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Street

현대 우주론의 탄생 -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2025년 1월 통권 232호


시대를 선택하여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천문학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때로 기억되는 20세기 초반을 살아보고 싶다. 장막이 걷히며 우주에 대한 시야가 급격히 확장되던 순간이자, 우주를 이해하던 기존의 관념들이 무너지던 순간을. 패러다임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19세기 후반부터 살아보는 것이 좋겠다. 은하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변하지 않는 우주를 믿었던 시절부터. 


한 세기 앞선 18세기 후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인식 구조와 우주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구성원이 모여 사회를 이루듯, 별들로 이루어진 각각의 은하가 독립적인 우주처럼 존재한다는 섬우주(island universe) 개념을 제시했다. 별들의 분포가 곧 우주의 규모이자 형상이라고 여겼던 당시의 이해를 뛰어넘는, 매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통찰이었음이 틀림없다. 그의 사유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은하와 우주론의 초석을 놓는 중요한 사고의 전환점으로 남게 된다. 


다시 20세기 초반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두 천문학자 섀플리와 커티스는 '우주엔 우리은하가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학술 토론의 무대에 올랐다. 후에 '대논쟁(big debate)'라 이름 붙은 이 논쟁은 천문학계뿐만 아니라 당시의 과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그들이 관측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우주에 대한 이해의 관점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논쟁 자체가 우주와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논쟁은 우리은하의 규모에 대한 관점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세페이드 변광성으로 우리은하의 규모를 측정했던 섀플리는 우리은하의 규모가 기존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의 분포가 곧 우주라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발견된 초신성의 밝기가 일반적인 초신성에 비해 훨씬 어둡다는 점에 주목했던 커티스는 우리은하의 작은 구조물로 간주했던 안드로메다 성운이 실은 우리은하로부터 멀리 떨어진 독립된 은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로써 우주의 규모가 기존의 통념보다 훨씬 넓으며, 그 안에 은하들이 다수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논쟁은 몇 년 뒤, 허블이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을 관측함으로써 종식되었다. 세페이드 변광성으로 거리를 측정한 결과,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은하 밖에 있는 은하라는 사실이 확증된 것이다. 이제껏 우주라고 생각했던 우리은하가 실제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은하 중 하나임이 밝혀짐으로써, 천문학계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8세기 칸트의 섬우주 가설은 이렇게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게 된다.  


그림 1 . 밤하늘에 보이는 은하수. 은하수는 우리 은하의 단면을 바라본 모습에 해당한다. 동그라미로 표시한 안드로메다 은하는 별도의 은하라기보다 희미한 성운처럼 보인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은하수가 수많은 은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인류가 우주의 시야를 비약적으로 확장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세페이드 변광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변광성은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별을 일컫는데, 그중에 세페이드 변광성이 매우 특별한 존재임을 알아챈 이는 리비에트였다. 그녀는 하버드 천문대에서 사진건판을 들여다보며 별들의 상대적 위치와 밝기, 색 등을 수치화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던 계산원, 이른바 '하버드 컴퓨터' 중 한 명이었다. 여성이 학문의 기회를 얻는 것이 좀처럼 어려웠던 시대였지만, 그녀는 꼼꼼한 데이터 분석 능력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광 주기와 최대 밝기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밝기 상관관계가 특별한 이유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를 측정함으로써 그 변광성의 절대 밝기를 알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멀리 떨어진 등대의 출력을 알게 된다는 것과 같다. 관측자에게 도달하는 빛의 세기와 등대의 본래 출력 간 비율을 통해 등대가 떨어져 있는 거리를 추산할 수 있듯, 세페이드 변광성의 절대 밝기와 실제 관측한 겉보기 밝기의 차이를 통해 대상이 떨어진 거리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즉, 세페이드 변광성이라는 가상의 줄자를 활용함으로써 우주의 구조와 규모를 측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2. 시간에 따라 밝기가 변화하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광도 곡선(왼쪽)과 세페이드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 간의 상관관계(오른쪽).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광주기는 질량과 내부 구조에 따라 다른데, 리비에트는 변광성의 주기와 절대밝기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출처:ESA/NASA/JPL-Caltech/Carnegie). 


허블은 안드로메다은하의 발견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성운으로 알려졌으나 은하일 가능성이 높은 천체들을 대상으로 세페이드 변광성 관측을 시도하여 거리를 측정하였고, 그중 수십 개의 천체가 독립된 은하임을 확인하였다. 한편, 허블의 동료 슬라이퍼는 성운(나중에 은하로 밝혀짐)들을 대상으로 적색편이(도플러 효과에 의해 멀어지고 있는 대상이 더 붉게 보이는 현상)를 관측한 바 있다. 허블은 세페이드 변광성으로 측정한 은하의 거리 데이터와 슬라이퍼가 측정한 은하의 속도 데이터를 비교한 끝에,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우리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허블의 법칙이라 이름 붙은 그의 발견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최초의 관측 증거가 되었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정적인 우주관을 선호했던 학자들은 이론적 가설로만 제안되었던 우주의 팽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팽창이 가져다준 충격은 대중에게도 여파를 미쳤다. 우주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와닿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과학적 발견은 우주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주 팽창설을 최초로 제시한 이는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이자 천문학자였던 르메트르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연구하고 응용한 끝에 팽창하는 우주 모형을 제안하였으며, 우주 팽창의 근거가 되는 허블의 법칙을 예측한 바 있다. 또한, 팽창하는 우주의 시작은 특이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현재 '빅뱅 이론'이라 불리우는 표준 우주론의 근본이 바로 르메트르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림 3. 제임스웹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우주 초창기의 원시 은하 모습.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부터 점으로 보이는 것 까지, 규모가 다를 뿐 모두 은하에 해당한다. 관측된 빛은 지금으로부터 130억 년 전에 은하에서 출발한 빛에 해당한다.


허블의 발견 이후 르메트르의 우주 팽창설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지만, 빅뱅 이론은 한동안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하나로 남아있었다. '빅뱅'의 결정적인 관측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20세기 중반 펜지어스와 윌슨이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오는 마이크로파를 관측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가모프는 이를 빅뱅의 잔여 복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우주 초기에 방출된 고온 상태의 복사선이 우주 팽창으로 온도가 낮아져 오늘날의 '우주배경복사'로 관측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주배경복사라는 관측 증거가 확보됨으로써, 빅뱅 이론은 비로소 표준 우주론의 핵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빅뱅 이론이라는 뼈대에 인플레이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등이 하나씩 결합함으로써 현대의 표준 우주론이 확립되었다. 표준 우주론은 그간 우주의 다양한 모습을 성공적으로 설명해 왔다. 태초의 빛이라 할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의 특성부터 은하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우주 거대구조물의 형성 과정, 정체불명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지배하는 우주의 진화까지. 그러나, 표준 우주론이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의 관측 결과들은 표준 우주론의 유효성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과거에서 배울 수 있듯, 이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우주의 모습이 여전히 불완전함을 시사한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과정은 겸손을 배우는 여정과도 같았다. 지구도 태양도 우주의 중심이 아닐뿐더러, 우리은하 또한 무수한 은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며, 그 시작은 특이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하나씩 깨달아왔다. 현재, 우리는 우주 대부분은 정체불명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사실을 마주하고 있다. 과학은 인간이 중심이 아닐뿐더러, 인간의 미지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철학적 세계관과 우주론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둘 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궁극의 질문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일까.

댓글 1
  • 정민섭 2025-01-10 13:48:13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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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