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전위의 핵심 재료인 이온 채널, 시냅스 전달에 필요한 소포 융합 단백질, 그리고 감각 수용체와 같은 요소들이 이미 동물의 조상, 심지어는 단세포 원생생물 단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통찰을 준다. 특히 지난 두 연재에서 살펴본 해면동물의 ‘뉴로이드 세포’와 판형동물의 ‘펩타이드성 세포’ 연구는 감각, 분비, 운동 기능이 한 세포에 통합된 원시적 프로토뉴런이 점진적으로 분화하고 전문화되는 역사적 시나리오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경계가 결코 무(無)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연속적 진화’의 관점은 다음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이처럼 동물의 조상 계통에 산재되어 있던 유전적 재료들이 어떻게 조직화되어 복잡한 정보처리 시스템, 즉 ‘신경계’를 만들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진화신경생물학자인 가스파르 젝켈리(Gáspár Jékely)는 2021년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에 발표한 논문 「The chemical brain hypothesis for the origin of nervous systems」를 통해 ‘화학적 뇌 가설’이라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최초의 신경계는 ‘화학적 네트워크’였다?
우리의 뇌를 비롯한 모든 동물의 신경계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세포 간 정보를 전달한다. 첫 번째는 시냅스 전달(synaptic transmission)이다. 매우 근접한 두 뉴런 사이(시냅스)에서 시냅스 전 뉴런에서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 후 뉴런의 수용체에 직접 결합하여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두 사람이 귀에 대고 속삭이듯 정확하고 빠른 정보 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대부분의 복잡한 신경 회로는 이 시냅스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볼륨 전달(volume transmission)이다. 이 방식은 시냅스처럼 직접적인 접촉 없이, 확산성 화학 신호가 세포들 사이의 넓은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방식이다. 마치 확성기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듯, 특정 화학 물질이 분비되면 주변의 넓은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호르몬이 혈액을 타고 멀리 떨어진 표적 세포에 작용하는 방식이 볼륨 전달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뇌 속에서도 시냅스 전달뿐민 아니라 시냅스 연결이 없는 곳에서 신경조절물질이 확산되어 주변 뉴런에 영향을 미치는 볼륨 전달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젝켈리는 이 두 가지 정보 전달 방식 중 어떤 것이 신경계 진화의 ‘원형’에 가까울지를 고찰한 끝에 ‘화학적 뇌 가설’을 제안했다.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볼륨 전달이 시냅스 전달보다 선행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이 가설의 핵심이다. 달리 말하자면 신경계의 기원이 고도로 조직화된 시냅스 네트워크가 아니라, 확산성 화학 신호에 기반한 원시적인 ‘화학적 네트워크(chemical networks)’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동물에서 발견되는 시냅스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전, 동물의 조상들은 먼저 주변 환경의 화학적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반응하여 다양한 화학 물질을 분비하며 세포들 간에 소통하는 능력을 발달시켰다는 관점이다.
실제로 다양한 감각 수용체는 이미 단세포 생물 단계부터 존재했으며, 이들은 환경의 화학적 신호(먹이, 포식자, 짝)를 감지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습득한 환경 정보를 다른 세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기저동물에서 확인된다. 판형동물에서는 ‘펩타이드성 세포’가 전형적인 시냅스 없이도 펩타이드라는 신호 물질을 분비하여 세포 간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주변분비(paracrine)’ 방식, 즉 볼륨 전달의 원시적 형태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예시로 볼 수 있다. 해면동물의 뉴로이드 세포 역시 특정 화학 신호에 반응하여 깃세포의 박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지닌다는 점에서 유사한 원시적 화학 소통의 단면을 보여준다.
젝켈리는 이처럼 단세포 조상에서 이미 발달했던 ‘감각-분비’ 기능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면서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졌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포들이 군집을 이루면서 각 세포가 특정 화학 물질을 분비하고, 다른 세포가 이를 감지하여 반응하는 일종의 ‘화학적 대화’가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학적 대화가 점차 체계화되면서 ‘화학적 뇌(신경계)’의 초기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 ‘화학적 뇌 가설’이 펼쳐내는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뉴로펩타이드와 원시 신경망
화학적 뇌 가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뉴로펩타이드(neuropeptide)’이다. 뉴로펩타이드는 펩타이드 결합으로 연결된 아미노산으로 사슬로(단백질보다는 짧은 50개 미만의 사슬), 인간의 뇌를 포함하여 동물의 신경계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젝켈리는 뉴로펩타이드가 전형적인 시냅스 전달뿐만 시냅스 틈을 넘어 확산되어 넓은 영역의 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볼륨 전달에도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과, 신경계가 없는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에서도 뉴로펩타이드와 유사한 펩타이드 신호 물질의 유전자와 수용체가 발견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젝켈리는 이를 근거로 뉴로펩타이드가 초기 신경계 진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뉴로펩타이드가 단세포 단계에서 먹이 탐색, 포식자 회피, 군집 형성 등 다양한 생존 전략을 위해 사용되던 화학 신호 물질로부터 기원했으며, 외부 자극을 감지하고 세포 내 반응을 유도하는 신호 물질로 사용되었다가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면서 세포 간 정보 전달의 주요 매개체가 되었다고 추정했다.
‘화학적 뇌 가설’ 논문을 발표한 이듬해, 젝켈리는 이 가설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뉴로펩타이드의 기원에 대한 논문을 추가로 발표한다. 야네즈-게라(Yañez-Guerra) 등과 함께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에 발표한 「Premetazoan Origin of Neuropeptide Signaling」이라는 논문을 통해 뉴로펩타이드가 동물이 진화 하기 전, 이미 단세포 조상에서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광범위한 유전체 데이터베이스 검색 및 유전자 서열 분석을 통해, phoenixin(PNX)과 nesfatin이라는 두 가지 뉴로펩타이드 전구체(precursor)가 좌우대칭동물, 자포동물, 빗해파리, 해면동물 등 모든 동물계에 폭넓게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원생생물인 깃편모충(choanoflagellate)에서도 PNX와 nesfatin 전구체의 유사체를 발견했다. 특히 PNX의 경우에는 동물에서 뉴로펩타이드를 활성 형태로 자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절단 부위(cleavage site)까지 깃편모충에서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는 깃편모충과 같은 단세포 생물에서도 인간의 신경계처럼 뉴로펩타이드와 유사한 신호 물질을 만들고, 이를 가공하여 활성 형태로 분비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젝켈리는 이처럼 동물의 단세포 조상도 지니고 있던 뉴로펩타이드를 기반으로 화학적 신경계가 먼저 형성되었고, 이로부터 점진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시냅스 신경계로 진화했다는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초기에는 펩타이드 같은 확산성 신호 물질이 넓은 범위에서 느리고 광범위한 조절을 담당했지만, 특정 세포들 간의 빠르고 정확한 정보 전달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시냅스라는 특화된 연결 구조가 진화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예컨대 판형동물에서 펩타이드 분비는 발달했지만 시냅스 특성들은 상당 부분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화학적 신호 전달이 먼저 진화하고 이후 이를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시냅스 구성 요소들이 신경계가 발달한 계통에서 순차적으로 추가되었다는 시각이다.
해면동물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살펴볼 수 있다. 뉴로이드 세포는 뉴로펩타이드와 유사한 물질을 분비하며 세포들 간의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원시적 화학적 소통 시스템으로 간주한다면 해면동물이 신경계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신경계 진화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화학적 뇌’라고 재해석 할 수 있다. 신경계를 지니고 있는 기저동물인 빗해파리의 경우에도 뉴로펩타이드 중심의 신경 신호 전달 체계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 또한 신경계가 시냅스 기반의 네트워크보다는 볼륨 전달에 더 크게 의존하는 원시적 화학적 신경계의 잔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면동물, 판형동물, 빗해파리와 같은 기저동물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고대의 화학적 신경계는 한 계통에서 시냅스 기반의 신경계로 고도화되었다. 시냅스가 진화하면서 볼륨 전달의 '느슨한' 연결 대신 '단단한' 연결을 제공하여 정보의 집중과 효율적인 처리를 가능하게 했다. 즉, 화학적 네트워크가 일종의 원시적인 ‘총괄 관리 시스템’으로 기능하다가, 특정 정보 처리가 고도화될 필요가 있는 곳에 시냅스 연결이 ‘정밀 제어 장치’로 진화한 것이다. 바로 이 계통의 후손이 우리 인간과 초파리를 포함한 좌우대칭동물, 그리고 해파리와 말미잘이 속한 자포동물이다.
우리 인간이 지닌 매우 고도로 발달된 시냅스 기반의 신경계의 진화적 기원을 재구성하는 데에 있어 젝켈리의 화학적 뇌 가설은 역사적 큰 그림과 이를 끼워맞추는 중요한 퍼즐조각들을 제공한다. 신경계의 진화가 단순히 뉴런과 시냅스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포 간의 화학적 소통 방식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복잡해지고 특화되어 왔는가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단세포 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사용하던 화학적 신호 물질들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면서 세포들 간의 소통을 위한 언어로 '전용(co-option)'되었고, 이러한 화학적 대화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점차 시냅스라는 '직통 회선'이 발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뉴로펩타이드를 통한 볼륨 전달은 초기 신경계의 광범위한 조절을 담당했고, 이후에 아미노산 기반의 빠른 신경전달물질과 정교한 시냅스 구조가 추가되어 복잡하고 정밀한 정보 처리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젝켈리의 그림은 매우 그럴듯하게 보이며, 상당한 증거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참고문헌
Jékely, Gáspár. 2021. “The Chemical Brain Hypothesis for the Origin of Nervous System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Series B, Biological Sciences 376 (1821): 20190761.
Yañez-Guerra, Luis Alfonso, Daniel Thiel, and Gáspár Jékely. 2022. “Premetazoan Origin of Neuropeptide Signaling.”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39 (4). https://doi.org/10.1093/molbev/msac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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