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국 심사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평소에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멀리 던지기 때문에 무기력해보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눈매는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눈썹이 진해 인상적이다. 눈동자는 다소 작다. 기억 속의 그 얼굴이다.
"트리슐라는 처음이신가요?"
"네."
내 가면에 붙은 음성합성기에서 거친 변조음이 나오자 제복을 입은 입국 심사관은 놀란 표정이었다. 명찰에는 엠마 이삭이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일반적인 심사 대상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요툰 성계에서 온 수사관이고, 인공 거주구 트리슐가는 요툰 성계와 사법공조 협정을 맺고 있었다. 형식상 그렇다는 뜻이다. 요툰 성계는 수 십 개의 하위 성계를 아우르는 중심 성계로 연합의 수도 성계기도 했다. 고작해야 20만명 밖에 살지 않는 자치령과 비교할 수 없다. 필요하다면 비밀리에 입국해서 범죄자를 잡아가더라도 트리슐라에서 외교적 문제로 비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돌아서자 옆의 자국민 카운터에서 '입국 심사관과 똑같은 얼굴'의 여자가 입국 심사를 받고 있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듯 입국자와 입국 심사관은 서로 싸우고 있었고, 그 뒤로 '같은 얼굴'로 따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모두 이삭들이다.
내가 입국 심사를 끝내고 입국장으로 나오자 방금 보았던 '입국자들'의 여자가 날 반겼다. 트리슐라 공조 수사관인 니아 이삭이었다.
"반갑습니다, 리오 씨."
"니아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네. 저쪽에 수사본부로 이동하는 무빙워크가 있습니다. 안내 드리겠습니다."
무빙워크는 부드럽게 트리슐라 우주항의 쇼핑 구역을 내려다보도록 디자인 되어 있었다. 원한다면 옆에 있는 무빙워크로 올라 타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쇼핑 구역에는 트리슐라 밖에서 온 관광객도 얼마간 있었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현지인도 많았다.
모두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겉보기로는 그렇게 보였다. 통계적으로 자연 출산율이 높다는 걸 감안하면 단정할 수는 없다. 점심 시간을 맞아 식당으로 이동하는듯한 우주항 직원들과, 청소 차량을 운용하는 청소 노동자, 로비 바닥에 주저 앉아 구걸하는 노숙자, 내 뒤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포옹하는 연인, 가게에서 막 나서는 부모로 보이는 두 사람과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까지, 나이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모두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삭.'
인공 거주구 트리슐라의 거주민 96%는 하나의 인종도, 하나의 혈통도 아닌 한 명의 사람, 이삭의 복제자들이었다. 트리슐라에서는 전우주의 규칙인 '하나의 계, 한 명의 유명자'가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고도기술문명 공동체의 종말은 필연적이다. 수정된 대여과기 이론에 따르면, 카르다쇼프 등급(k) 0.7을 넘은 문명에서 종말 확률은 시간(t)에 따라 P(t) = 0.009·k·t^0.8로 증가한다. 이때 0.009는 문명붕괴상수, 0.8은 기술가속계수다. 이에 따라 카르다쇼프 0.7 도달 시점부터 문명은 멱법칙에 의해 100년 이내 문명이 멸망할 확률이 25.1%, 500년 이내 멸망할 확률은 90.9%에 달한다. 단순히 말해 핵 기술을 획득한 문명은 대체로 5세기 이내에 사라진다는 뜻이다. 수정된 대여과기 이론은 스바르가 성계의 멸망과 스바르가에서 탈출한 이들의 세대선 트리슐라의 실패도 정확히 예견했다.
스바르가는 약 17세기 이전 고대 지구에서 발사된 초기 세대선에 의해 개척된 성계였다. 다른 성계간 다툼에 의해 초기 개척지들의 몰락을 이미 알고 있었던 스바르가 개척민들은 세대선을 공동체 투표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은하계 외곽으로 13세기 이상 여행했다. 당시 세대선에서 내릴 수 있었던 개척민은 모두 8천명 가량이었다. 하지만 1세기가 지나기 전에 인구 수가 20만을 넘었고, 2세기가 지나자 8백만, 3세기에는 2억, 4세기가 지난 뒤에는 80억에 도달했다. 불교계에서 비롯된 다섯 개의 종교 계파가 반목을 거듭하다 서로의 공동체를 향해 모든 무기를 쏟아내는 5세기에 도달할 쯤에는 인구수가 2천 5백억이 넘었다. '2차 대륙간전쟁은 있어도 2차 행성간전쟁은 없다'는 유명한 격언이 있듯, 행성 단위 자원에 의한 총공세는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스바르가 성계 내 모든 인간종을 불과 일주일만에 1천 7백만으로 줄였다. 전쟁은 종료 되었지만 공세 후유증으로 인한 지표면 자연재해와 공동체 고립, 데드맨 스위치로 작동하는 복수기계로 인해 10년 뒤 22만으로 줄어들었다. 안전가옥과 쉘터에 갇힌 상태로 비축된 물품을 다 소모하거나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이 최후로 기대했던 다른 성계의 도움은 마지막 한 사람이 굶어죽을 때까지 오지 않았다. 연합이 도착한 것은 그 사람이 굶어 죽고도 2세기가 더 지난 뒤였다. 연합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스바르가 성계에서 마지막까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태양광으로 움직이고 자동 수복하는 복수기계였다.
실질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종말전쟁을 예측하고 상대론적 요격체가 조준되기 전에 빠르게 발사될 수 있었던 세대선 트리슐라뿐이었다. 다만 트리슐라는 핵융합 추진기가 붙은 소행성은 피했어도 정작 전쟁을 일으킨 근원적인 문제를 태우고 있었다. 반목하는 다섯 개의 종교였다. 트리슐라의 실패는 스바르가 종말전쟁의 연장전이었다. 인도주의적인 계획에 의해 시작된 프로젝트 트리슐라는 종교를 구분하지 않고 사람을 실었고, 스바르가의 폭력을 근거로 비폭력적 합의의 공동체를 목표로 투표를 통해 모든 무기를 우주로 사출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폭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적어도 폭력적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이후 일어난 일을 보자면 사출해야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발사 후 2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각종 스포츠 용품과 식칼, 면도칼, 밧줄, 자갈 넣은 양말, 식탁 다리, 맨손, 손톱과 이로 무장한 이들의 선상 반란에 의해 전복 되었다. 하지만 이런 폭력에 의한 점거는 사출된 무기 덕분에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함선 기술자들이 공업용 장비를 총으로 개조했고, 화학자들이 살인 가스를 만들었다. 사출된 무기가 다시 돌아왔다. 1년 뒤에는 한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이삭이었다.
이삭은 스바르가의 피지배계급 출신으로 트리슐라 승선권에 당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삭은 요리사로 배정 받았지만, 사실은 요리를 할 줄 몰랐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이삭의 상급자가 이삭을 업무 허위 기재로 신고하는 대신 다른 업무를 맡긴 것이다. 식당에도 전문성이 없는 단순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트리슐라의 식자재 창고에는 냉동실 대신 스바르가 성계의 문명 막바지에 제작된 '식자재 출력기'가 있었다. 식자재 출력기는 제공하는 데이터에 따라 분자 수준에서 미세 합성하며 쌓아올려 해당 식자재를 제공할 수 있는 설비였다. 이삭이 하는 일은 이 식자재 출력기에 들어가게 될 식자재를 촬영하여 데이터베이스에 올리거나, 식당에서 요구하는 식자재를 출력하여 전달하는 것이 업무의 전부였다.
이삭은 트리슐라의 아무 문제가 없는 2개월 동안 자신이 이런 복잡한 기기를 고장내면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했지만, 사실 스바르가 성계의 음식출력기는 요툰 성계에서 익히 알려진 편집기의 원시적인 버전으로, 스바르가 성계 사람들의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용도를 제한했을 뿐 사실 원리적으로 편집기와 거의 일치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편집기는 수 십 세기 수 많은 성계와 문명에서 수렴진화되듯 만들어졌고, 같은 양식이라면 자기 스캔을 해 무결성 검사를 한 뒤 문제가 있다면 자기 복제를 통한 원복 솔루션이 포함되기 마련이었다. 고장률이 낮은 걸 떠나 고장 자체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트리슐라에서 사실상의 내전이 발발했을 때 이삭은 요인으로 격상됐다. 공격에 의해 식당 관리 인원들이 피난을 떠나게 되면서 식당의 식자재 출력기를 운용할 줄 아는 이가 이삭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스바르가는 계급에 따른 직업 분화가 세밀했기 때문에 잠깐이나마 식당을 점령하는 이들은 식자재 출력기에 대한 사용법을 익히기 보다는 이삭을 통해 식자재를 전달 받았다. 덕분에 이삭은 식당을 점령하는 집단이 누구인지 자꾸만 바뀌던 순간에도 여전히 식자재 출력기 옆에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식자재 출력기를 거듭 사용하던 이삭은 식자재 출력기에 시스템에 의한 기능 제한이 걸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식자재 출력기의 극단적 효율과 의의 때문에 사용할 수 밖에 없음에도, 몇몇 성계와 문화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기능 제한 걸어두고 사용자에 대한 철저한 윤리 교육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삭에게는 이제는 그만두라고 막을 상급자가 없었다. 이삭은 메뉴얼을 보고 익힌 뒤 기능 제한을 풀고 자신을 스캔했다.
이삭의 처음 아이디어는 대단하지 않았다. 스바르가 성계는 지구가 그러했듯이, 여러 성계와 문명에서 흔히 나타나는 복제 금지계였다. 스바르가는 종교적으로 고유성과 정체성 훼손에 민감했기 때문에 해당 기술이 전반적으로 발달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언급도 금기시 되었기 때문에 학습은 커녕 관련 매체도 없었다. 피지배 계층이었던 이삭의 교육 수준으로는 복제와 관련한 문제가 어떻게 비화될 것인지 알지도 못했다. 이삭은 단지 자신이 둘이 되면 하나는 쉬고 하나는 일을 하면 되니 업무량은 줄고 여가 시간은 늘 것이라 판단했을 뿐이었다. 물론 이삭은 이러한 사실을 들키면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살 것이라 판단해 자신의 복제 사실 자체는 철저히 숨겼다. 이 원시적인 편집기는 54미터제곱에 이르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삭은 식자재 출력기 사이에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식자재 출력기를 통해 만들어진 이삭은 처음엔 둘에 불과 했다. 이삭은 자신의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노동 시간을 더 줄이고 여가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음에도 셋 이상으로 복제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복제'인 이삭B는 업무 교대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원본' 이삭A를 찾으러 갔다가, 식당에서의 싸움에 휘말려 사망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삭B는 오로지 복제만이 자신이 죽음을 피할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삭B는 당일에만 자신을 스물 한 명으로 불렸다.
다툼 없이 같은 의식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는 일군의 무리는 그렇지 않은 무리보다 강한 법이다. 이삭들은 복제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각자 얼굴을 가릴 가면 따위를 쓰고 트리슐라 내에서 얼마 없는 총기를 복사해서 무장했다. 처음에는 그저 식당 주변을 보호하며 자신의 안위를 챙길 생각이었지만 이삭들이 세대선 내에서 위협적인 무리로 알려지고 총기 소유가 밝혀지면서 다른 무리들이 협동하여 공격하는 대상이 되었다. 순찰을 돌던 몇 명의 이삭들이 붙잡히고 고문 당해 사실을 불고 총기를 빼앗기며 이러한 이삭에 대한 혐오는 더 강렬해졌다. 하지만 트리슐라 내부에 식자재 출력기는 단 하나 뿐이었고 그것을 가진 건 이삭이었다.
이삭은 식자재 출력기를 쉬지 않고 가동했고 며칠 간 이백 여명으로 불어났다. 이삭은 피지배 계층에 낮은 교육 수준의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식자재 출력기의 관리자 메뉴얼을 꼼꼼하게 읽을 정도로 성실한 구석도 있었다. 이삭은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순찰자인척 내보냈다가 유인하여 각개격파하거나 적을 포로로 잡아 심문해 정보를 캐내는 등 적들의 전략을 금방 배워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전략과 전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배운 이삭이 또 식자재 출력기에 스캔 되었다가 복제되어 쏟아져 나왔다. 세대선 내의 전쟁은 이삭과 나머지 인간이라는 기이한 형태로 변질되었다.
이삭은 스바르가 비지배 계층의 반란이면서 터부의 얼굴이었고 개인이라기보다는 재난에 가까웠다. 어떤 이들은 이삭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이삭은 상황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집단이 아니었다. 이삭은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봐 두려워하고 모든 것이 함정일까 불안해했으며 잘못된 선택을 거듭해서 내릴 수 있는 초조한 개인이었다. 이삭은 몇 번이나 자신에 우호적일 수 있었던 이들에게 총을 겨누고 쏘았다.
반이삭 연합은 식자재 출력기로 가는 전력을 끊는데 실패한 뒤, 함교를 재탈환하고 함교에서 식당칸과 그 주변 지역의 산소 공급을 완전 차단했다. 반이삭 연합은 이를 통해 이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판단했으나 그것은 식자재 출력기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 더는 이삭들이 살아있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 격벽을 열자 이삭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삭들은 식자재 출력기를 통해 산소를 출력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세대선 내의 전쟁은 이삭의 승리로 끝났다. 소수의 인원이 항복했지만 이삭은 더는 속임수에 속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기에 해당 인원들을 시체와 함께 모두 산채로 식자재 출력기의 용해로에 던져넣었다.
남은 이삭 2천 여명은 토의를 통해 트리슐라 세대선이 정상 가동하도록 가꾸어 나가자고 판단했다. 인원 구성이 다소 바뀌었을 뿐이었다. 세대선 자체는 자동 운행 되고 있었고, 세대선 안에는 스바르가 성계의 거의 모든 지식이 실려 있었고 학습 장치도 있었기에 시간이 걸릴 뿐 익히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삭들은 서로 공부한 내용을 서로 가르치고 세대선 운용법과 각종 기술에 대한 이해와 숙련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문화도 생겨났다.
이삭의 숫자가 불어나던 때부터 그러했으나, 이삭은 자기 자신을 분류하기 위해 임의의 도서에서 임의의 고유명사를 따와 다시 이름으로 썼다. 그것만으로도 이삭에겐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면 이삭은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입지 않던 옷을 입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했다. 물론 이삭은 이삭이었다. 이삭은 성장 시기의 환경으로 인해 육류보단 채식을 선호했고 체험 매체나 영상 매체보다 텍스트 매체를 선호했으며 하루 열 잔의 녹차를 마셨다.
이삭은 학습 끝에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경도되었으나 이미 다른 유전자를 가진 타인은 트리슐라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삭은 식자재 출력기가 항상 스캔한 값을 그대로 출력하지 않고, 임의로 수정한 값을 반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삭은 매회 어느 정도 변수를 창출하는 값을 넣으며 세대선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인구수를 채워넣었다. 그리고 수 세기 뒤 세대선은 성공적으로 목표로 했던 항성계의 골디락스 존에 안착했다.
스바르가 성계의 지도층은 사실 요툰 성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성계와의 접촉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스바르가 성계 전쟁이 일어난 뒤에야 요툰 성계로 구조 메시지가 날아들었지만 요툰 성계에서 보낸 구조선이 몇 세기 뒤 도착할 때쯤엔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구조선은 그대로 용도를 변경해 과학선이 되어 스바르가 성계 발굴을 시작했다.
트리슐라는 요툰 성계에 의해 스바르가 성계 발굴이 시작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발견되었다. 이삭에 의해 점령당한 트리슐라에서 소수의 인원이 자신들이 탈출했던 스바르가로 구조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당시 과학선의 조사대장은 세대선을 추적하는 게 의미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스바르가에서 얻은 자원을 재이용해 유명자 추적대를 구성해서 보냈다. 그 결과 트리슐라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트리슐라는 인구가 3만명으로 항성광과 소행성대 광물을 이용해 식자재 출력기를 열 대 이상 늘린 시점이었다. 요툰발 추적대는 트리슐가를 완전 제압한 뒤 요툰에서 대표단을 파견하기 전까지 임시점령행정부를 운영했다.
트리슐라의 발견은 요툰 성계를 비롯한 여러 성계에서 큰 파장이 일었다. 극단적인 주장은 트리슐라를 즉각 파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계, 한 명의 유명자는 오랜 법칙이었다.
하나의 계 안에 복제자가 둘 이상 있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문제가 생긴다. 인권이나 종 다양성과 같은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사회라는 것 자체가 고유한 개인이라는 개념에서 발전해왔다는 근본적인 사실에 있었다. 복제된 범죄자는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고 소유권의 개념도 상실되기 시작하며, 복제자의 노동과 유산 문제로 비화되기 시작하면 법 체계 자체가 의미를 잃고 와해될 수 있었다. 이삭의 경우처럼, 누군가 자신을 둘로 복제해서 하루는 놀고 하루는 쉬겠다고 한다. 그럼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둘로 복제된 이가 둘로 만족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수 많은 성계에서 예측이 아니라 이미 사실로 알고 있었다. 이 법칙은 위협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 교훈으로서 나온 것이었다.
연합을 비롯해 각 성계의 주요 행정부와 계약하는 유명자와 달리, 자신의 청사진을 레코드에 불법으로 올려넣는 이들을 데몬이라고 한다. 데몬은 일반적으로 나르시스트이며 의도적으로 자신을 복제하여 세상을 채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삭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극단적인 데몬으로 정의할 수도 있었다. 데몬을 발견한 경우 연합의 처치는 벌레 박멸과 유사했다. 모든 개체를 즉각 사살한 뒤 청사진을 삭제하고 해당 데몬에 대한 정보를 모든 성계에 공유하고 발견되는 즉시 사살 및 삭제하라고 공지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삭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의견을 달리했다. 트리슐라는 폐쇄계로 다른 성계와 충분히 많이 떨어진 상태고 무기 기술을 비롯한 여러 기술 발달이 정체되어 있어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트리슐라와 이삭은 안정적인 복제자 세계를 보여주는 실험 사례로 학계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다. 연합 행정부는 연구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관문이 만들어지고 다른 성계와 이어지면서 이삭들은 요툰 성계로부터 여러 실험에 협력하고 위성 궤도 임대 등으로 재생산권을 받아내며 점진적으로 인구수를 늘려나가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과거 트리슐라의 존재는 화제거리였으나 이제는 화제성을 잃고 은하 변방에서 특이한 취향의 관광객을 만족시키는 조용한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트리슐라만이 아니라 이삭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이삭들은 청사진을 요툰 성계 레코드에 올릴 수 없도록 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일계일명(一界一名)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출국이 자유로워지며 요툰 성계를 비롯한 휘하 성계에서도 이삭을 발견하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얼마되지 않아 문제도 발생했다. 범죄를 저지른 이삭 하나가 요툰에서 트리슐라로 도망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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