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Street

원자 자석의 단체행동

2024년 7월 통권 226호

원자 자석의 단체 행동 


지금 독일은 축구의 열기로 뜨겁다. 독일에서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축구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역대 월드컵 우승국이 유럽 아니면 남미 국가인 것을 보면, 유럽에서 축구가 얼마나 인기 있는 스포츠인지 가늠할 수 있다. 독일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외국인인 나의 눈에는 독일인에게 축구가 갖는 의미는 매우 커 보인다. 평소에 조용하고 무뚝뚝해 보이던 독일 사람들이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늦은 밤에도 거리에 나와 열광하고 나팔을 분다. 평소에는 이런 열정을 어디에 숨겨 두고 있었던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섬이나 마찬가지인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유럽 대륙은 육로로 연결되어있고 사람의 왕래가 자유롭다. 그래서 독일에도 다른 유럽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다. 평소에는 이 점을 실감하기 어려웠지만, 자동차들이 출신 국가를 응원하기 위한 국기를 펄럭이며 거리를 달리는 것을 보니 실감이 난다. 도시의 광장도 마찬가지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스코틀랜드 남자들은 전통 치마를 입고 거리로 나서고, 건장한 덴마크 남자들은 바이킹 뿔을 달고 돌아다닌다. 반면 독일 사람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애국심을 좀처럼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검고, 붉고, 노란 국기를 아주 작게 휘날리곤 한다.


이렇게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드는 생각은, 큰 무리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개인으로서의 행동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붐비는 장소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큰 행사에는 되도록 참여하지 않는 편이지만, 멀리서 바라보아도 이런 현상을 충분히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단체행동을 가능하게 할까? 어떤 상호작용이 이 많은 사람을 하나로 모으고 모두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일까? 왜 어떤 단체 행동은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의 행동은 아마도 사회학이나 심리학 같은 사회 과학의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체 행동이 반드시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보이는 단체행동과 유사한 현상은 물질의 세계에도 일어난다. 바로 물질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 정렬 현상이다. 자기 현상은 물질 안에 있는 수많은 전자가 마치 서로 합의를 한 듯이 행동하는 단체행동이다. 


혹시 지난 글의 독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글의 요점은 이것이었다. 전자가 마치 자석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자전하거나 (스핀 모멘트) 원자핵 주위를 공전하면서 (궤도 모멘트) 마치 작은 자석과 같은 자기 모멘트를 만들어낸다. 혹시 이런 용어가 어렵다면 다 잊어버려도 된다. 결론은 전자 하나하나가 자석처럼 행동한다는 것이고, 원자 안에 있는 전자들이 가진 자성이 더해져 어떤 원자들은 마치 자석과 같이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체가 띠는 자기적 성질은 이 원자 자석이 어떻게 단체행동하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물질 내에 있는 원자 자석들이 어떻게 정렬하는지에 따라서 물질이 갖는 자기적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자 자석들이 서로 전혀 관여하지 않고 무작위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단체 행동하면 냉장고에 붙는 자석과 같이 강한 자석이 된다. 그리고 어떤 물질에서는 한 원자가 바로 옆에 있는 원자와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정렬되어 마치 어느 노래 가사처럼 위아래 위아래를 반복하며 정렬되는 때도 있다.


우물 안에 갇힌 자석


주기율표를 보면 알겠지만, 원소의 가짓수는 118개에 달한다. 그리고 인공 원소들이 합성되면서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자기적 성질을 보이는 것은 이 많은 원소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 연재에서는 주기율표에서 네 번째 줄 가운데에 있는 철(Fe), 코발트(Co), 망간(Mn)과 같이 전이원소라고 불리는 원소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체 주기율표로 봤을 때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물질의 자기적 성질과 관련하여 많은 중요한 발견이 이 영역에 있는 원소들을 연구하며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많은 원소 중 일부만 원자 자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원자 안에서 전자의 행동을 고려해야 설명할 수 있다. 전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다시 전자 개구리가 등장할 때가 되었다. 


이 연재의 첫 글인 <우물 안 개구리의 퀀텀 점프와 고체의 전기적 성질>에서 다룬 내용을 잠시 짚고 넘어가자. 원자 안에서 전자는 원자핵이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서 꽉 붙잡혀 있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자는 원자핵이 만든 퍼텐셜 우물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전자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상황에 부닥치면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불연속적인 값을 가지며, 이를 에너지가 양자화되었다고 표현한다.

이 상황을 왼쪽의 그림과 같이 단순화해서 표현했었다. 전자가 갖는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마치 층과 같이 표시하고, 해당 에너지 층에 전자를 채워 넣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규칙이 있는데, 한 층에는 전자가 두 개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두 개의 전자와 두 개의 에너지 층을 가진 왼쪽의 원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원자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디테일 중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 있다. 바로 전자 개구리의 뾰족한 코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층을 채우고 있는 두 전자 개구리는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개구리가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전자가 갖는 스핀 모멘텀의 방향이다. 그러니 개구리를 작은 자석으로 치환한다면 오른쪽 그림과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같은 에너지 층에 있는 전자의 스핀 모멘트가 같은 방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파울리의 배타원리라는 규칙 때문이다. 이 규칙에 의하면 한 원자에 갇혀 있는 어떤 두 전자도 완전히 같은 상태에 있을 수는 없다. 만약 두 전자가 같은 에너지 층에 있는데, 스핀의 방향까지 같다면 완전히 동일한 상태에 있는 것이고 이는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의하면 ‘불법’이다.


만약 원자가 위에서 표현한 것과 같이 두 개의 전자만 갖고 있다면, 그리고 두 전자가 가진 스핀이 서로 반대 방향이라면 이 원자는 별다른 자성을 갖지 않는다. 두 전자가 갖는 스핀이 서로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자가 알짜 자기 모멘트를 가지려면 홀수의 전자를 갖는 것이 유리하다. 예를 들면 우리의 가상의 원자가 하나의 전자만 갖고 있다면, 자석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


결합과 자성 


앞에서 언급한 논리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물질은 자석에 끌리는 성질을 가져야 한다. 원소 중 절반은 홀수 개의 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럿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질은 대부분 한 원자가 다른 원자와 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 원자의 예를 들어보자. 수소(H)는 모든 원소 중에서 가장 심플한 원소이다. 수소가 가진 전자는 단 하나뿐이다. 그리고 전자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수소 원자는 아주 작은 자석과 같이 행동하고 자석의 자기장에 의해 마치 나침반처럼 돌아가거나 아주 작은 힘으로 끌릴 수 있다. 이런 수소 원자가 가진 자성에 관해 연구한 논문도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외따로 있는 수소 원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수소 원자 두 개가 합쳐진 분자 H2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소 분자라는 것이 단순히 두 원자가 합쳐진 것으로 생각하면 수소 원자가 가진 자기적 성질이 사라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다. 우리는 원자가 아니라 전자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 전자의 관점에서 분자를 만든다는 것은 아주 큰 변화이다. 원자 상태일 때 전자는 원자핵 주위에 생긴 퍼텐셜 우물에 갇혀 있었다면, 두 원자가 모여 만든 분자에서 전자가 두 원자핵 사이에 갇혀 있는 형국이 된다.

두 수소 원자가 분자가 되는 상황은 위의 그림처럼 표현할 수 있다. 각자 떨어져 있던 원자가 분자가 되면 각각 가지고 있던 전자가 둘 사이로 모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두 전자는 한 우물에 함께 갇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두 전자는 새로 생긴 에너지 층에 같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한 층에 함께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대 방향의 스핀을 가져야 한다. 이때 두 스핀은 서로 상쇄되고, 이로 인해서 수소 분자는 자성을 갖지 않는 것이다. 


수소가 아니어도 질소(N), 불소(F), 염소(Cl) 등 많은 종류의 기체들이 원자 상태일 때에는 홀수 개의 전자를 갖기 때문에 자성을 가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분자를 이루기 때문에 자성을 갖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수소가 다른 원소와 결합을 이룰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탄소와 결합을 이루어 메탄 같은 탄화수소를 만들거나, 산소와 결합하여 물을 만들 때도 수소가 가진 전자는 다른 전자와 짝을 이루기 때문에 자성을 잃는다.


자성을 갖는 물질  


그렇다면 어떤 물질이 흥미로운 자성을 가질 수 있을까? 답은 앞의 내용을 이해했다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다른 원자와 결합을 하고 나서도 짝을 짓지 않은 전자가 있는 원자가 자성을 가질 수 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전이금속 중에서 그런 원소들을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원자들이 이웃하는 원자들과 단체행동을 할 때 놀라운 성질을 보이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고체 물질이 보이는 자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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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