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에겐 크게 세 가지의 욕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성욕, 식욕, 그리고 수면욕. 모두 지극히 인간의 동물적인 욕구를 보여준다. 하지만 요즘 세상의 풍경을 보면, 우리에겐 또 다른 네 번째 욕구가 숨어있었던 듯하다. 스스로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또 세상의 관심과 주목을 갈망하는 욕구다. SNS에는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앞다투어 자랑하는 게시글이 쏟아진다. 댓글 뒤에 숨어 밤새 싸우는 익명의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얼마나 잘나고 특별한 존재인지를 내세운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고 더 이상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지 않게 되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어쩌면 원래부터 인간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품고 살아왔지만, 사회적 억압이 그 욕구가 새어나오지 않게 억누르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러한 욕구를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할지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단순히 인정 욕구라고 하기에는 그 의미가 온전히 담기지 않는 느낌이 든다. 특별 욕구? 관심 욕구? 뭐라고 불러야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 이러한 욕구를 품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러한 욕구는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는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지나친 자기애는 왜곡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외톨이를 만들어버릴 수 있다.
온라인 공간에는 온갖 음모론이 쏟아져나온다.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는 주장, 아폴로 우주인이 사실 달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주장, 심지어 우주가 존재하지 않으며 도마뱀 인간들이 우리를 현혹시키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이런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가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음모론에서 더욱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만으로는 더 이상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음모론이 거짓되고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아니 심지어 바보 같이 거짓된 이야기에 속아버린 볼품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사실 음모론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빅브라더가 지구를 정복하는 것도, 지구인들이 도마뱀 인간의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진실 앞에 스스로 믿고 기대했던 ‘너무나 특별한 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과연 음모론자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너무나 객관적이고 명확한 설명을 접하게 되었을 때, 과연 그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던 음모론을 가볍게 벗어던질 수 있을까? 높은 확률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스스로를 세상의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었던 음모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거나, 자신의 세계관을 무너뜨렸던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려고 들 것이다. 특히 자신이 믿었던 특별한 존재의 정체가 더욱 형편없는 뜻밖의 정체라면 그때 느끼는 절망감은 더 극에 달할 것이다.
곽재식 작가의 단편집 <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에 실린 동명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우주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음모론자의 모습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로 보여준다. 초반에는 그저 평범한 UFO 음모론자의 서사처럼 시작하지만, 갑자기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살인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결국 최후에 정말 예상치 못한 하찮은 반전과 함께, 음모론의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모습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나는 곽재식 작가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억지로 멋을 부리지 않고,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계속 사소한 반전을 던진다. 하지만 그런 반전이 전혀 불쾌하고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당혹스러움이 ‘아!’ 하는 깨달음으로 남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곽재식 작가는 정말 재치있는 만담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그의 신작 <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는 바로 그러한 곽재식 작가의 매력을 지극히 한국적이고 현실적인 맛으로 맛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작품에 담긴 뜻밖의 반전을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는게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대체 어쩌다 UFO하면 절대 떠오를 일이 없을 것만 같은 해장국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붙게 된건지, 어쩌다 이런 기묘한 제목이 탄생한 것인지 꼭 직접 읽고 확인해보길 바란다. 곽재식 특유의 ‘생활 밀착형’ SF적 감각이 두드러지는 작명 센스다. 감히 고백하건데 넷플릭스 SF 옴니버스 단편 시리즈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그의 유머 감각은 그동안 흔하게 접해왔던 SF 작품과는 사뭇 다른 맛을 만들어낸다. 이젠 국내에도 훌륭한 SF 작가들이 속속 등장한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세계와 상상력의 스펙트럼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작품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다. 유독 SF 장르에서는 한국적인 정서와 세계관이 부자연스럽게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미래 사회나 가상의 기술, 외계 문명 등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다보니, 생경한 알파벳 조합과 외래어로 가득한 용어를 남발한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축은 어느샌가 우리의 삶과 매우 동떨어진, 공감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여기에 억지로 한국적인 정서를 덧입히려고 하다보니, 마치 초콜릿 라면처럼 조화롭지 못한 기괴한 맛이 남게 된다. 그로 인해 이야기 전체가 유치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곽재식 작가의 <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는 그런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한국적인 키워드 몇 개를 끼워넣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애초에 이야기의 세계관과 배경 자체가 우리의 삶 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공간도 모두 낯설지 않다. 우리가 고개만 돌리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오히려 너무나 익숙한 풍경 속,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에서 그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그 위에 스며든 SF적 상상력은 우리의 일상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기이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다른 많은 국내 SF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될거라 생각했던 오늘이 더 이상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극히 평범한 순간 속에서 비행접시를 기다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에서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의 여운이다.
문득 곽재식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20세기 초반 천문학 역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쟁이 끝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20세기 초 천문학자들은 밤하늘 곳 곳에서 발견되는 소용돌이치는 모습의 천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그것이 아주 거대한 우리은하의 일부일 뿐이라며 우주는 우리은하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천문학자들은 어쩌면 그 천체들이 우리은하를 완전히 벗어난 별개의 우주라며 우주가 생각보다 더 거대할 것이라 주장했다. 결국 이 논쟁은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등장하면서 끝날 수 있었다. 허블은 오랫동안 성운 중 하나로 불렸던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데 성공했고, 그 거리가 당시 알려져있던 우리은하의 울타리를 한참 벗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은하가 우주의 전부일 것이라 굳게 믿었던 천문학자 중에는 할로우 섀플리가 있었다. 허블은 자신의 관측 결과를 담은 편지를 섀플리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섀플리의 반응은 어땠을까? 흔한 음모론자들이 보여주듯 허블을 증오하고, 원망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섀플리의 한마디만큼 스스로가 틀렸음을 이렇게 멋지게 인정할 수 있을까 싶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편지가 나의 우주를 파괴했다.” 섀플리는 비록 오랫동안 자신이 살던 우주가 파괴되는 경험을 해야했지만, 덕분에 더 넓은 우주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패배를 호쾌하게 인정했던 섀플리의 한 마디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진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포기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덕을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음모론자와 과학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모습이지 않을까? 어쩌면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바로 ‘고집을 포기할 줄 아는 태도’일 것이다.
<해장국으로 날아가는 비행접시>를 통해 나는 세상을 미워하는 음모론자들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의 우주가 파괴되더라도 세상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억지로 당신의 우주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슬픈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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