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시민과학자가 필요할까?
지난 2023년 5월 말,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는 미국 시민과학협회(Citizen Science Association)에서 주관하는 콘퍼런스가 열렸다. 전세계에서 시민과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각 나라의 사례를 공유하고 고민거리를 함께 의논하는 좋은 기회였다. 학회는 크게 심포지엄, 구두 발표, 포스터 발표, 토론과 워크숍 등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지구사랑탐사대’라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10년 넘게 이끌고 있던 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터와 디스커션 세션에서 발표 기회를 얻어 참가하게 되었다.
누적 데이터 16만 건, 참여한 시민과학자 2만 4000명, 발표된 학술논문 8편. 10여 년이 넘게 쌓아온 이러한 기록들은 발표 현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80명으로 시작해 매해 4000명 이상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성장한 과정과 원동력에 대해서 질문이 쏟아졌다.
시민과학은 일반 시민들이 직접 데이터를 모으거나 분석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학연구에 기여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지구사랑탐사대’를 맨 처음 시작한 2012년에는 ‘시민과학’이라는 개념조차 잘 몰랐다. 단순히 과학자를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한 과학자, 과학자를 돕고 싶은 시민
맨 처음 시민들을 모은 건 멸종위기종 연구를 돕기 위해서였다. 2012년 당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팀은 멸종위기에 처한 수원청개구리를 연구하고 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 종의 분포와 서식 환경 등을 조사해야 했는데, 연구실에 있는 연구원은 교수님과 박사과정 연구생 한두 명뿐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당시 편집부는 교수님 연구를 돕고자 가족 탐사대를 모집한다. 전국에 있는 독자들이 연구팀을 도와 자료를 모아 준다면 분명 연구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공지에 모인 80여 명은 연구팀과 함께 현장, 즉 논에 모여 과학자들처럼 개구리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각자 사는 곳으로 돌아가 배운 대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족 단위의 시민 탐사대원들은 과학자를 도와 기초 자료를 모으는 활동에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가족끼리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야외 활동이었고, 아이들이 과학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였기 때문이다. 또한 열심히 모은 데이터가 멸종위기종 보존 연구를 돕는다는 뿌듯함도 큰 매력이었다. 특히 휴대전화만 있으면 소리와 기온, 위치 정보 등을 쉽게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무료 프로그램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돈도 크게 들지 않았다.
연구팀의 만족도도 높았다. 사실 현장교육을 진행했다 하더라도 버리는 데이터가 40% 이상이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전국 단위 기초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 분야를 자연스레 대중들에게 알리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를 반겼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모르고 시작했던 편집부 팀원들은 매체 마감 외에 왜 이 일까지 해야 하는지 불만이 많았다. 회사에서도 이 프로젝트가 회사에 어떤 이득을 가져올지 반신반의했다. 특히 당시에는 종이 잡지 부수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인력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데에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장 교육을 직접 진행해 보면 과학자와 시민을 연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의미있는 교육과 진로탐색 현장이었고, 활발한 교류의 장이었으며, 즐거운 놀이이기도 했다. 높은 만족도 덕분에 해를 거듭하면서 참가자 수도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80명으로 시작해 3년 만에 500명을 넘더니 5년쯤엔 1000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10년이 되었을 때는 매해 40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과학자들이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한 논문도 8편 이상 출간됐다.
덕분에 회사에서 반신반의하던 분위기도 잠잠해졌다. 시민과학 프로젝트 덕분에 매체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고, 이를 통해 두터운 팬층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민과학 프로젝트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하락하던 독자 수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민과학으로 함께 성장하다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활발해지면서 맨 처음 1종이던 탐사 대상도 점차 늘려갔다. 규모가 커질수록 다채로운 현장교육이 필요하기도 했고, 시민과학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계속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를 포함한 가족단위 시민들이 대부분인 만큼 젊은 연구자들에 대한 호응도 좋았다. 그 결과 10년쯤 되었을 때는 수원청개구리에 이어 매미, 도롱뇽, 조류, 화분매개자, 박쥐 등 16종 이상의 연구주제에 20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를 위한 장학 프로젝트도 기획했다. 현장 연구를 하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게 장학금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C프로그램, 숲과나눔재단, 브라이언임팩트재단 등에서 힘을 보태주었다.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젊은 과학자를 지원하는 일로 확장된 것이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도 있었다.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찰하고 기록한 사진으로 이화여대자연사박물관에서 <자연덕후 사진전>을 연 것이다. 더불어 열혈 대원들이 모여 <자연덕후, 자연에 빠지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아이 때문에 시민과학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부모님은 추후 연구자와 함께 연구를 계속해서 논문을 펴내기도 했다. 생태해설사로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거나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부모님들도 생겼다.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서니 아이들도 성장해 연구자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충류를 좋아하던 어린이는 이제 양서류 연구자가 되어 현장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새를 좋아하던 아이는 조경학을 전공하며 조류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고, 야간 탐사를 하며 별에 빠진 아이는 천문학과에 진학했다. 개념조차 모르고 시작한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모두가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시민과학 프로젝트, 동물원을 바꾸다
‘지구사랑탐사대’라는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자, 2021년 즈음 또 다른 아이디어가 발굴되기 시작했다. 당시 코로나19로 관람객이 감소하자 영세한 동물원에 있던 사자와 수달 등이 굶주리거나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특히 당시 동물원수족관법에서는 10종, 50개체 미만의 동물을 보유한 동물원은 허가를 받지 않고 등록만 하면 운영할 수 있었다. 라쿤 등을 키우는 작은 동물카페가 많은 상황에서 동물원의 복지 실태는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신고제다 보니 미등록 동물원이 몇 개인지 파악된 자료도 없었다. 정확한 동물원 복지 실태는 더더욱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어린이과학동아>에서는 시민과학을 이용해 동물원의 실태를 조사하기로 하고, ‘우리동네 동물원 수비대’를 기획했다. 시민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작은 동물원들을 찾아가 조사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였다. 동물 복지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던 수의사분들이 연구팀으로 참여해 조사방법을 설계하고 교육을 진행했다. 수의대 대학생들도 멘토로 참여해 활동을 도왔다.
2021년 한 해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는 810팀의 1000명이 넘는 가족단위 시민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2018년 이후 파악된 전국의 345개 동물원 중 246곳(71.3%)의 379개 동물사 데이터를 얻는 성과를 올렸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우리나라 동물원의 평균 복지점수는 53%에 불과했다. 특히 이 중 93%는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하는 환경인 것으로 파악됐다. 동물 복지에 꼭 필요한 풍부화 프로그램을 충분히 제공하는 곳은 단 33개뿐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기사화 되었고, 당시 동물원 허가제를 공론화하던 동물단체와도 공유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023년 12월 14일부터 동물원 등록제가 허가제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로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이다. 시민과학 자료들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공공정책과 과련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왜 시민과학자가 필요할까
사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사회적 이슈들은 대부분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기후변화, 팬데믹, 멸종위기종, 인수공통전염병 등 어느 것 하나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영향이 끼치는 범위가 광범위하고, 이해 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관과 나라들 사이에 다층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공공정책 현안을 두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사악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 시민과학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앞선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시민과학은 자발적이고 과학적이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직접 조사하며 들여다보는 공공정책은 그만큼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과학자를 만나고, 연구방법을 배우면서 과학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과학소양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과학문화 활동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 비과학적인 사고와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는지 잘 알게 되었다. 이 점이 전세계적으로 시민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미국은 2015년 크라우드 소싱 및 시민과학법을 만들고 정부주도로 지역사회와 함께 시민과학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유럽도 영국과 독일 등 각 나라별 시민과학이 활성화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주도의 시민과학 중앙 플랫폼(eu-citizen.science)도 2021년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민과학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에 시민과학협회가 있는 것과 달리 아시아에는 거점조차 없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시민과학 콘퍼런스에서도 아시아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민과학에 대한 거점과 논의의 장 마련돼야
나는 지난 2024년 4월 8일, 캐나다 토론토의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에 있었다.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서다. 이날 이곳에는 100만 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북미지역 시민들은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누구나 과학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중심으로 개기일식 관련한 다양한 시민과학 연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개기일식 때만 볼 수 있는 태양의 코로나를 동일한 망원경으로 관측해 촬영하거나, 일식 중 야생 동물의 소리를 수집하는 등 10개도 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렇게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활성화 된 건 과학연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교육이나 과학문화를 활성화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소에도 미국항공우주국에서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는 40건이 넘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난다면 어떤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열릴 수 있을까? 어디서 그걸 주도할 수 있을까? 13년 가까이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했지만, 아직 이 질문에 답이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민간은 한계가 명확하고, 공공에선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과 우주개발, 기후변화 등 과학기술과 밀접한 이슈와 정책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아마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시민과학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과학기자 생활을 하면서 서강대학교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사이언스에서 어린이과학동아, 수학동아, 과학동아 편집장 및 미디어를 총괄하는 콘텐츠사업 본부장을 지냈다. 13년 가까이 시민과학 프로젝트 ‘지구사랑탐사대’를 기획, 운영했고, <생물에 둘러싸인 하루>, <과학이슈 11(공저)> 등을 저술했다. 현재 극지연구소 정책자문위원,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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