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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는 봄, 성급해진 꽃

2025년 3월 통권 234호

2월, 겨울이 정점을 지났다. 곧 봄이 한반도에도 찾아올 것이다. 봄의 전령, 꽃의 개화와 함께. 

그런데 최근 봄이 심상치 않다. 봄을 부르는 상징, 꽃의 개화 시기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3월, 한반도는 꽤 때 이른 봄꽃 잔치를 벌였다. 기상청 발표를 기준으로, 벚꽃은 제주에서 3월 23일, 부산에서 3월 25일 개화했다. 각각 평년보다 2, 3일씩 일렀다. 서울도 평년보다 일주일 빠른 4월 1일 공식 개화했다. 

한 해 전인 2023년은 더 심했다. 제주에서 평년보다 1~2주 빠른 3월 중하순부터 벚꽃이 피었고, 서울도 2주 빠른 3월 25일 개화했다. 개화가 예상보다 빨랐던 탓에, 지자체들은 봄맞이 축제일을 맞추지 못해 낭패를 봤다. 이 때 고생을 한 지자체들은 2024년에는 작정한 듯 개화일을 이르게 잡아 축제를 기획했는데, 이번에는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져서 축제 개막을 몇 번씩 늦추는 촌극을 연출했다.


데이터로 보는 오늘의 기후

필자는 글을 쓰는 본업과 별도로, 기후와 관련한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가공,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상청과 유럽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 미국 해양대기청(NOAA) 및 항공우주국(NASA) 등의 기후 데이터를 매일 확인하고 시각화하며 한반도 주변과 전 세계의 기후 추세를 살펴보고 있다. 2023년 이후 전 세계 기온과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모습을 포함해 한반도 주변 바다가 끓어올라 사실상 아열대 바다처럼 변해가는 모습, 집중호우와 폭설 양상이 요동을 치는 모습 등을 지켜보고 있다.

창백한 지구 환경 데이터 외에, 추가로 3년 넘게 수집하고 있는 데이터가 있다. 바로 봄꽃의 개화 시기 데이터다. 개화 등 식물이 계절에 맞춰 생장하는 과정은 기후, 특히 기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기후변화가 생물과 사람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미국지질조사국(USGS)과 애리조나대 등이 설립한 미국의 기후 생태조사 프로젝트 ‘미국생물기후학 네트워크(USA-NPN)’는 수십 년째 매년 수천 명의 시민과 과학자가 미국 내 식물의 계절 변화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까지 2000만 건 이상의 정보가 누적돼 있으며, 매년 개화 및 낙엽의 진행 속도를 지역 별로 추적하거나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데이터가 별로 없다. 기상청이 일부 지역 기상청 내의 표준목을 이용해 관측한 연도 별 개화일 정보가 있고, 국립공원 내에서 관측한 10여 년간의 개화 정보가 있지만 도심 생활권을 포함해 세밀한 지역 개화 시기 정보는 부족한 상태다. 

이를 보완하고자 필자는 2022년 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의 전국 개화 데이터를 수집했다. 시민 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해 전국 각지의 거주자에게서 개화 보고를 받기도 하고(필자가 얼마 전까지 근무하던 플랫폼 ‘얼룩소’의 이용자가 주로 참여했다), 기상청의 공식 발표 자료와 소셜미디어(SNS) 이용자들이 언급한 개화 관련 포스팅 등을 수집해 매해 수백 건의 개화 정보를 수집해왔다. 그 중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수집하는 꽃은 전국에 널리 분포하는 벚꽃으로, 이를 이용해 전국의 개화 현황을 기록, 비교하고 있다. 개인 프로젝트라 미국보다 데이터 수는 아직 적지만, 꾸준히 수집하며 시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하고자 한다.

‘얼룩꽃’이라고 이름 붙인 이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보면, 기상청의 공식 개화 선언과 별개로 꽤 이른 시기에 개화하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23년 프로젝트의 경우, 이미 공식보다 일주일 이상 이른 3월 15일 제주 서귀포 성산과 대구에서 만개한 벚꽃이 보고됐다. 서울에서도 공식 개화 3일 전 성북구와 송파구에서 벚꽃 개화를 알렸다. 기상청 공식 기록만으로 포착하지 못하는 개화 시기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만약 지역 별로 많은 데이터를 꾸준히 확보한다면, 지역과 환경에 따라 개화 시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연도 별 차이는 어떻게 나는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꽃으로 확인한 ‘봄의 가열’

한반도의 개화 시기는, 이미 오랜 기록이 존재하는 기상청의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긴 100여 년간의 벚꽃 개화 시기가 수집된 서울의 기록을 보면 해가 지날수록 개화시기가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음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100년 전인 1920년대의 벚꽃 개화시기는 4월 19일 전후였다. 4월 중순이 한참 지나야 벚꽃 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대학이라면 막 중간고사를 치른 뒤의 일이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로는 개화시기가 3월 28일 전후로 앞당겨졌다. 100년 사이에 무려 22일이나 빨라졌다. 10년에 2.2일 꼴이다.

이는 2006년 이은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이 1922~2004년 벚꽃과 진달래, 배꽃 등의 개화일 변화를 분석한 결과와도 경향이 일치한다. 이 연구에서 벚꽃은 20세기에 걸쳐 10년에 1.4일의 빠르기로 개화가 앞당겨졌다. 

연구 이후 약 20년치 데이터를 추가해 본 셈인데, 개화일이 앞당겨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개화일 정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1960년대까지는 큰 변화가 없다가, 1970년대 이후 앞당겨졌고, 2020년대 들어 매우 빠르게 개화시기가 당겨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점점 더워진 한반도…2, 3월이 따뜻하면 꽃이 일찍 핀다

개화를 앞당긴 요인으로는 단연 기후변화에 의한 기온 상승이 유력하게 꼽힌다. 역시 서울 기상청의 서울 기온 데이터를 살펴보면, 100년 전인 1920년대의 연 평균 기온은 11.0도인 반면, 2020년대의 연 평균 기온은 13.1도로 100년 사이에 2.1도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봄꽃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기간은 연초다. 식물이 개화를 준비하는 겨울과 초봄의 기온이 개화시기를 앞당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확인하고자 1, 2, 3월의 기온과 개화일의 관계를 확인해봤다. 그 결과 3월-2월-1월 순으로 강한 상관관계를 지녔으며, 특히 2~3월 평균 기온이 개화일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서울의 2~3월 평균 기온은 100년 사이에 4.54도 상승해 연 평균 기온 상승폭을 크게 상회했다. 이 기간 1920년대 서울의 평균 기온은 0.70도였는데, 2020년대에는 5.24도였다. 100년 전에는 얼음이 겨우 녹던 차가운 계절이었는데, 이제는 완연한 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기온 상승이 가파른 달은 3월이었다. 서울을 기준으로 지난 120년 사이에 다른 달은 높아야 4도 정도 상승했는데, 3월은 5도 이상 상승했다. 2000년대 이후 기온 상승폭이 특히 가파르다.

이상의 결과를 정리하면, 최근 100년 사이에 한반도의 기온은 급격히 상승했고, 특히 3월과 2월 등 봄철의 기온 상승폭이 컸다. 벚꽃의 개화 시기 역시 기온 상승과 꽤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며 함께 빨라졌다. 기온 상승폭과 개화 시기 변화 폭은 최근으로 올수록 급격히 증가했다. 기후학계에서는 기후변화가 최근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지 여부를 놓고 뜨거운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적어도 벚꽃의 개화시기 변화를 통해 보면 기후변화도 꽤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화의 영향은 향후 분석 과제

조사를 할 때에는 각 개화 목격 장소의 위치 정보 외에 환경 정보도 모았다. 해당 지역이 주거 시설이나 인공 시설 주변에 위치해 있는지, 또는 산지나 공원 주변에 위치해 있는지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도심이나 인공시설 주변에서 개화가 더 빠를 것이라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대와 국립기상과학원 연구팀이 2018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도시화에 따른 지역의 온난화는 봄철 식물의 개화 시기를 앞당긴다. 진달래와 개나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도시화가 빠른 지역의 개화일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개화일이 10년간 1.3~2배 빨라졌다.

벚꽃에서도 이런 양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자가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하지만 3년간의 조사를 통해서는 인공물 주변의 개화일과 자연 주변의 개화일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하지 못했다. 조사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인지, 또는 벚꽃은 봄철 도심 온난화가 개화시기에 미치는 영향이 작기 때문인지, 또는 확인하지 못한 다른 원인이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정교하게 분석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2025년 봄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올해 벚꽃은 어떤 속도로 우리 곁에 찾아올까. 그 걸음걸이를 통해 봄과 기후변화의 속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짐작해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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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영
과학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