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창세기 22장 1~2절
형의 도착
칠 년 만에 보는 형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인공 태양광에 보기 좋게 그을었지만 여전히 반질거리는 얼굴,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체격, 몸에 걸치고 태어난 것 같이 착 달라붙는 최고급 수트, 생각에 골몰한 듯한 인상을 강조하는 미간의 내 천자. 칠 년 전과 마찬가지로 주름살 하나, 흰머리 하나 생기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 쪽이었다. 이제 갓 마흔 줄에 들어선 나는 칠 년 전보다 허리띠 구멍을 두 개 더 늘려 끼었고,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 끊지 못한 담배 때문에 피부가 거칠어졌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빠지는 흰머리를 보며 혀를 찼다. 이제 형 옆에 있으면 내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둘을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우리가 태어난 순서를 착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그가 형이었다. 형은 장자의 권위와, 자신감과, 힘을 철갑처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나는 형에게서 수트케이스를 받아들었다. 가방은 생각보다 가볍게 들려올라왔다.
“짐이 별로 없네?”
“어차피 한국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옷가지는 호텔로 직접 부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우리 집에 묵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형 스타일이 아니었다. 형은 소음을 싫어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했다. 그 ‘남’은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형이 양양 우주공항까지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한 것이 더 신기했다. 내가 아는 형이라면 호텔에 들어가 짐 정리를 해 놓고 저녁이나 먹자고 나를 불러냈을 것이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형이 타기를 기다렸다. 형은 차 내부를 비평하듯 둘러본 다음 좌석에 앉았다.
“차를 바꿨구나.”
“그 동안 몇 년이나 지났는데. 오래 타다 보니까 GPS 감도도 많이 떨어지고. 이거 현대에서 나온 ‘핼시언’이라는 새 모델인데, 괜찮아요. 유럽이랑 중국에서도 잘 나가는 차야. 뭣보다 자동운전 오작동율이 낮아서 안전하거든.”
“하지만 운전은 수동으로 부탁해.”
“양양에서 서울까지?”
나는 놀라서 형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도로 사정이 개선되고 하늘길로 교통로가 분산되었다고 해도 강원도에서 서울이면 서너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요즘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직접 운전대를 붙잡고 앉아 있는 운전자는 없었다. 그러나 형의 옆얼굴은 털끝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아무래도 자동 장치들은 미덥지 않아서.”
“……알았어요.”
보안이 생명인 업종에 종사하는 형이 한번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수동 운전 모드로 전환하고 차의 전자두뇌를 껐다.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차들이 자동 운전 모드로 달리기 때문에 도로 흐름만 따라가면 사고가 날 일은 없었다.
형은 강원도를 절반쯤 횡단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어떠시냐?”
“아…….”
“자주 찾아가 뵙냐?”
“……아니.”
입 안이 말랐다.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다. 그 동안 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많았고, 두 달 전에는 하나가 독감에 걸렸고, 하나의 독감이 끝나자 집의 중앙제어장치가 고장 나는 바람에 수리해야 했고……그러나 전부 핑계였다.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은 지 반 년쯤 되었고, 그 전에 찾아간 때는 설날이었다. 그 외에는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 보내주는 검사 결과와 동영상 메일을 보고 아버지의 병세가 확연히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하고 지나갔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마음이 가지 않으니 몸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형은 내 표정을 보더니 픽 웃었다.
“됐다. 칠 년 동안 못 찾아뵌 맏아들도 있는데 네가 그런 얼굴 안 해도 돼. 꼭 네가 중학교 때 성적표 위조하고 나서 짓던 얼굴 같구나.”
“내가, 그랬나?”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벨트 아래를 맞은 권투선수 같은 기분이었다. 형은 여전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말 몇 마디로 다리를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형은 아버지를 닮았다. 아니, 차라리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폭력을 쓰기라도 했다. 형은 내게 손 한번 댄 적이 없었지만 나는 늘 형 앞에 가면 숨이 막혔다. 겨우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칠 년 전 우주 정류장으로 떠나는 형을 배웅하던 순간까지, 형은 넘을 수 없는 철벽과 같은 존재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음 말을 꺼낸 것도 역시 형이었다.
“하나는 잘 크니? 별일 없고?”
“어, 건강하고, 잘 커.”
이것도 의외였다. 칠 년 전 형은 마치 물건처럼 하나를 넘겨준 다음 우주 정류장으로 가버렸다. 형이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형이 다시 피식 웃었다.
“뭐 그리 놀라냐. 하나는 네 딸이지만 내 작품이기도 하잖니. 안부 정도는 당연히 물어야지.”
“어……응.”
‘작품’이라는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 화제는 반가웠다. 하나에 대해서라면 양양에서 서울로 가는 동안 내내라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휘어잡고 다니고, 수업 시간에 만든 요리랍시고 쿠키를 구워와 아빠에게 억지로 먹이고, ‘마법의 용 퍼프’ 연극을 보다가 참지 못하고 눈물 콧물을 줄줄 빼며 울어버린 하나. 자기는 공주님이라고 늘 분홍색 옷과 분홍색 머리띠를 찾지만 로봇 장난감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는 하나. 목욕을 마친 후 답싹 안길 때 몸에서 나는 아기 향기와 보드라운 머리카락. 하나의 이런저런 모습을 떠올리다가 저절로 입이 벙싯 벌어지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하나는 내가 좀 데려가야겠다.”
하나의 안부를 묻던 것과 똑같은 표정으로 형이 말했다. 팔 년 전 ‘아이를 만들어 줄 테니 어리광은 그만해라.’ 하고 말하던 것과 똑같은 목소리와 어조였다.
“내일은 하나랑 유원지에 가기로 했는데.”
나는 운전대를 손에 잡고 앞을 노려보면서 누군가가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누가 왜 그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그것이 내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때서야 호흡이 툭 끊어졌고, 그 다음에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형이 옆에서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차를 거칠게 갓길에 갖다 댔다.
내일은 하나와 함께 유원지에 가기로 했는데.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냥 ‘형, 무슨 소리야?’라고 말하면 되는 거였고, 좀 더 심각하게 반응한다면 정색을 하고 ‘무슨 말이야? 내 딸내미를 데려가긴 어딜 데려가?’ 정도로 충분했다. 왜 나는 형의 말이 어길 수 없는 명령인 것처럼, 변명하듯이 그렇게 말했을까. 갑자기 위에서 신물이 치솟아 올랐다. 나는 주머니를 더듬어 담배를 찾았다. 세 모금 째 연기를 들이마실 때에야 형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팔 년 전
처음 수미와 사귀고 싶다고 말했을 때 형의 입술은 미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웃음인지 난처함인지 모를 표정으로 형이 말했다.
“의외구나. 걔가 그렇게 다정다감한 아이는 아닌데.”
그때도 ‘다정다감’이라는 말이 형 입에서 나오자 왠지 무척 우스워 보였다. 그러나 수미와 나를 잇는 끈은 형밖에 없었다. 수미는 형의 대학 후배고, 회사 연구실 후배였다. 다행히 형은 반대하지 않았고, 수미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었고, 나중에 어떤 아가씨냐고 묻는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야무지고 괜찮은 애에요. 경수가 좀 어리버리하니까 잘 맞을걸요.’ 하고 말했다. 형이 그렇게 말해준 덕분에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다. 우리 부모님에게 형의 판단은 늘 옳았다.
수미네 집에서는 수미의 판단이 늘 옳았다.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수미와 별로 닮지 않은 장모님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그런데 참 의외네. 수미가 좋다니 우리야 물론 좋지마는, 난 쟤가 연애로 결혼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어. 사실 내 딸이지만 쟤가 남자한테 관심을 갖거나 예쁘게 보이려는 타입은 아니잖아.”
“그래서 제가 반했습니다.”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은 진실이었다. 휴일날 어쩌다 형이 가져가야 하는데 잊어버린 서류를 전해주러 갔을 때, 유리로 된 벽 너머에서 회의를 하고 있던 형의 팀 동료들 중에서 그녀는 단연 돋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형과 그녀 둘만이 눈에 도드라졌다. 둘 다 일과 자신에 몰두했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형은 자신의 권역에 타인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고 강력했고, 그녀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콱 찔린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수미를 사귀는 내내 지속되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수미는 늘 나를 놀라게 했다. 어떤 면에서는 타협의 여지없이 차갑고 완고했고, 어떤 면에서는 나이 서른이 넘은 여자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천진난만했고, 어떤 것은 너무나 선뜻 받아들였다. 이른바 여자답게 살갑거나 다정한 면은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장모님께 한 말마따나, 나는 수미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우리의 교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고, 결혼한다고 하자 모두 축복해 주었다. 동화책의 결말에 나오는 왕자님과 공주님처럼 우리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일 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밤 수미는 침실 경대 앞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경수야, 나 애는 못 낳겠어.”
사월 말이었다. 밤은 다정하고 촉촉했고, 일찍 핀 라일락 향기가 어렴풋이 아파트 베란다 너머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서늘한 수미의 살갗이 와 닿기를 기다리며 침대에 엎드려 빌려온 만화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수미가 하도 침착하고 조용하게 그 말을 하는 바람에 건성으로 ‘응, 그래?’ 하고 들어 넘길 뻔했다. 잠시 후 그 말이 완전히 소화되자 나는 튕기듯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그때까지 아기를 갖는 문제에 대해서 둘이 제대로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때가 되면 아기를 갖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 때가 언제인지만 수미와 의논해서 조절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애든 여자애든 상관없었고, 하나를 낳든 둘을 낳든 수미의 의사에 따를 작정이었다. 하지만 아예 아기를 갖지 않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수미도 평소에 아기를 갖기 싫다는 티를 낸 적이 없었다. 나는 수미를 똑바로 쳐다보려 했으나, 수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방 경대 앞은 기껏해야 두 발짝 아니면 세 발짝인데도 수미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길을 돌린 채 수미가 책을 읽듯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기 건강검진을 하는 김에 정밀검사를 신청했거든. 노산까지는 아니라도 생물학적으로 한창 나이에 임신하는 건 아니니까 위험요소가 있는지, 있으면 어떤 건지 확실히 해두고 싶었어. 그런데 내 호르몬 수치들이 정상이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이쪽 계열이……그래서 뇌 영상을 찍어봤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좀 알아듣게 설명해 봐.”
형과 수미는 제약회사 연구실에 다녔지만 나는 평범한 회계 담당 회사원일 뿐이었다. 수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수미는 멍한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길을 돌렸다. 수미의 어조가 더욱 딱딱해졌다.
“한 마디로 내 뇌는 사랑이나 모성애와 연관된 호르몬을 정상 수준만큼 분비하지 못해. 한참 밑돌아. 그래서 아기를 낳더라도 그 아기가 필요한 만큼 적절히 사랑해 줄 수가 없어. 산후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훨씬 높지. 아기에게 애착장애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더 나쁜 경우는 이런 기능장애가 유전될 수도…….”
메트로놈처럼 돌아다니는 수미의 걸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억지로 수미의 팔을 잡아 침대에 앉히고 간곡하게 말했다.
“수미야, 수미야.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넌 나 사랑하지 않니? 너도 나 사랑하니까 결혼한 거 아냐. 아기도 마찬가지야. 네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거 자체가 벌써 아기를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그때까지 시선을 피하고 있던 수미가 갑자기 눈을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 아내의 눈이 이렇게 깊고 공허했던가? 이렇게 메마르고 바삭거렸던가? 수천 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수미가 말했다.
“모르겠어. 너는 좋은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나를 좋아해. 그렇기 때문에 나도 너와 있으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처럼 경계하거나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거나 몸이 달아오르거나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어.”
“나한텐 그걸로 충분해.”
나는 서둘러 말했다. 사실이었다. 나 때문에 몸이 달거나 얼굴이 붉어지거나 가슴이 콩닥거리는 수미 같은 것은 상상한 적도 바란 적도 없었다. 수미는 그대로 좋았다. 그러나 수미는 지친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아기에게도 그걸로 충분할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얼음처럼 우리를 에워쌌다. 잠시 후 불이 꺼지고 수미가 내 옆에 누웠지만 그날 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호르몬이야 약으로 조절하거나 무슨 방법이 있을 거고 수미만 설득하면 된다고 믿었다. 다만 수미가 일단 마음을 결정한 일에 대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알고 있었기에, 당분간은 말을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회사 일도 바쁘고, 결혼 후 일 년 반이면 아직은 갖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용하지만 완강한 수미의 태도에 맞부딪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수미도 그 말을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두 달 동안 우리는 아무 일이 없는 듯이 그렇게 살았다.
두 달 후 수미는 죽었다.
그 유명한 양우백화점 주차장 사건이었다. 어떤 개자식이 순전히 재미로 주차장의 자동제어전파 송출장치를 해킹하는 바람에, 백화점 주차장에 있던 차와 그 주변을 지나가던 차들이 전부 미쳐 날뛰었다. 27대의 차가 파손되고, 42명의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었고, 다섯 명이 죽었다. 그 중 한 명이 수미였고, 다른 한 명은 수미와 함께 쇼핑을 나간 어머니였다.
전 사회가 들끓었고, 범인에게는 감형 없는 종신형이 선고되었지만 나는 아무 감흥도 느끼지 않았다. 범인이 어떻게 되건 죽은 수미가, 죽은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았다.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는지도 기억할 수 없다. 잠을 잤는지 깨어 있었는지, 누가 왔다 갔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굳은 얼굴로 계속 옆에 서 있던 형, 오열하다 쓰러진 장모,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잡아 흔들던 아버지 같은 단편적인 그림들만이 다른 사람의 사진첩에 끼워진 의미 없는 풍경사진처럼 펄럭거린다. 그때는 그런 그림들이 내게 아무 감정도 전해 주지 않았다. 아니, 슬픔을 느끼고 분노하고 상실감에 빠질 수 있는 나 같은 것이 아예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살던 전 세계가 무너졌고, 나도 무너졌고, 감정은 메마른 모래처럼 쪼개지고 바스라졌다. 장례가 끝난 다음날부터 나는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슬픔에 빠져서 회사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저 돌이 된 것 같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전화가 오고, 초인종이 울리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공이치기가 고장 난 총과도 비슷했다. 머리 한구석에서는 누군가가 열심히 ‘전화를 받아야지’, ‘누가 왔어. 가서 문을 열어야지’, ‘회사에 가야지’ 하고 말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라면 그런 생각이 방아쇠가 되어 몸과 마음 사이에 있는 매개 장치에 동력을 전달하고, 그 동력은 몸을 움직여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 사이를 잇는 부품 하나가 빠져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다음에는 외부 상황을 보고 듣던 머릿속의 누군가마저 떠나버렸다. 제일 처음에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이, 그 다음에는 먹고 마시는 것이, 마지막으로 잠이 사라졌다. 아마도 해는 뜨고 지고 나는 먹고 마시고 잤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을 수 없었겠지만, 언제 어떻게 왜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자고 무슨 꿈을 꾸고 생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지 이 모든 것은 내 생활에서 사라졌다. 우주는 위도 아래도 중심도 끝도 없이 적막했고 별들은 견고하지도 빛나지도 않는 회색의 잿더미였다. 그 안에서 나는 생명의 온기 없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런 곳이리라. 누군가와 누군가가 활기차게 고통을 주거나 받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의미도 움직임도 없이 멈추어 있는 세계.
실제로는 이 주 정도였다고 한다. 사망 신고 때문에 처가에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혹시 내가 수미와 어머니를 따라 목숨을 끊지는 않았나 겁이 난 장모님이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고, 아버지는 우리 집의 해결사인 형에게 나를 찾아가보라고 명했다. 형이 관리소를 협박하다시피 해서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비쩍 마른 해골 형상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형은 고목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를 흔들다가 119를 불러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의사는 내가 긴장성 혼미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을 내리고 전기 충격과 약물 요법을 썼지만 나는 아무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장모님은 나를 붙들고 흔들며 철철 우셨다.
“왜 혼이 빠졌어, 윤 서방. 수미가 자네 넋까지 데리고 갈 정도로 모진 애가 아닌데, 왜 혼이 빠진 거야? 정신 좀 차려, 응?”
그러나 이런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현실로 불러내기 위해서 어떤 약이며 치료법이 동원되었는지, 그 중 어떤 것이 효력을 발휘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돌 속에 묻혀 있는 조개처럼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던 나를 의식으로 불러낸 것은 형의 한 마디였다.
“너와 수미 아이를 만들어 줄 테니 어리광은 그만해라.”
그 순간 내가 몸을 꿈틀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만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걸음을 옮기다가 철봉에 부딪친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형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눈동자만 간신히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형은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연구원들은 입사할 때 보안이나 기타 이유로 유전자 패턴을 등록하도록 되어 있어. 물론 수미 것도 있지. 사망 후 절차를 아직 밟지 않았으니 자료는 다 남아 있을 거다. 체세포 패턴에서 생식세포를 만들어낸 전례는 없지만 응용할 수 있는 선행 연구들은 있어. 정밀 건강 검진을 했다면 세포질 분석을 위해 미성숙 난자라도 채취해 놓았을지도 몰라. 그럼 일이 훨씬 쉬워지지. 물론 본인이나 가족 동의가 필요하고 법적 절차도 복잡하지만…….”
그날부터 나는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반면 형은 다음날부터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퇴원하던 날도 잠깐 전화를 걸었을 뿐이었다.
“계속하고 있고, 잘 되어간다. 애랑 같이 생활할 수 있게 제대로 준비나 잘 해 놔라.”
그래서 나는 준비를 했다. 매우 민망하지만 형이 요구한 정액 샘플을 보냈고, 형이 소개한 변호사를 만나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고, 적극적으로 통원 치료를 했고, 새로 직장을 구하고 조금씩 가사를 익혀나갔다. 육아 책도 사서 읽었다. 임신부의 몸의 변화나 수유법 같은 것을 읽을 때는 문득 눈물이 솟구쳐 오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형의 말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수미와 나의 아이. 형은 냉정하고 과묵하고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믿음을 깬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내게는 수미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삼도천을 넘어, 세월과 망각의 강을 넘어 수미와 나를 연결해 줄 생명의 동아줄. 그 희망만으로도 나는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 육 개월이 가고 일 년이 흘렀지만 초조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수미와 나의 분신을 팔에 안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내 생활 전부를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실금도 갈 수 없었다. 형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아예 안중에 넣지도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다. 어느 날 저녁 전화벨이 울리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에 있냐? 데리고 가도 되지?”
“어……응.”
가슴이 벅차서 다른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시간쯤 후에 형이 나타나 잠든 아기를 안겨 주고 육아용품이 잔뜩 든 가방을 마루에 내려놓았을 때에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엉거주춤 아기를 안은 채 소파에 앉아 묻는 듯이 바라보자 형이 짧게 대답했다.
“생후 2개월. 여자애다. 건강하고, 2개월까지 맞는 예방접종은 다 맞혀 왔어. 육아수첩도 같이 가져왔으니까 보면 알 거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예방접종’이라는 말을 듣자 비로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실감이 났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자꾸 목울대에 뜨거운 것이 꿀꺽꿀꺽 넘어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형의 얼굴에 웃음 비슷한 표정이 감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웃음인지 아닌지 알 틈도 주지 않은 채 형은 벌떡 일어섰다.
“가봐야겠어.”
“벌써?”
나는 놀라서 형을 쳐다보았다. 최소한 그날만은 둘이 술 한 잔 하면서, 수미와 아기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웃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형은 고개를 저었다.
“차가 기다리고 있어. 얘를 너한테 데려다 주고 오늘 밤에 출발하기로 했거든. 아마 한참 못 볼 거다. 아버지 잘 모셔라.”
마지막 말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주저하며 물었다.
“어디 멀리 가는 거야?”
형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우주에. 얘를 발생시키면서 신약에 응용 가능한 기술이 많이 파생됐어. 그래서 보안상 이유도 있고 해서 회사에서 우주 정류장에 실험실을 임대했어. 거기 가서 후속연구까지 살펴 줘야 해.”
나는 그렇게 하나를 얻고 형을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이메일을 자주 보냈다. 세상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라는 뜻으로 아기 이름을 ‘하나’라고 지었다고 알리고, 하나가 우유 먹는 모습부터 이유식을 먹고 걸음마를 하고 돌잔치를 하는 모습까지 다 찍어 보냈다. 형이 당부한 대로 일 년에 한 번씩 형의 회사 연구소 부속 클리닉에서 하나가 받는 건강 검진 결과도 보냈다. 그러나 형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하나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쯤에는 나도 꼭 보내야 하는 편지 외에는 별로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사 년 전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소식을 알리면서, 함께 의논했는데 아버지 당신 의사로 요양원에 들어가시기로 했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그때도 형은 짧게 ‘알았다.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쪽이 좋겠지.’ 하고 답신을 보냈을 뿐이었다. 저 먼 별 사이에 간 형은 썰물처럼 순식간에 우리의 생활에서 빠져나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하나를 데려가겠다고?
서울 오는 길
형은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빠져나가는 담배연기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 옆얼굴을 바라보는 형의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눈길은 얄밉도록 침착했고, 나는 이미 한번 분통을 터뜨린 후였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거나 운전대를 내리치는 것으로는 형을 단념시킬 수 없었다. 목이 말라 꺽꺽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전문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한데 말이야. 그러니까 형 얘기는, 아버지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나를 형 연구실로 데려가서 모르모트로 쓰겠다는 거야? 내가 이해한 게 맞아?”
“나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렴. 내 소견을 말하자면, 하나의 뇌 조직을 지금 진행 중인 연구에 사용하면 알츠하이머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게 그 말 아냐. 그게 말이 돼? 하나는 정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딸이란 말이야. 세상 아무리 귀한 약이라고 해도 어떻게 내 딸하고 바꿔? 그런 짓은 못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형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더 낮고 차가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네 아버지는 두 분이시냐? 지금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 말고 바꿀 수 있는 여분이 있어?”
“그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형이 또 나를 한 대 먹인 것이다. 형은 내가 정신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나를 처음 만들 때에 비해서도 우리 기술은 많이 발전했어. 하나가 연구에 참여한다고 해도 꼭 위험하다는 법은 없고, 만약의 경우 네가 원한다면 딸은 또 만들어 줄 수 있어. 하지만 아버지야말로 한 분이시다.”
“또 만든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하나는 공산품이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또 만들 수 있다면 그쪽을 쓰면 되잖아? 왜 꼭 하나여야 해? 하나는 칠 년이나 나와 함께 산 내 딸이라고! 난 하나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옹알이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하나를 키웠어.”
“유전자 패턴 공유와 변이, 성장 호르몬, 여성 호르몬, 타우 단백질 대조, 이런저런 변수들을 고려하면 하나만큼 적절한 피실험자가 없어. 지금부터 수정란을 만들어서 뇌 발달이 안정되고 성장호르몬이 활발하게 분비될 수 있는 나이까지 키운다면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야. 지금은 아직 일흔도 안 되셨어. 요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우리 곁에서 이십 년을 더 사실 수 있는 나이지. 병만 치료한다면. 지금부터 네가 딸을 얻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키운다 해도 하나보다 더 오래 같이 살 수 있어.”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 있었지만 형의 그 말에 감도는 불길한 느낌은 놓칠래야 놓칠 수가 없었다. 형이 아까 한 말의 뉘앙스와는 분명히 달랐다. 나는 ‘하나를 데려가겠다’는 말을 들은 후 처음으로 똑바로 형을 바라보았다. 형은 내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마주 보지도 않았다.
“형, 솔직히 말해 줘. 하나에게는 정말 별일 없는 거야? 형이 생각하는 건 뭐야? 아버지도 하나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거야, 아니면 아버지가 낫는다 해도 하나는……위험한 거야?”
한참 침묵이 흘렀다. 형이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는 마치 무거운 바닷물 아래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삼국유사에 손순매아(遜順埋兒)라는 고사가 있다. 손순이라는 가난한 사람이 품을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하는데, 어린아이가 어머니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손순이 아내에게 하는 말이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얻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아이가 저렇게 어머니 음식을 먹으니 어머니가 얼마나 배가 고프시겠나? 차라리 이 아이를 땅에 묻어서 어머니라도 잘 먹여 드리자.’고 하는 얘기인데…….”
“그만해. 더 듣지 않겠어.”
“경수야. 꼭 위험한 건 아니야. 다만…….”
“결혼도 안 해 보고 애도 안 낳아본 형이 가족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형이 하는 얘기도 그래. 그냥 고릿적에 누가 지어냈는지도 모를 이야기일 뿐이야. 세상에, 요즘 세상에 누가…….”
“내가 가족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 말에 깃든 낯선 울림이 내 입을 막았다. 그건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한 형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비웃음 같기도 하고 자괴 같기도 한, 그러면서도 경쾌한 기묘한 어조로 형이 계속 말했다.
“너는 내가 가족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회사와 싸우고 협상을 해가며 네 아이를 만들어 반출했다고 생각하니? 그 대가로 칠 년 동안 우주에 묶여 있었고? 네가 내 동생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렇게 했을 것 같니? 너는 내가 지금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니?”
“…….”
“가족이란 그런 거다. 벗어버리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옷, 잠겨버리고 싶어도 나를 밀어내는 물. 부정하고 싶어도 결국 돌아오게 되는 뿌리. 그렇지만 뛰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잘라버리고 싶은 사지.
내가 한 이야기가 고릿적 이야기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결국 현재보다 더 생생하게 돌아오는 건 오래된 것들이야. 내가 우주에 있으면서 제일 뼈저리게 알게 된 일이 그거다.”
“형…….”
“그래, 네 말이 옳다. 나는 네게서 하나를 빼앗을 힘도 없고 권리도 없지.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어.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내가 하던 연구와 그 분야를 접목했고, 하나의 뇌 조직이 있으면 아버지를 치료할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렸고, 네게 하나를 데리고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왔다. 네가 어떤 쪽으로 결단을 내리든 나는 마음 편히 잘 수 있어.
이제 공은 네게 돌아간 거야. 네가 아버지를 고치기 위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이 있어. 그리고 넌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지. 내가 너라면 무서울 거다. 하나가 커가는 걸 보면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과연 아버지와 하나를 바꾼 게 잘한 일인지, 어느 쪽이 바꿀 수 있는 쪽이고 어느 쪽이 바꿀 수 없는 쪽이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나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네가 눈을 감을 때까지 떠올릴 그 생각이.”
침묵이 칼처럼 날카롭게 머리 위에서 흔들렸다. 침묵의 무게와 경도를, 그 예리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목이 뻣뻣해지고 입이 말라왔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 형이 내 어깨를 툭 쳤다.
“내가 할 말은 다 했다. 자동으로 놓고 가자. 너 지금 운전 못할 것 같다.”
서울까지 오는 나머지 세 시간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나도 모르게 한 마디가 나왔다.
“내일은 하나와 유원지에 가기로 했어.”
도대체 내가 왜 그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차 안에 내려앉은 갑갑하고 무거운 침묵을 뚫고 한번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봇물 쏟아지듯 멈출 수가 없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말이 분수처럼 뿜어 나왔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니코틴과 피로와 분노가 말을 마구 밀어 올렸다. 생각이 앞서고 말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번 돌아가기 시작한 기계가 멈추지 않듯이 말이 말을 불러올렸다. 그렇게 나는 떠들어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형은 몰라. 절대로 몰라. 처음에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 하나의 눈 속에서 반짝이던 빛도, 하나가 처음 지어주었던 웃음의 온기도 몰라. 아이 하나를 다른 아이 하나로, 생명 하나를 다른 생명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형이 모른다는 증거야. 사랑은 같이 지내는 시간이 아니야.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보충하거나 대치할 수 있는 건 더더군다나 아니야.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걸 바라실 것 같아? 아니, 아버지가 바라신다고 해도 상관없어. 형과는 달리 내가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뜻을 어긴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하나는 내주지 않을 거야. 형이 말하는 그 생각도, 무서움도 내가 다 버텨 보겠어. 나는 내일 하나와 함께 유원지에 갈 거야. 형은 가, 그냥 우주로 가버려. 형이 내게 하나를 데려다준 건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를 데려가게 할 수는 없어…….”
단숨에 말하다가 목이 메어 기침을 하느라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내가 한 말의 절반 정도는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차창을 열어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형은 나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서울 지사에서 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내일 모레 오후에 출발할 거다. 연락 주렴.”
기억의 두 얼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열 시밖에 안 되었지만 죽을 듯이 피곤했다. 진작 자고 있어야 할 하나가 분홍빛 잠옷을 입은 채 문간에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도 야단칠 힘이 없었다.
“아빠, 오셨어요?”
하나는 코트를 벗으라고 코트 자락을 잡아당기더니 서툰 손놀림으로 옷걸이에 걸었다. 그 다음 내 팔을 끌어당겨 소파에 앉히고 얼굴에 뽀뽀를 했다. 늦게까지 안 자고 있다고 야단맞을까봐 그러는 속내가 속에 훤히 보였다. 보통 때 같으면 슬그머니 웃고 말 일이건만 지금은 가슴이 아프고 울렁거렸다. 애써 심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이쁜 하나 왜 안 자고 있었어?”
말에 물기가 배어나오지 않게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하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이란 그런 법이다. 자기에 집중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면 신경 쓰지 않는다. 더구나 아빠도 울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행복한 시절이다.
“큰아버지 오신다고 해서 기다렸어요.”
틀리지 않은 높임말로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보니 몇 번 연습한 것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큰아버지가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하나가 태어난 것이 큰아버지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외가에서도 듣고,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나는 하나를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목욕을 시켰는지 머리에서 샴푸 냄새가 났다.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는 나의 하나. 없어져서도 부서져서도 안 되는 내 보물.
그렇게 하나를 안고 있으니 어느 부모고 한번쯤은 겪어 보았을 법한 기억이 났다. 하나가 네 살 때였다. 동물원에 같이 갔는데, 하나는 그날따라 걸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하나의 손을 잡고 와글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가다가, 문득 손이 허전해서 보니 하나가 없었다. 미친 듯이 하나를 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구내방송을 듣고 미아보호소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나와 내가 어느 정도 떨어지면 둘이 쌍으로 끼고 있는 미아 방지 팔찌가 동물원 미아보호소의 컴퓨터에 신호를 보낼 것이고, 집 주소와 연락처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마침내 미아보호소의 노란색 벤치에서 하나를 다시 안아 올렸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정작 하나는 아빠가 금방 온다는 스태프들의 말을 믿고 태평하게 그림책을 읽으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심장이 목까지 뛰어오른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다. 그때 하나를 꼭 안고,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그때 흘렸던 짭짜름한 눈물 맛이 혀 밑뿌리에서 다시 울큰 사무쳐 오르는 기분이었다.
“큰아버지는 호텔로 가셨어. 우리 집이……좁아서.”
“하지만 그러면 나랑 같이 자면 되는데.”
“하나는 착하니까 벌써 자고 있을 줄 알았지. 이렇게 깨 있을 줄 알았나.”
“잠이 안 왔어요.”
하나는 잠시 눈을 내리깔다가, 이 화제는 불리하다, 화제를 바꿔야 하겠다 싶었는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내일은 큰아버지도 놀이공원 같이 가요?”
“아니, 큰아버지는 서울에 놀러 안 오셨어. 일하러 오셨어. 하나는 내일 놀이공원 가면 뭘 제일 하고 싶어?”
화제를 돌려야 할 것은 내 쪽이었다. 하나의 입에서 형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더 듣다가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어버리거나, 온갖 바보 같은 짓을 할 것 같았다. 다행히 하나는 아빠의 작은 속임수에 금방 넘어갔다.
“홀로사파리요! 보경이는 홀로사파리 가서 사자랑 요정이랑 놀았어요. 난 유니콘 탈 거야. 유니콘 타도 되죠?”
물론 홀로그램 유니콘은 탈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하나에게 안 된다고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이고 장단을 맞추었다. 그렇게 일이십 분 하나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하나의 눈에 잠이 내리덮이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의 손을 끌어 침대에 뉘이고 이불을 덮은 다음 마루에 나와 위스키를 따랐다. 맑은 호박색 액체를 서너 잔 기울이자 머리에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타월지로 된 파자마가 몸에 닿자 어렸을 때의 기억 한 자락이 또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온 가족이 강원도의 해수욕장에 놀러갔던 때였다. 한 번도 바닷가에 와본 적 없는 어린 서울내기였던 나는 정신없이 파도를 타느라 정작 동해의 강한 태양에 제 어깨와 등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몰랐다. 민박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수박을 먹는데, 등짝에서 손이 닿지 않는 곳이 근질근질했다. 모기가 문 줄 알고 모기약을 발라달라고 티셔츠를 벗은 순간 어머니가 비명 섞인 고함을 질렀다.
“어머나, 이게 뭐야? 너 어쩌다 이렇게 됐어?”
등은 물집 투성이였다. 어머니가 놀라서 서둘러 약국에서 화상 연고를 사와 발랐고, 다음 날은 아파서 옷도 못 입고 웃통을 벗은 채 낑낑거리며 하루 종일 민박집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 다음날 돌아올 때도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데 곤란했다. 그때는 결국 아버지가 큰 타월에 내 몸을 감싸 안고 무릎 위에 앉힌 채 서울까지 데려왔다. 타월지가 몸에 닿는 감촉은 그때 온 몸을 감싸던 쌉싸름한 아픔과 담배 냄새 섞인 아버지의 숨결까지 기억나게 했다.
정말로, 오래된 것들은 예기치 못한 때 되돌아온다.
“그리뿡!”
하나의 방에서 나는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랐다. 방에 가 보니 이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꿈속에서 홀로그리폰이라도 타고 날았던 것일까. 나는 이불을 도로 덮어주며 아직 미소를 짓고 있는 하나의 보드라운 뺨에 뽀뽀를 했다. 술기운 속에서도 아기 냄새가 애틋하게 코에 끼쳐 올라왔다. 이 순간 나는 하나만을 생각했다.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은 온전히 하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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