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1890년, 새들이 돌아오는 나날 <1부>

2024년 7월 통권 226호

(일러스트레이터: 박재령)


<1부>


사막의 햇볕에 한껏 달궈진 말안장 위에서, 플로렌스 미리엄은 줄곧 208번 동판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결코 좋아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만일 존 제임스 오듀본의 역작 『북미의 새』에 실린 동판화 435점을 플로렌스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다시 나열한다면, 에스키모쇠부리도요를 그린 208번은 오히려 가장 끄트머리 어디쯤에나 놓여야 마땅했다. 플로렌스가 그 새를 특히 싫어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여느 도요새와 마찬가지로 미끈한 유선형 몸과 길게 휘어진 부리를 지닌 우아한 에스키모쇠부리도요를 플로렌스가 싫어할 이유는 단언컨대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언제나 새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오듀본이 책에 실은 조류 497종 가운데서 그 새를 특히 섬찟하게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208번 동판화 속 에스키모쇠부리도요의 모습은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재잘대는 26번 동판화 속 캐롤라이나잉꼬와도, 고개를 쭉 뻗어 다정하게 입맞춤을 주고받는 62번 동판화 속 여행비둘기와도 확연히 달랐다. 이끼 낀 바위에 버티고 선 수컷과는 대조적으로, 하얀 배를 드러낸 채 그저 바닥에 널브러진 암컷. 반쯤 펴진 날개. 힘없이 늘어진 다리. 가만히 누인 목. 그림 바깥을 공허하게 응시하는 새카만 눈. 오듀본은 언제나 사냥당한 표본을 모델로 삼아 작업했으나, 그의 그림 속 새들에게는 살아 있을 때의 생동감이 고스란히 불어넣어져 있었다. 208번 동판화만큼은 예외였다. 208번 동판화에 그려진 것은, 탐조용 오페라글라스 너머의 뜨거운 모래밭 위에서 일렁이는 것은…….


아니야. 전혀 다르잖아. 속으로 단호히 중얼거리며 플로렌스는 일부러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오듀본이 그린 과거의 신기루를 머릿속으로부터 걷어낸 뒤에야, 플로렌스의 오페라글라스는 비로소 지평선 근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생물의 뒷모습을 똑바로 비춰 주었다. 과연 에스키모쇠부리도요와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오듀본이 그린 나머지 496종의 새하고도 닮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날개가 달려 있다는 사실 정도가 그나마 꼽을 만한 공통점일까? 하지만 투명한 피막으로 된 그것의 날개는 새보다 박쥐에 더 가까웠고, 뱀처럼 길쭉한 몸과 채찍 같은 꼬리 역시 깃털이 아닌 매끈한 암회색 가죽으로 덮인 채였다. 더욱 확연한 차이점은 몸집이었다. 북미에서 가장 큰 새인 캘리포니아콘도르조차 옆에 두면 벌새보다도 작아 보일, 흰수염고래 정도나 간신히 비견될 만한 저 이질적으로 커다란 몸집. 그런 어마어마한 거구를 오직 짤막한 두 앞다리만으로 질질 끌며, 오듀본이 그린 적 없는 괴물은 작열하는 한낮의 사막 저편으로 하염없이 어기적어기적 기어가고 있었다.


“어때 보여, 선생?”


열기에 익어가는 귀를 익숙한 목소리가 간질였다. 오페라글라스에서 눈을 떼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플로렌스를 빤히 응시하는 총잡이 피비 모지의 얼굴이 보였다. 긴 곱슬머리와 도드라진 코를 지닌 피비는 언제나 플로렌스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이 일대의 산과 사막을 함께 누비며 탐사한 지 벌써 여덟 달이 되었건만, 플로렌스는 아직도 자신보다 세 살 많은 여자에게 그렇게 불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피비와 나누는 대화 전반이 그랬다.


“처음 보는 종류네요. 뱀처럼 생긴 것들은 곳곳에 있지만, 저런 날개가 달린 녀석은 제가 기억하는 한 아직 스미소니언에 보고된 적이 없어요. 메이블이나 해리엇이 최근 탐사에서 새로 찾아냈을 가능성은 있지만…….”


“아니, 저거 쫓아가서 잡을 거냐고. 말 참 답답하게 하네.”


피비의 핀잔에 플로렌스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대답을 끝까지 듣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지난 8개월 동안 플로렌스가 내놓은 모든 대답 가운데 피비가 진정으로 귀를 기울인 것은 딱 한 종류뿐이었다. 쏠 것인가, 말 것인가.


“잡아야죠. 저만한 놈이 목장 쪽으로 가면 큰일이니까.”


“역시 그렇지? 가자고, 선생. 간만에 솜씨 구경시켜 줄 테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피비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움직였다. 피비가 탄 말이 누런 흙먼지를 일으키며 힘차게 달려 나가자, 잠깐 머뭇거리던 플로렌스도 곧 고삐를 잡고 뒤를 따랐다. 애리조나주 남쪽 끄트머리, 웨트스톤 산맥과 후아추카 산맥 사이의 황야에서 두 사람은 이달의 세 번째 괴물 사냥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


이번 괴물은 덩치에 비해 겁이 유난히도 많은 놈이었다. 1마일 밖에서 쫓아오는 자그마한 추격자들의 존재를 눈치채자마자 놈은 곧장 그 커다란 날개를 퍼덕여 날아오르려 했고, 그 바람에 세찬 모래바람이 온 사방을 자욱하게 뒤덮어 플로렌스와 피비는 말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놈이 그대로 하늘 높이 도망갔더라면 뒤쫓을 수단이 없었겠으나, 다행히 괴물은 지친 것인지 얼마 날지 못하고 땅에 내려앉아 다시 꿈틀꿈틀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거리를 좁히면 다시 날아가고, 또 내려앉으면 다시 박차를 가해 따라붙는 지루한 추격전이 몇 마일에 걸쳐 이어졌다. 점점 짧아지던 괴물의 비행 거리가 마침내 ‘비행’이라 부르기 힘들 지경으로 쪼그라들 때까지.


더는 날지 못하는 괴물의 몸통이 정확히 100미터 앞에 내다보이자, 피비는 등에 둘러메고 있던 윈체스터 소총을 오른손으로 잡은 채 그대로 말을 몰아 녀석의 측면을 향했다. 갈비뼈가 다 드러난 가느다란 몸통이 곧 모자 아래의 그늘에 들어왔다. 굵기를 가늠하자면 50인치 정도. 눈감고 뒤돌아서도 맞힐 자신이 있는 큼지막한 표적이었다. 문제는 표적의 어디를 맞혀야 하느냐였다. 말 위에서 총구가 불을 뿜자 괴물의 잿빛 몸통 정중앙이 보기 좋게 꿰뚫렸으나, 놈은 움직임을 멈추는 대신 거세게 꿈틀거리기만 했다. 심장 언저리를 추측해 쏘았건만 아무래도 거기가 급소는 아닌 모양이었다. 몸부림치는 괴물의 날개가 지척을 휩쓸고 지나감과 동시에 저 뒤쪽에서 새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피비! 괜찮아요?”


걱정도 팔자였다. 무서우면 멀찍이 피해 있기나 할 것이지. 여덟 살 때부터 총을 들고 짐승을 사냥해 먹고 살아온 피비였다. 사냥감의 크기를 파악하고 거리를 재는 것만큼은 특기였고, 자기 실력으로 맞힐 수 있는 표적과 없는 표적을 구분하는 데엔 결코 실수가 없었다. 그러니 1873년식 윈체스터 소총의 유효 사거리 안에서, 동시에 놈의 날개나 꼬리가 닿지 않을 거리에서 정확히 노려 쏘기만 한다면 놈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생물인지는 정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날갯짓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피비는 괴물의 몸통 앞쪽으로 말을 더욱 힘껏 몰았다. 다음으로 노릴 표적, 놈의 머리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길고 억센 턱과 빼곡한 이빨이 꼭 악어를 닮은 머리였다. 헐튼이라는 마을이 날아다니는 악어 괴물에게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을 8년 전쯤에 들은 기억이 피비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게 캘리포니아였던가, 아니면 미주리였던가? 선생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한없이 길어질 게 뻔했다. 선생 같은 스미소니언의 학자들이라면 모를까, 피비는 악어 괴물의 이빨 개수나 콧구멍 너비를 재는 데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악어의 머리 양옆에 왜 잠자리의 겹눈처럼 반질반질한 눈알이 툭 튀어나와 있는지도. 피비에게 중요한 것은 그 눈알이 저녁 식탁 한가운데의 접시만큼 커다랗다는 사실뿐이었다. 정말이지 시시할 정도로 큰 과녁이었다.


저만 한 표적이라면 역시 눈감고 뒤돌아서도 맞힐 자신이 있었지만, 피비는 달리는 말 위에서 적당히 조준해 쏘는 정도로 실력 발휘를 마쳤다. 열다섯 살 때 이미 비길 자 없는 총잡이로 이름을 날렸던 피비의 손가락은 언제나 그랬듯이 정확한 타이밍에 방아쇠를 당겼다. 사냥은 그걸로 끝이었다. 눈알 한가운데를 파고들어 머릿속에 박힌 44구경 소총탄은 괴물의 몸부림을 멈추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억센 다리가 하나하나 꺾이고 날개가 힘없이 무너졌다. 모래 위로 풀썩 쓰러진 턱만이 잠시 세차게 경련하다가 이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뒤에야 멀찍이서 허둥지둥 다가온 플로렌스에게 피비가 의기양양이 한 마디를 던졌다.


“봤어? 간단해.”


“저는 봐도 뭐가 뭔지 잘……. 아무튼 고생하셨어요. 이제 측정 시작하죠.”


말에서 내린 플로렌스가 수첩을 꺼내든 채 곁을 홱 지나쳐 가자, 피비는 영 마땅찮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어진 것은 대화다운 대화 한 마디 없는 노동의 시간이었다. 죽은 괴물의 몸 곳곳에 밧줄을 대며 수치를 어림하는, 플로렌스가 지극히 중요하게 여기고 피비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종류의 노동. 플로렌스는 심지어 몸 아래 접혀 들어간 날개의 길이를 재겠다고 날개뼈를 묶어 말 두 마리로 끌어당기기까지 했다. 오로지 수첩에 적어넣은 ‘몸길이 92피트’ 아래에 ‘날개 길이 78피트’와 ‘날개폭 대략 160피트’라는 두 줄을 추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이번에는 머리 쪽으로 가서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다가, 갑자기 가만히 서서는 웬 혼잣말을 한참 줄줄 늘어놓기까지. 피비에게는 참으로 보고 있기 지겨운 광경이었다.


“거 딱 봐도 8피트쯤 되네! 대충 적고 슬슬 가자, 선생.”


그렇게 말해도 플로렌스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저 괴물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뜻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릴 뿐. 알 것 같은데. 알 것 같은데. 역시 208번 동판화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쳐 보아도 중얼거림은 그치지 않았다. 한숨에 따라나온 피비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어차피 두고 가야 하잖아. 이만한 놈은 나도 처음 보니까 연구 욕심이 나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고작 말 두 마리 가지고 이걸 마을까지 끌고 갈 수는 없어. 뭣하면 내일쯤 사람 더 데려와서 가죽이라도 벗길까? 소금에 절여서 스미소니언에 보내기 좋게 말이야.”


이번에도 대답 없음. 혼잣말은 오히려 점점 빨라지기만 했다. 그것들은 분명 북쪽으로부터 왔으며……여행비둘기 떼를 연상시킬 만큼 대단히 밀집한 무리를 이룬 채……무리에 무리를 이어……알겠어, 이제 알겠어.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맥락 없는 소리를 쏟아내는 동안 플로렌스의 시선은 줄곧 괴물의 머리 위쪽, 회색 피부를 뚫고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 까만 눈알에 못 박힌 채였다. 눈알은 투명한 유리 같은 것으로 덮여 미끈미끈했고, 그 중앙에 피비가 멋지게 뚫어 놓은 구멍으로부터는 오색으로 번들거리고 독한 약 냄새를 풍기는 투명한 기름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알 위에, 기름 표면에 하늘이 비쳐 보였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 곳곳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음산한 광채가 어른거렸다. 광채는 쉼없이 빛깔과 모양을 바꾸면서 스멀스멀 일렁이다가, 이따금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오그라들어 푸른색 배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곤 했다. 어릴 때는 틀림없이 저런 광경이 없었기에 피비는 여태 하늘이 낯설었다. 일부러라도 올려다보지 않으려 했다. 낯설어진 하늘이 지금껏 본 적 없는 괴물들을 토해낼 수 있다면, 언제 다른 끔찍한 것들도 토해낼지 모르니까. 아무튼 저 광채가 몸에 유익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젊은 선생이 괴물의 눈알에 비친 하늘을 멍청하게 줄곧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피비는 즉시 플로렌스의 머리채를 잡아 홱 끌어당겨서 뺨을 몇 대 힘껏 쳤다.


“정신 차려, 선생! 대답 좀 해봐! 대답하라고!”


“아? 어, 어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당신 미쳤어요?”


난데없이 얻어맞은 플로렌스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외쳤다. 그 소리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 피비가 짐짓 퉁명스레 대꾸했다.


“뭐야, 멀쩡하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플리즌턴 박사라는 사람이 밝혀냈다잖아? 저 이상한 빛이 사람 눈에 들어가면 뇌가 통째로 흔들려서…….”


“어거스터스 플리즌턴은 박사가 아니에요, 피비. 뱀기름 장수나 다를 바 없는 엉터리라고 제가 여러 번 설명하지 않았나요? 하늘을 보기만 해도 미칠 수 있단 말이 사실이라면 저도, 스미소니언의 다른 학자들도 진작에 정신을 놓아 버렸을 거라고요.”


“그래, 그래. 아까까지 뚫어져라 시체 쳐다보면서 주문 외던 사람이 말하니까 참으로 믿음이 간다. 미친 거라면 차라리 이해라도 가지, 제정신인 사람이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데?”


플로렌스가 기나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평소처럼 말을 끊을 요량으로 피비가 괜히 물었다. 하지만 기대하던 설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피비를 괴물 옆에 내버려둔 채로 냉큼 말에 올라타며, 플로렌스는 단지 전에 없이 짧고 단호한 대답만을 툭 내뱉었다.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대충 정리는 됐으니, 서둘러서 마을로 돌아가죠.”


“벌써? 해 떨어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잖아. 좀 더 정찰하고 가도 돼.”


“아뇨. 어프 씨에게 경고해야 해요. 한시라도 빨리.”


그렇게 말하고서 플로렌스는 마을 쪽으로 힘껏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황급히 따라잡아 달려온 피비의 다음 질문이 그 등 뒤에서 메아리쳤다. 이번에는 진짜로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


“대체 뭘 경고하는데!”


“최악의 가능성을요! 조만간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도 피비가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최악의 가능성’이라니, ‘무서운 일’이라니. 그런 것쯤이야 수십 년째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피비는 플로렌스의 말을 괜한 호들갑이라며 코웃음쳐 넘길 생각만큼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학자니 박사니 하는 양반들이 갑작스레 겁을 집어먹고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할 땐, 억지로 이해하려 들기 이전에 일단 조심해서 손해 볼 게 없음을 경험으로 미루어 알았으므로. 그것이야말로 저 낯선 하늘이 피비에게, 나아가 온 미국인들에게 가르쳐준 첫째 교훈이었다.


그 이상의 교훈은 필요 없다고 피비는 항상 생각했다.


조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찬 세상이었다.


*****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보안관 사무실을 붉게 물들였다. 노을이 진 듯한 광경이었지만 시간은 아직 한낮이었다. 건물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펼쳐 엮어서 거리 전체를 덮은 소가죽 차양은 언제나 온 마을에 은은한 그늘을 드리웠고, 덕분에 기껏 남쪽으로 창을 낸 2층 사무실을 쓰면서도 마흔두 살의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는 늘 저물녘의 가벼운 졸음에 빠진 채 일해야만 했다. 작은 괴물들이 거리에 쏟아지는 걸 막고자 본인이 주도해 설치한 차양이었건만, 막상 완성하고 보니 정오에도 저녁 분위기를 풍기는 게 어프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황혼에 잠긴 마을이라니, ‘툼스톤’(묘비)이라는 마을 이름에 이렇게까지 충실한 꼴이라니! 피곤에 찌든 내면의 불평은 사무실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이어졌다. 1층을 쓰는 수우족 기병대장의 목소리였다.


“보안관, 미리엄 양께서 오셨네. 급한 용건인 모양이야.”


“이 시간에? 정찰 나간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아무튼 들여보내 주시오.”


어프가 급히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이어서 옷매무시라도 조금 가다듬으려 했건만, 옷깃에 채 손을 대기도 전에 문은 이미 벌컥 열리고 있었다. 여덟 달째 툼스톤에 머무는 중이라 이제는 거의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 과학자, 스미소니언에서 온 스물일곱 살의 플로렌스 미리엄이 인사도 없이 대뜸 책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습을 어프는 그저 말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올지도 모릅니다, 보안관님. 그것도 아주 많이.”


플로렌스의 단호한 선언이 어프의 눈동자를 흔들었다.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물음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9년 전처럼 말이오?”


“온다면 분명 훨씬 많이 올 겁니다.”


이제는 ‘당혹감’ 정도로 표현할 수 없게 된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프의 주름진 얼굴을 휩쓸었다. 마른세수 몇 번으로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였다. 그러나 어프는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침착함만큼은 유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늘의 이변이 미국 곳곳을 할퀴어 대는 가운데 세워진 서부 황야 마을에서 보안관으로 먹고산 사람의 관록이란 그런 것이었다. 점점 거세지려는 손의 떨림을 억누르며 어프가 나지막이 이어 물었다.


“확실한 근거는 있소?”


“오늘 사막에서 괴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지쳐서 제대로 날지조차 못하는, 게다가 뼈가 드러나 보일 만큼 앙상해진 놈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새가 그렇게 굶주리고 탈진한 채로 발견되는 경우는 보통 두 가지입니다. 갑자기 날씨가 바뀌어서 먹이가 부족해졌거나, 아니면 일부러 먼 거리를 이동해 왔거나.”


“하지만 올해 날씨는 예년과 다름이 없었지. 후자라는 뜻이군.”


“네. 비행이란 새들에게도 고된 일이라, 철새는 이동 전후에 몸무게가 대폭 줄어듭니다.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전에 힘이 빠져 낙오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마땅한 먹이라곤 없는 그 일대의 사막 같은 곳에서 그렇게 낙오된다면, 다시 날아오르지 못하고 지쳐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것이 사막에서 괴물을 본 플로렌스가 무심코 208번 동판화를 떠올린 이유였다. 에스키모쇠부리도요는 아메리카 대륙의 남북을 매년 왕복하는 철새이니, 오듀본의 그림 속에서처럼 맥없이 누워 숨을 거둔다면 그것은 분명 대이동 중에 일어난 일일 터. 그렇다면 지쳐 죽어가던 그 날개 달린 괴물도 혹시 비슷한 일을 겪은 것이 아닐까? 죽은 괴물의 눈알을 내려다본 순간, 암컷 에스키모쇠부리도요의 공허한 눈이 머릿속에서 번뜩인 순간 도달한 착상을 플로렌스는 놓치지 않았다.


물론 겨우 수십 년 전 처음 나타난 괴물들이 오듀본의 아름다운 새들과 똑같은 습성을 지녔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대단히 섣부른 일이었다. 놈들이 새와 달리 깃털로 덮여 있지도, 알을 낳지도 않는 이질적인 짐승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로렌스의 눈에 비친 놈들은 여전히 생물이었다. 먹이를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였고, 먹이를 사냥하는 날짐승으로서의 습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렇다면 태고의 세월에 걸쳐 새들의 습성을 빚어낸 이 대륙의 법칙들은 저 낯선 하늘 아래서도 똑같이 작동할 터였기에, 플로렌스는 오듀본이 『북미의 새』에서 에스키모쇠부리도요에 관해 쓴 구절을 다시금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그것들은 분명 북쪽으로부터 왔으며, 여행비둘기 떼를 연상시킬 만큼 대단히 밀집한 무리를 이룬 채 도착했다. 당연하고도 두려운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키는 불길한 구절이었다.


“보안관님, 철새들은 대부분 무리를 짓습니다.”


어프의 손이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억누를 수조차 없는 세기로. 플로렌스의 설명이 담담히 이어졌다.


“수천에서 수만, 심지어는 억 단위를 넘기기도 합니다. 오늘 발견한 것은 한 마리뿐이지만, 어쩌면 그건 너무 지쳐서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개체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잔뜩 굶주린 괴물 떼가 근처를 지나는 중일 수 있다, 그런 뜻이겠지. 그렇다면 사람도 가축도 많은 이 마을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테고.”


스스로 정리해 내뱉은 말이었음에도 어프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화를 벌컥 내며 플로렌스를 마을에서 추방하는 일로 이 불안을 지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했을 터였다. 말세를 부르짖으며 푼돈을 긁어모으려 드는 사기꾼이 감히 툼스톤에 발을 들일 때마다 으레 그렇게 했듯이. 하지만 플로렌스 미리엄은 그런 사기꾼이 아니었다. 스미소니언이 보낸 진짜배기 조류학자였다. 세상이 이렇게 뒤바뀌기 전부터 온종일 하늘의 생물들을 올려다보며 연구했던, 그랬기에 이변이 막 시작되던 70년대 초에 누구보다 먼저 심상찮은 낌새를 알아채고 경고를 외쳤던 전문가들을 믿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믿겠는가? 툼스톤의 보안관으로서 어프는 자신만이 아닌 타인의 정당한 권위 또한 겸허히 인정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일간지 구석에 한낱 잡담처럼 실리던 경고가 실현되어 브루클린이 날아다니는 마귀들의 만찬장으로 전락해 버린 1877년 이래, 조류학자들의 말에는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권위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한 권위가 단지 경고의 정확성에서만 오는 것이 아님을 어프는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했다. 여태껏 알던 하늘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건만 조류학자들은 여전히 괴물을 묵시록적 재난의 사도가 아닌 동물의 일종으로, 한때 그들이 열정적으로 연구했던 새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한낱 날짐승으로 여기고 대했다. 그러한 태도는 곧 무너져 버린 하늘 아래의 자연에도 여전히 우리가 예측하고 규명할 수 있는 질서가 존재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어프가 플로렌스를 마을에 들이고 집과 말과 식량을 내준 이유였다. 지난 8개월간 툼스톤에 머물며 주변의 사막 일대를 탐사하는 동안 플로렌스는 그 존재만으로 어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심시켜 주었으므로.


그렇다면 이제는 보답할 시간이었다. 어프가 플로렌스를 안심시킬 차례였다.


“당장 자경단을 소집하겠소. 미리엄 양께서는 부디 안심하고 숨어 계시오.”


“무리가 얼마나 클지 모릅니다, 보안관님. 그보다는 피난 준비를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부터 채비한다면 괴물들이 당도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떠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9년간 툼스톤은 애리조나에서, 어쩌면 온 서부에서 가장 안전한 마을이었소. 그런 이곳을 떠나서 대체 어디로 도망치라는 말이오? 위험을 알아채고 경고하는 것까지가 학자의 일이라면, 위험에 실제로 대응하는 건 언제나 우리 총잡이들의 일이었소. 그리고 총잡이는 언제나 총을 뽑을 준비가 되어 있는 법이지.”


여전히 손의 떨림은 멎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한 번 굳힌 어프의 결심은 그런 떨림 정도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와이어트 어프는 그런 사람이었다. 총에 맞아 죽으나 괴물에게 잡아먹혀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인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헐레벌떡 도망치기보다는 용감히 일어나 위험에 맞섬으로써 죽음을 피해 살아남아 온 남자. 어프만이 그러한 것도 아니었다. 툼스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이었으므로. 그랬기에 어프는 여전히 머뭇거리는 플로렌스를 향해 가슴을 펴고서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괴물 놈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온다 한들, 비축해 둔 총알 한 발당 하나씩을 꼬박꼬박 떨어뜨린다면 결국 아침의 태양을 보는 건 우리 쪽일 테지. 내가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님을 미리엄 양도 잘 알지 않소? 이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사수의 실력이 어떤 경지인지를 바로 오늘도 지척에서 보고 왔을 테니 말이오.”


“모지 양은 물론 굉장합니다만, 그래도 놈들은…….”


일단 반박하려 입을 열었던 플로렌스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여전히 플로렌스는 피난이 최선의 수라고 생각했지만, 그 근거는 고작해야 막연한 불안이었고 조류학자로서 논리적으로 내세울 주장은 이제 남은 게 없었다. 결국 플로렌스가 지금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있길.”


그 말만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서는 플로렌스의 뒷모습을 어프는 잠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던 시선이 뒤이어 옮겨 간 곳은 책상 위의 액자였다. 가짜 노을에 흠뻑 젖은 액자 유리 너머에서, 날개를 펼쳐 헛간 입구에 못 박아 놓은 너덜너덜한 괴물 사체 앞에서, 9년 전의 어프는 친구와 함께 총을 치켜들고 똑바로 선 채 시종일관 단호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목숨을 건 싸움의 승자만이 비로소 지닐 수 있는 빛을, 오늘날의 툼스톤을 있게 한 바로 그 빛을―그것은 과거의 자기 얼굴을 한동안 표정 없이 들여다보던 어프의 눈에도 이내 똑같이 깃들었다.


와이어트 어프는 결투에서 질 생각만큼은 추호도 없었다. 9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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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