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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사랑하는 법

2025년 6월 통권 237호

난생처음 들은 달 과학 강연을 잊지 못한다. 

당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홍승수 교수님께 우연히 생겼지만 지구에 필연이 된 달에 대한 열강을 들었다. 강연을 듣기 전에 내게 달은 그저 달일 뿐이었는데, 갑자기 특별한 사연을 지닌 주인공으로 내 마음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이제껏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지구에서의 안위만 생각해 왔는데, 우주 속 나란 존재에 처음으로 헤아려 보게 됐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강연을 들었더라면 천문학자를 꿈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천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엔 늦은, 이직을 준비 중인 직장인이었고, 이후 천문학을 연구하는 연구소 홍보팀에 입사 지원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우주를 연구하는 현장에서 10년 넘게 우주에 대한 경이로운 소식을 매일 듣고 읽고 말하고 쓰며, 소문내는 일을 하고 있다. 



반짝거리는 ‘사람’ 만나기 

실제로 나의 동료 중에는 어릴 적 과학 강연이나 책에 반해 천문학자가 된 경우가 제법 많다. 별 보기 좋아하며 뉴턴 잡지를 즐겨 보던 아이는 천문학자가 되었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을 좋아하던 아이는 우주과학자가 되었다. 

과학자와 일반인 사이에서 홍보하는 일을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순간은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하고 켜지는 순간을 알아챌 때다. 소위 우주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는 뜻의 신조어)’의 순간. 비단 우주 강연을 듣거나 소형 망원경 속 별을 보고 눈빛이 반짝이는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교원연수에서 최신 천문우주 소식을 배우며 눈을 반짝이는 선생님도 있고, 견학차 들렀다가 우리나라의 고천문 역사를 보고 들으며 감복하는 공무원도 있다. 블랙홀을 취재하다가 블랙홀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기사를 쓰는 기자도 있다. 

소식을 전하는 과학자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면에 치열하고 뜨거운 열정들이 바깥에 어떤 빛으로 흘러나와 전해지는 순간이 있다. 우주에 대한 약간의 이해와 소통으로 우주와 서로에 대해 호감과 연대가 짙어지는 그 순간들이 소중하다. 

우주를 사랑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는 이렇게 천문우주 과학자의 영감과 인사이트를 녹여낸 좋은 강연, 좋은 콘텐츠를 접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주 관련 연구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할 과학자들이 많이 앞장서야 한다. 한국천문연구원에는 과학문화 활동에 나서는 다양한 전공의 앰배서더들이 있고, 그들의 강연 주제와 저서도 다양하다. 내가 속한 팀에서는 관심 있는 연구자들을 위해 간간이 홍보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한다. 주로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연구 분야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소통법에 대한 교육이다. 다행히도 예전보다 연구자들이 과학문화 활동에 더 적극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연구자가 왜 홍보하러 다니냐?’는 눈치 대신 대중 소통 활동도 연구의 일부이고 의무라는 마인드가 생긴 편이다. 매력 있는 천문우주 과학계 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주를 좋아하는 팬과 우주를 소문내는 플레이어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미래 천문학자가 과학문화 행사장에 두고 간 메모



반짝거리는 ‘공간’ 만나기

우주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보다 우주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별을 모르고 사는 것은 지구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절반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밤하늘에는 매일 크고 작은 천문현상들이 펼쳐진다. 한국천문연구원은 매년 주목할 만한 천문현상을 발표한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천문력과 천문우주지식정보포털 등에는 매일 달의 위상이나 해와 달 출몰 시각, 각종 천문현상이 잘 정리되어 있다. 스텔라리움이나 별자리표 같은 상용 앱을 통해 그날 밤하늘의 천체들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작정하고 본 첫 천문현상은 한여름 밤 페르세우스 유성우였다. 유성우는 지구가 혜성이나 소행성 등이 지나간 우주공간을 통과할 때 부스러기들이 지구 대기권에 빨려 들어오며 마찰 때문에 빛나는 현상이다. 시간당 수백 개 관측 가능하다고 발표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수치일 뿐 실제 도심에서는 이름처럼, 즉 별똥별비처럼 많이 보기 힘들다. 도대체 일반 도심에서는 유성우 시즌에 몇 개의 별똥별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해 어두운 옥상에 올라가 돗자리에 누워서 봤다. 1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첫 별똥별을 마주쳤을 때, “봤다”라고 외치기 위해 입을 떼기도 전에 별똥별이 사라졌다. 정말 찰나였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이 믿어졌다. 왜냐하면 그 짧은 순간에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의 소원이라면 너무나 간절하다는 의미이기에, 이룰 수밖에 없는 종류의 소원이라는 생각에서다. 첫 유성우 관측 이후 나는 도심 외곽에 점점 더 어두운 곳을 찾아가 유성우를 보기 시작했다. 내 발등도 잘 보이지 않고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곳이지만,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 별 무리가 나타났다. 자정이 넘으면 밤하늘에 나사가 풀리듯 별똥별이 떨어졌다. 역시나 소원은 빌지 못했지만, 우주를 만끽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이후 우리나라 곳곳을 찾아다니며 은하수와 혜성도 보며, 해외에 오로라, 개기일식 등도 찾아가게 됐다. 천문현상을 본다고 해서 업무나 경력에 직접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호화로운 빛들이 내면 어딘가에 스며들어 스스로를 밝혀주고 있다고 믿는다.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 한국천문연구원 천체사진공모전 수상작 ⓒ윤은준


별 보기 좋은 곳을 추천해 달라는 이들에게 나는 지역천문대를 우선 추천한다. 한국천문우주과학관협회 자료에 따르면 별을 볼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천문대는 전국에 70여 곳이 넘는다. 우리나라 현대 천문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와 보현산천문대처럼 연구 중심인 공간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찾아가 관측하고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천문대나 시설이 지역별로 있다. 

별이 보고 싶다면 날씨와 천문대 정보를 확인한 뒤 겉옷을 챙겨 천문대로 향해보길 바란다. 날씨 행운이 따라 도심에서 못 본 또렷한 우주의 조각과 마주치면 감동이다. 물론 보지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그 핑계로 다음에 또 천문대를 찾으면 된다. 별은 당신을 기다려줄 테니까. 



연결해서 ‘모두의 밤하늘’ 더 빛나게 하기 

천문학자들의 공신력 있는 국제단체, 국제천문연맹(이하 IAU) 100주년의 슬로건은 ‘모두의 밤하늘’이었다. 현대 천문학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협력이다.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므로 지구의 밤하늘을 제대로 관측하기 위해서는 지구 곳곳에 위치한 관측시설과 천문학자의 조직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집단지성뿐만 아니라 예산도 모아 거대 관측시설을 만들고 활용한다. 이 같은 학문의 특성과 필요성으로 만들어진 IAU는 연구뿐만 아니라 무수해진 인공위성으로부터 밤하늘을 어둡고 조용하게 보호하기, 천문학이 더 멀리 퍼지고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만들기, 개발도상국의 천문학 장려하기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천문연맹 산하 과학문화 조직인 IAU OAO(Office for Astronomy Outreach)나 교육조직 OAE(Office of Astronomy for Education) 학회에 가면 다양한 나라의 과학문화 활동가나 교육자들이 모여 ‘모두의 밤하늘’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모두의 밤하늘을 주제로 모인 국제천문연맹(IAU) 총회 모습 ⓒIAU/M. Zamani


IAU OAO에서 주최해 우리도 함께 참여한 캠페인 중 하나는 외계행성에 나라별 고유 언어 이름을 짓는 것이다. 이 외계행성 이름짓기 공모전으로 ‘백두-한라’, ‘마루-아라’라는 한글 이름의 별과 외계행성이 생겼다. 또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 함께 천문학을 배울 수 있는 ‘보편적 학습 설계’ 개념의 교구나 교육 방법들을 고안하고, 실제 우리 천문 교육 현장에서 활용하기도 한다.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 특히 문화예술 분야와의 융합 활동도 그 가치와 파급력이 크다고 생각해 기관 차원에서나 많은 천문학자 구성원들이 기회가 됐을 때 참여하는 편이다. 영화나 드라마, 전시 등 문화예술계 분야와 협업하다 보면, 우주에 관심을 두는 게 감사한데 우주가 피상적인 소재로만 쓰여 다소 아쉬울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협업과 소통으로 깨닫게 된 태도는 과학이나 예술을 어떤 활용 대상이나 결과로만 보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융합이란 작용은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 흡수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서로 이해하고 공부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협력은 할 수 있어도 완전한 융합이란 없을 수도 있다. 같이 차곡차곡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의미를 두자는 생각이 든다. 

그 가치를 잘 이어 나가는 프로그램이 소백산천문대에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와 진행하는 ‘과학과 문화예술 소통 워크숍’일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소통의 자리를 만들며, 보이지 않는 문화와 보이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홍보를 해오면서 들은 좋아하는 말은 “우주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 말을 한 기자에게 나는 “기자님도 알면 알수록 좋아하게 될걸요”라고 답했고, 그 기자는 정말 우주를 좋아하며 기사를 쓰고 있다.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모두가 천문학자가 되지 않아도 좋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주를 사랑하고, 인류를 대신해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가져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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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임
한국천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