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뉴런의 탄생(4)])에서 우리는 ‘프로토뉴런(protoneuron)’ 개념을 통해, 신경계가 무(無)에서 갑자기 등장한 혁신이 아니라 고대 생물에 이미 존재하던 요소들이 재배치(co-option)되어 점차 고도화되었다는 ‘연속적’ 진화 관점을 살펴보았다. 전문화된 뉴런으로 구성된 신경계가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단세포 단계부터 존재했던 감각·운동·분비 기작이 여러 단계의 중간 과정을 거쳐 차차 정교해졌다는 관점이다. 그 ‘원시적·과도기적’ 중간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프로토뉴런’이다.
동물 진화 이전에는 하나의 세포가 감각 수용체를 지니고(감각), 적절한 자극을 받으면 세포 밖으로 신호물질을 분비하며(분비), 자신이 수축이나 운동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는(운동) 다기능성 세포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 조상 단세포 생물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되는 깃편모충을 보면 실제로 하나의 세포가 주변 박테리아를 감지(감각)하고, 편모를 움직여 이동(운동)하며, 섭취한 박테리아로 에너지를 생산(물질대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기능성’ 세포가 다세포 동물로 진화하면서 점차 서로 다른 세포형으로 분화·전문화되어 갔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곧 ‘프로토뉴런 가설’의 골자다. 예컨대 어떤 세포는 주로 수축 능력을 맡아 근육세포로, 다른 세포는 화학물질 분비에 특화되어 내분비세포나 분비세포로, 또 다른 세포는 전기 신호와 시냅스 전달에 특화되어 뉴런이 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중간 단계의 프로토뉴런을 직접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신경조직은 연질이어서 화석화되기 어렵고, 신경을 지닌 현생 기저 동물들(빗해파리(유즐동물)나 해파리, 말미잘 등 자포동물)도 이미 상당한 진화를 거쳐서 ‘기준점’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판형동물(Placozoa)과 해면동물(Sponge)은 이러한 프로토뉴런 가설을 다룰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류군이다. 이 두 동물 가문은 빗해파리(유즐동물)와 함께 동물 계통에서 가장 오래전에 갈라져 나간 기저동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신경계와 근육조직 등 명확한 조직이 없는 매우 단순한 다세포 분화 상태를 보여주기에, 원시 동물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매우 단순해 보이는 판형동물은 먹이를 향해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바닥면에 소화액을 분비하여 미생물을 녹여 섭취하는 등 다소 능동적인 행동을 보인다. 단순해 보이는 겉모습 뒤에 생각보다 복잡한 세포·분자 기작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추정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듯 판형동물 안에 펩타이드 분비 세포가 무려 14종류나 존재하고, 이들의 여러 유전적 특징이 현생 동물의 뉴런과 크게 겹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지난 연재[뉴런의 탄생(4) 참고]). 다만 전형적인 시냅스나 축삭 돌기 같은 구조적 요소는 없어서, ‘아직 완성된 뉴런은 아니지만, 분비와 신호 네트워크가 매우 발달된 과도기적 형태’, 즉 프로토뉴런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세포라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그렇다면 판형동물과 마찬가지로 신경계가 없는 동물로 알려져 있던 해면동물은 어떨까? 해면동물에서도 프로토뉴런과 신경계의 진화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바닷물을 걸러 먹는 해면동물
신경계뿐만 아니라 소화계, 순환계는 커녕 기본적인 ‘조직(tissue)’도 갖추지 못한 해면동물은 흔히 ‘가장 단순한 동물’로 불린다. 옛날 사람들은 해면동물이 어떤 생물로 분류해야 하는지 의아해 했으며, 19세기 들어서야 해면동물을 동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될 정도였다.
해면동물은 매우 흥미로운 생존 방식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섭식 전략이 특히 독특하다. 동물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해면동물은 먹이를 찾아서 움직이지 않는, 고착형 생활사를 나타낸다. 인간이나 다른 척추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해면동물은 움직임이 없고, 신경계나 근육계가 없어 매우 수동적인 생물처럼 보일 수 있다. 대신 해면동물은 몸에 난 작은 구멍(ostia)으로 물을 받아들이고, 내부 관(수계, aquiferous system)을 통과시킨 뒤, 큰 구멍(osculum)으로 다시 배출하는 ‘필터 피딩(filter feeding)’ 방식을 취한다.
이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포가 바로 깃세포(choanocyte)다. 동물의 자매인 깃편모충과 매우 유사하게 생긴 깃세포는 세포 표면에 길쭉한 편모를 갖고 있으며, 이를 회전(혹은 파동 운동)시키면서 국소적인 물 흐름을 발생시킨다(지난 연재[최초의 동물(1) 참고]). 이렇게 만들어진 물살이 해면동물 몸 전체에서 합쳐지면, 지속적으로 외부 물이 유입되어 내부 관을 흐른 뒤, 다시 큰 출구로 빠져나가게 된다. 해면동물은 이렇게 형성된 물의 흐름에 실려 유입되는 박테리아나 작은 유기물을 잡아먹는다. 깃세포 주변에는 숱한 미세돌기(마이크로빌리, microvilli)가 깃 형태로 펼쳐져 있어, 물속에서 걸러진 미세 입자를 포획할 수 있도록 면적을 넓힌다.
놀랍게도 어떤 해면동물은 이 과정을 통해 하루 수만 리터의 물을 걸러 먹기도 한다. 고착형 생활을 하는 ‘식물성’의 생물처럼 보이지만, 생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필터 피딩 과정에서 해면동물이 물 흐름을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해 왔다. 생물물리학적으로 보면, 수많은 깃세포가 만든 작은 물살들이 합쳐져 커다란 흐름이 형성될 때, 서로 다른 세포의 편모들이 운동 방향이나 속도가 적절히 조정되어야만 효율적 필터 피딩이 가능하다. 만약 섬모 운동이 제대로 동기화·조절되지 않으면 물살이 균일하지 않거나 과도하게 흐를 수 있어, 섭식 효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바닷물은 ‘순수’하지 않다. 해면동물 입장에서 이물질이나 병원성 미생물이 구멍을 막거나 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해면동물은 이런 상황에서 필요하면 물의 흐름을 중지하여 몸 내부를 청소한 뒤, 다시 흐름을 재개하는 행동까지 보인다. 이 과정에서 ‘수축’이 일어나곤 하는데, 이는 해면동물이 몸의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뉴로이드(Neuroid) 세포의 발견과 뉴런 진화 시나리오
이처럼 대규모 필터 피딩 과정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깃세포들의 섬모 운동을 동기화하고, 때로는 전신을 수축해 흐름을 멈춘 뒤 다시 재개하는 등 고도의 조절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해면동물의 이런 능력은 자연스럽게 ‘신경계가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정교한 신체 조절이 가능할까?’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해면동물과 마찬가지로 고착 생활사를 나타내는 말미잘이나 산호와 같은 자포동물들은 원시적이나마 ‘신경망(nerve net)’이 있고, 수축을 담당하는 근육섬유가 존재한다. 그런데 해면동물은 그런 구조가 전혀 없다고 간주되어 왔다. 정말 해면동물은 신경세포가 없을까? 혹시 완전한 신경세포는 아니더라도, 판형동물의 펩타이드성드성 세포처럼 ‘프로토뉴런’스러운 세포가 있지는 않을까?
판형동물 연구와 마찬가지로 해면동물 연구에서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단일세포 RNA 시퀀싱(single-cell RNA sequencing)’기법이 적용되었다. 해면동물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를 분리하고 각각 바코딩한 후 어떤 유전자를 발현하는지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방식으로 프로토뉴런에 가까운 세포를 찾아나선 것이다.
2021년 지에 연구 결과를 발표한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 Detlev Arendt 연구팀은, 담수 해면동물(Songilla lacustris)의 세포들을 정밀 분석하여 최소 18가지 이상의 세포형(cell type)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이 중에서 뉴런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는 세포들을 찾아내고 ‘뉴로이드 세포(neuroid cell)’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축삭이나 시냅스와 같은 전형적인 뉴런 구조는 없었지만, 시냅스 전 단계에 관여하는 분비소낭, 여러 SNARE 단백질, 전압 의존성 이온 채널 일부 등 뉴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발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뉴로이드 세포는 해면동물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연구팀은 이 뉴로이드 세포가 해면동물의 필터 피딩 과정을 조절할 것으로 추정한다. 많은 수의 깃세포의 체계적인 편모 운동이 필터 피딩 과정에서 핵심적인데, 뉴로이드 세포가 깃세포에 돌기를 뻗어 접촉하고, 분비소낭에서 화학 물질을 내보내는 모습이 미세 관찰 결과 드러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뉴로이드 세포가 깃세포에게 ‘멈춤·재개’ 신호를 보내거나, 내부 환경 청소가 필요할 때 깃세포 움직임을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즉, 이 뉴로이드 세포가 아직 완전한 뉴런은 아니나, ‘시냅스 전(presynaptic)’ 기능을 상당 부분 구비하여 세포 간 정보교환 역할을 담당하는 프로토뉴런에 가까운 세포 집단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지점은 뉴로이드 세포가 조절하는 깃세포와, 깃세포와 너무나 닮은 깃편모충의 관계이다. 깃편모충은 단세포 생물 중 동물과 가장 가까운 친척(자매)이며, 동물의 단세포 조상과 매우 유사할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이다. 따라서 그런 깃편모충과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너무나 유사한 ‘깃세포’는 동물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세포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세포 수준에서 뉴런의 진화를 살펴보자면, 깃편모충 혹은 깃세포와 유사한 단세포 단계에서 다세포 후생동물로 넘어오면서, 여러 세포가 협동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졌고, 그 과정에서 깃세포와 유사한 세포형으로부터 새로운 세포형이 분화하면서 해면동물의 뉴로이드 세포와 같은 ‘프로토뉴런’이 출현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즉, 신경계가 없는 단순한 기저동물로 여겨졌던 해면동물과 판형동물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며, 신경계 기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일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을 최신 연구결과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해면동물의 계통에서는 ‘집단적인 필터 피딩’을 위해 물 흐름을 만드는 세포(깃세포), 이 과정을 조절하는 세포(뉴로이드 세포), 수축 등을 담당하는 세포 등으로 기능이 분화될 필요가 있었고, 이것이 곧 ‘프로토뉴런’처럼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분비와 신호전달 능력을 확장시킨 뉴로이드 세포가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자포동물·좌우대칭동물 계통에서는 이러한 분화가 더욱 고도화되어 축삭, 시냅스 후막, 전기적 흥분성을 갖춘 ‘진짜 뉴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시나리오가 유력해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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