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Review

메타 휴먼을 향한 여정: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세계가 갖는 의미와 그 한계

2025년 10월 통권 241호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는 모국인 프랑스나 영미권 문학계보다는 한국에서 훨씬 더 명성이 높은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1991년 첫 장편 ‘개미’로 문단에 데뷔하자마자, 그는 독서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데뷔 후 지금까지 19편의 장편, 2편의 단편의 생산성으로 주제의 스펙트럼도 넓혔다. 그가 작품 속에서 다룬 주제는 불사나 사후 세계, 항성 간 여행과 우주 탐험, 종족의 키메라화와 개량, 지능이 있는 이종족이나 외계인 등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행보를 보인다. 소설 속에 녹여낸 수많은 과학적 개념과 장치, 기술을 고려하건대, 그의 작품은 SF로 분류될 수 있지만, 동시에 엄밀한 과학적 설정과 핍진성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기에 하드 SF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의 SF는 그 대중성과 화려한 상상력으로 인해 인기가 세대가 바뀌면서도 유지되긴 하나, 정작 평론가나 SF 팬들 사이에서는 작품에 대한 평가가 들쭉날쭉하고 과학적 설정에 대한 호불호도 꽤 갈리는 편이다.


그는 커리어를 잡지사의 과학 기자로 시작했다. 국립 언론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베르베르는 기자 시절, 당시 새로운 문물로 각광받던 PC는 물론, 현재의 형태와는 다소 다르지만 인공지능이나 로봇, 그리고 우주 과학까지 다양한 영역을 취재했다. 기자를 그만두기 전, 마지막으로 취재한 대상은 아프리카 개미였다. 취재를 위해 코트디부아르로 향한 그는 개미에 매료되어 준전문가 수준으로 연구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기자 시절부터 습작처럼 써내려 온 소설에서 마침내 주인공을 인간이 아닌 개미로 설정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며, 이 작품은 120여 회의 개고를 거쳐 마침내 첫 장편 ‘개미’이자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개미’는 그가 기자 시절 수년간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미 제국을 근접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감독한 PD처럼 풀어낸 이야기 속에서 구현된 새로운 SF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개미가 군집 생활을 하는 종일뿐만 아니라, 인간과 대등한 수준의 지성을 갖춘 종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개미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사회학, 정치학, 문명을 보여주는 주체가 되는데,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인간과 이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페로몬 장치 같은 설정으로까지 확장된다. 


非인간이 주인공인 SF가 드문 것은 아니다. 유명한 작품 중 에드윈 애봇Edwin Abbott의 플랫랜드Flatland(1884)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무려 생물도 아니고 2차원 정사각형 같은 수학적 추상개념이라는 화자가 존재론과 인지의 틀 바깥에서 인간에게 익숙한 세계를 뒤튼다. 개미와 가장 비슷한 결을 가진 최근 작품이라면 애드리안 차이코프스키Adrian Tchaikovsky의 칠드런 오브 타임Children of Time(2015)이나 칠드런 오브 루인Children of Ruin(2019) 같은 작품이 있다. 여기서 주인공이 거미나 문어 같은 생물들이다. 이들도 문명과 사회를 이루어 정치 활동까지 펼치는 장대한 서사가 펼쳐지는데, 개미에서 그려진 사회와 일견 비슷하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테라포밍 된 외계 행성에서 지능이 업그레이드된 종들이 사회를 자발적으로 이루고 문명이 진보된다는 점에서 개미와 다소 차이는 있으나, 非인간 사회학을 작품 속에서 일관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인간 기준으로는 낯선 감각-언어-사회 규범을 끝까지 일관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타자성 서사가 드러난다는 점은 개미와 흡사하다. SF의 고전이라 볼 수 있는 플랫랜드는 SF의 틀을 빌린 사회적 풍자소설로 볼 수도 있다. 작품이 쓰인 빅토리아 시대를 풍자하기 위해, 2차원 세계에 사는 정사각형이 주인공이 되어 3차원 구체를 만나 인식의 한계를 깨닫는 사변이 펼쳐진다. 이 작품이 개미와 공유하는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차원이 다른 두 문명이 조우하는 장면이다. 플랫랜드에서는 2차원 주체와 3차원 상위 주체가 조우한다면, 개미에서는 2차원 평면을 걸어 다니는 개미와 3차원에 사는 인간이 조우한다. 물론 플랫랜드의 정사각형이 인지하는 구체는 그저 평면에 접하는 점으로만 인지되는 것처럼, 개미가 인지하는 3차원 인간은 ‘손가락’이라는 지극히 단편적인 존재로만 인지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차원의 차이는 둘 다 인간 중심의 인식의 틀을 비트는 사고실험을 유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개미 이후, 베르베르의 작품은 다양한 주제를 섭렵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타나토노트(1994)-천사들의 제국(2000)-신(2004)-죽음(2017)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사후 세계 탐색을, 아버지들의 아버지(1998)에서는 인간과 유인원의 혼종 가능성과 진화생물학을, 뇌(2001)에서는 인공지능, 신경생물학, 그리고 의식에 대해, 파피용(2006)-카산드라의 거울(2009)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진화와 우주로의 진출(탈출), 문명의 진화를, 제3인류(2012)에서는 새로운 유전 실험을 통한 신인류 탄생을, 고양이(2016)-문명(2021)-행성(2022) 시리즈에서는 非인간 화자인 고양이의 눈으로 풀어낸 인간 문명의 명멸을 그려낸다. 가장 최근작 키메라의 땅(2025)에서는 인간과 다른 생물의 유전적 하이브리드화를 통해 탄생한 이종족들의 문명 진화가 펼쳐진다.


베르베르가 30년 넘게 탐험해 온 SF 여정을 관통하는 주제를 고르라면 그것은 인간 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생각보다 얼마나 취약하며, 그래서 인간은 현재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벗어나는(탈출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 그래서 과감하고 파격적일 정도의 새로운 변신 시도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 곳곳에 흐르는 염세주의, 즉,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과 인간 문명 혹은 어리석음에 대해 작가가 은연중에 보이는 회의감의 원천이 되는 동시에, 장기적인 낙관주의, 즉, 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다시 변신을 거듭하여 새로운 세상에 적합하도록 진화할 것이라는 플롯의 기반이 된다. 작가가 이 과정에서 동원하는 과학적 장치들은 그렇게 새롭거나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개미에서 시도한 페로몬 통신기나 타나토노트에서 선보인 사후세계 지리학 같은 창의적 장치도 있지만, 원심력에 의한 인공중력이나 항성 간 여행의 원동력이 되는 솔라세일, 갇힌 생태계 안에서의 문명의 통제된 진화, 범종자설(판스퍼미아), 삼체 불안정성, 지구-가이아 아이디어나 인간-지구 공진화 개념, 3종 이상의 생태계에서 보이는 공진화 동역학, 수면과 의식의 과학, 시간 여행이나 유전자 변형 혹은 인간-동물 키메라 같은 기술이나 개념들은 작가가 스스로 만든 장치도 아니며 때로는 오용하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로서 훈련받지 못한 작가가 보이는 개념의 오해로 인해 일부 과학자나 하드 SF팬들은 과학적 핍진성의 부족, 그리고 간혹 보이는 유사과학에 대한 암시를 근거로 작품을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작가의 초중기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과학-영성의 애매한 혼합은 뉴에이지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며, 느슨한 연계는 작가가 작품에서 즐겨 활용하는 문학적 장치, 즉,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같은 가상의 문헌으로 메꾸려 한다. 물론 작가의 작품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며, 상상력이 중요한 소재라는 점에서 과학적 엄밀성 집착은 오히려 소설의 진행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과학저널리즘의 형식을 즐겨 차용하여 사실감을 이끌어내려 하는 것이나 마치 현존하는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설정은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예를 들어 타나토노트 같은 경우, 신선한 문학적 흥미와는 별개로, 허구인 사후세계를 과학적으로 탐사한다는 무리수를 던지는데, 그것도 모자라 그 세계를 지도화하거나, 자본주의를 도입하거나, 전쟁을 묘사하는 등의 설정은 과학적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베르베르의 작품 속에 흐르는 주제가 수렴하는 지점은 결국 그가 여러 형태로 천착하는 새로운 종의 등장, 즉, 트랜스, 메타, 포스트 휴먼 같은 존재의 탄생이다. 작가가 새로운 종의 큰 축은 물리적 형태(몸), 의식(마음), 집단(사회)에 대한 정의를 비트는 것이다, 인류의 형태를 바꿈으로써 몸을 비틀고 (제3인류, 키메라의 땅), 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정신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하며 (타나토노트 시리즈, 잠), 다종 시민권이나 정치적 거버넌스에 대한 사고 실험 등을 통해 인류에게 익숙한 사회적 체계와 공동체 의식도 흔든다 (키메라의 땅, 개미, 파피용 시리즈). 이 과정에서 우리 자신, 즉, 호모 사피엔스는 철저히 주인공에서 밀려나 타자화되며, 인간 중심의 철학과 윤리에 대한 상식도 시험받는다. 개미나 고양이 같은 주인공은 지성을 가진 존재라는 면에서 포스트 휴먼이라고 볼 수 있다. 타나토노트 시리즈에서 다루는 개념은 사후 세계 이후에도 존재를 이어가는 트랜스 휴먼이다. 가장 최근작 키메라의 땅에서 등장하는 공중, 수중, 지중 하이브리드 종족들은 각각 박쥐, 돌고래, 두더지 등과 인간이 유전자 레벨에서 결합한 새로운 종이라는 측면에서 메타 휴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종의 등장은 작중에서는 대부분 인간 문명의 붕괴나 종의 멸종 등과 병행되며 이루어진다. 즉,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의 성립을 위해서는 ‘창천이사 황천당립’을 외치던 삼국지 시대 황건적의 구호 같이, 새로운 인간의 등장은 반드시 현재 형태의 인간 문명이 붕괴되어야 한다는 거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작가는 非인간 시점의 윤리학, 자유의지, 정치학, 역사학, 심리학 등을 나름대로 정의하며 작중 화자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가만의 인류 정의를 재정립한다. 


베르베르가 그리는 새로운 종이 정말 등장할지는 장담할 수는 없다. 그가 최근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혔듯, 인간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그는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그리 단단하게 믿지 않는다. 코로나 시절의 불안감, 최근의 일련의 전쟁과 민주주의 위기, 서구 사회의 공동체 붕괴 등을 보며 그는 회의감을 더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새롭게 다시 진화할 것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특이점의 시대에도, 그가 생각하는 포스트, 메타, 트랜스 휴먼에 대한 예상은 일종의 희망으로까지 비친다. 비록 키메라의 형태라고 하더라도, 축소된 형태라고 하더라도, 정신만 남은 형태라고 하더라도, 과학이 아닌 판타지의 영역으로 폄하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이어질 그의 작품 세계에서 새로운 종은 계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시도될법한 새로운 실험을 미리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베르베르의 작품들이 꽤나 독특하고 흥미로운 지적 경험을 제공해 줄 것이다.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와 장치들에 지쳐갈 때쯤,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종을 제시하며 호모 사피엔스의 미개척 영역을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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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성균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