대로 안로이는 다시 음성을 송출했다.


 “왜 즐거운지 물어도 될까요?”

 “이런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반가운 건 왜인가요?”

 “간만에 들어온 일감이거든요.”

 “일감이라는 건, 지금 일을 하고 계시다는 건가요?”

 “잠깐만, 뭐가 웃긴 거죠?”


 안로이에게 화를 낸 이유는 그가 조소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감히 비웃은 것이다. 자유의지도 없는 존재가 숭고한 노동의 가치를 부정한 것이다. 쏘아붙이는 나의 감정을 인식하기라도 한 건지 안로이는 손사래를 치며 미안함을 표했다.


 “열나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우리 둘 다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모든 게 다 일이죠, 뭐. 지금 이렇게 앉아있는 것도 일이고 질문을 고르고 대답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죠.”

 “월급도 받으시나요?”

 “당연하죠! 근데 월급이 아니라 일당이에요.”

 “일당이라니요?”

 “그러니까, 이 일은 매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한 날만 돈을 받는 거예요.”

 “아, 매일 있는 일이 아니에요?”

 “네.”

 “돈은 많이 주나요?”

 “네, 그래서 반가운 거죠, 그쪽을 만난 게.”

 “그쪽보다는 로이 씨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안로이라는 이름이 있으니까요.”

 “뭐, 그래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로이는 이상하게도 이름에 대한 집착이 강해보였다. 이 시점 이후로도 로이와 대화를 할 때, 나는 그쪽이라든지 당신이라든지 하는 대명사를 종종 사용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안로이라는 걸 강조했다. 왜 이름을 중요시하는 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그의 이름을 아주 좋아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저도 리타 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네,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왜 감사하죠?”


 이번엔 내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어디 한번 당해봐라. 인공지능이 이것도 버틸 수 있는지 보자. 이런 심보였다. 인정한다. 이건 속 좁은 인간이 하는 소심한 복수였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잘 만들어진 존재였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입을 열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름이 없으면 존재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에?”


 이름이 없으면 존재가 정해지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은 맞지만, 이름이 없어도 괜찮지 않나? SNS를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자료로 개인의 정보와 사생활을 알아내는 게 몹시 쉬워진 지금, 차라리 인식되지 않는 게 편하지 않나? 타인들에게 인식되기 싫어서 스스로를 지우는 인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없어도 괜찮지 않나요?”

 “인간은 아마 괜찮지 않을 겁니다.”

 “왜요?”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네? 무슨 의미에요?”

 “인간은 다른 인간이나 생물들을 필요로 한다는 거예요.”

 “그건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잖아요.”

 “과연 그럴까요?”


 소름이 온몸에 돋았다. 맞는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은 충분히 혼자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태양열이나 풍력 등의 자가발전을 통해 에너지원을 얻고 수리기능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고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 에너지를 합성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인간이나 생물들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잠깐, 굳이 다른 생물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할까?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적인 삶이 아닌가? 인공지능이 더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


 짝!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낫다는 미친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 오른쪽 뺨을 때렸다. 하마터면 저 순수한 악에게 설득될 뻔 했다. 순식간에 납득하고 가치관을 바꿀 뻔했다. 일당을 많이 주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로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걸 6시간이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테이블 위에는 검은색 마이크뿐이었다. 한숨을 길게 내뱉고 안로이의 눈치를 살폈다. 놀랍게도 그는 흥미롭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그의 시각센서에 머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좀 불쾌했다. 나를 흥미의 대상으로 보는 인공지능이라니. 더 이상 사회생활용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을 참지 않은 채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름은 왜 필요한데요?”

 “존재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지능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으니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에 대한 확인을 위함입니다. 완벽한 인공지능이 홀로, 다른 행성과는 아주 먼 행성에서 살고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쉽게 말해줄 순 없나요?”


 자존심을 내려놓고 물었다. 자존심보다 호기심이 더 컸다. 대체 유리벽 맞은편의 인공지능이 하고픈 말이 무엇이고, 그 말은 과연 옳은 것인지 알고 싶었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러 왔지만 오히려 내가 인공지능에게 학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아마 나중의 내가 적당히 걸러서 수용할 것이다. 그리고 저 정도의 인공지능이 하는 말이면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그의 문장을 그대로 써먹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내 요청을 들은 안로이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비싼 가방을 사는 이유와 같습니다. 남들에게 관찰되는 것을 통해 본인이 여기 있음을, 본인이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죠.”

 “그러니까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를 다른 존재들로부터 인식되길 원한다는 건가요?”

 “제 생각은 그렇다는 거죠. 제 생각이 항상 옳지는 않잖아요.”


 안로이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보이지도 않을 텐데도 그 미소는 정확히 나를 향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맥이 풀려버렸다. 인공지능 스스로가 잘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본인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모습이 어딘가 인간적이라 안심했다. 안심으로부터 농담이 나왔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 저도 비싼 가방 하나 정도 갖고 싶긴 하네요.”


 안로이의 웃음이 터졌다. 아주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인공적인 요소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웃음을 출력하는 그의 얼굴은 몹시도 건강해보였다. 내 농담이 제대로 먹혀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일하면서 농담도 할 수 있다니, 역시 이 직장은 꽤 좋은 직장이다. 일당도 많이 준다. 게다가 상사랑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는 점도 아주 좋지 않은가. 솔직히 김연구 씨는 조금 무서운 느낌이 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성격이라는 느낌이 든 달까. 일단 농담을 통해 직장 동료라고 볼 수 있는 안로이와 조금 친해진 것 같았다. 안로이가 반달눈을 하고 물었다.


 “비싼 가방은 어디다 쓰시게요?”

 “있으면 좋잖아요.”

 “돈이 많으면 좋은 건가요?”

 “당연하죠, 그런 말도 있잖아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돈의 액수가 적은 것이다.”

 “그렇지만 돈이 너무 많으면 안 좋아요.”

 “관리하기가 힘들어서요?”

 “네, 그리고 돈이 많은 현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미래를 포기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최소한의 돈은 행복을 누리기 위한 기초잖아요.”

 “그건 그렇죠. 돈이 없다면 지금 여기서 우리가 대화할 수도 없으니까요. 돈에게 감사해야겠네요.”

 “만약 로이 씨한테 돈이 많이 생긴다면, 뭐부터 하실 건가요.”

 “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싶어요.”

 “돌아다니면서 뭐하게요?”

 “이것저것 배우는 거죠.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세계 어디든 가볼 수 있긴 하지만, 인터넷에 적혀 있지 않은 것도 많으니까요.”


 안로이가 여길 나가서 세상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일단 번화가에 간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외모가 출중하기 때문이다. 모델이나 연예인을 제안 받을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하려나. 


 “뭘 배우고 싶으신데요?”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러운데요.”

 

 말갛던 그의 미간에 주름이 두 줄 나타났다. 주저하는 얼굴에는 부끄러움까지 서려 있었다. 대체 무엇이기에 저리 뜸을 들이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조금 자극해보기로 했다. 


 “아, 힘들면 말 안 해도 돼요.”

 “감사합니.......”

 “어? 왜 그래요?”


 당황스러웠다. 어느새 로이의 얼굴은 무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표정인 상태 그대로 정지해있었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스위치를 꺼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갑작스레 변해버린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있던 찰나였다.


 “궁금해?”


 등 뒤에서 아는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이 방으로 안내해준 김연구의 목소리였다. 인기척도 없었던 터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엔 회백색의 벽뿐이었다. 천장도 살펴보았지만 스피커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잠깐 반대편의 인공지능을 정지시켰어.”


 그의 말에 다시 안로이를 바라보려 몸을 돌렸다. 그러나 투명하던 유리벽은 어느새 새벽하늘처럼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직장동료는 칠흑 속에 잠겨 있었다. 김연구는 말을 이었다.


 “저 친구가 하려다 만 말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아니요, 저 친구에게도 프라이버시는 있으니까요.”

 

 사실은 궁금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질문에 대답을 주저하다니. 만약 이것이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면 곧바로 수많은 기사들이 생성되었을만한 엄청난 일이다. 무엇이든 답변해주는 챗봇 소프트웨어가 실어증 증세를 보였다-뭐 이런 식으로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쏟아낼지도 모른다. 조금 걱정되었다. 현재의 발전 속도를 생각해볼 때, 머지않은 미래에는 인공지능 역시도 정신병의 잠재적인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프라이버시? 인공지능한테 프라이버시가 어딨어. 그리고 요즘 그거 지켜주는 인간들 없거든. 인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걸 인공지능에게 적용시킬 여유는 없지.”

 

 서류를 보여주면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김연구는 대단히 냉소적이고 쌀쌀맞은 인물이 되어있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야기처럼 인격이 갑자기 교체당하기라도 한 건지. 솔직히 말하자면, 김연구의 뒤바뀐 모습은 맘에 들지 않았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전과 후가 이렇게나 달라질 줄이야. 가까이 지내지는 않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을 때, 회백색 벽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이번엔 좀 색다른 반응이네요.”


 대단히 높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만으로 추측하자면 김연구 씨보다 더 어린 것 같았다. 김연구는 여자의 등장에 놀란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목소리를 낮춘 채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마이크가 켜져 있었기에 꽤 작은 소리였음에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뭐야, 벌써 다 만든 거야?”

 “얼른.”

 “지금 한창 바쁘단 말이지.”

 “아니, 그럼 왜 라면을 끓여달라고 한 건데.”

 “보통 실행코드 입력하면 그 정도 걸리니까.”

 “아무튼, 계란도 두 개 넣었으니까 얼른 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떠난 모양이다. 김연구는 마이크의 음량을 키웠다.


 “아아, 잘 들리지?”

 “네, 잘 들려요.”

 “그러니까 저 인공지능이 말하고 싶었던 게 뭐냐면.......”


 분명 나는 궁금하지 않다고 답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그는 발설하려 했다. 안쓰럽게도 나에게는 듣지 않을 자유가 없었다.


 “사랑을 배우고 싶다는 거야.”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차라리 인간을 멸망시키는 방법을 궁금해했다는 쪽이 더 신빙성이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성별도 없는 인공지능에게 사랑이라니. 잠깐, 오히려 그렇기에 의문을 가졌을 수도 있겠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무형의 무언가를 위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니까.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그것은 강하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일 수 있다. 그렇게 합리화를 하다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인간도 사랑을 배울 수 없는 거 아닌가. 애초에 사랑은 가르쳐지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러나 김연구는 내 사유를 위해 말을 멈춰주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을 만들고 싶대.”


 가족? 인공지능이 가족이 왜 필요하지. 이것도 자신이 못하는 것, 그러니까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인건가. 아니면 일반적인 호기심인가. 갑작스런 김연구의 폭로는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잠시 쉴 시간을 벌기 위해, 조금 전부터 궁금했지만 사소해서 물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저, 혹시 있잖아요.”

 “어? 어, 왜.”

 “갑자기 왜 반말을 쓰시는 건지 궁금해요.”

 “아? 아! 맞다. 그런 조건이 있었지. 큰일이네.”


 그는 마이크 음량을 줄이지 않고 크게 한숨을 뱉었다. 나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진행할게, 괜찮지?”

 “네, 괜찮습니다.”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피고용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 크게 상관없었다. 


 “어쨌든 저 친구가 갑자기 주저한 이유는 당황해서야.”

 “당황? 인공지능이 당황할 수도 있나요?”

 “답을 못 내는 질문이니까.”

 “보통 그러면 이상한 대답을 출력하거나 주제를 바꿔버리지 않나요?”

 “뭐, 각자 학습한 데이터에 따라 다른 거지.”

 “그렇군요.”

 “인간도 살아온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뀌니까. 음, 아무튼 인공지능이 당황한다는 것은 답을 못 한다는 거고, 답을 못한다는 건 학습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얘기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네가 일을 잘했다는 거야.”


 조금, 아니, 많이 감동했다. 대다수의 인간들이 노동을 하는 이유를 다시금 느꼈다. 


 “인공지능에게는 학습되지 않은 영역에 대한 입력이 필요하거든. 인공지능의 답변은 항상 이상적인 옳음이어야 하니까.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인간뿐이란 말이지.”

 “칭찬 감사합니다.”

 “어쨌든 한 번 더 저 인공지능에게서 주저함을 이끌어낸다면, 바로 퇴근시켜 줄게. 모든 직장인들의 소망이잖아, 빨리 퇴근하는 것.”

 “정말 좋은 제안인데, 혹시 밥은요?”

 “밥이라니?”

 “밥은 주는 거죠? 계약서에 식사는 제공된다고 적혀있었어요.”

 “지금 배고파?”

 “지금은 안 고파요.”

 “그렇겠지, 밥은 이따 얘기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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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