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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우주론의 위기 – 패러다임 전환의 전조

2025년 3월 통권 234호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과거의 믿음이 얼마나 불완전했는지 깨닫곤 한다. 개인의 불확실한 추측에서부터 견고한 지식 체계에 이르기까지, 익숙했던 평온함에 찾아온 뜻밖의 균열은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인류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의 모순을 직시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세상을 향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왔다. 


 우주에 대한 이해 역시, 크고 작은 균열을 발견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비약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렇게 우리는 신화적 우주관에서부터 지구 중심설과 태양 중심설을 거쳐, 빅뱅우주론과 인플레이션, 암흑물질/암흑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표준 우주 모형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역사가 증명하듯, 표준 우주 모형 역시 현대 우주론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 진리라 단정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표준 우주 모형의 유효성을 시험대에 올리는 중대한 의문들이 대두되고 있다. 


 첫 번째 의문은 은하를 관측하여 측정한 우주의 팽창 속도 계수(허블 상수, Hubble constant)와 우주배경복사 데이터로부터 도출된 값 사이에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허블텐션(Hubble tension)이라 일컫는데, 현대 우주론의 위기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거리가 먼 은하일수록 더 큰 후퇴속도를 갖는다는 허블의 법칙(Hubble's law)을 2차원 평면에 표시하면 일직선상에 위치하게 되는데, 이 기울기에 해당하는 값이 허블 상수에 해당한다(그림 1의 왼쪽). 1990년부터 작동을 시작한 허블 우주 망원경에 의해 허블 상수의 측정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현재 73.9 ± 1.6 km/s/Mpc으로 수렴하고 있다. 즉, 1 Mpc(3.26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는 서로 73.9 km/s의 속도로 멀어지며, 이 값에는 1.6 km/s만큼의 에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우주배경복사는 태초의 빛으로서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거의 동일한 온도(2.73K)의 마이크로파로 관측된다.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비등방성 분포(±0.00002K)는 표준 우주 모형과 몇몇 상수의 조합을 통해 매우 정확히 기술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시점의 허블 상수를 예측할 수 있는데, 이렇게 구한 허블 상숫값 67.4 ± 0.5 km/s/Mpc 은 은하의 후퇴속도로 구한 값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그림 1의 오른쪽). 통계학적으로 두 값의 차이가 우연히 발생할 확률은 약 1백만분의 1 미만에 해당한다. 이는 두 값의 차이가 신뢰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다는 뜻이며, 곧 우리가 우주배경복사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사용한 표준 우주 모형의 수정이 불가피하거나, 은하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 심각 한 오류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 1. 은하의 거리에 따른 팽창 속도를 통해 허블 상수(기울기)를 구할 수 있다(왼쪽). 또, 우주배경복사에서 유래한 원시 우주의 정보를 바탕으로 허블 상수를 계산할 수 있는데, 문제는 두 방법에서 구한 허블 상숫값들 사이에는 통계학적으로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오른쪽).


 두 번째 의문은 표준 우주 모형에 기반으로 수행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관측 결과 사이에 차이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주 거대구조와 같은 큰 규모에서는 관측된 은하들의 분포가 표준 우주 모형이 예측하는 값과 잘 맞아떨어지지만, 왜소은하와 같은 작은 규모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를 소규모 구조 문제(Small-scale structure problem)라 한다. 대표적인 위성은하 결핍 문제(Missing satellites problem)는 우리은하 주변에서 관측되고 있는 왜소한 위성은하들의 개수가 표준 우주 모형이 예측하는 개수에 비해 훨씬 부족한 것을 일컫는다. 이 문제는 우주론 시뮬레이션에 정교한 바리온 물리를 반영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시뮬레이션에 바리온 물리의 영향이 강해질수록 왜소한 은하들이 쉽게 파괴되기 때문이다. 반면, 점점 더 어두운 왜소은하까지 탐지할 수 있는 관측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관측된 왜소은하의 개수가 늘어나는 방식으로도 문제가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그 외, 관측과 시뮬레이션에서 나타나는 왜소은하 암흑물질 밀도 분포 차이를 지적하는 코어-커스프 문제(Core-cusp problem)와 거대한 위성은하의 개수가 예측보다 부족함을 지적하는 투빅투페일 문제(Too-big-to-fail problem)의 경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고의 미스터리는 최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James Webb Space Telescope)의 초기 우주 관측 결과가 쏟아져 나오면서 제기되었다. 빅뱅 이후 5억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초기 우주에서 거대한 질량의 은하들(태양질량의 별이 수억~수백억 모여있는 규모)이 높은 빈도로 관측된 것이다(그림 2 왼쪽). 은하가 형성되려면, 그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는 암흑물질 헤일로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이후 바리온 물질들이 헤일로 중심부로 유입되면서 에너지를 잃고 압축되어 별들이 탄생하는데, 이렇게 암흑물질 헤일로 중심부에서 태어난 별들의 집단이 은하이다. 예측보다 빨리 형성된 거대 은하의 존재는 암흑물질 헤일로 역시 빨리 형성되고 성장해야 함을 뜻한다. 작은 은하가 병합하여 더 큰 은하가 만들어지는 계층적 성장 (bottom-up)은 표준 우주 모형의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기에, JWST 관측 결과는 초기 우주에서 은하의 형성과 성장이 표준 우주론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음을 시사한다(그림2 오른쪽).


그림 2. JWST 은 2022년 7월 이후 현재까지 천여 개의 초기 은하 후보를 발견하였다(왼쪽). 관측한 초기 은하의 질량은 표준 우주 모형의 예측보다 10~1,000배 더 무거운데, 이는 기존의 예측보다 실제 은하 생성이 훨씬 빨랐음을 시사한다(오른쪽).


 JWST의 2022년 데이터 공개 이후로 관측 오차의 가능성이 여러 방면으로 점검되었으나, 아직 특별한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표준 우주 모형에 기반한 은하 형성 모델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학계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우주론 시뮬레이션의 바리온 물리 모듈을 조정하여 별 생성을 기존보다 빠르게 활성화하는 방법이 제안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표준 우주 모형 자체의 수정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마지막은 우주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다(그림 3). 표준 우주 모형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우주의 구조와 진화를 설명하지만, 우린 여전히 이들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암흑물질을 직접 검출하기 위한 모든 실험이 실패하였으며, 암흑에너지는 그 존재 여부만 추정할 뿐, 직접 검출할 방법조차 찾지 못한 상태이다. 표준 우주 모형의 한계가 드러날수록, 정체불명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새로운 물리법칙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심화되고 있다. 우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성요소가 정체불명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표준 우주 모형의 근본적인 한계를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림 3.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물질은 우주의 5%밖에 되지 않는다. 우주 대부분은 미지의 영역인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우선적인 대안으로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특성을 수정 및 보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래 암흑물질은 중력으로만 상호작용을 한다고 여겼으나 입자끼리 약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고 보거나, 우주상수 역할을 하는 암흑에너지의 양이 우주의 나이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반면,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를 도입하지 않아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도록 중력이나 일반상대성이론을 수정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물리 법칙의 변화를 모색하는 시도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표준 우주 모형에서 새로운 우주론으로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과학, 기술, 사회 전반에 걸친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이를 맞이하는 우리 역시 혼란과 흥분 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학자로서 패러다임의 전환점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강렬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기존의 연구가 이미 잘 만들어진 기반 위에 지식을 견고히 쌓아 올리는 과정이었다면, 전환점 후의 연구는 새로운 토대를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의 이론을 부정하고 익숙한 틀을 버리는 것은 고통이겠지만,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마다할 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목적과 의미를 품고 살아가지만,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우리 모두 진리를 향한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인류는 익숙한 이해의 틀을 깨고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징검돌을 놓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끝이 진리에 닿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진리를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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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