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CTP'S CHOICE

2025 APCTP 올해의 과학도서

2025년 12월 통권 243호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는 고급 과학 콘텐츠의 창출과 보급, 과학 문화 확산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올바른 과학적 세계관 정립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로, 과학자, 과학도, 그리고 과학에 관심 있는 대중 모두가 과학적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APCTP 2025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을 선정하였습니다.


□선정위원 명단

이대한(성균관대학교), 신지혜(한국천문연구원), 김항배(한양대학교), 이정규(전)서울시립과학관), 이권우(도서평론가)


총평

2025년은 역사적인 해다. 사상 처음으로 10권 모두 국내 저자의 저서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선정위원들이 의도적으로 역서를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와 같은 수준 높은 역서들이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끝내 10권의 자리를 모두 국내 저자들이 채웠다. ‘과학책 수입국’에서 나고 자라며 외국 작가의 책으로 과학을 배웠던 세대로서 격세지감이다.

올해의 과학도서 선정 총평을 요약하자면 ‘뉴보이스(New Voice)’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논문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상아탑 안에서 맴돌 뿐이다. 논문의 세계에서 과학자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 담긴 목소리를 감춰야 한다. 왜 과학자가 되었는지, 어떤 느낌이 나를 과학자로 머무르게 하는지 철저히 숨기고, 차가운 논리의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그렇게 훈련받았음에도 모든 과학자에겐 여전히 감출 수 없는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다. 올해는 그 목소리가 특히 젊은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한 해였다. 콧물 때문에 달로 보낼 카메라를 망칠뻔한 달 과학자 정민섭 박사의 『나는 달로 출근한다』, 자기 머리를 쪼는 까치를 연구한 행동생태학자 이원영 박사의 『와일드』, 빙하라는 지구의 일기를 읽는 빙하학자 신진화 박사의 『빙하 곁에 머물기』, 인간의 걸음걸이에서 완벽한 진자 운동을 포착한 물리학자 김기덕 박사의 『모든 계절의 물리학』, 인간과 호랑이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공존을 고민하는 보전생물학자 임정은 박사의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의 개성 있고 다채로운 목소리가 들려주는, 논문에는 차마 싣지 못한 ‘사람 냄새’나는 과학 현장의 생생한 숨소리가 선정위원들을 매혹시켰다. 

여기에 화학과 연금술의 연속성을 예리하게 추적한 최정모 교수의 『알케미아』와 천문학을 ‘거리 재기’의 여정으로 파악하는 통찰을 담아낸 천문학자 지웅배 교수의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이 뉴보이스의 다양성을 더했다. 장수철 교수의 『문화는 유전자를 춤추게 한다』 또한 K팝을 비롯한 현대 한국 문화를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살펴본 새로운 목소리였다.

이처럼 분출하는 뉴보이스의 물결 너머에서 깊은 울림을 준 ‘딥보이스(Deep Voice)’도 있었다. 이은희 작가의 『엄마 생물학』은 개인의 몸과 경험을 통해 과학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성찰적 과학 서사’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정우현 교수의 『나쁜 유전자』는 유전자에 대한 오해가 만들어낸 결정론적 신화를 해체하며 과학책이 이르기 힘든 깊이의 ‘비판’을 치열하게 전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올해 선정된 작가들에게 큰 축하를 전하며, <2025 APCTP 올해의 과학도서>를 계기로 더 새롭고, 다채롭고, 깊은 목소리들이 과학책의 강물로 흘러나오길 고대한다.

이대한(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선정위원장)


와일드

이원영 저 | 글항아리

놀이터에서 개미의 행렬을 따라가고, 나뭇가지 사이 거미의 사냥을 숨죽여 바라보고, 축축한 흙 위를 꾸물거리던 지렁이를 들여다보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왜 우리는 동물의 행동에 그토록 쉽게 매혹될까? 『와일드』의 저자는 그 이유를 그 순간 우리가 ‘야생(wild)’이라는 시공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곳에는 오랜 진화를 거치며 축적된, 길들지 않은 생명의 이야기가 있다. 야생은 언제나 우리를 그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대부분은 관찰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와일드』의 저자는 야외생물학자가 되어 그런 초대에 꾸준히 응답해 온 드문 어른이다. 그는 남극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야생으로 기꺼이 떠나며, 더 잘 ‘관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드론은 기본이고, 바이오로거로 바다 동물의 일상을 기록하고, 펭귄의 수면을 이해하기 위해 펭귄 전용 뇌파 측정기까지 개발한다. 이렇게 야생동물의 삶에 온 힘을 다해 다가가려는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생태 위기와 자연의 권리로 확장된다. 『와일드』를 펼치면 우리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물을 관찰하던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그의 담담한 목소리는 생태 위기의 시대에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대한(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엄마 생물학

이은희 저 | 사이언스북스

‘엄마’와 ‘생물학’이라는 두 단어를 나란히 읽으면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든다. 호르몬의 요동과 몸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아이를 품고 기르는 ‘엄마’는 분명 생물학적 실체다. 그럼에도 ‘엄마 생물학’이 낯설게 들리는 이유는 생물학 교과서가 ‘엄마’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생식’을 가르친다. 생식은 영어로 reproduction, 즉 ‘재생산’이다. 다양한 호르몬 주기나 임신 시기 엄마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마치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는 공장의 알고리즘처럼 해설된다. 교과서 속 엄마의 몸은 특별한 경험의 주체가 아니라 생명의 연속성을 실현하는 ‘매개체’로 기술되고, 당연히 엄마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생물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처럼 ‘책으로 배운 생물학’과 ‘몸으로 겪은 생물학’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내버려두지 않고, ‘엄마’라는 존재가 지닌 두 겹의 성격—생물학적 실체이자 주관적 경험의 주체—을 섬세하게 연결하는 어려운 작업을 해냈다. 『엄마 생물학』을 읽으며 활자가 살아 움직이며 몸을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식이 삶을 관통할 때 생명력을 얻은 것일까. 『엄마 생물학』은 어쩌면 있어야 할,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또 다른 살아 있는 생물학들의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대한(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모든 계절의 물리학

김기덕 저 | 다산북스

활자 중독자가 활자를 읽지 않을 수 없듯, 자신을 ‘물리 중독자’라 소개한 저자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물질의 작동 이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읽어낸다. 그의 시선을 통해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는 물리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게 생동한다. 그가 그린 그림 역시 친절한 설명과 찰떡궁합이다. 책을 펼친 이들은 백이면 백, 물리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잠시 책을 덮고 ‘물리 중독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여기저기 숨어 있는 물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덧 ‘물리 중독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장담컨대, 당신의 스마트폰 스크린 타임이 훌쩍 줄어들 것이다.

신지혜(한국천문연구원)


알케미아

최정모 저 | 바다출판사

많은 사람이 ‘연금술’이라 하면 신비함, 돌에서 금을 만들려는 연금술사들의 허황된 욕심, 비과학적인 믿음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연금술 역시 진지한 과학 연구 방식이었으며, 화학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화학을 매개로 저자가 들려주는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사고방식을 상상할 수 있다. 시대와 장소가 바뀔 뿐, 물질을 이해하기 위해 온갖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고군분투하는 연구자들이 그려진다. 비록 패러다임이 바뀌어 구시대의 유물로 남게 된 연금술이지만, 지금의 시각으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연금술의 발상이 그 당시의 상식으로는 타당한 결론이었으며, 동시에 현대 화학의 디딤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신지혜(한국천문연구원)


문화는 유전자를 춤추게 한다

장수철 저 | 바틀비

생명은 패턴일까? 생명 현상도 천체의 운동처럼 과연 수학이라는 언어로 설명될 수 있을지 자못 회의적일 수 있지만, 이 책은 그 가능성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제시해주는 친절한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생체 주기 조절, 감염병의 확산, 약물 효과 극대화를 위한 조정 시간 요법 등 수리 모델로 예측한 생명 현상은 앞으로 실험동물의 희생 없이도 신약 개발의 정확도와 효용성을 한층 더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수학적 개념들이 단순히 추상적인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중대한 문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전도유망한 수학자의 최신 연구 성과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의사결정과 감정의 변화도 수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더 과감하게 확장될 수리생물학의 차후 행보를 기대하며 응원하게 된다.

김항배(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지웅배 저 | 더숲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을 꼽으라면 단연 천체의 거리를 알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천문학의 결정적인 발전은 대개 천체의 거리를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책은 가까이는 달과 해의 거리, 그다음 단계로 별의 거리, 별을 넘어서 은하의 크기와 가까운 은하의 거리, 그리고 현재 볼 수 있는 가장 먼 은하의 거리까지, 천체들의 거리를 알아내기까지의 과정을 교양 수준에서 다루었다. 작가의 탁월함은 과학적인 내용을 그와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과 같이 담아서 독자들이 내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천체의 거리 측정에 성공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인류가 인식이 확장돼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김항배(한양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나는 달로 출근한다

정민섭 저 | 플루토

별을 보던 소년, 달로 출근하는 ‘덕업일치’를 이루다

이 책은 ‘달 탐사선 하나 없는 나라’에서 달 과학자가 된 정민섭 박사의 치열하고도 유쾌한 성장기이자, 대한민국 최초 달 궤도선 ‘다누리’의 탑재체 ‘폴캠(PolCam)’ 개발 일지입니다.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도 어쩌면 낯선 달 연구자의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천문학자를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 릭 천문대에서 라쿤과 대치하며 밤샘 관측을 하던 대학원 시절의 에피소드, 그리고 맨땅에 헤딩하듯 폴캠을 개발하며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가감 없이 풀어냅니다. 특히 과학자와 공학자 사이의 소통 과정에서 겪은 갈등과 협력, 청정실에서의 ‘콧물 사건’ 등 인간적인 에피소드는 우주 탐사가 결국 사람의 땀과 열정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다누리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성과가 단절되지 않고 꾸준한 투자와 관심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우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희망을 전합니다.

이정규(전)서울시립과학관 관장)


빙하 곁에 머물기

신진화 저 | 글항아리

차가운 얼음 속에서 건져 올린 지구의 뜨거운 기억

『빙하 곁에 머물기』는 지구의 '냉동 타임 캡슐'인 빙하를 통해 46억 년 지구의 과거와 위태로운 미래를 연결하는 과학자의 기록입니다. 저자는 남극과 그린란드의 얼음 속에 갇힌 공기 방울을 분석해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후 변화의 역사를 읽어내는 빙하학자입니다.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빙하를 둘러싼 기후과학의 이야기는 물론, 대기업을 그만두고 뒤늦게 빙하학에 뛰어들어 비정규직 연구원으로서 겪는 고용 불안과 여성 과학자로서 현장에서 마주한 편견도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연구자로서의 기쁨, 특히 12년의 기다림 끝에 떠난 그린란드 시추 현장 이야기에 읽는 저의 가슴도 함께 뛰었습니다. 영하의 추위와 고산병을 견디며 12만 년 전의 얼음을 꺼내 올리는 과정은 경이로움과 동시에, 녹아내리는 빙하를 목격하는 과학자의 서늘한 슬픔을 전합니다.

저자는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며, 기후 위기가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우리의 생존 문제임을 호소합니다. 차가운 빙하를 연구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지구와 사람을 향한 시선은 누구보다 따뜻함을 느낍니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적 통찰과 인문학적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책입니다.

이정규(전)서울시립과학관 관장)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임정은 저 | 다산초당

일찍이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말한 바 있다. 동물원에서 아무르표범을 직접 보고 나서 보존생물학자의 길로 들어선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인 이 책은 정말 자기 일을 즐기는 과학자의 표본을 보여준다. 멸종의 위기에 놓인 동물과 이를 복원하기 위해 숱한 난관을 헤쳐나가는 과학자의 노고를 통해 공존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멸종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는 시기에 인류가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동시에, 다음 세대에게 과학자의 삶과 연구란 무엇인지 감동스럽게 전해준다.

이권우(도서평론가)


나쁜 유전자

정우현 저 | 이른비

책을 읽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과학의 이름으로 차별과 혐오를 옹호하는 현상에 답답하면서도 이를 공박할 이론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자괴감에 빠진 독자에게 가장 최신형의 이론적 무기를 손에 쥐여준다. 지은이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커다란 오해를 빚어온 여덟 가지 대표적인 ‘문제적’ 유전자”를 소개하면서 여기에서 비롯한, 이른바 유전자 결정론을 박살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쁜 유전자는 없으며 그것을 나쁘게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만 있을 뿐이고,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함이나 갈등상황과 분투하며 변모해 가는 과정의 존재임을 깨닫게 될 터이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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