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Street

자전거 바퀴와 원자 나침반

2024년 5월 통권 224호

자전거 바퀴와 원자 자석

독일은 봄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색으로 찬란하다. 집집마다 정원에 색색의 튤립이 피었고, 이른 봄 피었던 민들레의 솜털 같은 씨앗은 비행 준비를 마쳤다. 이곳에서도 한국의 대표적인 봄꽃인 노란 개나리는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데, 진달래와 철쭉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다. 많은 꽃 중에서 아내와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담장에 흐드러지게 핀 보랏빛 등나무꽃이다. 등나무는 원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왔다고 하는데, 아파트가 많은 한국의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유럽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 자태를 뽐내는 꽃 말고도 봄이 한창임을, 아니 어쩌면 여름이 훌쩍 다가온 것을 알리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 단위로 돌아다니는 자전거 행렬이다. 숲 바로 옆에 살다 보니 부모는 큰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은 작은 자전거를 타고 뒤를 따르며 숲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자전거를 타기에 아이들이 너무 어린 경우에는 자전거 뒤에 양쪽으로 바퀴가 달린 작은 수레에 아이를 태워 함께 봄볕을 즐기는 가족도 있다. 숲을 내달리는 자전거를 보고 있으면 두 바퀴만 가지고 어떻게 산길을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지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물리학의 기본 중 기본이지만, 자석이 냉장고 문에 달라붙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원리를 안다고 해서 줄어들지는 않는 것처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도 항상 흥미롭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자석의 물리와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는 이유가 서로 긴밀히 엮여 있다는 점이다.


지난 글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 글부터 두세 편에 이어서는 물질의 자기적 특성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다. 이전까지는 물질의 전기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를 띤 전자가 원자 우물 사이를 어떻게 넘나드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자들 사이의 전기적 척력에 의해서 움직임이 제한되는 특별한 경우인 모트 절연체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전기적 특성만 고려한다면 물질에 대해서 반쪽짜리 지식을 갖는 것과 같다. 자기적 특성은 자석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물체에서 시작해, 데이터를 저장하는 하드디스크나 RAM, 그리고 최근에 논쟁거리가 되었던 초전도체까지도 관련이 있다. 앞으로의 정보 처리 기술들에도 물질의 자기적 성질이 핵심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제부터 나머지 반쪽인 자기적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자전거 바퀴와 각운동량 

자전거나 오토바이처럼 두 바퀴로 가는 탈 것들이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퀴가 돌아가는 회전 운동의 특성 때문이다. 회전 운동은 다소 복잡할 수 있으니, 회전하는 물체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우선 일반적인 운동 법칙을 살펴보자. 잘 알려져 있듯이 뉴턴의 운동 법칙 세 가지는 1) 관성의 법칙, 2) 가속도의 법칙, 3)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다. 이 중 1, 2번 법칙을 요약하자면 ‘물체의 운동량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표현되는 값이며, 외부에서 힘을 가하지 않으면 이 운동량을 바꿀 수 없다. 여기에 3번 법칙까지 더해서 계산을 조금 해보면 물체의 충돌 전후로 운동량의 총합은 변하지 않는다는 운동량 보존 법칙에 도달한다.


이제 회전 운동에 대해서 살펴보자. 회전 운동은 물체가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 방정식을 계산하기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직선 운동하는 물체를 다룰 때는 물체를 이루는 모든 부분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다루기 쉽지만, 회전하는 물체는 각기 다른 부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 운동을 한 번에 다루기 어렵다. 예를 들면 그림 1의 오른쪽에 있는 원반을 보자. 이 회전하는 원반에 있는 모든 부분의 운동량을 다 더하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분들이 더해져 총운동량은 0이 될 것이다. 분명 열심히 회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회전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우아한 방법을 찾아냈다. 직선 운동에서처럼 움직이는 거리를 사용하는 대신에 회전 운동에서는 각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림1. 직선 운동과 회전 운동


직선 운동은 그림 1의 왼쪽에 보이는 것처럼 물체가 움직인 거리로 운동을 기술한다. 이 물체의 속도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표현할 수 있고, 속도에 질량을 곱해서 운동량을 얻는다. 반면에 회전 운동의 경우는 그림 1의 오른쪽에서 볼 수 있듯이 물체가 회전한 각도를 기준으로 운동을 표현한다. 그리고 운동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척도는 얼마나 각도가 빠르게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각속도이다. 그리고 회전 운동에서는 운동량 대신에 각속도에 비례하는 ‘각운동량’이라는 값을 사용한다.


그림2. 회전하는 물체의 각운동량


앞서 말했듯이 원반 위의 모든 지점의 운동량을 합치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운동량이 상쇄되어 운동량의 합이 0이 된다. 하지만, 각운동량은 각속도로 표현되기 때문에 원반 위 모든 지점이 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각운동량이 더해진다. 이렇게 계산되는 각운동량의 방향은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른손으로 회전 방향을 감싸 쥐면 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각운동량을 계산하려면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지를 나타내는 각속도뿐 아니라 회전하는 물체의 모양과 질량 분포도 필요하지만,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회전하는 물체는 각운동량을 갖는다는 것과 각운동량의 방향이 그림 2에서 원반에 노란빛 화살표로 표시된 수직인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에서 운동량을 바꾸려면 힘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 각운동량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다. 다시 자전거로 돌아가 회전하는 바퀴를 기울이는 것도 각운동량을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바퀴를 기울이려면 각운동량을 바꾸어 주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특히 각운동량이 큰 수록 (원반이 빠르게 돌수록) 더 많은 힘을 주어야 원반을 기울일 수 있는데, 자전거가 빠르게 달릴수록 더욱 안정적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회전하는 전류와 자기장 

1820년 덴마크의 과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는 전선에 전기가 흐르면 그 주위를 감싸는 자기장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이 현상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문명이 몰락할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현상이지만, 당시에는 전기의 흐름이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림3. 전류와 자기 모멘트


이렇게 만들어지는 자기장은 전선의 배열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림 3에 표현된 것처럼 고리 모양으로 전류를 흘렸을 때이다. 이 경우에는 고리 가운데에 자기장이 더해져 마치 막대자석을 가운데 놓은 듯한 자기장이 형성된다. 그림의 경우는 N극이 위로 그리고 S극이 아래로 놓인 막대자석과 같은 형태의 자기장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류로 만들어진 인공 막대자석이 얼마나 강한지는 어떻게 나타낼까? 막대자석이 얼마나 강한 자기장을 뿜어내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는 자기 모멘트라는 값을 사용한다. 전류가 흐르는 고리도 막대자석과 같이 주위에 자기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 자기 모멘트를 계산할 수 있으며, 그 값은 고리 내부의 면적과 흐르는 전류의 세기를 곱해서 얻는다.


그러면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막대자석에 자기장이 생성되는 것도 혹시 자석에 고리 모양으로 전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것은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우선 자석에 흐르는 전류 때문에 자기장이 생기는 것이라면, 그 자기장은 1초도 되지 않아 사라져야 한다. 자석이 갖는 전기 저항 때문에 전기 에너지가 소모되어 전류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석은 책상 위에 두어도 몇 년간 자성을 띠기 때문에 이것을 옳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양자 역학이 작동하는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이런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림4. 전자의 각운동량과 자기 모멘트


회전하는 전자와 원자 자석

자석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원자들로 바글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자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원자핵 주위에 전자가 있다. 원자핵과 전자는 반대 부호를 갖는 전하를 띠기 때문에 서로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고, 전자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원운동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물론 단순히 전자의 원운동으로 원자의 내부 구조를 표현하는 것은 양자역학적으로 엄밀하지는 않지만, 물질이 띠는 자기적 성질을 기술하는 데에 유용한 면이 있다. 조금 더 엄밀한 묘사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보어의 모형을 따라 원자 안에서 그림 4처럼 전자가 원운동 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전자가 원운동 하고 있으므로 앞에서 다룬 각운동량을 정리할 수 있다. 그림에서는 위에서 보았을 때 전자가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으므로 오른손의 네 손가락을 이 방향으로 감싸면 각운동량은 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검은색 화살표의 방향을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전자의 전하이다. 전자는 음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전자의 움직임은 전류를 만든다. 이 부분이 항상 혼란을 일으키는 부분인데, 전류의 방향과 전자의 움직임과 반대 방향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전기가 연구되던 초기에 전류의 방향이 먼저 정의되었고, 전자는 훨씬 나중에 발견되었기 때문인데, 전류의 방향을 정의하던 당시에 전자의 전하가 음의 부호를 가질 줄 몰랐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야기 되었다. 비교하자면 마치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 때 실제 공기는 남쪽으로 움직이지만, 우리가 이 바람을 북풍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그림과 같이 전자가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경우에는 그림 3과 같이 전류가 반시계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따라서 회전하는 전자는 위쪽을 향하는 자기 모멘트를 형성하게 된다. 즉, 원자 자체가 작은 막대자석처럼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자의 운동 궤도 때문에 생기는 자기 모멘트를 궤도 (오비탈) 자기 모멘트라고 부른다.


원자 안에서 전자가 각운동량을 가지면 이 입자는 막대자석처럼 행동한다. 앞으로 우리가 다룰 모든 물질의 자기적 성질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물론 원자에는 전자가 하나보다 더 들어있을 수 있고, 이 경우에는 모든 전자가 가진 모든 각운동량을 더한 후에 자기 모멘트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여기에 전자의 양자역학적 특성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바로 전자가 갖는 ‘스핀’이라는 값이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것에 해당하는 각운동량을 갖는 그것뿐 아니라, 전자 자체도 회전하는 것에 해당하는 각운동량을 갖고 있다. 이런 전자의 각운동량을 팽이라는 뜻을 가진 스핀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동시에 자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전자가 팽이처럼 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 자체가 마치 회전하는 것처럼 각운동량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 모멘트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를 스핀 자기 모멘트라고 부른다. 앞서 연재한 두 글에서 개구리 모양의 전자가 위 또는 아래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방향이 바로 전자가 갖는 스핀 자기 모멘트의 방향을 가리킨다.


이제 모든 성분은 갖추어졌다. 원자 혹은 이온이 갖는 자기적 성질은 모든 전자가 갖고 있는 궤도 자기 모멘트와 스핀 자기 모멘트의 값을 전부 고려하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물질의 자기적 성질은 여기에서 시작이다. 원자 자석 내에서도 수많은 양자역학적 작용이 일어나며, 원자 자석 사이에도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물질의 자기적 성질은 이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일어난다.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양자 역학에 기반해 원자와 물질의 자기적 성질을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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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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