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을 지나, 지금 여기
한국에 SF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7년이다. 구한말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파견되었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한반도에 소개된 SF는 이후 백여 년 동안 존속해 왔다. 암흑기라고 불릴만한 시간들이 있었어도 아동문학과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를 횡단하면서 계속해서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특히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는 명맥을 잇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소위 내재화의 과정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들은 소설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한글로 창작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나 소재, 사회적 배경들을 적극적으로 유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었다. 물론 문화적으로 주류의 영역에서 언급되지 못하고 변방에 머문다는 레테르가 붙었지만, 정작 창작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SF에서 발현될 수 있는 상상력의 스펙트럼을 꾸준히 넓혀왔다. 그리고 그 실재들을 2015년을 기점으로 목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SF는 과학이란 개념이나 학습에 대한 프로파간다 혹은 대중적 흥미의 소재를 마니아층에서 유용하는 정도로 개념화되어 왔다. 물론 이러한 특징들이 SF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SF는 단순히 과학 그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인해 변화되고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과 의미들을 관찰하고 사유하면서 발전해 온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공계열의 지식과 인문학적 사유의 방법론들을 접붙이려는 시도에 붙일 수 있는 말이 ‘융합’이란 단어라면, 그것을 전위적으로 수행해왔던 문화예술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SF 역시 다양한 소재와 하위장르를 통해 세계관이 구체화된 작품들이 쌓여가면서,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능동적인 사고를 통해 수용자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이야기들을 누적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개최되었던 ‘SF어워드 2018’은 한국 SF가 현재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단편 수상작품들이 보여준 다양한 이야기들은 한국 SF가 100여 년을 지나, 지금 여기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어워드는 그동안 출판의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공식발표가 어려웠던 작품들이 기회를 얻어 쏟아져 나온 이례적인 상황도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난 몇 년간의 성과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제별로 보았을 때는 인공지능과 로봇이라는 SF에 익숙한 주제들을 통해 포스트휴먼(post-human)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다만 이를 소재적으로만 풀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과 그 공동체에 대한 밀도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거나(「얼마나 닮았는가」), 트랜스휴먼적 신체 변화를 통해 젠더에 대한 사고실험을 전위적으로 밀고 나가기도 했다는 것(「로드킬」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SF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던 밀리터리 요소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새로운 이야기 가능성을 만들어내고(「라만차의 기사」), 오컬트적 요소들을 과학을 통해 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이야기(「증명된 사실」)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우리는 묻고, 대답할 것이다
좋은 이야기란 결국 소통을 위한 것이다. 일방적인 외침이나 읊조림 등은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SF도 역시 다르지 않다. 작가는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묻는 존재다. 그러기에 어떤 것들을 물어오는가는 장르의 특성을 떠나 이야기가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어워드의 중단편 부문 수상작들을 보면 각각 무엇을 묻고 있는가에서 흥미를 끌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부각 된 페미니즘과 관련된 물음들이다. 이야기의 세계는 그동안 여성의 이야기와 세계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자연스럽게 남성의 세계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위주로 쌓아온 서사의 더께들이 익숙해져서 여성의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가치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기 때문에 최근 몇 년 간 여기저기에서 잃어버리고 지워져있던 영역들을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SF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들의 문학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지만, SF는 이미 반세기 전에 그러한 고정관념들을 걷어내 버렸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 이후로 SF와 페미니즘은 이미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발전해 온 파트너였다. 그리고 그러한 SF의 특성이 현재 한국의 사회적 이슈들과 맞물려 활발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수상작 「로드킬」을 비롯해, 여성의 시각에서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은 본심 수상작 16편 내에서도 여러 편이었다. 「원통 안의 소녀」, 「단발」, 「센서티브」와 같은 작품들이 이러한 시각을 밀도 있게 보여주었다. 대상작이었던 「얼마나 닮았는가」나 「궤도의 끝에서」와 같은 작품들도 역시 젠더와 그와 관련된 다양한 편견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의미들을 모색하는 작품이었다.
특히 「로드킬」과 같은 경우엔 과격해 보일 정도로 전위적인 트랜스휴먼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몸을 얻는 것이 일반적이게 된 세상에서, 그러한 몸으로 변화하지 못한 인류들은 이른바 ‘1급 보호 대상 소수 인종’이 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삶은 지금의 우리에게 지워진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지독한 편견과 혐오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얼마 전까지의 우리의 모습,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SF 뿐만 아니라 환상적인 설정을 사용하는 모든 이야기 방식에서 나타나는 알레고리(allegory)이다. 보호 대상 소수 인종인 된 여성을 바라보는 「로드킬」 세계 내에서의 시선들은 현재 우리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몸을 전환하지 못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지경들은 지극히 협소하다. 자유를 속박당한 채 주어지는 몇 가지의 방식에 자신을 투사해야 하고, 그 협소한 선택지들 내에서도 또 이런저런 비교와 우열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산에서 내려와 인간들이 마음대로, 편의대로 내어놓은 길에서 길을 잃은 뒤에 로드킬 당하는 고라니들과 다르지 않은 처지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망각하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세계들이 가지는 의미들을 톺아보고, 의미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닥칠 어떠한 것들에 대해서도 아니고 지금 우리의 세계에 대한 재정의를 위해 필요한 질문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로드 킬」은 그러한 마땅한 질문들을 던지고, 수용자들로 하여금 그 답에 대해 대답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는 좀 더 폭넓은 차원에서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문제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유사한 이성의 층위를 확보하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은 SF에서 수도 없이 사용된 클리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강(strong) 인공지능의 출현이 반드시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나 위기를 초래하는 서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과 혐오를 투명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법이 드러난 SF의 수작 중에서는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의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1953)가 있다. 「얼마나 닮았는가」에서 관리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러한 지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영화에서 사용되는 테이블 토크와 같이 수용자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가정들은 허황된 상상이나 미래에 대한 설정들이 아니다. 막연한 미래나 환상적인 시뮬라크르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은폐되어 있는 부분들에 대한 명징한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로즈메리 잭슨이 이야기했던 현실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력을 구현하는 장르로서 SF의 특징들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2019년의 한국 SF는 단순히 상상력을 위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르에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려는 장르인 것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스타트랙(Star Trek)> 시리즈가 SF 장르에서 유명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특히 초창기 시나리오 집필 작업에 할란 앨리슨(Harlan Ellison)이나 시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과 같은 유명 SF 작가들이 참여했었기 때문에 단순히 인기를 얻은 SF 드라마 혹은 영화로서가 아니라, 장르의 다양한 의미들을 만들어낸 작품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런 시리즈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주제는 바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가서, 새로운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SF가 그리는 환상과 미래, 상상력의 세계가 일관되게 지향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까지 조명하지 못했던 영역들에 대한 견지와 새로운 시각의 제시는 SF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롭고 개성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분들도 이번 어워드의 수상작들에서 나타난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새로움이라는 부담감에 대해서 기존의 익숙했던 장르의 관습들을 절묘하게 비틀면서 의미의 가능성들을 찾아낸 것은 한국 SF가 소재와 설정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가능성을 지점들을 열어준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라만차의 기사」는 이러한 소재의 개성적 활용이 돋보인다. 문명이 후퇴해 버린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을 계속하는 낭만적인 기사라는 설정은 클리셰와 클리셰가 만나서 어떤 새로운 지점들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그 기사는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전차 위에 오르고 기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근대소설의 설정으로부터 시작해 SF의 관습들이 다양하게 혼합되어 그려내는 세계는 생경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풍경들을 선사한다.
게다가 「라만차의 기사」는 전형적인 밀리터리 장르의 서사 구조를 차용하는데, 장르가 가지고 있는 프로파간다적인 메시지들을 슬쩍 우회해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성 강해 보이는 캐릭터 설정과 클리셰를 비틀어 축조한 세계관 내에서 목적성이 뚜렷하기 쉬운 서사 방법들을 사용했음에도 그 어느 것 하나 식상함을 지니지 않는다. 게다가 결국 인간과 그 관계에 대한 지극히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들로 귀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틀어 놓은 설정 안에서의 뻔한 메시지들은 그 전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 모양을 하고 있게 된다. 이전까지 본 적 없었던 세상에서 뻔해 보였던 돈키호테의 서사들도 새롭게 덧칠해져서 또 다른 의미들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증명된 사실」과 같은 경우에도 과학기술과 오컬티즘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이미지들을 능수능란하게 엮어낸 작가의 재치에 의해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이 소설은 영적 존재들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연구기관에 소속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다소 허무하고 황당할 수 있는 블랙코미디적 결말을 내놓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과장하지 않고, 짐짓 능청스럽게 과학적 사고를 경유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러기 때문에 마치 콩트와도 같은 간결함과 결말부의 충격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증명된 사실」이 가지고 있는 흥미로움도 여기에서 발생한다. 오컬티즘이라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현상에 대해서 결국 과학적인 설명을 해내려는 노력을 놓지 않은 지점에서 SF가 가진 과학이라는 것이 어떤 층위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SF가 단순히 환상이나 미래를 예언적으로 그리는 이야기로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통찰하고 사고실험할 수 있는 지극히 리얼리즘적인 영역을 포섭한다는 것을 감안해 보았을 때, 장르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 그리고 세계관의 다양성은 의미작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SF에서 이야기하는 ‘과학(science)’이라는 언표가 단순히 자연과학을 의미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과 그 과정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20세기 중엽부터 발표된 SF 작품들이 스스로 증명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부여도 과장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SF에서는 확장된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아직 가보지 못하고 상상해보지 않았던 지점들을 끊임없이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흥미와 더불어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새로운 통찰의 도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100여 년을 지나 현재 한국의 SF에서 그런 것들은 이미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저 낙관적인 예상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나타난 실재이다. 그리고 2018 SF어워드 수상작들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현재 한국 SF가 위치한 지점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수상 작품들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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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에서 언급된 2018 SF어워드 수상작과 작품에 대한 정보들은 ‘SF어워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s://sfaward.kr). 해당 페이지에서는 중단편뿐 아니라 장편/영상/만화·웹툰 수상작들에 대한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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