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가장 훌륭한 똥 (The Holy Shit) 2

2025년 10월 통권 241호

*


물론 내가 끌려가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야.

나는 너를 믿었고, 믿음은 곧 사실이 되었으니까.

어느 밤, 우리는 프레임을 타고 성운을 가로질러 우주의 끝에 닿았어. 미지의 세계는 무섭지만 익숙하고, 익숙하지만 놀랍고, 놀랍지만 시시한 공간이었지.

테라에서 사는 사람은 냄새를 맡기는커녕 똥을 볼 일조차 없지. 누기도 전에 훅, 진공흡입기가 가져가 버리니까. 

타운에서 자란 나는 똥에 대해 잘 알지. 냄새와 촉감은물론이고 흘려보내지 못하고 오래두면 어떻게 되는지, 변기가 역류해서 흘러 넘치면 또 어떻게 되는지.

그건 하수도 냄새였어,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는 오백 미터쯤 더 걸어서 커다란 압력 덮개를 찾아냈어.

가로 세로 일 미터 정도였는데 하수도가 꽤 넓다는 의미였지. 

동화 같더라, 빨간 모자 아이와 할머니 옷을 입은 늑대.

네 말대로 테라는 완벽한 생태계가 아니었어.

완벽한 생태계를 유지해야 해서 밀폐된 것도 아니었지.


“출입구가 없다고?”

“있다해도 찾을 수가 없잖아.”

“사람들이 오가는 데는 있을 것 아냐.”

“돔에 있는 에어 버스로만 오갈 수 있어.”


우리가 에어 버스를 탈취하기는 불가능해 보였어. 돔은 테라에서 유일하게 보안과 치안이 집중된 곳이야. 시스템을 통째로 해킹한다면 모를까 들어갈 방법이 없고 들어간다해도 수백 명의 병력을 상대하려면 초능력자 정도는 돼줘야겠지. 초능력은 아무래도 염력이 좋지 않을까, 에어 버스도 조종할 수 있으려면.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드론이 있기는 한데…”


드론은 생태계 관찰용인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각보다 많이 뜨기는 하겠지. 매달릴 수는 있지만 직접 조종은 아예 불가능하고 다 차치하고라도….


“외부 환풍구로 오가는데 중간에 방사선 살균 장치가 있어. 과연 우리한테는 괜찮을까?”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수업 시간에 테라의 시설을 자세히 설명하기에 이렇게까지 알려줄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나갈 방법이 없다는 암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너는 오히려 그 사실에 영감을 받은 모양이었고.


“하수도에 대해서는 아무도 안 가르쳤을 거 아니야, 그치?”


너의 직감은 훌륭했지만 직감을 완성하기는 내 몫이었어. 나는 내가 이곳에 들어올 때 입었던 슈트를 기억해냈지. 테라에서 우주복으로 써도 손색없다고 자랑하는. 프리메라를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인 재난대비 프로그램도 있어서 훈련용 슈트가 어디에 잔뜩 있는지도 알고 있었지.

똥물에 뛰어들 준비는 되었고, 그 전에 풀어야할 문제는 두 가지였어. 복도 쪽으로는 아예 불가능이지만 외벽을 떼어내면 보관실에 들어가기는 하겠는데 밖에서 어떻게 외벽의 정확한 위치를 짚지? 슈트를 훔치는 순간 경보가 울릴 텐데 삼사 분 만에 수십 미터의 프레임 구조물을 내려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하수도 덮개는커녕, 바닥에 닫기도 전에 군인들에게 잡히는 수치를 당할 텐데.

어려운 문제를 너는 쉽게 풀었어.


“밧줄을 이용하자.”


쉬운 문제를 나는 어렵게 풀어야 했고.


“밧줄은 어서 구하고?”


나는 죠셉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아는 것도 많고, 특히 테라에 대해서는 산증인이나 마찬가지고, 죠셉과는 단둘이 있어도 괜찮고. 죠셉은 휴머노이드니까. 코디네이터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내 친구가 아니라서. 내가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하자 코디네이터는 북돋는 말을 했어.


“남녀의 고정된 성역할은 지난 세기에 끝난 일이죠. 논리적인 사고에 더 활성화하는 장내세균에 대한 리포트가 있네요. 요약해 드릴까요?”


죠셉은 보드게임을 좋아했는데, 죠셉과 보드게임을 해서 죠셉을 기분좋게 하면 그건 논리적인 일일까 감성적인 일일까? 어느 쪽이 더 똑똑한 사람일까?

우리는 몇 개의 게임을 거쳐 선원게임으로 넘어갔고 밧줄 문양이 커스텀된 카드가 나왔을 때 나는 말했어.


“아 밧줄 갖고 싶어.”

“지금은 별 쓸모가 없어.”

“난 진짜 밧줄 말하는 건데.”

“그건 왜?”

“예쁘잖아요.”


죠셉은 카드를 뒤섞으며 나를 빤히 보았어.


“외벽에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어디요? 아! 내가 거길 왜 나가요?”

“예전에 거기서 사람이 많이 죽었어.”

“사람이 죽어요? 왜요?”

“왜긴, 일하다 죽었지.”

“사람이 일을 해요? 로봇은 뭘 하고?”

“그 시절에 로봇이 어딨어. 죄다 사람이 공중에 매달려서 했지.”


죠셉은 카드를 나눈 뒤에도 나를 보고 있었어.


“왜 그렇게 봐요? 속임수라도 썼을까 봐?”

“빈곳이 있어서 너희가 잘 사는 거야, 잊지 마.”


우리는 외벽의 천장에서 밧줄이 나오는 기계 몇 개를 찾아냈어. 프레임을 따라 좌우로 이동도 하고 밧줄을 감았다 풀었다 할 수도 있었는데 너는 그걸 ‘생명줄’이라고 부르더라.

갑자기 모든 게 쉬워졌지.

리허설을 해보려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탈출로 이어졌어.

너는 콜로세움의 일층에서 사진을 찍어 슈트실의 높이를 구했어. 일층의 중앙에서 나침반을 확인해서 슈트실의 방위를 알아낼 수 있었지.

밖에서는 프레임에 나침반을 올려 가로 좌표를, 밧줄의 길이를 재서 세로 좌표를 맞춘 다음 내려갔어. 탈출용 밧줄을 슈트실의 위치를 알아내는데도 쓴 거지. 

타일은 천연플라스틱 재질 같았는데 안에서는 쉽게 떼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아니었는데 네가 토치를 갖다대자 천천히 타기 시작했어. 지독한 연기를 뿜다가 어느 순간 톡, 타일 전체가 떨어져 버렸지.

백년 전 사람이 그렇게 똑똑할 줄이야.

똑똑한 사람은 밧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고 내가 좀 서툴기는 했지만 우리는 바닥에 안전하게 도착했어. 일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아. 하수도의 안전덮개에는 친절하게 자동개폐장치까지 달려 있었어. 하수도에서 폭우 내리는 소리가 나서 나는 너무너무 무서웠지만 벌써 불빛이, 군인들의 플레시가 비치고 있어서 죽어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뛰어들었는데 우리가 믿지 말아야 했던 건 교관이 그렇게 자랑하던 슈트였던 거야.

하수도는 생각보다 좁았고, 물의 속도도 빠르지 않았지만 중간에 가로막고 있는 게 전혀 없어서 우리는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우주복이나 마찬가지라는 슈트 안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어. 맵고 따가운 물이. 수많은 작은 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물이. 수많은 작은 바늘을 품고 있는 듯한 냄새가. 냄새를 맡자마자 코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 드는 냄새가. 마치 코가 퉁퉁 부어오른 발이 되어서 퉁퉁 부어오른 발 위에 문신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지.


‘냉동되는 건 어떤 기분이야?’

‘점이 되는 기분이야.’


내 몸속에는 점이 아주 많더라. 지치지 않는 점들이. 나누어지기는 하지만 합쳐지지는 않는 점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어. 바다 속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그게 바다 속일 수밖에 없다는 건 알았지. 슈트 안에 가득 차오른 물이 바닷물일 수 없다는 것도.

나는 본능적으로 팔다리를 저었지만 슈트는 아주 무거웠어.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네가 다가와 헬맷을 떼어냈지. 입속으로 역한 물과 짠 물이 교대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어. 네가 다리 부분을 떼어내고 나를 조금씩 위로 이끌자 거짓말처럼 온몸의 감각이 돌아오더라.


“괜찮아?”


네 음성을 다시 들었을 때 나는 모래 위에 누워 있었어. 모래는 부드러운 듯 꺼끌거렸어. 축축한 부분은 차갑고 마른 부분은 따듯했어.


“체온을 높여야 해.”


그리고, 너의 손이 나의 몸이 닿았어, 처음으로. 

네가 내 팔과 다리와 등을 문지르자 몸떨림이 잦아들면서 나는 더 예리한 추위를 느꼈지. 숨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서야 겁에 질린 심장과 설레는 심장을 구분할 수 있었지. 

나에게는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어.

모든 것이 생생한데 나만 깨워놓고 시간은 잠들어있는 것 같더라.



*


우리는 숲으로 갔어. 네 말대로 바다 가까운 곳에 정말 숲이 있더라.

날이 저물기 전에 텐트를 쳐야 해서 네 얼굴을 볼 새도, 숲을 둘러볼 새도 없었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챌 새도 물론 없었지. 눕자마자 잠들었는데, 그대로 대엿새를 앓아누울 줄도 몰랐고. 우리는 말 그대로 끙끙 앓았어. 몸에 불이 났다 얼음이 얼었다 했고 머릿속은 폭풍과 안개를 오갔지. 잠깐이라도 눈을 뜨고 너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눈을 뜨면 꿈이었고 꿈속에는 네가 없었어. 네가 없어서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를 버리고 갔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그러는 사이사이 자꾸만 누가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사흘째에는 네가 텐트 옆에 불을 피운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어. 깨어났을 때는 네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지. 너의 웃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가 그때 처음이었네. 멀리서 볼 때는 모르겠더니 웃을 때 너는 양쪽 눈 크기가 조금 다르고 작은 쪽 눈꼬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가더라. 원래 그런건지 피부가 많이 상해서 그런건지 나는 울음이 날 것 같았는데 눈물이 잘 나오지 않더라. 네가 스프 한 스푼을 흘려넣어준 후에야 찔끔, 한 방울이 흘렀어.


“조금씩 여러 번 먹어야 해. 배고프더라도 조금만 참아.”


스프 몇 스푼을 먹었을 뿐인데 뱃속에서 풀이 자라다가 짐승이 날뛰다가 바다가 넘실거리다가 따듯한 바람이 불었어. 하지만 그건 내 뱃속에서의 일일 뿐이었지.

우리는 우리가 무방비 상태로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없던 것에 감사했지만 감사할 일만은 아니었던 거야. 다행이라기보다 당연한 일이었달까, 숲에는 우리를 공격하거나 괴롭힐 만한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새 소리가 계속 들려와서 우리가 짐작하지 못했을 뿐이야.

정말 이상한 게 뭔지 알아? 내가 살던 타운에도, 사막과 풀숲밖에 없는 곳에서도 조금만 돌아다니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었다는 거야. 큰 애들은 없었지만, 작고 위험한 애들도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었고.


“개미밖에 없는 건가?”


숲에는 한 가지 종류의 나무뿐이었어. 이름을 알 수 없는 두세 종의 나무가 가끔씩 등장할뿐. 나무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작은 구멍이 뚫린 잎사귀가 꽤 많았어. 곤충은 살아있다는 뜻이었지. 풀은 좀 더 종류가 많았지만 듬성듬성했고 붉은 색의 가느다랗고 길게 자라는 풀이 눈에 띄었는데 나는 본능적으로 그 풀을 피해다니게 되었어. 벌레 먹은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거든.


“버섯도 거의 없네.”

“원래는 많아?”

“나무마다 있지.”

“여긴 왜 없는 건데?”


너는 나를 보지 않은 채 말했어.


“이 숲에… 죽음이 적다는 의미겠지.”


우리는 우리를 보고도 피하지 않는 새를 보았어. 잿빛 새 세 마리가 날개에 힘을 뺀 채 앉아 있었어. 뭘 하는가 싶어 접근해 보았더니 발밑에 처음 보는 벌레가 가득했어. 딱정벌레 같은데 가느다란 모양이었지. 깃털 속에 끊임없이 파고드는데도 새들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어.


“벌레한테 먹히고 있는 건가.”

“모르겠어, 저런 건 처음 봐.”

“새가 벌레를 먹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풀을 묶어서 덫을 만들었는데 걸려드는 새가 없었어. 땅에 박아놓은 나뭇가지 덫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지. 너는 나무를 깎아 새 총을 만들었어. 일주일에 걸쳐 여러 번 다시 만들고 고친 새총은 꽤 쓸만했어. 정확하게 머리를 맞추지 않으면 새는 날아가 버렸지만.

처음 잡은 새는 머리가 검은 듯 갈색이고 날개는 잿빛이고 배는 하얀색이었어. 닭보다 작은 애였는데 그때는 왜 칠면조만큼 커보였나 몰라.


“다 될 때까지 절대 나오지 마. 알았지?”


너는 나를 텐트 안에 넣고 지퍼까지 채웠지만 나는 지퍼를 살짝 내리고 다 보았어. 네가 마른잎을 긁어모아 나무에 불을 붙이고, 큰 냄비에 작은 냄비를 넣고 끓여 바닷물을 식수로 만들고, 그 사이에 새의 목을 그러 피를 빼고, 불에 그슬려 깃털을 긁어내고, 배를 가르고 어깨죽지 안쪽을 끊어 내장을 통째로 떼어낸 다음 소금물로 헹구는 것까지 자세히 보았다. 그렇게 막 역겹거나 징그럽거나 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마음속에 비죽배죽한 것들이 가지런해지며 몸도 약간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나 봐. 언젠가는 내 몸도 완전히 해체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지, 생각하니까 편안하더라. 죽고 싶지는 않지만, 죽기는 할 거니까.


“맛있어?”

“미쳤어.”

“그 정도야?”

“씹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뭐가 터져.”


사실 그 정도로 맛있지는 않았지만 신기했지.

불에 굽기만 해도 이 맛 저 맛이 다 난다는 게.


“어떻게 이런 걸 다 할 줄 알아?”

“아빠가 야생에서 사는 법을 가르쳐주셨어. 머지 않은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할 거라면서.”

“재미있었겠다.”

“끝나고 나면 재밌었지. 칼 한 자루 주고 일주일 동안 집에 못 들어오게 하신 적도 있어.”


우리는 아마 한 달 정도였을 거야. 너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야. 너는 자주 웃었고, 눈가의 따옴표 같은 주름이 원래 너의 것임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좋았어. 너는 너의 것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으니까 괜찮아. 나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내가 문제였지만. 네가 그런것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나는 내가 더 괜찮지가 않았어.

너에게 모든 것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어진 내가.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나에게는 대책이 있었고, 가까운데 바다가 있었고, 소금물이 염증을 일으킬 줄은 몰랐지만, 어떻게든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어. 항상 땀에 절어있고, 지저분하고, 민물로 씻지 못해 피부가 상해서 속상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아니야. 나는 원래 그렇게 살던 아이니까. 먹을 게 떨어져가고 있었지만 나는 곤충을 먹고도 살던 아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서는 돼도 둘이서는 안되는 게 있잖아. 내가 계속 타운에 살았다면, 타운에서 지금의 나이가 되었다면 누군가를 좋아할 마음 따위 절대 가지지 않았을 거야. 차마 가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기어이 가지지 않는 거야, 나를 위해서.

온갖 초라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내 안에 들여놓을 수는 없는 거지.

내가 웃음이 적어지자 너는 더 애쓰는 것 같더라.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 나는 웃고 또 웃었는데 네가 내 웃음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뒤였지.

너는 정말 대단했어.

나무에 구멍을 뚫은 다음 빈 깡통 하나씩을 매달아 수액을 모았고, 굵은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가는 나뭇가지들로 엮어 통나무 이글루를 만들었어. 텐트는 나무에 매달린 커다란 물주머니가 되었고 덕분에 비가 오고 나면 나는 샤워를 할 수도 있었지. 

새들이 점점 똑똑해져서 잡기가 어려워지자 길고 단단한 나무 끝을 깎아 창을 만들었고.


“새가 안 되면 물고기를 먹으면 되지.”


너는 나를 해변에 앉혀놓고 혼자 바다에 들어갔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수면 위로 다시 나왔지. 몇 번이나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는데 해변으로 돌아온 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어.


“더 먼 바다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겠어.”


너는 통나무를 엮어 작은 배를 만들었지. 그 배를 타고 우리는 더 먼 바다에 갈 수 있었어. 우리가 그 안에서 발견한 건 물고기가 아니라 인간이었지만.

원통 모양의 구조물들이 수도 없이 많이 빠져 있었어. 거인이 평생 먹은 캔을 다 바다에 버린 것처럼. 캔처럼 금속으로 만든 게 분명했는데 별로 녹이 슬지도 않은 채.


“저게 다 뭐야?”

“그게… 로켓을 잘라놓은 것 같은데…”


네 말대로 잘라낸 로켓 양옆을 막고 문을 달아놓은 모양이었는데 그 중 하나의 문을 여는데 성공했을 때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너와 나의 잘못이 아니고,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져서도 아니고, 모든 것의 원인은 그 문 안에 있었다고.

깡통의 정체는 집이었어. 폐기된 로켓을 잘라 만든 집.

인간이 만든 수많은 물건이 수장되어 있었다는 뜻이야.

대부분의 물건은 이미 쓸 수 없게 돼 버린 후였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무언가 하나씩은 건져낼 수 있었고 그게 더 문제였지.

비닐로 포장된 음식,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 부식되지 않게 처리된 금속도구, 그리고 무엇보다 천이 있었어. 옷과 침구와 테이블보 같은 것들. 온전한 것들은 하나같이 합성섬유였어. 천연섬유는 아무리 빨고 또 빨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씻기지 않았지. 보통은 코가 적응하게 마련인데 맡으면 맡을수록 짙어지고 날카로워지는 이상한 냄새였어.

나는 처음으로 울었어.

소리 내어 엉엉 울었어.

오랫동안 잊었던 감촉이 떠오르더라. 아주 어릴 때, 어느 날씨 좋은 날 엄마가 나를 목욕시키고 물을 꼼꼼히 닦아준 다음 부드러운 천, 아마도 가운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으로 나를 감싸고 한동안 안아주었던 일. 섬세한 천을 사이에 두고 와 닿던 엄마의 감촉.

한심하고 어이없는 거 아는데, 그 감촉이 미치도록 그리웠어.

나는 밖에 나왔고, 하루 종일 너를 볼 수 있고, 이제 얼마든지 만져도 되는데, 너와 나 사이에 그 감촉이, 부드럽고 섬세한 미끄러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세계가 기억에 한번 남겨놓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나는 억울했나 봐.

생각해 봐. 비닐 안에서 나온 음식을 먹고 우리가 자주 배앓이를 하곤 했지만, 한번은 네가 무언가에 긁히는 바람에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열이 올라 죽을 뻔하기도 했지만, 바다는 별로 깊지 않았고 물건은 평생 써도 될 만큼 많았는데 정말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이미 수십 년 된 식품이야. 지금도 먹으면 안되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합금으로 만든 활과 화살도 있고, 덫을 만들 수 있는 재료도, 심지어 총과 탄약까지 있는데 그냥 새를 사냥하고 살 수는 없었을까.

나는 네가 천 때문에 울고 웃던 내 얼굴을 잊지 못해서였다고 생각해.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려고 너 자신조차 속이게 되었다고 생각해. 내 잘못이야, 너를 말리면서도 내 안의 것과 싸워 이기지 못했으니까. 네 안에서 나온 말과 말투가 아닌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저 안에 있는 것들만으로는 부족해.”


너는 바닷속에서 헬멧 두 개와 슈트의 일부분을 찾아왔지. 우리가 빠뜨린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고 하더라. 통조림 마을에서 연장과 전자제품을 가져와서 손을 좀 보기도 했어. 슈트는 여전히 방수가 되지 않았지만 온도조절장치는 정상이었지. 내비게이터와 근력 보조 장치도 잘 작동했어. 사막의 뜨거운 햇빛은 슈트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기에 충분했고.

매일매일 돌아다닌 끝에 우리는 타운을 찾아냈어.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타운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본 소득자들이 불량한 에너지 공급과 값비싼 택배에 의존해 살아가는 곳.

이미 들었겠지만 우리는 택배 도둑이었어. 새를 잡는 것보다는 드론을 떨어뜨리는 게 더 쉬웠지. 바닷속 로켓을 뒤지는 것보다는 상자를 뒤지는 게 더 간편했고.

걱정마, 타운에 사는 사람들의 것을 훔친 건 아니야. 드론이 주문자의 얼굴을 인식하고, 수령이 확인되어야만 돈이 빠져나가니까. 다시 배송받으려면 며칠이 더 걸리고, 식료품이라면 그동안 굶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쫓아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우리는 슈트 차림에 무기까지 갖고 있었으니까. 식량은 다시 주문하면 그만이지만 병원에 가기는 정말 어려우니까. 사소한 상처로도 죽는데 싸움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을 훔친 셈이지.

불안한 자들의 물건은 바다에서 건진 것보다 나을 게 없었지만 내가 울컥한 건 어떤 제품들 때문이었어. 테라에서는 필요 없는, 몸에서 나오는 것들을 처리하기 위한, 온갖 뽀송한 것들. 나는 내 몸에서 나오는 것들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었지. 그것들을 위해서, 그것들을 향해서 존재하는 존재. 너보다 더. 테라에서 여성이라면 그들에게 한 가지를 더 주어야 했으니까. 그래, 그때까지 나는 진짜 생리가 어떤 건지 잘 몰랐어.

몇 개월을 버티다 타운에 가던 것이 한 달에 한 번 꼴이 되고, 그마저도 모자라 예측 못할 간격으로 횟수를 더 늘이게 되자 너는 슬슬 불안해했지. 그때에도 너를 안심시킨 건 나였어.


“경찰에게 붙잡히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경찰은 도시에만 있어. 타운에는 오지 않아.”


내가 타운에 살 때에도 드론 사냥꾼은 항상 있었고, 그들이 잡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었어. 드론은 아무나 떨어뜨릴 수 없고, 우리도 크로스보우가 없으면 불가능했고, 타운의 택배는 대단한 물건이 아니고, 대단한 드론도 아니고, 풍력 발전기가 달린 비행선을 타고 와서 고작 몇 분간 비행하는 싸구려 모델에 집착할 이유가 없지. 경찰이 타운까지 와서 수사를 벌이게 하기가 더 번거로운 일일 테니.

게다가 우리는 관둘 생각이었어. 평생 그 짓을 할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든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지. 이제 쓸만한 천도 제법 모였고, 곧 비누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

꽃을 키워보고 싶어서, 종류는 상관없고 하나만 나오면 그만두자 했는데 씨앗을 사는 사람이 그렇게나 없었네.

우리를 공격한 건 경찰이 아니었어. 사람도 아니었어.

며칠이고 숨어서 우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겠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어느 건물의 옥상 위에, 아니면 타운에서 가까운 사막의 모래 속에 웅크리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것은 우리가 드론 하나를 떨어뜨리자마자 갑자기 나타났어. 마치 낮잠을 방해받은 드래곤처럼,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제트 엔진이 달린 군사용 비행체. 아마 총도, 레이저도, 로켓 같은 것도 다 갖고 있었겠지만 놈이 우리에게 쓴 건 듣도 보도 못한 거였어.

수백 개의 점들이 날아와 슈트에 구멍을 뚫고 안으로 들어왔어. 몸속에 닫는 감촉이 꼭 곤충 같았어. 온몸이 따끔따끔하면서 나는 어지럽기 시작했어. 내가 바닥에 무릎을 꿇자마자 일사분란하게 슈트를 빠져나가기에 곤충이 아니라 로봇인 걸 알았지. 경찰이 갖고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너와 눈을 마주치고 싶었는데 너는 이미 완전히 쓰러진 후였어. 고개가 하늘을 향하고 있어서 눈이 보이지 않았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다 내 잘못이라고. 눈빛으로 말해주고 싶었는데.

너는 나에게 눈빛을 알려준 첫 번째 사람이야.

나는 다른 사람의 눈빛을 자세히 본 적이 없었어.

타운에서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어. 눈이 마주치면 곧 싸우거나, 도망쳐야 한다는 의미였어.

테라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은 쳐다보지 말라고 가르쳤어. 친해지면 괜찮다는 뜻이었지만 내가 친한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나는 혼자고 항상 집안에 있었지만 너와 마주칠 기회가 없지는 않았어. 닥터 이자와 상담을 하거나, 단체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도 했으니까.

낮에 너를 만나면 머릿속이 막 간지럽더라. 눈이 보이니까, 서로 입술 한 번 움직이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 것 같아서.

낮이라고 꼭 우연히 만난 건 아니었어. 프리메라는 가지 않는 단체행사가 종종 있었는데 그건 숙소동도 거의 빈다는 얘기잖아. 그때마다 우리는 그곳에 갔어. 네가 ‘성당’이라고 이름 붙인 곳. 우리가 평소 만나는 곳보다 한참 더 아래에 있었지. 아마도 숙소동의 이삼 층 높이에. 

아직 일과 시간이라 누가 갑자기 찾을 수도 있고, 돌아가는 시간도 더 많이 걸려서 위험천만한 짓인데도 그곳에 간 이유는 파이프 때문이었어. 외벽에는 워낙 파이프가 많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파이프는 따로 있었지. 얇고 가느다란 금색 파이프인데 톡, 하고 두드리면 동, 하고 소리가 났어. 굵고 투박하고 직선적인 파이프 사이사이에 금색 파이프가 마치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었고 저마다 다른 궤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나는 소리도 조금씩 다 달랐어. 같은 파이프여도 그때그때 다 다른 소리가 났어. 마치 성격과 기분을 가진 듯한 금색 파이프 수십 개가 한 자리에 가지런히 모인 장소를 어느 날 우리가 찾아낸 거였지. 호스트들이 우르르 불려나가는 시간이야말로 그 파이프 실로폰을 연주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이기도 했고.

우리는 파이프를 울릴 때마다 말을 붙이기를 좋아했어.

이 소리는 달고, 저 소리는 시어. 얘는 매운맛이 들어갔고 쟤는 어딘가 텁텁해. 이 아이는 레몬을 먹었고 저 아이는 크림을 먹었네.

토라졌어, 뭔가 뚱해, 참고 있어, 능글맞아, 새침떼기야, 불쌍한 소리 내지 마, 왜 이렇게 점잖아, 너도 나 만나니까 좋지,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오늘 많이 행복한가보다? 너무 슬퍼하지마 내가 용서해줄게…, 그곳에 있으면 시간이 말랑말랑해져서 우리를 다정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는데.

우리가 무지개만큼 커져서 세상의 모든 색을 다 품어버린 기분이었는데.

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정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 그 소리가 들리더라.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행복했던 그 시절의 모든 소리들이.


*


상담실은 커다란 원형의 방이었다. 닥터 이자의 책상은 벽에 등을 향하고 앉게 배치되어 있었고 내담자의 자리는 그 앞 일인용 소파였다. 등받이가 높고 몸이 좀 파묻히는 편이어서 닥터 이자가 모니터나 홀로그램으로 뭘 보고 있는지 뒤를 돌아보기 어려웠다. 편해서 불편한 의자라고 히유는 항상 생각해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닥터 이자의 손과 안구를 훔쳐보며 기다려야 하는 자리였으니까,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히유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를 다시 데려온 이유가 뭐에요?”


닥터 이자는 빙긋,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루한테서 기계를 빼앗을 건가요?” 


닥터 이자의 손이 허공에서 조금 미끄러졌다.

여전히 히유의 뒤편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우리가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면 우리를 데려온 이유가 뭔데요?”


닥터 이자가 이번에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마치 우연히,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 듯한 표정이었다.


“연방정부에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랐어. 어떻게 하면 너희를 데려올 수 있을까 방법을 찾느라 분주했지.”


히유는 믿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깟 좀도둑질에 연방정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닥터 이자는 거짓말과 사실을 잘 섞는 사람이었다.


“내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둘은 절도 현행범으로 붙잡혔어. 한 번도 아니고 상습범으로. 이제는 더 이상 선처를 구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야. 적어도 칠 팔 년 형은 받았을 거야. 수감 중에 감옥에 자리가 부족해지면? 추방되는 거야. 너희가 있던 데 같은 데 말고,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사막으로.”

“… ….”

“둘이 훔친 물건값을 열 배로 배상해줘야했어. 떨어뜨린 드론 값은 물론이고. 보석금은 적었을 것 같아? 무엇보다, 기계를 빼기 위해서였다면 너는 데려오지 않았겠지.”


닥터 이자는 어느새 히유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예전에는 비추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끌어당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걱정하지 마. 루는 깨어날 거야. 기억도 되찾을 거고.”


사람을 죄었다 풀었다 하는 수법임을 알면서도 히유는 흔들, 이제 그만 닥터 이자에게 기대 버리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을 느꼈다. 눈밭에 쓰러진 사람이 잠깐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 같은 유혹에 빠지는 것처럼.


“냉동에서 깨어난 사람에게 간혹 나타나는 현상이야. 냉동 이전의 기억을 잃거나, 이후의 기억을 잃거나. 둘 다 잃는 경우도 있지만 둘 중 하나만 잃는 경우가 훨씬 많지. 뇌는 정원사 기질이 있어서 삐져나온 것들을 잘라내는 속성이 있거든. 물론 히유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야. 루가 깨어나면 히유가 많은 얘기를 해주도록 해.”

“당신들이 공격하기 전까지는 괜찮았어요.”

“네 머릿속에도 정원사가 생긴 모양이네? 왜 우리가 공격했다고 생각하지?”


닥터 이자가 테이블 위의 화면을 조작하자 의자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히유는 잠시지만 뱀 따위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놀랐다. 움직일 수 있는 의자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였다.

홀로그램에 펼쳐진 영상은 두 개였다. 두 개의 영상 모두에 기괴하게 생긴 수많은 생명체들의 바다와 히유로서는 읽기도 힘든 어려운 단어들이 가득 떠올라와 있었다.


“뭘 보고 있는지 알겠어? 두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움을 확대한 거야. 두 사람 모두 마이크로바이움 구성이 많이 바뀌었어. 이렇게 많이 바뀐 경우는 정말이지, 처음 봐.”


닥터 이자가 헛웃음 소리를 냈고, 히유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테라에 돌아올 수 있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머릿속을 공전하던 물음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오염되었다면 다시 데려온 이유가 뭘까. 일단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오염이 너무 심해서… 홀로그램 속의 세균들이 분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검사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두 사람 모두 종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어. 루의 경우보다 희유의 경우가 더 많이 늘었지. 아직도 전체 다양성은 루 쪽이 많지만 말이야. 완전히 균형과 조화를 이뤘다기보다 아직 몹시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라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예요? 우리를 복원해보기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하다 안 되면 다시 내보내고요?”

“크윽, 큭.”


처음에는 기침이 난 줄 알았는데 웃음 소리였다. 항상 웃고 있어서 기괴한 줄만 알았지, 그녀가 웃으면서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처음 깨달았다.


“두 사람에게서 슈퍼 마이크로바이움이 탄생했다는 뜻이야.”


닥터 이자가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와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앞으로 알아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한 지금의 상태가 깨지지 않으리라고 판단하고 있어.”


어깨에 어루만지듯 손을 얹으며 귓속말을 시작했는데, 등 뒤에 있어서 희유는 닥터 이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너희는 탈출한 게 아니라 회사의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한 거야.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는 나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얘기해서는 안 돼.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도 안 돼. 둘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순간 나는 너희 둘을 연방 정부에 고발할 거야.’


희유가 앉은 소파가 원래 방향으로 돌아왔다.


“너희는 테라와 평생 계약을 맺게 될 거야.”


닥터 이자도 평소처럼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단, 둘의 관계가 계속 유지된다는 조건 하에.”(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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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