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스토크(Beanstalk) 타워. “빈스토크라는 이름은 원래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거대한 콩줄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콩줄기처럼 하늘까지 솟은 674층짜리 건물인데, “가늘고 길쭉하게 높기만 한 게 아니라 가로세로가 거의 5킬로미터에 달하는 두툼한 건물”이다. 상주인구가 무려 50만이고, “도시화가 백 퍼센트 진행된 나라”이며, “대외적으로 승인된 주권을 갖춘 독립국가”이다.
“1층부터 12층까지는 층 구분이 없는 커다란 정원”이고, “그 위로는 백화점이나 쇼핑몰, 영화관 같은 상업 시설이 21층까지 이어졌는데 거기까지는 외국인도 누구나 출입할 수 있”다. 22층에서 25층까지가 출입국 사무소가 위치한 국경지대인데, 빈스토크 육군 이천이백 명 중 이천여 명이 주둔해 있다. 250층에서 350층 사이에 구형으로 자리 잡은 시 업무 구역이 있다.
그런데 빈스토크 타워는 “한 층 한 층 구분된 질서 있는 공간 674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게 아니라, 테트리스 블록처럼 제멋대로 생겨먹은 방들이 674층 높이로 통로를 제외한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꽉꽉 채운 형태”이다. 엘리베이터 라인 하나가 대략 20층에서 30층 정도를 오가는데 100층 이상 장거리 운행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터미널을 찾아가야 한다.
빈스토크 주민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그냥 눌러살기도 하며, 저소공포증[“대체로 50층 이하 높이에서 호흡 곤란, 정신착란, 환각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결국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됨”]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물건을 수평 방향으로 실어 나르는 “수평운송노조”와 엘리베이터로 실어 올리는 “수직운송조합”이 있고, 여기서 파생된 수평주의자와 수직주의자가 있다. “수평노조는 말 그대로 노조 분위기고”, 인력이 아니라 기계설비가 중요한 수직운송조합 쪽은 더 자본가 분위기가 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빈스토크는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건물 전체가 주변국 영토에 얹혀 있는 주제에 바로 그 주변국에조차 비자 면제 혜택을 주지 않을 정도”다. 또한, 빈스토크는 코스모마피아와 적대적 관계에 있다. 코스모마피아는 구공산당 계통의 무장세력인데, 위성 요격 미사일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빈스토크의 주력 산업인 위성 서비스 산업에 심각한 위협이다. 빈스토크는 코스모마피아 주둔 의심 지역에 대한 (선제) 공습으로 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난민을 발생시켜왔다.
위에서 언급한 빈스토크는 배명훈 작가의 연작소설 <타워>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국가이다. 소설 <타워>는 2009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6편의 단편과 4편의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명훈 작가는 2020년에 출판된 <SF 작가입니다> 라는 에세이 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워>에는 2009년 당시 한국 사회가 겪었던 정치적 변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다수 들어 있지만, 작가가 가장 먼저 바라는 것은 독자가 674층짜리 건물 하나로 이루어진 도시국가의 주민이 되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직관적으로 느껴보는 일이다. 그래야 작품에 몰입할 수 있고, 텍스트로 된 주인공의 삶에 충분히 공감하며 책을 읽어갈 수 있다.” 배명훈 작가의 바람을 염두에 두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위에 말로 요약한 빈스토크의 모습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 번째 단편은 <동원 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이다. (27층에 위치한) 빈스토크 미세권력연구소의 정 교수는 야당 선거사무소의 의뢰로 빈스토크 타워의 권력 분포 지도를 그리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는 (물품 화폐로 쓰일 수 있는 선물용) “술병 하나하나에 전자 태그를 달아 빈스토크 상류사회에 유통시킨 후 그 이동 경로를 정밀 추적하면 건물 내 미세권력 분포 지도가 자연스럽게 그려질 것이라는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았다.” 연구를 진행하던 이 박사는 487층 A57 구역에 사는 ‘영화배우 P’에게 술이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영화배우 P는 사람이 아니었다. 개였다.” 그러니까 “현 시장의 권력 핵심에 개가 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 개는 가끔 ‘국민’이라고 짖는다.)
연구 내용에서 개를 빼기를 원한 정 교수는 이 박사를 연구진에서 제외했다. 업무는 “갓 서른밖에 안 된 젊은 외부 박사 세 사람”에게 맡겨진다. 외부(외국)에서 동원된 ‘동원 박사 세 사람’은 권력 분포 지도에서 또 다른 특이점을 발견한다. 권력 구조 전체의 구심점인 339.7층 A1에서 정 교수의 집인 193층 M225 사이에 통로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빈스토크 시장과 정 교수의 젊은 아내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챈다.
권력의 핵심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된 동원 박사 세 사람은 아들을 갓 출산한 정 교수의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다. 때는 크리스마스이브. 그들은 19층 쇼핑몰에서 선물로 금반지와 향수, 그리고 몰약을 산다. 647층에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당일 정액권을 끊는다. 그 여정이 복잡하고 험난하다. “인파에 밀려 서로 놓치는 일이 없도록 남 박사가 머리 위로 엘리베이터 정액권 티켓을 들고 앞장섰다. 티켓에는 커다란 은색 별이 찍혀 있었는데, 주위의 화려한 불빛을 받아 이따금씩 반짝반짝 빛을 냈다.” 아기 예수를 찾아가는 동방 박사 세 사람을 연상시키는 이런 묘사를 보면, 배명훈 작가의 유머 스타일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 더글라스 애덤스의 그것을 닮아있는 것 같다. 특히 부록 <내면을 아는 배우 P와의 ‘미친 인터뷰’>와 <타워 개념어 사전>을 보면 내 말에 동의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배명훈 작가의 주된 관심은 권력의 작동 방식과 그 아래 놓인 인간의 모습인 것 같다. 정 교수 부인의 비밀을 숨겨주기로 하면서, 동원 박사 세 사람은 정 교수 부인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권력장이란 게 원래 그랬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처리해주기를 바라면서 그 대가로 무엇인가를 지불하는 표면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그저 마음을 전하고 얼굴을 각인시키는 섬세하고도 오묘한 함수였다. 그 함수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정확한 계산보다는 눈치와 타이밍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병원에서 사건을 일으킨) 정 교수가 어떤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를 이해한다. “그것은 문명 세계의 권력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권력자가 일일이 협박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약탈당할 물건을 내놓게 만드는 힘, 위에서 일일이 지목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서 정적을 제거해주고 비판자의 입을 틀어막아주는 힘. 통치자가 머리를 비우고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통치기구가 알아서 합리화해주고 알아서 정당화시켜주는 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비열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절대 추궁당하지 않는 권력.”
이어지는 단편들에서도 배명훈 작가의 주된 관심은 유지된다. 두 번째 단편 <자연 예찬>에서 작가 K는 “뜨끔할 만큼 날카롭고 생생한 언어로 사회의 어두운 면을 포착해 내던 사람”이었지만, (털면 털릴 수 있는 먼지가 생긴 이후에) “어느 날 갑자기 낚시꾼 같은 말투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자기검열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다 197층 북쪽 창문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한다. “수직운송 체계 재정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재개발 구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죽은 사람은 열흘째 그 구역을 점검하고 농성 중인 무리들 중 하나였다. 그날 저녁에 경비대가 진압을 강행했는데 그 와중에 사고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비통해진 K는 다시 현실 비판 글을 쓴다. “물론 아무도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았다. 다만 K를 털었더니 먼지가 났다. ... 그리고 고달픈 나날이 시작되었다. ... 세상은 좀처럼 아름다워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의 숨겨진 먼지였었던) 프리힐리아나의 뇌사 로봇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았다.
세 번째 단편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에서는 임무 도중 타클라마칸 사막에 추락한 외국인 용병 조종사가 나온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사막으로,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1.5배에 달한다.) 빈스토크 해군은 수색에 소극적이었다. “빈스토크 해군에서 고용한 방위업체 직원이지 해군 소속 조종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결국 추락한 조종사는 그 일과 관련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진 위성 사진을 분석하는 협력을 통해 구출된다. (“국가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춘 동안 개인들이 부지런히 빈스토크를 뛰어다녔다.”)
네 번째 단편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서는 빈스토크 내의 수평주의자와 (시 정부를 포함하는) 수직주의자의 대결이 펼쳐진다. 빈스토크의 권력 중심부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빈스토크 경비대는 배후에 수평주의자 조직이 있을 것이라 의심한다. 수평주의자들이 하나 둘 소환되어 수사를 받았지만 별 진척은 없었다. 그러나 경비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사건 자체보다는 수평주의 진영을 압박하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이 소설에는 빈스토크 건물의 한 장소에서 (다른 층의) 다른 장소로 군병력을 이동시키는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배명훈 작가는 1900년 무렵의 독일군 육군참모부의 철도 배차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은 작가가 국제정치학 석사과정에서 익힌 지식이다. (“동원계획과에서 만날 하는 일이 그거였어. 엘리베이터 시간표 짜는 거. 1차 대전 무렵에 독일군 총참모부에서 열차 시간표 짜느라 골머리 썩은 것처럼 말이야.”)
다섯 번째 단편 <광장의 아미타불>에서는 빈스토크 경비대가 시위진압을 위해 들여온 코끼리가 나온다. 코끼리가 시민들의 인기를 얻자 빈스토크 시장은 코끼리에 묻어가려고 한다. (“그 양반 만날 뭐 좋은 것만 있으면 자기도 옛날에 그거 해봤다고 그러면서 생색내잖아. 이번에는 뭐, 자기가 무슨 15년째 아프리카 야생동물 구조 협회 후원회의 같은 걸 하고 있다면서 자기도 원래 골수 코끼리인이라나 뭐라나. 그런데 아미티브는 사실 인도코끼리라는 거.”) 그러나 결국 코끼리 아미타브를 전술 무기로 활용하려 한다.
여섯 번째 단편 <샤리아에 부합하는>에서는 빈스토크와 코스모마피아 사이의 전쟁 위기 상황이 그려진다. 코스모마피아에 대해 선제공격을 승인했던 빈스토크 시의회는 전쟁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빈스토크 시민들은 코스모마피아 주둔 의심 지역에 대한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난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다.
권력의 작동 방식에 더해, 6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또 한 가지는 영화배우 P, 즉 개에 대한 언급이다. 어디에서 그 개가 언급되는지 찾아보시길. 부록 <작가 K의 [곰신의 오후] 중에서>와 <카페 빈스토킹-[520층 연구] 서문 중에서>는 아르헨티나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떠올리게 한다. 보르헤스는 그의 작품 속에서 가상의 작품들을 등장시키거나 언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곰신의 오후’는 단편 <자연 예찬>에 등장하는 작가 K의 작품이며, ‘520층 연구’는 단편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에 등장하는 한 수평주의자의 작품이다.
배명훈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타워>의 홍보 문구 중 하나였던 “권력의 중심에 개가 있다”라는 문장은, 종종 “권력자가 개”라는 의미로 이해되곤 했다. 이것은 대중의 이해 방식이다. 내가 의도한 것은 ‘빈스토크’라는 사회의 권력이 워낙 이상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그 핵심에 특별히 선하고 악할 것도 없는 동물 배우가 들어가 있는 경우에도 권력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 똑같이 작용하더라는 내용이었다. 분명 그렇게 읽은 독자도 많겠지만, 훨씬 많은 독자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서 “대통령이 개래. 작가가 미쳤나 봐”하는 반응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만약 2009년 당시의 시대상 때문에 “권력의 중심에 개가 있다”라는 문장을 많은 독자가 오독했다면, 그런 독자들이 지난 3년간 급격히 늘지 않았을까?
4
독자님의 정보를 입력해주세요.
* 는 필수항목입니다
첨부파일은 최대 3개까지 가능하며, 전체 용량은 10MB 이하까지 업로드 가능합니다. 첨부파일 이름은 특수기호(?!,.&^~)를 제외해주세요.(첨부 가능 확장자 jpg,jpeg,png,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