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과학에 대해 의사소통을 나누는 모든 행위를 뜻할 테다. 여기서 과학은 완성된 지식의 꾸러미만을 뜻하지 않는다. 연구 결과나 이론뿐만 아니라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이해를 도모하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기술이라기보다는, 과학이라는 체계의 안과 밖의 사람들이 입체적으로 과학에 대해 소통하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과학 커뮤니케이션 이미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논문을 쓰고, 학회에서 토론하고, 연구실에서 가설을 검증하는 모든 과정이 고도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과학 커뮤니케이션’ 하면 떠올리는 장면은 결이 다르다. 오늘날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과학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소통, 다시 말해 과학이 학문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소통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런 맥락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최근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TV와 유튜브 콘텐츠, 강연, 대중 과학서까지 과학을 말하는 형식과 채널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대중 매체에서 과학을 널리 알리는 과학자들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된 ‘과학 소통가(커뮤니케이터)’라는 소통 전문가 집단이 부상했다. 이러한 과학 콘텐츠 생산의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향유자(소비자)들의 양적 성장이 있었다. 과학 콘텐츠들이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생산자들을 더 불러 들이는 순환 작용이 일어났고, 동시에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인원이 늘어난 만큼, 그 방식과 태도, 책임을 둘러싼 논쟁 역시 더불어 증가했다.
과학 콘텐츠의 대중화가 미미하던 시절에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문제는 “어떻게 어려운 과학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인가?”였다. 그러나 과학 커뮤니케이션계의 성장과 함께 이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문제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의 하위기술인가, 독립된 전문 영역인가?” “과학 지식 전달에서 정확성의 기준은 어디까지 요구되어야 하는가?” “대중을 상대로 한 단순화는 언제 ‘왜곡’이 되는가?”와 같은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소통할 것인가?”의 본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전문성과 다양성, 옳고 그름을 넘어 스펙트럼으로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논쟁 중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전문성’의 문제이다. 누가 과학을 소통할 자격이 있는가, 어느 정도의 이해나 배경이 있어야 과학 콘텐츠 생산자의 역할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다. 이 논쟁이 자주 소모적으로 흐르는 이유는, 전문성을 하나의 단일한 기준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정확하게 분석하려면, 전문성 자체를 입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전문성은 하나의 축이 아니라 '과학적 전문성'과 '소통의 숙련도'라는 최소한 두 축 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 때 최첨단 연구를 수행하고 동료 평가를 통과할 수 있는 능력과, 그 내용을 비전문가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훈련과 경험을 요구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 두 전문성 사이에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 과학자들은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며, 학회와 학술지를 통해 끊임없이 최신 연구 성과와 과학 지식을 갱신한다. 동료 평가라는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친 정보에 가장 가까이 있으며, 그 의미와 한계까지 함께 이해하고 있다. 과학자로서의 전문성은 그만큼 많은 집중된 지식과 경험의 누적을 필요로 하며, 이들이 생산하는 최첨단의 지식은 특정 분야의 연구자 집단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한 언어 체계와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않으면 접근 자체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지식에 대한 전달 비용이 높고 소수의 전문가 집단 안에서 주로 유통되는 지식이 되기 쉽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현장 과학자들은 대중과의 소통을 주된 활동 목표로 훈련받지 않는다. 즉, 연구 활동에 몰입할수록 소통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동료 전문가 집단으로 수렴한다. 대중과 소통할 기회도, 그것을 체계적으로 계발해야 할 동기도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소통 능력을 타고난 소수의 연구자들도 있지만, 소통 능력도 다른 능력들처럼 경험과 훈련을 통해 개량되고 발전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전문성과 커뮤니케이션 전문성 두 가지를 모두 갖추는 것은 구조적으로 쉽지가 않다.
반면 전문 대중 과학 소통가들이 다루는 과학은 깊이나 최신성이라는 기준만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현장 과학자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대신 이들은 비-전문가 집단이 무엇이 궁금해 하는지, 어디에서 이해가 막히는지, 대중들에게 어떤 심리적 장벽이 있고 어떤 서사 구조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평균적으로 더 잘 알고 있다. 대중의 궁금증을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감각, 자칫 어렵거나 지루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주의를 잃지 않고 따라올 수 있도록 흥미롭게 스토리텔링하는 능력, 그리고 과학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 배치하는 능력은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전문성이다. 이는 지식의 깊이나 난이도와는 다른 차원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영역이며, 이 능력은 단기간에 자동으로 획득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은 ‘과학’과 ‘소통’의 역량이 서로 다른 비율로 섞인 좌표 위에서 활동한다. 문제는 이 차이가 종종 우열의 문제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나는 이 차이를 우열의 문제로 보아선 안되고,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생태계와 그 생태계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로 수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공존하는 스펙트럼적 영역이다. 어떤 사람은 지식의 최전선을 공유하는 데 강점을 지니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미 축적된 지식을 사회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데 능하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두 영역의 경계에서 연결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현장 과학자와 과학 소통가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직접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기 목소리로 연구의 즐거움을 전하는 '소통하는 연구자'들이 늘고 있으며, 반대로 연구 논문을 직접 분석하며 과학적 깊이를 확보하는 '공부하는 소통가'들도 상당하다. 애초에 전문 과학 소통가 상당수가 현장 과학자 출신이기도 하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태계란 단일한 종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과 특성을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며 상호작용하는 체계다. 한 종만 존재하는 생태계를 풍요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유형의 과학 소통만 존재하는 환경은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지속 가능하거나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질성과 다양성은 집단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부에도 존재할 수 있다. 모든 현장 과학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소통하지 않으며, 모든 대중 과학 소통가가 같은 깊이와 형식으로 과학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같은 집단 안에서도 관심 분야와 소통 방식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고, 이러한 내부적 다양성 역시 장려될 필요가 있다. 과학을 향유하는 사람들, 전문가와 비전문가 집단을 모두 포함하여 사람들마다 과학 소통에서 기대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첨단 지식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찾는 사람도 있고, 세상과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구들을 단일한 형식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으로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달리 말해 소통의 형식적·내용적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 커뮤니케이션 생태계에 깃들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다시 다양성이 증폭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이는 생태계가 천이(succession)가 진행되며 점차 종 다양성이 높아지고, 더 복잡하고 안정적인 공동체로 이행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호기심의 숲을 함께 가꾸고 지키자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누가’, ‘무엇을’, ‘어떻게’의 문제를 다양성과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 지점에서 ‘왜’의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과학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고, 때로는 직접 만들어 공유하려 할까.
나는 사람들이 과학 콘텐츠에 끌리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과학자들이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로 호기심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우주와 자연, 생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고, 그 호기심이 발전하면서 어떤 현상이나 기작을 이해했을 때 느끼는 지적인 쾌감,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낯설게 다가올 때 느껴지는 인식적 신선함, 질문이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 등에 빠져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과학자가 되어야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인간은 본래 호기심 넘치는 존재로 태어난다. 아이들은 그저 궁금해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 인류와 문명의 차원에서 그 호기심과 질문이 축적되며 과학이라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호기심의 추구를 개인적인 지적 만족에서 멈추지 않고, 굳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하고 소통하려 할까. 순진한 얘기처럼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은 것을 나누려는 ‘선한 본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만 누리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개인적으로도 아무리 맛집이라도 혼자 가서 먹으면 그리 큰 기쁨이 일지 않는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또한 인간의 그러한 소통과 나눔의 본성에 뿌리를 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소 낭만적인 관점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보게 된다. 비유컨대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호기심의 숲’을 가꾸는 일이다. 그 숲에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함께 살아간다. 호기심에 이끌려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나누는 사람, 그 지식을 가공하고 재구성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콘텐츠를 소비하며 다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함께 숲을 이룬다. 이 숲에서 역할들은 사람의 ‘소속’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현장 과학자이면서 소통가로 활동하는 이도 있고, 소통가이면서 특정 분야의 논문을 꾸준히 따라가며 사실상 전문가의 역할을 하는 이도 있다. 많은 경우 한 사람이 생산과 가공, 소비와 질문의 역할을 동시에 오가기도 한다.
그러한 호기심의 숲이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생산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을 만들어 내고, 가공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 다양성을 즐기고 품을 수 있는 다양한 그릇을 지닌 향유자(소비자)들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어떤 이는 최첨단 연구의 디테일까지 따라가며 짜릿한 지적 쾌감을 느끼고, 어떤 이는 삶의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지식에서 만족을 얻는다. 이 다양한 수요가 다시 다양한 생산을 자극하면서 숲은 점점 더 복잡하면서도 안정적인 구조로 풍요를 실현한다.
동시에 숲을 병들게 하는 요인들도 경계해야 한다. 학문 공동체 내에서는 과학 지식의 생산과 공유는 신중하게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으로) 진행되며, 엄격한 동료 심사 체계가 그 핵심을 이룬다. 하지만 이러한 동료 심사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공유되는 과학적 지식은 정확성이 사전에 점검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나, 부실해질 수 있다. 어려운 문제다. 모든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엄격한 동료 심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현장 과학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이 문제의 개선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지식의 유통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의도되거나 반복되는 잘못이 아니라면) 부족한 부분을 비난하기보다는 제작진이나 다양한 소통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바로 잡는 노력이 호기심의 숲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더 우려되는 것은 극단적 상업성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과학적 진실성이나 합리성보다는 오히려 그에 반하는 소통 행위를 하며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요즘 필자가 섭외 요청을 많이 받는 영상 콘텐츠들의 상당수가 처음에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대화를 하다가 의학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이나 영양제 등을 홍보하는 교묘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콘텐츠들의 제작비가 제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업체로부터 나오는 시스템인데, 호기심의 숲을 기만하고 착취하는 비윤리적인 행태라고 생각한다. (이를 알지 못하고 혹은 적극적인 기만 행위로 인해 이런 콘텐츠에 출연한 과학자와 과학 소통가들도 적지 않다.)
올해 있었던 과학 커뮤니케이션 논란, 과학적 진실성을 희생시킨 상업적 콘텐츠의 증가 등의 문제는 현실에서 호기심의 숲을 가꾸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호기심의 숲을 가꾸어야 할까? 호기심의 숲이 잘 가꾸어진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우주와 자연, 생명에 대한 호기심을 아이처럼 추구할 수 있고, 과학이 특별한 소수의 언어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과학은 일상적인 대화의 일부가 되고 지적인 유희가 되며, 과학적 태도는 사회적 판단의 기준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더 나아가 호기심의 숲이 울창해진 사회는 기후 위기나 기술 윤리 같은 복잡한 난제 앞에서 과학적 합리성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의 과학화’다. 그런 사회에서 과학은 자연스럽게 가치를 인정받고, 과학자들의 활동 역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호기심의 숲이 건강하고 풍요로우면 과학자의 길로 나아가려는 미래 꿈나무들이 지속적으로 길러지고, 과학자 공동체 역시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이처럼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더불어 숲’에 가깝다. 이 숲에는 엄밀한 지식을 생산하는 기능, 그 지식을 왜곡 없이 친밀한 언어로 가공하는 기능, 그리고 호기심의 씨앗이 더 멀리 퍼지게 하는 기능이 함께 필요하다. 어떤 때는 이 기능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지는 분업이 일어나지만, 어떤 때는 한 사람이 그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냐 소통가냐’의 구분이 아니라, 이 기능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또 보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느냐이다. 서로를 배제하는 대신 각자의 강점을 살려 부족한 지점을 메워줄 때, 그리하여 다양한 전문성이 인정받고 장려될 때 호기심의 씨앗은 더 멀리 퍼지고 숲은 더 깊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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