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FI

우리 반에서 양호실까지의 거리(No Distance Left to Run)

소설가

2008년 7월 통권 34호

 Stage 4.



 피가 온 몸에 순식간에 뿌려졌다. 높은 파도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물이 튀는 것처럼 말이다.

 “뭐해, 정신 차리지 않으면 너도 좀비가 되고 말 거야.”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책상과 걸상이 뒤에서부터 앞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제길, 넌 도움이 안 돼.” 

 진아는 걸상으로 흐느적거리는 좀비를 찍어 내린다. 걸상 다리에 등이 박힌 좀비가 피를 튀며 쓰러진다. 그런데 이놈들 한 둘이 아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좀비들은 방금 시체가 된 아이들을 짓밟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 라고 해봤자 진아와 나 둘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벌벌 떨면서 웅크려 앉아 있는 나는 역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쓸모없는 겁쟁이. 나는 교탁에 웅크리고 숨어서 500원짜리 크기의 구멍으로 교실을 보고 있을 뿐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좀비의 수를 세어본다. 총 세 마리다. 진아가 교탁으로 들어온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하지...”

 진아가 중얼거린다. 나에게 해결책을 묻고 있는 게 아니다. 순식간에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질 지도 모른다는 탄식이다. 점점 다가오는 무리들. 책상과 걸상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우리, 이렇게 죽어버리는 건가.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만 떨고 있는 게 아니다. 진아도 떨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눈물과 땀과 콧물이 뒤범벅인 채로 서로를 붙들고 있다.

 이 때 우당탕 교실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구멍이 작아 소리가 나는 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좀비들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몰려가는 게 보일 뿐이다. 나는 고개를 교탁 위로 살짝 내밀어본다.

 병진이다. 뿔테 안경과 커다란 몸집만 봐도 알 수 있다. 병진은 밀대걸레를 창처럼 좀비에게 조준하고 있다. 끝이 뾰족해진 막대 걸레 자루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검은 빛에 가까운 피다.

 “너희들 무사하니?”

 역시, 반장답다. 나는 교탁에서 손만 내밀어 흔든다. 병진은 다가오는 좀비를 향해 막대 걸레로 머리를 가격한다. 자루 끝이 그대로 한쪽 귀를 통과해 다른 귀로 비쭉 튀어나온다. 고름 같은 진득한 액체가 귀에서 쏟아진다. 좀비는 쓰러지는가 싶더니 다시 중심을 잡고 일어난다. 지독한 냄새의 농도가 더욱 심해진다. 고장 난 변기에 1주일 동안 온갖 것들이 썩어가는 냄새다. 병진을 공격하는 좀비만 있는 게 아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친구들이 언제 다시 일어나 좀비가 될지 모른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의 수를 세어보니 스물이 넘는다.

 “역시 못 당하겠어. 양호실에서 기다릴게, 그리로 와!”

 도망가는 병진. 좀비들은 어그적 거리며 반장을 따라간다. 나는 그때서야 교탁에서 웅크린 몸을 일으킨다. 뒤집어진 책상과 내동댕이쳐진 의자들. 그 사이로 우리 반 친구들의 시체들이 흩어져 있다. 목이 뜯기거나 팔이 빠져나간 건 예사고, 내장이 튀어나와 뱀처럼 꾸물거리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토해버렸다. 꾸엑, 꾸엑, 꾸에엑. 이 아이들이 다, 우리 반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이 언제 다시 일어나 나를 잡아 먹어버릴 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 먹히기 전에 도망을 가든가 죽이든가를 선택해야 한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녀석들이 더 많으니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죄다 죽이고 등수를 올려보자. 그런데, 나는 아무 짓도 못하고 바보처럼 구역질만 해대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위에서 나올 것이 없는데도 헛구역질을 계속한다. 위가 쪼그라들어 아플 정도다. 몸이 후들들 떨린다. 춥다, 춥다, 미치도록 춥다. 

 마침 내 등을 쳐주는 진아.

 “못 말려, 너 같은 자식은....”

 나는 눈물, 콧물, 토사물을 스윽 닦는다. 하얀 교복 와이셔츠에 노랗고 진득한 것들이 묻어 버린다. 내일 다시 입고 오기는 걸렀다. 이런 상황이라면 영원히 학교 따위는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아는 내 목덜미를 잡고 교실 밖으로 나간다. 나는 거의 질질 끌리다시피 진아를 따라간다. 

 “빗자루를 꼭 잡아. 그게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니까.”

 청소하기 귀찮아서 칼싸움이나 할 때 쓰던 빗자루다. 이렇게 진짜 무기가 될 줄은 몰랐다. 교실 문을 나서니 조용하다. 좀비들이 내지르는 소리나, 당하는 소리 때문에 지옥 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다. 이것들이 어디로 다 사라진 것일까? 복도에는 시화전에 당선된 액자 몇 개가 걸려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이 왜 갑자기 액자가 눈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여름 내내 울려대던 매미소리는 이제 어디로 가고....’ 

 아, 한심하다. 이런 걸 쓴 놈도, 뽑은 놈도 똑같다. 그 옆에는 빨간 테두리로 된 액자가 걸려 있다. 

 ‘현재 스코어 20.3 체력지수 42.5 무기아이템 빗자루’

 어, 이건 무슨 시지? 

 복도가 쩌렁 쩌렁 울릴 정도로 종소리가 크게 울린다. 엘리제를 위하여. 동네 수박 장수 트럭이 후진할 때 들릴 법한 조악한 전자음이다.

 “뭐해, 빨리 움직이지 않고?”

 진아가 등을 세차게 후려친다.


Stage 5. 


 우리 반에서 양호실까지의 거리는 어느 정도 될까? 우리 반이 3층 동편에 있고 양호실은 1층 서편이니까 150미터는 족히 넘는다. 전력질주 한다면 1분이면 가능하겠지만 언제 어디에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진아와 나는 3층 중앙 계단에 다다랐다. 20미터 전진. 다행히 이곳은 조용하다. 우리는 재빨리 계단에 몸을 날려 2층으로 내려간다. 2층에 교무실이 보인다. 자, 이제 1층으로 내려가자. 그 때, 교무실에서 문이 부셔지며 좀비들이 튀어나온다. 분명 목에는 넥타이를 맸다.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그러나 온 몸이 썩어 문드러진 선생들이다. 이때를 기다리기로 했다는 듯이 1층에서 또 다른 좀비들이 올라온다. 목에 넥타이를 매고 교복 바지를 입었다. 그러나 이놈들은 더 심하게 썩어 문드러진 학생들이다.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다.

 “옆 반으로 일단 피하자.”

 우리는 계단으로 내려가려는 것을 포기하고 3학년 교실이 있는 서쪽 복도로 뛰어간다. 뒤를 보니 다행히 좀비들이 우리를 따라 오지 않는다. 선생들과 학생좀비들은 다 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리보다 훨씬 맛있는 걸 찾았나 보다. 재빨리 가까운 교실로 들어간다. 문을 잠그고 숨을 죽인다. 밖에서는 좀비들이 걷는 소리,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다가 점점 멀어진다. 창밖은 붉은 노을이 짙게 깔렸다. 천정의 전등이 깜빡거리며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보통의 학교 저녁 풍경은 이래야만 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선생 몰래 잠을 자던 보충 수업이 그리워진다. 그 때도 이렇게 멍하니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제발 하루가 빨리 끝나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진아가 흐느끼고 있다.

 “왜, 왜 그래?”

 진아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울음 때문에 열기가 느껴진다.

 “다...다 틀렸어.”

 진아의 목에서 진득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상처가 곪아 퍼지고 있다. 

 “우리 반에서 싸울 때, 나도 모르게 다쳤나봐. 좀비로 변해서 언제 널 헤칠지 몰라. 빨리 날 죽여줘. 정확하게 심장을 찔러야 된다는 건 알고 있지?”

 진아는 막대 걸레를 내민다. 끝이 창처럼 뾰족하게 쪼개어진 나무 막대다. 나는 얼떨결에 나무 막대를 받아들지만 그걸로 절대로 진아의 심장을 꽂을 수 없다. 오늘, 순식간에 좀비 서넛을 죽였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쓸모없는 겁쟁이. 어차피 진아는 좀비가 되면 나를 죽일 텐데 머뭇거릴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양호실에, 양호실에 가면 뭔가 해결책이 있을지도 몰라. 치료 가능한 약이 있을 수도 있고. 반장이 구해줄 거야, 병진이는 못하는 게 없잖아. 지독하게 어려운 수학문제도 척척 푸는 놈이니까, 조금만 참아.”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진아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진다. 이럴 때 시간이 멈추어 주면 좋겠는데, 어림도 없다는 듯이 흘러간다. 해는 이미 져서 교실은 불빛하나 없이 어둡고, 복도의 전등만이 깜빡깜빡 거릴 뿐이다. 응급상황. 정말 양호실에 빨리 가야 한다. 진아가 무릎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갑자가 고개를 든다.

 “경민이 너... 나한테 친절한 이유가 뭐야?”

 “그게 무슨 말이야.....”

 진아의 숨소리는 목에 가래가 잔뜩 들어간 것처럼 거칠다.

 진아의 어깨가 차갑다. 점점 좀비화가 되는 것일까.

 스피커가 지직거린다. 건물 전체로 퍼져지는 다급한 목소리.

 “경민아, 빨리 양호실로 전속력으로 달려와. 시간이 얼마 없어.”

 아, 우리반장 목소리다. 나도 가고 싶은데 지금 상황이 그리 좋지 않거든? 

 “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있니?” 

 진아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대답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진아는 몸을 획 돌리고는 순식간에 나의 목을 조른다. 나는 벌러덩 하며 교실 바닥에 넘어진다. 와당탕하고 무너지는 책상과 의자들. 진아는 순식간에 내 몸에 올라탄다. 

 “헉. 왜...왜이래.”

 나는 막대기를 움켜쥔다. 순간 심하게 풍기는 악취 때문에 토할 뻔 했다. 진아의 얼굴은 살점이 너덜너덜한 채로 문드러져 있다. 입술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끈적한 침을 질질 흘린다. 벌써, 좀비가 되어 버렸구나.

 “나는 말이야, 너를 괴롭히고 싶어 죽겠는데 말이야.... 너의 마음은 말이야... 상처하나 입는 법이 없어. 왜 넌 꿈쩍하지도 않는 건데... 네 마음을 알 수가 없어. 두 눈으로 똑바로 너의 마음을 보고 싶어.”

 나는 바동거려 보지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육중한 힘이다. 진아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빗자루를 빼앗는다. 그걸 허공으로 치켜들더니 그대로 내 심장에 꽂는다. 

 헉. 이 세상에서 느낀 그 어느 고통보다 지독하다. 너무 아파서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입 밖으로 비명을 지를 수도 없다. 사지가 바들바들 떨릴 뿐이다. 이런 아픔이라면 차라리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미치도록 빨리 생각해보자. 이런 고통을 받을 정도로 내가 진아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지..,. 

 “내 마음과 너의 마음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 되는 건데?”

 좀비가 되면 마음속에 있었던 말들이 이렇게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것일까? 진아의 입에서 진득한 액체가 줄줄 얼굴에 떨어진다. 죽기 전에 빨리 생각해보자. 그 거리는 아마도 우리 반과 양호실 사이까지의 거리 정도가 될 것이다.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1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영원히 닿지 못할 것 같이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 진아와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같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가방을 가끔씩 들어주고, 같은 학원에 다니고, 노래방을 같이 가주고, 영화도 함께 보고.... 

 진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심장을 향해 빗자루를 쉬지 않고 찍어 내린다. 갈비뼈가 무너지고, 가슴살이 파해쳐진다. 그래도 이렇게 정신을 잃지 않는 나도 대단하다. 

 “나에게 그저 친절한 것뿐이라면 차라리, 날 괴롭혀줘. 날 때려줘. 날 죽여줘.” 

 발버둥쳐 보려고 해도 이미 늦어버렸다.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그렇게라도 너의 모든 관심을 받고 싶어. 너의 마음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

 진아는 다시 한 번 막대를 힘껏 치켜들더니 그대로 나의 심장을 찌른다. 살갗과 근육이 문드러진다. 가슴이 열렸다. 진아는 내가 보는 앞에서 손을 가슴 깊숙이 집어넣는다. 그리고 나의 심장을 꺼낸다. 심장은 진아의 손에서 벌떡 벌떡 뛴다. 너는 나에게 무엇이었지? 나는 의식을 잃어가는 동안 기를 쓰고 생각하려 애쓴다. 뭐지, 뭐지, 뭐였지? 진아는 심장에 연결되어있는 핏줄을 국수 자르듯이 끊어낸다.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온다. 심장은 아직도 벌떡 벌떡 뛴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래, 그 따위 관심을 가져주면 될 거 아니야? 진심으로 좋아해 주면 될 거 아냐?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진아는 나의 심장을 두 손으로 자세히 살펴본다. 마치 나의 마음을 살펴보는 듯 말이다. 비실비실 웃으며 심장을 칠판으로 던져버린다. 나의 마음 따윈 알 가치가 없다는 듯이 강속구를 날리듯 던져 벼린다. 알듯 말듯 하면서도 알 수 없는 나의 잘못. 심장이 파열될 정도로 극악스러운 나의 잘못.  


 

 


Game Over

 

 

 

 

 

 

 

 

 

 

 

 

 

 

 

 



 온 몸에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깨어났다. 그런데, 눈이 떠지지 않는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내 말 들리니? 경민아. 여긴 양호실이야.”

 반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행이다,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할 수 없었을 거야. 뭐...뭐야 이게 다.... 진아는 내 심장을 던져 버리고, 나는 양호실에서 다행히 깨어났는데 꼼짝할 수 없는 상태라니.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가야하는 상황이 양호실에서 해결 되겠어? 답답해 경민아, 마음만 먹으면 이까짓 것 툭, 하고 뛰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마음대로 안 돼.

 “경민아, 내 말 잘 들어. 넌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야. 2008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노 디스턴스 레프트 런(No Distance Left to Run)'이야. 기억나니? 넌 베타 테스터로 게임에 참가하고 있었어. 내 말이 들린다면 눈동자를 움직여봐.”

 아, 죽기 직전엔 이런 꿈도 꾸는구나. 내가 요즘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나 열심히 하고 도서관에서 책 따위는 빌려 읽지 않는 건데. 애초에 도서부에 가입한 게 잘못이다. 그나저나, 눈동자를 움직일 수 있을까. 눈동자에 힘을 줘 보자. 자, 움직여 줄게. 보이니? 구슬 같은 눈동자가 휙휙 움직이는 게 보이냐고? 난 니 얼굴도 안보여.

 “지금이 2035년이라는 내 말을 이해한다면 눈을 좌우로 움직여봐. 아니면 상하로 움직이고.”

 나는 당연히 상하로 움직인다. 너, 아픈 사람 가지고 장난치니? 2035년 이라니.

 “아... 큰일이야. 몸은 돌아온 것 같은데 뇌의 일부가 손상을 입었나봐. 넌 아직도 자신을 게임 속 캐릭터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 현재의 너로 돌아오지 않아. 내가 경고 했지?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린 거니? 일단,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내 설명을 잘 들어봐. 우리 회사는 최정예 작가들이 만든 시나리오와 플레이어의 경험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게임을 제작 중이었어. 브레인 플러그를 사람의 뇌에 이식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대가 만만찮았어. 동물 실험까지는 성공했지만 실제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네가 최초야. 넌 30년 전의 네 모습으로 돌아가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어. 악몽처럼 생생한 게임이라 네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지. 꿈을 꿀 때 가끔씩 이게 꿈이 아닌가 생각들 때도 있지만, 너무나 생생해서 그런 순간은 잊어버리고 계속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침묵이 흐른다. 나는 눈을 좌우로 움직여야 할지 상하로 움직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기억을 최대한 살려보자.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해보자. 어쩌면 반장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 반에 갑자기 좀비들이 습격한 것은 게임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가 없다. 그따위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가 없지 않은가? 너무나 생생해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착각한 것일까? 미래의 게임이 악몽처럼 생생할 수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것이 게임이라면 나는 왜 깨어날 수 없는 것일까?

 “버그가 좀 생겼어. 분명히 게임을 테스트하기 전에, 수십 번도 넘게 디버깅을 했는데도 이런 버그가 생기다니 이해할 수가 없어. 너를 도와주기로 설정되어 있는 캐릭터가 좀비로 변한 뒤 널 죽였어. 너의 첫사랑을 모델링해서 만들어진 진아라는 캐릭터야. 너는 진아에게 3단계에서  심장이 파열되어 죽어버렸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넌 진아를 죽이는게 나았을지도 몰라. 자, 플레이어가 죽어서 게임 오버가 되면 넌 저장 지점(Saving Point)로 돌아가거나 현실에 깨어나야 되는데 계속 이렇게 잠들어 있어.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물리적으로 타격을 줄 수는 없는데... 우리도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야. 게임속의 캐릭터인 너에게 이렇게 말을 건넬 수는 있지만, 지금 현재 2035년의 너는 이렇게 누워 있어. 뇌 손상인 것 같아. 바이탈 시그날은 정상이야. 생명엔 지장이 없어. 우리 의료진에 최선을 다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참아줘. 최대한, 최대한 기억을 되살리도록 노력해봐.”

 나는 눈을 떠서 빨리 거울을 보고 싶다. 이런 미친 짓이 다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  과연 내가 지금 여드름이 덕지덕지 난 고삐리 인지, 마흔 살이 넘은 오타쿠 중년남자인지 확인하고 싶단 말이다.

 "우리도 버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하지만 넌 아직도 깨어나지 않아. 이대로라면 위험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나는 상하로 눈을 움직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너를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뿐이야. 어디로 보내줄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몰라. 우리도 해결책을 찾고 있을 테니까 너도 게임 속에서 찾아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나 휴대폰으로 연락하고. 행운을 빌어.”

 눈동자를 상하로 움직인다. 눈물이 조금 흘렀다. 그리고, 번쩍 하는 섬광이 보인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리며 감전되는 최악의 느낌이다.


Saving Point 8.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진동도 느껴진다. 이 진동은 익숙한데...뭐였더라. 그렇다, 학원에서 집으로 가는 승합차 안의 진동이다. 눈이 과연 떠질까? 어..어...어.. 떠진다. 정말 떠진다. 실로 꿰맨 것 같이 도무지 떠지지 않았던 눈이 가까스로 떠진다. 흐릿하지만 앞도 보인다. 눈가에 눈물도 조금 묻어 있다. 다 꿈이었나, 아니면 병진의 말 대로 다시 게임으로 돌아온 것인가. 아..아..아.. 혼란스럽다. 정말 혼란스럽다. 운전수의 머리가 보일 뿐 창밖은 어두워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휙 둘러보지만 차 안에는 진아와 나 뿐이다. 병진도 분명 타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삼총사는 언제나 같은 승합차를 타고, 같은 학원에 다녔는데...

 진아는 내 어깨에 기대어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졸고 있다. 나는 진아를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왜 나한테 그렇게 친절한 건데...’ 라는 진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왼쪽 가슴을 만져본다. 다행이다, 심장도 뛰고 가슴뼈도 그대로다. 빗자루 막대에 후벼 파여진 줄로만 알았다. 나는 살아 있다. 가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린다.

 핸드폰이 울린다. 진동이다. 지르르릉 지르르릉 내게 무슨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이 울리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화를 받으려고 할 때, 끼이익 굉음을 내며 차의 속도가 빨라진다. 뭐야, 아저씨 이거.

 쿵, 하며 뭔가가 차에 부딪힌다. 어둠 속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일 수도 있다. 밤거리를 헤매던 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길을 계속 달린다. 나는 창에 얼굴을 바짝 가까이 대고 밖을 살펴본다. 검은 물체가 창문에 퍽 하고 달라붙는다. 진득한 액체를 창문에 남기고 순식간에 떨어져 나간다. 이런, 좀비다. 온 동네를 뛰어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쫓는 좀비들이 보인다. 거리 곳곳이 불타고 있다. 다른 차선에서 달리던 차가 좀비에게 휩싸여 전복된다. 나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진아를 흔들어 깨운다. 

 “진아야, 빨리 일어나 봐. 이렇게 잠만 자고 있을 때가 아니야.”

 끼익, 하며 타이어 긁는 소리를 내며 차가 급정거 한다. 하마터면 앞자리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전화는 계속 울린다. 나는 전화를 받는다.

 “경민아, 다행히 게임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어. 행운을 빈다. 13단계는 첫 좀비가 출현한 뒤 1주일 뒤야. 진아는 좀비가 되지 않은 상태야."

 그리고 뚝 끊어지는 전화기. 역시 반장의 목소리다. 꿈은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싶지만 가슴이 먹먹하다. 실제의 나는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담.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애인도 없이 쓸쓸히 컴퓨터 앞에서 마스터베이션이나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창 밖을 보니 우리 학교다. 한 밤중에 웬 불이 이렇게 환하게 켜져 있는가. 운동장 한 가운데 승합차가 세워져 있다. 운전석이 열리더니 바쁜 걸음으로 운전수가 도망간다. 어어, 아저씨, 이렇게 사라지시면 곤란하죠. 나와 진아는 횡한 운동장에 남아 있다.

 진아가 자리에서 꾸물거리며 깨어난다.

 “아...악몽을 꿨어. 아주 무서운.”

 뭔데, 무슨 꿈인데? 게임 캐릭터는 꿈을 꾸지 않아.

 “웃지마. 꿈에서 경민이 네가, 날 죽이더라.”

 설마. 니가 날 죽였지, 나는 널 죽인 적이 없어. 

 “아, 일단 내리자. 총은 뒷좌석에 가득 싣고 왔으니까 문제없어.”

 진아는 문을 드르럭 열더니 트렁크에서 총을 꺼낸다. 나는 입이 떡 하니 벌어지지만 일단 진아를 도와 이것저것을 매고 주머니에 넣는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무기들이다. 

 “언제 이런 걸 사용할 수 있게 됐니?”

 나의 질문에 진아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바보, 벌써 1주일 째 좀비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걸 몰라?”

 아...그래. 반장이 말했었지, 지금이 13단계라고. 꿈이 아니었구나. 평소처럼 늦은 저녁시간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승합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진아의 집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 텐데...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며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끝이 없을 텐데... 

 운동장 한가운데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 물론, 좀비다. 교복 치마가 너덜너덜해져서 팬티까지 보이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것은 멍 하니 학교 건물 서쪽을 바라다보고 있다. 그곳에는 환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 박혀 있는 책들이라곤 수십 년이 넘어 읽고 싶지도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차라리 잘됐다. 어차피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열등반 학생들이 밤에 자율학습을 하던 곳이다. 좀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을 보는 듯 물끄러미 불타는 도서관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뭔가 생각이 났는지 학교로 잽싸게 뛰어간다.



Stage 13.


 우리는 도서관 앞에 서 있다. 얼마동안 도서관이 불타고 있었는지 모른다. 4층 꼭대기의 도서관으로 올라가니 책들이 타버린 냄새와 검은 재들만 가득할 뿐이다. 불꽃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타다 만 책상 사이에 시체들이 연기를 모락모락 내며 뒹굴고 있다. 나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이게... 좀비들일까, 사람들일까.”

 “글쎄. 아무튼 조심해. 좀비든 사람이든 어디서 나타나서 널 물어뜯을지 모르니까.”

 묵직한 기관총을 메고 진아는 앞장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서 타버린 재가 날린다. 공기가 탁해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다. 나무와 종이와 살이 타는 냄새가 공기 중에 뒤섞여 있다. 타다 남은 안경이 밟히고, 수학 정석이 밟히고, 세계문학전집이 밟힌다. 여덟 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책상도 몇 동강이 나버렸다.

 “저기... 진아야. 너도 혹시 도서부 아니었니?”

 진아는 발걸음을 멈춘다.

 “넌 마치 도서부가 아닌 것처럼 말하는 구나. 누구 때문에 도서부가 된 건지도 잊지 않았겠지?”

 아, 나 때문이었나.

 “따분한 날들이었지. 우리 학교에서 그 이상한 시체가 체육관에서 발견되기 전 까지는.”

 음, 그런 일이 있었나. 

 “3개월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여자아이인데.... 부모도, 친구도, 경찰도 찾지 못했어.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무튼 질색이야. 감쪽같이 시체로 숨겨져 있다가 갑자기 다시 살아나 이렇게 학교를 쑥대밭을 만들다니. 지긋지긋해.”

 그 아이가 최초의 좀비구나.

 “진아야.”

 그것 말고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몰라.

 “쉿.”

 진아는 검지로 입술에 손을 댄다. 철골 뼈대만 남은 서가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오른쪽으로, 진아는 왼쪽으로 붙어 천천히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걸어간다. 덜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손전등을 그쪽을 비춘다. 두 손을 눈에 가리고 있는 사람이다. 아, 병진이다. 

 “너희들 와줘서 고맙다. 정말. 죽을 뻔했어.”

 “어떻게 된 거야? 너도 좀비로 변한 줄 알았어. 학교에 아직도 남아 있다니 제정신이야?”

 “나...나도 잘 몰라. 분명, 습격을 당해 죽은 것도 같은데, 다시 멀쩡하게 살아났다고. 깨어보니 우등반 아이들이 올라와 도서관에 불을 태우고... 열등 반 아이들은 불타는 도서관에 갇혀 있고... 아, 뭐가 뭔지 모르겠어 나도.”

 진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병진이가 아마도 미쳤나봐, 라는 눈짓이다.

 “아무튼 다행이다. 살아남은 학생들을 구하러 왔으니, 너도 좀 도와줘.”

 병진은 발을 절뚝거린다. 좀비한테 물리지는 않았겠지... 어찌됐던, 나는 병진을 부축한다. 내 어깨에 몸을 기대더니 병진은 내 호주머니에 뭔가를 집어 넣어준다. 뭐지, 왜 여기 나타났지, 그리고 왜 내 주머니에 이상한 걸 주는 거지. 아무튼 아이템 획득.

 도서관을 빠져나오자, 복도의 불이 탁탁탁 하면서 차례로 켜진다. 그리고 엘리제를 위하여가 울린다. 궁색한 전자음은 사람의 신경을 긁기에 완벽한 주파수다. 이렇게 볼륨을 크게 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러 들어오는데... 

 “또...또 시작이야. 종이 울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것이 말끔히 리셋이 되, 학생들이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교실에 있어.”

 병진이 중얼거린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마치자마자, 반장의 말처럼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서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불에 탄 흔적도 없다. 열등반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모여 있다. 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자꾸 비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리셋되지 않는 것일까?

 “난 어차피, 다리가 물렸으니, 너희들끼리 가봐. 다 틀렸어. 좀비로 변할지 몰라. 그리고 이젠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 하다고....”

 “아냐, 끝까지 같이 가야 . 이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내가 납득하기 전에는 절대로 보낼 수 없어.”

 진아가 낮은 음성으로 말한다. 나는 반장의 어깨를 부축하고 계단을 내려간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2학년 3반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진아는 가방에서 탄창을 꺼내 장전한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진다. 병진이 내게 준 것은 주사기다. 끝이 뾰족해서 조금만 실수하면 손가락이 찔릴 것 같다. 그런데 주사기 안에 들어 있는 건 뭘까.

 좀비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깨어진 유리나 부셔진 책상도 없다. 2학년 3반의 팻말이 보인다. 교실 안에 희미한 전등도 보인다. 유리창 안의 학생들이 몇몇 보인다. 좀비가 된 것 같지는 않다. 몇 발자국이면 우리 반이다. 병진은 우리 반까지 가는 동안 말이 없다.

 그 때, 등 뒤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뭔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울리는 총성. 귀가 터지는 줄 알았다. 영화에서 보던 총소리보다 크다. 실제 총소리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순식간에 얼굴에 피가 튀었다. 내가 총에 맞은 줄 알았다. 그러나 총을 맞은 건 병진이다. 병진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안 그래도 축 늘어진 그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고꾸라진다.

 “지금부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총구가 내 등에 닿는다. 피를 닦을 새도 없이 반장을 바닥에 놓는다. 머리의 사분의 일쯤이 날아가서 오른쪽 눈과 귀가 없다. 그 사이로 검붉은 피가 줄줄 흐른다.

 “왜...왜 그래 진아야.”

 “내 이름을 부르지도 마. 넌 경민이가 아냐.”

 “내가 다 설명해줄 수 있어. 먼저 총을 내려놓고 이야기 하자.”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반장이 죽으면 더더욱 안 되는데. 너는 왜 이렇게 일을 더 꼬이게 만드니.

 “허튼 수작 하지 마. 이 모든 게 설명이 안 돼. 우리 학교가 저주를 받은 것이 틀림없어. 학생들을 봐. 종이 울린 뒤에 다 다시 살아났잖아. 아무리 좀비를 죽여도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거니? 다시 돌아가지 않은 사람은 너와 나, 병진이 뿐이야. 나는 분명 귀신도 아니고 미치지도 않았지. 그렇다면 뭘까, 남은 사람은... 내 앞에 지금 걸어가고 있는 너는 뭘까. 나도 지금 미치도록 궁금해. 넌 정상이 아니야. 아마도 네가 이 모든 일의 원인인 것 같아. 반장은 이미 좀비한테 물렸으니 죽어도 상관없어. 자, 이제 네가 알고 있는 걸 말해보시지. 이게 다 뭐야?”

 “지...진아야. 이건 게임이야, 2035년에 만들어진 게임.”

 나도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야. 하지만 진아는 크게 웃을 뿐이다.

 “하하. 정말 게임을 많이 하다 보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구나. 아무튼, 게임에 빠지는 남자들이란 한심해. 좀 더 그럴싸한 설명을 해보지 그래?”

 내 몸에서 기분 나쁜 땀 냄새가 난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믿어줄 수 있을까? 진아는 자신이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모른 채 자신의 생각으로 이 상황을 판단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진아야. 네가 날 죽일 마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어. 넌 날 좋아하니까... 나도 마찬가지고.”

 잠시, 진아는 대답이 없다.

 “너는 단지 내게 친절했을 뿐이야. 좋아한단 고백을 이런 상황에서 그딴 식으로 하는 네가  싫어. 나도 마찬가지라고? 하하. 넌 언제나 그랬어. 넌 정체가 뭐니? 네가 뭔데 우리 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건데?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총구의 압력이 더 심해진다. 그 어느 순간에라도 총알이 내 가슴에 박힐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실제의 나는 영영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죽기 싫다, 죽기 싫다, 정말 죽기 싫다. 

 “아냐, 내가 왜 너를 기다리면서 아침마다 학교에 함께 오는데. 왜 형편없는 선생이 가르치는 학원을 다니는데.”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 그러나 나의 진심은, 바보처럼 말할 수밖에 없는 진심은 알아 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은 주파수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2035년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지금 이대로 우리가 지낼 수 있다면,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네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데... 내게 너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지금은 니가 죽거나, 혹은 내가 죽거나 하는 순간이야. 네 마음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아. 우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와서 우습게 분석이나 할 시간은 없어. 허튼 수작 하지 말고 손이나 뒤로 내미시지.”

 그 때 교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좀비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 때를 노려 재빨리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 힘껏 진아에게 찔렀다.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서 찔렀는데 하필이면 심장 바로 아래다. 주사 바늘은 어디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주사기 속의 파란 액체를 주욱, 집어넣는다. 

 “너.....너.....이게 뭐야. 내가 꾸었던 꿈속과 ... 똑같아.”

 진아는 주사기를 맞고 풀썩 쓰러진다. 이건 단순히 버그라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나는 진아를 들쳐 업는다. 창문이 깨지고 문이 부셔진다. 좀비들의 난장판이 시작됐다. 자, 여기서 양호실 까지 뛰어야 한다. 우리 반에서 양호실 까지. 150미터, 전속력이면 1분이면 가능하다. 좀비들이 튀어나와도, 난 할 수 있다. 이 모든 미친 짓이 끝나면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하겠다. 그리고 진아야, 살 좀 빼줘. 생각보다 무거워.

 그리고는 전력질주. 다리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가쁜 숨에 피비린내가 날 때까지 전력질주. 절대로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숨음 들이 쉬고 한 번도 뱉지 않은 채로 달렸다. 환한 형광등이 수천분의 일초로 깜빡거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슬로우 모션이었다. 그토록 길게 느껴진 짧은 시간 동안 안경 쓴 남학생의 목을 무는 여학생 좀비를 보았고, 두 여학생이 합심해서 선생 좀비를 갈기갈기 찢는 것도 보았다. 



Stage 14. 



 양호실의 문을 드르륵 열고 재빨리 잠근다. 문 앞에 책상과 의자를 밀어 놓는다. 이런 식으로 얼마의 시간을 벌 수 있을까? 다행히 좀비들이나 폭도들이 아직 양호실 근처로 오지는 못했다. 나는 진아를 쇼파에 내려놓는다. 양호실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하얀 침대와 커튼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벽이 죄다 회색빛이다. 10인치도 안 되는 라운드 사각형 모양의 얇은 모니터들이 사방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그 모니터 에서는 교실 안에 마치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듯이 교실과 복도의 장면이 상영되고 있다. 2학년 3반에서는 좀비한마리가 선생을 물고 놔주지 않는다. 2학년 4반은 아직까지 정상이다. 2학년 5반엔 한 여자 아이가 엎드려 울고 있다. 2학년 6반은....

 그리고 양호실 한가운데 치과에서 볼 법한 치료 의자에 중년 남자가 누워 있다. 머리에는 전깃줄 같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뽑아져 육중한 기계로 이어져 있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기계에 연결되어 모니터를 밝혀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잠들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머리가 약간 벗겨졌다.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코 밑의 점과 눈썹의 흉터는.... 그렇다, 내 것과 똑같다. 그러고 보니 내 얼굴과 닮았다. 심장 박동기 같은 기계에서는 애처롭게 펄스가 뛰고 있다. 아직도 살아 있다. 이것이 실제의 내 모습이란 말인가. 혹은, 30년 뒤의 내 모습이란 말인가. 지금, 이 남자의 의식 속에서는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느낄 있는 것일까? 그럼 지금의 나는 뭐지? 

 “저기... 내말 들려요? 내 말이 들리면 눈을 아래위로 깜빡거려봐요.”

 나는 나에게 말을 건네 본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눈동자를 볼 수 없다. 나는 나에게 다가가 안경을 벗겨내려고 한다. 나에게 다가가는 손이 떨린다. 그 때 핸드폰이 울린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병진아, 어떻게 된 거야? 넌 무사하니?”

 “아, 나는 이곳에서 무사하니까 걱정하지 마. 충고하는 건데, 절대로 안경을 벗기지 마. 그리고 당분간 진아를 잠에서 깨워서도 안 되고. 지금부터 너의 힘으로 좀비를 물리쳐야 해. 무슨 방법을 써도 좋아. 하지만 아무도 널 도와줄 수는 없어.”

 “왜 안경을 벗기면 안 되는 건데?”

 수화기 저쪽에서는 대답이 없다.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안경을 벗겨버리고 말 거야. 나에게 건네준 주사기는 또 뭐야?”

 이 모든 것들이 이제 너무 피곤하단 말이다.

 “휴...어쩔 수 없구나. 네가 까맣게 기억하지 못하니까...”

 병진은 뭔가를 말한다. 하지만 삑,삑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휴대폰의 전원이 꺼진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 

 “아아아아악!”

 나는 마치 좀비라도 된 것 처럼 소리를 지른다. 휴대폰을 벽을 향해 던지려다가 참는다. 대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들을 모니터로 던진다. 몇몇 모니터가 깨지고 파바박 스파크가 일어난다. 거친 숨을 진정시켜 보려고 하지만 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다가간다.

 “저기... 내말 들려요? 내 말이 들리면 눈을 아래위로 깜빡거려 봐요.”

 내가 하는 말이 양호실 스피커에서 들린다. 이런 식으로 나의 말이 내 귀에서 들리는 것인가. 나는 내 옆에 앉아 나의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눈동자가 가끔씩 굴러갈 뿐이다. 좌우로도, 상하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제길.... 어떻게든 정신을 좀 차려 봐요.”

 양호실 복도에서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좀비다, 좀비들이다. 좀비들이 양호실로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다. 좀비의 습격으로부터 나를 구해 줘야 할 진아는 소파에 잠들어 있고, 미래의 나도 이렇게 잠들어 있다. 문에서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순식간에 좀비들이 쳐들어올 태세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뭘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아무 짓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양호실 안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쓸모없는 겁쟁이. 지독한 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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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