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박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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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나와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하셨을 때 아내와의 관계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주은의 산후 우울증은 결혼 직전에도 심각했는데 윤채가 유치원에 입학한 즈음부터 중증이었다. 딸을 얻으면서 오래 꿈꿔온 평범한 삶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말이면 졸음을 이기고 아내와 딸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교외 카페를 찾아 디저트를 먹으러 나섰다. 아내와 딸을 위한 이벤트였다. 아내는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미운 다섯 살이라더니 딸은 요즘 유독 심하게 생떼를 썼다.
지난 주말 카페에서 나는 미소가 환한 카페 아르바이트 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조로운 일상에 안정감보단 답답함을 느끼며 무심코 생각했다.
‘저렇게 젊고 생기로운 여성과 사귄다면 내게도 아버지처럼 새로운 세계가 생기려나?’
인생에는 언제나 극적인 긴장과 감동도 필요했다. 안정은 모험을 포기한다는 뜻을 내포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찾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온갖 도덕률에 얽매여 스스로 지나치게 억압할 필요는 없다.
카페 아르바이트생을 따라 화장실로 들어가는 순간을 떠올리며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느꼈다. 인기척을 느낀 아르바이트생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양팔을 내 몸에 휘감으며……. 억압 기제가 풀리고 자유로운 세계가 하나 더 눈 앞에 펼쳐지려는 그 순간…….
“뭐 하니?”
아내가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
달콤한 환상에서 텁텁한 현실로 돌아오며 나는 차가운 사슬을 느꼈다. 약간 짜증이 솟았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로맨틱한 말을 하나 건넸다.
“그냥, 자기랑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
그러자 아내가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섰다.
“뭐라고!”
테이블 위 식기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아내가 불같이 화를 내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세 식구가 앉은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이 스토커 새끼가……!”
아내는 산후 우울증이 심해질 때마다 스토커와 결혼했다고 악을 썼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며 애써 다정한 말투로 아내를 달랬다.
“자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럼 우리 딸은 어떻게 되는 거야?”
곁에서 케이크를 먹던 딸이 굳은 표정으로 포크를 내려놓았다.
아내는 자신의 일상을 모조리 부정하는 중이었다. 미혼 시절 잘 웃었던 아내는 결혼 후 단조롭고 지루한 세계를 자신의 현장으로 맞은 뒤 웃는 일이 적어졌다. 카페에서 일할 때는 계약서 때문에 억지로 웃음을 지었었다. 인위적인 미소가 사라진 건 아내가 인간다워졌다는 뜻은 아닐까. 나는 애써 받아들이며 그녀의 생기로움이 사라졌음을 조금만 아쉬워하는 참이었다. 아내는 왜 저렇게까지 분노하는 걸까? 생계의 무서움을 모르던 시절이 좋았다는 뜻일 테지만 결혼한 게 후회스럽고 억울한 걸까? 하지만 생기에서 기운을 빼야 생활이 남는 것 아닌가…….
곁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윤채가 욕을 했다.
“멍청이!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
“뭐라고……?”
내가 집에 없을 때 엄마에게 들은 말을 딸이 반복하는 듯했다.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집에서 애한테 맨날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었어?”
얼마 전, 딸애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다. 무슨 문제냐고 물었지만 두 사람은 제대로 말해주지도 않았다. 요즘 유치원 학부모들 민원도 사회적인 문제라고 하기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빠를 보고 멍청하다고 하는 말에는 충격을 받았다. 아내와 딸 사이에 비밀 이야기가 늘어가는 만큼 딸은 나와는 멀어졌다. 나는 그저 미운 다섯 살 시기가 지나길 기다리기로 했다. 사소한 일까지 개입하기엔 벅찼다. 게다가 유치원 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쭉 직속 선배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껄끄러웠다.
카페를 떠나려는 아내를 뒤에 남겨두고 내가 먼저 카페를 나섰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나를 노려봤다. 이런 모욕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내 딸과 내 아내에게 당한 수모라 생각하니 더욱 치욕스러웠다. 카페 문밖을 나서자 바로 뒤따라 나온 아내는 내게 말했다.
“치료를 안 할 거면 귓구멍이나 좀 파고 다녀.”
“그게 무슨 소리야?”
“귓밥 얘기도 못 들어 봤어? 요즘 SNS에서 화제인데.”
아내는 이상한 말을 하곤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더니 딸의 손을 붙잡고는 가 버렸다.
허탈한 마음으로 아내와 딸을 먼저 보냈지만 그러고 나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혼자가 된 일요일 하루를 얻었다. 뭘 하며 보낼까 상상하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했다. 가끔은 긴장과 설렘이 있는 세계를 찾아가야 했다. 그래봤자 뻔한 코스였지만.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링크를 던지고 보양식 전골집을 예약했다. 아내랑 싸웠다는 톡을 남기니 애들 반응도 좋았다. 집을 나설 핑계를 찾으려는 애들은 언제고 널려있었다. 아내 눈치가 보여 못 나간다며 미혼 남성을 부러워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건 그냥 중년 남성들의 밈이었다.
급하게 잡은 약속이지만 몇몇 애들과 전골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2차로 귀청소방을 예약했다. 아내의 말을 잘 따르는 공처가 모험가다운 발상이었다.
*
그즈음 누나가 원룸으로 독립했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한 번 오라는 말을 듣고 나는 여동생을 걱정하는 심정으로 퇴근길에 누나의 원룸을 찾았다. 작은 침대가 방을 꽉 차지하는 크기였다. 창문도 너무 작았고 둘이 들어가기도 비좁았다. 퇴페적인 분위기가 마치 업소 같았다.
“여자들은 이런 데 안 살 것 같은 곳이네. 여기 월세 얼마야? 원래 업소였나?”
오피스텔 성매매가 이뤄지는 곳 같았다. 그러자 누나가 비웃으며 반문했다.
“왜? 전에 가본 데랑 비슷해?”
“뭔 소리야…….”
나는 모르는 척 코웃음 쳤다. 옆 방에서 괴성이 들렸다. 누나랑 듣기엔 조금 민망한 소음이었다. 옆 방 여자는 싫다고 외치면서 연신 비명을 내질렀는데 묘하게 환희가 섞여 있는 걸로 들려 다 연기 같았다. 민망함을 감추려 살짝 창문을 열었더니 누나가 비웃었다.
“무력해서 떨고 있는 여자를 보면 어때? 섹스하고 싶지?”
미간이 좁아졌다.
“누나, 세상일이 다 뻔한 것 같지? 남자들을 다 싸잡아서 공격하는 게 즐거워?”
누나는 내 말을 무시하며 나를 향해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네 아내는 어땠어? 무력해서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뭐라는 거야. 선 넘지 마.”
누나가 주은이에 대해 뭘 알아? 나는 카페 앞에서 떨고 있던 주은에게 달려갔던 순간부터 줄곧 그녀의 기사였다.
“알아. 너는 폭력을 쓰지 않고 곁을 지켰으니 보호라는 거잖아? 근데 아내를 회사에서 잘리게 만든 걸, 울고 있는 여자에게 수면제를 먹인 걸, 그렇게 아이를 임신시킨 걸 아내는 뭐라고 하니? 무력하게 만들어야만 보호할 수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나는 줄곧 나를 지켜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억측을 했다. 대학 선배와 공모해 회사에서 주은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지금은 유치원 원장인 선배와 함께 전골을 먹으러 다니고 있는 것도 안다고, 긴장을 즐기고 귀청소방을 다니고…….
“나도 알고 싶진 않았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 누난 미쳤어!”
“집에서도 말했다며. 선배를 하늘처럼 깍듯이 모신다고. 형님이 최고라고. 그러니 윤채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어떻게 너한테 얘기하겠니?”
“윤채가?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누나는 대답 대신 입을 크게 벌리고 또 뻐끔뻐끔했다. 옆방에서 들려오던 괴성은 잠잠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윤채의 유치원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 가장 위에 유치원 남교사의 성폭행 사건이 떴다.
“어린 여자애들이 있는 귀청소방에 다녔다며? 어리고 몸집 작은 여자를 보면 꼴려? 굳이 부정하지 않아도 돼. 난 이제 다 이해해.”
누나가 관대하게 굴며 어깨를 두드렸다.
“네 딸도 곧 10대가 될 테지…….”
누나의 말에 반발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딸이 10대가 되는 일을 상상했었다. 윤채가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남자는 아빠다. 첫 남자이기에 이상적인 애인은 아빠일 것이다. 아빠 팔에 매달려 있는 어린 소녀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입 맞추고 첫 경험을 하게 될 일을 상상하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상상 속에서 그 남자가 나와 유사한 중년남일 때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내 딸을 감히! 딸 같은 여자한테 뭣 하는 짓이야!
그런데 딸 또래의 어린 남자애 따위가 내 딸을 탐하는 것을 상상할 때도 화가 안 나는 건 아니었다. 그럴 때 느끼는 내 심리는 부성애인지, 내 여자를 뺏긴 박탈감인지 헷갈렸다.
“아버지는 엄마를 가스라이팅 했어. 그리고 딸을 성폭행했지. 엄마는 지금 몸이 썩어가고 있고 딸은 미쳤지. 아버지는 시한부를 선고받고도 아직도 안 죽고 눈을 부릅뜨고 있고. 어때, 너랑 똑같지 않아?”
딸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과 귀청소방 카운터에 몸을 기대고 미소를 짓던 여자애의 모습이 잠시 겹쳤다. 딸 같은 여자에게, 딸에게 나는……. 나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아빠가 그랬지. 남자들은 원래 성욕을 참을 수 없다고. 남자들은 공격적이라고. 그건 본성이자 사회적 기제라고…….”
어릴 때, 그러니까 내가 한때 아버지를 동경했을 때 아버지가 내게 설명해준 말이 있었다. 직업군인이었던 젊은 시절 무용담을 아버지는 자주 말하곤 했다. 누나가 그때 아버지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암컷의 배란 유도를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암컷들은 심지어 그걸 즐긴다……. 기억나지?”
나는 묘한 상상을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누나의 말에 반박했다.
“아버지 세대 노인들이나 사회화가 덜 된 남자들이나 하는 말이지. 그런 말 대놓고 하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해. 누나는 모든 남자가 다 강간범으로 보여?”
누나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곧 자신의 음부를 내보였다. 꿰맨 자국이 있었다. 마치 입구를 막아버린 듯, 어쩌면 자궁을 들어내고 닫아버린 듯한 흔적이었다.
“자, 유도할 배란이 없는데 어떡할래? 그래도 본능이라고 할래? 여자를 죽여서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지킨다고? 수신제가이고 치국평천하라고?”
나는 불쌍한 우리 누나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렸다. 누나는 내 손을 뿌리쳤다.
누나는 늘 무기력한 상태였다. 거의 초주검 상태로 방 안만 머물렀다. 죽은 듯 살았다. 살아있는 듯 죽어있었다.
“누나, 제발 나한테는 이러지 마. 그렇게 힘들면 그냥 도망갔어야지. 집에 머문 건 누나잖아. 나보고 누나를 데리고 같이 도망치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야?”
“……!”
누나가 또 목젖을 다 보일 것처럼 입을 벌리고 뻐끔거렸다. 잠시 후 입을 닫은 뒤 말했다.
“네가 더 문제야! 아버지는 특수부대 군인이었기에 저렇게 굴복했다고 쳐. 근데 넌 뭐냐고!”
누나의 말이 점점 심해졌다. 누나는 아예 내가 이 나라를 망쳤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용인하면서 아버지를 잇고 있다고도 했다.
“누나, 나도 아버지를 견디기 힘들어. 나도 상명하복 싫다고. 근데 우리도 다 버티고 있어. 마음 달래서 같이 살자고 하지는 못할망정, 다 나 때문이라고 하면……. 뭘 하자는 거야, 씨발!”
순간, 나는 누나의 멱살을 잡았다. 물러설 곳도 없는 작은 방에서 나에게 멱살을 잡힌 채 누나는 웃었다. 엄청난 기운이 솟아 나도 놀랄 정도였다. 아니, 이것은 그냥 기운이 아니라 살의였다. 이 위험한 여자를 죽여야 한다. 안 그러면 미친 소리를 들은 내 아내와 딸까지 고통스러워진다. 나는 누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꽉 다문 입 안에서 피 맛이 났다. 이 여자가 죽어야 모두가 산다.
누나가 공중에서 발을 버둥거렸다. 벽을 차는 누나의 발, 그 순간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방 문틈에서 누나의 발을 보았다. 누나는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날처럼…….
누나 방에서 나온 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친 뒤 내 등을 두드렸다. 그러더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것은 본능이자 섭리라고 말했다.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이건 이치고 순리야. 명령에 항명하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그때 누나는 내게 아버지를 같이 죽이자고 말했다. 나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린 마음에도 가족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나가 아빠를 용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누나의 눈빛은 죽은 생선 같았다. 그날 이후로 엄마처럼 나를 대했던 누나의 다정함은 사라졌다.
“너는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 너라도 달라야 하는데…….”
그때 이후로 우리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여자 형제가 있는 다른 집도 대체로 불화했기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성폭행이 반복되었다. 누나가 임신하고 낙태했고 자살을 시도했다. 그 후 호신 시술이란 이름의 재생술을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의식을 잃은 누나가 침대에 널브러져있었다. 나는 극도로 흥분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에 머릿속에 쏟아졌다.
아버지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누나 방을 나오던 장면, 그러곤 나에게 어깨를 토닥이던 장면, 아내가 결혼 직전에 고립된 장면, 독립적이던 그녀가 무너진 장면, 딸이 태어나 나에게 안기는 장면……. 그리고 이 일들을 거치는 사이, 이 나라에선 두 번의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흥분한 바람에 위산이 식도를 통해 역류했다. 점심에 먹었던 전골 국물이 입안에 시큰하게 맴돌았다.
그때 아버지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나는 가훈을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거리의 모든 여자가 웃고 울고 떠들고 있었다. 다들 옷을 벗고 있거나 곧 벗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들이 모두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퍼질러 앉아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멀찍이 떨어졌다.
보양식 전골집이 골목마다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전골에 들어간 버섯은 색깔이 약간 푸르스름했다. 그 버섯에 환각 성분이 있다는 건 소문일까, 진짜일까? 사실 진위는 상관없다. 버섯전골은 그저 용기를 주었다. 실은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내게 용기를 주었다. 주은을 아내 삼도록 조언해 준 회사 동료는 대학 선배이자 지금은 딸의 유치원 원장이다. 이 나라의 법과 제도를 포함해 모두가 내게 용기를 주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우리 딸의 몇 년 후인 것 같아 사랑스러웠다. 나는 여학생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뛰었다. 골목에서 여자들이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3
얼마 전. 호스피스 병동 주치의와 보호자 상담이 있었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저희 아버지 살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내 질문에 주치의는 즉답을 피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약간 체면을 차리며 살짝 돈 얘기를 꺼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를 잘 모시고 싶어요. 그런데 집에서 돈 버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요.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돈이 얼마나 더 들지 알아야 미리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주치의는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몸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다 썩어 있었다. 제대로 기능하는 장기가 없었고 근력도 시력도 피부도 모두 망가지고 괴사했다. 그런데 그 상태로 여전히 젊은 여성 의사와 중년 여성 간호사, 노년 여성 간병인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기이한 연명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들 사정을 다 이해한다는 듯 스님처럼 구는 의사에게 나는 더 직접적으로 물었다.
“도대체 저희 아버지는 언제 죽는 겁니까? 아니, 왜 죽지 않는 겁니까, 선생님?”
그러자 주치의가 각오한 듯 말했다.
“아버님은 이미 사망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가끔 이런 환자가 계십니다. 저도 몇 번 담당으로 뵈었어요. 젊을 때 친위부대 계엄군이었던 분 중에 이런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선생님, 아버지 지금 저렇게 정정한데 무슨 말씀이시죠……? 아버지는 늘 저랬다고요.”
“네, 맞습니다. 아버님은 늘 저 상태였습니다.”
“아니, 언제부터요?”
의사는 그거야말로 당신이 잘 알지 않느냐는 듯 지긋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전혀 모른다고 말하려다 가만히 입을 닫았다. 내가 아는 걸 하나 떠올렸다.
중학교 때였나, 아버지를 존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은밀히 나를 불러 아버지의 옛 비밀을 말해주었다. 특수부대원이었던 아버지가 입대한 직후에 겪은 일이라고 했다. 형태를 조금씩 바꾼 친위 쿠데타가 여러 차례 기획되던 시절, 연성 쿠데타를 치밀하게 준비하던 대통령 경호실에서 비밀리에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아버지는 그 비밀부대의 1기 부대원이었다.
부대원들은 입대와 동시에 특수한 명령을 받았다. ‘옥쇄 명령’ 즉 자결하라는 명령이었다. 항명자를 미리 걸러낸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군인이다! 군인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명령에 복종한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손을 높이 쳐들고 그때의 결의를 재현했다.
“헉, 그래서요?”
나는 아버지의 옛 영웅담을 듣는 심정으로 어떻게 됐냐고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야기라니 두근두근했다. 아버지는 지금 눈앞에 있기에 기지를 발휘해 그 상황을 극복했을 거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답은 내 예상과는 한참 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아버지는 웃옷을 올리고 아랫배를 보여주었다. 왼쪽 옆구리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이어진 굵은 선이 보였다. 뱀처럼 긴 상처가 훤히 드러났다. 평소 목욕탕에 함께 간 일도 없어 아버지의 몸을 본 일은 없었다. 아버지도 남에게 자신의 맨몸을 보이는 일을 극구 피해왔다.
“우와!”
부활한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보는 제자처럼 나는 아버지의 상처 자국을 손끝으로 만지며 물었다.
“근데 아버지는 살아 있잖아요? 자결했는데 어떻게 살았어요?”
아버지는 선문답 같은 말을 외쳤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그때 죽으라는 명령을 따른 아버지와 부대원들은 많은 피를 흘렸고 실제로 사망 선언을 받았다. 그런 뒤 특수한 재생 시술을 받고 부활했다. 반대로 그때 항명한 자는 그 자리에서 사살당했고 시신은 유기되었다. 아버지는 상명하복이 군인 본연의 자질이라 했다. 그땐 신기했고 또 멋있다고 생각했다. 죽었다 살아나다니 신화 같았다. 아버지가 영웅으로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죽으라는 명령을 거부할 힘이 없는 비루한 자의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멋있는 척 말했지만 사실 무력했다. 명령을 따라도, 따르지 않아도 죽는 결론밖에 없다는 걸 똑똑히 알았으니까. 특수부대의 기밀 작전으로 아버지는 한번 죽었고 그런 뒤 다시 살아났다. 이 과정에 아버지의 의지와 힘은 아무것도 작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부활한 특수부대원들에게는 특별한 지령이 내려졌다. 항명을 모르는 그들이 충직하고 철저하게 따른 것은 민간인 학살 임무였다. 여자와 어린이, 노약자와 장애인, 성소수자와 파업 노동자 그리고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폭행했다. 민간에 혼란을 일으켜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수뇌에 대한 비난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었다.
몇 년간 이어진 끔찍한 학살과 혼란 후 쿠데타는 연성 과정으로 넘어갔다. 특수부대의 임무도 일상 단위로 내려갔다. 애초 민간인 학살에 투입된 특수부대원은 수천 명 수준이었으나 쿠데타가 완료된 뒤에도 이들은 사회 곳곳에 잠입해 약자를 타겟으로 삼아 폭행과 상해를 계속 이어갔다.
한 시절 쇠락했던 검경언 세력이 위헌해산당한 옛 정당 관계자들과 세를 규합해 일으킨 쿠데타는 성공했다. 쿠데타가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을 초래한 후 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늘어난 노동시간과 빈부격차, 물가 폭등과 자살자 속출로 국가 소멸 상태에 접어들었다.
얼마 후 친위부대는 ‘출산 계엄령’을 선포했다. 배란을 유도하고 임신하는 일, 민족을 이어가는 일을 지속해야 했다. 여성을 관리, 아니 진압해야 했다. 성적 폭력을 용인해 강간도 출산으로 이어지도록 사회적으로 허용했다. 대한민국은 출산 정책을 군사작전화했다. 전쟁의 논리를 출산과 인구 재생산에 적용시킨 것이다. 임신 출산 가용 인구라는 판단 하에 자살한 여자를 살려냈다. 군인에게 적용되었던 재생 시술은 호신 시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여성에게 시술되었다. 출산 적령기 여성들을 선별해 부활시켰다.
비상시국 계엄령에 이은 출산 명목의 일상 계엄령, 두 번의 계엄이 유효하게 한국 사회를 관리하고 있을 때 한국 남성의 강간 및 여성 살해 욕구는 전염병적 성격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왜곡된 인터넷 문화와 성 문화, 처벌의 허술함 등 일반론으로 해석되었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특수부대원처럼 옥쇄 명령을 받지는 않은 젊은 세대 남성들에게 어떻게 여성 살해 욕구가 어떻게 번진 것인지 주목했다. 한때 신종 독버섯이 원인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정력제 생산을 위해 감금, 학대당한 곰 사육장 주변에 갑자기 증식한 독버섯이 있었다. 이 버섯 또한 정력제로 주목받으면서 각종 보양식과 전골의 단골 식재료가 되었다. 전골 체인점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끈 뒤 폭력성을 띄는 전염병의 원인으로 버섯이 지목되었다. 그러나 학대 동물 구조를 위해 곰 사육장에 들렀던 외국인 남성이 버섯을 먹었으나 여성 살해 시도를 보이지 않는 사례도 드러났다.
한국 남자의 여성 살해 전염병은 다소 특수했다. 징병제와 함께 상명하복이 일상인 군사 문화와 군대를 답습한 노동환경도 거론되었다. 그러나 특정한 원인이나 유전적 요인 없이도 여성 살해는 세대를 이어가며 재생산되어왔고 이 점은 매번 사회학자나 인류학자 의학 연구자들의 가설을 무너뜨리곤 했다.
대한민국은 관광객의 방문 및 체류를 금지하는 나라로 지정되었다. 지정국가가 늘어갈 때마다 한국 남성들은 피부색이나 문화적 특징을 빗대어 그 나라 여성에게 성적 매력이 없다며 조롱했다.
누나의 오피스텔을 나오며 나는 공복을 느꼈다. 누나가 한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너 때문이야! 네가 문제야!”
나는 아버지처럼 자결한 적이 없었다. 죽었다 살아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
정작 아버지처럼 죽었다 살아난 것은 누나다. 내게 아버지를 죽이자고 말했던 때 누나는 말했었다.
“아버지는 이미 글렀어. 이미 시체라고. 근데 넌 도대체 왜 이럴까? 시체도 아니면서.”
누나는 아버지는 이미 포기했다면서 그때도 지금도 내가 전염된 것 때문에 절망한다고 말했다.
“전염이라니?”
누나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너는 왜 치료가 안 되는 거야…….”
“내가 뭘?”
“너는……, 귓구멍이 막혔잖아!”
*
밖으로 나오니 수많은 여자가 보였다. 거리에선 썩은 냄새가 났다. 이들 중 누가 특수부대원들처럼 죽었다가 재생한 여자일까.
우리는 죽어버린 여자들과 살고 있었다. 죽은 여자들을 억지로 되살린 곳에서 살고 있었다. 살아있는 여자들은 우리를 도통 상대하지 않더니 이제는 죽은 여자들도 우리를 무시한다. 다들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거다. 자궁을 활용하기 위해 재생시킨 여자들이 자신을 부활했다고 느끼기는 할까?
누나는 그때 경찰서에 찾아가 아버지를 성폭행범으로 신고했지만 곧 낙심해 돌아왔다. 경찰관에게 잔뜩 설교나 듣고 돌아온 뒤 누나는 강간 따위 이 나라에선 범죄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누나의 일로 함께 뛰어다니던 엄마도 그 후 자살을 시도했다. 방에 놓인 것은 호신 시술을 받은 후로도 절대로 꼼짝하지 않는 엄마의 시체였다.
주은은 회사와의 소송에서 패소한 후 딸을 임신한 몸으로 자살했다. 그날 주은을 병원으로 옮긴 뒤 나는 호신 시술을 결행했고 그렇게 재생한 주은과 결혼했다. 엄마에게 설명을 듣고 윤채는 이 일들을 일찍 알았다. 내 딸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죽어 버린 며느리와 억지로 재생시킨 손녀를 돌보려 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내 죄야, 하던 할머니의 말버릇은 자기 아들의 죄를 대신 갚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리지도 않고 여자들이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흐느적거리던 여자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던 사이, 한 남자가 등 뒤에서 조롱했다.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쯧쯧.”
좀비가 된 주제에 여자들의 눈빛이 오만하다며 남자들이 불쾌함을 표했다. 입안에 쓴맛이 돌았다. 이건 전염이 분명했다. 우리는 자결하지 않았고 아버지들을 존경하지도 않았지만 이 강력한 여성 살해 전염병 속에 있었다. 집단감염이었다. 그런데 죽은 여자들의 편에 서지 않은 것만으로도 질병을 앓고 있다는 걸까? 같이 싸우지 않은 것, 폭력에 화내지 않은 자들도 이미 감염되었다는 걸까?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곧이어 기괴한 땅울림 소리가 났다. 탱크 부대가 시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주변 남자들이 군대를 향해 박수를 쳤다. 좀비가 된 여자들이 곧 소탕될 모양이었다.
“쯧쯧,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들은 국민이 될 수가 없지.”
나는 남자들의 말을 들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진짜 좀비인 아버지는 아직도 병실에서 호령 중이었지만 좀비라 불리는 건 언제나 여자들 뿐이다. 군사 정권에 의해 이미 죽은 아버지들과 그 아버지들 때문에 죽어간 여자들은 둘 다 죽은 상태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완전히 달라 보였다.
탱크가 굉음을 울리며 천천히 광장에 진입했다. 다국적 부대로 보이는 외국 용병들이 우리를 가리키며 무언가 수신호를 교환했다. 흥분한 남자들이 환호했다. 여자들을 모두 소탕하라고 외쳤다. 거리에 쓰러진 소녀들을 능욕할 생각인지 몇몇 남자들이 왁자지껄했다. 그리고 탱크에는 여러 나라의 옛날 전범기가 붙어 있었다.
저건 어느 나라 군대지? 국내 문제를 외국 세력에 의해 정돈하게 되는 일도 멋쩍은 일인데……. 나는 자주 들렀던 중도 성향의 정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보았던 내용을 떠올리며 추리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웃 나라와 먼 나라의 정치 세력들도 젠더 분열 및 외국인 혐오 획책에 세심하게 힘을 기울였다. 강대국들의 집권자들은 제도적인 차별 조장에 나섰고 각 나라는 힘차게 손을 맞잡았는데 그 나라 중에서도 한국의 궤멸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그러자 남은 나라들의 다음 선택은 손쉬웠다. 이 나라 남자들의 오랜 박탈감을 조금만 자극하면 나라 전체가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저들은 알았다. 정치 경제적 침탈을 원했던 네오나치 연합국들로선 원자폭탄이나 정치적 지배보다 손쉬운 일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자들이 탱크에 환호하고 있던 바로 그때 한강에 배가 한 척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여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승선하려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부당하고 있어 주변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들 사이에 낯익은 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와 엄마, 누나, 그리고 아내와 딸이었다. 여자들이 서로를 이끌어 승선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들은 죽어서도 서로를 걱정하며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연쇄에 나만 없었다.
잠시 후 커다란 폭죽이 발포되었다. 거의 동시에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남자들 무리 사이에 불길이 일었다. 탱크를 향해 손을 흔들던 그 모습 그대로 남자들이 커다란 화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잠시 후 가까운 곳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 한순간에 몸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뱃속에서 끌어올린 비명이 터졌다. 그리고 그 순간, 사방에서 높은 데시벨의 비명이 귀청을 찢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는 남자들은 입을 위아래로 크게 벌린 채 얼굴 가죽이 벗겨지고 있었다.
여자들이 크게 벌린 입을 뻐끔거리는 장면이 겹쳐 보였다. 찢어질 듯 입을 벌린 여자들은 금붕어처럼 입만 벌린 것이 아니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뜨거워서가 아니라 시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이 화염에 휩싸이기 전까진 여자들의 비명에 시끄러워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누나가 말한 내 증세라는 게 바로 이거였을까?
“너는 왜 치료가 안 되는 거야…….”
“내가 뭘?”
“너는……, 귓구멍이 막혔잖아!”
우리 집 가훈은 이랬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이제야 제대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줄곧 죽은 자들과 함께였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 그동안 나만 혼자 살아남았었다는 걸 알았다. 선문답 같은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불타오르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다 건물 옆구리에 삐죽 솟은 철근을 향해 다가갔다.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머리통을 관통하도록 철근 위로 쓰러지며 귀를 뚫었다. 이건 아버지의 특수부대가 이곳에 대대로 살포한 명령 체계와 전염성에 마지막으로 항명하는 일이라고, 이제야 믿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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