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착한 아이, 피노<1부>

2023년 1월 통권 208호

(일러스트레이터 : 박재령)

<1부>

1.

헤페토의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때, 아버지는 열일곱 살 때 죽었다. 지난 10년 간 헤페토는 작업장 겸 집에서 홀로 먹고 자고 일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제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죠. 평생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여인은 다정하게 그를 위로했다. 헤페토는 그녀를 한 번 더 만났고,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섬세한 사람인지 더 자세히 들려주었다. 그 뒤 그녀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깊은 밤, 헤페토의 작업실은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헤페토는 작업대 의자에서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낮에 들은 린다에 대한 이야기가 타르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린다가 아들을 스튜어트 기숙학교에 보냈다고 했다. 사람들은 돈을 벌 나이의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며, 그녀가 헛바람이 들었다고 쑥덕거렸다.

린다는 그에게 다섯 번을 연락한 유일한 여자였다. 자동인형 백화점에서 일하는 그녀는 그에게 출하 전 불량으로 판정되어 버려지는 자동인형을 가져다주었다. 쪼들리는 그를 배려해 늘 자신이 계산했다. 자신은 작은 마음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사별한 남편이 들꽃 한 송이만 꺾어다 줘도 설렜다고 말했다.

린다와 잘 되어가느냐는 이웃의 질문에, 그녀가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고 답하자 이웃은 그를 한심해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먼저 연락하면 되잖아.”


“내가 연락하기 싫어서 안 해?”


오금을 걷어차인 듯 헤페토는 아픔으로 인한 노여움에 휩쓸렸다.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며 자란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나 간절히 사랑을 갈구하는지, 그렇기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다.


“노점 커피라도 사 줘. 중요한 건 성의야.”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참견하는 이웃을 가련하게 바라보았다.

연락을 끊은 사람에게 어떻게 연락하란 말인가? 노점 커피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그는 누구도 상상 못할 멋진 자동인형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었고, 그가 버는 돈은 고작해야 고물상에서 필요한 자재를 사기에도 빠듯했다.

린다에게서 여섯 번째 연락이 오지 않은 채 어느덧 7년이 흘렀다. 그는 이따금 린다를 떠올렸으나 그녀는 그가 모르는 새 재혼해 아들까지 낳았다.

린다는 결혼식에 자기를 초대해야 했다! 그녀는 그들 둘만이 알 짧지만 깊은 눈빛을 주고받고, 그가 저미는 가슴을 누른 채 그녀의 새 출발을 축하할 기회를 박탈했다.

린다의 아들은 던랜드 최초로 하층민들을 위해 설립된 스튜어트 기숙학교의 첫 번째 입학생이자 첫 번째 졸업생이 될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 학교 안에서의 처세술을 가르쳐 주고, 공부를 봐줘 최고의 학생으로 졸업하게 도울 수 있었다. 불량이라 버려지는 자동인형을 분해해 본 것만으로 아버지의 목공소를 자동인형 가게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한 그였다. 학교에 다녔다면 그가 무엇을 해냈을지 누가 알랴. 그가 던랜드에 최초의 자동인형 백화점을 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얼음물 속에 내동댕이쳐진 듯 몸서리쳐지는 고독이 몰아쳤다. 납작해진 몸체를 마저 태우고 사라진 양초 불빛의 자리를 두 개의 달이 쏟는 빛이 메웠다. 헤페토는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눌렀다. 고장 난 펌프처럼 몸속에서 뜨거운 물이 역류해 눈두덩을 때렸다. 설사 린다가 결혼하리라는 걸 사전에 알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그녀의 결혼식을 멀리서나마 보러 갈 관계조차 안 되었다.

금붕어, 새, 고양이, 개, 토끼 인형들이 어디도 보지 않는 공허한 눈으로 침묵 속에 놓여 있었다. 그가 공들여 만들었으나 팔리길 기다리는 게 전부인 존재들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문득 그의 눈에 며칠 전 주워온 소나무토막이 잡혔다. 별 생각 없이 던져둔 모양이 꼭 사내아이가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2.

헤페토는 인형의 태엽을 돌렸다. 상반신은 남자아이, 하반신은 바퀴 달린 원뿔로 키는 1미터였다. 인형의 얼굴이 그에게 향했다.


“성공할 줄 알았어!”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인형을 불렀다.


“피노야.”


“피노야?”


인형이 그의 말을 따라 하자 불모지를 개간해 첫 수확을 한 농부 같은 찬란한 웃음이 그의 전신에 차올랐다. 그가 원한 건 단순한 자동인형이나 녹음된 음악만 반복하는 오르골이 아니었다. 스스로 움직이고, 말하고, 학습하는 복합인형이었다.


“네 이름은 피노란다. 네가 누구라고?”“피노.”


그는 피노를 작업대에서 내려놓았다. 피노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잘했어. 이제 앞으로도 가볼까?”


천천히 바닥을 구르던 피노가 느닷없이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진열장에 몸체를 박았다.


“아이쿠!”


헤페토가 이마를 쳤다. 그는 피노의 바퀴를 고정한 뒤 바닥에 떨어진 자동인형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피노의 앞판을 열고 알고리듬에 ‘앞이 막혀있다’  ‘속도를 줄인다’는 경우의 수를 추가했다.


“자, 다시 해 보자.”


피노는 몇 번 더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속도를 줄이는 경로를 선택했다. 헤페토는 피노의 머리를 쓰다듬어 그 경로를 독려했다. 반복된 경로는 유연해져 그 경로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졌다.

작업대에 관심을 둔 피노가 망치를 집어 잠시 살핀다 싶더니 그대로 창문을 향해 던졌다. 유리창이 박살난 모습에 피노가 펜치를 집어 들었다.


“워워!”


헤페토는 화급히 피노를 정지시켰다.


“위험한 건 미리 막아야겠네.”


그는 일부 경로를 다듬어서 다른 경로를 선택하기 어렵게 했다.


“다시 해 볼까?”


펜치를 든 피노는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펜치를 헤페토에게 주었다.


“잘했다!”


헤페토는 피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피노의 양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


3.

헤페토는 오르골의 춤곡에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양이 자동인형의 나사를 조였다. 피노는 하반신을 빙글빙글 돌리며 춤을 췄다. 그러면서도 헤페토에게 적재적시에 드라이버와 딱 맞는 나사를 건넸다.


“다 됐다! 이번에는 어떤 색으로 칠할까?”


“파란색이요!”


피노가 대답했다. 헤페토는 검지를 흔들었다.


“파란색 고양이는 없어.”


“녹색이요!”


“녹색 고양이도 없다.”


“노란색이요!”


“노란색은 있지….”


헤페토는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가르치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피노가 스스로 익혀야 했다. 그의 가게 앞에는 계단 두 개가 있어서 피노는 이제껏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경사로를 만들까?

그는 이전과 다른 눈으로 길거리를 살폈다. 그의 가게가 자리한 도룬 시티의 애덤 거리에는 오래되어 군데군데 깨진 벽돌이 깔려 있었다. 자칫 넘어지면 망가질 터였다. 바퀴를 키워 안정성을 높이면 어떨까?

그는 자신이 왜 거친 길과 계단을 잘 다닐 수 있는지 인지했다.


“다리를 달아주마.”


개와 고양이는 네 다리로 균형을 잡았다. 새의 다리는 두 개지만 몸체가 앞뒤로 길고 다리가 짧아 균형을 맞추기 쉬웠다. 세로로 긴 인간이 길쭉한 두 다리로 균형을 잡으며 걷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수 천 번씩 넘어지면서 걷는 법을 익혔다.

헤페토는 누가 자기 몸에 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부푸는 것을 느꼈다. 커피 인형, 청소 인형처럼 움직이는 자동인형들의 하반신은 하나같이 원뿔에 바퀴가 달린 형태였다. 그가 최초로 두 다리로 걷는 자동인형을 만드는 것이다.


4.

“다 됐다.”


헤페토의 말이 떨어지자 피노가 작업대에 놓인 앵무새 자동인형을 집었다. 팔을 위로 한 바퀴 회전시키고 고개도 180도로 돌렸다. 속이 빈 관을 연결해서 만든 피노의 팔이 길어졌다. 피노는 길어진 팔로 진열장의 꼭대기 층에 앵무새 인형을 놓았다. 관절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피노의 키는 173센티미터가 되었고, 더 다양한 알고리듬 장치를 수용하느라 부두노동자처럼 체격도 커졌다. 얼굴을 제외하면 앞뒤 구분이 없었고 발도 앞뒤가 똑같았다. 그게 균형을 잡기 훨씬 유리했다.

헤페토는 문득 어두워진 얼굴로 진열장 꼭대기 칸에 있는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기술이 집대성된 작품들이었다. 금붕어들은 다채로운 지느러미를 달고 있었고, 앵무새들은 짧은 말은 가르칠 수 있었으며, 개, 고양이는 다른 가게의 자동인형에 비할 바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아름답고 정교한 작품들이나 팔리지 않을 것이다. 재료비와 만든 공을 생각하면 저가에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애덤 거리에는 중류층에 갓 진입한 사람들이나 왔다. 그들은 안목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둘 다 없었다.

바야흐로 자동인형의 전성시대라고들 했다. 시작은 릭의 자동인형 백화점이었다. 릭은 자동인형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을 개발해 자동인형 백화점을 열었다. 백화점에서는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의 커피를 타는 인형, 악기를 연주하는 인형, 청소 인형 따위를 팔았다. 곧 크고 작은 자동인형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렇게 될 줄 헤페토는 진즉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흐름을 읽는 눈이 있다고 자신했다. 린다에게 받은 자동인형을 가지고 기술을 익혔으나 이미 시작점에서 뒤쳐졌다.

헤페토는 새로 개장한 자동인형 가게를 방문했다. 다른 가게처럼 단순한 기술로 만들어진 조잡한 제품에 색만 화려하게 입힌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인형들이 그의 인형보다 훨씬 잘 팔렸다.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힘없이 자신의 가게 문을 열었다. 피노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엄마!”


바깥에 나가기 시작한 이래 피노의 어휘력은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간혹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헛웃음을 지은 헤페토는 피노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아빠로 하자.”


“아빠!”


피노가 커다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븐에서 빵이 부풀듯 헤페토의 가슴 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피노는 헤페토의 손을 잡고 작업대로 갔다. 서툰 솜씨로 만든 마차가 놓여 있었다.


“잘 만들었구나.”


헤페토의 목소리가 진동했다.

릭은 도룬 시티 최고의 시계장인으로 불린 윌슨 버틀러의 도제였다. 자동인형 제작 기술은 시계 제작 기술에서 발전한 것이라, 현재 명성을 떨치는 자동인형 제작자는 다 윌슨의 도제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목수가 아니었다면, 그를 윌슨의 도제로 보내줬다면, 그는 진즉 귀족들이 오는 번화가에 자동인형 가게를 열었을 것이다.


“네가 원하는 건 다 하게 해줄 거야. 넌 내 아들이니까.”


“전 아빠 아들 피노에요.”


피노가 목을 뱅뱅 돌리며 기쁨을 표했다. 헤페토는 피노를 쓰다듬었다. 물에 빠진 채 겨우 고개만 내민 것처럼 그를 숨 막히게 하던 외로움이 작별을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5.

피노의 손을 잡고 스튜어트 기숙학교로 향하는 헤페토의 발걸음과 표정은 담담했다. 혹여 린다를 만난다면 무심하리라…. 가볍게 묵례만 하고 지나쳐야지. 어쩌면 인사 정도는 나눌 지도 모르지만….

정성껏 손질한 옷을 입고 어깨를 펴고 가게를 나설 때와 달리 헤페토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휘청대며 가게로 돌아왔다.


“차라리 잘 된 일이야. 어리석은 자들이 널 놓친 거다. 나중에 두고두고 비웃음거리가 될 거야.”


“소름끼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피노가 물었다.

스튜어트 기숙학교의 교장은 피노가 자동인형이라서,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할까 봐, 자기를 뚫어지게 보는 게 소름끼쳐서 등등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앞세워 피노의 입학을 불허했다.

헤페토는 피노의 다갈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어렵지 않아.”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는 곧 피노에게 눈까풀을 달았고 불규칙적으로 오르내리게 했다.


“무거워요.”


“익숙해질 거란다.”


“네, 아빠.”


헤페토의 쓰다듬을 받은 피노가 환하게 웃었다.

스튜어트에서 입학을 불허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헤페토는 평일에 교회의 예배당을 빌려 문을 연 작은 학교에 찾아갔다. 학교를 시작한 이이자 유일한 선생은 30대 초반 남자로 신사계급이나 가난해 소정의 돈을 받고 아이들을 받았다.


“내가 학교를 연 건 아이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서지, 하층민들에게 푼돈을 뜯거나 자동인형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오.”


그러니까 돈이 문제라는 거지. 헤페토가 속으로 읊조렸다.


“저는 목수이기도 합니다. 교탁과 칠판, 아이들을 위한 책상을 만들어 드리지요.”


“그렇게까지 하셔야겠다면야….”


선생은 떨떠름한 얼굴로 허락했다.


6.

콧노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헤페토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잠시 후 피노가 가게에 들어섰다.


“다녀왔어요, 아빠!”


“오늘은 뭘 배웠니?”


“팽이치기를 했어요! 친구가 팽이를 빌려줬어요.”


“어제까지는 구슬치기를 하지 않았니?”


“이제 구슬치기는 안 해요. 팽이치기를 해요.”


“그렇구나….”


지난주에는 딱지치기를 한다고 사방에서 종이를 주워와 방을 딱지로 가득 채웠다. 그러다 구슬, 이제는 팽이였다. 헤페토는 나무를 들어 팽이를 깎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내일 아빠 학교에 오래요.”


“또?”


헤페토가 중얼거렸다.

다음 날 헤페토는 피노와 함께 학교에 갔다. 피노의 책상은 교실 뒤쪽 구석에 자리해 있었다. 체격이 큰 피노가 앞에 앉으면 다른 아이들이 칠판을 볼 수 없다고 해서 더 큰 칠판과 함께 단상까지 만들어 주었는데도 도로 뒷자리였다.


“이번에는 뭘 해달라고 부르는 거지.”


선생은 구운 지 일주일은 된 식빵처럼 딱딱한 얼굴로 헤페토를 맞이했다.


“피노는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에 놀러 오는 것 같아요.”


“먼 자리에서는 수업에 집중하기 힘듭니다.”


“저도 피노에게 앞자리를 주려 해 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뒤로 확 돌린단 말입니다. 몸은 앞을 보는데 고개는 완전히 뒤로 돌아가 있어요! 얼마나 오싹하던지…. 밤에 가위에 눌렸습니다. 그 상태로 팔을 늘려서 제일 뒷줄에 앉은 아이와 장난을 쳐요.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도 시끄러워서 수업에 방해가 됩니다. 작은 아이들은 피노를 무서워해요.”


“필요한 걸 말씀하시면….”


“피노에 대해서 불평하는 학부모들도 나오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설득해 봤습니다만 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헤페토는 화가 치밀었다.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일곱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다양했다. 체구가 커서 앞자리에 앉히지 못한다는 건 억지였다. 결국 피노가 자동인형이라는 게 문제였다.

수업을 마친 피노가 헤페토에게 뛰어왔다.


“학교 수업은 재밌니?”


“네! 쉬는 시간에 허수아비를 했어요. 제가 이겼어요!”


피노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잠깐 학교를 쉬어야겠구나.”


“왜요?”


“아무도 너에게 아무 소리 못하게 해주마.”


“왜요?”


“너는 내 아들이야. 아버지라면 당연히 아들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세상을 살아가게 해줘야 하는 법이란다.”


피노는 아무도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는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왜요?”


“아무 말 말고 아빠만 믿어라.”


헤페토가 피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 하는 말을 듣는 게 좋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피노는 양 입가를 올려 웃었다.


“네.”


“앞으로는 놀이보다 공부에 집중하거라.”


“네.”


7.

헤페토는 설계도를 그리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피노의 내부는 미노타우르스의 미로보다 복잡한 알고리듬 장치로 가득 차 있었다. 피노를 작게 만들면서도 알고리듬을 단순화하지 않으려면 내부 부품이 섬세하고 정교해져야 했다. 다리 또한 한 방향을 향하면서도 안정적이어야 했다. 피노에게는 길고 짧고 굵고 얇은 다리가 붙었다가 버려졌다.


“널 꼭 진짜 아이처럼 만들어줄게.”


“네, 아빠.”


헤페토가 잠자리에 들면 피노는 작업실에서 밤새 춤을 추었다. 지금은 팔도 다리도 없이 상체에 목만 붙어 있는 지라 춤을 출 수 없었다. 그래서 노래를 불렀다. 푸른 달빛이 포근한 이부자리처럼 피노를 덮어 주었다.


8.

키가 130센티미터로 줄어들어 헤페토를 올려보는 피노의 눈에 천장이 들어왔다. 피노는 천장에 있는 나뭇결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걸어보렴.”


헤페토가 말했다. 피노는 앞으로 걸었다.


“이젠 뛰어 봐.”


피노는 깡충깡충 뛰었다. 그리고 진열대를 향해 팔을 뻗었다. 팔은 길어지지 않았다. 피노는 왜 팔이 길어지지 않는지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고개는 좌우로 90도까지 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훌륭해! 이제 아무도 널 자동인형이라고 멸시하지 않을 거야. 진짜 아이와 흡사해졌으니까.”


헤페토는 피노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그는 피노의 몸에 맞는 옷을 입혀 주었다.


“불편해요.”


“옷을 입으면 작은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을 거야. 다시 학교에 가야지.”


“신나요!”


“학교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놀지 말고 공부해요.”


“그렇지!”


“진열대에 손이 닿지 않아요.”


“이제 일은 아빠에게 맡기렴. 나는 널 대학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누구도 널 멸시하지 못할 거야.”


“네, 아빠.”


9.

2년 동안 주름과 새치가 는 선생은 설마 다시 올 줄 몰랐다는 얼굴로 헤페토와 피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많이… 작아졌구나.”


“돌아보렴.”


헤페토의 말에 피노가 머리를 포함해서 전신을 한 바퀴 돌렸다. 헤페토는 더 트집 잡을 게 있느냐는 매서운 눈초리로 선생을 쏘아보았다. 선생은 피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피노가 알던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완전 쬐끄매졌네.”


2년 전에는 피노를 올려다보던 아이가 이제는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빠가 진짜 아이처럼 만들어줬어.”


“그래 봐야 가짜지!”


아이가 웃으며 피노를 밀었다. 구경하던 아이들도 피노를 작대기로 툭툭 건드리거나 밀며 낄낄댔다. 피노도 웃으며 자기를 민 아이를 밀었다. 아이가 엉덩방아를 찧더니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헤페토는 다음 날 학교에 불려갔다.

오후에 하교한 피노를 맞이한 헤페토가 엄격하게 물었다.


“아빠가 학교에서 어떻게 하라고 했지?”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했어요.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자고 했지만 저는 공부했어요.”


피노도 술래잡기를 하고 싶었지만 노는 경로가 선택되지 않았다. 헤페토가 해당 경로로 들어가는 입구를 좁힌 것이다.


“아빠가 학교에서 싸움질하라고 하던?”


“아니요.”


“그런데 왜 싸웠니?”


“싸우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네가 반 아이를 넘어뜨렸다고 하던데?”


“절 밀면서 웃기에 새로운 놀이인 줄 알았어요.”


“아까는 놀지 않고 공부했다면서?”


이 질문에 맞는 경로는 없었다. 놀지 않았다고 했는데 놀았다. 오류였다.


“이제 아빠에게 거짓말도 하는 거니?”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공부했어요.”


“아깐 놀았다면서?”


피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정말 실망스럽구나. 지난 2년 간 아빠는 널 학교에 보내려 네 몸을 새로 설계하고 제작하고, 학비를 모으느라 구운지 며칠 지나 딱딱해진 빵을 사고, 시들어 버려진 채소를 주워다 먹었다! 아끼던 자동인형도 다 헐값으로 팔았어! 네가 울퉁불퉁하고 비좁은 거리를 벗어나 반듯한 대로가 깔린 동네에서 살게 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라면 자동인형 가게든, 빵집이든, 뭐든 할 수 있어. 어설픈 재주를 가진 사람도 단지 좋은 거리에 있다는 이유로 쉽게 돈을 버는데, 아빠와 네가 거기로 이사 가면 뭐든 못할까? 아빠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왜 그랬는지 넌 전혀 이해를 못하는구나!”


“절 사랑하니까요.”


좌절로 인해 꺾였던 헤페토의 고개가 들렸다.


“선생님이 그러는데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대요. 그래서 힘들게 번 돈으로 학비를 내준대요.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께 보답하는 착한 아이가 되래요.”“그 선생이 아주 형편없지는 않구나. 난 내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무심하지 않아.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착한 아이가 될게요.”


“아빠와 약속한 거다?”


헤페토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피노는 마주 걸었다. 헤페토는 손가락을 걸지 않은 손을 피노의 머리에 얹고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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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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