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상명 그리고 하복

2025년 1월 통권 232호

(일러스트레이터: 박재령)

1

 

아버지가 자신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산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잘난 불륜을 멋지게 포장하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엄마 아닌 다른 여성과 나란히 서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걸 몇 번 목격했다. 내가 본 횟수만 꼽아봐도 아버지는 실제로 서너 명 정도의 여성과 내밀한 관계였다. 아버지는 외모도 매력이 없을뿐더러 옷차림도 성격도 너저분한 편이었는데 내연 관계인 여성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버지는 다른 여성을 만날 때마다 다른 세계를 느끼며 뿌듯했을까. 아버지 말에 따르면 그랬다. 가족에게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버지는 늘 다른 차원의 다른 삶을, 자신이 포기하지 않은 기회비용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한가지 삶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특권처럼 보이는 자유였다.


그런 아버지의 좌우명이자 우리 집 가훈은 이랬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희생한 적은 없었다. 약간이라도 희생이나 양보가 필요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정한다. 누구 말 들으며 산 적은 없다.”


즉 아버지가 말하는 희생은 자신 이외의 가족들에게만 강요되는 미덕이었고 자기 결정권은 자신에게만 허락되는 거였다.


아버지는 말과 행동이 언제나 앞뒤가 안 맞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합리화 속에 살았다. 상대의 굴복을 통해 권위를 확인받으려 폭언과 폭행을 달고 살았다. 합리적인 척 위선조차 부리지 않았다. 어릴 때 아버지를 존경한 적도 있었지만 커가면서 지켜본 아버지의 말과 행동은 너절하고 구차했다. 자기 합리화란 수식이 꼭 필요할 만큼 아무것도 없는 시시한 인생이었다.


나는 적어도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었다. 아버지 때문에 삶이 굴절한 할머니와 엄마, 누나의 삶을 보며 나는 각오했다. 불안정한 가정환경 속에서 나는 적어도 아버지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리라 확신했다. 아버지가 누리고 있는 알량한 사회적 성취 따위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수준 이하의 아버지를 극복해 평범해지는 것, 그게 내 인생의 목표였다.


아버지와 달리 나는 특권을 원한 적이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가정을 꾸려 한 여성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보니 ‘남들만큼’이라는 일면 간단해 보이는 기준점에 도달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아니, 매우 어려웠다.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일, 또 열심히 아이를 길러내는 일, 사회의 일원이 되는 뻔한 일이 어떤 남자에겐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처럼 지방에 살거나 연봉이 낮다면 더욱 힘들다. 퇴근 후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는 집에 귀가해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반기는 상상은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꿈을 말하는 것 자체로 이미 특권이라 한다. 고작 이 꿈이 사치라고? 따뜻한 밥상은 꿈꾸는 것이 착취라고?


아버지 시대와 우리 시대는 완전히 달랐다. 아버지 세대가 누리던 것을 비슷하게나마 재현하려면 우리 세대는 막대한 자원이 필요했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바꿀 힘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초능력이 있다면 투잡 쓰리잡을 뛰어 1인분의 월급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경제적 조건이 따라주지 않으니 가정을 꾸리기는커녕 연애나 썸조차 시작할 수 없었다. 지방대에 진학해 졸업한 후, 지역의 작은 회사 면접에조차 족족 떨어지면서 내가 평균적인 남자에도 못 미친다는 굴욕적인 사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토록 경멸했던 아버지만큼도 되지 못하는 인생이라니, 평범한 일들조차 시작되지 않을 인생이라니, 그땐 극도의 초조함과 패배감을 맛보았다.


지방의 기숙학교를 골라 고교에 진학한 이후 집에는 자주 가지 않았다. 아버지 이외의 다른 가족들을 마주하는 일도 상당히 괴로웠다. 집안의 여자들 역시 문제투성이였다. 아버지의 폭언과 폭행에 휘둘린 피해자들이긴 했으나 함께 지내기엔 괴로운 존재들이기도 했다.


엄마는 몸과 마음이 진즉 쇠약해진 후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부터 심한 우울증을 얻어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잠든 방에선 생선 썩는 듯한 악취가 풍겼다. 엄마의 우울증 초기부터 나와 누나는 방치되어 살았다. 그나마 나는 고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집에서 탈출했지만 누나는 집에 머물면서 조현병을 앓았다. 어렸을 때 마치 엄마처럼 나를 돌봤던 누나도 어느 순간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할머니가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았다. 조부모 집을 월세로 돌려 생계를 보조한다는 명목이었고 집에 돈 한 푼 주지 않던 아버지는 딱히 반대하지도 찬성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밤늦게 집에 와 잠만 잤고 주말에는 낚시나 동창 모임을 핑계로 거의 집에 없었다. 아버지가 뭉개버린 지붕 아래에 세 여자만이 쓰러져있었다. 내가 머물 곳도 없었다. 할머니가 집에서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자기 아들을 거의 죽일 듯 날뛰는 것도 큰 문제였다. 할머니 때문에 아버지가 저 모양이 된 게 틀림없었다. 엄마나 누나는 아버지 때문에 저리된 거니 일종의 악순환이었다. 나만이라도 이 연쇄에서 벗어나야 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유독 누나를 엄하다 못해 모질고 독하게 대했다. 누나를 단속하는 것이 마치 가정을 다스리고 더 나아가 나라를 관리하는 일이라도 되는 일인 양 굴었다. 그래서인지 자주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언급하며 누나를 닦달했다. 종종 요즘 젊은 여자들을 향해 욕바가지를 쏟았는데 집에서는 누나가 대표로 욕을 먹어야 했다. 아버지는 ‘싸가지없고 무책임하고 허영심 많은 여자들’을 ‘제압’해야 한다는 듯 누나에게 분을 쏟았다.


혹시 할머니에 대한 복수일까? 아버지는 어릴 때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를 누나에게 쏟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유를 짐작하거나 분석하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폭력에 의미가 붙을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그런데 누나도 제정신이 아닐 때가 많았고 꼭 할머니처럼 굴었다. 아버지를 무능하다 비웃는 게 딱 그랬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군대 시절 무용담까지 꺼내 모욕하면서 썩은 냄새가 난다거나 역겹다고 말하곤 했다. 굳이 아버지를 자극해서 뭐 하나? 나는 누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누나가 약하고 아픈 사람이란 것을 알지만 가끔 주변 모두에게 고약한 생떼를 부리는 누나는 자기 약함을 잘 모르는 것도 같았다. 누나가 괴로워하는 제 팔자도 자신이 꼰 것이다. 누나를 볼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0대 후반에 조현병에 시달리던 누나는 스무 살이 조금 넘은 직후 자살을 시도했고 그 후 자살시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특단 조치인 ‘호신 시술’을 받았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에게 일상을 되찾게 하는 물리적, 화학적 시술이었다.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누나에겐 보호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도와야 했다. 나는 내 앞가림도 정신없는 처지라 누나를 도울 수 없었지만 가족이나 사회가 나서서 했다.


누나의 호신 시술을 강행한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직업군인이었던 시절에 정신 교육의 일환으로 비슷한 시술을 받았다며 안전한 시술이라고 장담했다. 아버지 말마따나 여자가 생존하는 게 더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누나에게 유난히 엄격하게 굴었던 것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투박한 방식이나마 아버지의 책임감이려니 생각했다.


한때 꼬장꼬장했던 할머니도 점점 쇠약해졌다. 아무리 아버지를 죽이려 날뛰어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호신 시술을 받은 후 누나는 방 안에만 틀어박혔다. 엄마는 이 모든 상황 속에 눈과 귀와 입을 닫았다. 나는 고향 집을 거의 찾지 않게 되었다.



그즈음 만난 주은은 웃음이 화사한 여자였다. 시험공부 때문에 매일 들르던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추파를 던지는 진상 손님 여럿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도 정색하거나 불쾌함을 티 내지 않으며 일하는 모습이 꽤 듬직해 보였다. 언제 어떻게 말을 걸어 볼까? 나는 애만 태우다 그녀의 늦은 퇴근길을 몇 발짝 거리를 두고 동행했다. 그러다 어떤 배 나온 아저씨가 그녀가 퇴근하는 카페 앞에서 주은의 팔을 끌어당기는 걸 보았다.


“나 보고 웃었잖아. 그래서 기다렸는데?”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게 남자에게 설명했다.


“선생님, 저는 모든 손님 앞에서 웃습니다. 아르바이트에 채용될 때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고 계약서를 써서요.”


명쾌한 거절이었으나 그녀는 남자를 대놓고 경멸하진 않았다. 업무 외 시간이긴 하지만 이럴 때 손님을 함부로 대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저 아저씨는 그녀의 사무적인 웃음을 자신에게 던진 사적인 사인으로 해석한 거야?


상황을 만회하려 아저씨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몇 마디 농담을 던졌지만 반복되는 그녀의 단호한 거절을 듣고 돌변했다. 자신을 스토커 취급하지 말라며 노발대발하기 시작했다.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녀의 몸이 점점 굳는 것을 느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달려 나갔다.


“주은아! 거기 누구야!”


주은을 등 뒤로 물리며 나는 아저씨 앞에서 그녀의 남자친구인 것처럼 굴었다. 그제야 아저씨가 주춤거리다 자리를 떴다. 나는 주은을 돌아보았다.


“괜찮으세요?”


아저씨가 떠난 뒤에도 주은은 모멸감을 느낀 것 같았다. 자기 말에 남자가 물러선 게 아니고 제삼자가 개입해서 물러났으니 말이다. 남자들 사이의 알파 메일 통념에 그녀가 기분이 좋았을 리 없겠지. 하지만 곁에 있는 다른 남자를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마음을 달랬다.


“이럴 땐 남자가 쫓아내는 게 좋잖아요.”


그녀는 안도하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결국 고맙다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은 채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는 그 후로도 매일 밤 그녀의 퇴근 시간을 함께했다. 그녀의 눈을 피해 그녀 주변에 얼쩡거리던 착각 심한 남자들을 넌지시 쫓아내기도 했다. 착각남들 중에는 나를 그의 남자친구로 여기는 이도 있었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느 밤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냥 지금처럼 당신의 밤을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로맨틱한 반응을 기대했으나 그녀는 당혹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비참한 줄 아시나요?”


뭘 또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슬픔에 젖나 싶으면서도 말을 삼켰다. 연약함을 감추고 강인하고자 애쓰는 그녀의 성품도 좋았다.


내 고백을 거절한 뒤 그녀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그리곤 얼마 후 우연처럼 운명처럼 그녀를 다시 마주쳤다. 주은이 새로 입사한 직장 앞에서였다. 나는 그녀의 직장 내 카페로 시험공부 장소를 옮겼다. 그 후로도 불쑥 다가가진 않고 1년여에 걸쳐 그녀 곁을 서성였다. 조심조심 다가가고 싶었다. 


고심 끝에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말도 안 되는 낮은 연봉을 감수하고 주은이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다. 그녀와 가까운 곳에 있고 싶다는 일념이었다.


그녀가 회사에서 해고당했을 때 인사팀 면담 자리에서 뛰쳐나오는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회사는 그녀가 무뚝뚝한 태도 때문에 클라이언트에게 실례를 끼쳤고 사업에 손해를 끼쳤다며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 그녀는 해고당했고 소송을 함께 하며 나는 비로소 그녀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제야 주은은 줄곧 말없이 곁에 있었던 내 노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녀가 세상을 다 잃은 듯, 다시 시작할 이유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을 때 나는 어깨를 내주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네 곁에 있겠다고 말했다. 그날 그녀는 처음 만취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약함을 내 앞에서 드러낸 그녀를 보며 반드시 그녀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생겼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웃음이 조금 희미해진 그녀와 나는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

  

뒤늦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언을 듣고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임종이 머지않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게 오늘 밤일지, 몇 개월 후일지, 혹은 몇 년 후일지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치료비는 아버지 보험과 저금에서 충당했지만 간병비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나 말고 가족 중에 월급 생활자가 없었다. 부모님 의료비를 지원하는 회사 복지 덕에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고집을 부려 제때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증세가 악화되어 병원비도 추가로 더 들었는데 아버지는 애꿎은 의사만 탓했다. 젊은 여성 의사가 뭘 아느냐며 주치의를 바꿔 달라고 크게 항의했다고 한다. 환자 입장에서 항의지 병원 입장에선 난동이었다. 정중한 태도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는 병원 원무과와 주치의를 찾아가 납작 읍소했다. 있지도 않은 아버지의 치매 증세를 핑계 삼아 인류애를 발휘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원래 저런 사람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둘러댈 땐 솔직히 약간 민망했다.


병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예사롭게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정한다. 누구 말 들으며 산 적은 없다.”


나는 아버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숨을 쉬었다. 누가 들으면 다른 데서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언제나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한 듯한 말투였지만 실상 아버지에게 사회적 권력이나 영향력은 없었다. 집 안에서만 다른 가족들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 밖에서는 자기가 뭔가를 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직업군인이었고 상부의 명령 체계엔 납작 엎드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모르는 인간관계나 조직 속에서 좋은 리더로, 그리고 겸손한 어른으로 살았을지도 모르나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뒤에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걸 보니 인덕도 없는 듯했다.


아버지는 침상에 누워 나를 향해 집안의 일들을 당부한다고 했다. 어휴, 아버지, 풍비박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내게 뒷일을 당부한다고요?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말없이 병실을 나섰다. 등 뒤에서 나이 지긋한 간병인에게 쌍욕을 하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망함을 외면하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병동에서 빠져나왔다.


병원비 문제 때문에 집에 들렀을 때 집은 고요했다. 엄마 방에서 풍기는 냄새는 전보다 심했다. 이제는 방에 들어가 인사를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로 들어간 이후 누나는 내게 공격성을 보였다. 누나는 내게 달려들어 외쳤다.


“네가 문제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병원비도 한 푼 내지 않은 사람이 무슨 소린가? 따지려다 꾹 참았다. 누나는 정신을 놓았고 할머니나 어머니는 아버지 치료에 무관심했다. 가족 중에선 병원비는커녕 아버지 장례 준비를 미리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거라는 걸 기뻐하면서 누나는 이참에 자신의 호신 시술도 제거하겠다고 선언했다. 호신이라는 이름의 보호를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호신 시술은 옷을 벗는 것처럼 즉각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시술이 아니었다. 호신 시술을 제거하면 죽을 수도 있었고 누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나는 이 와중에도 죽으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자신을 보호해준 이들의 노력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데에 온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이번에 나 죽으면 제발 날 다시 살리지 마…….”


누나는 흐트러진 몸으로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더니 눈을 부릅뜬 상태로 입을 크게 벌렸다. 비명을 지르듯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리는 거였다. 공포 만화 속 한 장면 같아 누나 표정은 불쾌하고 섬뜩했다. 나는 누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할머니가 방에서 뛰쳐나와 누나를 흔들었다. 


“얘가, 시끄럽게 왜 이래!”


오래전 청력을 상실해 전화도 못 받는 할머니가 누나를 시끄럽다고 타박했다. 할머니는 곁에 선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누나를 욕하고 때리면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할머니야말로 치매 증세를 보였다. 네 아버지는 어딜 갔냐며 내게 소리쳤다. 병실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지만 할머니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언젠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았고 누나와 닮았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받은 트라우마를 누나에게 투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자의적인 연결인지 모르나 할머니와 누나는 기묘하게 닮았다. 그리고 나는 이 집구석과 절대로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았다. 내겐 내 몫의 삶이 있고 내가 누릴 인생이 따로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조현병을 검색했고 심리학 용어 중에 투사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자신의 감정과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상태를 외부 대상에게 투사하는 미성숙한 심리 기제…….


누나는 옛날부터 이상하게 나만 탓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가 벌인 폭언과 폭행 사건까지 내 탓이라 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은 가까워질 듯하면서도 좀처럼 완전히 우리를 찾아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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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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