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작가

2010년 1월 통권 52호

21세기어느 해

 

 그 몇 주 동안의 경험이 현제 씨한테 영향을 끼친 거예요물론 그 때문에 현제 씨의 가치관이 급격하게 진일보 했다거나그 사람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뀌었다거나 한 건 아녜요하지만 전에도 이야기했듯이현제 씨는 남대문 시장 뒤편의 작은 디자인 사무실과 이문동의 18평짜리 전세방만 오고가면서 밤마다 다운받아 놓은 미드 시리즈(그것도 오로지 범죄수사물만 말예요.) 한두 편씩을 감상한 뒤에야 잠이 드는 남자였어요주말에도 친구들을 만난다거나 소개팅을 하는 대신에 하루 종일 케이블TV 채널들만 돌려대거나 여성포탈 사이트에서 여자들의 연애상담 페이지를 몇 시간씩이나 눈팅하기 일쑤였죠.

 그런 단순명료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 이 세상(너무 거창하다면 이 사회라고 해두죠.) 의 흐름을 직시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현제 씨의 개인적인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면그 정도면 아주 긍정적인 변화 아닌가요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그리고 그런 변화에는 그 몇 주 동안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게 분명해요······.

 음 그러니까현제 씨가 그걸 처음 본 건 출근길에서였어요그날은 월요일이었고 시청역에서 내려 회사로 가기 위해 몇 년 전 복원되면서 새로 조성된 숭례문 광장을 지날 때였죠역에서부터 조금 걸었을 뿐인데도 등에 땀이 베이는 후덥지근한 날이어서현제 씨는 좁은 집안에 기어이 에어컨을 들여놔야 하는 건가 고민을 했대요다음 달 휴가 때 현제 씨는 남들처럼 바닷가나 계곡을 찾아가는 계획 대신에(물론 마땅히 같이 갈 친구도 애인도 없었기 때문이죠.) 집에서 ‘크리미널 마인드’ 전 시즌을 마스터할 나름의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거든요카드를 일시불로 긁을 여력은 안 되어서 요즘 에어컨이 몇 개월까지 무이자 할부가 되는 걸까궁금해 하면서 걷다가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거예요.

 그것이 소리 없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어요구름 한 점 없는 여름 하늘 위에 희미한 빛 하나가하얗고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다허공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져 버린 거예요!

 어라저게 뭐지하며 올려다본 현제 씨는 잠시 허공을 살피다가 다시 회사 쪽으로 향했어요하늘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말했지만 그때 현제 씨는 출근 중이었으니까요이상한 사람처럼 하늘만 쳐다보다가 지각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그렇지만 다음 날 출근 시간에도그 다음 날에도 똑같은 광경을 목격하자 현제 씨는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대요대체 저게 뭘까궁금증이 일기 시작했죠그래서 목요일부터는 출근할 때마다 숭례문 위 하늘을 살피기 시작했어요.

 며칠간의 목격을 종합해 보건데그건 출근시간인 9 10분경에 북쪽 하늘에서 나타나 남쪽으로 사라졌어요그것이 나타나는 방향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조계사 쪽에서 날아오기도 하고 경복궁 쪽에서 오기도 했어요한번은 종로 5가 쪽에서 나타나기도 했고요매번 정확하게 직선을 그리며 날아와 숭례문 위를 가로질러 사라졌는데중요한 건 숭례문에서 직선으로 올라간 허공의 한 지점을축으로 해서 지나갔다는 거예요조계사 쪽에서 날아온 건 서울역 쪽으로 날아갔고경복궁 쪽에서 온 건 밀레니엄 호텔 쪽으로 사라지는 식이었죠그건 소리도 없이한 호흡도 안 되는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웬만해선 발견하기조차 힘들었대요그리고 그 바쁜 출근시간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하지만 며칠 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본 현제 씨는 매번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그러면서 의문도 점점 쌓여갔죠대체 저게 뭐야저게 뭘까뭐지뭐냐고!

 하얗고 기다란 궤적을 그리는 것으로 보아 처음엔 제트기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그러나 곧 비행기가 서울 상공을 날 수 있나하는 의문이 들었죠현제 씨가 알고 있는 상식으론 그럴 수 없었어요그러니까 비행기는 아니었어요그럼 패스.

 물론 어떤 새의 종류도 아니었어요새라면 그 짧은 시간동안 그렇게 빨리 이동할 수도 없거니와 하얀 궤적까지 뿌리면서 직선으로 날아가진 않잖아요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곳을 날아가는그런 규칙적인 삶을 사는 새는 없을 테니 말예요그래서 새도 패스.

 현제 예측 가능했던 건 그것이 비행접시라는 거였어요소위 사람들이 말하는외계인들이 타고 온 우주선일곱 개의 눈을 가진 테드 창의 헵타포드들이 타고 왔을 법한 우주선 말예요(다른 종의 외계인들도 많겠지만적어도 기거H.R Giger의 에이리언에 비교하진 않을래요입안에서 남자 성기를 날름거리는 외계인은 만나고 싶지 않거든요.). 하지만 외계인의 우주선이라고 단정하기에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였어요외계인들이 왜 서울시내 한복판에 나타나느냐고요그것도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각에 규칙적으로 말예요외계인들이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새로운 초단거리 항로라도 깔았던 걸까요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왠지너무 신비감이 떨어지잖아요?

 결국 그것은그 실체를 확인하기 전까진 UFO였어요미확인비행물체!

 금요일 아침에는 핸드폰 카메라로 그걸 찍어보았대요예상대로 제대로 찍힐 리가 없었죠텅 빈 하늘 위에 흐릿한 궤적만 애매하게 보일 뿐이었어요하지만 그 흔적은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오타쿠적 성향만 가득한 현제 씨의 상상력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어요다들 알겠지만 사내들이란 뭐 하나에대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순진무구하게 맹목적이 되면서 거기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잖아요? (전 아직도 둥근 공 하나를 바보같이 쫓아다니는 남자들을 보며 열광하는 아저씨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요.)

 어쨌든 현제 씨는 이제껏 한 번도 관심 갖지 않았던 UFO에 대해 흥미를 느꼈고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그것에 빠져들었어요온종일 인터넷을 헤엄치다가 세계 각지에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그 사람들은 우주선을 목격하는 건 기본이고 외계인을 만나고그들의 설교를 듣고심지어 외계인의 아이를 임신한 사람도 있었어요그러면서 외계인들의 전도사내지 에이전트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죠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었지만그래도 오랜만에(어쩌면 처음으로만나는 미지의 세계는 현제 씨를 들뜨게 만들었고새로운 열정 속으로 몰아넣었어요당시에 현제 씨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대요그들의 목격과 증언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는 둘째 치고자신도 우주선을 아니 아직은 미확인비행물체인 그것을 매일 아침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으니까요.

 걷잡을 수 없는 순진무구한 열정에 빠져버린 현제 씨는 기어이 주말 동안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니콘 카메라를 한 대 장만했어요. 4천분의 1초로 찍히는 셔터스피드에 200밀리 망원렌즈가 달린 마음에 꼭 드는 카메라였죠그거 하나면 그 미확인비행물체를 찍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잠을 설칠 정도였대요다음날 조금 일찍 출근한 현제 씨는 숭례문 앞 광장 위에 우뚝 서선 카메라를 두 손으로 꼬옥 받쳐 들고 그것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어요그리고 역시나똑같은 시각에 그것이 나타났죠.

 하지만 첫 번째 사냥은 실패였어요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10분 넘게 카메라를 쥐고 있던 현제 씨는정작 그것이 나타났을 땐 당황한 나머지 셔터스피드도 맞추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던 거예요액정화면 속에서 분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린 채 찍힌 그것을 보면서 현제 씨는 실망했고 오기가 생겼고 그리고 집착하게 됐어요현제 씨는 그것을 찍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고그것을 찍고야 말겠다고 결심했죠.

 다음날도 그것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 현제 씨는 그 주 내내 그걸 찍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어요인터넷 사진동호회들에 가입해 들락거리면서 속성 강의를 받았고그러다가 빠르게 이동하는 물체를 찍기 위해서는 렌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그래서 슈퍼망원렌즈를 새로 구입했죠. EF 800밀리짜리 기다랗고 묵직한 렌즈였는데그 무게 때문에 그걸 받칠 수 있는 트라이포트까지 덩달아 구입해야만했어요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지만 무거운 카메라를 든 채 무식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현제 씨는 오히려 고무되었어요또 연속촬영기법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동호회 내에서 전문가로 소문난 이들에게 쪽지를 보내 연속촬영에 대해 개인 강습도 받았어요카메라로 뭔가를 촬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이러다가 자신이 전문 사진가로 전직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공상에 빠지기도 했대요(그런 남자였어요내가 알고 있는 현제 씨는 말예요).

 그리고 UFO와 외계인을 탐구하는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다가 중요한 정보 하나를 얻었어요영국에 있는 한 타블로이드 신문사에서 UFO에 대한 증거를 상금을 주고 사들인다는 거였죠상상력 풍부한 현제 씨는 그걸 보는 순간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이 좌악 그려졌대요그 미확인비행물체를 선명하게 찍고신문사에 거금을 받고 팔고기사화 된 사진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덩달아 자신까지 명사가 된다그건 정말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고 잘만 하면 현제 씨의 인생이 한 순간에 뒤바뀔 수도 있었죠그래서 현제 씨는 다음 달 말로 예정했던 휴가마저 앞당겨 신청하고 말았어요그 미확인물체가 아침 시간에만 나타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죠현제 씨가 답답한 회사 사무실 안에 갇혀 있는 동안에그것이 매 시간마다 지나가는 건지도 모르잖아요?

 그 다음 주 목요일 아침드디어 현제 씨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마친 후에 숭례문 광장에 자리를 잡았어요트라이포트에 슈퍼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장착하고셔터스피드를 최고 속도로 설정하고연속촬영 모드까지 두 번 세 번 점검했어요이제는 외우다시피한그것이 나타날 방향들을 예측한 후에 놓치지 않고 곧바로 앵글에 담을 수 있도록 연습까지 여러 차례 했죠그리고 그 순간을 위해 따로 구입한 낚시 의자에 앉아서 그것이미확인비행물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어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현제 씨가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 노력했던 적은 아마 손에 꼽을 정도였을 거예요그의 친구들이현제 씨의 현실에 대한 무감각과 수동적인 태도를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이 봤다면 분명 박수라도 쳐줬어야 했을 거예요.

 그렇게 기다리기를 40여 분어느덧 시간은 아침 9 9분이 되었죠햇볕이 뜨거워지는 출근 시간에그늘도 없는 숭례문 광장 위에 홀로 카메라를 세워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현제 씨를출근하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대요하지만 현제 씨는 아랑곳없이 숨을 멈추고 기다렸죠그리고 1분 후어김없이 그것이 나타났어요이번에는 영풍문고 쪽이었죠텅 빈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것은 하얀 궤적을 그리며 숭례문 바로 위현제 씨 머리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 서울역 즈음에서 사라졌어요그리고 현제 씨는 그것에서 눈을 떼지 않고 카메라로 쫓아가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죠······.

 성공이었어요이번엔 멋지게 놈을 포획한 거예요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고 있는 그것은은회색의 원형비행체였어요차이는 있었지만 분명히 인터넷에서 보았던수많은 UFO들과 같은 종이었죠현제 씨는 단 2주 만에 그 많은 UFO들 중 한 마리를 포획한 거였고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싱싱한 놈을 포착한 거였어요.

 선명하게 찍혀 있는 미확인비행물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현제 씨는 확신할 수 있었대요이러한 비행체를 만들 수 있는 과학문명은 외계인뿐이라고그것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지구상에는 있을 수 없는아주 우주적인 원형비행체였으니까요.

 승리감에 젖은 현제 씨는 곧바로 영국에 있는 신문사에 UFO, 아니 외계 우주선의 파일을 보냈어요메일에다 자신이 그것을 발견하게 된 정황과 그것을 포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이 들어갔는가를 장황하게 덧붙이면서 말예요현제 씨는 휴가기간 내내 설렘과 자신감 그리고 그 뒤에 따라 붙는 초조함 속에서 답신이 오기를 기다렸어요(물론 크리미널 마인드 전 시즌을 마스터하려던 애초의 휴가계획은 접어야만 했죠.). 그리고 열흘 후드디어 영국에서 메일이 왔어요현제 씨는 터지려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메일을 클릭했죠하지만신문사가 보낸 답신은 뜻밖의 것이었어요다음은 신문사가 보낸 전문예요

 

 -친애하는 Mr. 

 귀하께서 보내주신 미확인비행물체의 사진은 이번 세기 들어 제보된 그 어떤 증거들보다 또렷한 UFO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해서 저희 신문사 내 ‘미스터리&UFO’ 전담팀은 파일을 확인하는 순간 쾌재를 불렀을 정도랍니다먼저 귀하의 불굴의 의지와 노력을 치하하는 바입니다.

 저희 전담팀은 곧바로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제보해주신 파일의 검증작업에 착수했습니다귀하께서도 익히 아시다시피정확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저희 신문사에선 제보 사실에 대한 명확한 검증을 거친 후에 기사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바로 어제검증 결과가 나왔습니다각설하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귀하께서 포착하신 미확인비행물체는 외계인의 우주선은 아닌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습니다.

 사진 속 원형비행체를 거리와 형태크기몸체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고리날개를 면밀히 분석하고 판단한 바그 원형비행체가 우리 은하계 밖 어디에선가(그곳이 어디라도 좋습니다.) 출발해 몇 광년 내지 몇 백 광년 거리의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에 도착했을 거라는 가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사료됩니다사실 모든 UFO들은 그런 가설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그 가설을 무너뜨리는 증거가 나왔습니다사진의 선체 앞쪽 날개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을 초정밀 확대해 봤더니그곳에 문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물론 지구인의 문자였지요원형비행체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고 게다가 날개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상태라 그 문자들을 모두 파악할 순 없었지만저희는 그것이 한국어의 자음 ‘ ‘’ 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따로 한국어학자를 초빙해 의뢰해 보니 선체에 새겨진 문자는(검증을 위한 저희 신문사의 노력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따오기’ 라는 글자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저희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이 원형비행체가 한국 내 모 기업이나 환경단체에서 대기상태를 측정하거나 대기 중 무언가를 채집하기 위한 인공비행체라는 것입니다또는 좀 더 흥미본위로 추리해 본다면한국 정부에서 비밀리에 시험 중인 모종의 비행체일 수도 있겠지요······.

 

 신문사의 답신은 현제 씨에게 실망을 안겨줬어요사실 커다란 충격을 받았죠현제 씨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비로소 깨달은 거예요그 비행체가 외계인의 우주선이 아닐 거라는 건 애초에그걸 처음 봤을 때부터 의심했던 거잖아요맨인블랙이 관리하는 외계 종족들이 아침마다 서울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면아침마다 서울 상공에 외계인의 우주선 따위가 출몰할 이유가 없다고 말예요현제 씨는 그런 상식적인 냉정을 잃은 채 그 동안 눈이 뒤집혀 헛고생만 했던 거예요.

 물론 한편으론 의심이 들기도 했죠신문사가 한 검증이라는 게 과연 정확한 걸까하고 말예요그들이 불러 모았다는 전문가들이 정말로 전문가인 거야영국에서는 외계인의 우주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도 있단 말이야그럼 그들은박사학위는 있는 거야만약 학위가 없다면그런 인간들을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거야따위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들 말예요하지만 그건 자신의 헛수고를 부인해보려는 투정일 뿐이었고의심하고 판단하고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할수록 현제 씨는 자괴감에 빠져야만 했어요.

 하지만 현제 씨를 더욱 맥 빠지게 만든 건그 다음 내용이었죠.

 

 저희는 이 결과를 가지고 어제 오후 내내 회의를 했습니다선명하게 연속 촬영된 이 원형비행체는 저희 독자들의 관심인 UFO와 제대로 부합하고 있고무엇보다 저희가 안타까운 건귀하께서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셨다는 점입니다.

 해서저희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 우리가 검증과정 중 몇 개를 생략한다면(예를 들어비행체에 새겨진 문자를 지울 수 있다면 말이죠.), 이 사진은 저희 독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UFO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것입니다그리고 귀하 역시 그간의 노력에 대해 금전적인 보상을 받으실 수 있고 말입니다그것은 독자들과 제보자 양쪽을 만족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그를 위해 저희 신문사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 물론모든 결정은 Mr. 김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저희 신문사는 여전히 공정함을 원칙으로 하니까요.

 다만 귀하께서 저희 독자들을 위해 용단을 내려주신다면사전에 몇 가지 협의를 해주셔야만 합니다그 내용은 1)비행체에 쓰인 글자에 대해선 함구하고 2)사진의 판권을 저희 신문사에 일임하며 3)그 대가로 귀하께서 8천 파운드를 일시불로 수령하시게 되는원칙적이고 그 밖의 사소한 조항들에 관한 것들입니다귀하께서 결정을 하신다면 보다 세부적인 서류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이상입니다.

 다시 한 번 귀하의 노력을 치하하며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메일을 다 읽은 현제 씨는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어요무슨 소리인가생각하다가 곧 부아가 치밀어 올랐죠그들의 뻔뻔한 제안에 놀아나는 기분이 들었고 왠지 모를 자존심도 상했어요그러다 다시 냉정하게 생각을 하게 됐고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대요.

 결국 이런 것이다이것이 UFO, 미확인비행물체의 실체인 것이다!

 사실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것’ 들은 모두 지구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당연한 것 아닌가요지구라는 행성 안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외계의 것을(외계에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말예요.) 맨눈으로 볼 수 있겠어요그 당연한 사실에 사람들의 호기심이 더해지고간단한 조작을 거친 후에황색언론의 여론몰이가 미확인비행물체를 탄생시킨 거였어요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사람들의 더 큰 호기심다시 재생산되는 황색여론몰이가 그것을 외계에서 온 우주선으로 신격화 시키는 거예요.

 현제 씨가 보기에 그건 음모였어요아주 본능적이고 유기적인 음모론!

 세상은(처음에도 말했지만너무 거창하다면 이 사회라고 해두죠.) 이슈를 따라서 움직여요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말예요그 이슈가 또 다른 이슈를 만들어내고 다시 본능과 사적인 이익을 위해 보다 큰 이슈가 만들어지죠지속적인 이슈의 재생산인 거예요누가 조종하는 것도 아니건만(솔직히 누군가 세상을 움직이는 음모를 꾸민다는 건헐리우드 영화에나 즐겨 쓰는 20세기 발상이죠.) 그건 스스로의 흐름을 만들어내고그리고 모두들 그 흐름에 반응하면서 따라가는 거예요본능과 이익을 위해유기적으로 말예요!

 물론 부조리하지만사람들은 더 이상 그걸 부정하지 못하고 부정할 생각조차 안 해요그 유기적인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고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들(현제 씨 같은 사람들 말예요.) 이 보기에 그건그야말로 완벽한(?) 음모론인 거예요.

 현제 씨는 한 순간 깨달음을 얻었고그 통찰이 현제 씨를 변하게 만들었어요이제껏 그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수동적으로자기 안에만 갇혀 살아온 자신에 대해 자책했대요그걸 인식하고부터는 괘씸한 제안을 해온 신문사에게 분노가 일었어요진실이 아니지만 자신들에게 이로울 것 같고그래서 조작을 제의하면서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는 신문사현제 씨는 그 신문사에 복수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대요그들의 뒤통수를 한방 갈겨주고그러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예요······ 그건 뭐현실의 유기적인 음모론에동참하는 거였죠.

 한 달 뒤에 현제 씨는 신문사에 다시 메일을 보냈어요그 동안 신문사가 조바심치며 자신의 연락을 기다렸을 거라고 생각하니 상했던 자존심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것 같았대요(물론 그건 소시민적인 소심한 복수였죠.).

 제가 바쁜 관계로연락이 늦었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메일에서 현제 씨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진실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고호기심이 진실을 호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이 경우에 그 호도가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별다른 영향을 끼칠 것 같지 않아서독자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려는황색언론사의 속보이는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 는 내용을 적어 보냈어요그리고 계좌번호를 첨부했죠그 밑에는 짐짓 고상한 느낌이 풍기는 단어를 써서 ‘그래도 언젠가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라는 추신을 덧붙여서 말예요.

 예상한대로유기적으로곧바로 8천 파운드가 입금됐대요세금은 원천징수로 빠졌다나요그래도 현제 씨는 그간의 헛된 노력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그렇게 해서 그 몇 주 간의 미확인비행물체에 대한 소동은 막이 내렸어요그 후 현제 씨는 외계인이나 우주선 따위에서 관심을 끊었죠완전히콧방귀도 끼지 않았어요그건 아주 당연한 귀결이었고현제 씨는 몽상에서 깨어나 현실 속으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음 그러니까그게 현제 씨에게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냐고요?

 글쎄요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특별히 현제 씨의 삶이 바뀐 건 없어요유기적인 흐름에서 보자면 말이죠하지만 현제 씨는 더 이상 미드를 찾아보지 않았고여성포털 사이트들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어요대신에 주말이면 친구들을 찾아 만나기 시작했고그 친구들에게 소개팅을 부탁하기도 했어요그리고······ 저를 만났죠그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이해해주는그러면서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줄 수 있는그리고 그 모든 걸 사랑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여자를 말예요그 정도면 뭐긍정적인 변화 아닐까요?

 

 

 22세기마지막 해

 

 수미 양은 6년 전에 우리 ‘21세기기호학회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지금이야 한국으로 돌아가 S(거기가 한 세기 전만 해도 한국에서 제일가는 명문대였다네믿겨져?) 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그때만 해도 우리와 한 사무실에서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지수미 양은 내가 아는 동양 여자들 중에서 가장 명랑하고 귀여운 아가씨였어그렇다고 오해는 말아줘그녀와는 단 둘이 술은 마셔도 섹스는 하지 않았으니까그냥 친한 동료였을 뿐이라고.

 당시에 우리 프로젝트 팀의 젊은 동료들은 학회 뒤편에 있던 ‘시리얼 킬러’ 라는 으스스한 선술집(지금은 없어졌지아마 거기 주인이 기어이 경찰에 체포라도 되었나 봐.) 에서 자주 회합을 가졌었어매일 책상 앞에서 온갖 기표記表와 기의記意 속에 파묻혀 있던 우리는(당시 우린 21세기 중반 동북아 3국에서 나타난 텍스트기호들을 샘플링 중이었거든깔깔대며 웃을 거리가 필요했는데그때 소주 세 잔에 기분이 업된 수미 양이 자신이 목격했다는 UFO 이야기를 해준 거야.

 세상에미확인비행물체라니그게 언제 적 단어야웃기지 않아그때도 나와 동료들은 코웃음을 쳤었고 그녀도 창피했는지 따라 웃었었어하지만 수미 양이 몇 해 전(그때가 아마 22세기 마지막 해일 거야분명해, 82차 세계기호학 심포지엄이 열렸던 해였으니까.) 알렉산드리아 하늘에서 UFO를 발견했을 당시를 지금 생각해보면그때 그녀는 정말로 흥미로운 경험을 했던 것 같아어쩌면 비공식적으로, UFO의 실체를 확인한첫 번째 사례인지도 몰라······.

 음 그러니까수미양이 몇 해 전 어느 날 ‘오후에’ 알렉산드리아의 하늘에서 봤던 UFO 이야기를 하려면그 어느 날의 ‘아침’ 부터 시작해야만 해그날 아침에 그녀는 케네디 공항 라운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알렉산드리아 행 비행기를 놓쳐버리고 만 거야예나 지금이나 통제가 불가능한 뉴욕의 러시아워에 발이 묶였던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진짜 이유는 옷 때문이었어아침에 34일 동안 입을 옷들을 종류별로 꺼내놓고 보니 여행 가방에 다 들어가지가 않더래그래서 옷들을 고르고 고르며 가방을 쌌다 풀었다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린 거야카이로까지는 하루에 한번밖에 운항하지 않았고 결국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세계기호학 심포지엄 참석은 물 건너간 거였어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 피라미드를 보려던 그녀의 휴가계획과 함께 말이야.

 수미 양이 울상이 되어선 왜 어제 미리 짐을 싸놓지 않았을까 자책하고 있는데한 남자가 슬며시 곁으로 다가오더래.

 비행기를 놓치셨군요미스.”

 수미 양이 누군가하고 돌아보니 벗은 몸에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와 은색 조끼만 걸친 남자가 그녀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어조끼에는 E·R 이라는 금빛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대.

 걱정 마세요 미스보다 빠르고 안전하게목적지까지 가실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야한 홍보 의상을 걸친 남자에게 시선이 가기도 전에 수미 양은 눈이 커지면서 생각했지내가알렉산드리아에 갈 수 있다고?

 어디까지 가시길 원하십니까?”

 이집트알렉산드리아요.”

 수미 양은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어그리고는 남자의 외모를 곁눈질로 훔쳐보면서 다시 생각했대요즘 남자들은 왜 이렇게 점점 예뻐지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당시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해서 심리적 정체성까지 모노섹스인 남자가 유혹하듯 눈웃음을 치며 말했어.

 딱 좋군요바로 얼마 전에 저희 E·R 센터가 카이로에 개관했답니다.”

 수미 양은 현실로 돌아왔어그녀가 보기에 그 남자가 무슨 홍보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분명 사람을 잘못 고른 거였어그녀는 짜증이 일며 속으로만 투덜거렸지난 그냥 비행기를 놓친 거라고요!

 그러자 그녀의 표정을 읽은 남자가 놀랍다는 듯 자신의 조끼에 새겨진 이니셜을 가리켰어.

 어머그러니까 아직 저희 The Einstein-Rosen bridge 센터를 모르시는 거군요?”

 제가 알아야 하나요그 센터를?”

 남자는 21세기 여자들처럼 입을 손으로 가리면서 웃었대.

 그렇긴 하죠짓궂으시네요미스그래도 웜홀 이동에 대해선 들어보셨겠죠?”

 그때까지 웜홀에 대해 수미 양이 알던 지식이라곤 하이스쿨에서 배운 게 다였지만그래도 웜홀 이동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은 있었대그 전해였던가과학자들이 장거리 여행을 위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지그게 바로 웜홀을 이용한다는 거야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모든 이동수단들을 대체할 거라고······ 어머정말?

 수미 양이 눈이 커지며 보자남자는 올커니 눈웃음을 치며 끄덕였지.

 이해합니다개발된 지 1년이 채 안 된 기술이고 아직 사업 초기라 홍보가 덜 됐거든요하지만 여행을 위한 인프라는 이미 완벽하게 구축되었답니다저희 에이로플레인Ei-Ro Plane 을 타시면너무너무 빠른 시간에 카이로에 도착하실 수 있답니다.”

 수미양은 남자를 위아래로 흩어보며 이 남잔 어쩜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하는 걸까생각했어그리고는 남자를 따라 공항 내 13터미널에 마련되어 있다는 E·R 센터로 이동했지자신이 이 예쁜 남자의 유혹에 넘어간 게 아닐까 잠시 생각했지만그냥 휴가를 놓치기 싫어서 따라가는 거라고 자신을 속이면서 말이야.

 터미널이라곤 하지만 무슨 물리학연구소처럼 개조된 센터로 들어서서 운행비용을 치른 후엔 모든 게 일사천리였어출국을 위한 기록들이 대체되었고 여행 가방을 확인한 뒤에는 홍보맨 대신 나타난 하얀 제복의 연구원을 따라가 에이로플레인에 올라타기만 하면 됐지그 역시 키가 크고 우유빛깔 피부의 아름다운 남자여서수미 양은 이 센터가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하더래.

 출국게이트로 움직이는 이동벨트 위에서수미 양은 자신이 타고 갈 여객기에 대해 물어봤어.

 홍보맨은 에이로플레인인가 하는 게 아주 빠르다던데정말인가요?”

 물론입니다과학의 존재이유가 언제나 그렇듯인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저희 The Einstein-Rosen bridge 센터가 세워진 거니까요에이로플레인의 빠른 여행에 대해선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그럼 카이로까지는오늘 안에는 도착할 수 있나요?”

 여행은 단지 몇 초면 끝납니다.”

 예에단 몇 초요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수미 양이 자신도 모르게 놀라 소리치자연구원은 아주 익숙하고(아마 같은 질문을 수 없이 받았던 게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했어.

 에이로플레인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웜홀의 원 개념인 The Einstein-Rosen bridge 를 먼저 이해하셔야만 합니다웜홀은 존 휠러John A. Wheeler 가 명명한 것일 뿐블랙홀의 수학적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The Einstein-Rosen bridge는 라이너스-노르드스트롬의 해Reissner-Nordstrom solution 로이 커Roy Kerr의 해解 에서 이미 입증 됐으니까요저희 센터가 상징적인 The Einstein-Rosen bridge 라는 이름을 쓰는 건바로 아인슈타인과 로젠Nathan Rosen을 기리기 위해서랍니다.”

 그 아름다운 연구원 입에서 쏟아지는 단어들 때문에 수미 양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대그런데도 연구원은 본격적으로 늘어놓기 시작했다는 거야.

 어쨌든 사람들은 웜홀이라고 이해하니까뭐 그렇게 부르도록 하죠사실 이제까지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웜홀은 너무나 불안정해서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다고 알려졌었죠그 입구인 블랙홀의 중력이 아시다시피 너무나 강력하니까요하지만 저희는 그 입구에 음의 에너지와 양의 압력을 동시에 갖는 외부 물질exotic matter 을 건설해 웜홀의 불안전성을 해결했답니다그리고 킵 손Kip S. Thorne 의 제안대로 반중력을 생성시키는 이동수단을 만들었어요바로 에이로플레인이죠에이로플레인이 발생시키는 반중력은 웜홀의 강력한 중력을 밀어내면서······.”

 기어이 수미 양은 속으로 소리치고 말았대난 인문학도예요예쁜 아저씨물리학에 대해선 젬병이고게다가 난 여자라고요!

 그런 수미 양의 표정을 읽었는지연구원은 웃으면서 다시 설명했대.

 그럼 쉽게예를 들어 설명 드릴까요손님께선 저희 센터에서 제작한 미니 블랙홀로 들어가 Einstein-Rosen bridge, 그러니까 웜홀을 통과해 다시 미니 화이트홀을 통해 나가시는 겁니다웜홀의 왜곡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데에몇 초는 아주 넉넉한 시간이죠.”

 전혀 쉽지 않은데요?”

 수미 양은 연구원을 째려보면서 말했지하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대그 아름다운 남자에게 자신의 무식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나?

 그런 수미 양에게 연구원은 확신하듯 덧붙였어.

 웜홀그러니까 Einstein-Rosen bridge는 앞으로 장거리이동수단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을 거예요시간적물리적인 혁명이죠앞으로 에이로플레인을 통해 창출될 경제적 부가가치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랍니다.”

 물론 그렇겠죠.”

 수미 다른 곳을 보면서 맞장구 쳐주었어아마 지구인이 우주를 정복한다면 물론 그 선봉장은 기업가들이겠지하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렇게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두 사람은 출국게이트에 도착했고 수미 양은 탑승을 기다리는 몇몇 승객들과 합류했어그리고 자신이 타고 갈 에이로플레인을 처음으로 보았지그건 높이가 7,8미터 정도 되는 거대강입자가속기처럼 생긴 팔괘 구조물 앞에 서 있었는데수미 양이 기대했던 것 보다는 훨씬 작은 기체였대(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에이로플레인이니까 당연한 거지하지만 수미 양은 그때 처음 본 거잖아실망했던 게 당연하지). 그렇지만 승객들이 모두 탑승하고도 좌석이 남아돌았지아직 홍보가 안 된 탓인 거야수미 양과 승객들이 캡슐처럼 생긴 좌석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앉자앞쪽의 홀로그램을 통해 기체 밖 제어실에 자리 잡은 연구원이 다시 나타났어.

 저희 Einstein-Rosen 1-010 수송기에 탑승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E·R 1-010은 저희 센터의 자랑인 E·R 시리즈의 최초 모델로서 10인승의 중저가 형 수송기입니다현재 E·R 시리즈는 1인승커플용가족형단체형 등 다양한 모델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보다 진보된 에이로플레인을 계속해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초기라 그런지 연구원은 여행안내보다는 홍보에 더 열을 올렸어지금 생각하면 단 몇 초 만에 끝나는 여행에 대해선사실 안내할 것도 별로 없었던 거지.

 연구원은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기계를 작동했어그러자 연구원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출발과정이 중계됐지초기 승객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였던 거야에이로플레인 앞에 놓인 팔괘 구조물이 서서히 회전하면서그 안에서 블랙홀이 생성되기 시작하더래블랙홀의 중력 때문에 기체가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이내 거대해진 블랙홀이 수미 양과 승객들을 덮쳐왔어에이로플레인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 거야.

 수미 양이 이제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가생각하는데어느새 홀로그램이 하얗게 변했다가 사라지면서 다른 연구원이 나타났대아랍계 흑인이었는데그는 케네디 센터의 연구원과는 달리 근육질의 고전적 남성미를 풍기는 남자였지.

 그가 중후한 미소로 승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여기는 카이로 주재 The Einstein-Rosen bridge 센터입니다.”

 

 

 어리둥절한 채로 카이로 공항을 나온 수미 양은남국의 따가운 햇살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웜홀 이동을 실감할 수 있었어그녀는 한 순간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집트에 도착한 거였지네 시간의 시차를 감안한다 해도 아직 오전이었고그 정도는 여행에 소비했다고 생각하면 아주 이상적인 여행인 셈이야.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이동해 예약해 두었던 호텔에 체크인 하니 수미 양은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심포지엄에 참석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도 시간이 남아돌더래기분이 좋아진 수미 양은 가장 마음에 드는 옷으로 갈아입고 호텔에서 늦은 이집트 식 점심을 먹은 후에 느긋하게 시내를 산책했지알렉산드리아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전형적인 북아프리카 도시였고 도심은 그녀가 떠나온 곳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수미 양은 다른 여행자들처럼 자연스레 재래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

 알렉산드리아 동쪽 외곽에 위치한 시장은 말 그대로 재래식이었어몇 블록이나 이어진 커다란 시장에는그녀가 어제까지만 해도 볼 수 없던 다양한 물건들이 즐비했고 수많은 인종들이 뒤섞여 돌아다니면서 아주 시끌벅적한 분위기였어그녀는 낯선 소란 속에서 평안함을 느끼며 오후 내내 시장 안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지.

 그러다 수미 양이 그 UFO를 발견한 건그녀가 골동품상들이 늘어선 블록의 어느 골동품 가게 앞에 멈추었을 때였어.

 남루한 갈라비야gallabi:yah 를 걸친 노인이 졸고 있는 골동품 가게 좌판에는 옛날 사람들이 쓰던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어앞쪽에 노키아폰, IBM 노트북아이팟 같은 옛 시대의 전자기기들 진열되어 있었고뒤쪽에는 종이재질의 옛 서적들이 낡은 나무 장식장에 가지런히 꽂혀있었지수미 양의 관심을 끈 것은 종이들이어서그녀는 잡지들 칸을 살펴보다가 신문을 한 부 집어 들었어누렇게 바랜 종이의 질감이 고전적인 느낌을 주더래옛날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신문을 한 장씩 넘기면서 뉴스를 습득했던 거야정보 하나를 얻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던 시대의 유물이지.

 어색하게 신문을 넘겨보던 수미 양은 어떤 기사 하나를 발견했어해외토픽 란이었는데두 장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고 그 밑에는 ‘특종서울 상공을 가로지른 UFO' 라는 제목과 함께 기사 내용이 실려 있었어수미 양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사진들이었어한 장은 하늘 위를 날고 있는 UFO를 찍은 것이었고다른 사진은 그것을 확대한 거였지선명하게 확대된 사진을 보며 수미 양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어.

 어머이건 에이로플레인이잖아?”

 그건 분명 에이로플레인이었대기체 옆면에 새겨져 있어야 할 ‘E·R 1-

010’ 이라는 로고는 고리형태의 날개 그림자에 가려진 건지 아니면 지워진 건지 보이지 않았지만분명 수미 양이 타고 왔던 그 에이로플레인이었던 거야.

 신기한 듯이 사진을 살펴보던 수미 양은 비로소케네디 E·R 센터의 연구원이 설명하던 웜홀 이동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어왜곡된 시공간을 지나는 에이로플레인이 어느 시공간을 거쳐 지나온 건지도 말이야······.

 그녀가 그때 느꼈을 놀라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생각해보면 모든 문명의 이기가 그렇지경이로움 그 자체야불과 2세기 전에 라이트 형제의 복엽기가 처음 36미터를 날아올랐을 때(고작 12초 동안 말이야.) 사람들이 느꼈을 경이로움과도 같은 거지하지만 사람들은 그 경이로움에 금방 익숙해지고 말아과학의 이기가 일상이 되면경이로움은 상식이 될 뿐이지우리가 지금 에이로플레인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수미 양은 그날 에이로플레인을 처음 탄 거였고그래서 그것의 원리를 깨달았을 때 경이로움을 함께 느꼈던 거야그리고 그녀가 그 옛날 신문 속에서 에이로플레인을 발견함과 동시에 UFO, 미확인비행물체는 더 이상 ‘미확인’ 비행물체가 아니게 된 거야그때부턴 ‘확인된’ 비행물체였던 거지.

 자신도 모르게 우연하게 퍼즐 조각을 다 맞추게 된 때처럼수미 양은 기분이 좋아지면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더래그러다가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바로 그때남국의 하늘 위를 날아가는 그것을 발견한 거야밝은 빛 하나가기다란 보랏빛 궤적을 그리면서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지!

 서쪽 하늘의 텅 빈 허공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는 그것을 보면서수미 양은 분명 또 다른 에이로플레인이라고 단정했어하지만 우리 시대의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대그렇지만 혹시 모르지지난달에 내가 수미 양을 만나러 한국으로 가면서 탔던 것이었는지도 말이야.

 

 

 

 

 

 john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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