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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한국천문연구원
시대를 선택하여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천문학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때로 기억되는 20세기 초반을 살아보고 싶다. 장막이 걷히며 우주에 대한 시야가 급격히 확장되던 순간이자, 우주를 이해하던 기존의 관념들이 무너지던 순간을. 패러다임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19세기 후반부터 살아보는 것이 좋겠다. 은하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변하지 않는 우주를 믿었던 시절부터. 한 세기 앞선 18세기 후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인식 구조와 우주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구성원이 모여 사회를 이루듯, 별들로 이루어진 각각의 은하가 독립적인 우주처럼 존재한다는 섬우주(island universe) 개념을 제시했다. 별들의 분포가 곧 우주의 규모이자 형상이라고 여겼던 당시의 이해를 뛰어넘는, 매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통찰이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사유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은하와 우주론의 초석을 놓는 중요한 사고의 전환점으로 남게 된다. 다시 20세기 초반으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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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희한국물리학회 제31대 회장
한국물리학회장. 이 무거운 무게를 감당할 엄두도 내지 않았다. 또한 하고싶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경륜이 쌓이게 되면 서서히 그 시대 그 공간에서의 역할이 주어지는 듯하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 정도의 주변의 압박을 받았으나, ‘나보다도 더 훌륭한 물리학회 회원이 나설텐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까지 있을까?’ 하지만 두번째로 내게 기회가 주어졌을 땐, 정말 뭔가를 바꾸고자 한다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가만히 있는 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에 앞으로 나설 용기를 냈었다. 전국 물리학과를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물리학과를 방문하지 않고 줌으로 미팅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전임 학회장 후보로 나선 분들이 전국의 학교를 방문하면서 결국은 매년 비슷한 얘기들이 반복되는 것 같았고, 해당학과 교수님들의 참석도 그닥 많지 않았기에 별 쓸모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 가면 들러리로 생각할 거라는 주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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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문화평론가
기술은 우리를 어떻게 존재하게 하는가? 2017년 이탈리아 신경외과 의사인 세르지오 카나벨로(Sergio Canavero)는 사지마비 등의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환자의 머리를 뇌사 상태인 사람에게 이식하는 기술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이에 대해 ‘머리 이식(head transplantation)’이라고 명명했는데,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은 2024년에 미국의 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브레인브릿지(BrainBridge)’가 해당 기술을 개발이 완료되었다는 발표를 하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어느덧 우리들 앞에 다가오게 되었고, 우리는 그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2017년 기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기술적인 효용성 이외에도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들이 함께 논의 되어왔다. 하지만 실제 기술의 구현이 눈앞에 도달한 지금, 우리는 실질적으로 머리 이식된 사람들을 어떻게 현재의 공동체에서 제도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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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과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박재령) 1 아버지가 자신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산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잘난 불륜을 멋지게 포장하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엄마 아닌 다른 여성과 나란히 서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걸 몇 번 목격했다. 내가 본 횟수만 꼽아봐도 아버지는 실제로 서너 명 정도의 여성과 내밀한 관계였다. 아버지는 외모도 매력이 없을뿐더러 옷차림도 성격도 너저분한 편이었는데 내연 관계인 여성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버지는 다른 여성을 만날 때마다 다른 세계를 느끼며 뿌듯했을까. 아버지 말에 따르면 그랬다. 가족에게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버지는 늘 다른 차원의 다른 삶을, 자신이 포기하지 않은 기회비용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한가지 삶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특권처럼 보이는 자유였다. 그런 아버지의 좌우명이자 우리 집 가훈은 이랬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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