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의 왕이 이르니”는 판타지와 SF 단편들이 두루두루 섞여 있는 소설집이다. 그 중에서 “성간 행성”은 제목부터 SF다움을 물씬 내뿜을 뿐더러 내용도 SF 다운 소재로 가득 차 있는 단편이다. SF 중에는 in medias res 그러니까, 중간에서 막바로 시작하기 수법을 사용해서 독자와 일종의 수수께끼 대결을 하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는 편인데, 이 소설도 그렇게 출발한다.
예를 들어, 만약에 “나는 꼬리를 꺼내서 자랑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그런 꼬리는 처음 보는데’라고 소리쳤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고 치자. 사람은 꼬리가 없기 때문에 처음 읽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중간에서 막바로 시작하기 수법을 썼기 때문에, 소설 앞부분에서 차근차근 누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나와 있지 않다.
대신 소설을 읽다 보면 조금씩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을 따라 가면서 이야기 속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와 단서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독자는 이런저런 상상과 추측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독자는 결국 작가가 꾸민 세상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 소설은 꼬리 달린 외계인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구나”하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도대체 뭔 말하는 지 모르겠다” “하여튼 SF는 어려워”라고 독자를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잘만하면 이렇게 이리저리 추측하는 재미가 SF스러운 재미를 더욱 살려 주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를 읽는 과정이 알 수 없는 세계를 조금씩 탐험해 가는 과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성간 행성”도 그렇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컴퓨터인데 컴퓨터가 오래간 만에 재작동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컴퓨터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며, 도대체 왜 컴퓨터가 오래간만에 작동 될 수 있었는지, 컴퓨터가 왜 작동 중단 되었는지, 하는 내용들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조금씩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 가면서, 어느 낯선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신비롭고 이상한 이야기의 흥취를 천천히 더듬듯 느껴 볼 수 있다. 이런 맛이 살아 있기에 이 소설은 시작부터 즐겁다.
내가 더 눈 여겨 볼만 했다고 느낀 것은 이 소설의 핵심 갈등이다. 이 소설에 담겨 있는 핵심 갈등은 이 소설에서 사람들이 세상 전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은 그 모든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거대한 우주선 역할을 하는 시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1950년대의 인기 SF 작가인 로버트 하인라인이 그의 대표작에서 하나에서 한번 잘 활용했기에 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소재다.
만일 이 소재로 아주 정형화된 이야기를 만든다면 대략 이런 식으로 흘러 갈 것이다. 커다란 배 한 척이나 커다란 건물 하나 정도 되는 공간이 완전히 밀폐된 채로 우주를 날아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아예 살림을 차리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수 백 년, 수 천 년을 날아 다니는 가운데 시간이 흐른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상당히 자연스럽다. 우주는 굉장히 넓고 별과 별 사이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속의 행성들은 그나마 우주 로켓으로 몇 개월 정도면 갈 수 있지만, 태양계 바깥에 있는 별이라면 가장 가까운 별이라도 40 조 km 이상 떨어져 있다. 가까운 별이 아닌 어지간히 떨어져 있는 별들은 그 10배, 100배 떨어져 있는 경우도 은하수에는 매우 흔하다. 물론 SF 영화에서는 하이퍼스페이스니, 초공간 도약이니 하면서, 마법 같은 방법으로 별과 별 사이의 넓은 공간을 어찌저찌 건너 뛰는 기술이 있다고 치고 넘어 가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그러니 우주에서 태양계 바깥의 어떤 목적지에 가야 한다면 아주 장대한 계획을 세워 두고 수 천 년, 수 만 년 동안 대를 이어 가며 날아 가는 방법도 오히려 현실적인 기술이다.
만약 아주 커다란 우주선 속에 집도, 공원도, 공장도, 직장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면서 수 천 년의 세월을 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주선 속에서 생활하면서 사람들은 긴 역사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주선 안에서만 오래 지내다 보면, 어찌저찌 실수와 오해가 겹쳐 그 우주선 속 세상이 우주 전체라고 그저 믿게 되는 것 아닐까? 우물 안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생각에 우주선 속의 사람들이 모두 빠질 수도 있다.
단지 내 느낌일 뿐일 수도 있는데, 로버트 하인라인 작가가 이미 한 세대 내지 두 세대 전에 제대로 써먹은 이 소재가 왜인지 얼마 전 한국 SF 작가들 사이에서 한 동안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기억을 돌아 보면, 이 소재를 활용한 한국 작가의 SF 단편을 읽어 본 것만 해도 세 편은 되는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왜 이게 한국 SF에서 인기 있는 소재였을까?
고정 관념에만 갇혀 답답하게 돌아 가는 현실의 세상사를 보다 보니, 조그마한 우주선이 우주 전체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등장하는 이야기가 워낙 뜨끈하게 와닿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유일한 세상이라는 관념을 깨뜨릴 수 있는 이야기가 SF의 가능성을 후련하게 열어 젖혀 보이기 좋기 때문이라고 한국 작가들이 유독 깊게 공감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2000년대 초에 여러 분야에서 많은 유행을 만들어 냈던 <<매트릭스>> 영화의 시대를 즐긴 한국 SF 작가들이 이런 소재에 이끌렸기 때문일까? 컴퓨터 게임 속 세상을 소재로 자주 접한다면 이런 소재는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렇다면 <<매트릭스>>가 유행시켰던 “우리가 아는 세계 자체가 가짜다”라는 소재를 <<매트릭스>>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다른 방식으로 풀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실 커다란 우주선 속일 뿐이다”라는 이 이야기가 과연 적합해 보인다.
아니면, 이런 밀폐된 세계, 갇힌 세상에 대한 생각이 요 근래 우주 탐사 작업의 결과로 점점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까? 목성의 유로파나 토성의 엔켈라두스 같은 위성을 실제로 탐사해 본 결과를 보면 이런 곳은 커다란 얼음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이기 때문에 물은 아주 풍부하다. 만약 그 얼음 덩어리 속에 온천이나 화산 같은 곳이 있어서 그 얼음을 열기로 녹일 수 있다면, 물이 출렁거리는 구역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얼음 속 녹아 있는 물 덩어리는 바다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유로파 속의 얼음이 녹아 있는 구역은 지구의 바다와 그 규모를 비교해 볼 만할 정도로 큰 물 덩어리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아마 이런 곳들이 있다면 그 중 적당한 지역에서는 물이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구역도 있을 것이다. 물도 있고 온도도 적당하다면, 그곳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상상의 영역일 뿐이지만 이렇게 얼음 밑의 물 덩어리 속에서 생명이 생겨 난다는 것은 우주 전체로 보면 어쩌면 지구에서 생명이 생기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일 지도 모른다.
지구에 생명이 생기기 위해서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위치에 지구가 자리잡고 안정적으로 꾸준히 태양 주변을 돌면서 동시에 우주에서 떨어지는 소행성이나 혜성으로부터 지구가 너무 큰 피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이런 조건이 우연히 모두 달성 되기란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얼음 속 물덩어리라면 소행성이 떨어지는 것 즈음은 겉부분의 얼음 껍질이 자주 막아 줄 것이다. 게다가 바깥 온도와 별 상관 없이 내부의 화산과 온천으로 열기가 생기는 곳이기에 이런 지역은 우주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 태양 주변을 돌지 않고, 이 별과 저 별 사이를 오가는 위치에 있는 성간 행성이라고 해도 상관 없다.
만약 그런 곳에서 정말로 생명이 태어나 외계인이 될 정도로 발달한다고 상상해 보자. 지구 생명체들은 매번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 마다 우주 저 편에서 빛나는 별들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세상과 우주를 넓게 상상하는 것을 지구인들은 당연히 여기며 역사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런데 그와 달리, 얼음 속 물 덩어리에서 태어난 외계인은 항상 세상은 두꺼운 얼음 덩어리로 뒤덮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아주아주 커다란 얼음 어항 속의 물고기 신세다. 그 얼음을 깨고 바깥으로 나가면 수많은 다른 행성과 별들이 펼쳐진 무한할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다고 상상하기란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로, 그 바깥을 알게 되었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까? 만약 지구인들이 그곳을 방문해서 얼음을 깨고 외계인들을 향해 손을 내민다면, 하늘이 깨지고 하늘 바깥의 다른 세상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소재를 택한 이유가 뭐든 간에 위래 작가의 “성간 행성”은 이런 재미난 소재를 택해 놓고 로버트 하인라인과는 또 다른 길을 간다. 이게 이 소설의 진짜 재미다. 우선 위래 작가는 “우리가 사는 곳은 밀폐된 우물 안이다”라는 소재를 다른 소설처럼 충격적인 깜짝 반전으로 꼭꼭 숨겨 두었다가 터뜨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제목부터가 “성간 행성”이지 않는가? 숨겨 두었다 터뜨리는 놀라운 사연이기는 커녕, 제목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면서 소설을 읽으면 첫 두 페이지 정도를 읽는 사이에 다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놀라움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이리저리 감추고 뒤틀어두는 일을 하지 않고, 그 대신에 그런 이상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 거리들을 시원시원하게 여럿 풍성히 던져 준다. 예를 들어, 너무 오래 동안 강력한 컴퓨터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컴퓨터가 마법적인 신이라고 생각하는 우스꽝스럽고도 서글픈 모습이라든가, 워낙 긴 세월 사람들이 과학적인 사실과 단절되어 지내다 보니 과학을 오히려 비현실적인 고대 신화로 치부하고 있는 상황 등등이 이 단편 소설 속에잘 모여서 담겨 있다.
그리고 그렇게 쌓아 둔 기이한 이야기들을 발판으로 삼아, 절정이자 결말이 될 마지막 장면에서는 후련하게 딱 어울리는 화끈한 장면으로 소설을 멋드러지게 꾸며 놓았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위래 작가는 글솜씨를 과시하듯이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장면을 묘사해 두었는데, 이런 묘사로 소설을 이렇게 끝낸다는 것은 재료에 딱 맞는 양념을 쓴 것처럼 잘 들어 맞는 느낌이다. 우주, 세상, 인류 같은 거대한 주제를 다루는 SF 다운 재미가 확 터져 나오면서도, 단편 소설 다운 간결함과 경쾌함은 그대로 잘 산다고 느꼈다. 결말 부분 외에도 컴퓨터가 나누는 대화가 한 세대 전 왕조 시대의 거창한 높임 말투로 되어 있다거나 하는 등등의 잔재미가 잘 살도록 소재들을 잘 배치하고 글을 엮어 놓은 솜씨도 소설을 더 읽기 좋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집에 실린 여러 다른 이야기들도 “성간 여행”과 마찬가지로 기대할 만한 분위기, 독자가 바랄 만한 내용을 믿음직스럽게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특히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르네 브라운을 잊었는가”라는 단편은 기계 몸에 사람의 정신을 입력해 두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흐름이라든가, 등장하는 인물들, 배경, 심지어 이야기가 흘러 가는 속도까지 모두가 1980년대, 1990년대 사이버 펑크물의 분위기를 잘 살려 담았다. “블레이드 러너”라든가 “뉴로맨서” 같은 이야기를 접하고, “이런 이야기를 또 한 번 진하게 맛 봐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읽으면 딱 어울릴 소설이다. 아마 그러면서도 한국 작가의 글을 읽고 싶다거나, 요즘 작가의 글을 읽고 싶다면 거의 완벽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작가는 다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SF의 세부 분류, 모든 SF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소재에 대해 이 비슷한 단편을 쓰겠다고 위래 작가가 도전해 다 하나 씩 글을 써 놓는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소설들이 모여 있게 되겠는가? 그리고 그 내용은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위래 작가는 이미 SF 단편에서 재미를 빚어내는 방법을 다른 분야에서도 잘 써먹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에서 판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동전 마법”이 그 좋은 예시다. 이 소설은 앞 면, 뒷 면을 맞히는 동전 던지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마법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마법을 다른 방향으로 활용하고 다른 대상에 적용해 강렬한 감상을 이끌어 내는 방법은 딱 SF스럽게 구성되어 있다. 마치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 전자회로가 있다면, 그 전자회로를 더욱 발전시키고 계속해서 더 뛰어난 성능으로 개량해서 활용하면 사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다는 식의 발상이기 때문이다.
재미난 것이, 듀나 작가의 SF 단편 중에 이 소설과 제목이 매우 비슷한 “동전 마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듀나 작가의 “동전 마술”은 SF의 틀에 가깝게 구성되어 있는 이야기면서도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와 결말을 꾸미는 방법은 판타지 단편에 훨씬 가깝다. 말하자면 “동전 마법”과 “동전 마술”은 거울에 비친 모습 같은 느낌을 주는 두 이야기다. 오묘한 신비감 속에서 대조적인 현실적인 감정을 보여 주는 쪽은 듀나 작가의 “동전 마술”이고, 극적인 구성에 따라 한 계단 한 계단 디뎌 나가는 재미난 줄거리 속에서 박력을 보여 주는 쪽은 위래 작가의 “동전 마법”이다.
그런 만큼 같은 소설집에 실려 있는 판타지 소설에서 위래 작가가 보여 주는 솜씨도 출중하다. SF, 판타지, 두 세부 장르의 팬이라면 정말 좋아할 만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2
독자님의 정보를 입력해주세요.
* 는 필수항목입니다
첨부파일은 최대 3개까지 가능하며, 전체 용량은 10MB 이하까지 업로드 가능합니다. 첨부파일 이름은 특수기호(?!,.&^~)를 제외해주세요.(첨부 가능 확장자 jpg,jpeg,png,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