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이었다. 요툰 성계 내 우주 거주구 호텔에서 여러날 숙박하던 이들이 있었는데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도 나오지 않았다. 벨보이 말에 따르면 첫날 두 사람은 연인처럼 보였고 무중력 수영장에 대한 기대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컨시어지는 전날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을 했지만 곧 한 사람이 사과하고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하우스키퍼가 우선 청소를 위해 현장에 들어섰는데 사망한 여성의 시체만 발견되었다. 다른 여성 한명은 보이지 않았다. 현지 수사관의 수사 결과 다른 한 명은 테오 이삭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였다. 하지만 테오 이삭은 이미 나흘 전 거주구 우주항을 통해 빠져나간 뒤 관문까지 통과해 트리슐라로 귀국한 것이 밝혀졌다.
누구나 겪어본 적 없는 과거를 그리워한다. 호텔은 노스텔지어 스타일로 내부에는 기록 장치가 없었다. 때문에 모든 수사는 현장 수사 밖에 방법이 없었다. 주변 탐문의 결과 호텔에서의 다툼이 번져 살인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강했다. 호텔은 보안이 철저해 테오 이외에 용의자로 볼 사람은 달리 없었다. 현지 수사관은 이미르의 성간수사본부로 협조 요청을 했고, 성간수사본부는 수사관에 나를 배당하고 식민지 트리슐라에 공조 협력을 명령했다.
다른 항성계나 우주 거주구라면 간단히 해결될 사항이다. 해당 계에 공조수사를 요청하자마자 통계에서 뽑아낸 자료들을 나열하고 용의자의 이동 동선을 파악하고 용의자가 있는 위치로 수사관을 보내서 붙잡는다. 붙잡는 과정에서 다소의 저항이 있고 물리력 행사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문제는 없다. 만약 어려운 사건이라면 현장 체포에 도가 튼 유명자 수사관이 언제든 대기하고 있을테니까. 하지만 트리슐라는 우주항의 출입국 절차부터 문제가 있었다.
범인의 이름인 테오는 가명이었다. 가명으로 계를 넘나든 것이다. 이는 스바르가라는 문화적 배경 때문이었다. 트리슐라야말로 거대한 노스텔지어 그 자체였다.
트리슐라의 모행성 스바르가에선 과학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건 그 자체로 죄였다. 그 필수 불가결함으로 인해 심판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그 고도화된 정도에 따라 업의 깊이가 정해졌다. 바퀴를 만들고 신발을 제작하는 것은 장인으로서 어느 정도 대우를 받았지만, 별을 관측하고 연료를 추출 및 가공하고, 다른 별로 가는 로켓을 만드는 과학자와 공학자는 하위 계층에 소속되어 차별받았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하고 그들은 자신의 가문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므로 학문을 익히고 최악의 경우 우주에서 평생을 살아야했다. 중력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자란 이들은 폐쇄된 우주 거주구에서 무중력이 주는 고통과 근무력증, 우주 방사능, 진공과 어둠에 시달려야 했다.
스바르가의 문명 발전 단계에선 분명 어떤 하층민들이 혁명을 주도하기도 했다. 최고 계층인 승려라면 사용 방법은커녕 그것이 무기인지도 인지하지 못할 무기를 만들 수 있었고, 실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만으로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 다른 항성계의 기술 우위를 통한 사회 발전과 그 최후를 신화로 익힌 이들의 사회에선 그런 종류의 혁명은 지지받을 수 없었다. 국소적인 혁명과 반복되는 실패는 계층을 보다 공고하게 다졌다. 트리슐라가 탈출하는 시점에선 몇 세기 이상 항성계 전체에서 혁명이 일어난 사례가 없을 정도였다.
이삭도 이러한 종교적 관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을 유명자로 만들어 끝없이 이삭으로서 재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벗어날 가능성 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삭은 맨손으로 직접 노동을 해왔던 중간 계층이었으나, 아주 제한적으로만 자신에게 기술적 문제를 처리하도록 했다. 그것은 대개 제비뽑기로 정해졌고, 그 일을 맡는 이삭만이 아니라 다른 이삭들에게조차 고통스런 일이었다. 이삭에게 첨단 과학은 더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트리슐라가 궤도에 안착하고, 이후 요툰 성계를 비롯한 다른 성계들과 교류하게 된 이후 그 더러운 일을 모두 외계인에게 일임했다. 물론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한 계의 독립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기능해야할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출입국 관리소의 운영이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눈으로 직접 여권을 확인하고 서류도 수기로 작성해서 처리했다. 때문에 휴먼 에러가 언제든 발생했고, 이따금 가짜 여권을 통한 출입도 허용되었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용의자의 동선을 놓쳤다는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트리슐라는 종이를 생산해 수출하고 도장을 찍고 천공 카드를 쓰는 우주 거주구다. 즉, 체내 바이오칩을 통한 전자인명부가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이삭들끼리 서로를 잘 구분하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요툰과는 사회적인 구조 자체가 달랐다.
내가 트리슐라의 수사관 니아에게 설명했다.
"이삭은 지문도 유전 정보도 모두 같습니다. 물론 복제된 시기나 태어난 시기에 따라 나이의 차이는 있고 어떤 사람은 호르몬이 좀 다를 수 있겠죠. 그럼에도 범죄자는 어떻게 잡습니까? 범죄자가 여러분 사이에 숨으면요?"
"어렵죠. 불리한 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닙니다. 요툰 성계 등에서 지문도 유전 정보도 그 사람의 모습도 모를 때와 비슷하게 수사하고 결과적으로 검거율도 비슷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수사관 니아가 설명했다.
"조금씩 개성이 있습니다. 저는 머리를 기르는데, 이건 트리슐라 이삭의 80%를 차지합니다. 여기서 염색을 하지 않아 긴 머리 이삭의 60%를 차지합니다. 또 기본적인 유전자 임의값이 더해져 있죠. 기본적으로 숱이 많고 약간 곱슬한 머리입니다. 그럼 또 그 중 20%에 포함 됩니다. 머리카락만으로 10% 가량에 포함된다는 걸 알 수 있죠. 사실 모든 이삭은 서로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굳이 흉내내려고 하지 않는다면요."
"범인은 흉내내려고 할 겁니다. 가능한 평범한 이삭이 되려고 하겠죠."
"이제 그 부분에서 겉보기보다 더 깊게 들어가야 합니다. 타인이라면 그 속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저는 모두 한 사람이죠.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그런 순간 조차도 그 이삭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니까. 범죄를 저지르면 부각되기 시작하겠죠. 저는 범죄를 저지르면 당황하고 말을 더듬고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조금은 흥분합니다. 하지만 좋은 감정은 아니죠.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감정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가 그걸 알죠.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배우니까요."
내가 질문했다.
"그럼 이런 문제는 어떻습니까? 만약 외부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온 이삭을 모든 이삭이 보호해주려고 한다. 트리슐라 외부에서 이렇게 비춰질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외부 세계와 접촉을 이어나가면 이런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할텐데요."
여기까지 오자 니아가 순순히 인정했다.
"…맞습니다. 트리슐라 행정부도 그런 사안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자인명부를 도입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삭 전체를 설득하는 건 꽤 어렵습니다. 종교적 문제거든요.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스바르가 이주민 다수는 고향 성계의 전쟁을 피해서 온 이들이었습니다. 스바르가 초기 정착지를 형성한 분류는 외부의 침입자를 두려워했고, 스바르가의 기술 발전이 외부 세계의 접촉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기술이 아닌 이상 가능한 제한하려고 했고, 마땅하지 않은 경우 그러한 작업에 해야하는 이들의 계층을 낮게 취급하고 종교적 교리로 남겼습니다. 이삭은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자신의 계급적 한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습관적인 문제죠.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니아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이삭은 단순히 유전적으로 같은 수준이 아니라 어느 시점까지의 과거는 모두 똑같은 기억을 유지하는 그냥 같은 사람이었다. 가지고 있는 편견도 믿음도 모두 같다. 트리슐라를 안정적으로 항성 궤도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은 필요했을 뿐, 필요하지 않은 기술적 작업은 가능한 손을 뗀다. 이는 사실 이삭의 한계라기보다 스바르가 사람의 한계다.
그래도 트리슐라는 요툰 성계의 조사 공조 요청에 빠르게 반응했다. 살인 이후 관문으로 이동해온 의심되는 시간의 트리슐라 입국자 전원 중, 트리슐라 내의 알리바이가 없는 인원을 추린 것이다. 모두 세 명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순수하게 조사관인 나의 일이었다. 용의자들을 심문하면서 증언에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모순을 파고들어 그것이 단순한 말실수인지 아니면 용의자의 변명인지 알아본다. 그렇게해서 용의자라는 것이 확인되면 인도받아 요툰으로 데려가면 된다.
나는 로브를 입은 일군의 수도승 이삭 무리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중 한 명의 이삭은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트리슐라에서는 이삭만을 보았으니 우주항의 얼마 없는 외국인이나 면세점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것이다.
니아가 말했다.
"그럼 저도 질문 하나 드리죠. 수사관님은 어떻게 테오 이삭을 찾아내실 생각이신가요? 지문과 DNA가 완전히 똑같다는 건 이야기할 필요도 없죠. 체형이 다른 이삭도 많지만 절반 이상의 이삭이 표준 체형 이삭입니다. 많은 이삭이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몸무게와 체질량지수가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영상 자료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구분할 수 없을 테고요. 증거와 범죄 현장에 대한 영상 정보를 보여주면서 신문하나요?"
"그거군요?"
"네?"
"이삭에 대해서라면 이삭이 더 잘 안다? 외부 수사관인 제가 범인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거죠."
니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는, 네. 무례하게 들렸으면 죄송합니다."
"아뇨. 이해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건 일종의 오만이죠. 그렇지 않나요?"
자기 자신을 남보다 더 잘 안다는 건 오만일 수 있지만, 타인이 자신을 잘 안다고 자신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다. 니아는 논박에 나서기 전에 내가 농담을 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해보려는 것 같았다.
나는 니아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지금이라면 말하기 적절한 때인듯 했다.
"좋습니다. 저도 비밀 하나를 말씀드리죠.“
”뭔가요?“
”저는 이삭학자입니다."
유명자학은 결국 개별 유명자들을 다루는 세부 전공으로 나뉘게 된다. 이삭학은 트리슐라의 유명자 이삭의 미시사를 다루고 이삭의 심리적 문제를 파고들고, 이삭의 행동원리를 파고드는 학문이다. 많은 유명자들이 학문의 대상이 되고, 응용학문으로서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유명자인 류진은 전쟁 지휘관으로 메타 전략과 용병술의 귀재다. 류진의 전략을 연구해 유명자 류진이 적진에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최선인지 따져볼 수 있다. 이삭은 그 자체론 대단한 유명자라고 할 수 없지만, 유명자 중 특별히 숫자가 많고 고유한 계를 이룩했기 때문에 연구자의 숫자도 많은 편이었다.
"그게 자신감이었군요. 이삭학자이므로 저 자신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뇨. 그보다는 그 이삭학을 바탕으로 어떻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가 궁금한데요."
"음, 설명해보죠."
내가 말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이삭학에서의 살인입니다. 이삭은 다른 도구가 있더라도 그럴 여유가 있을 때는 맨손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그건, 글쎄요. 그랬나요?“
내 눈 앞의 니아 이삭은 이미 트리슐라 내부에서 수 많은 살인을 저질러본 인물이거나 그 인물의 복제체였다. 하지만 모든 복제체의 경험이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이삭들은 식자재 출력기에서 같은 사람이 아닌 수 많은 종류의 이삭들을 스캔했다. 이삭의 청사진은 서로 다른 버전으로 4천 개가 넘는다. 이삭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이삭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자신이 어떤 살인 습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은 내가 잘못 짚은 것이었다.
”살인 범죄에 대해서도 수사를 해보셨을텐데요.“
”아, 제 말은. 그렇군요. 저는 아직 이삭이 아닌 사람의 범죄 수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트리슐라에서 외계인의 강력 범죄율은 높지 않거든요. 그래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삭을 간단히 프로파일링했다.
”그렇군요. 액살(縊殺)은 일반적으로 남성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에서 여성인 이삭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살인 형식이라는 건 특이한 부분입니다. 아마도 이삭이 본래 노동 계층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또한 이런 살인은 자신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했을 때 일어납니다.“
”이삭이 감정적 통제가 약하다는 걸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충동적으로 손을 뻗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사람을 목을 졸라 죽이기 위해서는 3분에서 5분까지 그 손아귀를 쥐고 있어야 합니다. 생리학적으로 2분이면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분비가 감소하기 시작하죠. 이성적인 판단 아래에서 일을 끝마치는 겁니다. 이삭의 살인 범죄에서의 특징이라면, 감정적 통제가 약하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을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든다는 것이겠죠.“
니아는 자신이 겪어본 사건들을 떠올리는 듯 했으나, 내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삭 그 자신과 타인이 아니더라도, 트리슐라 내부에서 보는 이삭과 트리슐라 외부에서 보는 이삭에 대한 평가도 다를 수 있었다.
"실제 사례를 들어볼까요. 이삭들은 자기 자신이 어떤 버전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니아 씨가 해당되는지는 모르겠군요. 한 번 들어보시죠."
내가 설명했다.
"오래전에, 이삭과 이삭의 연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은 좋지 않았어요. 둘 다 배를 굶고 다니는 일이 흔했죠. 그러던 중에 이삭의 연인이 이 환경을 벗어날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혼자서만요. 이 나쁜 환경을 벗어날 기회였죠. 이삭은 연인을 응원하며 자신을 두고 떠나라고 했지만, 연인은 그러지 않기로 합니다. 이삭을 두고 가느니 이삭과 함께 가기로 한 거죠. 그런데 이삭은 연인이 가진 기회가 자꾸만 생각이 난 겁니다. 그래서 연인에게서 그 기회를 뺏으려고 들었고, 연인은 놀라 그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이삭은 자신의 연인을 목 졸라 죽이곤 도망칩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아시겠나요?"
니아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뇨. 단지 이렇게 말할 수는 있죠. 나쁜 이삭도 있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삭의 범죄율은 일반적으로 더 낮습니다. 트리슐라는 경범죄도 중범죄도 거의 일어나지 않죠. 우주 어디에도 이만큼 치안이 좋은 곳은 없을 걸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중요한 건 이번 사건과 제가 말씀드린 사건이 관련이 있다는 거죠."
"어떤 부분에서 그렇죠?"
"저는 이번 사건의 범인을 키메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범인은 맨손이 아닌 밧줄로 목을 졸랐거든요. 범인이 이삭이 아니라는 겁니다."
식자재 출력기를 비롯한 출력기는 생물을 적층식으로 쌓아올릴 수 있다. 그러니까 설계상 들어맞기만 한다면 외부와 내부를 일치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외피는 토마토지만, 내부는 고기를 넣는다던가 하는 식이다. 실제로 식자재 출력기를 통한 레시피를 살피면 이런 융합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방법도 많다. 키메라는 이것을 사람에 적용한 것을 말한다.
"이삭의 외피를 뒤집어 쓴 다른 누군가라는 건가요?"
"네. 정확히는 이삭의 외피를 뒤집어 쓴 데몬이라는 거죠."
데몬이 자신의 뇌를 출력할 때 자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다른 신뢰할만한 유명자의 신체를 이용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이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요툰 성계에서는 이 사건을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닌, 상당히 중대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조 수사까지 넘어온 겁니다."
"…그렇군요. 진짜 이삭이 범죄자라면 트리슐라의 공조 수사관, 그러니까 저에게 기대를 걸고 리오 씨는 이삭학자로서 키메라를 찾는다는 거군요."
니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 만약 키메라가 트리슐라에 숨어들었고, 어떻게든 자신을 올려넣는다면 데몬은 별다른 의심 없이 자신을 불려나갈 수 있겠군요. 트리슐라는 재생산권의 절반을 편집기로 자신을 복제하는데 쓰고, 형평성을 위해 임의의 청사진을 고르니까요. 결과적으로 데몬의 숫자가 늘어나겠죠."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청사진을 올려넣기 위해선 남들에게 인정받을만한 위업을 달성해야 하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트리슐라에선 그 기준이 낮습니다. 이삭 한 사람만해도 수 천 개나 되는 청사진이 있으니까요. 다만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삭이 이제는 그런 청사진을 올리는데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죠. 반면 데몬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 데몬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트리슐라 전체가 데몬으로 가득 찰지도 모르겠군요."
"맞습니다."
혹시나의 가능성을 위해 용의선상에 오른 모든 사람을 추적 관찰해 청사진을 올리기 전에 철저하게 검토하면 되겠지만, 트리슐라에는 전자인명부가 없다.
니아가 질문했다.
"그럼 그 데몬을 찾는 건 오히려 쉬운 일 아닌가요? 이삭 사이에서 이삭이 아닌 사람은 눈에 띄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키메라의 경우 기억까지 내려받는 경우가 많고, 데몬은 그러한 연기와 변조 능력 때문에 여러 항성계에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겁니다. 많은 경우에 데몬은 이삭보다 더 이삭 같을 수도 있습니다. 이삭은 각자 개성이 있으니까요."
"그럼…"
니아가 하나씩 짚었다.
"얼굴도, 지문과 유전자도, 체형도, 기억까지 모두 같고 똑같이 연기까지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구분해내죠?"
"이렇게 하면 되겠죠."
"어떻게요?"
나와 니아의 얼굴이 마주했다.
나는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당신은 이삭이 아니군요. 누구죠?"
세 번째 용의자인 일라이자 이삭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요툰에서 온 공조 수사관 리오입니다."
"요툰이라.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어쨌건 외부인이고, 이삭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세세한 디테일은 다르지만, 모두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것만으로는 키메라를 찾을 수 없다.
내가 운을 띄웠다.
"저는 이삭 씨와 사귄 적 있습니다."
의표를 찔렀는지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도 되나요? 그러니까… 수사를 할 때 이해충돌과 같은 원칙이 있을텐데요. 이곳 트리슐라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네. 요툰에선 아니겠죠."
"네. 하지만 일단 철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각각의 이삭은 서로 다른 사람 아닙니까? 아무리 수 많은 복제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복제자는 사실 단독자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하나의 연속성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죠. 저는 살인 용의자인 전 연인을 붙잡으러 온 것도 아니고, 그걸 핑계로 제 전 연인들이 도시를 이루고 살고 있는 인공 거주구에 온 것도 아닙니다. 그냥 수사관이죠."
일라이자가 말했다.
"그게 자신감이었군요. 저랑 사귀어 본적이 있다. 그래서 저 자신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웃었다.
"좋습니다. 비밀을 조금 더 말해보죠. 저는 이삭학 전공자이기도 합니다."
일라이자가 말했다.
"재밌네요. 이삭학을 전공한 건 이삭과 사귀기 전인가요, 사귀는 때인가요, 아니면 사귄 후인가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보십니까?"
"셋 다 아니었으면 하는데요. 이삭학을 전공하기 전이라면 마치 이삭학을 시험해보기 위해 이삭에게 접근한 것 같겠죠. 실험쥐 취급하듯이. 사귀는 때에 이삭학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그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스토커 같고요. 후라면… 헤어진 뒤에 전애인을 잊지 못하는 처량한 사람이 되네요."
"그럼 후가 나아 보이는군요. 후입니다."
일라이자가 웃었다. 오래전에 본적 있는 미소였다.
취조는 꽤 가벼운 분위기에서 행해졌다. 하지만 일반적인 취조의 내용, 알리바이를 증명하려고 들거나, 범행 현장의 정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범행현장과 살해 당한 인물을 드러내는 건 큰 효용이 없었다. 진짜 범인인 이삭이라면 좀더 차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툰에서는 잠정적으로 키메라인 데몬이라고 보고 있었다.
일라이자가 말했다.
"…그러니 범인이 꼭 이 중에 있지 않을지도 모르죠. 말씀하신 상황은 자살로도 가능해보이니까요."
역시나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이삭이 흔히 보이는 사고 패턴으로 흘러갔고, 비슷한 대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일라이자 씨는 궁금해하지 않는군요."
"무엇을 말이죠?"
"제가 이삭들과 연인이었다면, 당신에 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글쎄요. 이삭은 20만명 있어요. 청사진을 기준으로 해도 수 천 명이고요.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한 당신처럼 가면을 쓴 연인은 둔 적이 없는데요."
"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나는 가면을 벗었다.
일라이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해서 나올 수 있는 반응 속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데몬이라면 불가능할 것은 없었다. 뇌 안에 생물성인지가속기를 달아두는 건 흔한 사이보그 개조다. 반응 속도가 빠르다, 늦다만으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 없다.
"어떻게… 하루 네가…?"
하루, 서하루는 스바르가에서 살았던 이삭의 연인이었다. 현재를 기준으로 17세기 이전의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일라이자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일라이자가 궁금해할 사실에 대해 알려주었다.
"다시 인사 드려야겠군요, 일라이자 씨. 알고 있겠지만, 스바르가 발굴은 이 시점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파헤쳐지는 건 먼 미래에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급하게 개발해낸 동면장치에 들어간 사람들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불가능해."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설명했다.
"멸망 직전의 스바르가 성계는 다음 기술 특이점에 가까워지며, 수 많은 과학 기술이 발명되던 시기였습니다. 상대론적 요격체며 식자재 출력기 같은 것처럼 동면장치의 기초적인 시제품도 나타나고 있었죠. 저는 당신이 떠난 뒤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위해 마지막 보루로 동면장치 안으로 들어갔죠. 요툰 성계에 구조 요청이 닿은 건 다행이었습니다."
일라이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내가 너의 승선권을 빼앗았어."
그것이 이삭의 원죄였다. 이삭이 원래 배정 받았던 요리사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은 원래 그것이 하루의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이삭은 성계에 남아있기보다 세대선을 타고 떠나는 것이 살 확률이 더 높다고 봤다. 그리고 이삭은 연인을 죽여서라도 살고 싶었다. 심지어 연인의 것을 빼앗더라도.
트리슐라를 파괴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이들도 이러한 이삭의 죄를 지적했다. 이삭은 트리슐라 내부에서의 범죄가 아니더라도, 애초에 살인자였다. 그런 범죄자들만으로 이루어지는 세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요툰 성계에서는 트리슐라의 이삭을 처벌할 권한이 없었고, 기존의 윤리 또는 도덕적인 요소는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의 존망을 결정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트리슐라는 봉쇄된 상태에서 유예가 주어졌고, 시간이 지나 트리슐라가 안전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개방되었다. 세계 단위의 범법자가 무죄 방면 되었다. 트리슐라의 범죄율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사고였죠. 당신의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봐요. 결국 난 죽지 않았잖아요?"
일라이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네가 살아있었다니. 매일 네 꿈을 꿨어. 내 실수가 무서워 널 떠나지 못했지."
그러면서 내 얼굴을 만지더니, 끌어안았다.
"하루. 정말 보고 싶었어. 미안해. 미안해."
일라이자의 품은 따뜻했고,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 몸이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느낌이라는 것은 이해 밖에서 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즐겼다. 동시에 나는 일라이자의 품에 안겨서 생각했다.
'이 녀석이 데몬이군.'
취조를 마친 뒤 니아가 날 반겼다.
"조사가 잘 끝나서 다행이군요. 저 키메라는 어떻게 처리되죠?"
"요툰 성계와 트리슐라에서 합의를 끝냈습니다. 키메라는 범죄 용의자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범죄자죠. 이곳에서 사형될 겁니다. 처음부터 산 채로 데려간다는 조건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니아가 내 맨 얼굴을 보았다.
"그나저나 정말로 진짜 같군요."
니아가 처음 내 얼굴을 보았을 때, 니아는 일라이자와 같은 반응은 전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는듯 하다가 천천히 깨달았고 그 다음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기 직전에는 조금 경멸하는 태도까지 있었다.
그리고 니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널 죽였어. 몇 번이고 확인했어. 네가 살아 있어서 혹시나 승선권의 소유를 주장하면 안 되니까. 넌 누구지?'
내 얼굴은 분명 진짜였다. 정말로 이삭의 연인인 하루였다. 스바르가 성계의 발굴단 중 이삭학자 일부가 이삭의 연인이었던 하루를 발견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동면장치가 아니라 호텔의 욕조에서였다. 산소 공급이 멈추며 대기가 진공 상태가 되었지만 우주 거주구 전체는 방사능 차폐 역할을 제대로 했다. 수 세기가 지나도 제대로 시체가 남아있었다. 발굴단은 하루의 유전체를 긁어 요툰의 기술로 얼굴을 복원했다. 하지만 이삭들은 아무도 내 얼굴에 속지 않았다. 내 얼굴은 이삭들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편집증의 반증이었다. 이삭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뒤에서 음모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리슐라 세대선의 악몽이 일어난 근거기도 하다.
니아가 취조실에 혼자 앉아 있는 일라이자를 일방향 거울 너머로 보면서 말했다.
"저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군요. 리오 씨는 알고 계셨던 겁니까?"
"이렇게까지 차이가 있을줄은 몰랐죠. 하지만 차이가 있을 거라곤 생각했습니다."
"뭘 근거로요?"
내가 말했다.
"인간의 기억이 같더라도 기억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많은 이삭은 하루가 죽은 뒤 떠나지 않은 것을 '혹시나 살아있을까 봐'로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루에게서 승선권을 빼앗기 위해 죽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저 데몬도 그건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아뇨. 저 데몬은 제 얼굴을 보자마자 올라오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쪽이 더 진짜라고 믿어서요. 그렇게 해석한 거죠. 거짓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삭은 거의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방어기제죠. 그래서 니아 씨 당신을 포함해 진짜 이삭들은 제 얼굴을 보자마자 감정을 억제하고 이 배후에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계산했습니다. 그렇죠?"
니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부정하긴 힘들겠네요. 당신은 요툰에서 왔으니까요. 하루의 얼굴로 뭔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이지만 데몬은 이삭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에 의존해서 상을 만들었죠. 그런 접근은 어떤 면에서 이삭학자보다 더 이삭을 잘 이해할 겁니다. 하지만 실험실과 실험실 밖은 환경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데몬이 이삭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삭에 내재한 문제를 알지 못했던 겁니다. 데몬은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니아가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부분은 있네요."
"어떤 부분이죠?"
니아가 말했다.
"저 데몬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정체를 들키지 않았을텐데요."
"그렇죠. 그런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질렀군요. 그건 통계적인 문제입니다."
"네?"
내가 답했다.
"제가 이야기를 드렸었죠. 트리슐라가 데몬에게 점령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저런 데몬이 이미 범죄를 저질러 표면 위로 드러날 정도라면, 이미 트리슐라에 잘 숨어든 데몬이 좀더 많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건…"
나는 부정적으로 사고하려는 니아에게 말했다.
"하지만 처음 이야기했을 때와 달리,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 있나요? 데몬은 모두 나르시스트인데요."
"이삭만큼은 아니죠."
나는 니아가 반박하기 전에 재차 말했다.
"이런 정의를 할 수도 있죠. '이삭은 가장 성공한 데몬이다.' 이삭학자들이 가끔 하는 말입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죠. 데몬이 목표로하는 것이 사실상 일계일명을 깨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특별한 환경이긴 했지만 그걸 깨고 자신들만의 사회를 이룩했죠."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텐데요."
내가 설명했다.
"이런 겁니다. 트리슐라에선 데몬들은 이삭 흉내를 내야할 겁니다. 이삭의 외모로 이삭처럼 행동하고 이삭같은 마음을 먹어야 하죠. 범죄율이 갑자기 치솟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레코드에 이삭인 척 하는 데몬의 청사진이 더 많아지면, 다양성이 더 늘어나면서 이삭은 점점 이삭학의 굴레 안에서 해석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겁니다. 이삭이 아니게 되는 거죠."
"그게 좋은 건가요?"
"이삭은 다양성을 추종해 자신에게 개성을 부여했잖습니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개성이죠."
다음 날 나는 우주항으로 나섰다. 니아가 나를 우주항까지 배웅했다. 우리는 전날처럼 우주항으로 향하는 무빙워크를 타고 이동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가면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수 많은 이삭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았다. 직접 말을 걸어오는 이삭은 없었지만 자신이 본 것이 진짜인지, 그리고 저 얼굴이 이곳에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위해서인지 서로 수근댔다.
"왜 돌아갈 때는 가면을 쓰지 않는 거죠?"
"고민을 좀 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더 나을 거란 판단이 들더군요. 다들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주변을 돌아보세요. 다들 혼란해합니다. 힐끗대고 있어요."
"저를 알아보는 것 같습니까?"
"저는 곧장 알아봤어요. 그러니 모두가 그렇겠죠."
"잘 됐군요. 그게 제 의도입니다."
"무슨 기준에서 그런 판단을 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말했다.
"거울을 볼 때요."
"네?"
"저에게 키메라가 될 것을 제안한 건 연합 최고의회의 류진이라는 사람입니다. 스바르가 성계에서 발굴된 유전 정보가 있는데 편집기로 신체 제작이 가능할 거라더군요. 제 뇌를 옮겨둘 수 있다고 했고, 이러한 작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니아가 조금 가로저었다.
"왜 그런 거죠? 요툰 성계 사람이라도 몸을 마음대로 갈아타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그건 조금 편견이군요. 자신의 몸을 끝없이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그런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니아 씨 당신 같은 사람이었죠. 저는 제가 있는 세계에서만 살았습니다. 늘 비슷비슷하게 말하고 웃고 화내는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인간의 개성은 자신의 내면에서만 비롯되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사고가 일어나죠."
내가 말했다.
"증기 사고였습니다. 우주 거주구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죠. 노출된 배관이 터지고 지나가던 제 얼굴에 고열의 수증기를 뿌렸습니다. 저는 느닷없이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죠. 저는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세계로 이동 되었고,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뀐 얼굴은 아무리보아도 제 얼굴이 아닌 것 같았죠. 의사는 분명 거의 완전히 재건에 성공했다고 했는데도 말이죠. 저는 성형 수술을 몇 번 더 받았습니다. 저에 대한 소문이 류진이란 사람의 귀에 들어 갔던 거였죠."
니아가 귀를 기울였다. 이제 조용히 내 말을 듣고만 있다.
"처음에는 흥미 위주였습니다. 누군가의 헤어진 연인이었던 얼굴이 되어보는 건 그리 대단한 경험이 아니죠. 하지만 그 누군가가 20만명 정도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어요? 하지만 편집기로 키메라가 된 날 아침, 바로 이 얼굴을 거울로 보는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거울로 보이는 것은 하루지만 느끼는 것은 저니까, 아무도 의심할 수 없지 확정된 감정만이 느껴졌죠. 아마 여러분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데몬이 의심 없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 말에 니아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니아가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곧 니아가 주저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주항에 있던 행인들이 작은 소란에 놀라 나와 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이삭들 모두가 드디어 누구인지 기억이 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가만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무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도 깨진 거울 조각처럼 갈라진 나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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