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들을 통해 우리는 동물의 신경계가 어떻게 등장하고 진화해 왔는지를 차근차근 추적해 보았다. 빗해파리에서는 신경계의 기원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과 마주했고,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처럼 신경계가 없는 동물들을 통해 뉴런이라는 새로운 세포형이 점진적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추론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말미잘이나 해파리를 비롯한 자포동물에 이르면 우리가 가진 신경계와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진정한’ 뉴런과 신경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신경적인, 신경계적인 조상으로부터 오늘날 현생 생물을 기준으로 완전히 신경적인 것이 진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신경계의 진화 전과 후를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신경계는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먼저 신경계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하지만, 이 정의는 근본적으로 자기참조적일 수밖에 없다. 현생 생물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신경계를 종합해 ‘신경계’라는 개념을 만든 뒤, 그 개념을 다시 조상에게 적용해 신경계의 기원을 논하는 순간 신경계를 기준으로 신경계를 정의하는 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신경계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기준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진짜 신경계’라고 부를 것인가? 진짜 신경계는 신경세포, 즉 뉴런으로 구성된 체계다. 그렇다면 뉴런은 무엇인가? 뉴런은 다른 세포형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며, 그 핵심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길게 뻗은 돌기와, 신경세포 사이 혹은 다른 세포와 사이에서 형성되는 특수한 소통 구조인 ‘시냅스(synapse)’를 만든다는 점이다. 신경계 진화의 역사에서 시냅스의 등장이 핵심적인 사건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냅스, 신경계의 발명품이 아니다?
시냅스는 뉴런과 뉴런, 혹은 뉴런과 다른 세포 사이에서 전기 신호가 화학 신호로 바뀌어 밀리초 단위로 전달되는 틈이며, 시냅스의 구조적 핵심은 이 틈을 둘러싸고 있는 시냅스 전(presynaptic)과 시냅스 후(postsynaptic) 구조이다. 양쪽에는 수백 종류 이상의 단백질이 모여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러한 정밀성 때문에 시냅스는 종종 신경계가 새롭게 만들어낸 독창적 발명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2009년 세스 G. N. 그랜트 박사와 토머스 J. 라이언이 에 발표한 리뷰 논문 ‘시냅스의 기원과 진화(The origin and evolution of synapses)’(현재 인용 300회 이상)는 이 관점을 재검토하게끔 한다. 저자들은 시냅스가 신경계의 출현과 함께 갑자기 새롭게 등장한 구조물이 아니라, 신경계 이전부터 존재하던 분자적 장치들의 구성물임을 보여준다.
시냅스가 신경계의 발명품이 아니라 오래된 분자적 장치들의 재조합이라면, 그 ‘오래된 장치’는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그랜트와 라이언은 이에 대답하기 위해 ‘protosynapse(프로토 혹은 원시시냅스)’와 ‘ursynapse(진정시냅스)’라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도입한다. 시냅스가 새롭게 발명된 장치가 아니라면, 시냅스의 분자적 기반을 두 범주로 나누어 다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토시냅스는 신경계가 등장하기 이전의 원생생물과 신경계가 없는 다세포 동물 속에 존재하던 시냅스적 분자 구성 요소들의 집합이다. 다른 범주인 진정시냅스는 신경계를 지닌 다양한 현생 동물의 시냅스로부터 역추적하여 재구성할 수 있는 ‘가장 초기의 시냅스 형태’이다.
프로토시냅스라는 개념을 도입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오늘날 시냅스라 부르는 구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단백질들 상당수가 효모나 아메바 같은 원생생물에서도 이미 확인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칼슘 농도 조절 PMCA(칼슘 펌프)나 단백질 인산화를 통해 신호를 조절하는 PKC는 신경계가 있기 훨씬 전부터 원생생물이 환경 자극에 반응하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였다. 실제로 포유류 시냅스의 단백질 집합을 효모 유전체와 비교하면 상당수의 단백질에 대해 효모에서도 직접적인 상동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프로토시냅스 단백질이 단순히 동물 탄생 이전에 존재했다는 수준을 넘어서, 현생동물에서 시냅스 가소성을 가능케하는 분자 기작을 이미 구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신경가소성의 핵심 조절자 중 하나인 CaMKII는 효모에서도 칼슘-칼모듈린 신호에 의해 활성화되고, 세포가 스트레스나 영양분 변화를 감지해 대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시뉴린(calcineurin) 역시 효모에서 칼슘 변화에 따른 세포 반응을 조절하며, 이는 동물의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신호 조절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환경을 감지해 내부 상태를 조절한다’는 세포의 기본 능력이 이후 동물에서 ‘신호를 감지해 시냅스 강도를 조절한다’는 체계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시냅스의 분자적 기초가 이미 단세포 생물의 생존 전략 속에서 마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냅스 유전자의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계통수. 각 공통 조상 단계에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핵심 시냅스 유전자들이 표시되어 있다. 출처 : Ryan and Grant,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009>
프로토시냅스에서 진정시냅스로
깃편모충은 효모보다 훨씬 가까운, 정확히 말하면 원생생물 중에 동물과 가장 가까운 분류군으로서 이러한 프로토시냅스를 재구성하는데 매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흥미롭게도 깃편모충의 유전체에서는 많은 수의 타이로신 인산화 효소가 발견된다. 타이로신 인산화 효소는 동물 신경계에서 시냅스 가소성을 조절하는 핵심적인 단백질인데 깃편모충에서는 외부 환경 자극에 반응해 빠르게 인산화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효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시냅스에서 ‘활동 의존적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가 신경계 출현 이전에 이미 환경 변화 대응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시냅스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카드헤린(cadherin) 역시 깃편모충에서 발견된다. 깃편모충의 카드헤린은 세포에서 편모가 달린 깃 부분(apical)에서 세포골격 단백질인 액틴(actin)과 함께 국소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 구조는 동물에서 카드헤린이 시냅스 접착 및 신호 전달 복합체 형성에 관여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는 세포골격의 변화를 통해 시냅스 구조를 형성하는 능력의 일부가 이미 단세포 조상에서 구현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분자 꾸러미를 넘어 시냅스와 유사한 원시적 거점으로서 프로토시냅스가 동물 진화 이전에 존재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원생생물에서 사용되던 이러한 프로토시냅스는 동물의 출현과 함께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신경계가 없는 기저 동물인 해면동물은 프로토시냅스가 진정시냅스로 나아가는 경로를 보여주는 중요한 분류군이다. 해면동물인 Amphimedon queenslandica의 유전체에는 인간이 지닌 시냅스후 밀집체(PSD)를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군의 다수가 보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시냅스 후 뉴런에서 신호전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수용체와 이온 채널 또한 풍부하게 존재한다. 억제성 GABA 수용체, KIR 계열 칼륨 채널, 그리고 대사형 글루탐산 수용체(mGluR)가 확인되었으며, 실제로 글루탐산을 처리하면 해면 세포에서 칼슘 농도가 상승하는 반응도 관찰되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냅스 단백질들의 해면동물에서 확인된다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 하나의 공간적 지점에 모여 기능적 복합체를 이루고 있을 가능성이다. 예컨대 Dlg(Discs large), GKAP, GRIP, Homer, CRIPT와 같은 단백질들이 해면동물의 특정 세포형(특히 ‘flask cell’로 불리는 감각성 세포)에 함께 발현되는데, 이는 이들이 하나의 위치에 모여 조립된 복합체를 형성하고 실제로 환경 자극을 감지하는 기능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해면동물은 비록 뉴런과 시냅스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프로토시냅스적 복합체’가 일정한 해부학적 위치에 국소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이는 시냅스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존재하던 기능적 거점이 점차 정교하게 재조직되며 시냅스라는 구조로 이어졌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프로토시냅스적 단백질들이 동물에서 신경 기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MAGUK 계열 단백질이 포유류에서는 시냅스 후 밀집체의 핵심 뼈대를 이루지만, 동시에 T 세포 활성화 같은 면역 기능에도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이들 단백질은 원래 매우 보편적이고 다면적인(pleiotropic) 세포 신호전달 도구였으며, 신경계는 이러한 오래된 도구들을 새로운 공간인 시냅스 속에서 재배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하자면 프로토시냅스적 단백질들은 시냅스라고 하는 새로운 구조의 등장을 용이하게 한 일종의 ‘pre-adaptation(선적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한 맥락에서 환경 신호를 감지하고 대응하던 분자 장치들이, 거대한 다세포성 동물의 출현이 촉진한 더불어 세포와 세포 사이의 빠른 정보교환이라는 새로운 필요와 선택압 하에 용도변경(co-option)되었고, 궁극적으로 진정시냅스의 출현을 가능케 한 것이다. 달리 말해, 시냅스의 기원은 새로운 구조의 돌연한 등장이라기보다, 오래된 기능들이 새로운 공간적, 기능적 맥락 속에 집중되고 재배치되며 만들어 낸 ‘오래된 부품들의 새로운 질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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